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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호 칼럼] 2. 언약 —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
    성경에는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독특한 방식이 있다. 바로 언약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관계를 맺으실 때 언제나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말씀하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후 인간을 향해 말씀하시고 인간과 관계를 맺으셨다. 그리고 그 관계를 언약이라는 형태로 나타내셨다. 구약 성경에는 여러 언약들이 등장한다.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으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세우셨다. 이러한 언약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약속이며 동시에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할 방향을 보여 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는 관계를 선언하셨다. 이러한 언약들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버려 두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인간을 하나님께로 부르셨다. 노아의 시대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시면서도 다시는 물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주셨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이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를 통해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 모세를 통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세우기 위한 율법을 주셨다. 이러한 언약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언약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씀하신 언약, 즉 인간을 향한 언약이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약속을 이루어 가셨지만 인간은 그 언약을 온전히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모습이 반복해서 나타난다. 이러한 모습은 단지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중심에 두고 살아가려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온전히 따르지 못한다. 성경은 이 문제를 인간의 죄성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언약은 인간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거울이 되기도 했다.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선하고 의롭지만 인간은 그 말씀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를 보게 된다.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러한 사실은 성경의 언약 역사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언약을 주신 것은 단순히 규범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인간의 상태를 드러내고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필요를 깨닫게 하셨다. 그래서 구약의 언약들은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말씀을 주셨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 그 말씀의 의미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를 통해 더 깊은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구원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예수님은 인간이 지키지 못했던 율법을 완성하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열어 주셨다. 그래서 성경의 언약 이야기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언약은 단순한 규칙이나 종교적 제도가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역사였다.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말씀하시며 길을 열어 주셨다. 성경을 언약의 관점에서 읽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일하셨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인간의 연약함과 실패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속해서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다. 그리고 그 길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의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성경의 언약 이야기는 인간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언약을 주셨고 그 언약을 통해 인간을 하나님께로 다시 부르고 계신다. 이 언약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준비하신 구원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구약의 언약 이야기는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길을 바라보게 하는 역사이다. 그러나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인간이 하나님의 언약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어떻게 이루실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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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13
