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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여의도 사투리와 한동훈의 화법’
    결국 일은 이렇게 흘러가도록 되어 있었다. 지나친 자존의식과 왜곡된 우월의식, 그리고 펙트보다 표풀리즘에 생리적으로 익숙했던 선동, 또 억울하게 정권을 빼앗겼다는 피해의식이 한동훈이라는 거물 여당 정치리더를 키워내고 말았다. 사실 똑같은 일의 선례가 윤석렬 대통령이다. 누가 윤석렬을 키웠는가? 야당은 내심 여당이 윤석렬을 키워주는 것을 고맙게 여겼고, 여당이 그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어 줄 것을 고대했을 뿐, 그들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이 온힘을 모아 윤석렬을 야당 후보로 결국 대통령으로 세워주고 말았다. 이런 처절할 실패와 경험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고질적인 우월 DNA는 천성적으로 개선이 불가능 한가보다. 똑같은 방법으로 일개 검사 한동훈을 일약 집권 여당의 비대위원장으로, 만일 그가 성공한다면 그야말로 상대할 수 없는 대권 후보가 된다. 이는 누가 뭐래도 민주당의 공로요 뼈아픈 실책이다. 국정감사장이나 국회에서 한동훈과 맞붙어 깨지지 않는 의원이 있는가? 상대 한동훈이 누구인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도 모르고 찌라시 수준의 정보와 가짜뉴스, 인기 유도성 발언으로 덤볐다가 뛰어난 두뇌에 펙트와 논리로 무장한 탁월한 언변의 한동훈의 일격에 망신당하는 모습을 본 국민들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한동훈은 “여의도 사투리와 5천만의 화법(표준말)”이라는 기막힌 출사표를 던졌다. 필자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한동훈이 끌어갈 비대위의 그림이 미래 파노라마처럼 펼치는데 그리 어려움이 없었다. 여의도 사투리란 긍정적으로 말하면 대화와 타협을 위한 노련한 일련의 정치적 행위들이고, 부정적으로 말하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국민을 짜증나게 하는 당리당략을 넘어 길거리 양아치 패당들의 잡담들로 뒤엉킨 얍삽한 정치 놀음이다. 한동훈이 경험한 여의도는 여야를 막론하고 그렇게 보였다. 여의도 사투리에서 국민의 힘이 제외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은 한동훈의 5천만 화법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모두가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여의도 표준말을 듣게 된다면 국민은 행복할 것이고, 그 말 역시 어느 한 쪽만 알아들을 수 있다면 국민은 절망할 것이다. 우리 정치사에서 가장 영광과 치욕의 부침을 대변하는 것이 ‘86’(80년대 학번·1960년대생) 운동권 출신들이다. 이들은 진영 정치에 몰입하고 팬덤 정치로 유지하고, 팬덤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상대와 의도적으로 극한 정쟁을 유발하였다. 이로 인해 국민을 질식 상태에 빠뜨려 숨쉬기 곤란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나마 기대했던 이준석의 정치 실험은 30대 당대표라는 화려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화법은 여의도 화법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더 노회하고 유치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왜 자신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는지, 참 오랜만에 좋은 인재를 만났다고 생각했던 기성세대들이 왜 옷깃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돌렸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그래서 더 한동훈에게 열광하는지 모르겠지만, 젊음과 신선함 그리고 여의도 화법을 일거에 제압하던 장면을 수없이 목격한 국민들은 그의 등장을 당연한 신선함으로 여긴다. 수십년 동안 운동권 전력 하나만으로 일하지도 땀흘리지도 않고 양지만 밟으며, 그 특권을 상속하려는 이들, 그러면서도 애매한 국민을 앞세워 정권 탈환은 물론 200석의 국회 장악을 거론하는 이들을 후안무치를 제압해줄 기대주 한동훈의 5천만 화법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에게 탈진영, 탈팬덤 시대를 열고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 열어갈 세계 10대 강대국으로서의 미래를 기대하는 것이다. 이제 한동훈은 온 국민이 알아듣는 5천만의 표준어로 여의도 화법을 바꾸어야 한다. 그 가능 여부가 그의 승패의 열쇠이니, 한동훈의 비대위원장으로서 칼이 자신을 벨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을 가졌다는 것이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일의 결국이 온 국민이 행복하게 흘러가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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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12-23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9·19 남북군사 합의로 우리를 희롱한 북한에 대한 우리의 대응’
