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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나님과 만나는 과정(출 29:25-45)
    출애굽기 29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취임하기 위해서 밟아야 하는 몇 가지 절차를 소개하고 있다. 여기서 대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며(히 8:1) 제사장의 4명의 아들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형이다. 예수님께서 공생애에 들어가실 때부터 승천하실 때 까지는 율법에 의한 대제사장이 존재 했었지만 부활하신 이후부터는 예수님께서 친히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으므로 이제 율법에 의한 제사장은 필요없게 되었다(히 7:22). 비록 대제사장의 실체는 예수 그리스도 이셨으나 예수님은 율법과는 상관없는 멜기세덱의 계열을 따른 은혜의 제사장이셨다. 구약의 제사장은 죽음으로 인하여 영원히 살지 못하므로 죄의 변호가 영원하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계시기 때문에 그 속죄의 완성이 불변함과 동시 우리들의 구원도 영원히 안전한 것이다. 또한 복음으로 부름 받아 영적인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엡 4:1-2).아론과 그 아들들은 성전에서 일하기전에 먼저 성막 앞에서 목욕을 하였는데 이 의식은 제사장으로 임명 받을 때 오직 한번만 행해 졌으나 손발을 씻는 의식은 물두멍에서 항상 하도록 하였다(출 30:17-21). 유월절 만찬을 마치신 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는 과정에서 베드로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나누셨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몸이 깨끗하니라”(요 13:10).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목욕은 단번에 이루어지는 구원을 의미하고 ‘발을 씻는 의식’은 구원받은 이후에 계속 말씀으로 거룩해지는 상황을 나타내는 것이다.“물로 말씀으로 깨끗게 하사 거하게 하시고”(엡 5:26), “너희는 내가 일러 주는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안에 거하라”(요 15:3-4) 위의 말씀대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말씀으로 죄를 씻은 것이다. 죄를 씻을 수 있는 능력은 오직 말씀으로 가능하다.이 절차 속에 배어있는 성결과 거룩함은 쾌락과 음란과 사치가 황행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 커다란 영적 교훈을 주고 있다.율법에 따른 제사장들은 먼저 깨끗하게 함을 받아야 한다. 백성들을 거룩하게 하기 전에 제사장 먼저 거룩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도 거룩한 생활을 요구 하신다.몸을 깨끗이 씻은 제사장에게 이제 옷을 입힌다. 보석이 달린 흉패를 달고 에포에 띠를 띄우고 머리에 관을 씌우고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글이 쓰인 성패를 달아준다. 제사장의 의복을 입은 아론과 그 이들들은 이제 근사한 모습으로 변해 있다.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중대한 직책을 맡기는 취임식이니 만큼 경건함과 거룩함이 짙게 깔려 있음은 당연하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당신을 찾아오는 자를 양자로 삼으시고 이처럼 화려하고 성대한 잔치를 베풀어 주신다.제사장의 옷을 입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제 기름부음이 행하여진다. 이 기름부음은 특별히 성별되었음을 의미한다.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교인을 성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도 거룩을 요구 하신다. 특별히 지금은 말세 지 말이 되어 음란하고 타락한 죄악으로 부패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더욱 거룩한 생활을 요구된다(벧후3:10). “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엡 5:26)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내안에 거하라”(요 15:3) 저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그 다음은 기름 부음을 받는 순서로 기름 부음은 오늘날의 성령 충만을 의미한다. 성령 충만을 받아야만 세속에 물들지 않고 거룩함을 유지하며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람기름에다 온갖 향료를 가입하여 제작된 특수 제품인 관유 기름이 제사장에게 부어지자 기름이 수염에 흘러 적시고(시 133:2), 마침내 온 몸에 흘러 내린다. 기계에 기름을 치면 기계는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같이 사람이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하나님의 일을 순조롭게 잘하게 된다.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이런 의식을 통과한 후에 수송아지를 잡아 그 머리에 안수한다.이것은 아론의 죄를 송아지에게 전가 시키는 행위이다. 이제 아론의 죄를 전가 받은 송아지는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이로써 아론의 죄는 해결 되었다. 오늘 우리성도들의 죄도 그리스도께 전가 되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희생을 당하신 것이다.
