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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의 함정
- ◇미국 기독교의 저널리스트 필립 얀시는 그의 책 “A Skeptic's Guide to Faith”(한글번역 “수상한 소문”)에서 다음과 같은 간증 사기 사건을 소개하고 있다. “저널리스트인 나는, 40여 가지의 가명을 쓰면서 미국 10여 개 주에서 수십 개의 교회를 속여 돈을 갈취한 여성을 만났다. 복음주의 교회의 행태와 언어를 연구한 그녀는 그것을 그럴듯하게 흉내내었다. 그녀는 갈보리채플, 침례교회, 하나님의성회 소속 교회들을 찾아가 여태까지 믿어온 모르몬교 신앙을 버리고 싶다고 간증했다. 매번 그 교회들은 그녀를 환영했고, 그녀를 뒤좇고 있다는 모르몬교 신도들로부터 그녀를 보호했으며, 아낌없는 현금과 음식, 숙소와 치료를 제공했다. 그녀의 행동은 모든 면에서 그들에게 그녀가 신앙의 동지라고 확신을 심어주었다. 또 이 여성은 다음 도시에 가서 모르몬 교회를 찾아가 기독교 복음주의 신앙을 버리겠다고 고백했다. 50곳이 넘는 모르몬 교회와 수십 개의 복음주의 교회가 그녀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곳은 엘라배마 주 버밍햄으로, 거기서는 지금껏 여호와의 증인으로 살아왔다고 주장했다고 한다.”◇필립 얀시는 그 책에서 또 다른 예도 소개한다. 네 살 때부터 복음전도자로 활동했다는 마조 고트너라는 청년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조는 어릴적부터 의자 위에 올라 서서 설교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유명한 복음전도자 빌리 선데이처럼 손짓을 하며 설교했다. 마조는 청소년기에 이르자 장막 복음전도자로 생계를 꾸리며 수천 명을 회심시키고 수백만 달러를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그는 방언도 하고, 눈물울 흘리며 죄인에 대한 형벌을 설교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그러나 스물여덟에 이르러 그동안 자신이 한 말을 한마디도 믿지 않았음을 시인했고 모든 활동을 그만 두기로 결심했다. 그는 후에 자신이 예배 시간에 썼던 언어와 몸짓은 모두 ‘속임수’였다고 설명하는 영상을 남겼다고 한다.◇이런 간증 사기는 미국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교회에도 수없이 있었다. 80년대 중반 연탄깨스를 먹고 죽어 성심병원 영안실 냉동실에서 3일만에 살아났다며 전국의 유명한 교회마다 천국을 간증하고 다닌 ‘성경애 권사’ 사건, 영락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목탁과 함께 깨졌다며 간증을 하고 다니다가 ‘교회가 너무 짜다’면서 다시 절간으로 돌아간 조계종 승려 사건, 병원에서 심장이 멎어 죽었다가 몇 시간동안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간증 등등. 처음엔 그래도 순수했던 간증이 거짓과 과장으로 날이 갈 수록 부풀려졌다. 이는 모두 영적 세계를 사모하는 기독교인들의 심리를 이용해 어리숙한 교회들로부터 돈을 갈취하려는 종교 사기이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을 사기로 다스릴 수 없는 것은 종교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다.◇보편적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신비체험이나 은사주의는 그 체험을 하고 은사를 받은 개인에게 주어진 것이지, 전체 보편적 교회를 위한 것이 아니다. 교회가 개인의 간증을 유의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너희가 사람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마 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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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증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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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평안을 주는 사람
- 얼마 전에 전국의 대학교수 1천명에게 2017년도를 대표할 수 있는 사자성어를 설문조사하여 채택한 것이 파사현정(破邪顯政)이다. 파사현정이란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뜻인데, 현 정부의 적폐청산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사실 역대 정권이 정의사회구현, 부정부패청산, 사회악제거 등을 국정과제로 내세워 정책과 입법을 단행하였으나, 정의사회가 구현되거나 부정부패가 청산된 적은 없었다. 또한 국민들에게 박수받고 존경받은 지도자도 없었다.옛 말에 토끼를 잡을 때는 귀를 잡아야 하고, 소는 고삐를 잡아야 한다고 했다. 닭을 잡을 때는 양 날개를 잡아야 하고, 고양이를 잡을 때는 목덜미를 잡아야 한다. 그러면 사람은 어디를 잡아야 하나? 멱살을 잡으면 싸움이 나고, 손을 잡으면 뿌리친다. 사람은 마음을 잡아야 한다. 정치도 경제도 외교도 종교도 결국 사람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적패청산이란 미명하에 서로 잡지 않아야 될 것을 잡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내가 날카롭게 칼을 갈면 상대방은 철판으로 방어를 하고, 내 마음이 냉정하면 상대방의 마음도 싸늘하게 식는다. 내 마음이 화살 같으면 상대의 마음은 방패로 응수하게 되니 그 마음을 잡을 수가 없다. 그러나 내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우면 상대방은 가슴을 열고 마음을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상대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을 주고, 격려를 주고, 위로를 줄 때 그 마음을 잡을 수 있다. 작은 것이라도 인정으로 서로 나누고 부족한 것을 서로 채워주면 그 마음을 잡을 수 있다. 