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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기총이 ‘돈기총’ 되다-황 규 학 목사
    한기총은 한국교회의 대표단체였고, 지금도 대표단체처럼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창시자는 한국교회 역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표적 인물인 한경직 목사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전통은 퇴색되고 한기총이 어느날 금권타락선거가 되면서 돈기총이 되어버렸다. 20여년의 역사를 지나면서 한기총이 자정력을 잃고 정치집단화 되면서 물질과의 유착관계를 끊지 못한 채로 한국교회에 또 하나의 타락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언론사 기자들이나 특정교단 총무들, 다양한 군소교단 대표들, 실세들이 가세하면서 한기총이 금권타락으로 가버린 것이다. 적어도 대표회장이 되기 위해서는 후보자 혼자의 힘 갖고서는 불가능하다. 한기총 실세들의 도움을 얻어야만 대표회장이 가능하다. 한기총 대표회장을 선출하는 선거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그러다 보니 후보자들은 중간 선거 브로커나 실세들에게 돈 봉투를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때 일부 교단총무들이나 교계 정치브로커들은 돈맛을 보고 한기총 대표회장 선거철만 기다리게 되었다. 사실 돈선거를 하지 않으면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되기는 거의 불가능했다. 엄신형 후보같은 경우, 아예 처음부터 자신이 10억을 후원한다고 하면서 출마해 한기총 대표회장에 당선됐다. 또 이광선 목사는 10억 선거자금을 뿌리면 떨어지고, 20억을 뿌리면 당선된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한기총이 ‘돈기총’이 되어버린 것이다. 18대 홍재철 목사가 대표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돈에 대한 구설수가 계속 끊이지 않았다. 2013-2014년 한기총 통장사본을 보면 회원교단이 200개가 넘는데 회원비를 낸 교단은 불과 3~4개 밖에 안된다. 그렇다면 나머지 교단은 어느 통장에 후원금을 내었는가? 지난번 하야방송 정문일침에 나온 윤덕남 전 한기총 총무는 실제 한기총 통장은 약 60~70여 개가 있고, 각 사안마다 분류되었고, 특정인이 한기총으로 후원한다고 하면 후원금 통장 계좌번호를 불러주고, 돈이 입금되면 바로 그 통장은 폐기해 버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런 통장이 몇개가 있는지조차 아무도 모른다. 한기총 통장부원장에 의하면 홍재철 목사는 대표회장 시절 수시로 거액의 후원금을 넣은 것이 드러났다. 2억 정도를 홍목사 개인이 후원했다. 그렇다면 홍 목사 개인이 자기 돈으로 2억을 헌금했는지, 다른 사람들이 준 후원금 2억을 홍 목사 이름으로 낸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더 많은 금액을 후원받았는데 그 일부인 2억만 한기총에 입금한 것인지 이를 자세히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런데다가 윤덕남 목사의 통장에 의하면, 박00목사에게 3,200만이 흘러들어갔는데, 윤 목사는 이것을 한기총 교단가입 실사비라고 했다. 그러나 예장성서총회(총회장 김노아 목사)는 가입시 실사를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실사비란 명목이 한기총 본통장에 입금되지도 않고, 한기총의 후원금마저 여기저기 한기총 관계자 개인의 통장으로 입금되었다는 결론인 셈이다. 한기총 법인으로 만든 통장이 수십개 있다보니 한기총 명의로 된 통장은 맞는데, 실제적으로는 후원금이 한기총으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한기총 사무총장(최충하 목사)도 한기총 본통장에는 김노아 목사가 보낸 거액의 후원금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다. 윤덕남 목사의 통장에서는 약 2억원 이상의 돈이 한기총과 관련된 돈이 들어가 지출되었지만 한기총은 이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했을 때, 한기총 이름으로 만들어진 다른 통장으로 후원금이 이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한기총(대표회장 엄기호 목사)은 우선 통장개혁부터 이루어야 한다. 교리개혁, 교단개혁, 교회개혁을 우선 외치기 전에 비자금 통장을 일소하고, 그동안 후원금이 어디로 새었는지 철저히 조사하고, 그것이 부당하게 개인에게 지출되어 횡령된 돈이 있는지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여 이를 환수하고, 통장개혁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 후원금이 한기총 통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비자금 통장으로 흘러갔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만약 한기총에 비지금 통장이 있다면 한기총 엄기호 대표회장은 한기총 비자금 통장을 바로 정리해야 하고, 경찰에 의뢰해서 비자금 통장내역을 추적해 볼 필요성이 있다. 그래야 한기총이 금권에서 투명해 질 수 있다. 현재 한기총의 문제는 재정투명성의 문제가 우선 해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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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26
  • 예술단 공연이 평화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심 만 섭 목사
    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긴장과 또 국제간의 물밑 접촉과 한반도에 영향을 줄 강대국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때문에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국제 사회가 원하는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해법이 있다면, 비싼(?) 값을 주고서라도 구하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각 나라의 셈법이 따로 있기 때문에 ‘평화 협정’과 그 결실을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우리 예술단이 평양에 가서 공연을 하고 왔다. 이는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북한의 예술공연단이 방남(訪南)한 것에 대한 답례형식으로 다녀 온 것이다. 