    • 칼럼
    • 출애굽의 은총
    2019-10-17
  • 성막 양장 숨겨진 비밀(출 26:1-14)
    성막에 관한 말씀은 출애굽기 26장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왜 읽기도 지루한 성막에 대해 이렇게 세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성막에 갚은 영적인 교훈이 숨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담긴 교훈을 바로 알고 읽어 간다면 보다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 할 수 있다.성막은 여러 겹의 막으로 덮는 천으로 되었는데 그 막을 양장이라 불렀다. 이 양장은 성소를 보존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그 양장은 네 부분으로 나누인다. 첫 번째 양장은 가는 베실로 짠 고운 막으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수놓아 만들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하는 것이다. 성막이란 말은 ‘거주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의 예표이다. 하나님의 거처인 만큼 성막은 특별히 성소 안쪽에서 보이는 그 덮개는 매우화려 하다. 그 재료인 가는 베실은 애굽 산 아마 껍질에서 뽑은 고급실로서 매끄럽고 아름다운 흰색을 띠고 있다. 그러면 이 화려한 양장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설명이다. 아름답게 수놓은 흰색인 가는 베실은 그리스도의 성결하심을 청색은 천국의 주이심을 자색은 위엄과 존귀의 주이심을 홍색은 권능과 능력의 주이심을 각각 의미 한다. 두 번째 양장은 첫 번째 양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첫 번째 보다 조금 크게 만들었는데 그 재료 는 염소 털로서 희생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하신 인격과 삶을 상징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신 어린 양 (요1:29). 세 번째 양장은 붉게 물들인 양의 가죽으로 만든 양장으로서 피 흘려 죽으실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양장인 거무스름한 해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는 외부의 환경과 풍파에 아랑곳없이 강인하고 견고하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상징한다. 이렇듯 겉의 투박함과 속이 화려함을 지닌 성막은 예수님의 거칠고 보잘 것 없는 그 분의 외모와 아무도 범접 할 수 없는 그 분의 내적 영광을 동시에 상징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흠모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분이시지만(사 53:2) 그 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모든 신성과 역동하는 생명력을 지니고 계신다(요 1:14 골 2: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 안에 거하게 되면 우리는 찬란한 그 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예수 안에만 영원한 구원과 행복이 있음을 알자. 또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는 내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듯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경험하며 교제해야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됨을 기억 하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많아지면 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 질 것이다. 양장의 내면과 외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밝게 드러난다. 네게의 막중에서 제일 안쪽에 덮여있는 막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이 막을 중심으로 해서 바깥으로 나아가면 갈수록 거칠고 질기며 화려하도 않은 염소 털과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막이 덮여져 있다. 이 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인한 핍박이 수반된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친구들과의 인연을 끊는 아픔도 격어야 하고 세상 풍습과 단절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다가오는 조롱과 멸시와 고통 그리고 여러 환란을 격어야 하지만 그런 고통들을 인내 하고 나가면 반드시 승리의 영광을 주시는데 우리에게는 눈부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축복이 주어지며 우리가 끊었던 모든 그것들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인침과 함께 오히려 또 다른 저주와 멸망에서 구원하는 보호막이 된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 살다가 고통당하는 성도가 있는가? 주님을 바라보실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쓸 것을 주님께 드려 복음의 성막을 건축할 때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체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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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애굽의 은총
    2019-09-06
  • 언약궤의 의미와 떡 상이 주는 교훈(출 25:23-30)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 생활 40년은 성막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었다. 어느 곳에서든 행진이 멈출 때는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고 다시 행진할 때는 역시 성막이 이동하면서 12지파가 무리를 지어 움직였다. 그 성막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었고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였다. 그 성막의 문은 동쪽으로 나있는데 그 동쪽으로 들어가면 먼저 번제단이 나오고 이어서 물두멍이놓여 있으며 물두멍을 지나 성소가 있고 성소를 지나 지성소가 나오는데 바로 그 지성소에 언약궤가 안치되어 있다. 그런데 성소에는 오른편에는 떡 상이 있고 금 촛대가 있다.그리고 맞은 편에는 향단이 있는데 이들 세 가지 떡 상과 금 촛대와 분향 단은 우리 성도들이 반드시 지녀야 할 신앙생활의 세 가지 요소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법궤에 대해 좀 더 알아보자. 법궤는 언제든지 이동할 수 있도록 되었다.왜냐하면 세상은 결코 하나님의 영원한집이 아니며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서 나그네임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이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궤를 메고 올라가려고 하면 먼저 몸을 성결케 하고 모세가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명한대로 레위자손이 채로 하나님의 궤를 어깨에 메니라(역대상 15:2). 그런데 다윗에 의해 언약궤를 메던 중 어깨에 메야 할 법궤를 손에 잡아 옮기려다가 웃사가 즉사하는 일도 있었다(삼하 6:6-7). 