    정부가 9·19 남북군사 합의 일부를 효력 정지시키자 북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23일에 9·19 남북군사합의의 전면파기를 선언했다. 그들은 보다 강력한 무력과 신형 군사 장비들을 전진 배치할 것이라 엄포놓으며 지금까지의 모든 합의위반을 정당화했다. 보도에 의하면 2018년 합의 이후 북한은 3,400회 이상 포문 개방, 서해 해상 완충 구역에서의 약 600발 이상의 포탄 사격, 북한 무인기의 서울 상공 침투는 물론 탄도미사일과 정찰위성 발사 등으로 북한은 이미 9.19합의를 실질적으로 폐기한지 오래였다. 그동안 이 합의는 우리만의 족쇄였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해 우리 포대의 포문 폐쇄, 연평도·백령도 해병대의 육지 K-9 자주포 사격 훈련, 대북정찰 활동 불가 등이 그 예들이다. 이 합의를 지키기 위해 엄청난 예산을 소모하면서도 안보 위협은 날로 증대된 현실에서 그들의 정찰 위성 발사를 계기로 9·19 합의 일부 조항의 효력을 중지시킨 것의 정당성은 충분하다. 이에 대하여 민주당은 정부가 위기를 조장한다고 비난하고, 북한의 휴전선 군사도발 혹은 우발적 충돌을 걱정하지만, 그것은 안보는 안중에 없는 지극히 이기적 자기 정치의 전형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상대가 지키지 않는 합의를 우리만 지키면서 눈가리고 귀가린 안보태세로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더더욱 평화를 구걸하는 비굴한 안보는 더는 불가하다. 동네의 불량배가 무서워 뇌물을 주어 안전을 지키는 부자는 불량배의 호구일 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북한의 호구였음을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북한이 핵을 개발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우리 정치지도자들의 말을 믿었고, 우리가 퍼준 대북 지원금이 결국 핵무기로 되돌아왔는데도, 170여발의 방사포탄을 퍼부은 연평도 포격사건이 13년 전의 일이고, 우리 함정의 침몰로 수많은 꽃같은 청춘의 생명을 잃어버린 것이 결코 오래전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에게 절대 불리한, 상대는 지키지 않는 합의를 우리만 지키라고 강변하는 세력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세력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북에 대한 대화와 협상의 여지는 열어둘지라도 강력한 힘으로 우리의 안보를 우선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우리를 위협하여 얻어간 것들이 너무 많다. 순진한 우리 정치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사회, 경제, 종교 지도자들의 헌납이 도를 넘은 것도 사실이다. 그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도 아직도 깯다지 못하고 그들의 편을 들고 있는 사람들의 뒷 배경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상식에도 맞지 않고, 현실에도 맞지 않는 주장을 서슴없이 내놓는 그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적어도 안보를 두고는 여야도, 진보도 보수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까지 윤석렬 대통령의 국정의 방향은 큰 틀에서 바른 듯하다. 다만 디테일에서의 서투름이 무능 혹은 독단으로 비친 것이 사실이다. 큰 틀에서 얻은 소득을 디테일에서 망실하여 적자를 누적시킴을 살펴야 한다. 특히 이번 9.19 합의의 부분파기의 큰 방향은 옳지만, 북한의 전면 파기에 대응 등의 디테일에서 쓸데없는 오해와 부실함이 없도록 만전을 기해야 한다. 우리 교회와 목회자들은 안보라는 큰 흐름이 교회의 신앙을 유지하고 선교의 대사명을 완수하는 주요한 과제임을 유념해야 한다. 교리적 보수와 진보가 있을 수는 있지만, 반 교회적인 적그리스도의 세력에 동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는 동시에 우리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그리고 정체성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그 어떤 세력보다 앞장서야 한다. 9·19 남북군사 합의로 우리를 희롱한 북한과 새롭게 맞서야 하는 우리에게서 임박한 총선은 한국 교회에게는 지극히 중요하다. 우리 땅에 진정한 애국과 평화와 미래의 통일을 위한 초석을 놓는 중요한 선거이기도 하다. 목회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지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신앙적 양심을 버리고 머뭇거리면 우리의 양떼들은 곤궁한 삶을 살 수밖에 없고, 한국 교회의 선교의 현장은 황폐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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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11-25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인요한의 혁신위. 그 눈과 칼을 대통령과 측근들을 향하라!’
    “와이프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 “TK(대구·경북)·PK(부산·경남)의 스타는 (총선 때) 서울에 왔으면 한다.”, “희망이 없더라도 뚝심과 용기가 있는 계백 장군 같은 모습을 보고 싶다.”, “자신보다 국가와 당을 먼저 생각한다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는 모두가 알 것이다.” 연일 쏟아지고 있는 인요한 국민의 당 혁신위원장의 일성들이다. 또 혁신위원회 1호 안건으로 ‘당내 화합을 위한 대사면’을 제안했다. 당원권 정지 상태인 홍준표 대구시장, 이준석 전 대표, 김재원 최고위원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한다. 파란 눈을 가진 호남의 한국인, 인요한 박사가 한국정치의 중심에 오른 것이 신기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귀화자에게까지 집권당의 미래를 맡겨야 할 지경에 이른 정치의 현실이 한심하다. 어쨌거나 그는 당당한 한국인이고, 그의 선친들도 한국을 위해서 헌신하고 공헌한 분들이다. 그래서 어떤 이유로도 그의 혁신위를 폄훼하거나 가볍게 보면 안된다. 