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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단 연구가
    ◇기독교는 초기부터 이단(異端)의 위협을 받았다. 마태복음 13장 가라지 비유가 잘 보여주듯이 주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의 씨를 사람들의 심전(心田)에 뿌렸으나, 밤에 원수들이 거기에 몰래 가라지를 덧뿌렸다는 것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진리운동에는 언제나 비진리가 끼어든다. 그래서 그 열매가 맺힐 때까지는 곡식인지 가라지인지, 혹은 진리인지 비진리인지 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주님도 밭에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다칠까 염려된다며 추수 때까지 가라지를 그냥 두라고 하셨고, 또 디도서 3장 10절에는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고 하셨지, 그들을 끝까지 대적하여 박멸하라고 하시지는 않았다.◇초기 기독교의 이단에는 대표적인 것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더라도 유대교가 가르치는 율법의 실천없이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 수 없다는 ‘에비온파’(유대주의)와 오로지 영지(靈知)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구원의 비밀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노스틱주의’(영지주의)와 구약의 창조주 하나님과 신약의 사랑의 하나님은 다른 신(神)이라고 주장한 '마르시온파'(혼합주의)와 그리스도는 하나의 피조물로서 성부 하나님과 본질이 다르다는 '아리우스주의'(두 본질파)와 조로아스터와 붓다와 예수의 계시를 통합하여 세계종교를 창설코자 했던 '마니교'(혼합주의) 등이 있었다. 그래서 이에 대항하여 기독교에는 역사적으로 이단을 경계하고 진리를 보수하려는 변증가들이 있어왔다. 이들을 이단연구가라 부른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에는 이단연구가가 어느 시대보다 많이 활동하고 있다. 그 만큼 이단집단이 많이 발호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기독교는 일제시대와 6·25전쟁을 거치며 사회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태동한 이단들로부터 엄청난 폐해를 겪어왔다. 그 대표적인 것이 통일교와 전도관 등 그 유파와 신천지, 하나님의교회 등은 지금도 매우 위협적이다. 이들의 폐해를 지적하고 경계하는 것은 공교회의 신앙을 지키는 이에 유익하다. 그러나 그것이 직업화 될 때 부작용이 나타난다. 이 또한 경계해야 한다. ◇유교에도 이단이 있다. 그러나 공자는 논어에서 ‘공호이단 사해야이’(攻乎異端 斯害也已)라고 했다. 이 말은 흔히 “이단을 연구하면 해로울 뿐이다”라고 해석한다. 사실 특정종교에 대한 새로운 운동은 전통적 종교가 교권화 되고 세속화 되어 영적 생명력을 잃고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흔들릴 때, 전통종교의 개혁적 의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 운동이 ‘전통의 복구’가 아니고, 소수의 무리들이 ‘새진리’로 주장될 때 이단이 되는 것이다. 이들 할 이단집단의 특징은 역사적 교회가 오랜 기간에 걸쳐 입증한 정통교리를 성경해석의 문제라는 이유로 부정하고 새로운 교리를 정립한다는 것이다. 이를 컬트(cult)라 한다. 그러나 이런 컬트는 오래지 않아 역사에서 사라지고 오직 참진리만이 영원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단을 연구하는 것보다 정통을 바로 세우는 일에 더 힘써는 것이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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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24
  • 법은 이단을 모른다
    ◇“법은 이단을 모른다.” 이 대원칙이 종교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헌법을 가진 현대 자유민주주의 사회의 기본적 이념이다. 이번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사태에도 이단 혹은 사이비 집단으로 비판받는 신천지 등의 문제가 생기자, 느닷없이 ‘이단사이비종교특별법’ 제정 운운하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은 그들의 직업이 특정종교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지라도 '종교의 원리'도, '신앙의 자유'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법이 이단이나 사이비를 알게 되는 순간에 그 사회는 중세 기독교시대와 같이 종교재판이나 마녀재판이 벌어지게 된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이단이나 사이비는 어떤 경우에도 종교집단 내부의 문제이고, 종교가 그 근본 원리를 일탈해 반사회적 물의를 일으켰을 때는 특별법 없이도 현행 형사법으로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신종교(新宗敎)로부터 시작된다. 인류사에서 신종교가 처음에 이단 아닌 종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불교는 힌두교로부터 이단이었고,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이단이었으며, 이슬람은 기독교로부터 이단이었다. 