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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례 성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는 두 가지 성례(聖禮)가 있다. 첫째는 세례이고, 둘째는 성찬이다. 이 두 가지 성례전은 예수님이 직접 세우신 것으로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교회공동체가 기념으로 지키라는 부탁의 말씀을 남긴 매우 의미있는 행사이다. 중세 가톨릭교회는 일곱 가지 성례전을 기념하고 있었으나, 개혁교회는 주님이 직접 기념하라고 가르친 세례와 성찬 두 가지만을 성례로 본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18-20).◇성례 중의 세례는 중생과 죄씻음을 의미하며, 지상에 있는 가시적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 성도로서 가입하는 필수적인 절차이다. 성도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개체 교회에 속할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전체 보편적 교회에 속하게 된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피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언약의 그릇이다. 성도가 세례를 받아 그 교회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새 생명의 은혜언약을 누리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세례는 세상 끝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가운데서 항상 지속되어야 할 예전이다.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롬 6:3).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롬 6:4).◇세례는 봉헌의 표시이다. 세례를 통하여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이 되어 진정한 교회의 일원으로 영접 받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며,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받게 된다. 대부분의 교회는 세례 받음으로 교회의 직분을 받을 자격을 갖는다. 또 세례를 통하여 우리의 신앙을 확연히 나타낼 수 있다. 세례는 우리가 주님 앞에서 정결하게 된다는 징표이다. 세례를 통해서 죄를 사함받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확증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세례는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가진 신앙을 고백하고 표현하도록 하는 인식의 표시이다. 이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새로운 삶에 연합하는 징표를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세례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베풀어져야 한다. 따라서 세례는 진심과 성심으로 회개하고 신앙을 고백한 지만이 받을 수 있는 성례이다.◇그러나 세례가 구원에 있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8장 제5항은 세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례를 멸시하거나 가볍게 여기는 것은 큰 죄악이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세례가 절대불가결의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세례를 받지 않고도 중생하여 구원받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세례를 받았음에도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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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9
  • 성례에 대한 논쟁
    ◇성례에 대한 견해는 각 교파의 전통에 따라 각기 조금씩 다르다. 그로 인해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는 세례와 성찬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종교개혁자들 중에도 루터와 쯔빙글리와 칼빈이 그 견해를 각기 달리했다. 그리고 또 이들의 견해와 전혀 다른 입장을 고수한 재세례 파도 있었다. 루터는 세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총이 주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어린 아이든, 어른이든 세례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의 역사로 보았다. “세례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 선언하는 바와 같이 죄의 용서를 가져오며 죽음과 악마로부터 건져내주며 모든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구원을 준다”(루터 파 소교리문답). ◇그러나 칼빈은 세례를 교육적 의미에서의 은총의 수단으로 보았다. “세례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를 도말하시고 그것을 보지도 기억하지도 우리에게 돌리지도 아니하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증해주는 율법적 방편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주의 죽으심에 접붙임이 될뿐 아니라 그와 연합하여 그의 모든 은혜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확실한 증거를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례에서 이러한 신생(新生)의 보증을 받는다”(기독교강요 제15장 세례의 예전에 관하여).◇세례에 관한 특이한 논쟁은 “믿는 자의 세례”를 주장한 재세례 파에서 제기됐다. 제세례 파는 영적 재생의 상징인 세례는 인격의 변화에 일치되어야 하므로, 신앙의 인격적 결단과 유리된 세례는 무의미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유아 세례는 효력이 없으며, 신자가 된 사람은 자신의 판단과 책임아래 중생 및 신앙의 상징으로서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늘날 유아 세례를 부정하고 믿는 자의 세례를 주장하는 침례 파들의 세례의식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집례자의 기도 후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신앙은 초대 교부 다메섹의 요한 때부터 막연하게 내려온 설(說)이다. 