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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회 논평] 북한의 소행, 정전협정 위반 표현이 그리도 어려운가?

  • 교회연합신문 기자
  • 입력 2026.10.04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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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대표 임다윗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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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보면 경제•문화의 화려한 발달이 있었으나, 안보의 실패로 무너진 나라나 제국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오스만 제국은 수 세기 동안(13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지중해, 중동, 동유럽을 주름잡았다. 이 제국은 고도로 발달한 이슬람 문화와 유서 깊은 상업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그러나 내부의 갈등과 열강들의 각축전 속에서 외교적 고립, 안보 파탄, 국방력 약화로 대제국은 해체되고 말았다.

 

동남아시아의 베트남도 마찬가지이다. 풍부한 농업생산과 미국의 막대한 경제 원조로 인하여 상업의 발달과 서구 문화가 꽃피던 나라였다. 오죽하면 수도인 사이공을 ‘동양의 파리’로 불렀겠는가? 그러나 북베트남 및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밀려서, 즉 안보의 실패로 1975년 국가의 소멸을 가져왔다.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문화가 찬란하고 역사가 깊어도 그 나라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안보에 대하여 명확하고 냉정하지 못하면, 그 나라의 명운(命運)은 가늠하기 어렵게 된다. 우리는 지금 세계 10대 경제 대국이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안위를 결정할 안보 의식은 어떤가?

 

지난 9월 21일 서부전선에서는 북한군이 넘어와 매설한 지뢰가 폭발하여 수명의 장교와 부사관이 부상 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것을 북한의 소행으로 보고, ‘정전협정 위반이며, 책임이 북한에 있으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발언이 나오기까지는, 무려 9일이나 걸렸다.

 

북한은 이미 지난 2024년 우리 한국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고, 국경선 요새화와 함께 휴전선에 지뢰 매설을 해 왔다. 그렇다면 우리 군은 무엇을 하고, 정부는 어떤 대응을 해 왔는가?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21일, 장병들의 치료에 대한 것만 언급하고 해외로 나갔다. 그리고 돌아와서 29일 국무회의에서와 30일 부상 당한 장병들을 찾아간 자리에서도 북한이나 그 책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10월 1일 국군의날 행사에서도 끝내 북한의 책임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이 문제가 불거진 이후에 국방부장관 후보자도 국회 청문회에서 북한을 ‘주적’이라고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적’이라고 하였다. 정부가 주적 개념이 없는데, 군인들에게 사기와 전의(戰意)가 생기겠는가?

 

그런가 하면 여당의 대표는 북한을 규탄한다고 하면서도 전 정권의 책임론을 거론하였다. 또 여당 소속의 국방위원장은 북한의 지뢰가 상해용이 아니라, 방어용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통령은 부상 장병들을 이용해 선동하고 음모론을 펼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그러니 북한은 마음 놓고 ‘도발의 장본인들은 자작 광대극의 대가를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도리어 우리나라에 책임과 협박을 일삼고 있다. 북한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저들이 볼 때, 우리를 만만한 상대로 보고 있지 않은가?

 

진보 정권은 북한 앞에만 서면 왜 오그라드는가? 2020년 9월 22일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이 북한에 의하여 살해되고 불에 태워졌을 때,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보고를 받고서도 아무 조치를 않고 있다가 그 다음 날에 가서야 ‘사실 파악이 우선’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지금 안보 불감증 정도가 아니라, 안보 불능증에 빠진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 저들은 우리 영토를 몰래 침범하여 살상 무기를 묻고, 그것으로 우리 국민이며, 아들인 군인들이 다쳤다. 그런데도 평화 운운하며, 근본적인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잠꼬대 같은 소리를, 국민들은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가?

 

이런 상황에서 이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육사를 해체하고, 미국과의 연합과 협력 저하로 군의 사기를 한껏 떨어트리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있다. 군(軍)은 국민과 국가가 지지하고 인정하는 가운데 사기(士氣)가 올라간다. 그러므로 군이 확고한 안보와 국방에 책임을 다하도록 정부가 강군(强軍)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참 군인’은 정치적, 정략적 판단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의 안보에 있어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강한 신조(信條)가 있어야 한다. 뿐만이 아니라 적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침범하고 도발하는 자들에게는 가슴이 서늘할 정도로, 단번에 제압할 정도의 용맹성과 결단과 전략이 있어야 한다. 군은 정치 용어를 쓰지 말고, 군사 용어를 사용하기 바란다.

 

평화를 운운하는 사람들은 ‘싸우지 않고 이겨야 한다’ ‘비싼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 ‘우리 힘으로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적보다 출중한 전력(戰力)과 압도적인 국력과 외교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런 힘이 없이는 ‘평화 노래’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정부와 정치권에 요구한다. 군을 정치화하지 말아라. 국가의 안보와 안위를 책임진 군을 정치의 하수인으로 만들지 말아라. 역사는 국가의 안보를 등한히 했을 때 멸망했음을 증명하고 있다. 안보와 국방을 정치에 예속시켜 약화시키면 이것은 모두가 함께 죽는, 가장 나쁜 경우의 수가 됨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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