다만 혁신위가 한국정치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대한 위치에 있음을 자각하고 결코 실패해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지금 여당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대통령이다. 필자는 윤 대통령의 능력이나 인간성을 문제 삼지는 않는다. 오히려 어느 대통령보다 열정적이고 유능하게 일하고 있다. 그가 아니면 못할 일들을 그는 좌고우면하지 않는다. 이런 대통령이 박수받아야 하지만,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약점은 ‘검사 윤석렬’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검사의 마인드와 화법과 몸짓과 대언론 인식을 바꿔야 한다. 즉 혁신위는 ‘검사 윤석렬’에서 ‘대통령 윤석렬’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국민의 당의 가장 큰 위험 요소는 대통령에 충성하되 국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야당과 비판언론을 무시하며, 계파 중심의 세력확장과 차기 총선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 있다. 강서구청장 보선은 그들이 보여준 최악이었다. 깔끔하게 포기해야 했지만, 그런데 ‘이재명 대표를 구속시킨 후 김태우를 당선시킨다’는 소위 이재명 리스크에 근거한 시나리오는 허무하게 끝났고, 그 결과가 혁신위까지 만들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혁신위는 그 무엇보다 대통령을 국민 속으로 밀어넣고, 대통령 옆에서 대선에서의 공헌을 앞세워 호가호위하는 측근들을 격리시키고, 쓴소리의 직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유능한 사람, 야당 인사라도 끌어오는 혁신안을 보여야 한다. 선조의 어명을 거역하고 출정을 거부한 장수와 같은 혁신위, 수군폐지의 어명을 상대로 “아직 신에게는 13척의 배가 있다”고 항변하는 장수와 같은 혁신위여야 한다. 지금 집권여당은 혁신위를 향하여 현장에서는 말도 안되는 출정을 명하는 것 처러보인다. 어쩌면 수군폐지령 같은 어명이 전달되었는지 모른다. 그렇다하더라도 혁신위는 백의종군을 불사하는 이순신의 기백이 필요하다. 우리가 아는 이순신은 결코 역심을 품은 장수가 아니라 진정으로 왕에게 충성하고 백성을 사랑했던 장수였다. 대통령에게 충성하면서 진정으로 국민을 사랑하는 정치인, 우리는 이런 애국 애민의 정신에 충만한 대통령의 사람들을 혁신위가 찾아내야 한다. 인재를 찾음에 성분과 성향과 편을 가르지 말라. 누구든 그는 우리의 사람이다. 혁신위의 칼날, 그 정신은 가장 먼저 대통령과 용산, 두 번째 대통령의 측근으로 향하여야 한다. 어설픔 자리배치 같은 포퍼먼스로 여론의 눈을 가려서는 안된다. 잘못과 약점의 책임자는 따로 두고 애매한 정치 들러리들에게 ‘와이프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하면 아마 저 정권 핵심들, 대통령과 측근들은 아주 신이 나서 그 말을 아주 화음 맞추어 합창할 것이다. 그 소리는 국민의 귀를 가장 괴롭게하는 소음과 괴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국민들을 멀어져 갈 것이고 그러면 그 때는 정말 기회도 희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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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10-28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이재명 체포동의안 가결, 이제부터라도 팩트·논리·증거의 시간이 되야 한다’
    9월 21일, 국회는 이재명 더불어 민주당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박광원 원내대표는 물론 친명계 조정식 사무총장과 산하 정무직 당직자들 모두 사의를 표했다. 필자는 지금까지 이 대표와 관련된 사안들에 대해 한동훈의 법무부와 이재명의 민주당의 도전과 응전을 정말 객관적으로 살피려고 노력했다. 이 노력을 이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을 기점으로 ‘한동훈의 펙트, 논리, 증거 앞에 민주당의 가짜뉴스, 엄포, 우기기의 완벽한 패배’로 정리했다. 민주당의 표현대로 한동훈의 경박함과 깐죽거림도 민주당의 무례와 억지와 조롱에 대한 한동훈으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대응으로 보였다. 그 만큼 민주당의 대 한동훈 전략은 무지했고, 무력했고, 무모했다. 그 만큼 한동훈의 정확한 펙트, 분명한 논리, 확실한 증거에 속수무책이었다. 이것을 국민들은 매의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니 민주당 소속 의원이라 할지라도 소위 ‘닥치고 이재명’이 아닌 이상 한동훈의 정확한 펙트, 분명한 논리, 확실한 증거를 부정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필자는 단 한번이라도 민주당이 이런 한동훈에 맞설만한 정확한 펙트, 분명한 논리,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이 모(某)를 이모(姨母)로 부르는 역대급 코메디는 차치하고 전현직 검찰총장을 구분하지도 않고 이리저리 섞어 놓는 것은 물론이고, 확인안된 청담동 술집 사건을 의기양양하게 폭로하다 망신당하는 등등의 사건들을 대하면서 민주당의 어설픔과 어이없는 객기가 가져오는 결말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아가 소위 개딸로 불리는 적극적인 이 대표 지지층의 언행은 적극 지지자로서의 충심은 이해하나 정도를 벗어났고 너무 거칠었다. 민주주의를 지켜가는 핵심은 의견의 자유로운 표출과 존중이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는 사회를 결코 민주사회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개딸들은 자신들을 절대선으로 규정하고, 이에 반하는 이들에 대한 정치적 테러를 서슴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개딸들이 무서워 양심적 의정활동을 양심적으로 할 수 없다면 이는 민주주의에 대한 정면도전 세력으로 볼 수밖에 없다. 