그러다가 12세기에 이르러 ‘화체’(化體)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 때 찬반 논란이 많았으나 1215년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의로 결정되었다. 이 때부터 성찬식에서 배찬자에게 떡만 주고 잔을 주지 않는 풍속이 생겼다. 그럼에도 가톨릭교회 안에서 논쟁이 계속되다가 1415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인정되어 오늘날까지 그대로 행하고 있다. 15세기 체코 보헤미야의 후스 파의 칼릭스 파와 타보르 파 간의 ‘리판의 전투’는 성찬식의 떡과 잔(이종배찬)을 놓고 벌어진 전쟁이다. ◇그 후 16세기 종교개혁 시대에도 가장 뜨거운 논쟁은 역시 성찬 문제였다. 루터는 축도 후에 성만찬 물질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화체설은 거부하였으나, 성찬식에는 그리스도의 몸이 떡과 포도주와 함께 있다(실재설)고 했고, 쯔빙글리는 떡과 포도주는 단순히 그의 몸을 상징하는 것이며 성만찬은 주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것(상징설)이라고 했다. 그리고 칼빈은 성만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인격적 임재를 주장하며 본질적으로 영적인 것(임재설)으로 보았다. 이 성례전 논쟁은 신학에서 ‘다른 것’이 반드시 ‘틀린 것’은 아니라는 대표적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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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1
  • 간증의 함정
    ◇미국 기독교의 저널리스트 필립 얀시는 그의 책 “A Skeptic's Guide to Faith”(한글번역 “수상한 소문”)에서 다음과 같은 간증 사기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나는, 40여 가지의 가명을 쓰면서 미국 10여 개 주에서 수십 개의 교회를 속여 돈을 갈취한 여성을 만났다. 복음주의 교회의 행태와 언어를 연구한 그녀는 그것을 그럴듯하게 흉내내었다. 그녀는 갈보리채플, 침례교회, 하나님의성회 소속 교회들을 찾아가 여태까지 믿어온 모르몬교 신앙을 버리고 싶다고 간증했다. 매번 그 교회들은 그녀를 환영했고, 그녀를 뒤좇고 있다는 모르몬교 신도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했으며, 아낌없는 현금과 음식, 숙소와 치료를 제공했다. 그녀의 행동은 모든 면에서 그들에게 그녀가 신앙의 동지라고 확신을 심어주었다. 또 이 여성은 다음 도시에 가서 모르몬 교회를 찾아가 기독교 복음주의 신앙을 버리겠다고 고백했다. 50곳이 넘는 모르몬 교회와 수십 개의 복음주의 교회가 그녀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엘라배마 주 버밍햄으로, 거기서는 지금껏 여호와의 증인으로 살아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필립 얀시는 그 책에서 또 다른 예도 소개한다. 네 살 때부터 복음전도자로 활동했다는 마조 고트너라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조는 어릴적부터 의자 위에 올라 서서 설교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유명한 복음전도자 빌리 선데이처럼 손짓을 하며 설교했다. 마조는 청소년기에 이르자 장막 복음전도자로 생계를 꾸리며 수천 명을 회심시키고 수백만 달러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방언도 하고, 눈물울 흘리며 죄인에 대한 형벌을 설교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스물여덟에 이르러 그동안 자신이 한 말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음을 시인했고 모든 활동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그는 후에 자신이 예배 시간에 썼던 언어와 몸짓은 모두 ‘속임수’였다고 설명하는 영상을 남겼다고 한다.◇이런 간증 사기는 미국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에도 수없이 있었다. 80년대 중반 연탄깨스를 먹고 죽어 성심병원 영안실 냉동실에서 3일만에 살아났다며 전국의 유명한 교회마다 천국을 간증하고 다닌 ‘성경애 권사’ 사건, 영락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목탁과 함께 깨졌다며 간증을 하고 다니다가 ‘교회가 너무 짜다’면서 다시 절간으로 돌아간 조계종 승려 사건, 병원에서 심장이 멎어 죽었다가 몇 시간동안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간증 등등. 처음엔 그래도 순수했던 간증이 거짓과 과장으로 날이 갈 수록 부풀려졌다. 이는 모두 영적 세계를 사모하는 기독교인들의 심리를 이용해 어리숙한 교회들로부터 돈을 갈취하려는 종교 사기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을 사기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은 종교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보편적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신비체험이나 은사주의는 그 체험을 하고 은사를 받은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지, 전체 보편적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개인의 간증을 유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희가 사람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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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18
  • 기쁨과 평안을 주는 사람
