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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4.19혁명의 잊지 말아야 할 교훈
- ‘대한민국’ 건국은 기초를 잘 놓았다. ‘민주공화제’에 그 레일(rail)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기독교적 가치이었다. 해방 후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이가 건국대통령이자 초대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과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로 공이 컸다. 예를 들면, 반공과 기독교적 가치를 통해 6.25 전쟁을 치루며 공산화를 막고 ‘자유대한민국’을 지켜냈다. 또 수천 년 뿌리를 이어온 지주-소작 제도의 타파 없이는 ‘평등’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1949년 국회에서 농지개혁법을 통과시켜 농민 소작인에게 ‘토지분배’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또한 군종제를 도입하는 등을 통하여 군의 전력강화와 복음화를 이끌어 냈다. 이렇게 한국전쟁이 막을 내린 지 7년이 지난 1960년대는 자유당 정권 집권 12년차였다. 그 당시는 한국의 경제적 수준은 매우 낮았지만 그런 환경 속에서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이는 당시 교육수준이 높았던 것에 원인이다. 당시 문맹률은 4.5%정도로 굉장히 낮았으며 이 대통령은 초등교육을 의무교육으로 규정, 전 국민이 기초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어놨으므로 가난하지만 똑똑한 학생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런 시대적 변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제를 1-2대까지만 제한했던 헌법을 바꿔 3대까지 연임하면서 아예 장기집권으로 가기위해 이대통령의 라이벌이던 죽산 조봉암을 진보당 사건으로 체포, 증거를 조작하여 내란죄를 뒤집어씌우고 재심을 청구하기도 전에 신속히 처형해 버렸다. 이 사건으로 민심이 여당이던 자유당에 등을 돌린 상황에서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이것이 그 유명한 ‘3.15 선거’이다. 전국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했다. 당시 이승만은 86세로 매우 고령이어 부통령이던 이기붕이 사후 대통령을 승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상 유례없는 금권과 부정 선거에 개표조작까지 자행하였다. 이렇게 일방적으로 자유당은 대통령에 이승만, 부통령에 이기붕을 당선시키는데 성공했고 자유당은 권력을 계속 유지하는 듯 했다. 그러나 아무리 말없는 국민들이라도 장기판의 졸(卒)도 아니고, 대놓고 부정선거를 하니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이에 반발하여 부정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주장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시작된다. 3월 15일 경남 마산에서 이에 반발해서 의거가 발생했다. 그때 남원에 사는 김주열이라는 중학생이 마산 상업고등학교에 지원하려고 친척들이 모여있는 마산에 갔다가 시위에 참여했고, 그리고는 18일 실종된 것이다.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아들이 사라졌으니 마산으로 가서 아들을 찾아봤지만 소용이 없었고, 4월 11일에 마산 부두앞바다에서 김주열 군의 시신이 떠올랐다. 물속에 오래 있었으니 당연히 다 썩었고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경찰의 소행으로 밝혀지자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격분하고 폭발하며 혁명에 불을 붙였다. 4월 18일에는 서울에서 고려대에서 들고 일어났다. 학생 3,500여 명이 "민주 역적 몰아내라"고 외치며 국회 앞에서 데모에 들어갔다. 그러나 평화적인 고대생들의 데모에 대해 권력에 찌든 자유당 정부는 정치 폭력배들을 동원하여 데모대를 습격, 10여 명의 중경상자를 내었다. 4월 19일은 ‘피의 화요일’이라고 불린다. 이 날 경찰은 경무대에 몰려든 시위대를 향해 정부에서 귀가조치를 내렸지만 말을 듣지 아니하고 경찰과 시위대가 대치하자 계엄령이 내려지고, 같은 날 3시 경 계엄군이 투입되었다. 경찰들은 최루탄과 공포탄을 발포하며, 강경히 대응하다가 실탄을 쏘아서 시위대를 사살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권력을 지키려 했지만 그럴수록 시민들의 민주화의 열망은 꺼지지 않는 활화산처럼 힘껏 타올랐다. 이번엔 제자들을 잃은 대학교수들이 시위를 일으켰다. 4월 25일 대학 교수들이 시국 선언문을 채택하고 258명의 교수들이 시위를 벌였으며, 이를 본 학생· 시민들이 재차 시위에 합류하였다. 