그 동안 개딸들에 대해 필자는 그들이 표명한 개혁에 대한 의지와 집념을 내심 기대하고 응원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출발은 그러했는지 몰라도 지금의 그들은 완전히 이재명 홍위병이 되어버렸고, 정치적 테러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었다. 정말 가슴아픈 일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민주당과 적극 지지층은 ‘정확한 펙트, 분명한 논리, 확실한 증거’로 자신들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가짜뉴스의 선정성과 효과에 기대거나 인기몰이 표풀리즘에 익숙하면 안된다. 무모하게 우기고 억지를 부리거나, 정확하지 않는 지인들의 제보들을 확인없이 믿으면 안된다. 빈정거림과 야유와 조롱을 버리고 잃어버린 품격을 되찾아야 한다. 민주당이 이런 노력이 없다면 그들은 한동훈은 고사하고 수사 검사 한 사람도 넘을 수 없는 초라한 정당이 되고 말 것이다. 단언컨대 펙트가 없고 논리가 부실하고 증거가 불확실한데도 어이없는 비루한 방법으로 맞선다면 어제 이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한 민주당 의원들과 같은 내부 저항세력은 점점 더 거세질 것이다. 그렇다고 여당이 잘 하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과거 문재인 정부 시절 유행했던 “문재인 정부는 야당복은 타고 났고, 하늘은 코로나로 돕는다”는 말이 떠오른다. 당시 야당은 무능했고, 문재인 정부의 실정은 코로나로 덮혀버렸다는 뜻이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스스로 부너지고 있는데도 대통령 지지율은 박스권에 갇혀 있고, 여당 지지율의 변동은 별 의미가 없는 수순이다. 이것은 야당시절 무능함의 연장이고, 대통령의 초기 실패의 여진에서 벗어날 만한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지금 야당과 ‘이념전쟁’을 벌여 지지층을 결속시킬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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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09-23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교육 3권 몰각(沒覺)의 의미’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조선의 근간이었다. 그것에 대한 현대적 평가는 당시를 기준으로는 의미없는 일이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적어도 조선 사회를 굳건히 세웠고, 조선을 지탱시킨 사회적 내공의 근저가 이 것이다. 조선의 패망은 관리의 무능과 부패 그리고 유교적 질서의 허례허식과 파당정치가 가져온 필연적 귀결이었지만, 그런 나라가 그나마 5백년을 지탱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군사부일체의 사회적 동의와 실천이었다. 그런데 비단 조선사회가 아니더라도 한 나라의 교육을 지탱하는 교사와 부모와 사회적 권위는 절대적이고, 질서와 윤리적 가치를 고양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이것을 필자는 교사의 훈육권(敎師勸), 부모의 양육권(父母權), 사회적 계도권(啓導權)이라고 정의한다. 교사들이 가르치고 훈육할 권리(敎師勸), 부모들이 자녀들을 바르게 양육할 권리(父母權), 임금에 준하는 사회적 질서 유지를 위한 권위(啓導權)가 제대로 보장된 나라는 언제나 강성하고 미래 전망이 밝은 나라였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동일하다. 반면 이것이 무너진 나라는 다른 곳에서 생긴 허점을 견딜만한 내공을 갖추지 못해 결국 망국 지경에 이르고야 만다. 가슴 아프지만 지금 우리의 교육 현장은 이 세 가지가 모두가 누군가 의도된 과정을 거쳐 무너져 버렸다. 아무리 경제가 성장하고 강대한 군사력을 가져도 이를 다루고 사용할 미래 인재가 무너지고 망가지면 그 경제와 군사력이 오히려 자신을 해하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새내기 교사의 슬픈 사연을 되뇌고자 함이 아니다. 그의 죽음은 우리 교육의 죽음이고 미래의 죽음이다. 이런 참담한 현실에서 무너져 내린 교사권과 부모권과 계도권을 되살려내지 못하면 더이상 우리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무례, 무지한 일이다. 소위 이해찬 세대라 불리는 교육의 결과는 철저한 교사권의 붕괴였다. 권위주의를 버리라는 노무현을 오해한 이들이 소중한 권위를 버려버렸다. 이 흐름에서 어른됨, 선배됨이 무시되고, 부모의 권위와 교육권은 무너지고 말았다. 서구의 교육제도를 취사선택하여 나라의 근간을 훼손하며 우리의 교육을 무너뜨리는 데 악용하였다. 서구 교육의 내면은 철저한 교권중심주의이다. 겉으로 보면 학생들의 학습권이 철저히 보장되고, 젊은이들이 마구잡이처럼 자유분방하여 버릇없어 보이지만, 그 배후에는 그것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교권이 버티고 있다. 즉 학습권은 사회적 합의가 있는 권위있는 교권에 기초해 있다는 말이다. 늦었지만 지난 18일 이주호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교권 회복·보호를 위한 시·도교육감 간담회’에서 “정당한 교육 활동과 학습권이 보장되고 교권과 학생 인권이 균형 잡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교육부의 교권 회복·보호 종합 방안 시안에서 완성도 높고 실효성 있는 방안을 만들겠다고도 했다. 이 말을 믿고 싶고, 진심으로 기대한다. 모두가 힘을 모아 악성 민원을 근절하고 교원과 학부모의 건전한 소통을 위한 방안을 찾아 사회적 합의를 거쳐 제도적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기회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부 세력들에게 속아 우롱당하여 스스로 내버린 교사들의 교권(敎師勸)과 부모의 양육권(父母權)과 사회적 질서 계도권(啓導權)을 되찾아 바로 세워야만 한다. 