    얼마 전에 전국의 대학교수 1천명에게 2017년도를 대표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설문조사하여 채택한 것이 파사현정(破邪顯政)이다. 파사현정이란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인데, 현 정부의 적폐청산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사실 역대 정권이 정의사회구현, 부정부패청산, 사회악제거 등을 국정과제로 내세워 정책과 입법을 단행하였으나, 정의사회가 구현되거나 부정부패가 청산된 적은 없었다. 또한 국민들에게 박수받고 존경받은 지도자도 없었다.옛 말에 토끼를 잡을 때는 귀를 잡아야 하고, 소는 고삐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닭을 잡을 때는 양 날개를 잡아야 하고, 고양이를 잡을 때는 목덜미를 잡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 하나? 멱살을 잡으면 싸움이 나고, 손을 잡으면 뿌리친다. 사람은 마음을 잡아야 한다. 정치도 경제도 외교도 종교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적패청산이란 미명하에 서로 잡지 않아야 될 것을 잡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내가 날카롭게 칼을 갈면 상대방은 철판으로 방어를 하고, 내 마음이 냉정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싸늘하게 식는다. 내 마음이 화살 같으면 상대의 마음은 방패로 응수하게 되니 그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우면 상대방은 가슴을 열고 마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을 주고, 격려를 주고, 위로를 줄 때 그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작은 것이라도 인정으로 서로 나누고 부족한 것을 서로 채워주면 그 마음을 잡을 수 있다. 내가 먼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상대에게 헌신하며 조용한 미소로 다가갈 때 그 마음을 잡을 수 있다.지난 2009년 9월 11일 오후, 대만의 모든 언론들이 타이페이 법원 앞에서 ‘세기의 재판’이란 제목으로 전 세계를 향해 생중계한 일이 있었다. 타이페이 시민들은 대만 총통을 지낸 천수이벤의 재판을 두고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한때의 지도자에게서 국민들의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다.판사가 선고했다. “천수이벤 전 총통에게는 무기징역에 추가 28년, 벌금 75억원, 부인 오숙진에게는 무기징역에 추가 56년, 벌금 115억원, 그 아들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38억원, 그 며느리에게는 징역 2년에 벌금 38억원.” 사실상 천수이벤 가족의 모든 재산의 몰수와 온 가족이 다시 회생할 수 없는 무거운 판결을 내렸다.판사는 판결문에서 그 이유를 말했다. “총통에 오른 천수이벤! 한 사람이 부패하면 한 나라가 어려워지고(一人貪戾 一國作亂),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듯이 윗사람의 행실은 아랫사람들이 따라한다(風行草偃 上行下敎)는 세상의 이치를 당연히 알고 있지만, 겉으로는 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뒤로는 몰래 부패한 짓을 일삼았다”고 준엄하게 꾸짖고 나서, 옛 선현의 말을 인용,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無恥(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구 종신무치),이라며 재판을 종결했다. 이는 "만족할 줄 알아 만족하면 죽을 때까지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아 늘 그치면 죽을 때까지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사람이 사는 것이 숨을 쉰다고 사는 것이냐? 소시민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사람답게 살고, 지도자는 지도자답게 존경을 받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잘 사는 사람, 성공한 사람, 지체 높으신 사람도 많지만, 사람의 마음을 잡아 기쁨주고 평안주고 희망을 주어야 진정 잘 사는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새해에는 이웃을 잡아 기쁨과 평안을 주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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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4
  • 사람을 낚는 어부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 잡던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나 제자로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본문의 바른 번역인지는 몰라도,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어부였던 베드로의 후계를 자처하는 교황의 공식도장도 ‘어부의 반지’이다. ◇그런데 성경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그물로 ‘고기를 잡는 사람’이었지, 낚시로 ‘고기를 낚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기를 그물로 잡는 것은 낚시로 낚는 것과는 전혀 그 방법이 다르다. 낚시로 낚는 것은 고기가 한 마리 한 마리 힘 있게 바둥거리며 살아서 물위로 올라오지만, 그물로 잡는 것은 많은 경우 죽어서 물위로 올라온다. 특히 먼 바다에서 큰 그물로 고기떼를 싸서 잡는 방법은 한꺼번에 각종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물 안에서 고기끼리 서로 부딪쳐서 덩치가 작은 것들은 대부분 죽거나 상하게 된다. 반면에 수량은 적지만 낚시로 잡는 고기는 다 살아 있고, 활어의 품질도 좋다.◇이는 오늘날 교회의 목회현장과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여 양육한 교인으로 구성된 교회는 목회자도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형편을 알고 케어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대형교회는 그 상황이 많이 다르다. 대형교회 안에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인물도 있고, 명성있는 인사들도 있어서 빛을 내고 주목을 끌지만, 목회자도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수 많은 교인들이 그 빛에 가려진 채 ‘아무개 교회 교인’이라는 허명(虛名)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큰 그물로 많은 고기를 잡는 선장의 눈에는 돈되는 큰 고기들만 보일뿐, 작은 고기들은 한꺼번에 쓸어서 바다에 도로 버리기도 한다. 대형교회 목회자의 눈에도 돈이 나올 만한 큰 인물들만 보일뿐, 돈 안되는 교인들은 눈에 들지 않는다.◇때때로 이름난 연예인들이 비명(非命)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사람들도 더러있어 우리를 당혹케 한다. 이번에 자실한 샤이니 종현도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다. 그의 장례식도 기독교 장례로 치뤘다. 「연지골」자는 그가 어떤 유형의 교회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그가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괴뇌와 고통으로 ‘이 잔을 내가 마시지 않고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누군가를 찾아 상담하기를 원했을까. 그라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그를 도우지 못했다. 하나님은 너무 멀리 있고, 목사는 너무 높은데 있다고 여겨졌는지도 모를 일이다.◇이런 사례만 보아도 지금 한국교회는 뭔가 잘못가고 있다. 새해에는 이런 억울한 소식이 더이상 들리지 않도록 목회자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목회에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겠다. 최소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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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1-04