시민들은 굴하지 않았고 4월 26일에는 시위 군중이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학생 대표들은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하고 시국 수습 방안을 제안하였다. 사실 학생들은 선거를 재실시하라고 요구했다면, 교수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처음으로 하야를 요구했다. 아무래도 교수들이 이렇게 나오자 자유당 정권은 항복하고 국회의원들의 사표 제출로 인해 더 이상 퇴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날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고 하야성명을 발표했고, 드디어 4월 27일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4월혁명은 ‘자유와 ’민주‘ 질서를 수호하기 위한 시민투쟁이자, 최초의 민주화 운동이었다. 무엇보다 깨어있는 학생과 시민들이 시위를 주도적으로 이끌며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결국 무너뜨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3.1운동 이후 그 정신을 잇는 자유대한민국 최초의 민주혁명이었다. 영국의 정치가 존 달버그(John Dalberg-Acton,1834–1902)의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말을 뼈 깊이 새겨야 한다. 정치가 권력을 추구하는 자리이지만 멈춰야 할 때 멈추지 못하고 오직 권력만 탐한다면 그 오만한 권력에 국민은 견제와 균형을 요구하고 끝내는 저항한다는 것이다. 결국 자유 민주정치의 발전을 기대하였던 애국적인 학생과 시민들의 거센 시위는 부정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을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고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렸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중요한 분깃점으로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공화국의 원칙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1960년 야심차게 장기집권을 획책하던 그 정권을 끝내려 죽음으로 이뤄낸 민주화운동이자 국민적 저항사건이 주는 4.19의 교훈을 되새기게 된다. 잊지 말아야 할 4.19 혁명!, 그 60주년에 교회에 주는 교훈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가 부패한 권력에 침묵하거나 권력자의 편에 서면 안된다는 것이다. 교회가 시대를 읽고 정치가 부패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점이다. 비록 작은 목소리라고 포기하지 말고 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자유와 민주화를 향한 저항정신, 시민의식이 건강한 사회 성숙한 민주주의의 꽃을 피게 할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다이달로스는 떨어지는 새의 깃털을 보고 밀랍으로 부쳐서 날개를 만들어 하늘을 날기로 결심하고 발명한다. 다이달로스는 날개를 다 만들고 시험비행을 시작했고 그의 아들 이카로스에게 밀랍은 언제든 녹기 때문에 태양에 너무 가까이 날지 말라고 충고했다. 하늘을 날수 있다는 자만감에 빠진 이카로스는 결국 밀랍이 녹아 바다에 추락하여 죽고 만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집권여당이 개헌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는데 힘으로 밀어 붙인다면 21대 총선결과는 축배를 들 일이 아니라 독배가 될 수 있다. 진보가 폭주하는 국정, 극단의 정치, 권력투쟁을 추구한다면 국민의 외면을 받게 될 것이다.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반대를 ‘적폐’로 몰고 국론을 분열 시키며 야당을 더 이상 궁지로 몰지 말아야 한다. 국민이 정치에 다시 희망을 걸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이제 집권여당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내일의 민심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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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4.19혁명의 잊지 말아야 할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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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21대 국회와 의원당선자에 바란다