  • [박용호 칼럼] 1. 성경은 왜 언약의 책인가
    성경은 어떤 책일까?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종교적인 교훈이 담긴 책이라고 말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역사 이야기로 이해하기도 한다. 창조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족장들의 역사, 이스라엘 민족의 여정, 예언자들의 외침,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까지 수많은 사건들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을 조금 더 깊이 읽어 보면 이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나로 묶는 중심 주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언약이다. 언약은 단순한 약속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성경에서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맺어진 관계의 틀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펼쳐 가시는 구원의 역사이다. 그래서 성경의 이야기는 흩어진 사건들의 모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어 가시는 언약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이 택한 사람을 통해 말씀하신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경륜은 창조부터 종말까지 쉬지 않고 운행되어진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여러 차례 언약을 통해 인간에게 말씀하셨다. 노아와 언약을 맺으셨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으며,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셨다. 이러한언약들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사건들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관계를 이어 가시며 인간을 하나님께로 인도하셨다. 그러나 성경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사실이 드러난다. 하나님은 신실하게 언약을 이루어 가셨지만 인간은 그 언약을 끝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을 세우고자 하셨지만, 이스라엘은 반복해서 하나님을 떠났고 자기 길을 선택했다. 이 역사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도록 창조되었지만 실제 삶에서는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의 문제를단순한 도덕적 실패로 설명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더 깊은 문제로 설명한다. 이 때문에 성경의 언약 이야기는 단순히 인간에게 주어지는 외적 규범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패 속에서도 새로운 길을 준비하셨다.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이루시는 구원의 길이었다. 이 점에서 성경의 언약은 인간이 하나님께 드리는 약속이라기보다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이루어 가시는 구원의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아셨고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도 아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길을 준비하셨다. 그 길의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다.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새로운 언약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누가복음 22:20) 이 말씀은 성경의 모든 언약 이야기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래서 성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언약이다. 성경의 이야기들은 서로 흩어진 사건들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준비하신 언약의 역사 속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은 긴 역사 속에서 이어지다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성경은 단순한 종교 책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펼쳐 가신 구원의 이야기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고 인간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해서 길을 열어 주셨다. 그 길을 성경은 언약이라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이 질문을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왜 인간과 언약을 맺으셨는가. 이 질문을 따라 성경을 읽기 시작할 때 우리는 성경 전체를 하나의 흐름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준비하신 구원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성경이 언약의 책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이야기이며, 하나님이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 로 부르시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언약의 이야기는 오늘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본 칼럼은 『성경의 대서사: 할례, 피, 언약으로 읽는 구속의 메시지』를 저술한 박용호 회장의 기고문으로 창세기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언약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구속의 메시지를 전하는지 깊이 있게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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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4-06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45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목회자의 기도생활 (6) 기독사회 기도자들 <6> 애브라함 링컨의 기도생활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애브라함 링컨(Abraham Licoin, 1809-1865)은 유사 이래 가장 위대한 대통령으로 유명하다. 