이런 것이 계기가 되어, 남북 간에 평화 분위기가 조성되고, 남북통일의 전환점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여기에 불시에 참관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가을에는 서울에서 다시 공연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지속적으로 남과 북이 만나고,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동강난 한반도에 평화적 통일이 이뤄지고, 북한 동포들이 자유와 인권이 보장받는 삶을 살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정말 이슬비에 속옷 젖듯이, 기적과 같은 일들이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려면, 전적으로 북한 당국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이번에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본 김정은 위원장은 나름대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고 한 모양이다. 환영하고 웃고 출연자들과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체제 유지와 자신의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일도 할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대부(代父)와도 같은 장성택을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고, 또 공포정치를 위해 상당수의 지도급 인사를 숙청한 것으로 알려진다. 더욱 소름끼치게 하는 것은, 자기의 형도 외국에서 청부살해한 사람이다. 민주 국가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김정은 정권은 세계인들이 그렇게도 바라는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완전 핵 폐기를 선언하고, 이를 즉각 시행에 옮겨야 한다. 또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고령의 이산가족들이 자유롭게 만나고 통행하도록 적극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종교와 신앙의 자유’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 북한의 기독교 박해는 오픈도어선교회에 의하면, 지난 2002년 이후 지금까지 17년 동안 1위를 차지하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종교와 신앙의 자유가 없는 곳은 곧 지옥과 같은 것이다.예술은 정치와 이념과 사상을 떠나, 뭇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게 하고, 악인들도 잠시는 인간다운 모습으로 돌아오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김정은의 아버지인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의 경우를 보면, 예술은 예술이고, 독재정권은 정권대로 유지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2002년 한국 대통령 특사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났을 때, 그는 자랑스럽게 한국의 드라마, 가수, 노래, 영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한국의 중요한 드라마도 빼놓지 않고 볼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독재체제는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다. 주민들의 삶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이번 평양공연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우리 걸 그룹의 이름을 거명하고, 예술단과 사진도 함께 찍는 등 친밀감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노동신문에는 예술단과 예술단원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같이 ‘쇼’를 감상해도, 북한은 이를 주민들에게 공개할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우리는 남북 간에 예술단이 한번 씩 오갔다고, 흥분되거나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북한은 특정인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보여진 ‘쇼’ 한번으로 변화될 나라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우리는 더 한반도 평화를 위한, 안보의식을 가져야 하며,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의 속내를 다 드러내 보이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성경에 보면, 유다의 히스기야왕은 바벨론 사자에게 왕궁의 모든 비밀을 공개하였다가, 결국 멸망의 길로 간 것(이사야39:1~2)을 두려운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쇼’는 ‘쇼’로 보는 것이, 가장 ‘쇼’를 잘 보는 것이 된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구하는 기도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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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4-11
  • 시험대에 오른 몇 가지 중대사 -임 영 천 목사
    지금 우리나라는 시험대에 오른 몇 가지 중대사들로 인해 힘겨워하고 있다. 그 중대사들이 그 어떤 해결점을 찾느냐 여부에 따라 우리나라의 앞날도 그 어떤 양상으로든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첫 번째는 요즘 한창 불어닥치고 있는 성추문의 회오리바람이다. 이 바람이 전례 없이 너무 거세어서 관련 인사들이 극도로 휘청거리고 있다. 문화계(문학계)의 두 거장들이라고 할 고은 시인과 이윤택 연출가(극작가)가 생의 가장 위태로운 벼랑에 몰려 한파를 맞고 있다. 고(高) 시인은 중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詩)들이 삭제되는 것은 물론, 만년 노벨문학상 후보자로서의 위치마저 완전히 위협받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문화 게릴라’란 칭호를 받으며 연극계에서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던 이(李) 연출가도 옛날의 그 호기를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의 시대가 이미 지나가버렸다는 뜻인가. 그런가 하면 중년의 연예인 조민기 배우(탤런트)는 자꾸 불어나는 성추문 폭로를 견뎌내지 못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젊은 나이로 보아서도 참으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성추문 의혹이 정치권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이미 그 지사직을 사임하였고, 검찰에 자진 출두하여 심문을 받았으며 오래지 않아 법정에도 서게 될 처지에 놓여 있다. 앞으로 유력한 대권 후보로도 점쳐지던 그로서는 정말 절망스런 일이 아닐 수 없겠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는 지금 3명의 전직 대통령과 관련된 사건들로 인하여 골머리를 앓고 있는 처지이기도 하다. 중대사들이므로 사직 당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음은 당연한 것 같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에 이어서 헌재의 파면이 뒤따랐고 지금은 수뢰 혐의등으로 결심 공판만 남겨두고 있는 실정이다. 