- 4.15총선이 끝났다. 코로나19사태로 어려운 선거전임에도 불구하고 유종의 미를 거둔 당선자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낙선한 후보자에게는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 아울러 당선자는 낙선자를 ‘위로’하고 낙선자는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냈으면 하는 바램이다. 어찌보면 당선자나 낙선자나 똑같이 지역발전과 경제회생, 국민의 안전한 삶의 질 보장으로 행복하고 잘 사는 지역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같았으니, 당선자는 먼저 손 내밀어 여러 갈래로 나뉜 민심을 하나로 만들 책임을 가지고 선거로 분열됐던 민심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바란다. 갈등과 반목은 실질적으로 지역 사회발전에 장애가 되고 정치에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정체성을 지키고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의원이다. 민생현장에서 눈물을 닦아온 그 실력으로 약속의 4년을 지역주민에게 희망을 꿈꾸게 하는 역할을 기대하며, 사회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조화시켜 소통과 화합의 장을 만들어가는 역할자로서, 민생의 안정화를 위해 지역이기주의 갈등과 양극화를 극복하는 지도력을 발휘했으면 한다. 지역사회에는 수많은 과제들이 존재한다. 그러기에 한 표 한 표를 모아 준 지역주민들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유권자와의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는 의정활동을 통해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해 견제와 균형, 비판과 타협의 정치를 실천함으로 칭찬 듣는 일꾼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기대한다. 오래도록 정도를 걷는 큰 정치인, 좋은 정치인으로 성장해 가기를 기대한다. 정치인은 많으나 좋은 정치인은 얼마 안된다. 이는 역사가 평가를 하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결코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없다. 사람에 대한 애정은 열심히 얼굴을 내미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정책으로부터 나온다. 이번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보다 공약과 정책 논의가 실종된 깜깜히 선거였다. 건전한 정책·공약 경쟁도 사라졌다. 각 정당의 정책들은 하나같이 기존 정책을 재탕, 삼탕한 수준이었다. 공약 및 정책을 급히 만들거나 과거 사례를 그대로 반복했다. 말로야 뭔들 못할까. 지역에 대한 면밀한 분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확한 재원 마련 근거도 없는 공약 남발은 참 실망스런 일이었다. 당선자는 선거 때 내세운 공약과 낙선한 후보의 공약도 차별화하여 지역발전에 기여 할 수 있는지 검토하여 실천될 수 있도록 해주기를 요청한다. 정치는 결코 높은 곳에 있지 않다. 정치는 가장 낮은 곳에 있어야 한다.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숙고를 하는 것은 정치의 시작이자 발로이며 이는 대의정치의 기본이다. 그런 비전과 정책 능력도 없고 의정 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상갓집 같은 데만 돌아다니거나 지역 행사에만 얼굴을 비추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착각하는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새로운 정치를 주문한다. 국민들의 혀를 차게 하는 각종 엉터리 정책에 지역 의원들이 거수기로 전락하고 행동대장이나 하는 정치로부터 벗어나야 국회가 산다. 우리 손으로 뽑은 정치인이 몸싸움을 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볼 때, ‘정치불신’은 계속된다. 진영싸움에 능하거나 중앙당 지시에 따라 거수기나 돌격대 역할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이번 총선은 나라와 국민 위해 헌신하는 인물 선택보다 거대 양당 대결의 장이었다. 이성과 합리, 실용의 완충지대가 실종됐다. 정치는 협상과 타협의 중도의 공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앞으로 현실은 거대양당의 구심력에 의해 끌려들어가 양자택일을 강요받는 상황이 발생할 것 같다. 사안별로 옳고 그름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우리 편은 무조건 옳고, 저쪽 편은 무조건 나쁘다는 진영논리에 함몰될 수도 있다. 제3정당이 거의 소수인 상태에서 거대양당이 대선을 겨냥해 정국 주도권 다툼을 벌일 경우 대화와 타협보다는 대결이 난무하는 동물국회가 재현될 수 있다. 