그 후로 다윗은 법궤를 어깨에 메게 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피할 수 있었고 드디어 찬송과 영광을 돌린 일이 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 육신의 편리함을 도모하다가 받는 징계의 그림자이다.광야의 법궤는 가나안 땅에 솔로몬의 성전이 건축되고 그 안에 안치될 때까지 이스라엘과 함께 했다. 마찬가지로 오늘의 교회는 광야교회(행 7:38)이다.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 어디에도 안주 할 곳은 없다. 이 세상은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것(고후 4:16-18)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도성인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할 것이다.법궤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동한 것처럼 성도들이 저 하늘나라에 안주하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들과 함께 하시며 보호하심을 확신하자.이제 “나의 갈길 다 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 내 주 안에 있는 긍휼 어찌 의심하리요” 라는 찬송을 우리는 자신 있게 부를 수 있게 되었다생명의 떡 상12개의 떡은 12지파를 의미하며 이것은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게 허락하신 약속을 그대로 보여주신 것이다.그런데 이 약속은 오늘날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에게도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이 두 약속은 동일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초림 예수에 대한 약속이며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은 온 인류를 심판하실 재림 예수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이다.“너희 가운데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행 1:11)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약속을 의지하고 그의 재림을 기대해야 한다. 그 분은 자신의 약속대로 기필코 다시 오실 것이며 현재도 성도들의 마음속에 살아 역사 하신다.떡의 용도상 위에는 두 줄로 6개씩 12개의 떡이 놓여있다. 이 떡은 아래 위를 잘 구운 떡이어야 한다. 호세아서 7장 8절 에서는 뒤집지 않은 떡이란 말이 나온다. 그릇된 신앙의 길로 들어선 백성들을 나무라는 말씀이다. 겉은 바짝 구워진 성도의 모습인데 뒤집어 보면 옛 생활 그대로이고 옛 풍습과 삶은 그대로 구워지지 않은 이중적인 성도를 의미하는 것이다.상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말씀하는데 시편 23편 5절에는 ‘주께서 내게 상을 베푸시며’ 하신 말씀과 사무엘상 9장 12절에는 므비보셋 (요나단의 아들)와 다윗은 ‘왕자 중 한 사람’처럼 왕의 상에서 함께 먹으니 라고 하였다. 상은 교제와 나눔을 의미 한다.서로가 마주 앉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상이다. 이스라엘 제사장들을 대신하여 이 성소의 상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사랑을 나누었다. 여기 떡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킨다.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영원하시니라(히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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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8-22
  • 성막 양장에 숨겨진 그리스도의 신비 (출 26:1~14)
    성막에 관한 말씀은 본장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왜 읽기도 지루하게 성막에 대해 이렇게 세세히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성막에 갚은 영적인 교훈이 숨겨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담긴 교훈을 바로 알고 읽어 간다면 보다 흥미로운 내용을 발견 할 수 있을 것이다.성막은 여러 겹의 천으로 되었는데 그 막을 양장이라 부른다. 이 양장은 성소를 보존하며 하나님의 영광이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양장은 네 부분으로 나뉘어있다.첫 번째 양장은 가는 베실로 짠 고운 막으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그룹을 수놓아 만들었다. 이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 하는 것이다. 성막이란 말은 ‘거주하다’ 는 으미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거하실 거처인 만큼 성막은 특별히 성소 안쪽에서 보이는 그 덮개는 매우 화려하였다. 그 재료인 가는 베실은 애굽 산 아마 껍질에서 뽑은 고급실로서 매끄럽고 아름다운 흰색을 띠고 있다. 그러면 이 화려한 양장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신지에 대한 설명이다. 아름답게 수놓은 흰색인 가는 베실은 그리스도의 성결하심을 나타내고 청색은 천국의 주 이심을 자색은 위엄과 존귀의 주님을 홍색은 권능과 능력의 주이심을 각각 의미 한다.두 번째 양장은 첫 번째 양장을 보호하기 위하여 첫 번째보다 조금 크게 만들었는데 그 재료는 염소 털로서 희생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순결하신 인격과 삶을 상징한다. 그는 실로 우리의 죄를 담당 하신 어린양이었다 (요1:29)세 번째 양장은 붉게 물들인 양의 가죽으로 만든 양장으로 피 흘려 죽으실 예수님의 속죄 사역을 상징하는 것이다. 마지막 네 번째 양장인 거무스름한 해의 가죽으로 만든 덮개는 외부의 환경과 풍파에 아랑곳없이 강인하고 견고하게 오직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의 역동적인 삶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이렇듯 겉의 투박함과 속이 화려함을 지닌 성막은 예수님의 거칠고 보잘 것 없는 그분의 외모와 아무도 범접 할 수 없는 그 분의 내적 영광을 동시에 상징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흠모할 만한 것이 전혀 없는 분이시지만 (이사야 53:2) 그 분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고 모든 신성과 역동하는 생명력을 지니고 계신다. (요1:14 골2:9)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그 안에 거하게 되면 우리는 찬란한 그 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예수 안에만 영원한 구원과 행복이 있다. 또한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는 내부의 아름다움을 볼 수 없듯이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경험하며 교제해야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게 됨을 의미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욱 많아지면 질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 질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성막 양장을 통해 주시는 교훈이다.