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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 뿌린 옷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
    ◇사도 요한은 계시 중에 만국을 철장으로 다스리며 공의로 심판하는 백마 탄 자를 보았다. 그는 피로 얼룩진 옷을 입고 있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그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1-14). ◇그는 또 그의 입에서 나온 날카로운 검으로 만국을 치며,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그 옷과 그 다리에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고 쓰여 있었다(15-16). 여기 ‘피 뿌린 옷을 입은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인가? 요한복음 1장에는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1-5)고 했다. 그 안에 생명을 가진 이 하나님의 말씀은 곧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인간으로 오시고, 유월절 어린양으로 인류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에 자기 몸을 희생제물로 드린 예수 그리스도이다.◇예수 그리스도는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며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가 흘린 피는 모든 인류의 생명을 대속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빌립보서는 그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굻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8-11)고 했다.◇또 골로새서는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5-17)고 했다. ◇요한은 그가 피로 얼룩진 옷을 입고 만국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오심을 보았다. 니케아 신조는 “그는 고난을 받으시고, 장사함을 받으셨으나, 제 삼일째 되는 날, 성경에 기록된 말씀에 따라서 살아나셨고, 하늘에 올라가시사, 성부의 오른편에 앉으셨으며, 장차 산 자와 죽은 자들을 심판하러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실 것”이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 사실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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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14
  • 이년아, 하나님 들을라
    ◇어떤 교회 권사님이 집안에 문제가 생겨 점집을 다녀왔다. 그 집 대학생 딸이 ‘엄마는 교회의 권사이면서 왜 점 치러다니냐’고 힐난했다. 이 소리를 들은 권사왈, ‘야 이년아, 조용히 해라. 하나님 들을라’라고 했다. 이 말은 한국 기독교인의 기복주의적 신앙의식을 꼬집으려는 조크일 것이다. 그러나 이 한 마디 조크 속에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평소에 점집을 찾는 손님 중에 약 30%가 기독교인이거나, 이전에 교회에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기독교인이라도 집안의 대소사가 생기면 교회가 가르치는 ‘기도’만으로는 어딘가 불안하여 점집을 찾는다는 것이다.◇점집을 찾은 교회 권사에 대한 또 다른 버전도 있다. 일찌기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와 같이 사는 그 권사는 어느날 주일예배가 끝난 후 목사님을 상담했다. “목사님, 우리 아들 아시죠. 그 애가 사업을 한다며 그동안 돈을 많이 썼어요. 이제 살고 있는 집 전세가 전부인데, 이번에 마지막으로 또 한번 더 사업을 해보겠다고 저러는데 어떤 사업을 하면 성공할 수 있겠는지 목사님이 하나님께 좀 알아봐 주세요”라고 했다. 난감한 목사님이 한참 머뭇거리다가 “기도해 봅시다. 주일 잘 지킬 수 있는 사업을 하면 좋지 않겠어요”라고 대답했다.◇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한 그 권사는 성경가방을 든 채 평소에 지나다니면서 보아 둔 하얀 깃발 달린 집을 찾아갔다. 복채를 올리자 그 점쟁이는 단번에 속시원한 점괘를 내 주었다. 당신이 사는 집에서 북쪽으로 나무 목(木)자 성을 가진 사람의 가게를 얻어 물장사를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가게를 찾아 헤맨 끝에 과연 임(林)씨 성을 가진 사람의 가게를 얻어 물장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기도’와 ‘점괘’는 다르다. 기도는 그것이 이루어질 때 응답된 것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응답이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도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내 기도의 내용이 합당해야 응답되는 것이다. 만약 내가 하는 기도가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오히려 나를 해(害)하는 것이 돨 수도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기도는 오로지 선하신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맡기는 것이다. 그러나 점괘는 그것이 이루어지든, 이루어지지 않든 상관없이 이미 그 답이 시원하게 나온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초기 한국교회는 미신타파운동을 전개해 교인들이 점집을 찾는 것을 철저히 금지했다. 특히 장로, 권사, 집사 등이 점을 쳤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권징도 행했다. 한국교회에는 그때보다 더 많은 목회자가 있고, 신학자도 있는데, 어쩌다가 한국교회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알 수 없다. “그 선지자들이 허탄한 묵시를 보며 거짓 것을 점쳤으니 내 손이 그들을 쳐서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땅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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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7
  • 한국교회의 세 가지 죄
