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일웅 목사(국독연 총회장, 웨이크신학원 석좌교수, 전 총신대학교 총장)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적 상황은 이전(80~90년대)과 비교하면 그리 희망적이지 않음이 분명하다. 이러한 분위기는 한국교회 성도 수가 증가하지 않고 감소한다는 통계에서도 확인되며, 특히 한국교회와 목회자에 대한 사회적 평가 역시 긍정보다는 부정이 앞선다는 소식에서도 드러난다. 벌써 각 신학교의 정원 미달 사태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절감할 수 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좁은 소견으로는 한국 개신교회의 분열이 초래한 사회적 불신 때문으로 여겨진다. 교회가 지나치게 경쟁하며 서로를 불신하던 모습이 고스란히 사회에 비추어져, 이제는 교회와 목회자가 복음을 전해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며 교회의 말을 신뢰하지도 않는 분위기다. 현재 문공부에 등록된 개신교 교파 수만 무려 250여 개에 달하며, 미등록 교단까지 합하면 400개가 넘는다고 전해진다. 강연자인 저의 청년기였던 지난 70년대의 폭발적인 성장 분위기와는 완연히 다른 현실을 오늘날 마주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어느 때보다 복음을 전하기 참으로 어려운 시대가 된 것이다.
사랑하는 신학생과 미래 한국교회 목회자 여러분, 부디 너무 상심하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목회적 현실이 긍정적이거나 희망적이지 않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당부한다. 이러한 목회와 신학교의 위기는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회와 희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는 언제나 준비된 자에게 새로운 기회이자 소망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위기 한가운데서도 준비된 사람을 찾고 계시며, 오직 그런 이들에게 새로운 사명의 길을 열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주님의 복음 사역에 부름받은 일꾼으로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각자의 소명과 사명을 재확인하며 장래를 신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주님께서 여러분과 언제나 동행하시며, 미래 한국교회를 짊어질 귀한 일꾼으로 굳건히 세워주실 것을 확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여러분에게 미래 한국교회 목회자로서 준비해야 할 10가지 중요한 교훈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역의 여정에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첫 번째, 목회자가 되기 전 먼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은 여기서부터 출발한다. “어떤 목회자가 될 것인가?”를 묻기 전에, “나는 진정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인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여러분은 구원의 은혜를 풍성히 경험하고 목회자가 되고자 신학교에 입학하여 신학 공부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을 넘어 그리스도의 복음 사역을 짊어질 목양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는 진정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인가?”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학업에 임해야 한다. 그럴 때 신학 공부는 더욱 진지하고 흥미로워지며, 진리의 깨달음과 사명감이 깊어질 것이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는 반드시 고난이 수반된다는 점이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일에 헌신하는 목자는 자기 욕망을 다스리고 십자가의 고난을 묵묵히 짊어져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결단을 로마서 14장 8절에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고 고백했다. 이는 “나는 내 것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의 것”이라는 철저한 고백에 이르도록 자신을 준비해야 함을 뜻한다. 바울은 그 앞 구절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 14:7)라고 선언했다. 생명의 주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힌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헌신의 태도야말로 오늘날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신앙의 본질이며, 미래 목회를 준비하는 신학생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기본자세다.
교수님들을 통해 습득하는 신학 지식은 목회적 자질을 기르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며 학점 관리에도 충실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지식조차 내려놓고 주님 앞에 엎드려 성령의 은혜를 구하는 일이다. 지식의 힘만으로는 목양을 온전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을 겸손히 내려놓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을 때 비로소 영적 사역이 가능해진다. 목양의 본질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깊은 영성에 닿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경건의 훈련은 신학 지식 못지않게 절대적이다.
