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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제야 사랑이 보이네”
- “사랑은 아직 어렵고 / 사람 맘은 여전히 모르고 / 어쩌면 살아간다는 건 / 모름을 깨달아 가는 일...(중략) 한땐 사랑이 날 살게 하고 / 그 이유로 무너져 내리고 / 끓던 마음이 고요해지고야 / 이제야 사랑이 보이네” 최근 국민가수 이선희가 발표한 신곡 ‘이제야 사랑이 보이네’에 나오는 가사입니다. 우린 살면서 얼마나 사랑으로 인해 행복해하고 또 사랑 때문에 절망하기도 합니까? 그렇게 가슴 속에서 끓던 마음이 고요해지고야 진정한 사랑을 볼 수 있다는 아련한 애상이 느껴지는 노래입니다. 이선희의 깊은 샘물 같은 감성과 바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애절한 보이스에 젖어 노래를 듣고 또 들었습니다. 저도 그런 6월의 사랑을 한 것 같습니다. 어느덧 해마다 6월이 되면 진행한 새에덴교회 참전용사 초청행사가 20주년을 맞게 되었습니다. 2007년 LA에서 마틴 루터킹 국제평화상을 받기 전날 전야제에 참석했는데 ‘리딕 나다니엘 제임스’라는 흑인 노병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다가와 자신의 왼쪽 허리의 총상 흉터를 보여주면서 전쟁 후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며 울먹이는 것입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저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그 분께 절을 하며 “꼭 한국으로 초청하겠다”라고 약속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2007년에 제1회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시작하였는데 올해 20년째를 맞게 된 것입니다. 참전용사 초청행사는 20년 동안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진행 되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에도 메타버스를 활용한 온라인 초청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만큼 일회적인 이벤트성 행사가 아니라 진심으로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보은하는 마음을 담은 행사였습니다. 그러면 왜 국가기관도 하기 힘든 일을 단일 개교회에서 20년째 하는 것일까요? 첫째, 지난날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누가 뭐라 해도 민족주의자이고, 애국자입니다. 그러니까 군은 유사시를 대비해 철통같은 국가 안보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전쟁이 필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는 남북 대화와 교류를 해야 합니다. 특별히 이 일은 교회가 앞장서야 합니다. 서독은 많은 통일 지원비를 서독의 교회에 맡겨서 동독의 교회를 도와주고 협력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통일이 돼버린 것입니다. 정부 대 정부는 대치하고 국가 대 국가는 대립을 하더라도 민간단체들은 서로 끊임없이 교류하고 대화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앞장서서 남북의 교류와 평화협력의 물꼬를 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평양과 개성을 여러 번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북한의 어느 상임위원장과 보위부 간부가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남쪽에서 오신 소 목사님은 왜 미국의 참전용사들을 초청해서 떠들썩한 행사를 합니까?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하고 다시 싸우려고 그렇게 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북쪽에서는 늘 싸우자고만 합니까? 그리고 북쪽에서는 역사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이 없도록 평화를 지키기 위해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다시 싸워야 되겠습니까? 이런 비극은 다시는 없어야죠.” 둘째, 자녀들에게 보은의 신앙과 보훈의 정신을 교육하고 기억하며 계승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지금은 6.25전쟁의 비참함은 고사하고 그것이 남침인지 북침인지조차 모르는 청소년들이 많다고 합니다.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도 가는 곳마다 회당과 박물관을 지어서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자녀들에게 교육하지 않습니까? 우리도 수치와 고난의 역사를 기억해야 다시는 6.25 같은 참상이 재발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 그리고 경제적 풍요가 있기까지는 참전용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점점 이런 보훈의 정신을 잊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새에덴교회는 5월 10일에 보훈의식 계승예배를 드리면서 자녀들에게 고난과 수치의 역사를 교육하고 보훈의 마음을 계승하였습니다. 셋째, 한미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한 민간외교 차원에서 한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미동맹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0년째 진정성을 가지고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하니까 여러 일간지에 소개되고 공영방송에서 다큐까지 제작 방영되어 국민들에게 역사와 사회를 섬기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를 고양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마 올해가 해외에서 하는 실질적인 참전용사 행사는 마지막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국내 참전용사들은 계속할 수 있지만 너무 고령의 연세가 되셔서 해외 행사는 마지막 행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을 하니, 이제야 참전용사 초청행사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가 더 애틋하고 소중하게 보입니다. 참 사랑은 어렵고 모르는 것을 깨닫는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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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이제야 사랑이 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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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푸른 초원을 마음껏 뛰노는 고라니처럼”