  • 성탄절메세지
    ◇기독교는 태초에 하나님 안에 독생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사건에서 시작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는 예언대로,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장). 요한복음은 이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요 1:1~14)이라고 했고, 빌립보서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2:6-8)라고 했다.◇아브라함의 유일신앙을 이어받은 기독교가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다른 것은 바로 이 성육신 교리에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다. 유대교나 이슬람에도 ‘하나님’이 있고, ‘성령’도 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없는 것이 기독교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신관이 곧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고, 그것은 성육신 교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유일신 신앙 교리를 가졌다 하더라도 삼위일체 신관을 부정하면 기독교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성탄절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성모 마리아를 그 무엇보다 높이 공경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마리아 이전에도, 마리아 시대에도 수많은 여성이 이 세상에 있었는데, 어째서 하필 나사렛 처녀 마리에에게 예수가 태어났는가? 그것은 마리아의 신심(信心)에 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기독교에는 세 가지 이단이 있다. 첫째는 나사렛 예수 외에 ‘다른 예수’, 즉 다른 교주를 믿는 교주우상주의이고, 둘째는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 즉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교리적 이단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반드시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가 만나야 임신한다는 ‘마리아 월경잉태론’이나, 생물학적 접근은 모두 무서운 이단이다. 성경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수태를 알리는 천사에게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하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다. 그런데 왜 분명한 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마리아의 월경 없이는 예수가 태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가. 만약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가톨릭 사제였다면 파면을 당해도 몇번은 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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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22
  • 짝퉁 종교
    ◇신약성경 로마서 11장 36절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아들 독생자 그리스도의 구원을 인정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백이요 신본주의적 세계관이다. 그런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다르게 말한다. 유물주의는 “이는 만물이 물질에서 나오고 물질로 말미암고 물질로 돌아감이라”고 하고, 인본주의는 “이는 만물이 인간에게서 나오고 인간으로 말미암고 인간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한다. 유물주의와 인본주의는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세속적 ‘종교’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해 이런 ‘짝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사이비종교’라고 한다.◇이런 짝퉁종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람이 세계와 만물의 주인이라는 ‘주체사상’이다.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종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위 인간중심의 철학을 표방한 주체사상은 이 무한한 세계의 주인을 기껏 이 세상에 채 일백년도 살지 못하고 죽음으로 소멸해가는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영원한 발전의 길만이 인간의 영원한 삶의 목적이며 궁극적 행복이라고 한다. 그 진화론적 발전이 멎으면 인류는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창조주와 같은 신이나, 인간의 영혼이나, 사후의 세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원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물주의나 인본주의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자리는 없는 것이다.◇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믈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그러나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허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0-12)고 했다. ◇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인본주의에 기초한 주체사상파가 장악하고 있다. 이 막중한 시기에 한국교회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살아가야 할 가치관이 무엇인가? 바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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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14