문제는 그 종교가 가진 역사관과 세계관이 인류 보편적 상식에 바탕하는 건강한 것인가, 아니면 보편적 상식을 초월한 비이성적인 것인가 여부로 판단될 뿐이다. 그런데 모든 신앙은 그 종교가 갖는 교리내용에 대한 각 개인의 심리적인 확신을 가질 때 가능하다. 어떤 세계적 종교일지라도 그 교리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는 그 종교를 믿을 수가 없게 된다. 이처럼 신앙에는 그 종교의 가르침에 대한 확신이라는 인간의 심리현상과 그 공동체에서 역사적으로 고백되어온 교리가 합하여 하나의 온전한 종교현상으로 나타난다.◇그러므로 모든 종교의 교리는 그 교리를 믿지 않는 입장에서는 매우 불합리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예컨데 불교의 입장에서는 기독교의 교리는 매우 불합리하게 여겨지며, 기독교 입장에서는 불교의 교리가 진리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다. 또한 자연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모든 종교는 증명할 수 없는 내용을 믿는 비논리적인 태도를 지닌다. 따라서 모든 종교의 교리는 그 종교의 입장에서만 절대적이며 그에 대한 믿음 또한 절대적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만약 어느 한 종교의 교리가 불합리하다고 판단된다는 이유로 그 종교의 신앙을 잘못된 것이라고 정죄한다면 이는 매우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정죄의 태도는 기성종교에서 파생되는 이단이나 신종교에 대하여 갖기 쉬운 현상이다. 그러나 상기해야 할 것은 어느 한 종교에 대해 불건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곧 자신의 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거부되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앙의 자유는 어떤 경우에도 무한정 보장되어야 한다. 신앙의 자유가 보장되는 정도가 곧 그 사회에서 양심의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척도이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 다종교사회에서 내 종교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모든 종교인들이 지닌 신앙의 자유를 존중하고 보장하는데 힘을 합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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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4-10
  • 가라지
    ◇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리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마 13:24-29). ◇ 세계기독교 역사에서 오늘날 한국교회만큼 이단 사이비가 많이 횡행하는 교회는 흔치 않다. 중세 로마 가톨릭교회 시대에 수많은 이단의 이름이 나오지만, 그것들은 대체로 ‘통일성’을 강조하는 가톨릭교회의 교권주의에서 일탈해 복음증거의 ‘다양성’을 강조한 분파들로서 딱히 이단이라고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그 정도가 다르다. 초기 한국기독교에 씨를 뿌린 천국 일군들은 좋은 씨를 뿌렸다. 그리고 거기서 좋은 열매가 수없이 열렸다. 신학자, 목회자, 선교사뿐 아니라 정치인, 경제인, 공직자, 학자, 교사, 사회사업가 할 것 없이 정직하고 헌신적인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현대 우리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이 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기독교와 우리사회를 어지럽 히는 가라지들은 어디서 생겨났는가?◇ 통일교의 문선명으로부터 신천지의 이만희에 이르기까지 수십명의 하나님, 재림예수, 보혜사가 나타났다. 아마도 자칭 하나님이 10여명에 이르고, 재림예수와 보혜사는 그 보다 훨씬 많은 수가 나타났다가 사라져 갔을 것이다. 지금도 안상홍의 하나님의 교회나 이만희의 신천지는 왕성하게 활동히고 있고, 그 외에도 통일교와 전도관의 유파를 비롯, 수십 종의 이단과 사이비들이 기독교인들을 현혹하고 있다. ◇ 그럼 이단(異端)은 무엇이며, 사이비(似而非)는무엇인가. 이단은 첫째는 ‘교주우상주의’집단이고, 둘째는 ‘고대 에큐메니칼 교리(삼위일체)의 왜곡’하는 집단이며, 셋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부정’하는 집단이다. 또 사이비는 기독교의 전통적 보편적 성경해석을 따르지 않고, 자신이 특별한 다른 계시를 가진양 성경의 난해구절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자들이다. 또 소속은 정통교단에 속했지만, 그 신앙 형태가 기복주의와 세속주의를 벗어나지 못했다면 이 또한 사이비이다. ◇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腹)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롬 16:18). 또한 “저런 자들은 모두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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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27
  • 신명(神名)