직전 대통령의 정치 행보의 말로(末路)가 매우 비극적이라고 하겠다. 한편 이명박 전 대통령은 3월14일자로 검찰의 소환에 응했고, 앞으로 수일 내 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남아 있는 실정이다. 전직 대통령으로서 수뢰나 횡령… 등 갖가지 혐의에 의해 사직 당국의 부름에 응해야 하는 것 자체가 매우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다스의 실소유주 문제나 BBK 관련 사건 등에 연루되어 많은 이들의 의혹의 눈총을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검찰 출두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로 보이기도 한다. 다음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 임박에 관한 사안이다. 그는 과거에 이미 재판을 받고 실형에 처해진 바 있었다. 그랬던 그가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 자신의 지난 허물을 부정하는 글을 그의 회고록을 통해 발표한 것이 그 책의 판매 가처분 신청을 뒤따르게 만들었고, 그 책의 판매가 저지당하는 결과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굴하지 않고 수정본 회고록을 재출간했고 그에 반발한 5・18 단체의 고소에 의해 그는 다시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검찰 출두 명령이 있었으나 그는 두 차례 불응하였다. 이제 세 번째 출두 명령에 응해야 할 국면에 처해 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지 모두 지대한 관심들을 기울이고 있는 편이다.마지막으로 세 번째 중대사는 평창올림픽 이후 지속되고 있는 남북 화해무드 조성의 긍정적 분위기이다. 올림픽 행사 기간에 북의 고위급 인사들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었고, 그에 대한 답방 형식으로 우리나라의 고위급 인사들이 평양엘 들러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고 돌아왔다. 그 후 정의용, 서훈 두 특사들이 미국으로 가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함으로써 앞으로 남북 대표, 나아가 북미 대표 간의 회동(회담)이 국제적인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하였다. 비핵화, 곧 핵폐기 단계의 기적적인 결과가 나타날 것인가, 아니면 과거처럼 도로아미타불로 그쳐버릴 것인가, 전 세계인의 관심이 비등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세 가지의 중대사들에 대하여 간략하게 이야기해 보았다. 이 중대사들은 앞으로 어떤 해결책이 나오느냐에 따라 우리나라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수도 있는, 이를테면 시험대에 올라있는 중차대한 사안들이라고 보겠다. 소위 미투(Me Too) 운동이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인권 증진이나 민주화로의 발전에 어느 정도 기여할 것인지, 아니면 상처만을 남겨 놓고 흐지부지되고 말 것인지 지금 우리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세 분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소환과 수사, 또는 판결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평등권 확립과 민주화 진로에 어느 만큼 기여할 수 있을 것인지 우리는 애써 지켜보게 될 것이다. 현 정부는 과거 몇 차례 실패한 적이 있었다곤 하더라도 이번엔 꼭 성공하고 말 것이란 각오로 남북 문제와 비핵화의 결전에 뛰어들어 기필코 기적을 이뤄내 주기를 우리는 주문하고 또 기대도 해 본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3-22
  • 미투(MeToo)운동, 사과와 용서하는 계기 되기를
    최근 우리 사회가 미투(MeToo-나도 성폭행/성추행을 당했다)운동이 활발하다. 이는 지난 1월 29일 현직 서 모 검사가 자신이 2010년 남자 선배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히면서 불거졌다. 서 검사가 지난 7년 동안 이런 아픔을 감춰오면서도 느꼈을 고통이 안타깝다. 그리고 심각한 것은, 미투(MeToo)운동의 대상자들이 우리 사회 여러 영역에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문학계, 영화계, 연극계, 기업, 종교계, 사회 전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 사례 가운데, 여성을 성적 도구로 생각하여, 그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여러 가지 불이익을 주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에 분노가 일어난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들을 보면, 문학계의 유명인사인 고 모씨, 문화예술계의 연출가 이 모씨, 배우 이 모씨, 윤 모씨, 김 모씨, 예대 교수 한 모씨, 인간문화재 하 모씨, 배우 출신 조 모씨, 또 다른 조 모씨, 오 모씨, 화백 박 모씨, 극단 대표 최 모씨 등이 관련자로 지목되면서 세간에 관심을 끌고 있다. 거기에다 종교계에서도 정의/양심을 부르짖었던 한 모 신부가 이 대열에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성적 피해와 수치심을 당해야 하는 사회라면, 그리고 이것을 강자의 논리로 또 다른 피해를 유발시켰다며, 이를 당장 바로 잡는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성추행이나 성폭력도 문제지만, 여성 앞에서 ‘성희롱’과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도 문제이다.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던 인사가 청와대에도 있고, 근자에 임명된 법원의 고위직도 거기에 포함되고 있는데, 그에 대한 명확한 조치가 없는 것은 유감이다. 정부나 정치권에서는 진상 규명과 관계자 처벌, 성폭력 문제 근절, 성범죄 없는 일터 만들기를 약속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꾸준하게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우선은 여성을 직장 내에서 ‘성적 대상’으로 보지 않는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다. 여성을 같은 인격체의 동료로 볼 때,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우를 범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두 번째는 이런 사건이 벌어지면, ‘쉬쉬’하지 말고 즉각적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리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당사자가 진정으로 깊이 사과하고, 또 용서하는 마음을 갖게 되므로, 오랫동안 가져야 할 깊은 상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세 번째는 여성을 ‘성의 상품’으로 만들어 가는 현상을 지양(止揚)해야 한다. 