따라서 신학생 시절부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형식이 아니라 은밀한 골방에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자기를 부인하는 영성 훈련을 이어가야 한다. 종교개혁자 루터가 제시한 3단계 기도 훈련, 즉 ‘오라티오-메디타티오-텐타티오(Oratio-Meditatio-Tentatio)’를 본받기를 권한다. ‘오라티오(Oratio)’는 성경 진리의 바른 이해를 위해 성령의 조명을 구하는 기도이고, ‘메디타티오(Meditatio)’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과정이며, ‘텐타티오(Tentatio)’는 묵상한 말씀에 비추어 양심을 성찰하고 거짓된 동기를 점검하며 신앙의 진실성을 시험 속에서 연단하는 과정을 뜻한다.
중세 가톨릭 수도원에서는 로욜라(I. Loyola)가 제시한 ‘오라티오-메디타티오-콘템플라티오(Oratio-Meditatio-Contemplatio)’의 구조를 따랐다. 가톨릭은 마지막 단계인 관상(Contemplatio)을 하나님과 합일하여 신비를 체험하는 기도의 절정으로 보았다. 그러나 루터는 이러한 관상이 사제들을 개인적 신비주의에 빠뜨려 정작 성도를 돌보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소홀히 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관상 대신 말씀의 거울 앞에 양심을 비추고 자기 욕망을 쳐서 복종시키는 영적 시험과 성찰의 과정인 ‘텐타티오’로 전환한 것이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기도가 아닌지 돌아보는 자기성찰이 핵심이다.
날마다 말씀의 빛 앞에서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영성 훈련을 힘쓸 때, 목회자는 성도 앞에 신실한 양심과 성숙한 인격을 드러낼 수 있다. 목회자의 영적 탈선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신학생 시절 방치했던 작은 거짓과 인정받고자 하는 미세한 욕망이 자라나 큰 실족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학 지식을 탐구하는 학문적 열정 위에 자기 부정의 영성 훈련을 부단히 병행할 때,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신실한 일꾼으로 서게 될 것이다.
두 번째, 목양은 사회적 ‘성공’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주님께 위임받은 ‘소명과 사명’을 감당하는 일이다.
한국교회 일각에는 여전히 교인 수, 예배당 크기, 재정 규모, 목회자의 유명세로 성패를 가늠하는 세속적 가치관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여러분은 이러한 성공제일주의의 굴레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성공은 세상의 잣대일 뿐 하나님의 평가 기준이 아니다. 누가복음 15장에서 주님께서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 잃어버린 드라크마 하나, 그리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의 귀환을 두고 하늘에서 얼마나 큰 기쁨이 있는지를 일깨워주셨다. 목양의 초점은 다수의 무리를 거느리는 데 있지 않고 잃어버린 한 영혼을 살리는 데 있다.
외형적인 수치나 규모에 얽매이지 않기를 바란다. 미래 목회마저 오늘날처럼 교인 쟁탈과 출혈 경쟁으로 치닫는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타락한 세상은 경쟁 논리에 지배당하지만, 교회의 존재 이유는 세상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상처입고 지친 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 11:28-29)라고 초청하지 않으셨는가?
앞으로는 모든 목회자가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가 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소형 교회, 농어촌 교회, 개척 교회, 특수 사역, 병원 및 학원 복음화, 다문화·이주민 공동체, 온라인 사역 등 다양한 형태의 목양이 요구되고 있다. 규모와 상관없이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태도가 목회자의 본령이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중심으로 무장된 일꾼을 찾으신다.
신학생 여러분이 던져야 할 질문은 “얼마나 큰 교회를 세울 것인가?”가 아니라 “주께서 맡겨주신 양 떼를 얼마나 신실하게 사랑하며 섬길 것인가?”여야 한다. 목회의 진정한 열매는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절망에 빠진 한 사람이 소망을 되찾고, 깨어진 가정이 회복되며, 한 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숙해 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열매다. 본질에 집중할 때 외형적인 성장은 자연스럽게 따르는 결과일 뿐 결코 목표가 될 수 없다. 스스로 다 돌볼 수 없다면 거대한 성을 쌓아 올릴 것이 아니라, 후배 목회자를 세워 분립 개척을 지원하거나 이웃의 작은 교회들과 성도들을 너그럽게 나누는 상생의 목회가 필요하다. 주님의 양을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양 착각하는 독점 의식을 버려야 한다.