그는 낸시 행크스와 토마스 링컨 사이에 켄터키 가든 카운티의 가난한 통나무집에서 출생햇다. 이에 그의 기도생할만을 집중 기술해보려 한다. 첫째, 전쟁 중에서의 기도생활. 링컨은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이였음에도 기도생할을 갈망한 자이었다. 그는 생사의 치열한 전쟁 중에도 매일 순간순간 고요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기도할 때는 그의 천막문에 흰수건을 걸어놓았는데, 이것을 본 참모들은 어떤 긴급함이 있어도 그 수건이 내려질 때까지는 결코 천막문을 열지 못하고 기도 시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기도가 끝나야 면회가?되었단 것이다. 또한 그는 전쟁시에 엄동설한 추운 눈 오는 밤에 뉴욕 근처 부르클린 마을에서 목회하는 헨리 비쳐(Henry Ward Beecher) 목사를 찾아가 기도를 받곤 했단다. 둘째, 그의 신앙 10계명이 있으니 그것은 이러하다. "제1. 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생활에 힘쓸 것이다. 제2. 나는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실천할 것이다. 제3. 나는 도움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날마다 겸손히 기도할 것이다. 제4. 나는 나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것이다. 제5. 나는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것이다. 제6. 나는 연약하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할 것이다. 제7. 나는 하나님만을 높여드리고 그 분께만 영광을 올려드릴 것이다. 제8. 나는 하나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자유하며 평등하다고 믿는다. 제9. 나는 형제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실천할 것이다. 제10. 나는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진리와 공의가 실현되도록 기도할 것이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도 이런 위대한 10계가 있을까? 링컨은 이런 정신과 믿음으로 기도생활 실천했으니 가히 연구가들의 연구 대상이 될만한 것 아닐까? 그는 왈 "나는 어려울 때마다 무릎꿇고 기도하면 신기한 알지 못한 지혜가 떠오른다" 하지 않든가? 셋째, 국정 금식기도일 선포. 링컨은 1863년 4월 30일 목요일을 '국정 금식기도일'로 선포했다. 나라가 국란에 처했을 때 온 국민이 함께 기도할 것을 호소함으로 금식기도일을 선포하였으니! 국란을 수없이 겪여온 우리나라는 왜 이런 기도일 선포가 없는고! 넷째, 추수감사절 재차 환원 공포. 초대 대통령이 1789년 11월 26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하고 온 국민이 축제 가운데 지켜오던 것을, 이런 행사는 영국 왕정시대 유산이라며 제3대 제퍼슨 대통령 때부터 제15대 부케년 대통령 때까지 50년 이상 중지됐던 추수감사절을 링컨 대통령이 국가 축제일로 다시 선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니 기도한 대통령은 차원이 높은 큰 대통령이였음에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국정 추수감사일이 언제나 선포될고! 다섯째, 스프링 필드를 떠날 때도 간절한 기도를 부탁했다. 그는 어머니 기도 소리에 익숙해 뼈가 굳은 이래 대통령이 되어서도 아침은 기도로 시작, 저녁 또한 기도로 하루 일과를 마치는 그의 기도생활. 기도는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도구라 믿고 그렇게 간절한 기도생활을 쉬지 않더니 미국의 남북전쟁 승리, 남북통일, 흑노해방을 성취했다. 이에 대하여 사가들은 붓을 들기에 바빴으니 그의 기도의 힘이 이러했드니라. 여섯째, 백악관 집무실을 기도실로 만든 대통령. 거기서 무릎 꿇고 엎드려서 신음하며 울부짖어 아침 저녁 기도했으니 큰 일들의 응답을 받지 못할 리가 있었겠는가? 일곱째, 꿈에 본 마지막 예언. 야곱의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이 흐느껴 울고, 수의로 싼 시신이 관 안치대 위에 놓여 있고, 군인들이 보초를 서고, 통곡하고 흐느껴 우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링컨은 도열한 군인에게 누가 죽었느냐고 물었다. 군인들 대답, "백악관에서 대통령이 암살 당해 죽었답니다." 이처럼 꿈에도 예언했건만 포드 국장은 왜 갔을까? 1865년 4월 15일 아침 7시 22분,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 배우 일당의 저격에 미국제16대 대통령 애브라함 링컨은 5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험한 풍파 속에 와서 기도로 살다가 이렇게 갔다. 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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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02-15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43’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목회자의 기도생활 (4) 성경사의 기도자들 ⑬ 다니엘의 기도생할 다니엘은 유다 왕족으로 예루살렘 출신이다. 그는 주전 600년 경에 친구 세 사람과 함께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청년으로 선지자이다(왕하 23:36-24:7). 그의 생애를 분류하면 넷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성결의 생활자이다. 그는 세 친구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함께 바벨론 왕궁의 왕의 시동으로 선택되어 3년동안을 교양 받을 때, "다니엘은 왕이 주는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립히지 아니하기로 뜻을 정하여 환관장(內侍) 된 관리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단 1:8,9). 참 착한 다니엘의 성결의 생활이 여기에 드러나 있다. "뜻을 정하여 자신을 더럽히지 아니하려고"(단 1:8). 이 얼마나 기특한가? 그의 앞날의 신비한 은혜의 세계는 뜻을 정한데서부터 시작된다. 