    ◇ 한국 기독교는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하나님’ 이라는 신명(神名)을 차용했다. 한국인의 종교 심성에는 지고신(至高神)으로서 하나님 신앙이 자리 잡고 있어 우리 민족에게 매우 익숙한 신명이다. 중국에서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에 대한 신명을 놓고 오랜기간 논란이 있었다. 천(天), 천주(天主), 상제(上帝) 등 중국에 진출한 가톨릭교회의 선교회마다 각기 그 번역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로마교황청이 신명을 ‘천주’로 최종 결정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교를 ‘천주교’라고 부른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천주교가 전래된 이후에 들어온 신교(新敎)가 신명을 하나님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이것은 하늘에 주재하는 분이 계신다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지고신 신앙 곧 하늘(天)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 우리 민족의 최고 지고신 개념으로서 하나님 사상은 성경의 유일신 여호와를 같은 용어로 번역한 기독교의 하나님 신명을 쉽게 받아들이게 했다. 우리 민족의 고대 신화 속의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조물주이시며 주재자였다. 그는 천지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재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마한의 소도 등의 제천의식에는 뿌리 깊은 하나님 (천신)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이들은 모두 노래와 춤으로 천신(天神)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 천제(天祭)에는 먹고 마시며 춤추고 노래부르는 '음주가무'(飮酒歌舞)가 따랐다. 음주가무를 통해서 인간이 신과 하나되는 신비체험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나름의 방법이었다. ◇ 초기 미국선교사 게일은 한국인의 신 관념은 유일신관이라고 했다. “한국인은 신에 대해, 그 분은 한 분뿐인 위대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한글로나 한자로나 ‘위대한’(Great)과 ‘한 분’(One)을 의미하는 용어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 그리고 땅 아래나 최고의 통치자이시다. 위대함은 하나님의 것이다”라고 말한다고 했다. 또 선교사 알렌 클라크는 “한국사람들은 하나님이 비와 추수를 주시며 그의 은혜로 숨쉬고 살고 있다고 말한다. 한국사람들이 위급한 때에 부르는 신도 하나님이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하게도 그들이 결코 진정으로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추수는 하나님이 주신다고 하면서도 정작 가을 추수 때는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산신(山神)이나 가신(家神)이나 조상신(祖上神)께 드린다”고 했다.◇ 이는 우리 민족이 하나님 신앙 사상을 고대로부터 가졌음에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예배를 몰랐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3,24)고 말한 대로, 우리 민족이 고대로부터 간직해온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진정한 방법을 오늘날 한국교회가 회복한 것이다. 그것이 곧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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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3-02
  • 신천지 교회
    ◇ 코로나 19로 불리는 우한 폐렴이 결국 한국을 강타해 수퍼감염지로 알려진 신천지가 대구교회를 필두로 모두 폐쇄 조치됐다. 그러나 장로교 등 감염자가 다수 발생한 타 교회의 경우는 주일예배만 자율적으로 금지토록 하고 교회당은 폐쇄하지 않았다. 한국교회사에서 행정력으로 교회를 폐쇄한 역사는 일제 시대 '재림' 파들에 대한 강제 교단해산이 있다. 여기에는 성결교, 동아기독교, 재림교회(안식일교회)가 포함된다. 일제는 이들 교단의 종말론적 교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스도의 재림과 천년왕국, 하나님 나라, 최후 심판 등은 신들의 나라 일본은 절대로 멸망하지 않는다는 신주불멸(神州不滅) 일본제국에 위협이 된다고 여겨 그런 교리를 강조하는 교단을 해산하고 교역자들을 처벌했다. 그러나 장로교와 감리교를 비롯한 여타 교회들은 태평양 전쟁 중에도 예배는 계속되었다. ◇ ‘신천지증거장막성전’이라는 이름을 가진 일명 신천지교회는 보편적 기독교를 일탈한 섹트(sect)이다. 1960년대 과천에서 일어난 유재열의 장막성전에서 비롯된 이만희의 신천지는 한국 기독교의 이단 집단이다. 이유는 교주 이만희를 ‘보혜사’라고 믿는 교주우상주의와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자신들의 집단을 요한계시록 15장 5절의 ‘증거 장막’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있다. 이는 비록 성경을 공부하고 예배를 드리는 등 기독교적 외형을 가졌지만 그 내용은 보편적 기독교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 유재열의 장막성전에서 여러 명의 ‘하나님’ 또는 ‘재림예수’가 나타났는데, 이만희는 그 중에 제일 막내인 셈이다. 