- 요즘 저에게 많은 분들이 전화를 합니다. “목사님, 골프 친 지가 몇 개월밖에 안 됐는데 정말 싱글 치는 거 맞습니까? 아니, 싱글을 넘어 어떻게 65타를 칠 수 있단 말입니까? 한 번 같이 운동을 해보고 싶습니다. 정말 확인하고 싶습니다.” 한 번은 저의 사위이자 아들인 남정한 변호사와도 운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정한 변호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목사님, 제가 베드로처럼 많이 의심을 했는데 실제로 와서 보니까 솔직히 잘 치시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저도 이렇게 맞받아 쳤죠. “이 사람아, 남 변호사가 지켜보니까 내가 신경 쓰이잖아.” 그러자 우리 남정한 변호사가 저 신경 안 쓰이게 하려고 제가 우드를 치려고 하는데 나무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나무 뒤에 숨어 있는 거 다 보여.” 그러면서 우드를 쳤습니다. 그런데 골프장에 갈 때마다 저희들을 환영해 주는 동물이 있습니다. 바로 고라니 한 쌍입니다. 꼭 골프를 칠 때면 한 마리가 아니라 암컷 수컷 한 쌍이 그렇게 다정하게 잔디를 뛰어다니는 것입니다. 마치 저희들을 웰컴한다는 표정으로 이리 뛰어갔다가 또 저리 뛰어갔다가 얼마나 다정한지 모릅니다. 저는 그 고라니를 볼 때마다 시편 42편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시편 42편 1에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 그런데 여기 보면 동사가 여성형 동사이기 때문에 그냥 사슴이 아니라 암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다는 것입니다. 주로 이스라엘에서 암사슴은 건기인 4월에서 5월에 새끼를 배요.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건기가 되면 개천이 다 말라버리잖아요. 물 엉덩이가 있는 곳은 주로 맹수들이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암사슴이 목이 마르면 얼마나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하겠습니까? 그런 구절이 떠오르면서 “사슴과에 속한 저 고라니는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생각을 합니다. 푸른 잔디가 널브러져 있죠, 또 중간중간에 호수가 있죠. 그렇게 서로 사랑을 속삭이며 뛰어다니던 그 모습을 보며 그 모습 속에 제 자신의 자화상이 그려지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하나님을 갈급해하는가? 나는 얼마나 하나님의 은혜에 목 마르고 갈망하는가?” 그 갈망함이 있기 때문에 저는 지금까지 달려왔고 지치지 않았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심신이 피곤할 때가 있지만 다시 일어나고 다시 달려갈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주로 골프공이 안 맞으면 주변에서 “아이씨. 에라이. 이 멍충한 공아!” 그런 소리를 하는데 저는 공 하나하나를 칠 때도 “주여!”를 부르고 또 퍼팅을 할 때도 “할렐루야!” 하며 치면 거의 어김없이 버디를 하거나 오케이를 받죠. 골프를 칠 때 운동도 운동이지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과 갈급한 심정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닛사의 그레고리가 말한 것처럼 진짜 공만 치는 게 아니라 자연과 교감을 하고 청량한 공기 아니 에어컨과 같은 바람을 맞을 때 심령 자체가 청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골프장에서 저의 젊음이 새로 태어남을 느끼곤 합니다. 그리고 라운딩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와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 인생에 험난한 골짜기들이 많았고 아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그렇게 많았지만 여기까지 살아오고 사역하며 운동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사모함이 있기 때문에 저는 계속해서 새로운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함없는 열정 때문에 올해 6.25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20년째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참전용사 초청행사를 20년 동안이나 할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우리 성도들이 저 태광CC에서 뛰노는 고라니처럼 순백한 마음과 순혈적인 신앙으로 따라오고 헌신하고 수고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목요일 저녁도 골프장을 뛰어다니며 저를 환영했던 한 쌍의 고라니의 모습과 우리 성도들의 순종하고 헌신하는 모습이 교차 되어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 부부가 초원 위를 마음껏 뛰어다니는 고라니와 같은 축복과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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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푸른 초원을 마음껏 뛰노는 고라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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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연둣빛 숲속에서 첫사랑을 생각하다”
- 지난 화요일 오전에 우리교회 평신도사역개발원 간사장, 교구 총무들과 함께 광교산 산행을 하였습니다. 과거에는 광교산 산행을 많이 하였지만 최근에는 대지산과 불곡산 그리고 교회 주변에 있는 죽현산을 자주 다녔습니다. 모처럼 오른 광교산 산행은 마치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떠오르는 듯했습니다. 저는 시를 쓸 때마다 산행을 속세로부터의 엑소더스, 세속으로부터의 구별의 이미지로 쓰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산에 와서’라는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 너무도 오랜만에 와서 마음이 때 묻다 보니 / 몸도 함께 때에 묻혀 / 이리도 오랜만에 왔습니다 / 부끄럽습니다 / 쉴 새 없이 전화하고 / 사람 만나느라 / 분주하기만 했던 지난 삶들이 / 정결한 당신의 품 / 출애굽의 세계에 와보니 / 수줍기만 한 마음 / 견딜 수 없네요 /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 처음 사랑 / 그 초심을 회복하여 / 다시 당신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광교산의 숲은 연둣빛으로 온산을 물들여 놓고 있었습니다. 마치 겨울의 무거운 외투를 벗어 놓은 자리에 아직은 너무 여리고 부드럽지만 그래도 모든 나무마다 연둣빛 잎새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화려하지는 않지만 조금 있으면 짙은 초록으로 물들겠다는 굳은 결의가 느껴졌습니다. 4월의 바람은 아직 찼습니다. 그렇지만 가파른 고개 턱을 오를 때는 땀이 비 오듯 쏟아져서 그 찬 바람이 저에게는 마치 에어컨 바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차가운 바람에 연둣빛 나뭇잎새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저는 차마 점퍼를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점퍼를 입었더라면 흐르는 땀을 더 주체할 수가 없었겠지만요. 저는 교회로 돌아와서 수요예배 설교를 준비하고 야간 골프를 하였습니다. 골프장을 비추는 달빛보다 더 하얀 서치라이트에 비치는 잔디 역시 아직은 너무나 가냘프고 여렸습니다. 