이와 같이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 갈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밝게 드러나게 된다. 네게의 막중에서 제일 안쪽에 덮여있는 막은 가장 화려하고 아름답다. 이 막을 중심으로 해서 바깥으로 나가면 나갈수록 거칠고 질기며 화려하지도 않은 염소 털과 수양의 가죽으로 만든 막이 덮여져 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인한 핍박이 수반된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세상 친구들과의 인연을 끊는 아픔도 격어야 하고 세상 풍습과 단절하는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해 오는 조롱과 멸시와 고통 그리고 여러 환란을 격어야 하지만 그런 고통 들을 인내하고 나가면 반드시 승리의 영광을 주시는데 우리에게는 눈부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축복이 주어지며 우리가 끊었던 모든 그것들이 그리스도인 이라는 인침과 함께 오히려 또 다른 저주와 멸망에서 구원하는 보호막이 된다.그러므로 진리 안에 살다가 고통당하는 성도가 있는가? 주님을 바라보자 하신다.그리스도의 일생은 고난의 일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님은 고난을 받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하나님의 독생자가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그 자체부터 고통이요 희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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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애굽의 은총
    2019-08-01
  • 성막 제조 명령(출 25:10-2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막 건축을 명령하시며 하나님이 명령하신대로 하라고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이 성막 건축의 명령 속에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숨겨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성막은 곧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영광 돌리기 위함이다.성경이 강조하는 것이 무엇인가? 모든 것이 하나님이 기준이다. 인간의 모든 종교는 자기가 기준이다. 그래서 믿는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자기 기준에 맞는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성경 구절을 찾는다.오늘 본문은 성막 짓는 일을 지시하기 전에 성막 내부에 필요한 여러 기구에 대한 설계도를 보여준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만들라고 보여주신 모형이 바로 증거궤이다. 이 궤를 조각 목으로 덧입히고 네 발에 금고리 넷을 만들라고 하신다. 그리고 금으로 입힌 막대를 이용해서 운반하도록 하셨다. 또한 이 언약궤에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기록한 증거판들을 넣어 두었다. 돈으로 계산하면 350억 달러(약40억)나 된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성막은 하나님 나라의 속성을 보여주는 계시적 의미를 볼 수 있다.성막은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며 제사를 통해(예배) 하나님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과 만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치유를 경험하게 되고 그 안에서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 분명히 율법으로는 그 분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갈 2:16) 선언 하셨음에도 성막을 짓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주시기 위함이고. 이 성막 구조에는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으로 오시려는 계획이 들어 있는 것이다.성막으로 임재 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 속에 거처를 정하시고(요 14:23) 우리 몸을 성전으로(고전 3:16) 으로 삼고 계신다.성소를 짓도록 요청받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들은 죄의 사슬에서 구속함을 받고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사람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구원하신 백성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들 가운데 거하시기를 원하신다.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타락 이전의 아담과 함께 거하셨으며 그 후는 성막과 함께, 그 다음에는 성막과 성전 그리고 성육신하신 당신의 아들의 인성 안에 거하시고 오늘날은 성도들 안에서 거하신다.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후 3:16)라고 말씀하신다.하나님은 재료들을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을 받으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전에는 애굽 사람들의 노예였다. 사실 그들이 성막의 재료로 내는 것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 애굽 사람들로 부터 받은 것들이다(출 12:35 -36). 그들이 종 되었던 처지에서 천만배의 금 은 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어린양의 피로 자유함을 얻었기 때문에 감사, 감격 할 뿐이다.이것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무엇 보다 인간의 자원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다.하나님께서 명하시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거든 받지 말라는 말씀이시다. 이 말은 성소짓는 일이 너무나 귀한 일이기에 그런 자들을 동참 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교회 생활에 복된 일이 많다. 봉헌과 충성, 기도와 찬양이 귀하고 사명감이 귀하며 직분받는 것이 귀하다. 그런데 이런 일에 기본 필수 자세가 있는데 감사한 마음과 기쁨이다.예배가 무엇인가? “드림”최고의 가치를 드리는 것, 드리되 감사한 마음과 기쁨으로 정성을 다해 드리는 행위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만나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22). 이 모든 사실을 통해서 우주는 지구를 위해서 있고, 지구는 사람을 위해서 있으며 사람은 주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유대인을 택하셨는가? 예루살렘이 유대 땅에 있기 때문이다.예루살렘은 왜 택하셨는가? 성막이 있기 때문이요. 성막은 왜 택하셨는가. 성기구가 있기 때문이고, 성기구는 왜 만들라고 하셨나? 속죄소가 있기 때문이다. 속죄소는 왜 만들라고 하셨나? 그 속에 예수님의 피가 있고 용서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십자가를 영광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러한 주의 은혜를 입는 자가 되자. 여기에서 율법이 이루지 못한 것을 생명의 법이 해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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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애굽의 은총