  • 건강하지 못한 사회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으로 밀려났던 무속과 역술이 ‘민속 신앙’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기세로 횡행하고 있다. 무당과 역술인의 숫자가 무려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는 지난 10년 새 배로 늘어난 것이다. 11년 전인 2006년 무당은 약 14만명, 역술인은 20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2017년 무당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와 역술인 단체인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현재 가입회원이 각각 30여 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비회원을 합하면 1백만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무당과 역술인은 그 방법은 달라도 둘 다 인간사의 길흉을 점(占)을 쳐 운명을 예언한다는 그 목적은 같다. ◇무당 단체나 역술인 단체가 현대 산업사회에서도 이렇게 성업을 이루는 것은 소위 우리사회의 지자체 이후 선거 때마다 그들의 표를 의식해 정부가 민속 신앙과 굿을 무형문화재처럼 대우해 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역술도 사주명리학이니, 관상학이니, 주역이니 하며, 심지어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까지 동아리가 생겨나고, 아예 역학(易學)이란 이름으로 학원을 열어 수강생을 모아 강의를 하고 있다. 그 강의실은 언제나 꽉꽉 찬다. 그런데 이들이 대체로 나름대로 지식인들이란 것이다. 여기에는 미신과 철학이 혼재되어 그럴 듯하게 설명됨으로써 영적 세계에 어리숙한 사람들을 속여 돈을 갈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무당들도 돈을 노리고 멀쩡한 사람에게 신내림굿을 하거나, 치병굿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경우가 종종 드러난다.◇그러다보니 요즘 젊은 층의 의식구조가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비과학적이고 즉흥적인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종교적 선택도 교리적 학문적 논리적인 클래식한 종교를 선택하기보다 다분히 미신적이고 감성적인 것에 흥미를 느낀다. 우리사회의 신흥종교의 성장속도가 빠른 것도 이러한 풍조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것이다. ◇기독교는 우리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의식구조와 가치관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미신이 사라지고 인권이 신장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국기독교가 기복화 되어 그 지도력을 서서히 상실하고, 사회 구성원의 영적 갈증을 충족시키는데 실패함으로써, 미신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신흥종교가 유행하고 점집과 역술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성경은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지니라”(출 22:18).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신 18:10,11)고 한다.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신다”(신 18:12)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들은 인간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사상이 횡행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회가 사상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이 발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회를 구성키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영적 각성과 부흥이 요망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가 기복주의에서 탈피하는 일이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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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2-07
  • 종교다원주의자들의 함정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추구하는 궁극적 지향점이 다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 구원의 진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코란에서 성경과 같은 가르침을 찾고, 불교의 경전에서 기독교 교리와 유사한 구절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그 ‘진리의 산’을 오르는 길이 다를 뿐, 그 정상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아주 그럴듯 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런게 종교혼합주의의 대표적 발상이다. 예를 들면 성경에는 나무를 사람에 비유한 경우가 더러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 나무’에 비유해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니”(요 15;1,5)라고 했다. 또 이사야는 구속받은 자들을 ‘의의 나무’(사 61:3)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을 ‘땅의 중앙에 선 한 나무’(단 4장)로, 요한계시록은 끝날 사명자를 ‘감람 나무’(계 11:4)로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깨달음(正覺)을 얻었다는 것을 인용하며, ‘보리’(菩提)는 곧 진리 곧 ‘깨달음’을 뜻하므로, 보리수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진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보리수는 산스크리트어로 보디 드루마((bodhi druma)이다. 