그가 성결생활의 뜻을 정함으로 하나님이 개입하시지 않든가. 여러분도 이 성결생활에 꼭 뜻을 정해야 한다. 자신을 더립히지 않기 위하여 뜻을 정했는가? 요셉도 이런 정신으로 보디발의 집에서 이것 더니라(창 39:7-10). 둘째, 그는 기도의 생활자이다.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단 6:10) 기도했다. 그의 기도는 어떤 기도인가? 이는 메데와 바사의 총리 방백 123명보다 훨씬 더 많은 수령과 모사 관원까지(단 6:1,2,7) 수백대 일의 싸움의 기도요, 왕의 어인이 찍힌 줄 알면서도 한 기도요, 사자굴에 금수형 당할 줄을 알면서도 한 기도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한 기도였다(단 6:23). 또한 자신과 백성의 죄의 자복의 기도, 70주 이스라엘 회복의 기도 중에 가브리엘을 만났다. 여기에 의미 깊은 기도가 또 있지 않는가?(단 9:20-27). 그러나 저들은 다니엘을 사자굴에 처넣었다. 그런 후 저들은 승리감에 젖어 술 잔치는 안 열었을까? 그러나 그들은 과거사를 제대로 공부했어야 했다. 불의 정책, 학정의 성공과 승리의 그 정치 생명은 극히 단명하며 피로 마감하고, 남잡이가 곧 제잡이로 종치고 만단 것을! 천도(天道)가 등장한다는 것을! 여러분, 우리는 에스더서의 하만의 말로와 이조 역사의 수양대군도 알지 않는가? 온 세계의 불의와 학정의 지도자들의 말로가 다 이겨 성공하고 승리하자마자 피를 토하고 마쳤느니라! 저들은 노래 부를 것이다. 무릎 꿇고 하루 세 번씩이나 기도한 다니엘아, 하나님이 있다면 왜 구원해 주지 않느냐? 너의 기도가 무슨 소용 있느냐? 다니엘아 사지굴에서 나오라! 저들은 조롱하면서, 저들은 다니엘이 완전 죽은 줄로 믿어 의심치 않았을 게다. 날이 밝으면 저들의 그 당당한 운명들이 어찌 될 줄도 모르면서! 필자가 대신 전하노라. 내일이면 비극이 온다고. 귀있는 자들은 모두 들을 지어다. 셋째, 그는 구원과 회복자이다.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다니엘의 굴에 이르러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아 ...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였더라"(단 6:19-23). 기도하던 다니엘, 하나님만 의뢰한 다니엘에게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어 보호 구원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개입이다. 다니엘은 복직되고 70년 포로기 끝, 예루살렘 회복, 메시야 왕국건설 된다 한 것 아닌가? 세상 어느 정치가도 모르는 미래역사 예견 예언자. 넷째,원수들의 말로이다. "왕이 명을 내려 다니엘을 참소한 사람들을 끌어오게 하고 그들을 그 처자들과 함께 사자굴에 던져 넣게 하였더니 그들이 굴 밑에 닿기 전에 사자가 곧 그들을 움켜서 그 뼈가지도 부숴뜨렸더라"(단 6:24). 이 역사! 심는 대로 거둔다는 하나님의 심판 법이니 세상 만민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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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11-02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40’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목회자의 기도생활 ⑦ 다윗의 기도생활 다윗은 "사랑받는자"란 이름으로 아브라함의 14대손이요, 유다 지파 이새의 여덟번째 아들로서, 유대 베들레헴 출생이다.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 제2대 왕이다, 사울 왕의 사위된 이래 맡은 직책 충성한 자요(삼상 17:34), 전쟁을 믿음으로 치른 자요(삼상 17장), 용서와 자비를 늘 베푼 자였다(삼상 24:26). 또한 하나님나라 사랑과 성전 건축을 지극히 열망하던 자(삼상 22장), 40년 재위 중 성군된 자,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자(행 13:22, 삼상 13:14),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선두에 선 자로 대표자이다(마 1:1), 그의 많은 자취는 유명하다. 그러나 그가 남긴 오점은 역사가 진행하는 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니, 아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비극의 오점. 여러분은 다 아시지 않는가? 첫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야를 전쟁터로 내몰아 죽인 계획 범죄를 저지른 잔인무도한 끔직한 사건! 밧세바여 슬퍼서 너무 슬퍼서 통곡하는가? 필자도 함께 울어 드리리이다(삼하 13장). 둘째, "사단이 유혹하여 다윗을 격동시켜 이스라엘로 인구 조사케 한 사건(대상 21장, 삼하 24장), 고로 하나님께서 밧세바 사건에는 나단 선지자를, 인구 조사에는 갓 선지자를 보낸 걸 보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도 안 죽을 만큼 처벌하지 않든가? 여러분에게 삼하 11-13장과 대상 21장, 삼하 24장을 꼭 정독할 것을 깊은 교훈으로 드리노라. 이로 인한 그의 감명깊은 기도는 이러하다. 아마도 그의 반생애는 눈물로 회개하며 살아간 기도였을 것이다. 전쟁할 때도 언제나 하나님께 물었지만(삼하 5장), 그의 회개 기도는 독자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든가? 어쩌다가 그렇게 범죄했던고! 시편 51편 그의 회개 기도는 눈물이 나서 못 보겠도다! 범죄한 마음이 이렇게 후회되었던가? "상하고 통회한 마음,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믈로 침상을 띄우며, 요를 적시며 종일 신음, 종일토록 슬픔 중, 내 날이 연기 같이 소멸, 뼈는 냉가리 같이 녹고, 죄가 머리털보다 많아 종일 주께 부르짖고 등등은 기도 중에도 참 회개 기도였다(시 6, 32, 38, 39, 40, 41, 51, 86, 102, 103, 143). 고로 다윗은 사함받고 성군이 되었도다. ⑧ 엘리야의 기도생활 여러분, 엘리야는 북왕국 아합 왕과 유다 아하시야 왕 시대(주전 876-854년경) 활동한 디셉 출신 선지자요(왕하 17:1), 가장 무서운 예언자로 활약하다가 불수레와 불말의 호위 속에 회오리 바람을 타고 산 채로 승천한 선지자이다(왕하 2:1-11). 그는 이후 예수의 변화산 사건에서 모세와 함께 등장하여 주님과 말씀하신 선지자(마 17:3)로, 후계자 엘리사를 배출한 대선지자이다. 이제 그 기도를 보라! 강렬하고도 목숨 걸고 한 그의 기도생활, 너무나 위대하고 유명하다. 여러분, 그의 강력한 기도생활은 꼭 배워 살지 않으면 아니된다. 기도는 해도 되고, 아니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생활에 게으런 자들아, 엘리야 선자자 알면 매 맞아 부어 터질지도 모른다. 아시는가? 정신차려라.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삼킬 자를 두루 찾고 다니는 세상이 아닌가. 