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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봉 칼럼] 12. 마소라 사본 직역으로 읽는 창세기 12장: 부르심의 은혜와 에핳의 제단, 그리고 예슈아를 향한 구속사의 여정

  • 교회연합신문 기자
  • 입력 2026.10.0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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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길봉 목사(이브리어 단어별 합성어 해설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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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 12장은 바벨탑(창 11장)을 정점으로 치달은 인류의 교만과 타락 속에서, 한 사람 아브람을 부르시어 새로운 구속사의 물줄기를 여시는 엘로힘의 장엄한 섭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브리어 마소라 텍스트(Masoretic Text)의 원어적 직역을 통하여, 솨탄의 미혹과 셰드(마귀)의 지배 아래 놓인 세상을 떠나 에핳의 언약 백성으로 세워져 가는 영적 여정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1. 핱타앟(원죄)의 자리를 떠나는 구별된 부르심이다.

 

1절 “그리고 에핳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너의 땅으로부터, 그리고 너의 친족으로부터, 그리고 너의 아버지의 집으로부터 내가 네게 보여줄 그 땅으로 가라. 2절 그리고 내가 너를 큰민족으로 만들 것이며, 그리고 내가 네게 복을 줄 것이며, 그리고 내가 너의 이름을 크게 할 것이니, 그리고 너는 뻬라캏가 되라.”(창 12:1-2 직역)

 

바벨에서 타락한 인류는 스스로의 힘으로 탑을 쌓아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철저히 셰드의 미혹에 사로잡힌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엘로힘께서는 우상 숭배의 중심지에서 아브람을 불러내시며, 인간 스스로가 아닌 에핳께서 친히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하시겠다'고 언약하십니다. 빠라크/뻬라캏의 복은 주어지는 복입니다. 성공, 번영, 생산, 장수, 승리, 건강, 형통 등을 위한 능력이 부여되는 복입니다. 이 복을 받으면 생각, 언어, 행동이 바뀝니다.

 

아브람이 떠나야 했던 고향과 친족과 아비의 집은 단순히 지리적 장소가 아니라, 솨탄의 거짓말에 속아 영원히 실존하는 생명을 잃어버린 '핱타앟(원죄)'의 자리였습니다. 유월절 어린양 예슈아와 만능들이신 엘로힘을 놓아 버린 세속의 삶의 방식을 단호히 끊어내고, 오직 진리의 루하께서 지시하시는 미지의 땅을 향해 믿음의 발걸음을 내딛는 것, 이것이 바로 성도를 향한 거룩한 부르심의 시작입니다.

 

2. 구속사의 절대적 기준과 참된 빠라크의 완성이다.

 

3절 “그리고 내가 너에게 복(바아바라카)을 비는 자들에게 복(메바라케카)을 줄 것이며, 그리고 너를 저주(우메칼렐카)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아오르)할 것이다. 그리고 그 땅의 모든 족속들이 너를 통하여 복(베니브레쿠)을 받을 것이다.” (창 12:3 직역)

 

1) 빠라크(능력부여의 복)과 저주의 유일한 절대 기준

기복적 샤머니즘이 말하는 복과 화의 기준은 인간의 지성이나 정성에 달려 있으나, 이 선포는 축복과 저주의 유일한 잣대가 '언약 백성' 자체임을 맹렬히 규명합니다. 이방의 혼합주의를 배격하고 진리의 원형을 지키는 자들을 대적하는 것은 곧 창조주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타락한 종교 기득권이 훼손되지 않은 마소라 원음(에핳, 엘로힘, 루하)을 사수하는 남은 자들을 핍박하고 저주할지라도, 에핳께서는 도리어 그 거짓된 바벨탑을 저주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2) 인간의 기복주의를 파쇄하는 영원한 빠라크

여기서 약속된 '복'은 마귀(셰드)들에게 빌어 얻어내는 육신적 번영이 결코 아닙니다. 아브람의 씨를 통해 오실 영원한 제바흐(희생물)이신 예슈아 마쉬아흐의 맹렬한 피 흘림을 통해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과 구속의 권능, 즉 하늘로부터 주권적으로 부어지는 온전한 뻬라캏 그 자체를 뜻합니다.