    2019-07-19
  • 네 앞서 보내리라(출 23:20-33)
    본문은 십계명의 돌판을 직접 새겨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시내산에 오른 모세가 성막 건축에 소요되는 각종 예물에 관한 계시를 받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고 그 재료며 규모며 방법 등을 세밀하게 지시해 주셨다. 재료는 백성들에게 받을 예물은 금과 은과, 놋과 같은 귀금속류를 비롯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들을 받아 지을 지니라. 이러한 성막 건축을 위해 헌물을 준비 시키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세상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궁핍한 신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학 2:8). 따라서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추진해 가시는 외부의 도움이 전혀 필요치 않으신 분이시다.그러나 거룩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단독적인 사역보다는 인간과 더불어 일하시는 것을 더욱 기쁘게 여기신다. 그러기에 인간의 정성스런 협조를 원하신다. 사실 이를 위해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 당시 애굽 백성들로 부터 많은 재물을 얻도록 조치 하셨음을 알 수 있다(12:35). 이 중에는 금이나 은처럼 비싼 것도 있지만 가는 베실이나 염소 털처럼 싼 예물도 있다. 따라서 백성들은 자신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알맞은 예물을 드릴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결코 물질의 양이나 질이 아니라 오직 예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사1:11). 그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속죄소’라는 단어에는 본문에 볼 수 있는 대로 난외라는 “주”가 달려 있다. 혹은 시온좌 (mercy seat)라고도 한다. ‘속죄소’의 예표하는 바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에게 쏟아붓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도록 친히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막아 주셨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매달려야 했을 십자가다. 내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내 옆구리에 창을 받았어야 했었다. 그것이 율법의 요구이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 율법의 요구에 나를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로 나아가셨다.목이 말라 하시면서 “내가 목마르다” 하시며 괴로워하시면서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다. 22절을 보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에서 ‘거기서’라는 장소는 율법을 덮고 있는 속죄소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가 어디 인지를 보여 준다.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리라” 어디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들판입니까? 산속입니까? 광야입니까? 여러분이 헤매고 다닌 그 어느 곳에서도 속죄소를 통해 만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누구든지 구주 예수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속죄소는 다름이 아니라 창세기의 에덴에서 추방당함으로 이산가족이 된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들 간에 만남의 장소이다. 속죄소 위에서 나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와 연약함과 삶의 비극들을 그곳 속죄소로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는 이 위대한 초청이야말로 우리에게 최고 최대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죄 많고 더러운 인간에게 지존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을 뵈옵고 교제를 나누다니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 하신다.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겠다고 하신다. 속죄 소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소 안에 있는 하나님만이 죄인의 벗이며 죄인의 문제를 들으시며 인간의 나아갈 길을 알려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당당하게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찌니라”(4:16) 이제 우리 앞에는 가로 막힌 것이 없다. 휘장은 걷히고 율법은 덮이고 말았다. 가로막힌 휘장은 찢어졌다.하나님을 알현하는데 어떤 복잡한 조건들도 다 걷히고 말았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거기에 제물과 대제사장이 있었다. 이 계시가 새 언약 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사 단번에 드려 주심으로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히 10:14).
    • 칼럼
    • 출애굽의 은총
    2019-07-05
  • 성막 건축에 담긴 신비(출 25:1-9)
    본문은 십계명의 돌판을 직접 새겨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시내산에 오른 모세가 성막 건축에 소요되는 각종 예물에 관한 계시를 받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성소를 지으라고 명령만 하신 것이 아니고 그 재료며 규모며 방법 등을 세밀하게 지시해 주셨다. 재료는 백성들에게 받을 예물은 금과 은과, 놋과 같은 귀금속류를 비롯해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실과 염소 털들을 받아 지을 지니라. 이러한 성막 건축을 위해 헌물을 준비 시키시는 하나님의 계시는 세상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물질에 궁핍한 신이 아니라 모든 만물의 주인이시다(학 2:8). 따라서 당신의 목적하신 바를 추진해 가시는 외부의 도움이 전혀 필요치 않으신 분이시다.그러나 거룩한 일에 있어서 하나님 자신의 단독적인 사역보다는 인간과 더불어 일하시는 것을 더욱 기쁘게 여기신다. 그러기에 인간의 정성스런 협조를 원하신다. 사실 이를 위해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출애굽 당시 애굽 백성들로 부터 많은 재물을 얻도록 조치 하셨음을 알 수 있다(12:35). 이 중에는 금이나 은처럼 비싼 것도 있지만 가는 베실이나 염소 털처럼 싼 예물도 있다. 따라서 백성들은 자신의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알맞은 예물을 드릴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결코 물질의 양이나 질이 아니라 오직 예물을 드리는 자의 마음을 보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사1:11). 