요즘 우리 사회는 여성을 지나치게 성적으로 노출시켜, ‘성의 상품화’를 하는 것이 유행처럼 되고 있다. 이런 것들이 여성을 함부로 대하게 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네 번째는 정부와 공공 기관에서부터, ‘성적 문제’의 전력(前歷)이 있는 인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공직에서 퇴출시키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미투(MeToo)운동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기독교계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성경 십계명에서는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탐내지 말라’(출20:17)고 하신다. 지난 번 서 검사에게 성추행을 한 당사자로 지목된 인사가 기독교인이라고 알려져 매우 곤혹스러웠다. 우리는 이를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모든 범죄가 인간의 잘못된 욕심과 오도된 상황 인식에서부터 벌어짐을 깊이 깨닫고, 다시는 이런 불미스럽고, 불행한 사건들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지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차제에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은 것은, 죄와 잘못에 대해서는 밝히고 고치되, 어렵고 힘들어도, 상대편을 용서하는 마음도 갖게 되기를 조심스럽게 바란다. 이는 무조건 죄를 덮자는 것이 아니라, 용서하는 마음이 정죄하는 마음보다 훨씬 크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일에는 진보나 보수를 떠나 잘못에 대한 지적을 분명하게 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인사들이 대부분 진보성을 가진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여성계나 여성가족부가 즉각 반응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여성계가 서 모 검사 때에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성명서를 냄) 정의와 바른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도 진보/보수로 편을 가르는가? 의아했었다. 또 하나는 미투(MeToo)운동이 남성을 혐오하거나 공격하는 수단이 되지 않고, 남녀 상호 간에 존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데, 촉매제 역할이 되기를 바란다. 미투(MeToo)운동은 분명히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것인데, 이를 통하여 관행이나 악습들이 사라지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울러 부당하게, 지금까지 피해를 당한 여성들의 아픔에 위로를 보낸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3-08
  • 설날의 한 평화 메시지-임 영 천 목사
    우리의 최대 민속 명절인 설날(구정)을 맞이하여 평소 제각기 흩어져 있던 식구들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아들과 딸들이 부모 집이라고 찾아오고, 손자 손녀들까지 대동하고서 옛집으로 밀어닥쳤다. 3대가 한자리에 모여 담소하고 맛난 음식도 들게 되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건강증진에 보태어 쓰시라고 금일봉씩을 전하고, 부모는 또 손자, 손녀들에게 세뱃돈이라고 각기 봉투를 건네니 그 역시 즐겁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가정에 따라 윷과 같은 놀이까지 곁들인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수 없겠다. 그런데 2018년 올해의 설날에는 단순히 민속 명절의 의미만이 아닌 또 다른 뜻이 곁들여져 있어서 그 기쁨과 즐거움을 크게 더해 주었다. 설날을 전후하여 국제 스포츠대회인 동계 올림픽이 강원도의 평창에서 열리고 있어서 이를 티브이(TV)로나마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국민 모두의 또 하나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어느 해 설날에 우리가 주도한 이런 큰 국제 스포츠대회를 우리나라에 불러들여 함께 관람할 수 있었던 때가 따로 있었던가. 고작해야 우리들끼리만의 민속씨름대회 정도가 아니었던가. 무술년 올해의 설날은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전무후무한 경사가 겹친 대단한 민속명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비슷한 시기에 이웃나라 중국에서 춘절이라고 하여 떠들썩한 명절 행사가 치러지고는 있지만, 그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까지 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다 보냈다고 하는 보도가 나돌기는 했지만, 그러나 우리나라의 설날과 같은 매우 의의가 큰 일대 겹경사가 그들의 이번 명절에서도 있었다고는 볼 수 없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무술년 설날의 일대 겹경사는 부득불 한국인들만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셈이다.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기쁨을 만끽하게 되었다. 과거 다른 나라에서 행해졌던 동계 올림픽들에서는 쇼트트랙 경기에서 금메달이 많이 나오거나, 아니라면 이상화가 주도한 여자 빙속 경기에서, 그리고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경기 등에서 우리들이 큰 기쁨을 맛보았었다. 모두 소위 ‘빙상’ 경기들을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우리들이 과거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설상’ 경기에서까지 금메달이 나왔다고 하는 사실은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큰 일대 수확이라고 하겠다. 스케이트가 아닌 썰매의 일종인 스켈레톤 경기에서의 금메달리스트 윤성범의 등장은 피겨스케이팅의 퀸이었던 김연아의 요즘의 공백을 사실상 메꾸어 준 일대 쾌거라고 보아야겠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 보아야 알겠지만, 여자 컬링 선수단의 새로운 등장 역시 국민들의 가슴에 시원한 청량제로 작용하고 있음이 또한 사실이라고 하겠다.그러나 이번 평창 올림픽에서 특별히 예찬되어야 할 점은 무어니 무어니 해도 남/북한의 화해무드 조성이었다고 판단된다. 어느 누군가가 우리의 이번 평창올림픽을 평양올림픽이란 말로 폄하하려고 시도했다 하더라도, 엄연한 사실은, 평창올림픽에 대한 국제적인 찬사와 이 스포츠 행사에 대한 전 세계적인 기대와 희망이라고 보아야겠다. 