국민 눈에 진흙탕의 개싸움으로 보이는 짓 좀 하지 말고, 앞으로 4년간 상생할 줄 아는 존경받는 정치인으로 정도를 걸어갔으면 한다. 혹시나 현실정치에 휘둘려 국민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가능하면 중도적이고 합리적이었으면 싶다. 그래야 국회가 상대를 인정하고 타협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정치가 그나마 살아날 수 있다. 경제위기 극복에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이념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의원이 많아졌으면 한다. 무엇보다 작년 정부 적자 사상 최악을 기록하는 눈사태가 시작됐다. 여기에 코로나사태로 인한 국가적 난제가 수두룩하다. '일단 쓰고 보자'에 쌓여 가는 나랏빚!, 미래를 보고 있는가. 눈덩이 국가부채를 보고도 돈 풀기 경쟁할 때인가. 재난지원금, 후폭풍 대책은 있나 그것이 정말 궁금하다. 동네 골목식당이 어렵다고 한다. 청년은 실업자 신세다. 당선의 기쁨에 안주하기에는 지역 경제가 너무 엉망상태까지 와 있다. 즉 모든 열과 성을 다해서 지역 경제를 살리는 일에 총 매진해도 부족하다. 경제가 너무 힘들 때, 경제를 살리는 그런 정치리더십을 발휘 했으면 좋겠다. 비례의원도 마찬가지이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투표는 최대 난제였다. 군소정당의 국회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 도입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마저 거대 양당의 횡포로 훼손됐고, 비례만 노리는 군소 비례전용정당의 난립으로 정책이나 정체성, ‘가치’등을 따져가며 투표하기가 쉽지 않았다. 시대정신의 변화를 읽지 못한 올드보이들의 경로당같은 정당은 자연히 도태되었고 기독자유통일당의 선전이 돋보였다. ‘비례’라는 이름으로 누군지도 모르는 의원들도 대거 탄생했다. ‘비례’라는 본래 취지대로 소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정책에 반영하기 위한 제도개선이 절실하다. 선거가 끝났으니 최대한 빨리 경기규칙은 명료하고, 셈법은 간단하며, 적용은 꼼수의 여지없는, 제도개혁과 국회개혁을 촉구한다. “국회의원이 되면 이렇게 하겠습니다” 선거기간 내내 다짐하고 호소했던 그 마음을 그 자세 그대로 지니고 실천하면 얼마나 좋을까. 유권자와 소통한 것을 항상 가슴 깊이 되새기며 공약 이행사항을 평가받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정치는 말없이 자신의 일을 하는 선량한 국민들의 눈물과 한숨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배려에서부터 시작된다. 초심을 늘 지켜 주길 바래보면서 금배지 달았다고 괜히 목에 힘주지 말고, 낮은 자세로 국민들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 대정부, 대사회적으로 ‘갑’이 되어 당당히 할 말을 다 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지역민들에게는 항상 ‘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누구보다 잘한다’는 권력의 오만함이 아니라 ‘누가 해도 나보다 잘 할 것’이라는 일꾼의 겸손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복지에서 소외된 사각지대가 없는 나라를 만들면 좋겠다. 아이들이나, 노인분들, NGO와 다문화나 새터민, 그런 이들에게까지 손길이 닿는 생활정치를 펼쳐지기를 소망한다.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는 새로운 정치를 위해 여야를 떠나 국민과 소통하고 시대와 민심의 흐름을 읽으며, 지역과 나라를 걱정하고 위기극복을 위해 헌신하는 의원!, 물론 꿈같은 이야기이겠지만 그렇게 국민에게 사랑받는 21대 국회가 됐으면 한다. 유권자는 당선자를 알고 있다. 국민은 현명하다. 그래서 항시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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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21대 국회와 의원당선자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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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코로나 전쟁 '세상에 우연은 없다'
