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호 목사(한국에흐예언약학회 회장)

성경이 말하는 새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아온 마음 안에 하나님의 뜻이 새롭게 자리 잡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뜻이 돌판과 율법을 통해 백성에게 주어졌다면, 새 언약에서는 그 뜻이 사람의 마음에 기록된다. 그래서 새 언약은 하나님의 법이 인간의 내면에 새겨지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새 언약을 예언하면서 매우 중요한 말씀을 남겼다.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렘 31:33).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법을 폐하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을 사람의 속에 두고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셨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하다. 돌판에 기록된 법은 인간의 바깥에서 “이렇게 살아라”고 명령한다. 그러나 마음에 기록된 법은 인간의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따르게 한다. 외적인 명령이 내적인 사랑과 순종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이것이 새 언약이 인간의 마음을 향하는 이유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외적인 법만으로는 인간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다.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율법을 가지고 있었으며 제사를 드렸다. 그러나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과 욕망을 앞세우는 마음은 반복해서 나타났다. 율법은 무엇이 옳은지를 알려 주었지만, 그것을 사랑하고 기꺼이 따르는 마음까지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더 많은 규정을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하는 길을 준비하셨다. 새 마음과 성령, 그리고 하나님의 법은 서로 떨어져 있는 주제가 아니다. 모두 새 언약 안에서 하나로 연결된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더욱 분명해진다. 예수께서는 단순히 율법의 조항을 반복해서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이 향하고 있던 마음의 중심을 밝히셨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것은 결국 행동의 외형이 아니라 그 행동이 나오는 마음이었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을 묻는 질문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 이어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법은 결국 사랑으로 모인다.
그러나 이 사랑 역시 단순한 감정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보여 주신 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에 마음이 움직여 하나님께 자신을 돌려 드리는 삶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십자가의 의미가 드러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하라고 명령하시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사랑을 보여 주셨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십자가는 인간이 하나님을 사랑해야 할 가장 깊은 이유를 보여 준다.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보여 준다. 그 사랑을 깨달은 마음이 하나님께 돌아서고 자기중심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지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신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의 양심을 깨우고 마음을 하나님께 돌이키는 새 언약의 중심이 된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말한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의 법’이라는 표현은 매우 중요하다. 새 언약의 사람에게 법이 없어졌다는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십자가의 정신이 그 삶을 다스리는 새로운 기준이 되었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법은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삶의 법이다. 자기 자신이 삶의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자신의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우며, 이웃을 향해서도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이다.
이러한 삶은 인간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새 언약의 사람에게 성령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며 인간의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도록 이끄신다. 그래서 새 마음과 성령의 통치와 그리스도의 법은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새 언약의 핵심은 인간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다시 왕으로 자리하시는 데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법이 마음에 새겨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왕권의 변화를 의미한다. 아담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운 데서 시작되었다. 반대로 새 언약의 삶은 자기 판단을 절대적인 왕좌에서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삶의 중심에 모시는 데서 시작된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고 말씀하셨다. 사랑과 계명은 서로 대립하지 않는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싶게 만든다. 억지로 법을 지켜서 사랑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받은 사랑을 알기에 하나님의 뜻을 기쁘게 따르는 것이다. 이것이 율법적 신앙과 새 언약의 신앙을 구별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외적인 율법은 인간에게 “지켜라”고 요구하지만, 새 언약은 십자가의 사랑으로 마음을 깨우고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며 따르게 한다. 하나님은 새 언약을 통해 돌판의 글자를 인간의 마음으로 옮기셨다. 그리고 성령을 통해 그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도록 이끄신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이다.
그리스도의 법은 인간을 다시 율법의 무거운 짐 아래 두는 법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받은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따라 살아가게 하는 생명의 길이다. 그리고 바로 그 마음에서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사랑하며, 거룩과 인내의 삶으로 나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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