그대도 삼키면 어쩌려는가? 아합 왕이 하나님 버리고 우상꾼들과 놀아날 때, 하늘문을 닫고 3년 6개월이나 비가 오지 못하게도 하고, 다시 비가 오게도 하는 역사함은 무엇이었던가? 엘리야의 강력한 기도가 아닌가?(왕하 17:1-7, 약 5:17,18). 사르밧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릴 때(왕상 17:7-24), 바알 선지 400명과 아세라 선지 450명, 합 850명 대 1로서 갈멜산상 종교대결에서 불의 응답으로 승리, 저들 850명을 기손시내로 끌어다 다 죽인 것은 그의 강렬한 기도의 힘이 아니든가(왕하 18:19-40), 야고보 왈, 이 기도는 "간절한 기도"였다고 증언한다(약 5:17). 여러분, 지금 이 시대에도 엘리야의 기도가 필요하지 않는가? 엘리야의 그 기도는 무릎을 꿇는 기도, 얼굴을 무릎 사이에 파묻은 기도, 부르짖는 기도, 강렬하고 강력한 기도, 이 기도에 자연을 움직여 비가 못 오게도 하며, 오게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850명의 우상꾼들을 전멸시키기도 했다. 이는 목숨을 건 기도가 아니면 아니된다. 곳곳마다, 건물마다 교회는 보이는데, 곳곳마다 큰 교회 작은 교회 줄줄한데, 기도! 엘리야의 그 기도로 지역사회의 악영들을 이기라! 마귀와 세상문화와에서 승리하라. 불신 세계의 악령들에서 승리하라. 교회에도 있을지 모르는 "용이요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계 12:9, 20:1-3)을 쫓아내 승리하라. 무엇으로엘리야의 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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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04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7’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목회자의 기도생활 (4) 성경사의 기도자들 ⑤ 아브라함의 기도생활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로, 우리 모두의 믿음의 조상으로 유명한 위인이시고, 그의 기도생활도 모범자이시었다(창 11:26-25:10). 그는 노아의 12대 손이며, 갈대아 우르 출생인데, 부친은 데라요, 아내는 사라요, 아우는 나홀, 조카는 롯, 아들은 이삭, 며느리는 리브가였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구분한다면 4분할 수 있을 줄로 안다. 첫째, 믿음의 생활이다. 그는 믿음으로 살았으니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4-6),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며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롬 4:3),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럼으로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롬 4:18-22). 보라! 여기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있다. 또한 여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는 원리, 아브라함이 의롭게 되는 원리가 이것이니라(약 2:23). 둘째, 베푸는 생활이다. 지나는 길 손님 세 분에게 베푼 일은 곧 천사를 대접함이었다(창 18:1-5). 또한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서로 다툴 때 아브라함의 양보 "네가 좌(左)하면 내가 우(右)하고 네가 우하면 내가 좌하리라"(창 13:5-9). 이것도 참으로 쉽지 않은 대단히 베푸는 일이다. 한국에도 잘 베푸는 일로, 교회로는 남원 동부 교인들이고, 어려운 자에 베푸는 데는 서울 명성교회와 김삼환 목사이며, 노인 목사에 잘 베푼 자는 개봉교회 노창영 목사가 있다. 이 고마운 분들은 히브리서 13장 1,2절 대로 사는 분들로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 중에 천사를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1,2). 이와 같이 베풀고 산 자들을 확증 뒷받침하는 말씀임에 틀림없는 것이다. 셋째, 순종생활이다.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 갔더라"(창 12:1-5). 또한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엿음이니라"(창 22:1-19). 자! 여러분 아브라함의 생활은 이처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 다 합격의 생활이었다. 고로 큰 민족을 이루고 복을 받아 복의 근원이 되고, 자손 번성 번영, 적군의 문을 얻음, 아브라함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은 것이 아닌가(그 씨로 예수 그리스도가 나심). 고로 여호와께 순종은 축복 받는 열쇠인 줄 알라! "순종이 제사보다 더 낳다"(삼상 15:22) 하지 않든가? 그대들도 순종하여 복 많이 받으시라! 넷째, 기도생활이다. 그는 중보기도자로 소돔 고모라 멸망 직전에 의인 50에서 10인까지 용서와 죄 사함의 그 기도, 우리 영혼의 파도처럼 메아리쳐 온다(창 18:22,23). 여러분 우리도 이 중보기도가 필요하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중보기도를 어느 때 요청할 날이 올 줄 누가 아느냐. 그는 태(胎)의 생산의 문을 열게 한 기도자다. 그랄 왕 아비멜렉의 집을 보라! 아브라함의 기도가 없었다면 그 집은 끝장났을 게다(창 20:17,18). 여러분은 한 가문의 태의 생산의 문을 열고 닫고 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움직일 수가 있겠는가. 현대 목회자들도 아브라함 같은 기도의 능력자가 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 참으로 하나님을 움직이지 못한 기도가 있다면 그 기도는 준비가 안된 기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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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22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5’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주 예수의 기도생활 (4) 성경상의 기도자들 1. 베드로의 기도생활 기도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이다. 여러분은 이것을 아실 게다. 이하에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인 선구자들 그 기도생활을 열거함에 베드로의 기도부터 본다. 그는 옛 갈릴리 바다의 어부이던 중 주님의 부름을 받아 12제자로 사도가 되었다. 