세 번째, ‘말씀과 삶이 일치하는 신실한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설교는 목회의 중추적인 사역이다. 부단히 연구하고 훈련하여 바른 진리를 전하는 설교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설교를 유창하게 전달하는 능력과 성도를 참되게 목양하는 능력은 결코 동일하지 않다. 신학교에서 성경 해석학, 강해설교 작성법, 수사학 등을 충실히 익혀야겠지만, 미래 목회 현장에서는 성도의 아픔을 경청하는 법, 환우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법, 슬픔과 상처를 마주한 자를 위로하는 법, 가정과 세대 간 갈등을 중재하는 법, 실직과 실패로 좌절한 이의 손을 잡아주는 법, 그리고 현학적인 말 대신 함께 울어주는 법을 체득해야 한다.
강단에서는 성경의 진리를 선명하게 선포하되, 삶의 현장에서는 성도들과 깊이 소통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 바른말을 선포하는 것만큼이나 언제 입을 열고 언제 침묵해야 하는지를 분별하는 목회적 지혜가 절실하다.
네 번째, 가르치기에 앞서 먼저 경청하는 법을 배우는 목회자가 되어야 한다.
미래 목회의 핵심 역량 중 하나는 경청이다. 다음 세대는 일방적인 지시나 권위주의적 설교보다 진솔한 대화와 쌍방향적 소통, 의견을 존중받는 수평적 관계를 중시한다. 주 안에서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임을 생각할 때 수직적 지배 구조는 마땅히 존중과 환대의 수평적 관계로 전환되어야 한다.
신학생들은 청년 세대의 질문에 성급히 정답만 주입하려 해서는 안 된다. 청년들의 솔직한 회의나 의문을 불신앙이나 반항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그들의 질문 속에는 교회에서 겪은 상처, 목회자의 언행 불일치로 인한 실망, 취업과 주거 등 미래에 대한 불안, 교회의 정치적 편향에 대한 염증, 신앙적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참된 목자는 질문을 차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품어주며 그 속에서 하나님을 함께 찾아가도록 돕는 동반자여야 한다.
다섯 번째, 사역은 목사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평신도와 동역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담임목사 한 사람에게 설교, 심방, 행정, 인사, 재정, 상담 등 모든 영역이 집중되는 구조를 오랫동안 유지해 왔다. 이러한 구조는 목회자를 탈진으로 몰아가고 성도들을 피동적인 관람객으로 전락시킨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은 목회자의 역할을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정의한다. 목회자가 모든 사역을 도맡아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말씀으로 훈련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함께 세워가도록 돕는 것이 목회자의 본질적 소명이다.
한국교회는 목회자의 권한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성직자와 평신도를 이원화하고 계급화하는 과오를 범해 왔다. 이러한 체질은 철저히 개혁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영적 질서를 이끄는 공적 지도자임은 분명하지만, 루터가 베드로전서 2장 9절을 근거로 역설했듯 모든 신자는 가정과 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으로 부름받았다. 평신도들이 각자의 처소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는 주역으로 설 수 있도록 세워주어야 한다.
따라서 권한을 나누는 법, 평신도를 신뢰하고 동역자로 훈련하는 법, 교회를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법, 여성과 청년의 목소리를 존중하는 법, 갈등을 지혜롭게 중재하는 포용력을 신학생 시절부터 체득해야 한다.
여섯 번째, 신학뿐 아니라 인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함께 길러야 한다.
