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7(수)
 

본문: 열왕기상 1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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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여호와를 떠났다는 뜻은 말씀을 떠났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말씀으로 나타나심이기 때문입니다(삼상3:21). 다윗과 솔로몬의 차이는 크게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다윗은 나단이나 갓과 같은 선지자와, 사독과 아비아달 같은 제사장을 가까이했지만, 솔로몬이 선지자나 제사장을 가까이하였다는 내용은 거의 보기 힘듭니다. 다윗이 선지자를 가까이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중히 여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제사장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말씀은 우리 자신의 허물을 보게 하여 어린 양의 피, 곧 보혈공로를 힘입지 않을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아마도 자신의 지혜를 너무나 믿었는지 연설도, 기도도, 축복도 선지자나 제사장을 통하지 않고 자신이 모두 다 하였습니다. 그 마음속에는 모름지기 내가 선지자나 제사장보다 나아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말씀을 받아서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두뇌를 철저히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외교를 한다며 이방 여인과 연혼정치를 하더니 마침내 그들에게 빠지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여호와를 떠난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두 번이나 나타나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대개 선지자를 통하여 회개를 독촉하셨는데 솔로몬의 경우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독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빠져나오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들과 이미 깊은 관계가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솔로몬, 비록 내가 당신의 아내가 되었어도 종교에 대해서만큼은 불간섭주의로 해요.” “솔로몬, 내가 고국을 떠나 얼마나 외로운지 몰라요. 신전 하나만 세워주세요. 그러면 그것으로 나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아요.” “솔로몬, 내가 섬기는 신을 섬기라고는 하지 않아요. 그래도 가끔씩 예배에는 동참해주셔야죠.” “솔로몬, 나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찌 그리도 나의 신에게는 절을 하지 않습니까?” 이런 식으로 점점 강도가 세지는 여인들의 말을 한 발 한 발 들어주다가 수렁에 푹 빠져들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이 정에 얽히고설키는 관계가 되면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그럴 때는 하나님께 합당하게 해결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새겨야 합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시면 그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넘겨준 후에도 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기한은 아버지가 축복하기 전까지입니다. 하지만 그는 장자의 명분을 넘겨준 일에 대하여 전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동생 야곱에게 축복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27:27-29).

 

느부갓네살왕이 한 꿈을 꿉니다. 다니엘이 그 꿈을 해석하였습니다. 장차 느부갓네살왕이 소처럼 풀을 먹고 밤이슬에 젖을 터이니, 온 천하를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믿고, 겸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4:26-27).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회개할 기간을 1년이나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았고,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그 꿈대로 되고 말았습니다(4:29).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경고를 주시고 바로 징계를 내리시는 분이 아니라 회개할 기간을 주십니다. 기회를 주실 때 빨리 붙잡아야 합니다.

 

에서나 사울왕, 느부갓네살왕은 기회를 붙잡지 않아 낭패를 당하였지만, 회개할 기회를 붙잡고 회생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간음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하여 살인까지 저질렀던 다윗왕이 대표적입니다. 나단 선지자가 책망하였을 때 중심으로 회개하였습니다(삼하12:13). 그 결과 원수의 조롱을 받았지만, 죽음은 면하게 되었고 왕의 지위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가장 악한 왕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아합왕은 엘리야가 책망하였을 때 베옷을 입고 행보도 천천히 하여 겸비한 모양을 보였습니다(왕상21:27-29). 그러자 그에게 내릴 형벌이 아들 대로 옮겨졌습니다.

 

우리에게도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아직 재림하시지 않는 이유가 아무도 멸하지 않고 회개함에 이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하였습니다(벧후3:9). 각자가 자신만 아는 죄들이 있을 것입니다. 양심을 통하여 너 그렇게 하면 안 되지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너 그렇게 빈둥빈둥하면 안 되지” “너 빨리 술에서 벗어나야지.” “, 언제까지 그 여자 가까이할 거야? 빨리 헤어져.” 등 각자에게 요구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돌아서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책망하시는 것과 같이 심판이 따라옵니다.

 

솔로몬에게 내린 심판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라를 빼앗아 신복에게 주리라는 말씀입니다(왕상11:11). 하지만 다윗과 한 약속 때문에, 솔로몬 당대에 그 일을 행하시지 않고 아들 대에서 하시겠다는 것과 한 지파를 남겨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직접 징벌도 내리셨습니다. 사방에 에돔사람 하닷과, 소바사람 르손과, 그의 신복 여로보암과 같은 대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는 멸망 받아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내릴지언정 영혼까지 멸망시키시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순전히 예수님의 공로 때문입니다. 그러니 보답하는 마음으로 지금이 회개할 기회라고 생각하고, 행동을 바로 고쳐야 합니다. 자신과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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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독연 칼럼] 강성률 목사의 ‘솔로몬에게 주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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