북한의 핵 위협에 불안해하고 있는 전 세계인들은 이번의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보여준 남/북의 화해무드 조성이 결코 일시적이거나 일회적인 전시효과에 그치지 말고 올림픽 폐회 이후에도 지속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그들은 모두 트럼프의 돌발적인 발언과 예기치 않은 어떤 행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동시에 궁지에 몰린 북한의, 마치 구석에 몰린 쥐가 고양이에게 덤벼들 듯 하는 어떤 돌발적 행동이 미국과의 사이에서 행여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 와중에 핵무기라고는 전혀 지니고 있지도 않은 남한마저 예기치 않은 극단의 분쟁에 휘말리는 일은 더욱 없기를 바라고 있을 터이다. 세계인들은 한마디로 세계 평화의 도래를 원하고 있다. 그들은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끔찍한 재앙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제3차대전의 화약고로 남/북한이 불가피하게 대두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지난 6.25 한국전쟁에 전 세계의 청년들이 참전해 허다히 목숨을 잃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들은 한국전쟁에 대한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평화를 외쳐대고 있다. 그 후손들이 지금 평창의 올림픽에 참가해 세계의 평화를 몸으로 부르짖고 있는 셈이다. 남북 아이스하키 혼성팀이 다른 모든 나라의 팀들에게 전패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의 과거의 허물(죄과)에 대한 진정한 사죄의 의미라고 해석해 본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2-23
  • 한국교회의 ‘Me to’ 운동-홍 성 표 목사
    우리는 요즘 며칠 사이에 충격적이나 이미 수 없이 보고 들은 사회적 이슈가 들끓는 점을 목격하고 있다. 그것은 죄인을 다루고 법을 집행하는 소위 ‘사회정의 구현’을 목적과 목표로 일하고 있는 준사법기관의 검차내부의 성적추행이나 성폭행 사건을 다름 아닌 현직 여검사로부터 듣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히 소설형식을 빌어 고백을 통한 검찰 조직 내부의 실상을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유명 언론사의 매인 뉴스룸에 나와서 앵커와의 대담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명백히 들어 내놓고 단회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고백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글과 뉴스를 통해서 나라를 온 통 들쑤시고 있고 평창 올림픽 뉴스를 대체하고 있다. 남북의 극단적 기장과 전쟁고조의 분위기 속에서 단절 되었던 남북의 대화가 오래 만에 해빙을 맞은 시기에 이 뉴스는 평창 뉴스의 반감을 덜기에 충분하다. 국정 농단과 촛불혁명을 통해서 출현한 문재인 정부가 9개월을 맞고 있는 과정에서 반역사적 적폐청산은 계속 되고 이명박의 다스와 국정원의 특수 활동비의 비리와 부패를 파헤치고 있다. 검찰의 수사가 시간이 가면 갈수록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사건은 박근혜와 최순실을 중심으로 한 국정농단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국가적 상처에 분노를 더해 간다. 그런데 현직 검찰조직의 현직 검사가 8년 전에 있었던 검찰 조직의 최고 책임자인 법무부 장관과 검찰국장의 공공의 장소에서의 여검사에 대한 공공연한 성추행이 만천하에 고백되고 있는 것이다. 상명하복 일사불란한 조직공동체에서 여성이라는 가부장적 성적학대 행위는 아마도 밝혀진 것은 약과일 것이다. 아직도 여성이란 성적차별의 대상으로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오랜 동안 남성중심의 문화에 억눌리고 체념할 수밖에 없는 여성의 자리는 가슴앓이와 말 못할 한들로 가득하다. 한 여가수의 ‘여자의 일생’ 이라는 가요에서 보듯이 여자는 무조건 참고 살아야 하는 식의 삶의 현장에서 서리서리 한들이 쌓여 온 것이 사실이다. 지아비를 섬기고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칠거지악’의 울타리 속에서 살아 온 여인들의 한이 무엇으로 쉽게 풀리겠는가? 그렇기에 서지현 검사의 고백은 다시 한 번 우리 모두에게 충격으로 다가 온다. ‘검찰공화국’에서 당한 인권의 문제들이 역사에 가득하다. 죄 없는 자들을 간첩으로 몰아 재판도 없이 사형에 처한 ‘인혁당’ 사건 뿐 아니라 불의한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며 저지른 숱한 죄들이 켜켜이 쌓여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동료 현직 검사를 농락한다면 힘없는 민중들을 얼마나 농락하고 멸시와 무시를 하며 거드름을 피우며 권력의 칼끝을 휘둘렀겠는가? 수사권과 기소권 종결권을 모두 가지고 있는 검찰공화국의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무소불위의 권력집단 속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벌벌 떨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의 핵심은 이것이다. 조직의 권력의 힘을 통한 공적인 폭력이 산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내세워서 얼마나 많은 성추행과 성폭행, 성적 억압을 자행해 왔는가? 한국교회의 도덕 불감증과 신을 앞세운 무소불위의 권력을 통해서 폭력을 행사해 온 죄들의 낱낱이 회개하는 일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성직을 팔고, 교수라는 이름으로, 모든 조직의 힘으로 자행해 온 우리 사회의 공적 폭력이 얼마나 많은 생명들을 억압하고, 병들게 하며, 죽음으로 내 몰았는가를 철저히 회개하는 일 없이 한국교회의 내일은 기대할 수 없다. 교회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진정한 자유를 살지 못하는 한 그것은 성서적이지도 않고 정의와 사랑을 가르칠 아무런 명분도 능력도 없다. 교회와 신학교에서부터 이런 성적 범죄를 덮어 두어서는 안 된다. 이런 범죄가 있는 사람은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 내의 도덕불감증은 교회를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 교회사 속에서의 성폭력의 문제는 부끄러운 일들이 너무나 많다 가부장적 문화와 남성 중심의 문화 속에서 교회도 이러한 모순을 벗어나지 못하고 교권이나 성직의 힘을 통해서 숱한 범죄적 행위를 저질러 왔다. 대개의 경우 성폭력은 가진 자들과 힘 있는 자들의 자본과 권력 혹은 성차별에 의해서 자행되고 있다. 교회가 이점에서 획기적인 고백과 변화를 적극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2-09
  • 평창 올림픽과 남북교류의 전망/홍 성 표 목사