내가 먼저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상대에게 헌신하며 조용한 미소로 다가갈 때 그 마음을 잡을 수 있다.지난 2009년 9월 11일 오후, 대만의 모든 언론들이 타이페이 법원 앞에서 ‘세기의 재판’이란 제목으로 전 세계를 향해 생중계한 일이 있었다. 타이페이 시민들은 대만 총통을 지낸 천수이벤의 재판을 두고 사형을 선고하라고 외치고 있었다. 한때의 지도자에게서 국민들의 마음이 떠났기 때문이다.판사가 선고했다. “천수이벤 전 총통에게는 무기징역에 추가 28년, 벌금 75억원, 부인 오숙진에게는 무기징역에 추가 56년, 벌금 115억원, 그 아들에게는 징역 3년에 벌금 38억원, 그 며느리에게는 징역 2년에 벌금 38억원.” 사실상 천수이벤 가족의 모든 재산의 몰수와 온 가족이 다시 회생할 수 없는 무거운 판결을 내렸다.판사는 판결문에서 그 이유를 말했다. “총통에 오른 천수이벤! 한 사람이 부패하면 한 나라가 어려워지고(一人貪戾 一國作亂), 바람이 불면 풀이 쓰러지듯이 윗사람의 행실은 아랫사람들이 따라한다(風行草偃 上行下敎)는 세상의 이치를 당연히 알고 있지만, 겉으로는 개혁의 깃발을 내걸고 뒤로는 몰래 부패한 짓을 일삼았다”고 준엄하게 꾸짖고 나서, 옛 선현의 말을 인용, 知足常足 終身不辱 知止常止 終身無恥(지족상족 종신불욕 지지상구 종신무치),이라며 재판을 종결했다. 이는 "만족할 줄 알아 만족하면 죽을 때까지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아 늘 그치면 죽을 때까지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이다.사람이 사는 것이 숨을 쉰다고 사는 것이냐? 소시민은 아무리 어려운 환경에서라도 사람답게 살고, 지도자는 지도자답게 존경을 받으며 국민들의 마음을 잡아야 한다. 잘 사는 사람, 성공한 사람, 지체 높으신 사람도 많지만, 사람의 마음을 잡아 기쁨주고 평안주고 희망을 주어야 진정 잘 사는 사람이요, 성공한 사람인 것이다. 새해에는 이웃을 잡아 기쁨과 평안을 주는 사람이 누리는 행복을 맛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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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평안을 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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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낚는 어부
-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 잡던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를 만나 제자로 부르실 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했다. “사람을 낚는 어부”가 본문의 바른 번역인지는 몰라도, 이후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어부였던 베드로의 후계를 자처하는 교황의 공식도장도 ‘어부의 반지’이다. ◇그런데 성경 기록에 의하면 베드로는 그물로 ‘고기를 잡는 사람’이었지, 낚시로 ‘고기를 낚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기를 그물로 잡는 것은 낚시로 낚는 것과는 전혀 그 방법이 다르다. 낚시로 낚는 것은 고기가 한 마리 한 마리 힘 있게 바둥거리며 살아서 물위로 올라오지만, 그물로 잡는 것은 많은 경우 죽어서 물위로 올라온다. 특히 먼 바다에서 큰 그물로 고기떼를 싸서 잡는 방법은 한꺼번에 각종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물 안에서 고기끼리 서로 부딪쳐서 덩치가 작은 것들은 대부분 죽거나 상하게 된다. 반면에 수량은 적지만 낚시로 잡는 고기는 다 살아 있고, 활어의 품질도 좋다.◇이는 오늘날 교회의 목회현장과도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대체로 한 사람 한 사람 전도하여 양육한 교인으로 구성된 교회는 목회자도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의 형편을 알고 케어할 수 있지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다니는 대형교회는 그 상황이 많이 다르다. 대형교회 안에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큰 인물도 있고, 명성있는 인사들도 있어서 빛을 내고 주목을 끌지만, 목회자도 그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수 많은 교인들이 그 빛에 가려진 채 ‘아무개 교회 교인’이라는 허명(虛名)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큰 그물로 많은 고기를 잡는 선장의 눈에는 돈되는 큰 고기들만 보일뿐, 작은 고기들은 한꺼번에 쓸어서 바다에 도로 버리기도 한다. 대형교회 목회자의 눈에도 돈이 나올 만한 큰 인물들만 보일뿐, 돈 안되는 교인들은 눈에 들지 않는다.◇때때로 이름난 연예인들이 비명(非命)에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들 중에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사람들도 더러있어 우리를 당혹케 한다. 이번에 자실한 샤이니 종현도 기독교인으로 알려졌다. 그의 장례식도 기독교 장례로 치뤘다. 「연지골」자는 그가 어떤 유형의 교회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을 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그가 죽음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괴뇌와 고통으로 ‘이 잔을 내가 마시지 않고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또 누군가를 찾아 상담하기를 원했을까. 그라나 안타깝게도 아무도 그를 도우지 못했다. 하나님은 너무 멀리 있고, 목사는 너무 높은데 있다고 여겨졌는지도 모를 일이다.◇이런 사례만 보아도 지금 한국교회는 뭔가 잘못가고 있다. 새해에는 이런 억울한 소식이 더이상 들리지 않도록 목회자들이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 목회에 새로운 각오로 임해야겠다. 최소한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에 대한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은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마 16:26)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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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낚는 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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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메세지