목회자는 인간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심리학, 상담학, 사회학, 교육학, 사회복지학 등의 지혜를 섭렵해야 한다. 성도들이 겪는 현실적 고통을 바르게 헤아리지 못하면 영적인 폭력이 될 수 있다. 예컨대 우울증 환자에게 단순히 “기도가 부족하다”고 핀잔을 주거나, 발달장애를 신앙의 결함으로 치부하거나,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무조건적인 인내와 순종만을 강요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는 영적 돌봄과 전문적 치료의 영역을 올바르게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영적 문제는 말씀과 기도로 목양하되, 정신의학적 문제는 전문의와 상담 기관으로 신속히 연계하고, 폭력 피해는 안전 확보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며, 법률·재정 문제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주선해야 한다. 전문 기관에 연계하는 것은 목양의 실패가 아니라 성도의 생명과 존엄을 지키는 책임 있는 목회적 배려다.
일곱 번째, 인공지능(AI)과 미디어 기술을 지혜롭게 활용하되 결코 전적으로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
미래 목회 현장에서 AI 기술, 온라인 미디어, 영상 플랫폼을 외면하고 사역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미 수많은 목회자가 자료 조사와 원고 정리에 AI를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은 유용한 도구일 뿐 결코 사역의 주체가 될 수 없다. AI는 성경 연구의 보조 자료나 행정 서식을 만드는 도구는 될 수 있어도 인간의 영혼을 만지거나 성령의 역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신학생 시절부터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씨름하는 말씀 묵상과 골방의 기도, 성도의 아픔을 끌어안는 목회적 현존, 공동체의 상처를 짊어지는 책임감이 선행되어야 한다. AI가 정형화된 설교문을 작성해 줄 수는 있어도, 목회자 자신의 영혼이 깨어지고 성령의 감화로 잉태된 생명의 메시지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기술의 활용에는 능통하되, 목회의 본질은 오직 말씀과 기도, 성령의 임재에 있음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
여덟 번째, 재정 집행과 이성 관계, 권한 사용에 있어 투명성과 책임성을 갖추어야 한다.
미래의 성도들은 목사라는 직분 자체만으로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가 20%를 밑도는 참담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목회자는 직권에 기대기보다 투명한 삶과 성숙한 인격으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목회 윤리는 선택이 아니라 생명이다. 특히 재정과 이성, 권력의 유혹 앞에 철저한 자기 통제가 요구된다. 교회 재정 운영에 목회자 개인이 직접 관여하는 구조는 단호히 지양해야 한다. 사도행전 6장에서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구제와 재정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때, 사도들이 재정 관리를 전적으로 7명의 집사에게 위임하고 자신들은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니라”(행 6:4)고 선언했다. 이 원리가 오늘날에도 회복되어야 한다. 목회자가 물질의 시험에서 자유로울 때 비로소 목회적 거룩성을 지킬 수 있다.
또한 지위를 이용해 성도들의 건전한 문제 제기를 억압하거나 맹종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교회법과 실정법을 철저히 준수하고, 잘못이 있을 때는 솔직하게 인정하고 책임지는 겸손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마가복음 10장 43~45절의 교훈처럼,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섬김의 본을 보이신 주님의 길을 따라야 한다.
아홉 번째, 정파적 이념에 편향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공의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한국 사회는 극심한 이념 대립과 남남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헌법 제20조가 명시한 정교분리의 원칙은 교회가 정치 권력과 야합하지 않고 복음의 독립성을 지키기 위해 매우 중요한 가치다.
목회자는 특정 정당이나 이념의 대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궁극적 지향점은 지상의 유토피아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와 그 나라의 의에 있기 때문이다. 특정 정당에 대한 무조건적 지지를 강요하거나 적대적 언어로 강단을 채우는 행태는 복음의 문을 가로막을 뿐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복음의 렌즈로 시대를 분별하도록 도와야 한다. 국가의 정책이 생명을 존중하는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지,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와 평화를 세우는지 복음적 가치관에 입각해 성찰하도록 가르치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중보하는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열 번째, 목회자 자신을 돌보는 균형 잡힌 자기 관리가 필수적이다.