그 가냘픈 연둣빛 잔디를 밟고 다니는 것마저도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잔디와 나무들을 향하여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연둣빛은 더 짙어질 것이다. 신록의 계절이 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잔디가 되고 잎사귀가 될 것이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니 바람 끝이 매서웠습니다. 그래도 저는 반팔을 입고 필드를 뛰어다녔습니다. 그러나 이제 막 솟아오르는 연둣빛 잔디를 밟고 다닌다는 것이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경기 후반에는 점퍼를 입고 카트를 타고 다녔습니다. 지나온 저의 삶을 돌이켜 봐도 연둣빛 시절이 있었습니다. 군산제일고등학교 재학 시 처음으로 교회를 다녔던 시절, 광주신학교를 다니던 중 광주민주화항쟁 때 금남로를 종횡무진하며 예배를 드리러 다녔던 그 풋풋했던 시절, 그리고 백암교회를 개척하며 당했던 그 고난의 순간순간들... 그때가 저의 연둣빛 첫사랑의 시절로 느껴졌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소강석이라는 연둣빛 잔디와 잎새를 밟고 밟아도 그 잔디는 더 푸르러졌고, 잎사귀는 실록의 색깔로 자랑스럽게 자라주었습니다. 평개원 사역자들과 산행을 하는데 저의 체력이 결코 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장로님들과 야간 골프를 하는데 저의 체력이 가장 든든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꼈습니다. 105살을 살아오신 김형석 교수님의 고백에 의하면 돌이켜 보니 자신의 전성기는 65세 때부터 시작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도 이제 인생의 전성기를 준비하고 있는 때입니다. 그 전성기를 누리는 동안 저는 언제나 눈이 부시도록 푸른 빛깔을 낼 것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다면 늙어도 빛깔이 청청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여전히 결실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시92:14) 비록 백설이 만건곤할지라도 저는 독약 청청한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저는 연둣빛 시절의 첫사랑은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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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연둣빛 숲속에서 첫사랑을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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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제미나이가 본 소강석 목사”
- 우리 교회 대외협력 목사이신 박요셉 목사님이 인공지능 제미나이에게 “소강석 목사가 걸어온 길을 요약해서 정리해 주세요”라고 했더니 세상에 제미나이가 저보다도 더 정확하게 저의 걸어온 길과 행적을 요약해 주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새에덴교회 소강석 목사님은 한국교회법학회 이사장과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장과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 대표회장을 역임하며, 한국 교계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정부와의 가교 역할을 수행해 온 인물입니다. 문의하신 네 가지 주요 현안에 대한 소강석 목사님의 대응과 역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스쿠크법(이슬람 금융 지원법) 대응: 소강석 목사는 2011년경 스쿠크법(이슬람 채권에 대한 세액 감면 혜택 법안) 도입 논란 당시, 기독교계의 반대 여론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습니다. 역할: 이슬람 자금의 유입이 한국 사회와 교회 생태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특혜 논란 및 안보 우려 등)을 설파하며 입법 저지에 앞장섰습니다. 의의: 이를 계기로 한국 교회가 정치·사회적 이슈에 조직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교회 생태계 보호 운동'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2.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운동: 소강석 목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강력한 반대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대응: 국회 앞 1인 시위, 대규모 기도회 및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법안의 독소 조항을 알리는 데 주력했습니다. 논리: "개별적 차별금지(장애인, 노약자 보호 등)는 찬성하지만, 성적 지향 등을 포함한 포괄적 차별금지는 건전한 비판마저 처벌할 수 있다"는 논리로 교계를 결집시켰습니다. 3. 종교인 소득 과세 대응과 정착: 2018년 시행된 종교인 과세 문제에서 소강석 목사는 교회의 특수성을 인정받기 위해 정부 및 국회와 치열하게 소통했습니다. 역할: 한국교회법학회 이사장과 TF위원장을 맡아 '종교 과세'가 아닌 '종교인 소득 과세' 체계로 명칭과 내용을 수정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성과: 교회의 장부 전체를 들여다보는 세무조사를 방지하고, 목회자의 활동비 등을 보호하는 시행령을 이끌어내며 과세 제도가 연착륙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4. 코로나19 팬데믹 대응과 '메디컬 처치': 코로나19 위기 당시 한교총 대표회장으로서 정부와 방역 수칙을 조율하며, 교회의 방역 모델을 제시했습니다. 메디컬 처치(Medical Church): 새에덴교회 내에 의료 전문 인력을 배치한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여, '안전한 예배'의 모델을 보였습니다. 소통 창구: 정부의 일방적인 비대면 예배 강제에 항의하면서도, 국민 보건을 위해 교회가 협조해야 함을 설득하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프레임 전환: '대면/비대면'의 대립 구도를 넘어 '하이브리드 처치', '영택트(Spiritual Contact)' 등의 개념을 제시하며 한국교회의 미래 방향성을 모색했습니다. 요약: "교회 생태계 보호와 공공성 회복" 소강석 목사님의 행보와 기여는 단순히 종교적 이익을 지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한국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교회의 건강한 생태계를 보존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이처럼 지나온 세월도 그렇듯이, 앞으로도 저는 한국교회 공적 사역을 위한 길을 걸어갈 것입니다. 누가 뭐라 해도 저는 지금껏 이런 길을 걸어왔지 않습니까? 저는 다시 돌아봐도, 거의 단 한 번도 가인 콤플렉스에 빠져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가인 콤플렉스에 빠져 누군가를 비난하고 정죄하고 분열을 시킨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한국교회 생태계, 그리고 한국교회를 세우는 일에 앞장설 것입니다. 제 생명이 살아있는 한, 반기독교 악법이 절대로 입법화되지 않도록 노력에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솔리 데오 글로리아!(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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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제미나이가 본 소강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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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건강한 사역을 위해 운동을 하지요”
