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8(목)
 
  • 강춘오 목사(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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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장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고 한다. 여기에 이 '말씀'(Word)은 그냥 ', 낱말, 단어'를 뜻하는 word가 아니고, 헬라어 '로고스'(Logos)를 번역한 것으로 어떤 신적 존재에 대한 고유명사이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첫 글자를 대문자로 표기한다.

 

만물을 지은 창조주로 표현되는 이 어떤 존재에 대해, 본문은 "아버지의 독생자"(14), 또는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18)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우리 한글성경에서는 이 독생자를 칭하는 고유명사 '말씀'(Word)과 예수께서 '말씀'하셨다(say 또는 speak)고 할 때, 보통명사 '말씀'이 구분되지 않아 혼돈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류 구원사에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기록된 말씀'으로 성경이다. 이 성경에는 독생자에 대한 계시가 나타나 있기 때문에 말씀이다. 둘째는 '보이는 말씀'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독생자가 성육신(Incarnation) 하여 세상에 오사 행하신 것을 오늘날 기념하는 것이 성찬이다. 셋째는 '들리는 말씀'으로 설교이다. 설교는 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으로서 말씀이다.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인 이유는 이 '말씀'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속 사역에 대한 증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이 증언되지 않는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목사가 설교란 이름으로 성경 본문 한 절 읽어 놓고 아침 신문에서 본?이야기나, 또는 자신의 신변 잡기를 코미디언처럼 장황하게 늘어놓거나, 애국심을 부추기며 청중을 웃기고 울리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또한 종교적 강화(講話)나 기복적 축복(祝福) 역시 마찬가지이다. 설교는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위해 행한 구속 사역을 이 시대에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 하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 사역이 증언되지 않는다면, 그 설교가 아무리 훌륭한 종교적, 윤리 도덕적 가르침을 설파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할 수 없다. 오늘날 한국교회 설교는 대체로 기복적(祈福的)이어서 소시민들의 기복주의에 경도(傾倒)되어 있다. 따라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복음으로서의 힘을 잃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바꾸는 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 구원사역에 대한 바른 설교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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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지골] 설교-하나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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