그래서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이다.‘속죄소’라는 단어에는 본문에 볼 수 있는 대로 난외라는 “주”가 달려 있다. 혹은 시온좌 (mercy seat)라고도 한다. ‘속죄소’의 예표하는 바 실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 준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들에게 쏟아붓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도록 친히 자신의 몸으로 우리를 막아 주셨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는 우리가 매달려야 했을 십자가다. 내 손과 발에 못이 박히고 내 옆구리에 창을 받았어야 했었다. 그것이 율법의 요구이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이 율법의 요구에 나를 대신하여 친히 십자가로 나아가셨다.목이 말라 하시면서 “내가 목마르다” 하시며 괴로워하시면서 물과 피를 다 쏟아서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셨다. 22절을 보자.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에서 ‘거기서’라는 장소는 율법을 덮고 있는 속죄소를 뜻한다. 따라서 이 말씀은 인간이 하나님과 만나는 장소가 어디 인지를 보여 준다.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리라” 어디서 하나님을 찾아 헤매고 있지는 않습니까? 들판입니까? 산속입니까? 광야입니까? 여러분이 헤매고 다닌 그 어느 곳에서도 속죄소를 통해 만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없었다면 그곳에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을 것이다.누구든지 구주 예수 십자가로 나아가지 않고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속죄소는 다름이 아니라 창세기의 에덴에서 추방당함으로 이산가족이 된 하나님 아버지와 자녀들 간에 만남의 장소이다. 속죄소 위에서 나를 만나 주시는 하나님은 용서와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다.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죄와 연약함과 삶의 비극들을 그곳 속죄소로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뵈올 수 있다는 이 위대한 초청이야말로 우리에게 최고 최대의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의 죄 많고 더러운 인간에게 지존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을 뵈옵고 교제를 나누다니 이것이 가능한 일인가? 전에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 하신다. 거기서 내가 너를 만나겠다고 하신다. 속죄 소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속죄소 안에 있는 하나님만이 죄인의 벗이며 죄인의 문제를 들으시며 인간의 나아갈 길을 알려 주시는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기자는 당당하게라는 표현을 쓴다. 그러므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찌니라”(4:16) 이제 우리 앞에는 가로 막힌 것이 없다. 휘장은 걷히고 율법은 덮이고 말았다. 가로막힌 휘장은 찢어졌다.하나님을 알현하는데 어떤 복잡한 조건들도 다 걷히고 말았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거기에 제물과 대제사장이 있었다. 이 계시가 새 언약 에서는 주님께서 친히 제물이 되어 주셨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대제사장이 되사 단번에 드려 주심으로 영원히 온전케 하셨다(히 10:14).
    • 칼럼
    • 출애굽의 은총
    2019-06-21
  • 언약의 피 뿌림 의식(출 24: 4-18)
    본문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40일간을 체류하는 장면의 기록이다. 이 기간에 이스라엘에게 전해 줄 십계명을 받게 된다. 만약 모세가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고 계명을 받지 않았더라면 모세는 율법을 백성들에게 전하지 못하였을 것이다. 오늘날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얼마나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고 받은 메시지를 전하는지 살펴보아야 할 대목이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다짐하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피를 뿌리면서 말하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 피니라” 피의 성질을 가르쳐 주셨다. 구약의 피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본질적인 피의 언약임을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모세는 언약의 피를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들에게 뿌렸다. 이렇게 피를 뿌린 것은 백성들의 죄를 씻고 정결케 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피는 ‘언약의 피로 이피의 성질을 말씀 하고 있다. 이 피의 언약은 변하지 않으며 생명의 언약이고 영원한 언약이다. 여기 언약의 핵심은 ‘너희와 세우는 언약의 피니라 하신 ’피‘에 있다. 이것이 중요하다. 왜 언약 체결에 피 흘림이 필요가 한가? 하는 점이다. 이에 대해 성경은 말하기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답변한다.여기에서 언약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이라는 사실을 증거 해준다. 적어도 우리가 그 피를 믿고 인정하고 있는 한 우리는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보호와 은총을 받게 되고 그 언약에 따르는 약속을 누리게 될 것이다. 율법에 의한 죄에 대한 처벌의 방법은 단 두 가지이다. 죄에 대한 대가로 자신의 생명이 죽든지 아니면 대속의 희생 제물을 바치든지 이다. 제사에 있어서 희생의 피는 필수 요소이었다. (레17:11) 시내산에서 언약 체결시 희생된 짐승의 피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언약의 피였지만 갈보리 언덕에서 희생된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보혈은 전 인류를 위한 피 였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말씀의 중요성을 말씀한다. 히브리서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 하나니 말씀의 가치성을 알 수 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하셨다. 성경은 불변의 말씀이다. 벧전1:24-25에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고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이 말씀 이니라 하였다. 주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 하리라(마24:35)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전도서 기자는 해 아래 새것이 없다고 했다. 속담에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지 않았나?. 인심은 말 할 것도 없다. 