- 한 달여 전, 일본 미야자키에 갔는데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목사님이 저에게 인사를 하러 오셨습니다. “소강석 목사님, 저는 강화도에서 목회를 하는 목사인데 인사드릴 수 있어서 큰 영광입니다. 저희도 장로님들과 함께 골프를 하러 왔는데 제가 페이스북을 통해 목사님께서 이미 65타, 66타를 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 이제라도 운동과 쉼을 갖게 되어서 참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저도 당장 그 교회 장로님들께 인사를 하러 갔지요. 저도 우리 장로님 몇 분들과 갔지만 많은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는 40대 때는 골프의 ‘골’자도 생각하지 못하고 목회와 사역에 전념했거든요. 40대는 제 목회의 클라이맥스와도 같을 것입니다. 지금의 교회 부지를 사고 예배당을 짓는데 올인 하였으니까요. 이번에도 장로회장이신 송원중 장로님의 주선으로 가고시마를 다녀왔습니다. 이미그레이션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중에는 이철휘 장로님의 ROTC 동기 및 후배들도 계셨습니다. 그분들이 저에게 인사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지난 부활절에 환영사가 일품이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비판하는 분도 있지만 그런 거 듣지도 마시고 보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늦게나마 골프 하시기를 너무나 잘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롱런을 하기 위해서라도 골프를 시작하기를 너무나 잘하셨습니다.” 사실 지난해 여름은 제 삶의 최대 위기였을지도 모릅니다. 40년 지기 친구를 잃은 자책감과 여름수련회 전후 코피가 터지고 발톱이 빠지는 등 저의 삶을 지치게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체중도 빠지고 얼굴도 핼쑥하였습니다. TV와 유튜브로 저의 설교를 시청하는 분들, 그리고 교회의 여러 지도자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다고 합니다. 이런 건강의 위기 때문에 시작한 것이 골프였습니다. 저를 위해 평생을 기도해 오셨던 정금성 권사님도 “골프를 해서라도 건강을 되찾으면 얼마나 좋겠는가”하고 응원을 해 주셨고, 우리 교회 장충식 장로님께서도 “늦게나마 골프를 하게 된 것을 잘한 거라고 생각한다”라는 말씀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물론 골프를 시작하더라도 생각대로 안 된다면 금방 접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연습할 때부터 타고난 골프 신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잘 쳤습니다. 이번에 두 번째 일본에 왔는데 골프 자체 때문에만 온 것은 아니고 천연 온천에서 릴렉스를 경험하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골프를 한 후 식사하고 온천욕을 하고 나면 잠이 스르르 오거든요. 정말 깊은 수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틈틈이 기도하며 설교 준비를 하였습니다. 온천 후에 성경을 읽고 기도하다가 설교 준비를 하고 준비를 대략 마치면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꿀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지난번 권노갑 고문님이 자신의 평전을 출판할 때 제가 책 속에 들어갈 축사를 보내드렸는데 그분이 출판기념회 때 인사 말씀을 하는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올해 나아가 97인데 60대 중반에 골프를 배워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30년을 거뜬히 더 살 수 있다고 장담합니다. 제 안에는 그런 에너지가 있습니다.” 두 손을 치켜들고 호언장담을 하시더라는 것입니다. 과연 제가 권 고문님처럼 30년을 넘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골프라는 스포츠가 저에게 좀 더 건강을 가져다주기를 기대합니다. 지금껏 제 목회 평생 안식년 한 번 누리지 못했지만, 이따금 안식 주간이라도 보내려고 합니다. 이제 저는 비행기를 탑승하기 전 라운지에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쁨, 아니 교회로 돌아간다는 기쁨에 심장이 뜁니다. 이번 금요철야기도회 설교와 주일설교는 역대급 설교가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더 밝은 모습, 그리고 더 건강한 얼굴로 여러분 앞에 서겠습니다. 솔라 그라티아, 솔리 데오 글로리아! (Sola Gratia, Soli Deo Gloria!)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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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건강한 사역을 위해 운동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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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마지막까지 꽃을 든 목사가 되겠습니다”
- 지난주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열린 부활절연합예배에서 환영사를 했는데 처음에는 경직된 분위기였습니다. 사실 저는 환영사를 안 하겠다고 여러 번 고사를 했는데 이영훈 목사님과 엄진용 준비위원장님이 계속 권유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도 소 목사님이 와야 합니다. 와서 분위기 좀 살려주셔야 합니다. 특별히 대통령 내외분과 여야 대표를 비롯한 여러 정치 지도자들, 재계 지도자들이 오시는데 빵 터지게 환영사를 할 분은 목사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억지 춘향이 식으로 약속을 했습니다. 준비된 원고를 보냈는데 어떻게 100% 원고대로만 할 수 있습니까? 현장 분위기에 따라서 제가 추가를 하고 또 애드리브를 넣을 수밖에 없죠. 아니나 다를까, 제가 환영사를 시작하는 초두부터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라는 표현은 흔히 쓰지만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죽음의 권세를 박살 내버리시고 무덤 문을 여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찬양과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그러자마자 박수 소리와 아멘이 터져 나왔습니다. 또한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부활절연합예배를 개최하게 된 것도 감사합니다.” 