    ◇세월호 참사와 관련, 한국교회가 저지른 세 가지 죄가 있다고 한 신학자가 주장했다. 첫째는 세월호 참사를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려는 ‘이기성의 죄’, 둘째는 세월호 참사를 신정론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뜻으로 설명하려는 ‘책임전가의 죄’, 셋째는 세월호 참사같은 거악을 보고 침묵을 강요하는 ‘침묵의 죄’라고 했다. ◇그는 ‘이기성의 죄’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자 ‘가난한 집 애들’이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생긴 일이라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한 조ㅤㅉㅜㅅ작목사의 예를 들었고, ‘책임전가의 죄’는 ‘하나님께서 대한민국이 이대로는 안되니 꽃다운 어린애들을 침몰시키면서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말한 김ㅤㅉㅜㅅ환목사의 설교를 예로 들었으며, ‘침묵의 죄’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설왕설래 하지 말고 침묵할 것을 설교한 이ㅤㅉㅜㅅ수목사와 김ㅤㅉㅜㅅ호목사를 예로 들었다.◇그는 세월호 참사는 해운회사와 그 해운회사를 지도 감독하는 국가기관, 그리고 정부 등 모두의 잘못으로 인해 벌어진 참사로서 한국사회가 총체적으로 저지른 범죄이고 국가적 범죄인데도, 단원고 학생들을 ‘가난한 애들’이라고 폄하하고 이들이 분에 맞지 않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가 난 사고라며, 단순히 개인적인 차원으로 이해한 태도는 이웃의 아픔을 간과하지 말라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규정했다.◇또 세월호 참사를 전통적 신정론에 의거 ‘하나님의 뜻’ 혹은 ‘하나님의 이유’에서 원인을 찾아 설명하려 한 태도는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는 대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려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역사적 맥락에서 하나님이 인지하지 않으시는 사건은 없다. 그러나 가해자의 폭력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슬픔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인지하신다는 의미이지, 세월호를 대한민국을 회개시키는 도화선으로 사용하시기 위한 것이었다는 해석은 어리석고 무지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세월호 참사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악용한 사악한 인간들의 잘못에 불과하다는 것이다.◇또 세월호 사건이 온 나라를 뒤덮자 “침묵해야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날 수록 입을 닫아야 한다. 함부로 남을 정죄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범죄행위예요. 하나님께 회개하고 나가야 한다”며 침묵을 강요한 설교는 타인의 고통을 ‘하나님의 침묵’으로 읽고 이해하는 태도로 인간의 무기력함을 전제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나님은 현재의 악의 문제를 관망하시거나 관망케 하시는 분이 아니시다며, 악에 대해 침묵하거나, 무력함을 핑계 삼아 침묵하는 태도는 하나님의 ‘값비싼 은혜’를 ‘값싼 은혜’로 이해시키는 태도에 불과하다고도 말했다. ◇그는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 비유를 세월호 참사로 읽자면, “예수 그리스도는 세월호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삶의 소망을 상실한 유가족으로 찾아오셨고, 살아남기는 했지만 너무 불안하고 힘들어서 삶의 지표를 상실한 생존자로 찾아오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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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5-06
  • ‘장로’기업인들의 수난
    ◇요즘 사정정국의 부패척결 대상에 올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일광그룹의 이규태 회장과 경남기업의 성완종 전 회장은 둘 다 기독교회의 장로이다. 여기에 또 역시 성결교 장로인 신원그룹 박성철 회장이 탈세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방산 비리로 군검 합수부의 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 돈암동 ㅤㅉㅙㅍ성결교회 시무장로인 이규태 회장은 비자금 조성은 물론, 자신이 다니는 교회를 돈세탁 창구로 활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그로인해 그 교회는 합수부로부터 교회장부까지 압수수색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또 해외자원개발 비리로 검찰특수부의 수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서산ㅤㅉㅙㅍㅤㅉㅙㅍ감리교회의 시무장로이다. 그는 점집을 찾아 점도 치고, 요로에 구명을 호소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자, 끝내 기독교인이 선택해서는 안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한국교회에는 ‘장로’가 하나의 사회적 호칭이 되고 있다. 유럽이나 미주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장로’는 사회적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 교회의 평신도를 대표하는 장로를 어떤 세속적 기업이나 사회적 조직 안에서도 그대로 ‘장로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또 한국의 커피솝이나 시장통에서도 ‘장로님’이라고 부르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교회의 직제에 불과한 장로를 교인들 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그대로 호칭하는 것은 교회의 ‘장로’에 대한 신뢰와 존경심이 묻어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의 장로직을 가볍게 보아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교회 직제에서의 본래 장로는 목회자였다. 초대교회 직제에는 사도, 장로, 집사가 있었고, 사도 시대가 끝난 후에는 이를 감독, 장로, 집사로 부르다가, 이후 감독은 ‘주교’로, 장로는 ‘사제’로, 집사는 ‘부제’로 불렀다. 이것이 가톨릭교회의 직제이다.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성례전 신학이 바뀜에 따라 목사, 장로, 집사로 되돌아 갔다. 이것이 개혁교회의 직제이다. 그러나 그 중심은 장로이다. 이 때의 장로는 모두 교회를 전임하는 ‘목회장로’였다. 그래서 개혁교회의 목사는 장로반에서 나온다. 목사는 설교와 치리를 겸하는 직분이고, 장로는 목사와 더불어 교회의 치리를 맡은 직분이다. 