이 교육 삼권의 몰각(沒覺)에 교회와 목회자들이 책임이 크다. 우리 교육에서 기독교를 빼고, 가정 훈육에서 교회교육을 빼고 이야기할 것이 얼마나 있는가? 온전한 질서와 가치는 올바른 윤리적 실천에서 온다고 가르쳤다. 이것을 몰각(沒覺)한 채 교회 성장에만 매달려 방관하고 무책임했다는 채무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다면 머뭇거리지 말고 현장으로 가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찾자. 이것이 망가진 교육의 피해자 우리 자녀들에 대한 진정한 회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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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08-19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교사들을 지키고, 그들을 응원하자’
    인천의 한 초등학교에서 특수학급을 담당 교사가 6월 23일에 교실에서 학생으로부터 머리채를 잡히고 의자에서 넘어트렸다. 그 교사는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이런 폭행은 지난 2개월간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교사는 학생 신상정보 노출 우려와 교사를 탓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이기지 못해 이를 드러내지 못했다. 지난 6월 30일 양천구 모 초등학교에서도 교사가 학생들이 보는 데서 학생에게 폭행을 당했다. 6월 18일 서초구 모 초등학교에서도 새내기 교사가 원인을 알수 없이 교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런 사례를 들고자 하면 슬플 정도로 수없이 많다. 나라의 백년지대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 이상의 국난이 무엇이고, 이것 이상의 위기가 무엇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절대로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다. 얼마전 교회에서도 필자는 황당한 경우를 보았다. 교회학교 학생이 여전도사님의 머리채를 잡아채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광경이었다. 한두번도 아니고 거의 대여섯번을 반복했다. 아버지는 적극적으로 말리지 않았다. 옆에서 지켜본 필자도 그 아이의 기세에, 아버지의 소극적 태도에 아무런 대처도 하지 못하고 물끄러니 바라보는 초라한 처지가 되었다. 그 와중에도 전도사님은 아이를 제압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그 수모를 고스란이 당하고 있었다. 오히려 그 전도사님의 인내심이 높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교육이 그리고 심지어 교회조차 이렇게 되었을까? 그 언젠가 교사의 정년을 2년 줄이기 위해 교사들의 자존심과 교권을 잔인하게 짓밟던 일이 생각났다. 소위 “000세대”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아이들은 대담해졌다. 아이들은 걸핏하면 112에 신고하고, 여차하면 학부모들은 선생들에게 폭언과 손찌검을 했다. 여기에 학교 당국과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적극적으로 교사들을 지켜주지 못했다. 슬픈 일이다. 교육이 무너지면 미래가 무너진다. 자녀가 귀하면 교사를 존중해야 한다. 왜 부모들은 이런 사실을 모를까? 그들의 눈에는 성적표와 대학 간판들만 보이는 것일까? 그렇게 키워낸 아이들이 부모는 물론 이 사회와 구성원들을 귀하게 여길 수 있을까? 그들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사람으로 살아갈지 상상이나 하고 있을까? 자기 자녀들의 허물에는 철저하게 눈감고 변명하면서, 자녀들을 향한 교사의 매, 설사 그것이 과하다 하더라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할까? 지금 우리나라의 이 정도의 성장은 우리를 매로 때리시던 그 선생님들 덕분이다. 필자의 학생 시절, 우리들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맞았다고 아버지에게 일러바치면, 오히려 무슨 맞을 짓을 했느냐고 아버지에게 혼이 났던 기억이 있다. 이것이 정상적인 교육이다. 부모는 교사를 신뢰하고, 교사는 소신에 찬 모습을 잃으면 안된다. 학교는 교사의 교권을 지켜주고, 당국은 교육의 질서와 권위를 잃으면 안된다. 적어도 교육만은 여론에 휘둘리면 안된다. 더 이상 불확실하고 조작적인 여론에 의해 우리나라의 백년지대계가 무어지면 안된다. 교회와 성도들은 이 문제에 대해 조금은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시대의 정치가들은 모두 여론과 표계산에 온통 집중되어 있어 이런 진지한 고민에 별로 관심이 없다. 이 문제를 본질적으로 다시 살펴보는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교회밖에 없다. 목회자들의 대오각성과 결코 방임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필요하다. 지금도 교사들은 교사다움을 위해 출근하고 있다. 그런 교사들에게 “포기하지 말아요. 포기하는 순간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무너지고, 돌아서는 순간에 오늘의 현실이 수렁에 빠집니다”라고 당부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런 교사들을 믿고 응원하고 함께 해야 한다. 조금은 더 적극적으로 지켜주고 보호해야 한다. 왜 이런 당연하고 확실한 이야기를 이처럼 진지하고 감동적으로 해야할까? 이것이 우리의 불행이요, 아픔이다. 이 불행과 아픔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은 교사들의 결의와 우리들의 응답으로 가능한 일이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07-22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절차는 위법인데 결과물은 합헌이라?’