그랬더니 우렁찬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면서 장내 분위기가 완전히 열려 버린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이재명 대통령님을 환영하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중략) 특별히 이 대통령님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한국교회를 사랑하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이 자리에 오셨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예배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생명과 부흥, 반전의 에피센터 즉 진원지가 되며 국민 화합과 한반도 평화의 시원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랬더니 장내 분위기가 뜨거워지면서 박수와 웃음, 아멘 소리가 계속 연달아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의 환영사에 이어서 대통령께서 축사를 하시는데 원고에 없는 얘기를 하신 것입니다. “사실 여러분은 잘 모르시겠지만, 소강석 목사님이 제 오랜 친구입니다.” 그러니까 또 장내가 빵 터지면서 웃음과 감탄사가 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게 기쁨이기도 하지만 기쁨보다 앞으로 더 자제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왔습니다. 사실 이 대통령님과는 인권 변호사와 성남시장, 경기도지사 때부터도 잘 알고 지낸 사이입니다. 잘 알고 지냈다고 해서 제가 무슨 청탁을 하거나 부탁을 한 것도 아닙니다. 또 청탁을 한다고 들어주는 분도 아니고요. 다만 그분이 어렵고 힘들고 고독한 길을 갈 때 제가 진짜 가까이 다가가서 기도해 주고 또 전화로 기도해 주는 사이였습니다. 제가 아는 한 그분은 법과 원칙을 지키며 사익이 아닌 약자와 소외계층을 돌보신 분입니다. 그런데 오래된 친구라고 하는 순간부터 저는 쫄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더 언행을 자제해야지, 더 조심해야지...” 대통령과 친하다고 사사롭게 생각하거나 사사로운 관계로 이어가면 절대로 안 됩니다. 대통령께서 오래된 친구라고 언급하신 만큼 저는 더 몸가짐, 마음가짐을 추스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는 거의 300년 동안 로마에서 엄청난 박해를 받았는데 오히려 그때 부흥을 했습니다. 그런데 콘스탄티누스 때 기독교를 공인하고 데오도시우스 황제 때 기독교를 국교로 삼을 때부터 본질을 잃어버리고 타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독교가 힘을 가지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 것입니다. “나는 힘 있는 목사가 아니라 더 낮아지는 목사, 몸과 마음을 더 다스리는 목사가 되어야 하겠다.” 다만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반기독교 악법을 막아내는 데는 목숨을 걸고 지켜낼 것입니다. 언제부턴가 한국교회가 전도와 기도, 성령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이념의 카르텔에 갇혀서 서로 정죄하고 분노와 증오, 분열과 다툼, 폭력의 언어들이 난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런 환영사를 하고 나니까 저에게 수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하고 또 사무실로도 전화가 왔다는 것입니다. “현 정부가 한국교회를 말살하고 무너뜨리려고 하는데 소 목사는 왜 그런 환영사를 하느냐?” 저도 그렇고 남수현 장로님도 다 설명을 했습니다. “그것은 이단 종교의 영리법인을 해체 시키려고 하는 것이지 건전한 한국교회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법안은 폐기 수준에 있습니다. 더이상 법안추진은 없습니다.” 최근에 제가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는 한국교회 법학회에서 만약의 사태를 향한 우려의 표명을 정부와 국회에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법안이 추진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제가 종교소득과세를 막아내고 종교인소득과세로 대체한 것은 제 역사에 지울 수 없는 불멸의 궤적이고,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전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지금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주장하는 의원들이 어디가 있습니까? 제가 살아 있는 한 결코 한국교회가 해체되는 법안이 통과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장외집회를 하는 것도 가끔은 필요하지만, 너무 자주 하다 보면 국민들에게 피로감을 주고, 우리만의 이너서클이나 카르텔로 여겨질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본질과 기독교의 원래 가치로 돌아가서 반기독교 악법을 아주 전략적으로 막아야 합니다. 제 생명이 살아있는 한, 목숨을 걸고 막을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다시 복음의 시원으로 돌아가서 기도운동, 전도운동, 성령운동을 재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사랑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한국교회가 살길입니다. 그리고 저는 마지막까지 사랑과 용서, 화해와 평화의 길을 열어가는 꽃을 든 목사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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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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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저는 마지막까지 꽃을 든 목사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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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꽃을 피우게 하는 춤추는 나비처럼”