 

3) 그 땅의 모든 족속들을 향한 구속사적 엑소더스

"그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인본주의적 박애주의나 상황화 신학을 뜻하지 않습니다. 거짓된 우상숭배와 다신교적 호칭(하나님, 데오스, God 등)에서 철저히 돌이켜(슈부), 자아를 부인하는 온전한 민하(고운가루/소제)와 네세크(포도주, 독주/전제)의 제바흐(희생)를 통과하여 진리의 본명 앞으로 엎드리는 자들만이 이 거룩한 뻬라캏의 반열에 참예하게 됨을 확증하는 절대 주권적 아브람에게 약속한 언약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반열에 걸가는 자들만 누리는 복입니다. (창 12:3, 창 18:18, 창 22:18, 창 26:4, 창 28:14, 창 49:10, 마 3:8-9, 요 8:39, 갈 3:6-8, 14, 22, 26, 28-29)

 

3. 약속의 땅에 세워진 에핳의 제단과 씨(제라)의 언

 

7절 “그리고 에핳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말씀하셨습니다.“너의 씨”에게 내가 이 그 땅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에게 나타나신 분이신 에핳께 거기에 희생 단을 지었다. 8절 그리고 그가 거기로부터 벧엘의 동쪽에 있는 그 산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가 서쪽에는 벧엘이 있고 동쪽에는 그 아이가 있는 곳에 그의 장막을 쳤다. 그리고 그가 거기에 에핳께 희생단을 지었으며, 그리고 그가 에핳의 이름을 불렀다.” (창 12:7-8 직역)

 

가나안 땅에 들어선 아브람이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에핳께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가나안은 셰드를 숭배하는 가증한 우상 문화가 만연한 흑암의 땅이었습니다. 그 한복판에서 에핳의 이름을 부르며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솨탄의 통치 영역 한가운데서 엘로힘의 주권을 선포하는 영적 전투의 선전포고와 같습니다.

 

특히 본문에서 에핳께서는 아브람의 '씨(제라, זֶרַע)'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단수형의 '씨'는 궁극적으로 솨탄의 머리를 짓밟으시고 핱타앟의 저주에 갇힌 인류를 구원하실 유월절 어린양, 예슈아를 선명하게 예표합니다. 아브람이 쌓은 제단은 장차 골고다 언덕에서 단번에 드려질 예슈아의 온전한 십자가 대속을 바라보는 소망의 단이었습니다.

 

4. 인간의 연약함과 엘로힘의 주권적 보호

 

10절 “그리고 그 땅에 기근이 있었다. 그리고 왜냐하면 그 땅에 그 기근이 무거웠기 때문에, 아브람이 거기에 머물기 위해 애굽으로 내려갔다. 17절 그리고 에핳께서 아브람의 아내 사래의 일 때문에, 바로와 그의 집을 큰 재앙들로 치셨다.” (창 12:10, 17 직역)

 

믿음으로 고향을 떠난 아브람이었으나, 약속의 땅에 닥친 기근 앞에서 그는 이집트로 내려가는 육신의 판단을 내립니다. 더 나아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거짓에 타협하고 맙니다. 이는 아무리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라 할지라도, 루하의 인도하심을 놓치고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언제든 셰드의 미혹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여실히 증명합니다.

 

그러나 아브람의 치명적인 실패에도 불구하고, 엘로힘의 언약은 결코 파기되지 않습니다. 에핳께서는 친히 파라오의 집에 재앙을 내리시어 사라이를 구출하십니다. 이는 아브람의 행위가 의로웠기 때문이 아니라, 사라이의 태를 통하여 이어져야 할 거룩한 '씨', 곧 예슈아의 족보를 솨탄의 훼방으로부터 지켜내시기 위한 엘로힘의 맹렬하고도 주권적인 섭리입니다.

 

결어

 

창세기 12장은 핱타앟의 지배 아래 있는 우리를 불러내시어 생명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엘로힘의 일방적인 은혜의 기록입니다. 우리는 이집트에서의 아브람처럼 때때로 현실의 기근 앞에서 타협하고 셰드의 미혹에 흔들리는 연약한 질그릇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스스로의 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내주하시는 루하의 권능만을 전적으로 의지하여야 합니다. 솨탄의 궤계가 난무하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만능들이신 엘로힘의 빠라크/뻬라캏의 약속을 붙들고, 유월절 어린양 예슈아의 보혈에 힘입어 날마다 에핳의 이름을 부르는 제단의 삶이 온전히 회복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조길봉 목사(잘되는교회)는 세계 최초로 하나님의 본래 이름을 규명하는 연구를 진행해 온 히브리어(이브리어) 마소라 본문 음가 원어 직역 및 단어별 해설의 독보적인 전문학자다. 그는 한국의 ‘하나님’, 일본의 ‘카미사마’, 영어권의 ‘갓(God)’, 중국의 ‘상제’, 인도의 ‘빠르메슈와르’, 러시아의 ‘보그(Бог)’ 등 세계 각국에서 서로 다르게 불리는 신의 호칭을 마소라 텍스트 음가 원형 보존 및 성호·신격 호칭의 원어 회복, 성경의 최초 명칭인 ‘엘로힘(Elohim)’으로 통일하자는 대개혁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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