- 우한에서 시작된 바이러스 코로나19의 기세가 생각보다 세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구와 수도권 확산에 있어 이단과 사이비가 바이러스 집단 감염과 확산의 온상이 되었지만, 이로인해 개신교 예배로 전파된 예는 극소수로 미미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라는 이유만으로 그 비난을 다 떠 않은 형국이 되었다. 바이러스 확산과 혐오로 번진 불길이 꺼질 줄 모르고 타오르고 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무기한 전쟁,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의 사투는 인류와 인연이 깊다. 이런 바이러스 전염병의 팬데믹(pandemic)현상은 앞으로도 인류가 맞서야 할 가장 큰 장벽으로 인식된다. 전염병을 '전쟁'으로 비유하며, 현재만이 아닌 앞으로도 꾸준히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전 세계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 코로나19를 통해 보는 불신과 차별, 배제와 혐오의 벽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코로나가 한국교회에 주는 과제는 무엇인가? 코로나 앞에서 교회가 이단이나 사이비처럼 처신하면 곤란하다. 그래서 공교회성을 지닌 건강한 교회가 절실히 요구된다. 세계적 현상인 바이러스천지, 코로나전쟁 가운데서 시대적 통찰력을 가지고 예견한《바이러스폭풍의 시대(네이션울프,2019,김영사》,《슈퍼버그(맷 매카시,2020,흐름출판사)》두권의 책을 주목하게 되었다.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는 생물학자이자 세계적인 바이러스 전문가인 네이선 울프가 밝힌 살인 바이러스의 정체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미국, 동남아와 아프리카 등지에서 숙주와 바이러스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전문가라서 이야기에 설득력이 있다. 메르스 사스 에볼라 치명적 신종 변종 바이러스들의 시대를 맞아 우리는 무엇을 알고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치명적 신종 변종 바이러스가 지배할 인류의 미래와 생존 전략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 독창적 시각으로 예견하고 전염 바이러스에 관한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바이러스의 행로를 바꿀 강력한 방안을 논하고 있다. 저자 울프에 따르면 신·변종 바이러스는 인류가 그간 수백만년 전부터 사냥, 요리[불의 발견] 그리고 길들이기[가축, 작물화] 등을 통해 동식물에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인체에 침범하면서 생겨나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맥락은 제레드 다이아몬드가《총,균,쇠》에서 가축과 작물화 등 길들이기가 성행하여 천연두, 인플루엔자, 결핵, 말라리아, 페스트, 홍역, 콜레라 같은 여러 질병들이 동물에서 인간에게 감염되고 진화한 것이라 주장한 바 있다. 울프는 침팬지와 보노보 등 영장류에 대한 풍부한 관찰 기록과 실험 결과를 토대로 다이아몬드가 놓치거나 생략한 틈새를 메워 준다. 1960년대 AIDS의 대유행이 시작된 맥락도, 그 무렵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한 항공산업과 맞물려 있음을, 이와 함께 도로, 철도 등 도시화와 문명화가 지역적으로 국한되어 있던 바이러스를 전세계로 전파시켰다는 것. 일부 학자들은 1960년대 일회용 주사기가 널리 보급된 사실에도 주목한다. 《슈퍼버그》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뉴욕 프레스비테리안 병원 맷 매카시 의사가 앨러간 박사의 연구팀에 요청하여 진행한 항생제 임상시험의 기록과 과정을 담고 있는데, '슈퍼버그'란 슈퍼 바이러스(super virus)를 줄임말로, ‘슈퍼버그’란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바이러스를 뜻한다. 저자는 슈퍼버그의 치명적인 위험을 알리는 동시에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과 이를 행하는 의료진들의 고군분투를 보여주며, 강력한 항생제로도 치료되지 않는 변이된 박테리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슈퍼버그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지만 항생제는 1970년대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한다. 한마디로 개발이 늦어지는 이유는 바로 돈! 새로운 항암제는 높은 가격을 치를 의향이 있지만 비싼 항생제는 대중이 거부감을 갖는다는 논리로 대응한다. 10년 이상 걸려 항생제를 개발해도 금방 슈퍼버그 내성에 따라잡혀 투자비 회수에 난항을 겪는다는 것. 따라서 항생제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정부의 지원을 전제로 하다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항암제는 내성이 생겨도 개인의 불행에 그치지만 항생제는 내성이 생기면 사회로 전파된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이렇게 항생제 내성이 생긴 슈퍼버그는 오늘날 적응력이 더 강해진 악성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 코로나 백신이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밤잠을 설쳐가며 백신 및 항생제 개발에 힘쓰고 있다. 