신학생들은 종종 목회자를 지치지 않는 영적 초인으로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목회자 역시 외로움과 탈진, 깊은 회의를 마주하는 연약한 인간이다. 따라서 신학생 시절부터 정기적인 쉼과 영적 리듬을 지키는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말씀 묵상과 독서 생활을 균형 있게 유지하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신앙의 동역자와 멘토를 곁에 두어야 하며, 한계에 부딪힐 때는 전문가의 상담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가정과 사역의 균형을 지키며 배우자와 자녀를 사역의 도구로 희생시키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 과도한 채무를 피하는 건전한 재정 관리와 자기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온전히 돌보지 못하는 목회자는 성도를 건강하게 목양할 수 없다. 자신을 돌보는 것은 결코 이기적인 일이 아니며, 오랜 사역을 감당하기 위한 필수적인 청지기적 책임이다.
사랑하는 신학생과 미래 목회자 여러분,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17장 10절의 말씀을 권면으로 전하고자 한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주님의 일꾼은 모든 사역을 마친 뒤에도 자신의 공로나 대가를 내세우지 않고, 주님의 은혜 앞에 겸손히 서야 한다. 장차 여러분이 한국교회와 강단에서 크게 쓰임받을지라도, 끝까지 “우리는 무익한 종이며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진솔한 고백을 삶으로 실천하는 목자가 되기를 바란다.
사역의 수고에 대한 진정한 보상은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장차 주님께서 주실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다(마 25:14-30). 물질 만능주의가 팽배한 현실 앞에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가 엄습할 때마다 마태복음 6장의 약속을 붙들기 바란다. 공중의 새를 먹이시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일꾼들을 결코 굶주리게 버려두지 않으실 것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한국교회가 사회적 신뢰를 잃고 위기에 처한 근본적인 원인은, 이 약속을 믿지 못하고 세속적 물질주의와 사리사욕에 굴복했기 때문인지 모른다.
사랑하는 학도 여러분, “나는 무익한 종으로서 마땅히 행할 바를 다했을 뿐”이라는 겸손한 소명의식을 끝까지 붙들기를 바란다. 어떠한 시련과 유혹 앞에서도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여러분을 통해 한국교회가 다시금 회복과 부흥의 길로 나아가게 될 것을 굳게 믿는다. 참된 제자로 온전히 준비되어 미래 한국교회를 밝히는 신실한 목회자들이 다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한다.
전체댓글 0
NEWS TOP 5
실시간뉴스
종합기사
more +-
국회의사당 앞 울려 퍼진 애국 시민 1,000여 명의 핏빛 각성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관 앞 계단이 진실과 정의에 목마른 국민들의 뜨거운 결기와 울분으로 가... -
“우리가 피땀 흘려 지은 교회인데…” 벼랑 끝에 선 서천읍교회 성도들의 절규
충남 서천의 영적 파수꾼 역할을 감당해 온 서천읍교회가 예배당 건물 전체... -
“십자가 없는 평화, 복음 없는 연합은 가짜다!”
세계 교회에 먹구름처럼 드리워진 신학적 혼란과 종교다원주의의 파고... -
예장 보수합동 “바른 교회·바른 생활·바른 성경으로 한국교회 개혁 앞장설 것”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보수합동측이 지난 9월 9일, 서울 상암동 총회...
문화
more +-
소한재 작가 첫 책 『사람-마음이 가는 곳』 출간
가을의 길목에서 사람과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한 권의 책이 출간됐다. 소한재 작가의 첫 책 ... -
폐결핵 시한부 청년에서 세계적 목회자로… ‘청년 조용기’ 9월 11일 개봉
고(故) 조용기 목사의 청년 시절과 신앙의 뿌리를 조명한 휴먼 다큐멘터리 영화 ‘청년 조용기’... -
“왜 여러 번 복음을 들어도 구원받지 못할까?”… 『가스펠21』 출간
디지털 미디어와 과학적 사고가 일상화되고 절대적 진리에 대한 인식마저 약화된 시대에, 변하지 않... -
『태백성시화운동 10주년 사역행전』 출간… 교회연합·민관협력 10년 발자취 담아
태백성시화운동본부(대표회장 정종옥 목사, 본부장 오대석 목사)가 지난 10년간의 사역을 집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