- ◇기독교는 태초에 하나님 안에 독생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신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 사건에서 시작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는 예언대로,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장). 요한복음은 이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요 1:1~14)이라고 했고, 빌립보서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빌 2:6-8)라고 했다.◇아브라함의 유일신앙을 이어받은 기독교가 유대교나 이슬람교와 다른 것은 바로 이 성육신 교리에 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삼위일체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다. 유대교나 이슬람에도 ‘하나님’이 있고, ‘성령’도 있다. 그러나 ‘그 아들’이 없는 것이 기독교와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신관이 곧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고, 그것은 성육신 교리에서 나오는 것이다.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유일신 신앙 교리를 가졌다 하더라도 삼위일체 신관을 부정하면 기독교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서 성탄절은 매우 중요하다. 역사적 기독교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성모 마리아를 그 무엇보다 높이 공경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마리아 이전에도, 마리아 시대에도 수많은 여성이 이 세상에 있었는데, 어째서 하필 나사렛 처녀 마리에에게 예수가 태어났는가? 그것은 마리아의 신심(信心)에 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기독교에는 세 가지 이단이 있다. 첫째는 나사렛 예수 외에 ‘다른 예수’, 즉 다른 교주를 믿는 교주우상주의이고, 둘째는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 즉 삼위일체 교리를 믿지 않거나 다르게 해석하는 교리적 이단이며, 셋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탄생과 관련하여 반드시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가 만나야 임신한다는 ‘마리아 월경잉태론’이나, 생물학적 접근은 모두 무서운 이단이다. 성경은 마리아에게 그리스도의 수태를 알리는 천사에게 마리아가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라고 반문하자,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했다. 그런데 왜 분명한 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마리아의 월경 없이는 예수가 태어날 수 없다고 주장하는가. 만약 이런 주장을 한 사람이 가톨릭 사제였다면 파면을 당해도 몇번은 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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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메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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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종교
- ◇신약성경 로마서 11장 36절은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라고 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과 그의 아들 독생자 그리스도의 구원을 인정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백이요 신본주의적 세계관이다. 그런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진화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이를 다르게 말한다. 유물주의는 “이는 만물이 물질에서 나오고 물질로 말미암고 물질로 돌아감이라”고 하고, 인본주의는 “이는 만물이 인간에게서 나오고 인간으로 말미암고 인간에게로 돌아감이라”고 한다. 유물주의와 인본주의는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세속적 ‘종교’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변조해 이런 ‘짝퉁’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를 다른 말로 ‘사이비종교’라고 한다.◇이런 짝퉁종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사람이 세계와 만물의 주인이라는 ‘주체사상’이다. 