그런데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세상에서 엿세동안 일하고 주일날 하루 교회에 나와 교회를 치리하는 ‘세속장로’제가 도입되었다. 현대교회의 장로제이다.◇오늘의 기업인들의 천국이 된 자본주의는 장로제로 대변되는 칼빈주의 개혁교회의 청지기 정신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중직들이 세상에서 기업을 이끄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교인들이 하는 기업이 탈세를 하거나 그 기업을 키우기 위해 뇌물을 제공하는 등 비리에 휘말리는 것은 세상에서 뿐 아니라 교회에서도 범죄이다. 성경은 속이는 저울의 추를 비난한다. 이번에 자살한 성완종 전 회장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150여억원의 불법자금을 뿌렸다고 한다. 이는 기독교인의 기업윤리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우리사회에서 최소한 장로들이 하는 기업은 비리가 없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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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23
  • 종말을 보고 판단하라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유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에 본받을 것이 있는지 판단하라고 권한다(13:7). 그때나 이제나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하지 못했던 지도자들이 있었던 것 같다. 성경에는 영적 지도자에 대한 준엄한 경고가 여러 군데 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한다”(고전 9:27)고 했고,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되지 말라”(3:1)고 까지 경고하고 있다.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렁텅이에 빠진다(마 15:14). 이는 영적 지도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사람은 관뚜껑을 덮어봐야 안다는 말이 있다.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떤 일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양떼를 목양하는 영적 지도자인 목회자도 마찬 가지이다. 그가 일생을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하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변함없이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충성했는지, 아니면 처음 결심과 처음 사랑을 버리고 영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망하는 길을 간 것인지는 그의 종말을 보고 판단하라는 것이다. 많은 영적 지도자들이 처음 소명을 받았을 때는 아골 골짝 빈들이라도 가겠다는 사명감에 충만했다가도, 종교적 세속적 성공을 이루었다고 생각할 때쯤 되면 곧 돈과 명예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때부턴 목에 힘이 들어가고 옛 친구를 멀리하게 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는 말씀이 이에 딱 들어 맞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목회자들 가운데는 달랑 고무신 한 켤레 신고 교회에 들어와 목회자가 된 사람들도 많다. 이들이 교회를 위해 충성하다가 은퇴할 무렵에 이르러 세속적 욕심에 사로잡혀 더러운 물신(物神)과 손을 잡는 경우도 생긴다. 그리하여 교회를 보호해야 할 목회자들이 오히려 교회에 분쟁을 야기한다. 이로인해 지금 전국에는 수천개 교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모두가 은퇴하는 목회자와의 돈 몬제이다. 아예 교회가 가난하여 돈이 없을 때는 그것으로 분쟁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좀 여유가 생겼다 싶은 교회는 은퇴하는 목회자가 교회보다 자신의 노후를 먼저 생각하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이리하여 어제까지 교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지니고 있던 목회자가 하루 아침에 교인들의 타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이런 현상은 한국교회가 갑자기 부요해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수많은 교인들을 거느리고 유창한 설교로 교인들을 감동시키며, 평소에 교계의 지도자로서 존경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의 말년에 세속적 노욕(老慾)을 부려 교회를 어지럽히고 교인들을 실망시킨다면 이런 지도자를 교회가 끝까지 존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엊그제 한국교회원로목회자의 날 실행위원회가 150여 명의 원로목사들을 초청해 점심식사를 대접했다. 귀한 일이다. 여기에 모인 원로목회자들은 일생을 오로지 교회를 위해 헌신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영으로 시작하여 육으로 망하는 지도자들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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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09
  • 무교절
    ◇이스라엘 민족은 종살이 하던 에굽에서 해방될 때를 기념해서 해마다 무교절(無酵節)을 지켰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울 때 유월절 양을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구워 무교병과 쓴나물과 아울러 먹되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며 남은 것은 모두 불에 태우라는 명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먹을 때는 곧 떠날 사람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출 12:8, 민 9:11)고 했다. 이 절기는 매년 이어져 예수님 시대에도 지켜졌다. 예수와 그 제자들이 가진 최후의 만찬은 무교절 풍속에 따라 준비된 것이었다(마 26:17).◇그런데 왜 이들은 구운 양고기와 함께 발효되지 않아 딱딱한 무교병(無酵餠)과 쓴나물을 먹었는가. 그것은 에굽에서의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잊지 말라는 것이다. 