유재열은 ‘어린종 두 증인(두 감람나무)’, 구인회와 백만봉은 ‘재림예수’, 유인구는 ‘임마누엘 하나님’, 홍종효는 ‘여호와 하나님’, 이만희는 ‘보혜사 하나님’이다. 이런 허망한 집단에 한국의 기성교회 교인들이 빠져들고 있다. 여기에는 기성교회에서 한때 중직을 맡았던 장로도 있고, 권사도 있고, 집사도 있고, 교사도 있다. 심지어 목사도 있고, 목사부인도 있다. 조금만 이성적으로 들여다보면 신천지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곧바로 알 수 있는데, 한국교회에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일까. ◇ 그것은 아마도 기성교회의 보편적 성경해석에 만족을 못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한국적 종교심성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한국인의 중교심성의 저변에는 비결사상(秘訣思想)이 숨어 있다. 비결이란 신선(神仙)이 되는 길을 제시하는 득도(得道)에 있어 비밀스러운 방법을 가리키는 도교적 용어이다. 비결은 장래를 예언하고 장차 다가올 난리에 목숨을 지키는 구원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 비결신앙은 민간신앙과 결합돼 운명론적 신앙심리가 작용해 도피성이 강하며, 이것은 사이비 신앙이나 이단을 쉽게 받아들이는 원인이 된다. 한국에서 발흥하는 신흥종교는 모두 이 비결사상에 바탕하고 있다.◇ 신천지는 자신들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성경공부로 생명나무와 선악나무를 구별하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목자를 만나 계시록의 비밀을 알아 진리의 말씀으로 세상을 이긴다고 주장한다. 이 역시 비결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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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27
  • 역병
    ◇ 구약 역대상 21장 14절에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이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유는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보호한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다윗 왕이 믿지 못하고, 전쟁에 동원될 만한 인구를 조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 일을 괘심히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셨다”(7절)고 기록하고 있다. 이에 선견자 갓이 다윗에게 찾아와 여호와께서 보여주는 세 가지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했다. 첫째는 온 땅에 3년의 기근일찌, 둘째는 네가 3달을 대적에게 패하여 대적의 칼에 쫓길 일일찌, 셋째는 전염병이 3일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일찌를 택하라는 것이었다. 다윗은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가를 원한다”고 하여 하나님이 직접 치시는 세번째 조건을 택한 결과였다. ◇ 중국 후베이성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온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일명 ‘코로나 19’이다. 중국은 이 역병으로 이미 죽은 사람이 1천명이 훨씬 넘고 확진자가 6만명이 넘었다. 그리고 4개성 80여 개 대도시가 봉쇄되어 유령도시로 변해가고 있다. 여기에는 수천만명이 통제되고 있어 그 안에서 얼마가 죽어 나올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이 상태가 수개월 지속되면 수만명에 이를지도 모른다. 결국 중국 경제도 파탄나고, 2020년 세계 경제에도 심각한 먹구름이 드리워질 것으로 보인다. 이 전염병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가고 있다. ◇ 이처럼 무서운 기세로 퍼져가는 전염병을 보고 하나님의 심판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인다. 중국 공산당은 그동안 글로벌 경제성장으로 세계 2위 대국으로 발돋음하고 있다. 이에 세계를 향한 패권을 드러내고, 공산당의 일당독재 통치로 인민의 인권을 무시하며, 종교의 자유를 공공연히 억압해 왔다. 뿐만 아니라, 중국은 소수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억제하고 탄압하며,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의 오만과 패권이 이대로 가면 세계전쟁을 유발시킬 수도 있다. 미국과 중국이 맞붙어 전쟁이 벌어지면 아시아는 모두 그 전화(戰火)에 휘말릴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인명이 손실될 것이다. 이번 역병은 이런 위험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섭리인지도 모른다.◇ 유엔의 경제재제에도 오로지 핵개발에만 매달리며, 중국에 기대어 온 북한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아예 국경을 틀어막아버렸다고 한다. 북한은 방역 의료체계가 빈약하여 전염병이 한번 퍼지면 돌이킬 수 없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로인해 보따라 장사들이 중국과 국경무역으로 조달해 오던 장마당 물가도 폭등하고 있다고 한다. 유엔도 제대로 막지 못한 북한의 경제재제를 우한 폐렴이 막고 있는 셈이다. 이것이 심판이 아니면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겠나? 지금 북한 사람들은 우한 폐렴이 두려울 것이 아니자, 국경 봉쇄가 더 두렵다면서 민심이 동요 한다는 말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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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2-14