    김정은의 파격적인 신년사와 1.9일의 장관급 고위실무회담을 통해서 2년여 동안 중단된 남북의 대화의 자리가 재개 되었다. 마지막 남북 만남의 보루였던 개성공단을 전격적으로 폐쇄하고 빗장을 잠근 반역사적인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 사건을 촛불혁명으로 극복하고 들어선 문 정부의 2년 차에 이루어진 카이로스적 사건이다. 이러한 결정적 고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이 단초가 된다. 그것이 하나의 이유든 동기든, 혹은 핑계거리든 남북의 얼어붙은 강물을 뚫고 평화의 이야기가 재개 된 준비 된 자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임을 자임하고 쌓여 있는 반역사적 반사회적 적폐청산들을 연일 언론 매체에 쏟아 놓고 있다. 검찰개혁과 사법부의 개혁, 공정위를 통한 재벌의 횡포와 중소기업 간의 바른 관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제도적 개선과 방향 모색 등 그동안 불의와 부패의 썩은 고리들을 끊고 정경유착을 통해서 자본과 권력의 동반 폭력들을 거두어 내고자 한다. 친일과 독재의 세력들은 몸부림을 치면서 이러한 개혁 드라이브를 시기 질투하며 추악한 행패들을 연출하고 있다. 새로운 권력구조 개편을 위하여 개헌을 내세우고 6월 지방선거와 함께 매듭을 짓고자 한다. 검찰공화국의 횡포와 불의와 폭력을 통한 그동안의 민중들에 대한 폭압과 살아 있는 권력에 아부아첨하며 굳어진 고리들도 거두어 내고자 한다. 경찰과의 권력 균형들을 이루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경찰들은 법을 지키며 억울한 민중들의 삶을 보살펴 왔는가? 개인과 개인 간의 폭력들로 인하여 상처와 죽음이 닥치기도 하지만 국가의 공권력의 폭력으로 인한 죽음들이 얼마나 많았던 가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일제의 군국주의 아래에서 벌어진 전쟁범죄, 그중에서도 성노예의 잔혹한 일들에 대한 진정한 사좌와 반성과 회개가 없는 마당에서 아직도 정의의 근거는 서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산적한 문제들이 쌓여 있지만 남북의 만남과 대화는 평창의 화두로 시작 되었고 지금 이 시간에도 차관급 실무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이산가족의 상봉문제 등과 함께 남쪽에서 요구하는 한반도의 비핵화 문제가 있다. 북쪽의 요구는 한미 군사훈련의 중단과 한반도 평화협정 등이 있고 자주적인 우리들끼리의 민족 주체적 통일의 길을 지향하자는 요구들이 있다. 여기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중국과 기지개를 크게 펴고 있는 러시아와 한반도의 분단을 통하여 새로운 군국주의 부화를 용트림 하는 일본 등의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들의 높은 담들이 있다. 1. 9일 회담에서 남북은 3개항의 공동보도문을 내고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한반도 긴장 완화 공동 노력, 남북 당사자 해결 원칙의 합의 가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합의 구체적인 실천 방안 등을 지금 실무회담을 통해서 결론을 도출하고자 하고 있다. 남북의 공동 단일팀과 관련해서 여자 아이스학키 선수들과 전부와의 갈등 관계가 있다. 어떤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고 본다. 선수들 각자의 땀 흘림과 소위 인권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고 새롭게 열린 모처럼의 남북관계의 시작을 소홀히 할 수도 없다. 서로의 양보와 우선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지혜를 모아서 할 일이다. 역사의 앞날은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우리 앞에 놓인 사건들이 어떻게 전개 될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한 가지는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길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의 최고의 과제이고 사명이다. 국가당국의 주도로 시작되는 통일운동만으로는 남북의 길이 형식으로 그치기 십상이다. 민중을 주도로 하는 민간 운동이 활성화 되어야 한다. 모든 남북의 분야들의 교류가 시작되고 조건 없는 만남들이 물결처럼 파도쳐야 한다. 국제적인 환경과 관계들을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남북 주체들이 만나는 것이 이 모든 것의 근본적 해결의 시작이고 완성을 향하여 가는 길이다. 만남의 시작이 변질 되어서는 안 된다. 만남은 지속되어야 하고 확장 되어야 하며 활성화 되어야 한다. 평창이 진정한 남북의 만남과 평화 정착의 흔들리지 않는 토대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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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2-03
  • ‘통일’ 만남이 답이다/홍 성 표 목사
    2018년 1월 1일은 진실로 역사적인 날이다. 반역사적, 반민족적, 반민중적 정권 이래 무려 10년 만에 새 역사가 열리는 해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만의 역사가 반복되거나 번복되는 역사가 아니다. 분명히 역사는 새날을 통해서 새롭게 되어 진다. 거꾸로 가고 후퇴하는 역사일 지라도 그 것은 새 날과 새 역사를 잉태하고 만다. 배신과 절망의 역사일 지라도 반드시 옳음과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는 과정이다. 흔들리는 갈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어지럽다. 우리는 갈대만 보는 것이 아니라 희망과 생명이 움트는 새로움을 본다. 인간들이 만든 과학과 이성의 문명의 끝이 어디인지 누구도 모르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핵전쟁과 원전사고, 그리고 탐욕으로 빚어지는 생태계의 파괴와 자연의 오염으로 인한 지구의 파멸과 생명체의 단절이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창조의 과정은 멈추지 않고 생명과 희망의 씨앗은 다시 태어날 것이다. 일제치하의 갖은 고초와 죽음과 어둠의 진흙탕에서도 하나님나라 운동을 그치지 않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외세에 등진 해방과 독립을 맞이하였다. 미소 양 강대국들에 의한 찬탁과 반탁으로 나누어지고 사회주의 운동의 독립주의 진영과 민족주의 독립주의 진영 운동가들로 하여금 남북은 갈라지고 찢겨진 채로 진정한 해방과 독립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분단과 해방공간에서의 미군정과 남북의 서로 다른 두 체제는 1992년 유엔에 의해서 두 개의 나라로 승인받게 된다. 그리고 분단 73년을 살고 있다. 우리의 통일운동은 진정한 한반도의 독립운동이다. 우리는 독일과는 다르고 베트남처럼 민족상잔을 겪은 분단의 처절한 아픔을 겪은 민족이다. 그리고 주지하는바 지구상에서 마지막 분단국가의 오명을 씻지 못하고 있다. 이승만과 미군정의 결탁, 박정희의 군부 쿠테타와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민주화로 가는 길목에서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 10년간을 휘둘려 왔다. 지난 1년간의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역사의 적폐청산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친일과 반역사적 , 반인륜적 독재와 학살정권과 함께 다시 반역사적, 반민족적 정권의 찌꺼기들을 청산하지 않고는 역사가 바로 설 수 없고, 역사가 바로 서지 않고는 진정한 독립의 성취와 분단을 극복하는 한반도의 봄은 오지 않는다. 