무교병은 애굽에서 급히 서둘러 나오느라 밀가루에 누룩을 넣어 느긋하게 발효시켜 부더러운 빵을 구울 시간이 없어 발효시키지 못한 떡을 먹었던 때를 기념하는 것이고, 쓴나물은 쓰디쓴 종살이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고통에서 해방시킨 여호와의 강권적인 유월절의 구원을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하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각 가정에서 이 무교절 음식을 통해 자녀들에게 민족의 고난과 해방의 역사를 대대로 가르쳐 왔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 시대에 민족적 고난을 겪었다. 이 일제에 의한 민족 고난을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있는가? 우리는 일제 식민 시대를 통해 우리의 말과 이름과 민족정신을 말살 당한 참혹한 시대를 지냈다. 그런데도 해방 후 그 시대의 참혹함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국민적 제도는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3.1절과 8.15가 되면 일제를 규탄하는 일과성 행사가 있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이젠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들조차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시대 고난의 역사를 증언할 사람도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이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은 미래도 보장받기 어렵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일제 식민 시대의 고난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교회가 사순절이나 고난주간 중 어느 한 주간을 일제 식민 시대의 고난의 역사를 기억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을 제도화 한다면 어떨까? 그 시간을 통해 성경의 유월절 구원의 역사와 무교절의 역사를 가르치고, 우리민족의 고난의 역사도 가르치는 계기로 삼으면 많은 유익이 있을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침략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왜곡 뿐 아니라, 언젠가는 또다시 군국주의화 하여, 그 힘을 이웃 나라를 침범하는 일에 사용할 지도 모른다. 소도 한번 빠진 웅덩이에는 다시 빠지지 않는다는데, 하물며 우리민족이 일본에 또다시 당해서야 되겠는가. ◇일제에 고통 당한 민족 고난의 역사는 한국교회가 앞서서 기념하고, 이를 전국민운동으로 승화시켜 이스라엘이 무교절을 지킨 것처럼 역사교육의 장이 되게 하면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한민족의 종교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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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4-01
  • 불굴의 확신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과도로 찌른 김기종은 “우리나라는 반(半)식민지 사회이고, 북한은 자주정권”이라는 인식하에 분단종결을 위해서는 반미·반일 등 ‘외세 배척’을 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을 차용해야 한다는 논리에 서서 소위 “남한사회 통일문화운동”을 전개해 온 것이다. 이는 반미 좌파인사들이 갖고 있는 사상적 흐름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김기종은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자신의 행동을 조금도 잘못된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는 ‘불굴의 확신’에서 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확신을 ‘테러’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표출했기 때문에 비난을 받는 것이다.◇오늘날 전세계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역시 ‘불굴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이 이슬람국가(IS) 건설을 위해 자기 한몸을 불사르는 ‘자폭의 전사’로 나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 가운데는 종교적 광신도도 있고, 정치적 극단주의자도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족주의자, 사상적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투쟁하는 사상가도 있다. 그런데 김기종은 어디에 해당하는가. 민족의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족주의자인가, 또는 공산주의라는 사상적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한 사상가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다만 3대 세습이라는 북한의 ‘사이비 자주정권’을 위해 불굴의 확신을 가진 맹목적 추종자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문제는 우리사회에 김기종과 같은 맹목적 북한 추종자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국회와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정치권에도 있고, 교수나 교사 등 지식인 사회에도 있으며, 문화예술인들 가운데도 많이 있다. 뿐만 아니라 종교계에도 이런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특히 기독교 목사들 가운데 의외로 이런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이들은 아직 칼이나 총을 들고 나서지 않았을 뿐,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보는 것은 동일하다. 이들이 언제 자신의 이념을 밖으로 표출해 ‘테러’에 나설지는 아무도 모른다.◇이같은 ‘불굴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는 순전히 ‘종교적 테러분자’들도 있다. 자신과 다른 남의 신앙을 ‘이단’으로 공격하는 이단감별사들이 그들이다. 이단감별사들은 자신들이 아니면 한국교회가 모두 이단에 넘어갈 것이라는 강한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한몸을 바쳐 이단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불굴의 확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이단연구라는 이름아래 멀쩡한 목회자들을 기습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상대의 인격을 살해하는 일종의 종교적 테러이다. 칼이나 총을 사용해야만 테러가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불굴의 확신이 한 공동체나 그 사회를 분열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이런 사람들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교훈 아래 있지 않는 자는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라는 성경을 곧이곧대로 적용해 이단에 대해 단호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면 그들의 잘못은 누가 지적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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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3-18