그는 어부여서 불학무식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수제자가 되었다. 바울 사도는 그를 "초대교회 기둥이라"(갈 2:9)고 했다. 사도 베드로의 많은 사생활은 덮자. 왜 아는 사람은 다 아니까. 베드로의 기도는 이러하다. 그의 기도생활은 첫째, 전적인 순종의 기도생활이다. "...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행 1:14-2:4). 우리도 주께서 분부한 기도에 순종하여 전적으로 기도하지 않으면 아니된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충만한 성령의 불을 못받는 것 아닐까. 둘째, 규칙적인 기도생활이다. "제9시 기도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 가다가" 이때 구걸하던 앉은뱅이도 고쳤다(행 3:1-16). 욥바에서 제6시에 기도했다. 이때 고넬로에 관계된 환상을 하나님은 보여 주셨으니 환상은 거의 기도 중에 보지 않든가 (행 10:1-48).여러분, 선한 생활엔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 엣날 성 프랜시스는 일일일선(一日一善)을 실천했다. 이 규칙 생활로 천사를 만났다고 하지 않는가. 서울 모 대형교회 목사는 규칙적인 기도로 성공했다고 한다. 여러분은 규칙적인 기도시간이 있는가? 셋째, 기적 행한 기도생활이다. 사마리아에서 성령받기를 기도하고 안수함으로 성령받게 했을 뿐만 아니라(행 14:17), 헤롯의 핍박에 옥중에 감금되었으나 교인들 기도에 천사 출현, 옥문 열려 기적 체험(행 12:1-17),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주의 사자가 옥문 열어 출옥케 된 일, 병든 자들을 고친 일(행 5:1-32), 중풍환자 애니아를 고치고, 죽은 다비다도 기도로 살린 일 등등(행 9:32-42). 베드로는 전적 기도, 규칙적 기도, 기적적 기도를 했다. 2. 바울의 기도생활 토마스 칼라일은 "체험(경험)은 위대한 정신적 의사"라 했다. 사도 바울도 역시 체험의 역사에서 그의 사도의 생애가 시작된다. 다메섹 도상의 대낮에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니이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행 9:1-9). 바울 사도의 생애는 이 크나큰 유사 이래 체험,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베드로는 성령불을 체험하고, 바울은 대낮에 살아계신 주 예수를 체험했다. 수년 전 죽은 줄만 알았던 그 예수를, 이제 살아계신 예수로 체험했다. 여러분은 어떤 예수인가? 죽어버린 예수인가, 살아계신 예수인가? 여기에 목회자의 승패가 있다. 예수를 체험했는가? 기도로 꼭 체험해야 목회자가 된다. 자신에게 물어보라! 많은 목회자가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고 목회하니 얼마나 많은 기적을 만드는가. 로마서에서 히브리서까지, 유럽과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 설립도, 세계복음전도 1차에서 3차까지도, 최후 순교도, 그의 설교 예수는 죽었다가 살아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그를 믿어야 죄사함 구원받는다 함은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함에서였다. 그의 기도생활은 어떤가? 첫째, 체험의 기도생활이다. 바울과 실라가 옥중 감금 됐을 때, 밤중에 기도와 찬송, 지진에 옥터는 움직이고 옥문은 열리고, 간수를 구원하고(행 16:24-34), 이 얼마나 크나큰 체험의 기도인가! 둘째, 겸손의 기도생활이다. "밀레도에서 무릎 꿇고 기도"(행 20:17-36, 21:3-6), 오늘날 기도는 걸상문화가 망쳤지만 목회자들엔 무릎기도가 요청된다. 여기에 목회자의 겸손이 있다. 셋째, 환상보는 기도생활이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기도할 때 비몽사몽 간에..."(행 22:17,18), 기도할 때 주님은 영적 신비로 응답하지 않든가. 넷째, 병고치는 기도생활이다. "브블리오의 부친께... 기도하고 안수하여 낫게 하시매"(행 28:8), 여러분도 교인들 병원심방도 하지만은 병고치는 은사로 병을 고쳤으면! 다섯째, 계속적인 기도생활이다. "항상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엡 1:16, 롬 1:9, 빌 1:9, 골 1:2, 살전 1:2), 동시에 계속적인 기도생활을 요청했다(살전 5:17). 바울 사도의 기독교의 대업적, 공적은 주님 만남 체험에서! 백문이 불여일견(百聞 不如一見)이라. 님 기다리며 기도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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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27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4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3) 주 예수의 기도생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생활은 우리의 법전이다. 이제 성경의 기도자들을 고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생활부터 서술하려고 한다. 이에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길을 찾는데 큰 도움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 간절 하다. 기도생활은 성공적 목회생활에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닐 게다. 뿐만 아니라 일반 신앙인들도 그렇지 않든가 여컨데 4성 장군 아이젠하워가 연합군 최고 사령관으로 세계 제2차 대전, 독일군과 연합군의 대전, 노르만디 상륙작전 개시 당시 어떻게 한 줄 아실 게다. 기도했단다. 주 하나님께! 말타 항구 언덕에서 지휘관과 부관들과 함께 하나님 전에 무릎 꿇고, 모자를 벗고, 엎드려 기도했단다. 간절히 기도하고 일어나서 말하기를, "기술과 모든 두뇌의 훈련을 동원할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있다. 하나님 손에 맡기고 행동에 들어가자." 그래서 승전했던 것 아닌가 여러분이 맡은 영혼들을 지키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전해야 할 여러분의 목회는 어떤가 모든 것은 하나님 손에 달려있지 않는가. 고로 기도, 또 기도해야 한다. 이제 우리 주 예수의 그 기도생활을 배우자. 배워야 어두운 세상 밤길 안 걸을 게다. 중국 주나라 문왕의 스승이요, 제나라 시조인 강태공은 "인생불학이면 여명명야행"(人生不學 如冥冥夜行)이니라"고 했다. 사람이 살면서 배우지 않으면 캄캄한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하물며 목회자가 예수님께 기도를 배우지 않으면 어떠하겠는가 그러나 겸손한 자세로 세속적 사상 버리고 한걸음 물러서 자리를 비껴서 배워야 한다. 