  • 로마교회의 사제 독신제
    ◇로마 가톨릭 교황청이 ‘사제 독신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한다. 전세계 로마교회는 사제 독신제를 채택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에 이르러 로마교회의 사제 지망생이 절대로 부족해 사제 독신주의를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제기된 것이 기혼자에게도 사제 서품을 하자는 것이다. 사실 전세계 기독교 가운데 사제 독신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교파는 ‘로마 가톨릭’밖에 없다. 본래 기독교는 보편적 교회라는 뜻의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라고 불리었다. 하나의 교회로 있던 기독교가 1054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로 갈라지면서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교회(Roman Catholic church)가 되고, 동방교회는 그리스정교회(Greek Orthodox church)가 되었다. ◇서방교회의 사제 독신주의는 동방교회와 갈라진지 불과 20년째 되던 해인 1074년에 그레고리우스 7세가 교황에 등극하면서 전격적으로 도입된 전통이다. 그 이전에는 주로 수도사나 일부 사제들이 독신을 선택했을 뿐, 모든 사제가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레고리우스 7세가 사제 독신주의를 도입한 이유에는 중세교회의 주교좌성당의 세습문제가 있었다. 당시에 종신직인 주교를 임명하는 서임권(敍任權)이 교황이 아니라, 국가의 왕이나 황제에게 있었다. 사회와 교회의 권력의 중추역할을 하는 주교좌는 아들이나 사위에게 세습되었는데, 왕이나 영주들의 주변에 돈을 쓰지 않고서는 아무리 능력있는 사제라도 주교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돈을 쓰고 주교직을 얻는다고 하여 ‘성직 매매’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이 사실을 못마땅히 여겨온 그레고리우스 7세(독일인)는 자신이 교황에 오르자 말자 제일성으로 사제 독신주의를 천명하고 주교좌성당의 세습을 끊으려 했다. 그는 왕이나 황제의 권한에 속했던 서임권 회수 투쟁과 사제 독신주의를 통해 사제계급의 교황에 대한 복종과 교권에 대한 권위를 확립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모든 사제는 독신이어야 한다. △이미 결혼한 사제는 이혼하라. △여자를 숨겨둔 자는 간음한 자로 간주하여 파문하겠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 갑작스런 칙령으로 로마교회의 기혼(旣婚) 사제들은 사제의 길에서 떠나거나 아내를 버려야 했다. 이로인해 수많은 고아가 양산되었다. 또한 이 로마교회의 사제 독신주의는 많은 폐단을 낳았다. 서방이성(異性) 또는 동성(同性)과의 성추문이 그것이다. ◇또다른 폐단은 결국 사제의 ‘절대 부족’이라는 현상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유럽의 전통적 가톨릭 국가뿐 아니라 남미의 가톨릭 교회들에도 사제가 턱없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일찌기 서방교회와 갈라선 동방교회는 고위 성직자를 제외한 하급 성직자들은 결혼할 수 있다. 그리스정교회에서 독립한 러시아정교회도 마찬 가지이다. 우리 주변의 종교 중에 정통불교도 독신주의가 있다. 종교 지도자의 독신주의가 여러 장점도 있지만, 오늘날과 같이 자유로운 시대에는 그 유지가 어렵게 되고 있다. 아마도 로마 가톨릭도 머지 않아 동방교회의 길을 갈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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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31
  • 순응형과 역골형
    ◇인간 유형을 크게 순응형과 역골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순응형은 전통과 질서를 중시하여 모든 일에 ‘좋은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고, 역골형은 정의와 공의를 중시하여 옳은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어떤 전통이나 질서에도 도전하는 의협심을 가진 사람이다. 순응형은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있어서 자신에게 직접적 피해가 없다면 왠만한 불의에는 눈감는 사람이고, 역골형은 사회나 조직생활에서 자신과 이해관계가 크게 없어도 불의에 대해 저항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순응형은 직장에서 진급을 하거나, 사회생활에서 출세해 성공하기가 쉽지만, 역골형은 어디서나 ‘모났다’는 말을 들으며 상사나 동료들로부터 기피인물이 되어 출세하기가 어려운 사람이다. 