한반도의 봄은 통일이다. 그 통일은 단순히 국토의 통일이 아니라 민족의 지난 아픔들을 치유하고 가슴을 활짝 열어 진정한 용서와 화해를 이루는 구체적인 실천에 있다. 진정한 평화는 차별로서는 가능하지 않다.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받아주며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는 것이다. 그것은 ‘나와 너’의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는 다함없는 사랑의 마음이며 행도의 실천인 것이다. 이러한 분단의 극복을 통해서 통리로 가는 답은 남북이 조건 없이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만남을 통해서 밥상공동체를 이루고 먹고 마시며 속내와 진심을 털어놓고 피차 도울 것은 도우며 함께 더불어의 삶을 순차적으로 실현해 가는 일이다. 말만 무성하고 삶의 실천이 없는 것은 무의미한 소음이 될 뿐이다. 만나서 스킨쉽이 있고 부딪히고 논쟁도 하면서, 타협과 협상을 해가며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 평창올림픽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기화로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하고 2015년 이후 끊어진 소통의 전화를 복원하며 이산가족의 상봉과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의 군사 무력충돌의 상호불가침 약속을 하며 민간교류 운동을 활성화 하고, 개성공단을 다시 열며 금강산 관광의 재개해야 한다. 만나야 사랑도 하고 생명도 잉태한다. 우리는 북조선의 김정은 북한노동당 위원장의 남북 만남의 신년사를 단순한 전략과 제스처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미중과 러일 등 주변 강대국과의 지혜로운 외교채널들을 통해서 이 기회를 분단의 벽을 헐고 통일로 가는 호기로 삼아야 한다. 여기에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고 교파의 다름이 따로 없으며, 종파의 차이가 따로 없다. 단순히 한미동맹의 차원이 아니라 미중과 북의 비위를 맞추는 차원이 아니라 민족의 역사적 과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중대한 시 점, 카이로스의 카이로스로 받아 들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성패가 바로 이 문제에 달려 있고 북의 조평통 위원장 리선권과 남의 통일부장관 조명균의 첫 회담을 통해서 실타래처럼 얽인 문제의 단초를 풀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2018년 1월 9일 판문점 평화의 집이 민족의 새 역사를 여는 분단극복과 통일로 가는 잉태의 날 되기를 기도한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18-01-22
  • 파사현정의 성탄절을 보내며-임 영 천 목사
    정유년(2017) 올해의 성탄절은 다른 해의 성탄절에 비해 크게 다른 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종교개혁 5백주년의 해에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촛불집회가 새 정부를 앞당겨 탄생시킨 해에 맞이하는 성탄절이라는 점이다. 이 첫째와 둘째의 일들은 앞으로 다시는 일어날 수 없는 것들이므로 그 의미와 감회 또한 그만큼 크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성탄절은 한 해의 마지막 달(12월)에 있고, 또 날짜도 하순(下旬, 25일)에 위치해 있으므로 이날을 우리가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지난 1년을 반성하는(되돌아보는) 날로 삼는 것도 좋을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5백 년 전(1517)에 소위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이때의 프로테스탄트는 곧 로마 가톨릭에 대한 프로테스트(저항)이었다. 기성(旣成) 가톨릭교에 대한 신생(新生) 개신교의 항거였던 것이다. 기성 가톨릭교회의 어떠한 면에 대한 항거였느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기성교회(가톨릭)의 악습에 대한 항거였다고 할 것이다. 악습이란 곧 나쁜(좋지 않은) 습관이다. 당시 가톨릭교회가 지니고 있던 악습들 중의 하나는 바로 ‘세습’ 문제였다고 하겠다. 세습이란 기득권을 무비판적으로 대를 이어 후대에게 물려주는 일이다. 객관적으로 보아 당시(중세)의 기성교회는 부패할 대로 부패했는데 그런 기성교회를 선대의 주교가 후대의 주교에게, 마치 아비가 자식에게 그러하듯 아무런 거리낌(뉘우침) 없이 주교좌 성당을 물려주곤 했던 것이다. 그러니 대(代)가 거듭될수록 더욱 타락할 수밖엔…. 결국 종교개혁이란 역풍을 맞을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던 셈이다. 종교개혁 기념행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과거사로 기념하는 일만이 아니라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 교회 지도자들이 기념의 행사에만 열을 올리지,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일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니 개신교 울안의 교회세습이란 악습이 자리를 잡아가더라도 무관심 일변도로 지나쳐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대형교회들의 교회세습은 ‘당신들의 천국’ 만들기에 불과할 뿐 우리 모두의 천국(하나님 나라) 건설과는 무관하다. 성탄절 아기 예수께서 그들을 바라보실 때 “저 지독한 욕심꾸러기들!”이란 반응밖에는 달리 무슨 긍정적 반응을 따로 보이실 것 같지 않다. 그런데 그 ‘욕심’이란 것에 대해선 또 어떻게 해석되었던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고 그 결말의 두려움이 이미 적시(摘示)되지 않았던가?작년 10월 29일에 이른바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그것이 끝내는 국회를 중심으로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뤄내더니, 다음 단계로는 헌재(憲裁)에서의 파면마저 이끌어내어 전(前) 대통령의 권좌로부터의 완전 실각을 성사시켰다. 그리고는 금년 5월 10일에 문 대통령의 새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과거의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정치적 혁신을 이루겠다고 추진하고 있는 강력한 개혁정책이 국민들로부터 지금까지 높은(70% 이상) 지지를 받아왔다. 촛불집회의 정신이 바로 풀뿌리 민주주의의 정신이었기 때문에 새 정부가 국민들로부터 높은 지지를 받아왔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결과라고 보아야겠다. 적폐청산(積弊淸算)이란 말을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해 보자면 곧 파사현정(破邪顯正)이 된다고 보겠다. 교수신문이 내년의 사자성어로 파사현정을 뽑았다고 한다. 그것은 올해의 적폐청산을 내년에도 파사현정으로 계승하자는 뜻이 되겠다. 교수신문을 통해 전국 교수들이 보여준 진의도 알고 보면 촛불민심과 같다고 생각된다. 