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호 목사(한국에흐예언약학회 회장)
성경의 역사를 따라 읽다 보면 한 가지 흐름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난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계속해서 한 약속을 이어 오셨다는 사실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이후 “여자의 후손”을 말씀하셨다. 그 약속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통해 이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의 방향이었다. 인간의 역사는 수많은 사건과 인물들로 가득하지만, 성경은 그 속에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흐름을 계속 보여 준다.
그 흐름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속에서도 나타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약속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한 민족만을 위한 약속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뜻이 담긴 말씀이었다.
모세 시대에는 율법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 그러나 율법은 인간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지는 못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동시에 반복되는 실패의 역사이기도 했다.
다윗 왕에게는 또 다른 약속이 주어졌다. 하나님은 그의 왕위가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약속은 단순한 왕권의 유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왕이 나타날 것에 대한 예표였다.
이처럼 성경의 여러 사건들은 서로 흩어진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방향을 향해 흐르고 있다. 그 방향은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뜻이 역사 속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바로 십자가이다.
많은 사람에게 십자가는 고난과 죽음의 상징으로 보인다. 실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실패와 패배처럼 보이는 사건이었다. 당시 사람들에게 십자가형은 가장 수치스럽고 잔인한 처형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 사건을 단순한 비극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오히려 십자가는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준비하신 구원의 계획이 역사 속에서 이루어진 자리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 가시면서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하셨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의미였다.
신약성경의 사도들도 같은 사실을 강조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미리 아신 뜻과 계획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악한 선택이 그 사건에 참여했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 있었다는 뜻이다.
십자가가 특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십자가는 인간이 만든 구원의 길이 아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여신 구원의 길이다.
인간은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고, 인간의 노력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완전히 회복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오셔서 그 문제를 직접 담당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단순히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행하신 사랑의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한다. 이 말씀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심판만을 보여 주는 사건이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는 뜻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외면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을 버리지도 않으셨다.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면서도 인간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보여 주신 가장 깊은 사랑의 자리라고 할 수 있다.
이 사건을 통해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가 어디를 향해 흐르고 있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약속,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 다윗에게 주어진 왕권의 약속, 그리고 선지자들이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은 결국 하나의 사건을 향해 모여 있었다.
그 사건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십자가는 단지 과거의 역사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어떻게 행동하시는지를 보여 주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하나님은 멀리서 인간을 바라보시는 분이 아니라, 인간의 역사 속에 들어와 직접 구원의 길을 여시는 분이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십자가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중심 사건이 된다.
창세기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약속은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십자가 사건 이후 하나님은 새로운 약속을 말씀하신다.
바로 새 언약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