    필자가 대학에서 일할 때, 발생한 각종 소송에 대응한 일이 여러번 있었다. 그 때마다 우리 일을 맡은 변호사가 필자에게 늘 했던 말이 있다. “본안을 다투기보다 절차상의 하자를 다투는 것이 최선입니다. 절차상의 하자가 발생하면 법원은 본안 자체를 다투기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 만큼 법원과 법관은 민주적 절차와 과정을 중히 여기고 이것이 무시된 법안 자체는 다루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그런데 최근 헌법재판소가 일명 ‘검수완박 법안’에 대해 법안 자체는 유효하다는 결정을 내렸다. 근 일년 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그야말로 기기묘묘한 방법으로 통과했다. 안건조정위란 다수 정당이 수적 우세를 내세워 자당에 유리한 법안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입법 장치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은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의 과반수를 획득하기 위해 2021년 민주당을 탈당한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2022년 4월 법사위로 사·보임시켰으나 양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에 반대하자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만들어 결국 해당 법안 중재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절차상의 하자를 인정하면서도 법안 자체는 유효하다는 이해불가능한 판단을 내놓았다. 입법 절차는 위헌이지만 위법한 절차에서 나온 법안을 인정함으로 정상적인 법감정을 가진 국민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문제는 검수완박 법안에 가표를 던진 4인의 재판관인 유남석·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소속, 이석태 재판관은 민변과 참여연대 출신으로 모두 당시 여당이 지명한 재판관들이다. 이런 구성으로 볼 때 예정된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헌재의 결정이 정치적 결정인 것에 대한 아쉬움을 던져 버릴 수 없다. 헌법재판소는 이 땅의 사법적 권위의 최종점에 서 있어야 한다. 그 권위는 의심받아서는 안되며, 어떤 정치적 성향이나 이익에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아무리 정치적 성향이 분명하다 할지라도 최소한 법정신과 절차에 대한 기준은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이러한 법원의 최종적 권위마저도 눈감고 정치적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대하여 공분하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시각이 아닐 것이다. 민주사회의 근간은 법이고, 이 법은 언제나 공정해야 하고, 그 정신과 의미에 철두철미해야 하며, 이것은 상급심으로 갈수록 더욱 치열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헌재의 위치는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중요성을 시비할 수 없을 만큼 중요하므로 그의 결정도 도전 받아서는 안된다. 그런데 지금 헌재는 의심과 비난을 넘어 조롱을 받고 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사법적 권위가 대단한 도전에 직면에 있으며,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우리 사회가 궁극적으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불행한 신호이다. 교회와 목회자들은 이 일에 주목하고 관심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는 한갓 일부 정치인이나 정당의 문제가 아니다. 국운과 관계된 것이고 앞으로 사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는 사안들의 이정표가 될 수 있다. 법치 국가에서 법을 수호해야 할 법원이 스스로 법과 절차를 무시하고 경시한다면, 더 이상 법치국가일 수가 없다. 법원이 이러하다면 과연 이를 바로 잡을 책무가 교회에 있을 수도 있다. 법의 깊은 뿌리에는 인간의 양심과 사회적 윤리성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을 깨우고 역동적으로 활성화시켜 법으로 법이 되게 하는 법윤리의 각성을 촉구할 수 있는 것은 종교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사회의 양심적 마지노선으로서,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판결을 계속하는 사법부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우리 스스로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자정 능력을 고양하여 반민주적 적폐들을 응징할 수 있는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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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03-25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노란 봉투, 파란 봉투, 찢어진 봉투!’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에 동참한 노조원들에게 47억원 배상 판결이 내려진 후 시민들이 노조원들을 돕기 위해 노란봉투에 성금을 담아 47,000여명의 시민이 14억 4천만 원의 성금을 모은 일을 계기로 '노란봉투법'이라는 말이 생겼다. 이 법의 취지는 기본적으로, 정당한 쟁의행위와 그렇지 않은 불법적 쟁의행위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워서,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한 손배, 가압류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 법을 발의한 사람들은 쟁의행위는 분명히 법으로 보장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사용자가 '손해배상과 가압류'라는 민사소송을 통해 정당한 쟁의행위를 저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위한 해당 법안은 2015년 4월 새정치민주연합(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34명이 '노란봉투법'을 발의하였고, 19대와 20대 국회에서 연달아 폐기가 되었고, 21대 국회에서는 4건(민주당 3건과 정의당 1건)의 노란봉투법이 발의되었다가 결국 금년에 민주당과 정의당 위원만 참여해 찬성 9표, 반대 0표로 노란봉투법이 상임위 문턱을 넘었다. 