적폐는 청산되어야 하며, 또한 사악(사특)한 세력은 파멸되고 올바른 이들이 크게 드러나야 한다는 뜻이다. 지식인이요 지성인인 전국 교수들이 풀뿌리 서민들의 촛불혁명 대열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비교적 다른 이익집단에 덜 유착되어 있고 이해관계에 있어서 비교적 거리를 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도자 모세가 적폐세력인 애굽 왕 바로 군대를 홍해에 수장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광야로 진격하고 있었을 때, 그 성과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것으로 보이자 불만세력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며 모세를 배척하기 시작했다(민수기 14장). 지금 우리나라의 사정이 그와 매우 흡사한 것 같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이란 말이 있듯이, 물색 모르고 날뛰는 이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향해 진격하는 모세의 군대를 훼방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의 진격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방해꾼들의 패배와 파멸(민 14:26~)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12-23
  • 큰 십자가, 작은 십자가-강 경 신 목사
    “큰 교회는 십자가, 누가 이 큰 십자가를 지겠나” 이 말은 최근에 세습 문제로 시끄러운 한 대형교회의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다. 기독교 안팎에서 세습에 대한 부정적인 기류가 여전한데, 이 교회는 정면돌파로 세습을 감행하였다. 이로 인해 온갖 말들이 무성하고, 이 일이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적 화제 거리가 되었다. 언론과 TV매체들이 연일 이 문제를 보도하면서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눈총과 지탄을 받았다. 어쩌면, 종교개혁 5백주년의 해에 그 교회는 가장 큰 일(?)을 행하였다. 이제 그 교회는 한국교회의 선두주자가 되어, 부흥의 견인차가 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교회대물림은 결코 사욕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었다고 강변할 것이다. 부흥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교회들과 가슴을 졸이며 애를 태우는 목회자들에게 “우리를 보라”고 자랑하며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어쩌랴! 세상의 시선이 차갑고, 사람들이 교회를 외면하는데, 무슨 수로 다시 신뢰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 욕을 먹고 비난을 받아도 좋으니 내 교회만 더 크게 되고 잘되면 된다는 말인가? 최근에 발표된 ‘2017 소형교회 리포트’는 한국교회 목회자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 준다. 이 설문조사에 응답한 목회자들의 거의 절반은 현 상태로 교회가 유지될 수 있을 지를 심각하게 우려하며 걱정하고 있다. 이들은 사례비를 제대로 받지 못할 정도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교회가 성장하지 않아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한 가지 긍정적인 점은 이들이 추구하는 목회가 ‘교회성장’(33.5%) 보다는 ‘건강한 교회’(66.5%)라는 것이다. 비록 교인 수가 늘지 않아 교회성장이 안되고 교회 재정이 열악하여 사례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도, “자신의 목회에 만족한다”(73.3%)고 한다. 이들에게 십자가는 무엇일까? 그들은 교회가 작아서 작은 십자가를 져서 만족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들에게 십자가는 더욱 크고 무거운 것이다. 과연 십자가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십자가는 참 십자가가 아니다. 나아가 십자가는 사명이다. 내가 좋아서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싫어도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이다. 내 생각과 뜻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지는 것이다. 아무리 십자가가 고난과 희생을 요구할지라도 묵묵히 지고 따르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 한국교회는 십자가를 너도 나도 지기를 원하는 대중적인 십자가로 바꾸었다. 십자가를 성공의 통로요, 번영의 도구요, 영광의 표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큰 교회를 성공적인 기업처럼 부러워하며,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성공한 CEO처럼 우러러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아니다. 주님의 뜻이 아니다. 이들이 큰 교회를 세웠다고 해서 큰 십자가를 지는 것도 아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지라고 명령하신 십자가는 고난의 십자가이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시대가 달라져도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대로 십자가이다. 고난의 십자가가 영광의 십자가가 될 수 없다. 다시 대림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주님을 기다리는가? 오늘의 교회는 주님의 오심을 어떻게 맞이하는가? 우리에게 십자가의 신앙을 올곧게 가르쳐 주신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시를 쓰셨다. “주님을 따르다가 옥에 갇히어/ 온갖 고생 다하다가 죽을지라도/ 십자가의 큰 고난 생각을 하면/ 아직도 내 고생이 부족하구나/ 깨어라. 주께서 오신다/ 주님 위해 살다가 목숨 바치자.” 그렇다. 십자가의 큰 고난을 받는 사람이 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다. 큰 교회가 큰 십자가가 아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잊지 말자. 한국교회는 순교자의 피로 세워졌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신앙은 십자가이다. 이분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 큰 십자가를 지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목숨까지 십자가의 제물로 기꺼이 바쳤던 것이다.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주기철 목사님은 외치셨다. “깨어라. 주께서 오신다. 주님 위해 살다가 목숨 바치자.”
    • 연지골
    • 토요시평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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