중국 유학 십삼경 중 하나인 효경(孝經)에 "자왈 증자피석왈(子曰, 曾子避席曰)이니라"고 했다. 공자가 말하려 할 때 제자 증자가 선생을 공경하는 뜻에서 자리에서 일어나 한 걸음 물러 앉아 들었다는 말이다. 이제 우리의 영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이렇다. 주님의 기도는 '40일 금식'으로부터 시작했다(마 4:1,2). 이어서 '세례 받으실 때' 기도하셨고(눅 3:21), '사도를 택하실 때'도 기도하셨다(눅 6:12-19). 습관화 된 평상시 기도를 하셨으며(눅 22:34-44, 마 14:23), 새벽에 기도하셨으며(막 1:35),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으며(마 6:9-13, 눅 11:1-4), 5병2어와 기적을 행하실 때 기도하셨고(마 14:19, 15:36, 막 6:4, 8:6, 눅 9:13, 요 6:9), 벙어리와 귀먹은 귀신을 쫓아 내실 때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막 9:28,29)고 하셨고, 또 안수 하실 때 기도하셨다(마 19:13). 다시 주님의 그 기도 몇 곳을 추구하여 이를 마음에 새기자. 첫째, '금식'으로 시작했단 것을, "사십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마 4:2), 여러분도 큰 일을 시행할 때 금식기도로 시작하는 게 좋을 것이다. 둘째, '새벽기도'이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여러분도 새벽기도로 항상 주님을 만나라. 셋째, '혼자서'의 기도이다. "무리를 보내신 후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며 거기 혼자 계시더니"(마 14:23), 이 시간은 아주 귀중한 시간이다. 여러분 이걸 아실까 아버지 하나님과만 만나는 그 시간! 넷째, 그리스도의 직책의 고뇌,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 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 직책 감당에 얼마나 고생이 많았던고! 늘 울어도 눈물로서 못 갚겠도다. 여러분, 목회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시는가 주님도 그랬더니라.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도 못 가는 길, 영문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목회성공 하려하면 이 길만은 걸어야 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가야 하네! 다섯째, 감람산기도이다. "주의 사지가 하늘로서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39-44, 마 26:36-46, 막 14:32-42). 이 기도에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접근했다. 택한 백성들 영혼을 담당한 십자가의 기도였기에! 여섯째, 천상에서 지금도 기도하신다. "... 이는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5).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도는 이러했으니 우리도 우리의 사명 십자가를 짊어짐에 눈물과 통곡의 기도가 요청된다. 낮에나 밤에나 눈물 머금고 내 주님 기다리며 기도로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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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27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2
    3. 목회자의 기도생활 (1) 의미로 본 기도생활 귀공은 "하나님 때문에 마음이 괴로운 사람의 음성을 들어보았는가 이것은 이 영적 암흑 시대에 기도하는 자들이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라고 한 전 휘튼대학 총장의 말을 전하면서 이하에 상기한 의미를 기술하려고 한다. 기도의 의미란 무엇인가 세상에 교회 안에 기도의 의미를 모르는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기도한 사람들의 설명을 들어보라.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 왈, "기도란 예배의 일종",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 왈, "기도는 영혼의 호흡"(육체가 숨 못 쉬면 죽는 것처럼, 기도하지 못하면 영혼이 죽는 것),?프랑스 비평가 보들레르 왈, "기도는 힘의 저장고"(기도를 많이 해서 저축해야 할?것), 스위스 교육가 페스탈로치 왈, "기도는 자기를?제어하는 무기"(자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실패), 일본 구마노끼꼬 왈, "기도란 하나님과의 대화" 등으로 설명했다. '기도'에 대한 구체적 문자로 보면, 히브리어 동사로는 "파랄"이다. 이는 기도하다. 간구하다. 탄원하다이고, 명사로는 보통기도로 "테피라"이다. 이는 기도 또는 간구이며, 간절한 기도로 "타가눈"이 있다. 구부려 기도, 애걸, 간청, 탄원, 간구, 애원 등이다. 헬라어 동사로는 "프로슈코마이" 기도하다. 간청하다. 예배하다이고, 명사로는 "프로슈케" 기도, 간청, 예배 등이 있는데, 기도란 간구하고, 탄원하고, 애걸하고, 간청하고, 애원하고, 구부려 예배하는 것, 이 모두를기도라 한다. 또한 영어의 명사 "prayer"와 동사 "pray", 그리고 한자어 "祈禱" 등은 히브리어, 헬라어의 그 뜻을 따른다. 여기 기도의 원문을 가슴에 품고. 여러분에게 묻겠는데,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를 들어보시라! ①응답 받고, 내가 알지 못한 크고 비밀함을 알게 되니까(렘 33:3). ②만사를 푸는 열쇠니까(빌 4:6,7, 약 5:13-18). ③시험에 들지 않게 되니까(눅 22:40, 벧전 4:7). ④성령을 충만히 받게 되니까(행 1:24-2:4). ⑤거룩하여지니까(딤전 4:5). ⑥체험하게 되니까(막 11:24). 이상만 열거하노니 남은 내용들은 귀하들께서 더 찾아 목회생활에 피와 살이 되게 하시라! 목회자들은 기도하시라. 바쁜 것과 게으른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자신의 기도 없음이 얼마나 위태한 영적 말기환자 인줄 아는가 기도한 자들의 기도의 모습을 배우라. 교회사에서, 성경의 인물들에서! 이하에 몇가지만 제안한다.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고난 중에도, 병중에도, 죄를 범했어도 낙심 말고 기도하라(약 5:13-18). 둘째, 무릎 꿇고 기도하라. 솔로몬도, 주 예수도, 스데반도, 베드로도, 바울도, 다니엘도. 기도의 거성들은 모두 무릎을 꿇었느니라. 왜 무릎을 꿇었을까. 이는 자신을 낮춘단 뜻이요. 항복, 복종, 굴복, 간청, 호소, 용서를 구함, 처분대로, 소원, 애원 등의 뜻이 있지 않겠는가. 셋째, 엎드려 기도하라. 