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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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옛날, 이탈리아 피렌체에 라니에로라는 사나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남달리 힘이 센 그는 쉬 화를 내는가하면 곧잘 다른 사람을 두들겨 패는 고약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프란체스카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면서 우쭐해진 그는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는 고약한 버릇이 더 심해갑니다. 그럼에도 남편에의 사랑을 지키고 싶은 프란체스카는 어쩔 수 없이 친정으로 돌아갑니다.
아내의 자상한 심정을 헤아릴 수 없었던 라니에로는 자신이 공을 세워 명성을 떨치게 되면 아내가 돌아 와주리라 여기고 자원하여 용병이 됩니다. 공을 세워 차지한 전리품을 성모 마리아 상 앞에 바치기도 하고, 황제의 기사로 출세도 합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돌아오지 않는지라 더 큰 공을 세워보려고 십자군 원정에 참여합니다. 가장 귀한 전리품을 피레네 대성당의 성모 마리아상 앞에 바치면 아내의 마음을 돌이킬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슬람을 무찔러 성지 예루살렘을 탈환한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라니에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도의 성묘에서 불타고 있는 불씨를 자신의 초에 점화할 수 있도록 허락받습니다.   
성화 촛대를 옆에 끼고 한참 축연을 즐기고 있는 터에 한 익살꾼이 나타나서 이야기판을 벌입니다. 내용인즉 하늘에서 이번 전투를 내려다보던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편과 저편이 엄청나게 피를 흘리며 약탈을 거듭하면서도 도대체 회개하려는 병사는 찾아볼 수는 없는 것이 안타까워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베드로의 찌푸린 눈살에 예수님의 모습이 들어옵니다. 주님은 눈을 반짝이며 무엇인가를 골똘하게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께서 보시는 것은 무엇일까. 궁금하여 주님의 눈길을 따라 바라보았더니, 그것은 라니에로의 천막 안 풍경이었습니다. 천막 안에는 작은 성화가 빛을 내고 있는데 반짝이는 촛불이 꺼지지 않게 하려고 라니에로는 무척 애를 쓰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라니에로가 저 촛불을 지키듯이, 앞으로는 고통 받는 이와 병든 이, 그리고 슬퍼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서 애쓸 것이라고. 그러나 라니에로의 일상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기사들은 익살꾼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박장대소하며 말합니다. 그건 라니에로를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라니에로가 이미 자신의 전리품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고향 피렌체 대성당 성모상 앞에 바친 바가 있긴 하지만, 이번의 전리품 중에서 가장 귀한 이 성화만은 바칠 수 없을 것이라고. 화가 치민 라니에로는 선언합니다.  “나는 이 촛불을 꺼지지 않은 채  피렌체까지 모셔 가고 말거야.”하고. 이튿 날 이른 아침부터 촛불을 모시는 라니에로의 기묘한 여행이 시작됩니다.  
촛불을 지키며 여행하기란 생각만큼 쉬운 노릇은 아니었습니다. 뒤를 향해 말 등에 올라 앉아 외투로 바람을 막으며 아주 천천히 나아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얼마 되지 않아 도둑을 만납니다. 도둑 따위를 두려워할 위인은 아니었지만, 등불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힘센 말과 변변한 옷가지는 모두 그들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낡아빠진 옷가지와 야윈 말 한 마리도 도적들이 베푼 신심 덕이었습니다.
꼴사나운 말 등에 그것도 뒤를 향해 올라앉은 라니에로의 몰골을 보는 사람들은 미치광이라며 마구 조롱해댑니다. 그럼에도 화풀이를 할 수 없었던 것은 오로지 촛불이 꺼질까봐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날 아내가 자신에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애써준 일들에 대해서도 차차 그 뜻을 헤아리게 됩니다.  
이렇게 가냘픈 촛불을 지키며 나아가는 기이한 여행은 이어지는데…라니에로가 체험하게 되는 모든 것은 이전의 삶에서는 생각조차 해볼 수 없었던 일이었습니다. 약하고 작은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참고 견디어내야만 했습니다. 노여움과 미움을 억제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굴욕을 참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진정 괴롭고 견디기 어려운 여행이었습니다. 그러나 보잘 것없는 가냘픈 촛불 하나가 그를 완전히 바꾸어놓았습니다.
스웨덴 출신의 여성작가 셀마 라겔뢰프(1858-1940)는 1909년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스웨덴 국민은 화폐와 우표 등에 그의 얼굴을 실어서 국민작가로 대접하고 있다. 대표작 <닐스의 모험>은 스웨덴의 자연과 전설을 어린이들에게 알려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소개한 <촛불>은 그가 쓴 3권으로 된 <그리스도 전설>에서 퍼온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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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마 라겔뢰프의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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