오늘날 사회 공익제보자가 바로 이런 역골형에 속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그런데 인류사에서 역사를 바꾼 사람들은 대체로 이 역골형에 속한 사람들이다. 성경에서 권력이나 기존 종교지도자들의 불의를 지적하고 규탄하는 예언자들이나, 본디 창교정신(創敎精神)에서 이탈한 종교를 바로 세우고자 나선 종교개혁자들, 왜곡된 사회를 바로 잡기 위해 나선 사회운동가들, 나라 잃은 주권을 되찾기 위해 자기 한 몸을 희생하면서 독립운동에 나선 독립지사(獨立志士)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부정한 권력에 대한 항거, 억압받는 이웃의 인권에 대한 변호, 동료들의 권익을 보호하고자 나서는 노조, 매주 광화문에 모여 살아있는 권력남용에 대해 규탄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 역골형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성경은 “너희는 옳은 일은 옳다 하고 아닌 일은 아니라고 하여라. 이보다 지나치는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 5:37)라고 가르친다. 옳은 일을 알면서도 그것을 옳다고 증언하지 못하고, 아닌 것을 보고서도 아니라고 말히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보신이나 이익을 앞세운 악한 생각에 빠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거짓 증거를 하는 사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진실을 알면서 행동하지 않고 침묵하는 사람도 악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성경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을 못본 체 하고 지나친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단지 자신에게 불이익이 닥칠까 봐 그를 외면한 것 뿐이지만, 주님은 그들은 강도 만난 자의 친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측은지심을 가지고 그에게 가까이 가서 도와준 사마리아인을 그의 이웃이라고 칭찬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진리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의협심을 가진 사람이다. 불의한 권력에 항거하고, 왜곡된 사회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며, 죽어가는 불쌍한 이웃을 구원코자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 현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역골형의 사람들이다. 성경은 말한다. “목소리를 크게 내어 힘껏 외쳐라. 주저하지 말아라. 너의 목소리를 나팔 소리처럼 높여서 나의 백성에게 그들의 허물을 알리고,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를 일리라”(사 58: 1)라고 선언한다.
    • 연지골
    • 연지골
    2020-01-16
  • 신년사
    지난 해는 대한민국 시민사회가 좌파와 우파로 갈라져 심한 갈등을 한 한 해였다. 그 갈등을 해소시키는데 노력해야 할 집권세력이 오히려 조장한 면이 짙다. 좌파독재를 규탄하는 인파는 연말까지 광화문을 꽉꽉 메웠다. 아직도 그 갈등은 진행형이다. 아마도 4월 15일 제21대 총선이 끝난 후에라야 수그러들듯 보인다.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도 평온하지 못했다. 해방 이후 한 번도 정부를 규탄하는 일에 나서 본 일이 없는 보수우파 교회들이 광화문으로 모여들었다. 이유는 하나, 문재인 좌파정부가 친북 사회주의화를 꾀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 때문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했다. 한국기독교는 6.25를 통해 종교를 박해하는 공산주의자들의 악랄함을 체득하고 있다. 수 많은 기독교인들이 순교했다. 단지 종교인이라는 이유로 반동으로 몰려 죽은 것이다. 그러므로 문 정부는 교회로부터, 또는 보수우파로부터 좌파독재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자신들의 정책이 용공주의로 가는 길이 아님을 국민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지난 대선 때 국민 다수는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수 국민의 불안 정서를 외면하고, 국정경험이 없는 좌파코드 정책으로만 가고 있으니 모두가 우려하는 것이 아닌가?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통합하고 예루살렘에 왕궁과 성전을 짓고, 또 전국 곳곳에 국고성을 짓는 등 국가 발전에 기여한 솔로몬의 개발독재 치적이 끝나고, 그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에 오르자 솔로몬의 전재정치에 억압받아온 백성들의 불만으로 여론이 남북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북쪽 열 지파가 르호보암을 반대하여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를 수습하고 통일을 유지하기 위해 르호보암은 북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세겜으로 갔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거기서 북쪽 지파들과 협상하라는 중신들의 충고를 외면하고, 백성은 오히려 더 강경하게 억압해 말을 듣는다고 주장하는 젊은 참모들의 의견을 따라 협상을 거부했다. 