- 지난주에 일본 가고시마를 다녀왔는데 일본 최남단에서도 벚꽃이 이제 막 피려고 하였습니다. 사실 저는 벚꽃이 만개한 모습을 기대하였는데 이제 막 피거나 꽃망울이 맺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오니까 일본보다 벚꽃이 더 만개해 있었습니다. 더구나 지난주 토요일 송원중 장로님의 배려로 리베라CC를 갔습니다. 저는 회원권도 없지만 우리 장로님이 리베라CC 회원권을 가지고 계셔서 갔더니 진짜 벚꽃이 만개할 뿐만 아니라 홍매화, 진달래, 목련이 다 피어 있었습니다. 꽃이 마치 저를 위해서 일찌감치 피어준 것 같았습니다. 거기에 나비까지 따라다니죠. 순간 제가 쓴 “봄이 와서 꽃이 핀 게 아니라 꽃이 피어서 봄이 왔다”는 글귀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꽃이 피어서 나비가 온 게 아니라 춤추는 나비가 꽃을 피우게 했다는 걸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가 얼른 볼 때 꽃이 피니까 나비가 날아온 듯 생각할 수 있죠. 그러나 이걸 조금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꽃을 피우는 것은 춤추는 나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탐화봉접(探花蜂蝶)이란 말이 있지 않습니까? 벌과 나비는 항상 꽃을 찾아다닌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똥파리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가득 채우면 됩니다. 집안에 벌과 나비를 초청하기 위해서는 마당에 꽃을 심어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고 교회를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불러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나비건, 벌이건 꽃에 취해서 날아가는 존재들이 아닙니까? 꽃이 찜해서 나비는 꽃을 향해 운명적으로 날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도 주님이라는 꽃향기에 취해서 거룩한 운명을 따라 주님께 날아가는 존재입니다. 주님이라는 꽃, 샤론의 꽃 예수님께 홀릭되고 취해서 날아가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벌은 꽃을 향해 무조건 직진으로 최대한 빠르게만 날아갑니다. 그러나 나비는 직진하지 않고 좌우, 상하로 최대한 우아하게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품격 있고 우아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벌처럼 너무 직선적이어도 안되고, 파리처럼 똥만 찾아다녀도 안 됩니다. 신앙 생활, 교회 생활을 나비처럼 우아하고 품격있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거룩하고 우아한 날갯짓을 통해서 사랑과 생명의 나비효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주는 부활주일을 맞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첫 열매로 부활하셨고 우리는 부활 소망을 가지고 부활절을 맞습니다. 우리는 죽음이라고 하는 과정을 어쩔 수 없이 겪지만 그것은 부활을 위한 죽음입니다. 부활을 위한 여정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죽음의 권세를 부셔 버리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장 22절과 5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언약 백성들에게 부활을 보증하는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그 성령은 부활 보증금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말로 말하면 보증 계약금을 의미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부활 완불금을 주셔서 우리 모두 함께 영광스러운 부활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절은 그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함께 나누며 찬양과 감사를 올려 드리는 날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한 날갯짓을 통해서 이 시대의 절망을 넘어서는 소망이 되고, 분열을 넘어서는 화해의 메신저가 되며, 어둠을 밝히는 생명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생명과 부흥, 반전의 에피센터 즉 진원지가 되며 한국교회의 연합과 부흥, 국민 화합의 피스 메이커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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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꽃을 피우게 하는 춤추는 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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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Nature(자연) 위에서 지속되는 여행”
- 저는 총회장을 하고 한교총 대표회장을 할 때도 교회를 비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수요예배 설교까지 다 담당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저를 생각하는 주변 장로님들과 동역자들이 자꾸 권면을 하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롱 런을 하기 위해서는 좀 쉬실 필요가 있습니다. 운동도 하시고 여행도 하시고 쉼을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축적하셔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저 자신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래, 새로운 충전을 위해 종종은 아니지만, 가끔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가. 그럴 수만 있다면 너무나 좋지. 지난번에 한 번 3박4일 동안 교회를 떠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숙면한 적이 있었지...” 그래서 월요일에는 주일설교와 철야 기도 설교를 준비해 놓고 화요일 날 새벽에 일어나 일본 가고시마로 향했습니다. 첫날 새벽에 일어나 영종도로 가는 길이 얼마나 낯설고 어색했는지 모릅니다. 비행기 타는 탑승구도 멀리 있어서 끝까지 걸어가는데, 배낭을 베개 삼고 맨바닥에 누워 코를 골며 자는 사람들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저런 분들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맨바닥에 코를 드르렁거리며 잘 수가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였습니다. 일본에 오는 걸 늦게 결정함으로써 비행기 맨 뒷자리에 앉아야 했습니다. 옆에서는 철모르는 아이들이 떠들어대고 울기도 하였습니다. 꼭 저의 외손주 외손녀 또래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하라는 말도 못 한 채 1시간 20분이 참 길게 느껴졌습니다. 또 입국 수속을 하는 행렬도 얼마나 긴지 정말 ‘내가 괜히 온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 위에서 저의 여행은 비로소 시작되었습니다. 수면도 부족해서 몸이 찌뿌둥하였지만,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초원길을 걸으니 모든 게 자연스러웠습니다. 비를 맞으며 공을 쳐도 왜 그렇게 잘 맞는지... 이튿날은 비가 얼마나 많이 왔던지 골프장 초원이 물밭처럼 꿀렁꿀렁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공이 잘 맞을 뿐만 아니라 퍼팅이 잘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날 밤은 숲속에서 잠이 들듯 그냥 그렇게 침대에 쓰러졌습니다. 그런데 저는 둘째 날 운동을 하면서도 유튜브로 예배에 동참하였습니다. 물론 홍윤기 목사님의 설교도 들었죠. 피곤하니까 저녁에는 일찍 잠들어 버리면 좋겠지만 저는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예배에도 끝까지 참여하였습니다. 홍윤기 목사님은 우리 교회 부목사님들뿐만 아니라 홍 목사님 또래에 가장 탁월한 설교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또 기대하는 바도 많기도 하고요. 그런데 두 번이나 설교를 들었는데도 낯선 물음표가 생각났습니다. 