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호 목사(한국에흐예언약학회 회장)
예수님은 두 아들의 비유를 들려주셨다(마 21:28-31).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하자 그는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고 대답했지만 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물으셨다.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 비유는 오늘의 교회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라고 대답하는 데 익숙하다. 찬양으로, 고백으로, 결단의 순간마다 "주님 뜻대로 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입술의 "예"가 곧 순종은 아니다. 순종은 대답이 아니라 포도원으로 가는 발걸음이다.
순종은 마음에 새겨진 말씀이 삶에 처음 드러나는 자리다. 그래서 순종은 신앙의 장식이 아니라 신앙의 증거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그런데 성경에는 또 하나의 가짜 순종이 있다. 몸은 갔지만 마음은 가지 않은 순종이다. 요나는 처음에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다시스로 도망쳤다. 물고기 배 속에서 돌이킨 뒤 결국 니느웨로 가서 말씀을 전했다. 겉으로 보면 순종이었다. 그런데 니느웨가 회개하고 하나님이 재앙을 거두시자 요나는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욘 4:1) 하나님께 불평했다. 그는 명령대로 행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자기 판단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물으셨다.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욘 4:4).
그러니 순종을 흉내 내는 방식은 두 가지다. 말로만 "예" 하고 가지 않는 순종이 있고, 몸은 가지만 마음은 끝까지 버티는 순종이 있다. 둘 다 뿌리는 같다. 마음의 왕좌에서 내려오지 않은 자기 자신이다.
정직하게 인정해야 할 사실이 있다. 사람은 스스로 순종할 수 없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3)라고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그 대답은 모세가 산에 머문 사십 일을 넘기지 못하고 금송아지 앞에서 무너졌다. 결심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은 채 한 결심이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의 마음은 순종조차 골라서 한다. 쉬운 것은 따르고, 손해가 되는 것은 미룬다. 그것은 순종이 아니라 선택적 동의일 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약속하시며 순종의 근원 자체를 바꾸겠다고 하셨다.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7). 새 언약의 순종은 인간이 힘을 짜내어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마음 안에 두신 영이 사람을 움직여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바울도 같은 고백을 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아브라함의 순종이 그 깊이를 보여 준다. 하나님은 그에게 백 세에 얻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이었고, 하나님의 약속 그 자체였다. 아브라함은 새벽에 일어나 길을 떠났다. 모리아 산에서 하나님은 그를 멈추게 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순종의 참된 자리는 쉬운 명령 앞이 아니라, 내가 가장 붙들고 있는 것을 내어 드려야 하는 자리다. 자기중심의 신앙은 하나님을 이용해 나의 이삭을 지키려 한다. 그러나 순종의 신앙은 이삭보다 하나님을 더 붙든다.
이 순종의 완전한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은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십자가는 순종이 어디까지 가는지를 보여 준다. 동시에 십자가는 우리의 불순종을 심판하고, 그 앞에 선 사람의 마음을 베어 새로운 순종을 시작하게 하는 자리다. 그리스도의 순종이 먼저 있고, 그 순종이 내 마음에 새겨질 때 나의 순종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의 순종은 억지로 끌려가는 모습이 아니다. 그는 여전히 넘어지고 망설이지만, 결국 포도원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맏아들처럼 "싫소이다"라고 말했던 자리에서도 뉘우치고 돌아선다. 순종의 증거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는 완벽함이 아니라, 거절한 자리에서 다시 돌아서는 마음이다.
반대로 말로는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지만 한 번도 포도원에 가지 않은 신앙이 있다. 성경은 그것을 순종이라 부르지 않는다. 오늘 우리의 "예"는 입술의 "예"인가, 발걸음의 "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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