북한의 통치이념인 주체사상을 종교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위 인간중심의 철학을 표방한 주체사상은 이 무한한 세계의 주인을 기껏 이 세상에 채 일백년도 살지 못하고 죽음으로 소멸해가는 ‘인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들은 인간의 영원한 발전의 길만이 인간의 영원한 삶의 목적이며 궁극적 행복이라고 한다. 그 진화론적 발전이 멎으면 인류는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창조주와 같은 신이나, 인간의 영혼이나, 사후의 세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원한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유물주의나 인본주의에는 당연히 하나님의 자리는 없는 것이다.◇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아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믈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그러나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허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요 1:10-12)고 했다. ◇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묻는다. 그 대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입니다”이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인본주의에 기초한 주체사상파가 장악하고 있다. 이 막중한 시기에 한국교회가 마지막까지 지키고 살아가야 할 가치관이 무엇인가? 바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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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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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지 못한 사회
- ◇우리나라 근대화 과정에서 미신으로 밀려났던 무속과 역술이 ‘민속 신앙’이란 이름으로 엄청난 기세로 횡행하고 있다. 무당과 역술인의 숫자가 무려 1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는 지난 10년 새 배로 늘어난 것이다. 11년 전인 2006년 무당은 약 14만명, 역술인은 20만명 정도였다. 그런데 2017년 무당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와 역술인 단체인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현재 가입회원이 각각 30여 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에 비회원을 합하면 1백만명이 훨씬 넘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무당과 역술인은 그 방법은 달라도 둘 다 인간사의 길흉을 점(占)을 쳐 운명을 예언한다는 그 목적은 같다. ◇무당 단체나 역술인 단체가 현대 산업사회에서도 이렇게 성업을 이루는 것은 소위 우리사회의 지자체 이후 선거 때마다 그들의 표를 의식해 정부가 민속 신앙과 굿을 무형문화재처럼 대우해 왔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역술도 사주명리학이니, 관상학이니, 주역이니 하며, 심지어 학문의 전당인 대학에까지 동아리가 생겨나고, 아예 역학(易學)이란 이름으로 학원을 열어 수강생을 모아 강의를 하고 있다. 그 강의실은 언제나 꽉꽉 찬다. 그런데 이들이 대체로 나름대로 지식인들이란 것이다. 여기에는 미신과 철학이 혼재되어 그럴 듯하게 설명됨으로써 영적 세계에 어리숙한 사람들을 속여 돈을 갈취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무당들도 돈을 노리고 멀쩡한 사람에게 신내림굿을 하거나, 치병굿을 핑계로 돈을 뜯어내는 경우가 종종 드러난다.◇그러다보니 요즘 젊은 층의 의식구조가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것에 대한 관심보다는, 비과학적이고 즉흥적인 것을 선호한다. 따라서 종교적 선택도 교리적 학문적 논리적인 클래식한 종교를 선택하기보다 다분히 미신적이고 감성적인 것에 흥미를 느낀다. 우리사회의 신흥종교의 성장속도가 빠른 것도 이러한 풍조와 맥을 같이 한다고 할 것이다. ◇기독교는 우리사회의 근대화 과정에서 의식구조와 가치관 형성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미신이 사라지고 인권이 신장되었다. 그러나 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한국기독교가 기복화 되어 그 지도력을 서서히 상실하고, 사회 구성원의 영적 갈증을 충족시키는데 실패함으로써, 미신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 신흥종교가 유행하고 점집과 역술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성경은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지니라”(출 22:18). “복술자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신 18:10,11)고 한다.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신다”(신 18:12)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들은 인간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사상이 횡행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함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회가 사상적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전반이 발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건강한 사회를 구성키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영적 각성과 부흥이 요망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한국교회가 기복주의에서 탈피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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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지 못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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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자들의 함정