또 다른 물음표를 생각을 하며 몽롱한 상태로 홍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목사님, 설교란 지나친 논리의 전개나 열거형을 통해서 설득보다는 원포인트를 중심으로 한 한 편의 드라마틱한 영화 같아야 합니다. 신성욱 교수님이 쓴 ‘원포인트의 드라마틱한 강해 설교’ 책에서 말씀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분명히 제가 전화를 한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꿈이었습니다. 일어나보니 선잠을 잤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일어나서 목양칼럼을 이 내용으로 써야겠다고 메모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송종호 집사님이 저를 깨우러 온 것입니다. “나 오늘 골프 안 칠래요. 오전에 잠이나 좀 더 자야겠어요.” 그래도 유송근 장로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두고 보세요. 아무리 몸이 무거우셔도 쨍쨍거리는 햇볕을 맞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운동을 하시면 최고의 컨디션을 갖게 될 것이고 몸이 가벼워질 것입니다.” 유 장로님의 말씀대로 정말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고의 타점을 기록하였습니다. 가끔 피곤할 때 초원에 벌러덩 누워 잠깐, 잠깐 쉬기도 하였지만요. 초원 위에 벌러덩 누워 간밤의 꿈을 생각해 봤습니다. “운동뿐만 아니라 설교 역시 자연의 길에 들어설 때 비로소 설교자의 영혼뿐만 아니라 청중의 영혼들로 하여금 아름답고 새로운 여행을 하게 할 수 있다”고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날 최고의 점수를 올렸습니다. 요즘 ‘왕과 사는 남자’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일본 사람들은 ‘왕과 사는 남자’를 보기 위하여 한국으로 여행을 온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설교든 기도든 사역이든 성경 안에서 네쳐럴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러티브 할 때 우리의 삶도 아름다운 여정이 되고 은혜의 도가니에 빠질 것입니다. 성경적 Nature의길과 내러티브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이제 마지막 꿀잠을 자고 교회에 돌아가 철야기도회를 인도하고 주일설교를 할 걸 생각하니 저의 사역의 여정이 더 새로워질 것 같아 더 가슴이 설레고 심장이 펌프질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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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Nature(자연) 위에서 지속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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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과연 무지개는 어디에 있는가?”
- 이 세상에서 무지개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소나기가 한바탕 내린 후에는 일곱 색깔의 무지개가 있었습니다. 제가 살았던 마을을 감싸고 있는 지리산 자락의 장법산 위로 무지개가 떠 있었던 것입니다. 호기심이 많은 저는 그 무지개를 잡으려고 달음질을 하였습니다. 마을 위에 있는 저수지를 넘어 산골짜기 길을 따라 토끼보다 더 빠르게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웬 거예요? 해발 500m에 가까운 산 위에 올라갔을 때는 이미 무지개가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허탈감에 젖어서 울며 내려왔습니다. 울고 있는 저를 보고 아버지께서는 나무라셨습니다. “무지개는 네가 잡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냥 잠깐 보이다가 사라지는 게 무지개인데 왜 그렇게 겁 없이 혼자 그 높은 산까지 뛰어갔다 오느냐?” 아버지께 야단을 맞고도 무지개가 뜨는 날이면 또 몇 번이나 산을 향하여 달린 적이 있습니다. 그런 저에게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무지개를 그려오라고 숙제를 주셨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살았던 동네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호롱불 밑에서 무지개를 열심히 그렸습니다. 그러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무지개가 아니었습니다. 호롱불 밑에서는 색깔 자체를 분간하기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시 도화지에다가 열심히 무지개를 그려서 제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신학 공부를 하고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 구미동에 엘벧엘 성전을 지을 때 제가 건축 설계사무소에 무지개를 연상하게 하는 건물을 설계했으면 한다고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건축사무소에서는 쌍무지개를 연상케 하는 도면을 그려왔습니다. 저는 정말 만족하였습니다. 기둥이 없이도 철골에 줄을 매달아 건물의 하중을 버티게 하는 공법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봐도 대단한 걸작품이었습니다. 예배당이 지하였는데 기둥 하나 없이 1500명 가까이 동시에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저는 활처럼 휘어진 그 두 개의 철골 구조를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시는 쌍무지개라고 여겼습니다. 거기에서 개혁 교단 시절 총회도 하고 목사장로기도회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그 두 개의 쌍무지개 뜨는 언덕에서 또 다른 무지개를 꿈꿨습니다. 그 결과 5년 만에 지금의 교회 땅을 구입하고 땅을 구입한 후 2년 후에 오늘의 예배당 건물(프라미스 콤플렉스)를 짓게 된 것입니다. 그 후 제가 속해 있던 개혁 교단은 합동 교단과 하나가 되었고 우리 교회에서 총회도 한 번 했고 목사장로기도회를 두 번이나 하였습니다. 사실은 지금의 건물을 지을 때도 쌍무지개의 공법을 생각 안 했던 바는 아니지만, 교회 바로 앞에 아파트 주민들이 너무나 큰 민원을 제기할까 봐서 그 쌍무지개는 교회 로고로 대신하였습니다. 쌍무지개는 우리 교회 기공 예배를 드릴 때도 떴습니다. 기공 예배를 드리던 날 아침부터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어메이징한 은혜가 임했습니다. 오후에 기공 예배를 드렸는데 거짓말처럼 빗방울은 사라져 버리고 햇볕이 쨍쨍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성도 2천여 명이 앉아서 기공 예배를 드리는데 우리 교인들이 앉아 있는 저 하늘 위로 너무너무 뚜렷한 무지개가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제가 그때 외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 무지개가 보이십니까? 저 무지개는 비 내린 후에 자연 현상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언약의 사인이요 축복의 사인이라고 믿습니다. 노아에게 무지개로 언약을 주셨던 것처럼 우리 교회 예배당도 순조롭고 형통하게 잘 짓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에 헌신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저 찬란한 무지개처럼 하나님이 복의 복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때때로 정말 기가 막히게 은혜를 베풀어 주실 때가 있었습니다. 