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국주의 부활과 한반도의 평화
2019/08/22 14:4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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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정권은 소위 수출규제와 하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각의 의결을 결행하였다. 한반도 강제 침략의 과정에서 전쟁 성노예와 강제징용의 인권과 노동 착취에 관한 정당한 한국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려는 침략적 반성 없이 다시 한 번 노골화 하였다. 인류가 바라는 보편적 가치는 모든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평화를 살고자 하는 것에 대한 반역사적 제국주의적 행태가 아닐 수 없다.
역사는 일차적으로 각 민족과 각 국가와 나라 자신들의 몫이다.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세의 침략보다는 내부의 분열이나 내부의 허약함과 무능, 부정의한 정파적 싸움에 있다. 사실 현대적 국가는 매우 복잡한 역사적 과정과 결과를 통해서 형성되었다. 간단하게 국가적 가치와 의미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국가의 존재와 그 국가를 운영하는 정당들의 성격이나 행태는 정의나 진정한 국민과 민중을 위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이나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국가나 국민, 민중을 위해서 산다는 것은 표면적인 것뿐이고 기실 자신과 자신의 가정, 혹은 자기의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서 산다는 것이다. 소위 대중이나 서민, 필자가 경험한 역사의 주체인 민중조차도 완전한 역사를 만들어 가는 지혜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권력과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집단이나 개인보다는 국가와 민족의 우기에 직면해서 그것을 극복해 가는 용기와 결단은 민중들이 감당해 왔다는 역사적 결과들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역사의 완전성을 기대하는 낙관론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절망스런 상황에서 희망은 싹트기도 한다. 역사적 예수는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하였고 그리고 복음의 중심은 평화를 만들어 가는 것에 있다고 본다. 평화의 성취는 그 평화를 이루어갈 대상이 있다. 다시 말하면 평화의 전제는 혼자가 아니라 너라는 상대와의 관계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베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에 이어서 화이트리스에서 한국을 제와한 것을 공개적으로 게제 선언하였다. 한반도의 평화프로세스에 대한 시기와 질투, 한국에 대한 일본을 능가하려는 경제 발전에 대한 제약적 행위가 구체적인 이융ㄹ 수 있지만 더 근원적인 이유를 보면 조선반도에 대한 강제늑약체결과 강제 병합의 침략적 죄악들을 반성하거나 사죄를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최근의 전쟁 성노예와 강제징용에 대한 인권유린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배상을 하지 않는 가장 악한 비인간적 국가 행위이다. 우리가 히틀러 나치에 대한 죄악상을 반성하고 사죄 배상하는 독일 정부와 일본군국주의의 죄악상에 대한  반성과 사죄 배상을 하지 않는 일본을 보면 금방 비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째든 분단 74년을 지나는 지금 우리는 매우 어려운 역사적 시험대에 서 있다. 미국의 자본주의 적 고도의 장사꾼 정치와 미중의 패권 싸움과 무역전쟁, 여기에 대한 미북러의 단결된 행태, 일본을 움직여서 한국에 대한 경제적 보복 등 예측 불허의 연출들이 지속 확대되고 있다. 북미의 다른 계산, 더 정확히 말하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의 이익과 계산을 통한 북한 가지고 놀기와 남북의 진정한 자주적 교류와 평화적 실행을 흔들고 있다. 어령운 상황일수록 우리는 더 진중하고 침착하며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사고와 결단,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나 신중한 판단을 하되 이제는 어떤 역사적 한계를 극복해야만 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는 외세를 의존하는 공식적 외교를 하되 그것만을 의지하는 틀을 넘어서야만 한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경우에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평화의 완성은 아니다. 평화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억울한 일은 당하는 약자가 없어야 한다. 인간이 가진 본질적 원죄가 있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적인 범 죄, 즉 인권이 유리되는 사회적 구조악들과 차별, 불평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의 인권이 손상되지 않도록 배려하고 제도적인 것들을 정착시켜야 한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불의한 세력들의 정의와 진리, 생명에 대한 악의 결정판이다. 복잡한 현대 국가에서 약자들과 힘없는 자들의 인권은 유리되기 십상이다. 우리가 남북의 평화적 교류와 진정한 민족의 통일을 원하는 것은 이러한 모든 비인간화의 불의를 근본적으로 막고자 하는 하나님나라의 건설을 위한 기도의 실천이다.
누구도 어떤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공권력을 통한 억압이나 폭력이 있어서는 된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아베의 강제징용에 대한 경제적 보복의 행태는 아직도 우리가 진정한 자주 독립을 이루어야할 시기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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