주 예수와 에스라며 허다한 기도자들은 엎드렸느니라. 넷째, 부르짖어 기도하라. 렘 33장 3절을 보고! 다섯째, 간절히 기도하라. 사무엘도, 야고보도, 이사야도, 히스기야도, 한나도, 엘리야도, 오순절 120문도들도, 주 예수께서도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든가 좌우간 전적으로 간절한 기도에 기적과 응답은 반드시 오는 법, 이걸 믿고 이걸 아는가 골방의 이 기도에 하나님의 결정이 있고, 천사도 왕래한다는 걸. 그러나 들으시라. 기도하지 않음은 범죄라는 걸(삼 12:23), 또한 죄를 마음에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않으신다는 것도(시 66:18). 귀하들이여, 골방생활을 하고 있는가 무릎을 꿇는가 거기서 엎드리는가? 간절히 부르짖는가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전적으로 기도하는가 귀하의 목회성공과 실패는 여기에 달려 있는데, 이걸 아실까, 모르실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더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현대 기도는 곳곳마다 걸상문화에 골병이 들어있다. 이 걸상문화가 골병들게 했기 때문이 아니냐. 여러분! 하나님이 찾으신 기도자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치 않고 기도한 자들, 하나님 존전에 무릎 꿇고 기도한 자들, 하나님 존전에 완전히 엎드려 기도한 자들, 부르짖어 간절히 전적으로 기도한?자들 아닌가. 지금은 코로나 재난 시대이지만, 이때에 귀하들은 골방의 더 많은 생활로, 기도가 풍성하여 성령이 충만하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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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0
  • [독자기고] 송덕 목사의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의 그 비결 30’
    제3장 목회자의 영성생활 1. 육성자(肉性者)의 목회생활 이 장에서는 목회자의 영성생활을 논증하여 목회성공과 교회부흥에 초석을 기하고자 한다. 본 제목은 목회의 핵심이다. 고로 '영성'(靈性)에 희박한 '육성'(肉性)에 의한 목회와 영성을 중시한 '영성'에 의한 목회, 이 두 가지로 나누어 논하고자 한다. '육성'은 영성의 반대로 "육성, 육신의 욕망, 육신의 정욕,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등으로 표현한다. 이를 헬라어로는 '에스카테스 사르코스'라 하고, 히브리어로는 '바사르, 타아바' 등으로 표현된다. 즉 "육체의 일"이라는 뜻이다. 이런 육성의 목회는 영적인 목회와 대립되는 것으로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들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함이니라"(갈 5:17)와 같이, 영성의 성령을 떠난 육정적인 목회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이 육성적 목회는 이러하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갈 5:19-21). 여기 육체의 일은 곧 정욕, 육정, 육신의 일로서 죄의 기관이요, 죄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욕망을 말한다. 이에 의한 목회를 육성에 의한 목회라 한다. 과연 이러한 육성에 의한 목회자가 있을까? 그런데 목회자 중에는 이런 목회자도 있단다. 겉모양은 '양'(羊)의 탈을 쓴 자가 있단다. 이제 보라! 속은 노략질로,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술수, 원수를 맺는 것, 분쟁, 시기, 편가름(당 짓는 것), 분리, 이단, 투기, 술취함, 방탕, 그와 같은 것 즉 교회, 노회, 총회 회의시에 이런 짓을 하는 자들이 있다면 어이할까? 이제 들어보라! 엘리 제사장 아들들 홉니와 비느하스(삼상 2장), 이들은 불량한 자들이었다. 당대에 유명하고 존경받는 제사장의 아들들이었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한 자들로서, 제물에만 관심한 자들,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한 자들, 회막문의 수종 드는 여자와 음행 호색한 자들, 아비의 꾸짖는 권고도 안 듣는 자들, 하나님께 큰 죄 되어 하나님이 죽이기로 작정된 자들이었다. 저 유명한 사무엘 선지의 아들들은 어떤가? 요엘과 아비아는 자신의 '이'(利)를 따라 뇌물(재물)에만 관심이 있을 뿐, 백성들의 정사(政事)는 내 몰라라 했다. 그 결과는 백성들이 등 돌리고 불신 당하지 않았는가. 여기도 육성소유 사사들이 있었다. 이리하여 사사직과 국사는 실패 또 실패였다(삼상 8:1-5). 또한 선지자 발람은 뇌물에 눈이 멀어 오히려 말 못하는 나귀에게 책망 받고, 하늘의 천사에게 견책 당하고, 끝내 모세에게 죽임 당했다. 왜? 오직 물욕에 취한 자, 하나님의 백성에게 우상 제물 먹게 하여 범죄케 했으니, 오! 재앙 비극!(민 22, 31장, 수 4:9). 가룟 유다는? 자살, 자살했단다. 왜? 돈 궤 맡아 헌금에서 도둑질하고, 선생 팔아 은 30냥 돈 벌었으나 양심은 고동 쳐서 견딜 수 없어 목매 갔으니(요 12:6, 마 26:27). 이들 모두 실패하여 불행했으며, 자손 만대 행복하게 못 살았단다. 이 자들의 생애는 무얼 말하는고? 창세기 6장 3절에서 "육체"라 하는데, 이는 육적 욕심과 육적 원리로서 이런 자를 하나님의 영이 떠난 자라 한다. 우리 주변에도 이런 자들 있다. 이성에 도취한 혹자는 사건 발생 밤보짐으로 좋은 강단 다 내놓고 어두운 밤길에 갔고, 재물욕심 가득한 혹자는 교회재산 말아 먹으려다가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버렸고, 분쟁 당파 좋아하던 혹자는 비밀리에 도주하고 말았다 하고, 선임자 축줄하고 자리 빼앗은 혹자는 그의 말로가 비참했었고, 외형적으론 신실한 척 하던 혹자는 엄청난 사고 터져 행방불명 되었다 한다. 그러나 여러분, 정죄는 금물! 언제 회개하고 돌아올지 뉘 알까? 기도하고 긍휼로 기다리시라. "선을 행하고 죄를 범치 아니한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다"(전 7:20) 하지 않든가. 나도 언제 무슨 실수 할지 그 누구도 장담 못한다. 다만 권고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롬 8:1) 하소! 다시 한번 권함은 "육성 목회 비극, 영성 목회 성공", 과연 육성 목회 비극인데 그걸 보고도 괜찮다고 말하는 자는 나의 적이요, 나의 잘못을 말해 주는 자는 참 스승이라! (道吾善者 是吾賊, 道吾惡者 是吾師)<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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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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