모든 법이 그러하지만, 나름대로 정당성과 합법성을 가지고 있다. 법 자체의 정당성과 합법성만을 보면 불필요한 법이 없기 마련이다. 그런면에서 노란봉투법이 정당성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것에 상대가 있듯이 사용자들의 주장도 반영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것을 필자는 ‘파란봉투법’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분명히 우리나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제3조(손해배상 청구의 제한)에 의하면 “사용자는 이 법에 의한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로 인하여 손해를 입은 경우에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에 대하여 그 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이 법 조항으로는 근로자의 쟁의권을 완전히 보장받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최근 우리는 노동조합의 과격한 정치 투쟁과 노조의 설립목적에 반하는 파업에 의해 과도한 투쟁으로 인해 막대한 손실을 보았다. 이것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에는 노조를 향한 심정적인 지지를 철회하면서 근심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한 노조는 반드시 개혁되어야 한다는 귀족노조에 대한 반발심리가 확장되고 있다. 회계 장부의 공개를 거부하고, 국민 혈세로 지원받은 경비의 지출 내역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귀족 노조의 전횡이 만천하에 드러난 시점에서 더 이상 순수한 노동자의 권익 대변자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젊은이들이 이에 반발하여 제3의 노조를 만들고 스스로를 지키고 있는가? 이런 시점에서 다수의 힘으로 등장한 노란봉투법에 대하여 국민의 가슴 속에는 파란봉투법이 싹트고 있다. 사용자가 마음대로 기업활동을 할 수 있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법, 사용자들이 마음놓고 기업의 능력을 고양할 수 있는 법, 악덕 사용자들은 반드시 법으로 처단하였겠지만, 사용자들의 건강한 기업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파란봉투법을 만들어야 한다. 이 시대는 노란 봉투법도 필요하고 파란 봉투법도 필요하다. 어느 한편만을 위한 법이 득세할 경우 이 국민들에게 그 봉투법들은 찢어진 봉투법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언제부터인가 진영논리가 득세하고, 같은 편은 무조건 선이고 상대는 무조건 악이라는 편가르기가 만들어낸 법이라면 그 법은 찢어진 봉투법이다. 비오는 골목실을 걸어가는 다정한 아이들의 우산이 보기 좋듯이 우리들의 노동환경에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거기에 섞여 있는 찢어진 우산도 빨강 우산과 파란 우산과 함께 빗속에서 다정하게 걸어간다. 우리의 노사도 그렇게 다정하게 보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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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02-25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간첩 수사, 공안정국이 아니다.’
    ‘간첩단 사건’이 새해 벽두부터 핵심 용어로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수사당국이 민노총·시민단체를 앞세워 대정부 투쟁을 하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제주 간첩단 적발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와 더불어 文정부 시절에 간첩수사는 손을 놓았다는 주장이 그의 재임기간 동안 고작 간첩 적발이 3명뿐이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회자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민은 북한 지령을 받고 투쟁하라는 지령을 받은 ‘제주 간첩단’ 사건과 창원·전주 지하조직에 대한 수사 정황을 지켜보고 있다. 그런데 언론들은 지금 정당·노조를 포함한 사회 각 계층에 대한 간첩 침투 사건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언론들이 언급한 이런 간첩단 사건은 이미 작년에 국정원과 검찰이 경남 지역과 제주도에서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한 바 있어 많은 자료를 축적하고 있는 듯하다. 당시 검찰은 이들이 소위 ‘민중자통전위’를 만들었다고 보았지만 정권의 성향상 본격적인 수사를 하지 못하다가 정권 교체 이후 새해 들어 검찰의 간첩단 수사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이는 늦었지만 당연한 수순이요, 북의 도발행위가 노골화되는 가운데 국내에 침투한 간첩은 물론 이를 지원하고 협력하는 세력에 대한 수사와 법적 응징은 당연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일부 세력들이 이 사건들을 윤석열 정부의 신공안정국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 왜냐하면 수사당국은 이번 지하조직 규모가 전국에 걸쳐 있고, 1992년 이른바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 이후 최대 규모의 간첩단이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대규모 간첩단 혐의가 있음에 불구하고 일부에서는 아직 구속된 사람이 없다는 수사상의 진도를 문제삼아 전형적인 종북몰이를 시작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공안당국이 연초부터 진보 단체에 대한 압수수색을 필두로 본격적인 간첩단 수사에 전력할 것이고, 진보 단체들은 강력한 투쟁으로 맞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투쟁은 명백한 반국민적 행위로 볼 수밖에 없다. 