그렇게 인류는 병원균과 전쟁을 치루고 있다. 코로나19로 막대한 시간과 비용이 드는 항생제 개발에 쏟지만 시간이 지나면 개발한 항생제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WHO는 2018년 2월, 인류를 위협할 질병 중 하나로 '질병X'로 선정하며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변종(X)의 위협을 경고했다. 2003년 사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2012년 메르스, 1976년 처음 생겨 2014년 강타한 에볼라 바이러스 등 끊임없는 바이러스의 변이는 인류를 위협하며 인류와 공생하고 있다. 코로나 이후 언제 또 다른 슈퍼버그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새로운 바이러스천지에서 물고 물리는 싸움에서 인류가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의학계에 놓인 화두이다. 세상에 우연은 없다. 코로나19는 징조(sign)이다. 어찌보면, 박테리아, 바이러스, 세균 등은 자연의 질서를 무분별하게 파괴한 인류에게 주는 경고이다. 모두가 두려움에 싸여 있을 때 그래도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시대는 희망이 있다. 과연 크리스천 스스로 주님이 코로나의 ‘백신’이라고 믿고 있는가. 바이러스천지,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책을 읽으며, 울프의 경고에 귀 기울이게 된다. “과거에는 서로 만난 적조차 없던 병원균들이 어디에서든 만나 새로운 모자이크 병원체를 형성하기도 하며, 부모 세대에서는 꿈도 꾸지 못하던 방식으로 확산될지도 모른다. 요컨대 우리는 앞으로 파도처럼 끝없이 밀려드는 새로운 유행병들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닥칠 유행병들을 더 효과적으로 예측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유행병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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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코로나 전쟁 '세상에 우연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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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4월 총선, 유권자가 바꿀 수 있는 세상 열릴까?
- 시인이 말했듯 4월은 잔인한 달인가. 우한코로나 사태로 국가적 재난가운데 빠져 있다. 국가적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경제는 기력을 잃고 바닥을 친지 오래고 맨 땅에 헤딩하고 있으며, 안보는 불안, 외교는 왕따이다. 거기에 방역실패, 마스크 대란을 보면 고민된다. 국민 대다수가 마스크 하나 제대로 구하지 못해 ‘약국순례'를 하며 거리를 헤매고 있다. 대구의 눈물과 부부가 코로나에 걸려 남편이 사망했지만 장례를 치루지 못한 아내의 참담함, 마스크 하나도 제대로 살 수 없는 나라, 이런 정치리더십으로 어떻게 국민의 마음을 잡을 수 있을까. 국민들은 일상이 뒤틀리고 경제적 피해가 불어나는 고통의 터널에 갇혔다.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것도 큰 고통이다. 집권당의 장기집권을 위한 투쟁의 3류 정치, ‘정의’니 ‘공정’이니 ‘자유’니 하는 말은 이미 오래전 언어의 유희가 되었다. 21대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고민이 많아진다. 배신과 협잡의 정치판을 보며 꼭 찍어야 하는 정당도, 꼭 찍고 싶은 후보자도 찾기가 쉽지 않아서이다. 4월 총선은 21대 입법부를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바꾸는 중요한 선거다. 한 표로 4년 뒤 국가의 미래가 새롭게 바뀔 수도 있고 반대로 뒤쳐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번 총선의 선택기준은 분명 ‘코로나리더십’으로, 재난에 어떻게 대처 했는가 하는 것과 반드시 물갈이나 불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무서운 줄 모르는 정치에 찌든 직업적 정치인들을 가능하다면 퇴출시켜야 한다. 코메디같은 정치판을 바꿔야 한다. 선거 때면 나타나 명함 돌리는 선거꾼이나 말 잘하는 아나운서, 목소리 큰 사람 뽑는 선거가 아니다. 총선은 현재의 삶을 살아가는 시민의 대변자를 뽑는 것이다. 그래서 ‘중앙정치꾼’이 아닌 주민들이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생활밀착형’으로 바꿔야 한다. 