- ◇종교다원주의자들은 세상의 모든 종교는 그 추구하는 궁극적 지향점이 다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즉 인간 구원의 진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코란에서 성경과 같은 가르침을 찾고, 불교의 경전에서 기독교 교리와 유사한 구절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는 그 ‘진리의 산’을 오르는 길이 다를 뿐, 그 정상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아주 그럴듯 해 보이지만 사실은 이런게 종교혼합주의의 대표적 발상이다. 예를 들면 성경에는 나무를 사람에 비유한 경우가 더러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포도 나무’에 비유해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그 가지니”(요 15;1,5)라고 했다. 또 이사야는 구속받은 자들을 ‘의의 나무’(사 61:3)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을 ‘땅의 중앙에 선 한 나무’(단 4장)로, 요한계시록은 끝날 사명자를 ‘감람 나무’(계 11:4)로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불교에서 석가모니가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깨달음(正覺)을 얻었다는 것을 인용하며, ‘보리’(菩提)는 곧 진리 곧 ‘깨달음’을 뜻하므로, 보리수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진리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경지에 이른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보리수는 산스크리트어로 보디 드루마((bodhi druma)이다. 이는 ‘진리의 나무’ 또는 ‘깨달은 나무’리는 뜻이다. 그런데 나무 자체가 어떻게 진리가 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것은 나무가 깨달았다는 뜻은 아니고, 석가모니가 보리수로 비유되는 한 부타(깨달은 자)에게서 가르침을 받아 진리를 깨달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런 비유를 끌어다가 이것이 곧 성경이 말하는 바와 같다고 주장하는 해석이 문제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에도 창세기 2장의 에덴에 있던 나무를 여러 가지 사상(思想)으로 보는 영해(靈解)가 있다. 생명 나무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선악 나무는 ‘사단의 미혹’을, 그리고 각종 나무는 ‘각종 철학’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런데 그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그것은 예수가 단순히 생물학적으로 부모에게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품 안에 있던 독생자라는 사실이다. 예수는 ‘말씀’이신 진리 자체로 성육신한 것이고, 싯달타는 인간의 삶의 진리를 고행을 통해 깨달은 부타가 된 것이라는 차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는 “나는 양의 문이라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요 10:8)라고 했다. 예수보다 먼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온 자 중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생명 그 자체이신 하나님의 실상이 곧 아버지임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양들을 바르게 인도할 수 없었다. 하나님의 품안에 있던 예수만이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을 알았던 것이다.◇“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 1:14,18). 그러므로 성경에 계시된 독생자 신관을 모르면 기독교의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사람들이 삼위일체 교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독교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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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다원주의자들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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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 바로세워 교회분열 막아야 산다