시대도 변하고 학설도 변하고 주장도,, 원리도, 과학도 다 변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변함이 없다. 성경은 변함이 없는 진리이기에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성경은 삶의 푯대요 기준이 된다. 기준을 망각한 정치, 사회, 교육 그 어느 것도 끔직 하다. 성경이 삶에 표준이요. 기준이다.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다고 했다. 지식을 더하거나 수양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하신다. 곧 성경 말씀이 모든 윤리와 도덕의 가치 판단이 되며 영원히 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임을 보증해 준다. 피는 제단을 쌓은 후에 뿌려진다. 모세가 산 아래 제단을 쌓고 인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자격을 먼저 갖추어야 한다. 모세는 백성의 구출을 위하여 선택받은 자이고 아론은 모세를 도와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하도록 한 자이며 나답과 아비후는 아론의 대를 잇도록 했으며 이스라엘 장로 70인은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하게하기 위하여 택함 받은 자들이다. 이러한 선택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인물들에게 사명을 맡기되 보편적인 상황이 아니라 특수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택이다. 경건한 신앙의 소유자. 사람들이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은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 할 때에만 가능하다. 이처럼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는 것은 그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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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애굽의 은총
    2019-06-07
  • 언약을 맺으신 의미(출 24:1-12)
    본장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모세에게 수여하심으로 수여자인 하나님과 수취자인 백성과의 사이에서 상호 계약을 맺는 장엄한 장면을 소개하고 있다. 출애굽기 24장은 율법의 핵심을 이루는 장이다.모세는 ‘내가 누구관데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여 내리이까?’ 하고 거절 하였을 때 “네가 백성을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희를 보낸 증거니라(3:1-12) 하신 약속을 하나님은 어김없이 지켜주신다. 이제 하나님은 시내산에 강림 하셔서 언약을 세워 주시려는 것이다(1-2). 언약을 주시는데 산 밑에는 백성들이 있고. 산 중턱에는 아론과 두 아들과 70인인 장로들이 있다. 그리고 시내산 정상에는 모세만이 올라간다. 이는 25장에서 계시하실 성막의 모형을 보여 주신 것으로 이해하며 또한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과 율법의 차이점을 볼 수 있다.복음이야말로 마11:28에 너희는 내게로 오라고 하셨고 요15:1-6절에는 ‘내안에 거하라’ 등 무조건 초청 하시는 부드러운 관계를 보여 주지만 율법은 철저한 법적인 의식에 의하여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율법 수여받는 그들은 가까이 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고 하신 말씀하신다. 신앙이 미숙하고 경건치 못한 사람 일 수록 여호와께로 부터 멀리 서 있게 된다.우리는 모세와의 율법 수여에 있어서 계약체결 자는 항상 믿음의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믿음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떤 일을 맡았든지 그 일에 성실한 일군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는데 빛이란 성실한 행위를 말한다. 우리가 성실하지 아니하면 아무도 우리를 신용하지 않는다. 뭐가 되었다고 할 때 조심해야 하고 무엇을 이루었을 때도 교만해서는 안된다.시편 139편 1절에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 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나이다”. 라고 하였다.믿음의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만 두려워한다. 이러한 자가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고 하나님은 그런 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만나 주신다. 이와 같이 3단계의 위치를 설정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무슨 등급으로 취급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감당할만한 역할을 맡기시는 것이다.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언약서를 낭독하자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우리가 준행 하리이다. (7)하고 서약한 후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운 언약의 피니라 고 선포한다.이렇게 언약이 체결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의 태도는 항상 이러해야 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주의 절대 의로우시고 절대 거룩하시고 절대 완전하시기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들은 그저‘ ’아멘‘하고 순종할 의무가 있을 뿐 논쟁할 권한은 없다.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순종 할 자세를 취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때 마다 순종을 서약 했다. 어떤 때는 순종하고 어떤 때는 순종하지 않는 것은 완전한 순종이 아니다. 어디서나 순종하고 언제나 순종하고 무슨 일이나 순종하는 것이 참 순종이요 완전한 순종이 아니겠는가?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을 다짐하는 백성들에게 모세는 피를 뿌리면서 말하기를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피의 성질을 가르쳐 주셨다.구약의 피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은 본질적인 피의 언약임을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모세는 언약의 피를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들에게 뿌렸다. 이렇게 피를 뿌린 것은 백성들의 죄를 씻고 정결케 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 피는 언약의 피라고 이 피의 성질을 말씀 하고 있다. 이 피의 언약은 변하지 않는 언약이며 생명의 언약이고 영원한 언약 이다. 여기 언약 체결의 핵심은 ‘너희와 세우는 언약의 피니라 하신 ’피‘에 있다.이것이 중요하다. 왜 언약 체결에 피 흘림이 필요한가 하는 점이다.이에 대해 성경은 말하기를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히8:18-22)고 답변한다. 여기에서 언약의 피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보혈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것이다.