국가적 재난 앞에서 온 몸을 던지며 대구로 달려가 의료봉사를 한 어느 정치인을 보며 감동한 바 있다. 그와 같이 생명을 살리려 한 몸을 던져 헌신한 의료진의 봉사와 보건당국의 역할을 기억한다. 그들은 국민의 영웅이었다. 그들의 헌신으로 겨우 버티는 국가가 되었다. 이와 반대로 기득권을 누리며 권력의 맛에 찌든 정치인들의 탁상공론도 지켜보았다. 구태 정치인들의 직권남용, 국가 재난앞에서 편가르기 패싸움정치가 얼마나 하찮은 것인지, 어떤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지 일깨워 주었다. ‘코로나민심’앞에서 정당의 정책도 인물도 보이지 않는다. 투표 전 후보자의 인물, 공약, 삶의 과정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한 표를 행사 할 작정이지만 가상현실 같은 상황이다. 매번 선거에서 공약이나 정책을 보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것 같고 지역이 천지가 개벽할 것 같아서 귀가 번쩍이고 마음이 설레이지만 선거가 끝나면 금새 아무 일 없었듯이 빈 공(空)약이 될 것이다. 각 정당의 공천은 그들만의 리그인가. 공천관리위원회가 후보자를 최소한 걸러냈다고 하지만, 지역유권자와의 소통이나 공감없는 공천이다. 여론조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최종선택은 시민들의 몫이다. 전과 병역, 사생활, 막말 등도 검증하고 선택해야겠지만 코로나사태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경제위극 극복 대안제시 능력을 더 높이 주목하고 싶다. 후보자들이 마스크 사기 위하여 줄서 본적이 있는가. 한국교회나 ‘한국교회유권자연합’이 공명선거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성도들을 지도하는 제 기능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특정 정당 지지는 곤란하다. 훌륭한 인물이 선출되길 바라는 기도, 기독교적 세계관과 관점으로 정치보기,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는 설교, 또 하나님보다 정치인이 우상이 되지 않도록 마음 지키기, 가짜뉴스 생산하거나 유포하는 행위 자제,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과 후보자나 당선인의 공약 실천 유무 파악하기 등은 강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비례후보자들도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언론이나 신앙의 자유까지 제한되는 상황에서, ‘예배중단’이나 ‘교회폐쇄’를 주장하는 사회주의자 같은 오만한 후보나 정치권에 줄서기 보다는 해당 후보의 정책과 가치관을 검증하고 선택하도록 지역사회를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자들이 쏟아내는 특정 정당이나 후보 찬성, 반대하는 발언이 선거에선 경계의 대상이다. "우파 지도자가 당선돼야"라고 설교한 목사 12명이 고발당한 바 있다. 매주 칼럼애독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메일이나 SNS 문자로, 온 오프라인 신문 지면에서 칼럼을 읽는 이가 많을 땐 25만명을 넘어서다보니 반응이 즉각적이다. 더 신중해지고 어느 교수처럼 ‘민주당 빼고’식의 정치적 칼럼을 쓰지는 못한다. 사실 4월 투표도 잔인하다. 전염병의 한복판에서 치러진다. 전혀 소통없는 선거, 후보가 누구인지, 투표소를 가야할지 줄서기도 부담스럽고 투표소 안에 들어가기도 꺼림직 하다. 투표율이 폭락할 가능성이 높다. 투표율이 낮으면 표의 왜곡현상이 생긴다.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 대면접촉이 없는 선거를 치루니 선거가 사이버 게임같이 가상현실이 된다. 오랜 정치생활을 하였거나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으면 당연히 당선된다고 착각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투표독려로 투표율을 높여야겠지만, 코로나 위험으로부터 유권자의 안전을 보장하는 방안도 제시해야 한다. 투표소의 방역이나 소독과 더불어 현장 투표자 전원에게 마스크를 지급하거나, 투표소를 최대한 늘려 분산시키는 방법도 고려돼야 한다. 가능하다면 교회가 주민들의 투표소로 제공되었으면 한다. 코로나로 느끼는 지금의 참담한 현실과 공포를 잊지 말자. 멸시와 조롱의 대상이 된 교회, 교회가 세상을 바꿀 힘이 없다면 유권자로서 바꿔야 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혁명’이 아니라 ‘투표’로 바꾸는 시스템이다. 한 표가 얼마나 엄중한지, 그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이 있다면 ‘투표’뿐이다. 사실 단 한 표 차이로 역사의 물줄기가 바뀐 사례는 많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결정짓는 것은 ‘투표참여’가 답이다. 지금 이대론 더 이상 안 된다. (사회구조적 모순 앞에) 침묵하지 말고 외쳐라. 분노하라. 저항하라. 