- ◇한국기독교에는 수많은 교파와 그 교파에서 갈라진 교단이 약 300여 개에 이른다. 중세의 기독교는 가톨릭에서 그리스 정교회와 나뉘일 때만 해도 세상으로부터 교회의 윤리적 패배라는 말을 들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것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 ‘하나’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는 그 분열이 너무 심하다. 그것은 종교개혁 이후 생겨난 현상이다. 그럼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지향하는 신학과 교리가 다른 교파의 파생은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같은 신학, 같은 교리를 가진 교파 내의 교단분열은 그리스도의 몸을 갈라놓는 죄악이다. 그럼에도 ‘나는 저들과 다르다’면서 딴살림을 차리고 나간다. 그것은 교단을 갈라 거기서 무엇인가 세속적 이득을 챙기려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은 아무것도 다른 것은 없다. 순전히 세속적 욕심 때문이다.◇한국기독교는 개교회도 아무런 원칙도 명분도 없이 분열한다. 특히 장로교는 더 심하다. 그러다보니 ‘무소속’ 교회라는 것들이 많이 생겨났다. 개교회의 회중정치를 하는 교회들과는 달리 장로교는 무소속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장로교는 교회의 모임인 ‘노회’(presbytery)가 중심인 교회이기 때문이다. 노회가 목회자를 양육하고, 양육된 목회자를 파송해 개교회를 조직하는 체제가 장로교회이다. 단순히 개혁주의 또는 칼빈주의 신학과 당회가 구성되어 의회정치를 한다고 해서 장로교라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소속 노회가 없는 장로교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한국교회에는 이토록 많은 무소속 장로교회가 존재할 수 있는가. 그것은 목회자가 교회론이 바로 서 있지 않기 때문이다.◇한국불교에도 교단이 많이 있다. 조계종과 천태종을 비롯 80여개가 넘는다. 그런데 여기에는 불교의 정통성을 갖추지 못한 교단들도 많이 있다. 거기에 소속되어 있는 사찰 가운데 상당수는 '무당 절간'이라 불리는 절간이다. 그것은 그 사찰을 통해 재화를 얻기 위해 세운 종교시설이다. 그래서 무당 절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 절간의 재산은 신도들의 총유재산이 아니다. 그런 절간은 자식에게 대물림할 수도 있고, 그 주인이 부동산으로 매매할 수도 있다. 한국교회에 불교의 무당 절간과 같은 교회들이 늘어나고 있다. 간판은 그럴듯하게 대한예수교장로회 아무개교회, 무슨무슨 교회를 내세우고, 기성 교회처럼 성경도 가르치고 기도도 하며 설교도 하고 헌금을 거두어 교역자의 생활비로 쓴다. 그러다가 어떤 계기로 더 이상 그 교회를 끌고가기 어려워지면 후임자에게 돈을 받고 넘기거나 부동산에 내다 판다.◇창간 27주년을 맞은 본보는 올해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한국교회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획기사를 다루어 왔다. 기복주의와 세속주의를 비판한 것이다. 그것은 오로지 교회론을 바로 세우는데 그 목적이 있다. 교회론만 바로 서면 한국교회는 주님의 말씀대로 세상에빛이 될 수 있다. 작금 한국사회는 교회밖에 희망을 걸데가 없다. 교회마저 이대로 흔들리면 오늘날 한국사회가 어디로 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발행인 강춘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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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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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론’ 바로세워 교회분열 막아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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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 ◇기독교는 2천년 전 팔레스타인 북부 산촌 나사렛에서 태어난 예수를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믿는 것이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희노애락을 느끼며 살다가 당시 지배계급과 권력으로부터 사회적 적폐로 몰려 십자가에 처형되었다. 그런데 기독교는 어찌해서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었는가? 그것은 그가 성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성경에 예언된대로 세상에 태어났고, 그에 대해 성경에 예언된 사건들은 모두 그의 생애에서 성취되었다. 기독교인은 그 나사렛 예수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이시며, 그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곧 우리를 대신해 단번에 드린 희생제사였음을 믿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예수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났음을 믿는 것이다. 이사야 7장 14절은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고 했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은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고 고백한다. 만약에 그가 어떤 사람들의 주장처럼 남녀의 생물학적 원리를 따라 태어났다면 구태여 ‘동정녀’를 강조할 필요가 없이 아브라함(창 13:15, 22:8, 갈 3:16)과 다윗의 자손 요셉의 정혼자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기독교 신앙은 그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유는 그가 처녀에게서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의 성취로 오셨기 때문이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가 하나님의 품에 있던 독생자이심을 믿는 것이다. 요한복음 1장 14절과 18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고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 3장 16절과 18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했다. 