간첩 적발을 포함한 대북정책에서 지난 정권은 비굴할 정도로 저자세였고, 자해적인 국방정책과 굴욕적인 대북 외교를 전개함으로 스스로 무장해제한 안보 문제는 이만저만한 국민적 근심이 아니었다. 북한을 달래고 지원하면 우리는 안전할 것이라는 초라하고 순진한 대북전략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다. 지금이라도 이를 바로 잡는 것이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윤석력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대북 외교는 비교적 정확한 방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별히 대북 강력 메시지와 구체적인 행동은 곧장 우리의 안보와 평화를 뒷받침할 것이다. 구걸하는 안보가 아닌 지켜내는 안보가 진정한 안보이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하여 구체적인 적대행각과 도전을 서슴지 않는 북한에 대해서 우리가 보여줄 것은 힘의 우위밖에 없다. 그들이 가진 비대칭 전력인 핵무기가 오히려 그들의 자승자박이 되게 해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있음 자체가 스스로 무너질 수 있는 요인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도 지금 간첩 수사를 막거나 비판해서는 안된다. 결국 수사결과가 모든 것에 대한 의심에 대답을 줄 것이다. 정말 정략적으로 이용한 것인지, 아니면 생각하기도 싫은 거대한 간첩조직이 실제 있는지는 수사 결과가 말할 것이다. 그때 가서 국민적 판단이 가해지면 된다. 우리 국민들이 고작 공안 정국을 감당해 내지 못할 정도로 무력한 국민이 아니다. 누구보다 정확하고 단호하게 심판할 것이다. 진정한 간첩이라면 그들과 그 비호세력에 대한 철퇴를, 정략적 공안정국 조장이라면 역시 감당하기 힘든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지금은 검찰과 국정원의 노력을 성원하고 지원해야 한다. 만일 그들을 방해하고 흔들어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들이 곧 제거되어야 할 반국가적 간첩단이라 할 것이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3-01-21
  • [시사프리즘] 임성택 교수의 ‘노조의 적폐청산, 노조가 답하라’
    언제부터 우리 사회에서 ‘노조가 생기면 기업이 망한다’는 자조섞인 말이 회자되었다. 그 배경에는 ‘귀족노조’, ‘고용세습’, ‘채용장사’, ‘거대권력’... 등등 부정적 용어들이 노조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대강성노조는 자신들의 힘과 정치적 영향력을 믿고 안하무인격으로 행동했고, 습관적으로 파업을 강행함으로 스스로 존재 이유를 부정했다. 최근에 정부의 원칙적이고 강경한 입장에 의해 진압된 화물연대 노조의 파업의 의미는 이미 그들을 향한 국민적 지지가 철회되었음이다. 윤석렬 정부가 더욱 강력하게 노동개혁을 부르짖을 수 있는 원인도 노조가 스스로헌납한 것이다. 지금 정부는 노조의 자금을 들여다 보고 있다. 이 분야 전문 수사관들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면 이미 그 결말도 충분히 예측가능하다. 그러기에 국민이 무서워서도 정부는 어물쩡 노조와 타협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어쩌면 노조 입장에서 보면 출범이래 최대의 위기일 것이지만, 국민적 시각에서 보면 제대로 된 수술대 위에 올려놓은 샘이다. 노조는 그야말로 노동자의 권익과 복지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다. 건전한 노조는 노동권의 질을 향상시키고, 양질의 제품으로 응답한다. 그런데 노조가 사업주의 갑의 위치에 서면서부터, 사업주는 파업으로 인한 엄청난 손실을 감수하느니보다 적당한 선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줌으로서 궁극적으로 노조의 힘과 영향력을 키워주었고, 이런 내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노조는 그들이 넘어설 필요도 없는 영역으로 들어서고 말았다. 지금 노조를 향한 사회적 시선은 차갑다 못해 냉소적이다. 노조뿐만 아니라 공공의 이익을 담보하고 있는 집단의 지나친 이기주의도 비판의 도마위에 올라 있다. 이 두 그룹의 공통점은 시위, 즉 큰 목소리에 있다. 언제부터인가 공권력이 지나치게 민원에 위축되어 있다. 민원은 곧 자신의 승진과 보직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는 목소리의 크기에 따라 응답하는 속도와 내용이 달랐다. 그러다보니 너도 나도 할 것없이 소리지르고, 트집잡아 고발 고소하는 최악의 사회 구조를 만들고 말았다. 이제라도 윤석렬 정부가 노조 적폐 청산에 칼을 빼든 것은 진영 논리를 떠나 국민적 환영을 받을 일이다. 우리는 지난 화물연대 파업에서 보여준 정부의 단호하고 명확한 입장이 통할 수 있었던 것도 노조의 명분없는 파업에 더 이상 국민들이 참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고, 이것을 법과 원칙에 의해 처리하겠다는 정부의 입장을 지지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노조는 스스로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야 한다. 사람이건 조직이건 가장 불행하고 슬프고 자존심 상하는 것은 당연히 고쳐야 할 부분을 타인에 의해 수술당하는 것이다. 지금 정부가 국민의 힘을 빌어 노조를 수술대 위에 올려 놓았다. 단순한 위협은 아닌 것 같다. 그렇게 했다가는 국민이 정부를 수술대 위에 올려놓을 기세이기에 노조가 이런 기류를 조금이라도 파악했다면 자정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 좋겠다. 어쩌면 이것을 국민들이 바라고 있는지 모르겠다. 전장연이 지하철 승하차 시위를 벌릴 때, 같은 장애인들이 막고 나선 일이 있었다. 그 기사를 접한 필자의 가슴에 울림이 있었다. 얼마나 힘들게 나섰을까? 전장연 회원들의 절박한 호소를 모르는 바 아니나, 그 때문에 겪어야 하는 시민들의 불편은 그들의 절박함을 넘어섰다. 그런 시민들을 위하여, 그리고 궁극적인 장애인의 복지를 위하여 용기를 낸 그들의 행동이 그나마 국민들의 마음을 다독거리며, 여전히 장애인을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게 만들었다. 강성 노조는 이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칼럼
    • 임성택시사프리즘
    2022-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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