  • 교회의 권위
    교회의 권위 ◇한국교회의 미래를 놓고 비관론자와 낙관론자가 보는 견해는 전혀 다르다. 비관론자들은 한국교회의 교세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한국 기독교가 곧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어떤 미래학자는 30여년 후에는 기독교인이 채 200만도 남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내어놓는다. 그 근거로 6만개가 넘는 전국교회의 약 50% 교회에 주일학교와 중고등부가 없어 ‘다음세대’로 이어질 수 없고, 주요교단 교세가 매년 0.3-0.5% 정도씩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한편 낙관론자들은 세속주의화에 깊이 침전된 한국교회가 침체하여 '위기'임에는 분명하지만, 곧 망할 것이라는 추측은 섣부른 짓이라고 반론한다. 왜냐면 그 근거로 성령님이 하나님의 교회를 망하게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내세운다.◇교회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하셨다. 태풍이 불고 큰 물난리가 나면, 나무가 쓰러지고 바위가 굴러가고 산등성이를 활켜가도 ‘반석’은 그 자리에 그대로 버티고 있다. 이 세상에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는 반석 위에 있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넘어뜨리려고 도전은 할지언정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해하지는 못한다. 성령님이 지키시기 때문이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죽이고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엘리야가 이세벨의 칼을 두려워 하여 ‘나만 남았는데 이제 나까지 죽여 여호와의 신앙을 멸하려 한다’고 한탄할 때, 하나님은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7000을 남겨두었다고 했다(왕상 19:18).◇그런데도 역사 속에서 어떤 국가나 지역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한때 왕성했다가 소멸한 듯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이는 두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다. 하나는 교회의 세속화로 인한 내부의 부패이고, 다른 하나는 타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적 박해이다. 북아프리카와 시리아와 터키를 비롯한 근동 지역과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많은 교회가 소멸된 것은 이슬람의 정치적 박해에 그 원인이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종교의 자유는 허울일뿐, 사실은 이슬람 외에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에도 교회는 어떤 모양으로든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교회가 다시 부흥될 것이라 믿는다.◇교회는 최후의 승리자이다(계 22장).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만물 위에 존재한다. 종교나 철학이나 사상 따위는 마지막 때에 모두 사라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만은 영원히 존재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하여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엡 1:21-22).고 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권위이다.
    • 연지골
    • 연지골
    2015-03-06
  • 이것이 이슬람이다
    극단적 이슬람 무장단체 IS(이슬람국가)가 시리아 기독교부족 야디지족 도시를 습격하여 마을 남자들은 모두 죽이고, 젊은 여성들을 납치해 IS대원들과 강제로 결혼시켜 현대판 노예로 삼고 있고, 또 그들은 이집트의 콥트교도들도 아무런 이유없이 처행했다는 보도는 실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인권과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21세기 문명사회에서 어떻게 이런 야만적 행위가 버젓이 저질러 질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관절 이슬람 국가 시리아는 자국의 국민들이 이처럼 참혹한 상황에 처했는데도 아무런 힘도 쓸 수 없으면서 ‘시아파’와 ‘수니파’간 종교권력간 투쟁만 일삼고 있다. ‘평화의 종교’라고 말하는 이슬람에 어찌 이처럼 더럽고 야비한 폭력이 숨어 있단 말인가.
    • 연지골
    • 연지골
    2015-02-28
  • 사이코패스
    사이코패스(psycho-pass)는 성격이나 행동이 보통 사람들의 수준을 벗어나 지극히 편향된 상태를 보이며, 야만적 범죄 행위를 저지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반사회성 인격장애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를 편집성 인격장애자라고도 한다. 이 편집성 인격장애자의 특징은 평소에는 지극히 이성적이며 멀쩡해 보이지만,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무서운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언제나 자신이 정의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옳다는 불굴의 확신을 갖고 있다. 이런 사람을 반사회성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그래서 연쇄 살인범 중에 사이코패스가 많다.
    • 연지골
    • 연지골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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