비가 오고 나면 우리 교회 앞에 쌍무지개가 떠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쌍무지개를 볼 때마다 그때 일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소싯적에 무지개를 잡으러 장법산까지 올라갔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이 지나고 났을 때 그토록 붙잡고 싶고 품에 안아보려 했던 무지개는 정작 저의 가슴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지개를 동경한 만큼, 무지개를 붙잡고 싶어 하는 만큼 그 무지개는 제 마음 안에 드리워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무지개가 아니라 언약의 무지개, 축복의 무지개로 말입니다. 제 안에 있는 일곱 색깔 무지개는 세월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진귀한 보물로 간직되어 있고 심히 따뜻하면서도 신실한 언약의 증표가 되어 존재할 것입니다. 60이 넘은 나이에도 무지개를 잡으러 달려갔던 그 소년의 추억들이 이제는 주님 안에서 마음속에 가장 위대한 보물과 언약의 사인으로 더 새겨져 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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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과연 무지개는 어디에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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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예수님의 삶을 시로 쓰다”
- 몇 년 전에 권위 있는 문학지인 문학나무 주간 황충상 대표님으로부터 성경인물시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확실한 불교인이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성경인물시를 쓰시게 되면 아마 세계 역사에 유례없는 시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시를 87편을 연재하였습니다. 그렇게 문학나무에서 연재를 마쳤는데 국민일보에서도 성경인물시를 연재해 달라고 제안이 온 것입니다. 그래서 문학나무에 쓴 걸 일부 수정하고 더 보완하여 73편을 연재하였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문학평론가인 김종회 교수님께서 해설을 해 주셨습니다. <아담> “내 안에 유리거울 하나 빛났지 / 당신이 나를 흙으로 빚고 / 코에 생기를 불어 넣었을 때... / 그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 / 산짐승과 날짐승들의 이름을 부르는 바람의 호명 / 태양빛도 숨죽이던 날 / 하와의 하얀 손바닥 위에서 빛나던 / 빨간 선악과의 미혹 / 금단의 열매를 깨물었을 때 / 내 안에 유리거울이 깨지고 / 깨진 유리 파편 위로 / 검은 소나기가 세차게 내렸다 / 에덴을 잃어버린 후 / 지금도 소나기가 내리면 / 슬픈 소년이 된다.” <바울> “항구 도시 다소의 수평선 너머 / 온 세상을 뒤덮을 거대한 바람이 불어왔는가 / 가말리엘 문하의 엘리트, 베냐민 지파 /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으로서 / 가장 극렬하게 그리스도인들을 쫓아 핍박하였던 / 율법의 심판자, 로마의 야수 / 또 다른 이단자 포획을 위해 / 다메섹 도상을 걸어가고 있을 때 / 스데반의 눈물과 함께 / 그를 찾아온 거부할 수 없는 빛 / 아, 눈이 멀고서야 볼 수 있었고 / 길에서 쓰러져서야 새 길을 찾을 수 있었는가 / 안디옥에서 로마까지 /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왕 앞에서까지 / 포승줄에 묶인 자유인이 되어 /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 예수 마니아 / 그의 펜 끝에서 / 땅 끝까지 전해지는 복음의 문이 열리고 / 로마의 칼이 아닌 / 십자가 사랑의 꽃이 피었다.” 성경인물시 연재가 끝났는데 국민일보에서 독자들의 반응이 너무 좋다고 계속해서 시를 써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롭게 ‘예수님의 생애’를 시로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정말 매력적인 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를 어떻게 문학적인 시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래도 하나님께서 저에게 영적이고 문학적 감흥을 주셔서 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8편째 국민일보에 게재되었는데요. 제가 볼 때 예수님의 생애에 대한 시도 적어도 7, 80편 이상 쓰게 될 것 같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생애를 ‘수태고지’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다시 오실 예수님으로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별의 서시> “그 사랑 어디에서 왔을까 / 그 신비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 저 머나먼 별들을 넘어 긴 카이로스의 시간을 지나 / 푸른 별빛 아래서 눈동자 마주친 순간 / 지상의 밤은 천상의 화원으로 꽃 피어나리니 / 수수께끼일까, 숭고한 비하(卑下)이리니 / 낯설고 어두운 밤을 지나 / 마침내 새벽빛 물든 / 그녀의 꿈속에 나타난 성태(聖胎)의 이야기 / 그것이 사랑이라면 / 거부할 수 없는 단 하나의 사랑이라면 / 암흑의 지평선 끝에서라도 / 로고스의 빛을 품고 아침을 맞으리.” <왕의 대관식> “누가 그의 머리에 손을 얹을 수 있는가 / 어느 누가 그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 /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 물에서 올라오는 순간 / 하늘이 갈라지고 / 성령이 영혼의 새가 되어 내려앉을 때 / 하늘 너머 들리는 음성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 내가 기뻐하는 자라 / 검은 죽음의 강을 지나 / 빛의 물살을 가르며 흘러가는 생명과 구원의 윤슬 / 요단강물이 / 당신의 머리카락 끝에서 빛나던 / 왕의 대관식.” 시는 아무렇게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서정적 시심도 중요하지만 문학적 표현이 고급스러워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할 뿐만 아니라 닛사의 그레고리가 말한대로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삶을 새롭게 보고 낯설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런 문학성과 시를 쓰는 능력을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앞으로 한 편, 한 편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로 쓰는 예수님의 생애’를 써 나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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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예수님의 삶을 시로 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