하나님의 품 속에 있는 이 독생자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빌 2:6)로서 아무런 흠이 없으신 분이시다. 그는 예언에 따라 임마누엘로 오셨다(사 7:4, 마 1:21-23). 따라서 그가 성육신 하신 후에도 죄는 없으신 분이셨다. 그런데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예수가 ‘성령의 능력으로 죄가 없으신 분이다’라고 하는 망발은 누가에게서 어떻게 나온 말인가. ◇기독교 신앙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난 이 나사렛 예수가 성경에 인류의 구원자로 예언된 메시야, 즉 그리스도임을 믿는 것이다. 사도신경은 “그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고 고백한다. 예수는 성경의 메시야 예언이 모두 자신에 대한 예언임을 분명하게 선언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 5:39). 현재까지의 예언들은 모두 예수에게서 성취되었다. 그리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예언들은 장차 그를 통해 성취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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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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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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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의 종교- 네비우스 선교원리
- ◇오늘의 한국교회가 있기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선교정책은 ‘네비우스 선교방법’이다. 1890년 중국 산동에서 활동하던 미국 장로교 선교사 존 L. 네비우스 박사가 한국의 젊은 선교사들의 모임에 초청돼 제시한 선교원리에 따라, 한국교회는 그 정체성을 ‘평민의 종교’로 자리매김했다. 이를 1893년 조직된 “장로교 정치체제를 채택하는 선교공의회”(장로교공의회)에서 한국의 선교정책으로 채택한 것이다. 당시 어려운 경제적 여건에서도 한국교회가 단기간에 자급(自給), 자치(自治), 자전(自傳)하는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이 네비우스 선교정책에 있었다. 그후 레이놀즈 선교사의 원주민 지도자 양성 원칙과 곽안련 선교사의 ‘한국교회와 네비우스 방법’, ‘선교사업에 대한 네비우스 계획’등이 소개되어 네비우스 박사의 선교원리가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이다.◇네비우스의 이론은 다음과 같다. ① 상류층보다는 근로층을 상대로 전도하는 것이 낫다. ② 부녀자들에게 전도하고, 소녀들을 교육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 제2세의 교육에는 부인들이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③ 초등학교를 경영함으로써 기독교 교육을 위한 여러 가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사 양성에 힘써야 한다. ④ 장차 한국의 목사들도 이런 학교에서 배출될 것이므로 이 점을 더욱 유의하여야 한다. ⑤ 사람을 회개시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좋은 성경번역을 내어놓는 것이 중요하고도 시급한 과제이다. ⑥ 모든 기독교 서적이나 출판물은 한문으로 쓰지 않고 한글로만 쓰도록 한다. ⑦ 생명있는 교회가 되려면 자립적 교회가 되어야 하며, 교인 각자가 더 많은 헌금을 하여 의존하는 정신을 가진 교인의 수가 줄고 자립하려는 교인이 늘게 해야 한다. ⑧ 신자들이 동족들을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대중에게 설교하기보다 전도자를 양성하여야 한다. ⑨ 의료봉사는 환자들을 병원이나 환자의 가정에서 치료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렇게 하는 중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깊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⑩ 치료받을 기회를 놓친 시골 환자는 환자의 집을 찾아가서 치료해 줌으로써 그들에게 전도할 기회를 많게 한다.◇원주민 지도자 양성은 선교의 토착화 원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외국인들은 그 지역의 언어를 익히고, 그 나라의 풍속과 사고 습관을 이해하는데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네비우스의 이러한 원리는 한국교회 지도자 양성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리하여 초기부터 한국인이 한국교회의 목사가 되게 하는 것이 그 목표였다. 그에따라 신학적 수준이 높은 지도자의 양성보다, 성경을 공부하고 깊은 영적 경험을 가진 성령받은 사람이 되게 하는데 힘썼다. 그것이 각 지역에 수 많은 성경학교를 설립한 이유이다. 이후 이들 성경학교가 배출한 한국인 전도자들이 한국교회의 지도자로서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다. 후대에 와서 이 원칙이 일부 지식인 사회로부터 비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중국교회의 삼자정책(自給, 自治, 自傳)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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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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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의 종교- 네비우스 선교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