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한 예수교회-52
2017/07/14 15:33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1.jpg
 바울이 돌아가기 직전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디모데후서를 보면(딤후 3:9-18), 그가 떠나가기에 전 까지 함께한 자는 ‘의사인 누가’였다. 이 사람은 바울을 끝까지 지켜본 산 증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학자들은 누가가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을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주제로 기록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지켜본 바울 사도는, 신학자들의 견해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수난의 메시아’를 전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는 종교개혁자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이 나타난 십자가의 복음’에 집중한 나머지 비롯된 주장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이, 복음서들은 복음을 ‘하나님나라의 복음’으로 선포하였고, 사도들은 복음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라고 했다는 주장은, 바로 최근까지 알려진 견해이다.
그런데 신약신학자들은 이차대전 이후부터, 오늘의 한국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지만 열매가 약하다는 것이 공통적인 평가이다. 복음에 대한 이해를 마치 한 이단종파의 구원론 같은 정도로만 인지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불행 중 다행이긴 하지만, 열매가 없는 이런 이유에 관하여 그 근원을 신학적인 통찰에서 찾으려는 노력으로 인해서, 지난 한세대의 신학적인 논쟁 결과로써,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나라의 복음’이란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복음’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받아들여지면, 저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칭함 받고, 사단의 나라에서 하나님나라로 옮겨진 천국시민권자가 되기 때문에, 저는 구원을 받은 자로서, 구원과 소명에 따른 책임을 갖는 자이며, 따라서 하나님의 통치를 따르는 시민이 된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구교인 가톨릭에서만 왜곡되었던 것이 아니고, 종교개혁 가운데에 있는 개혁교회들에게서 있어온 것이다. 가톨릭이 ‘좌향좌’ 이었다면, 개혁교회는 ‘반 우향우’라고 평가될 수밖에 없으리라. 바울은 로마서 서론에서 그가 전하는 복음을 ‘하나님의 복음’이라 하였으나, 개혁 학파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치중하다 보니 ‘성령에 의해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하나님의 능력 있는 아들로 선포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소홀히 하여 왔던 것이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십자가를 지시려고 골고다로 향하시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승천하실 기약이 차 가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눅 9:51)’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자기 백성들을 사망권세에서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흘리신 자신의 피로써 값을 치르시고, 사단의 권세 아래에 있던 자기 백성들을 속량하여, 하나님나라의 통치 아래로 옮겨 놓으신 사건임을 확실하게 드러낸 것이다.
복음서 중에서도 절반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초점을 둔 요한복음서 마저도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하였다. 우리는 복음서가 먼저 쓰인 이후에, 바울 서신이 쓰인 것으로 착가되는 경우가 많다. 시간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먼저이지만, 기록의 역사에서는 바울서신이 제일 먼저 선포된 복음이다. 누가가 증거하는 사도들의 행적들에서 바울은 얼마나 역동적으로 사역을 하였는지, 후진들인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 되었다. 이 뿐 아니라 그는 자신이 알던 지식과 경험을 모두 오물같이 여기고 폐기 처분 하였다. 이는 오늘의 복음 사역자들이 스펙으로 여기는 학력과는 정 반대이다. 저는 오로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성령의 나타나심을 앞세웠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죽은 자가 일어났고, 병인들이 치유되었고, 심지어는 사도들의 그림자가 자신들에게 스쳐가기를 바랬고, 사도들도 그리스도의 뒤를 밟아 순교됨으로서 음부의 권세가 교회에 굴복되었다.
하나님나라가 서려면 주권이 선포되고, 그리스도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시위된다. 군대가 징집되고 지휘관들이 임명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하나님나라의 통치자로부터 지휘관들이 먼저 권한과 능력을 받는다. 이는 오늘의 사관학교 졸업과 함께 지휘관 임명 절차에 잘 나타나 있다. 기름부음에 있어서만큼은, 모세와 아론의 대관식에 짝퉁 불이 등장할 수 없었던 바와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대관식에도 짝퉁 기름부음이 불가하였다. 친히 성령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등극하시는 그리스도께 기름 부어진 것이다. 사도들도 그러했고, 누구든지 믿는 자에게는 성령이 선물로 부어졌다. ‘하나님나라’에 있어서 오늘의 개혁교회가 슬며시 포기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너희가 성령으로 권능을 받고, 나의 증인이 되리라’일 것이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