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7(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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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20세 때에 왕위에 올랐다. 그는 재위 기간(B.C. 336~323) 중에 그리스와 페르시아 등 근동 제국을 정복해 대제국을 수립했다. 그리고 복종하지 않고 끝까지 반항하던 그리스의 테베시를 철저하게 파괴해 버렸다. 그는 전쟁이 끝난 후 시민들의 동향을 탐색하기 위해 테베시 출신의 저명한 철학자인 크라테스(B.C. 365~285) 라는 사람을 불렀다. 그리고 제안 했다. ‘만일 그대가 원한다면 파괴된 테베시를 재건해 주겠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크라테스는 그의 말을 듣자 말자 그 제안을 무시해 버렸다. ‘전혀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열심히 재건해 보았자 또 다른 알렉산더 같은 사람이 와서 파괴해 버릴테니까요?’ 알렉산더는 독재자였고 전쟁에서는 영웅이었으나 그러한 알렉산더도 시민들의 마음은 사로잡을 수가 없었다. 권세자의 칼은 일시적으로 사람의 무릎은 무력으로  꿇게 할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은 사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사람의 마음은 권력의 힘으로 사로잡을 수가 없다. 이에 아브람 링컨은 ‘일단 시민들의 신임을 상실하면 두 번 다시 그들의 존경을 얻지 못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고로 지도자들은 이 말을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한두 번은 소수의 지도자가 다수의 회중을 소외시킬 수 있다. 지도자의 우월한 위치에서 사람들에게 횡포를 부리고 제압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것은 잘못이다. 일단 다수의 신망을 잃고 나면 역전의 상황이 벌어진다. 다수에 의해 소수의 지도자의 소외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도 얼마나 많은 권세자들이 독재의 칼을 쓴 결과 뒤끝이 좋지 않는 상황에서 권좌에서 물러나고 있을까? 오죽하면 ‘권불십년’ 이라는 말을 했을까? 그러기에 공직에 있거나 또한 교회의 행정과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권세를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용해야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서든지 다수의 대중을 소외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한다. 흔히 ‘군중은 어리석다’ 라는 말을 많이 한다. 바로 이것 때문에 많은 지도자들이 독선과 아집의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군중은 어리석은 것 같으면서도 어리석지 않는다. 어리석다가도 깨어나는 것이 군중이다. 지도자가 권력을 남용할 때 결집된 힘으로 지도자를 순식간에 소외 시킨다. 예컨대 폭력으로 정권을 잡는 독재자들의 최후를 보자 온전히 제 명대로 산 사람들이 별로 없다. 또 무력으로 다른 나라를 점령한 나라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새로운 세력에게 정복되어 멸망하고 말았다. 고로 지도자들은 무력으로 무엇을 이루고자 폭력의 칼을 들어서는 안된다.
그렇다면 바른 지도자는 어떠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먼저, 공의를 말하고 실천해야한다. 옛말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이 있다. 이는 누구보다도 이 사회의 지도자요 권세자들이 먼저 정직하게 공의를 실천해야 그 사회가 공의롭게 될 수 있음을 잘 나타내 주는 말이다. 고로 성도로써 국가나 공동체를 운영하는 이들은 정말 정직하고 바른 사람이 되어야한다. 먼저 자신의 이익보다도 사회의 기강과 정의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해야한다. 또 소수자들의 소리를 경청해야한다. 세상 역사에는 소수의 소리를 경청하지 않아서 실패한 위정자들이 많다. 고로 지도자는 다소 소수의 소리가 싫더라도 껄끄러운 소리 비판과 반대하는 소리를 경청해야한다. 왜냐하면 위정자가 귀를 닫으면 자신의 악한 뜻만을 고집해 귀머거리 독사처럼 위험해 지기 때문이다. 고로 지도자들은 밑에서 정리되어온 좋은 소리만 듣지 말고 소수의 소리에 귀를 열어야한다. 
아울러 편벽이 없어야한다. 문자적으로 한 쪽만을 의도적으로 높이기 위해 다른 한 쪽을 편파적으로 낮춘다는 의미이다. 요즘처럼 학연, 지연, 혈연에 따라서 요직에 발탁하고 실수도 눈감아 주며 부정도 모르는 척하는 이 세대 속에서도 우리 성도된 자들은 편벽이 없어야한다. 즉 차별이 없어야 한다. 이와함께 섬기는 철학을 가져야한다. 이 세상에는 권리만 있고 책임은 없는 그렇게 편한 직분은 없다. 권리가 있는 곳에는 항상 책임이 존재 한다. 그런데 불의한 지도자들은 권력을 권리로만 알고 책임보다는 축재의 도구로 이용하려든다. 하지만 바른 위정자나 또는 지도자가 되려면 섬김의 철학을 가져야한다. 남 섬기는 종의 도야말로 이 세계를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위대한 힘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섬김 받기를 좋아하는 것이 사실인데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정신은 섬기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의 자리를 섬김의 자리로 인식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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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들의 권력의 오남용과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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