그로인해 국가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어느 사회나 정책이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불만세력이 생기고 사회는 갈등과 분열을 맛보게 된다. 이제 새해에는 정부도, 교회도, 시민사회도 갈등을 봉합하고 우리 내면사회가 먼저 평화를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 후에 비로소 ‘한반도 평화’가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부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정책을 개선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끝까지 좌파정책에만 매달리면 우리사회 모두가 불행해 질 수 밖에 없다. 그것은 남미 포플리즘 좌파정부의 실패에서 찾아볼 수 있다.그리고 새해에는 개혁주의 교회가 주축을 이루는 한국교회가 우리사회의 개혁과 갱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교회만큼 큰 개혁세력은 없다. 6만여 개에 이르는 한국교회는 매 주일 기독교적 가치관에 바탕한 사랑, 정의, 평화, 평등, 자유의 개념을 설파한다. 우리사회에서 이만한 정체성을 확립한 집단은 어디에도 없다. 따라서 한국교회가 맘만 먹으면 한국사회를 하루 아침에 바로 세울 수 있다. 2020년은 교회와 국가가 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 연지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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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06
  • 목사와 장로의 갈등
    ◇한국기독교는 장로교회가 전체 교회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본래 장로교는 개혁교회(Reformed Church)라고 불리우는 교회인데, 교인의 대표, 즉 장로(長老)에 의해 치리되는 대의제(代議制)로 운영되는 교회를 통칭한다. 장로교의 장로제도가 유교적 권위의식이 강한 우리사회에 조화를 잘 이룬 것이 장로교가 크게 성장한 이유라는 평도 있다. 개 교회의 장로 장립이 곧 교회의 지도자로서 하나의 계급화로 이해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많은 교인들이 장로가 되기 위해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잘 보이고자 교회에 모범을 보여왔다. 헌금도 남보다 많이 하고 봉사에도 앞장 섰다. 장로가 되고자 하는 교인들의 열심 덕으로 교회 성장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그래서 장로교회의 성장을 보고 장로제도가 없는 감리교나 침례교까지도 한국에서는 장로를 세우고 있다. 그러나 ‘장로’(elder)가 교인의 대표라는 의미는 교회 정치에 있어서 대의직(代議職)으로 선출되었다는 뜻이지, 신앙생활 전반의 대표적 교인이란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장로는 교회봉사를 위해 부름받은 교회의 직분자이기에 목회자와 함께 협력하는 동역자가 되어야지 판단의 권위자로 교회 앞에 서서는 안된다. 물론 이는 목사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목회현장에서 목사와 장로 사이에 갈등이 생겨 ‘장로 때문에 목회를 못해 먹겠다’는 목사들의 불평이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이 목사와 장로의 갈등이 한국교회 침체요인의 한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장로교 헌법은 장로의 직무를 △장로는 교회의 택함을 받고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괄하고 △교인들의 교리 오해나 도덕상 부패를 방지하고 △교우를 심방하여 위로하고 교훈하며 △교인의 신앙을 살펴 특별히 심방할 자가 있으면 목사에게 보고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장로는 목사와 협동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며 교회의 신령적 책임을 맡되, 어디까지나 교회 전임자인 목사의 협력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장로교 헌법의 정신이다. 성경적인 차원에서 진정한 교회의 개혁은 교단헌법의 정신대로 목사와 장로 양자가 진심으로 자신의 욕망을 비우는 것이다.◇본래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전임(專任) 지도자는 ‘장로(長老)’라고 불리었다. 성경이나 기독교 역사에서 장로로 불리운 사람은 모두 교회의 전임 사역자였다. 중세 종교개혁 때 그 장로 가운데 신학을 공부한 설교자를 “가르치는 장로”(딤전 5:17)로 이해하여, 따로 떼어 ‘목사(牧師)’라고 부른 것이다. 종교개혁 시대 이전에는 ‘사제(司祭)’였다. 가톨릭교회의 신부가 곧 장로에서 온 것이다. 그러다가 19세기에 들어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지면서 ‘세속 직업을 가진 장로’가 생겨난 것이다. 오늘날 엿새동안 세속 직업에서 종사하다가 주일날 교회에 나와 ‘당회’에 참여하여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제도는 그리 오래 된 것이 아니다.
    • 연지골
    • 연지골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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