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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호 칼럼] 23. 선한 양심 -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깨어나는 마음

  • 교회연합신문 기자
  • 입력 2026.09.1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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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호 목사(한국에흐예언약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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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에게 종종 “너는 양심도 없느냐”고 말한다. 법을 어겼느냐를 묻기 전에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어떤 기준을 향해 질문하는 것이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이 받은 사랑을 외면했을 때 마음이 아프며, 옳지 않은 일을 했을 때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마음의 작용을 우리는 양심이라고 부른다.

 

성경 역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양심을 중요하게 다룬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선한 양심은 단순히 사회적으로 착하게 살아가는 마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죄와 자기중심성을 깨달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응답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는 마음과 연결된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여러 가지가 있다. 성공하고 싶은 욕망도 사람을 움직인다. 어떤 위인의 삶을 읽고 감동을 받아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람도 있다. 훌륭한 스승의 말 한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기도 한다. 신념이 강해지면 사람은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엄청난 희생도 감수한다.

 

그러나 강한 신념과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은 같은 것이 아니다. 신념은 오히려 자아를 더욱 강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는 반드시 성공하겠다”, “나는 반드시 이루겠다”는 의지는 사람을 강하게 만들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나’가 왕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성공과 성취는 자아의 힘을 깨우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자기중심적인 인간을 하나님 중심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구원의 문제는 단순히 나쁜 행동 몇 가지를 고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서 “누가 나의 왕인가”라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마음을 어떻게 돌이키시는가.

 

구약의 긴 역사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율법을 주셨으며 선지자를 보내셨다. 때로는 징계하시고 심판을 경고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외적인 명령과 두려움만으로 인간의 중심이 근본적으로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드러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향한 새로운 언약을 말씀하셨다.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 2:13).

 

하나님께서 원하신 것은 겉옷이 찢어지는 종교적 표현이 아니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찢어지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찢을 수 있는가.

 

여기에서 십자가를 보아야 한다. 십자가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법만을 보여 주는 자리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자신의 희생으로 보여 주신 자리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 앞에서 인간은 두 가지를 동시에 보게 된다. 하나는 자신의 죄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이를 잘 보여 준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이렇게 묻는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행 2:37).

 

중요한 것은 그들이 단순히 새로운 종교 지식을 얻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알게 되자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그러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졌다. 이것이 양심이 깨어나는 모습이다.

 

기도 응답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사업이 잘되었기 때문에 감사하고, 건강과 성공과 자녀의 형통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인간의 자기중심성이 무너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으로만 이해된다면 신앙의 중심에 여전히 ‘나’가 자리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사랑하는가.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더 주셨는가를 넘어, 나를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다는 그 사랑을 깨달을 때 인간의 양심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하기 시작한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을 이용한 것인가.

 

나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나의 왕권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며 살아온 것인가.

 

선한 양심은 자기 만족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돌아가려 한다. 마음의 할례가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베어지는 것이라면, 선한 양심은 그 베어짐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하는 마음이다.

 

십자가의 보혈은 인간의 양심을 깨운다.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을 찌르고, 그 사랑 앞에서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발견하게 하며, 그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돌아가도록 부른다. 예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자기부인은 자기 존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삶의 왕이었던 자리를 내려놓는 것이다.

 

사람은 한 번 감동했다고 그 사랑을 평생 유지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십자가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고 자기중심성이 영원히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의 욕망과 성공, 인정과 물질, 두려움과 염려는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을 다시 자기중심으로 끌어당긴다. 그래서 새 마음 다음에는 반드시 성령의 통치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한다. 십자가는 나에게 무엇인가. 죄의 값을 대신 치러 주셨으니 이제 안심해도 된다는 교리로만 남아 있는가. 아니면 나를 위해 피 흘리신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도 내 양심을 깨우고 있는가.

 

그 사랑 앞에서 내 마음은 아직도 찔리는가. 내가 왕이었던 자리를 발견하고 하나님께 내어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의 양심이 깨어지고, 깨어난 양심이 자기중심을 발견하며, 자기 왕권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돌아설 때 새 언약의 삶은 실제 삶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렇게 하나님을 향해 깨어난 마음을 성령으로 붙드시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는 사람으로 이끌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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