    • 칼럼
    • 출애굽의 은총
    2019-05-29
  • 네 앞서 보내리라(출 23:20-33)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은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운 일이었다. 한 두 사람이 가는 것이 아니라 20세 이상 남자만도 60만, 늙은이 여자들 어린이까지 다 합치면 최소한도 200만 명이 넘는 인구다. 거기다 데리고 나온 우양의 떼가 무수하고 더군다나 과거에 전혀 가보지 못한 길을 알려주는 지도나 나침판도 없이 가는 길이니 얼마나 힘들고 아슬아슬한 일이겠는가?이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혼자 보내지 않으시고 사자를 앞서 보내시겠다고 하신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라(21) 라는 말씀에서 볼 수 있듯이 사자의 이름은 놀랍고 전지전능하신 여호와의 이름이다.여호와의 이름은 육으로 나타내신바 되셨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입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 전파 되시고 영광가운데 올리우심이다. 여기 사자는 하늘에서 보낸 하나님의 사자로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가진 분임을 알 수 있다. 곧 천사가 그들 앞서 가면서 무슨 일을 하시는가?20절에 “내가 너를 사자를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29) 라고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구원의 길에서 이탈하는 자를 막아 주시기도 하신다. 어렵고 위험한 여행 일수록 하나님의 보호는 더 절실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해 주시겠다고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인도 하시되 아무데나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아모리, 브리스, 가나안, 히위, 여브스를 물리치고 즉 그들이 가야할 올바른 목적지로 인도하시겠다고 하신다.‘인도 한다’가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잠언 16:2ks 9 같은 인도는 해로운 인도이다. “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 한 길로 인도 하시느니라. ”선거 때만 되면 출마자들이 한, 결 같이 국민을 위해 일하는 일꾼이 되겠다고 장담하고 선전 하지만 얼마나 국민을 실망 시켰는가를 우리는 보아 오지 않았던가?인도는 그 목적지가 올 바른 곳으로 인도하여야 한다. (창세기 24:7절) 대로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의 늙은 종을 앞서 인도하니 (창 24:27절) 대로 바른 길 유익한 길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야 바른 인도이다.시편 107;23-30절에는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시107:3) 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약속하신대로 (수24:12)에 그들을 인도하여 주셨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마치 애굽을 떠나 가나안을 향해 가는 이스라엘과 비슷하다. 어떠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모르고 위험한 길일수도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인도 하시는데 인간이 좋아할 만한 것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인간의 길은 앞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길은 그와 정반대 일수 있으나 정확히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단것에 쓴 것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즉 배고플 때도 있고 목마를 때도 있었으며 대작들에게 호위 당할 때도 있었지만 그 때 마 다 하나님은 필요한 것을 채워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보고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천사를 보내서 도사리고 있는 위험에서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환란들을 피하시고 쫓아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하게 나가야한다.예수그리스도는 우리보다 앞서 가신다. “나의 사자가 네 앞서 가서 (23) 훌륭한 목자가 그의 양보다 앞서 가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보다 앞서 가셨으며 이 세상에서 우리 인간들이 경험해야 할 일들을 다 경험하셨다. 그리고 죽음의 문을지나 부활의 경험을 통하여 아버지 계신 곳을 먼저 가셨다. 그리하여 현재 우리 성도들을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그러기에 너희는 두려워 말라고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하여야 하나?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우리는 열방의 풍습은 헛된 것이라 (렘10:3)고 말한 선지자 예레미아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우리는 죄악 된 세상 풍조를 따라 가지 말고 헛된 욕망과 우상의 노예의 삶을 떨쳐 버리고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는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백성이 될 때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과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실 것이다.여기서 우리는 “네 앞서 보내리라” 는 우리 앞서 보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인은 우리 앞서 보내신 하나님의 심부름꾼을 통해 전해지는 말씀을 그 대로 따라 살아가도록 다짐하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셨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자. “네 앞서 사자들을 보내리라는 약속을 버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우리를 인도하심에 그대로 따라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름 기둥과 기름 기둥으로 인도하심과 같이 우리를 인도 할 때 그대로 따라야 한다. 또한 우리를 위험에서 건지시는 이를 믿어야 한다
    • 칼럼
    • 출애굽의 은총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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