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CI 칼럼] 강성률 목사의 ‘성령의 감동’
2020/06/22 14:1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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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률 목사(신촌예배당, 웨이크 사이버신학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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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왕상18:46).

 

이 말씀은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죽이고, 갈멜산 꼭대기에 올라가 기도한 후 큰 비가 내려 삼 년 가뭄이 멈췄을 때,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향하여 가는 아합 앞에서 취한 행동입니다. 그가 허리를 동이고 말보다 빨리 달릴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의 능력이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능력에 대하여 관주를 찾아보면 왕하3:15이 나옵니다. “이제 거문고 탈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이처럼 성령의 감동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덧입혀주시는 능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로의 꿈을 해석하였고(41:38), 삼손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사자를 염소새끼를 찢음 같이 찢었고(14:6), 다윗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오실 메시아에 대하여 미리 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선지자들 역시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전기와 다리미를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다리미는 그 자체로 아무런 능력이 없지만 전선을 전기에 꽂는 순간부터 구겨진 옷을 펼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전기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고, 다리미를 사람으로 본다면 전선을 전기에 꽂는 것은 믿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령에 감동 된 사람은 나약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어 강한 사람이 됩니다.

 

어둡고 거친 세상에서 성령의 감동을 입어야 신앙인들이 자신과 세상과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을 전제로 하고 누가 성령의 감동을 받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엘리사는 아합의 아들 여호람에 대하여 상당히 불쾌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호람이 비록 아버지 아합이 만든 주상을 제하였지만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죄를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날 이스라엘에게 조공하던 모압이 배반했습니다. 이에 분을 이기지 못한 여호람이 유다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에게 도움을 청하였습니다.

 

그렇게 모인 세 나라 군사들과 생축들에게 불행이 닥쳤습니다. 7일째 되는 날에 마실 물이 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할 수 없이 유다 왕 여호사밧의 요청으로 선지자 엘리사를 찾았습니다. 엘리사의 심정이 좋을 리가 없었습니다. 도저히 만나기 싫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사밧의 낯을 보고 거문고 탈자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성령의 감동은 하나님을 높일 때, 찬양할 때 옵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거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22:3). 하지만 마음이 상하거나 마귀가 들어간 사람은 찬송 부르기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때는 억지로라도 불러야 합니다. 억지로라도 하나님을 높이면 마귀가 떠나가게 되어 마음이 풀립니다.

 

여호수아는 성령의 감동 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27:18). 그가 모세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령에 감동 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성령의 감동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그 수종자 눈의 아들 청년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33:11). 여호수아는 위의 말씀처럼 모세를 수종하였고, 또한 회막을 떠나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처럼 시중드는 것과 기도는 성령의 감동을 입게 합니다.

 

1:10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성령의 감동을 받으려면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이 날 주님 한 분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정신을 가지고 온갖 일을 다 주께 맡기고 주님 앞에 나와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주일에 말씀 받지 못하면, 성령의 감동을 입지 못하면 신앙인들이 결코 승리할 수 없습니다. 주일에 말씀 받기 위하여 일주일 동안 기도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준비하는 사람에게 말씀을 주시고 은혜를 주십니다. 한 말씀 받기 위하여 간구하고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것이 그러한가?’하며 성경을 상고할 때 주님께서 전하는 사람을 통하여 말씀을 주십니다.

주일 한 시간 지킨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주일은 밤 0시부터 다음 날 0시가 되기 전까지를 말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 자에게 하나님께선 분명히 성령의 감동을 입게 하십니다.

 

성령의 감동은 양심 쓰는 자에게 임합니다. 요셉이 성령의 감동을 입었고 언제나 하나님이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은 사람이 보나 안 보나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 살았다는 점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과 동침을 요구했을 때는 남편 보디발이 먼 곳으로 갔거나 얼마간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는 때였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요구를 뿌리칩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신다는 것을 양심을 통하여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감동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 감동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중 하는 사람이 되고, 오랫동안 기도할 때 임합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또 양심을 쓰는 자에게 임합니다. 특별히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할 때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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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 댓글
유상열 님ㅣ2020.06.23 11:11:04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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