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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호 칼럼] 26. 말씀 — 돌판에서 마음판으로

  • 교회연합신문 기자
  • 입력 2026.10.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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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호 목사(한국에흐예언약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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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언약의 핵심은 하나님의 법이 사람의 마음에 기록되는 데 있다. 예레미야는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3)라고 예언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질문이 남는다. 하나님은 무엇으로 그 법을 마음에 새기시는가. 성경의 대답은 분명하다. 말씀이다.

 

교회만큼 말씀이 많은 곳도 드물다. 주일마다 설교가 있고, 성경공부와 묵상 모임이 있으며, 성경을 몇 번 통독했는지를 자랑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씀을 많이 듣는 것과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돌판에 새겨진 율법을 받았고, 그 돌판을 언약궤에 넣어 가장 거룩한 곳에 모셨다. 그러나 말씀은 궤 안에 있었을 뿐 그들의 마음 안에는 없었다. 말씀을 소유하는 것과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바울은 새 언약의 사람들을 이렇게 불렀다.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돌판에서 마음판으로, 이것이 새 언약이 가져온 변화다. 그리고 이 변화는 말씀이 마음을 뚫고 들어올 때 일어난다.

 

히브리서는 말씀을 이렇게 묘사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말씀은 위로하기 전에 먼저 벤다. 마음의 할례라는 말이 가리키는 바로 그 일이다. 오순절에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 하고 물었다(행 2:37).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첫 자리는 감동이 아니라 찔림이다.

 

구약에는 같은 말씀 앞에서 정반대로 반응한 두 왕이 있다. 유다 왕 여호야김 앞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이 담긴 두루마리가 낭독되었다. 성경은 그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면도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렘 36:23). 그리고 덧붙인다. 왕과 신하들은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옷을 찢지도 않았다(렘 36:24). 말씀이 왕의 마음을 베어야 했는데, 왕이 칼을 들어 말씀을 벤 것이다.

 

그보다 앞선 시대의 요시야 왕은 달랐다. 성전을 수리하다 발견된 율법책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는 옷을 찢고 통곡했다. 하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 말을 듣고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내 앞에서 겸비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왕하 22:19).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한 사람은 말씀을 베었고, 다른 한 사람은 말씀에 베였다. 두 왕의 차이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이었다.

 

오늘 우리에게도 여호야김의 칼이 있다. 우리는 두루마리를 불에 던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불편한 구절은 조용히 건너뛰고, 마음에 드는 구절만 오려 붙들며, 말씀을 읽으면서 늘 다른 사람의 모습만 본다. 그렇다면 말씀은 아직 나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남을 들여다보는 돋보기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자기중심의 마음은 말씀조차 자기를 지키는 도구로 사용한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신앙의 정체가 여기에 있다.

 

야고보는 이것을 정확히 짚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 듣기만 하는 신앙은 남을 속이기 전에 자기 자신을 속인다. 말씀을 많이 안다는 사실이, 말씀이 나를 바꾸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려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씀 앞에 선 사람이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읽었는가"가 아니라 "말씀이 나를 찌른 적이 있는가"이다. 성경을 읽다가 불편해지는 구절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멈추어야 할 자리다. 그 구절을 빨리 지나가고 싶은 마음, 다른 해석을 찾아 안심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이 바로 말씀이 베어야 할 자리일 수 있다.

 

그러나 말씀의 칼은 사람을 죽이기 위한 칼이 아니다. 찔려 쪼개진 마음 위에 하나님은 새 법을 새기신다. 시편 기자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말씀이 먼저 그의 마음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마음을 비추지 못한 말씀은 길도 비추지 못한다.

 

성령은 이 일을 이루시는 분이다.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성령이 오늘 그 말씀으로 마음을 찌르시고, 찔린 자리에 하나님의 뜻을 새기신다. 그래서 새 언약의 사람에게 말씀은 공부의 대상이기 이전에 날마다 받는 수술이다. 그 수술이 계속될 때 마음은 다시 굳어지지 않고 부드러운 상태로 하나님 앞에 머문다. 말씀이 돌판에 머물러 있는가, 마음판에 새겨지고 있는가. 오늘 우리의 신앙은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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