이는 ‘진리의 나무’ 또는 ‘깨달은 나무’리는 뜻이다. 그런데 나무 자체가 어떻게 진리가 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것은 나무가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고, 석가모니가 보리수로 비유되는 한 부타(깨달은 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진리를 깨달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비유를 끌어다가 이것이 곧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다고 주장하는 해석이 문제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도 창세기 2장의 에덴에 있던 나무를 여러 가지 사상(思想)으로 보는 영해(靈解)가 있다. 생명 나무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악 나무는 ‘사단의 미혹’을, 그리고 각종 나무는 ‘각종 철학’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부모에게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품 안에 있던 독생자라는 사실이다. 예수는 ‘말씀’이신 진리 자체로 성육신한 것이고, 싯달타는 인간의 삶의 진리를 고행을 통해 깨달은 부타가 된 것이라는 차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요 10:8)라고 했다. 예수보다 먼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온 자 중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실상이 곧 아버지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양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품안에 있던 예수만이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을 알았던 것이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4,18). 그러므로 성경에 계시된 독생자 신관을 모르면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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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24
  • ‘교회론’ 바로세워 교회분열 막아야 산다
    ◇한국기독교에는 수많은 교파와 그 교파에서 갈라진 교단이 약 300여 개에 이른다. 중세의 기독교는 가톨릭에서 그리스 정교회와 나뉘일 때만 해도 세상으로부터 교회의 윤리적 패배라는 말을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것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하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그 분열이 너무 심하다. 그것은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지향하는 신학과 교리가 다른 교파의 파생은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같은 신학, 같은 교리를 가진 교파 내의 교단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갈라놓는 죄악이다. 그럼에도 ‘나는 저들과 다르다’면서 딴살림을 차리고 나간다. 그것은 교단을 갈라 거기서 무엇인가 세속적 이득을 챙기려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은 아무것도 다른 것은 없다. 순전히 세속적 욕심 때문이다.◇한국기독교는 개교회도 아무런 원칙도 명분도 없이 분열한다. 특히 장로교는 더 심하다. 그러다보니 ‘무소속’ 교회라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 개교회의 회중정치를 하는 교회들과는 달리 장로교는 무소속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장로교는 교회의 모임인 ‘노회’(presbytery)가 중심인 교회이기 때문이다. 노회가 목회자를 양육하고, 양육된 목회자를 파송해 개교회를 조직하는 체제가 장로교회이다. 단순히 개혁주의 또는 칼빈주의 신학과 당회가 구성되어 의회정치를 한다고 해서 장로교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소속 노회가 없는 장로교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교회에는 이토록 많은 무소속 장로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목회자가 교회론이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한국불교에도 교단이 많이 있다. 조계종과 천태종을 비롯 80여개가 넘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불교의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교단들도 많이 있다.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 가운데 상당수는 '무당 절간'이라 불리는 절간이다. 그것은 그 사찰을 통해 재화를 얻기 위해 세운 종교시설이다. 그래서 무당 절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 절간의 재산은 신도들의 총유재산이 아니다. 그런 절간은 자식에게 대물림할 수도 있고, 그 주인이 부동산으로 매매할 수도 있다. 한국교회에 불교의 무당 절간과 같은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간판은 그럴듯하게 대한예수교장로회 아무개교회, 무슨무슨 교회를 내세우고, 기성 교회처럼 성경도 가르치고 기도도 하며 설교도 하고 헌금을 거두어 교역자의 생활비로 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더 이상 그 교회를 끌고가기 어려워지면 후임자에게 돈을 받고 넘기거나 부동산에 내다 판다.◇창간 27주년을 맞은 본보는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한국교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다루어 왔다. 기복주의와 세속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교회론을 바로 세우는데 그 목적이 있다. 교회론만 바로 서면 한국교회는 주님의 말씀대로 세상에빛이 될 수 있다. 작금 한국사회는 교회밖에 희망을 걸데가 없다. 교회마저 이대로 흔들리면 오늘날 한국사회가 어디로 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발행인 강춘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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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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