그리고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참여하라. 그 어느 때 보다 한 표가 절실하고 중요하다. 표류하는 자유대한민국의 미래를 구할 것인가. 코로나 위기 가운데서도 유권자들이 적극적으로 투표에 임해야 하는 이유다. 한 표가 미래를 결정짓고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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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4월 총선, 유권자가 바꿀 수 있는 세상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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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코로나사태와 ‘온라인예배’ 유감
-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고 확산되면서 종교계의 대처가 여론을 도배하고 있다. 코로나확산은 신천지를 해체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120만명을 넘어서고, 종교계가 마치 코로나의 진원지처럼 비춰지고 있다. 한국천주교는 16개 모든 교구가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했다. 한국천주교 236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대한불교조계종은 법회, 성지순례 등 행사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이처럼 각 종단마다 예배나 미사, 법회를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행사를 온라인으로 대체했다. “국민 모두의 안전을 위해 모든 종교계의 신중한 판단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라는 정부의 간곡한 요청에 서울의 대형교회를 비롯해 주요 교회 상당수가 이에 동조했다. “국민들과 성도들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온라인으로 예배를 중계했다. 서울의 온누리교회나 확진자가 나온 소망교회·명성교회를 비롯해 새문안·덕수·도림·금란·삼일·서대문·오륜·잠실 교회 등과 경기도의 인천 주안장로교회 등도 온라인으로 대체했다. 교단까지 나선 경우도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는 지난 달 26일, 주일예배를 가정·온라인 예배로 드릴 것을 권고하는 지침을 내리기도 했다. 교단까지 나서 주일 현장예배 자제를 권고한 것이다.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도 “각 교단 지도 아래 개별교회의 당회가 주일예배를 잠정 중단하는 것을 고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반해 몇몇 교회는 여전히 현장 주일예배를 고수했다. 영락교회는 ‘목회서신’을 통해 “주일 낮 예배는 1~5부 예배를 정상적으로 드린다”며, 임시당회 열어 중단없는 예배 지속을 결정했다. 이런 결정의 배경에는 ‘기본적으로 예배는 유지되어야 한다’, ‘한번 중단된 예배는 쉽게 재개되기 힘들다’, ‘예배중단이 길어지면 교회공동체가 와해되거나 회복이 힘들 정도로 약화될 것이다’라는 세 가지 이유를 들었다. 바이러스로 인한 예배중단은 인류 근세 종교사에 유래가 없는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것은 전쟁만큼 더 무서운 일 인 것 같다. 개인의 위생이나 이단 사이비에 대한 이처럼 경각심을 가지고 전 세계가 각성한 계기도 드물 것이다. 생명과 신앙 사이에서 한쪽을 택하여 예배를 중단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과 교회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교회는 본질적으로 예배드리는 곳이다. 그러기에 예배는 교회의 기본이다. 지금까지 교회가 예배를 중단한 경우는 없다.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여 교단이 폐쇄를 당한 경우는 있었지만 예배를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생(生)과 사(社)의 6.25 전쟁의 포탄 가운데서도 예배는 중단되지 않았다. 요즘 한국교회를 향한 시선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주일예배를 드리면 나쁜 교회이고, 주일예배를 안 드리면 좋은 교회’라는 이상한 프레임이 퍼지고 있다. 이런 프레임은 ‘주일’과 ‘예배’에 대한 거부감을 키우는 일이다. 여기에 헌금문제까지 거론되면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진정으로 국민들, 성도들의 건강과 안전을 생각한다면, 과감한 결단을 내려 예배를 중단해야 한다”는 소리를 높이는 목사 장로가 있는가 하면,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주일 대예배 중단 의견’을 묻는 여론 조사를 진행하는 목회자기관까지 등장했다. 또 “우리의 신앙형식이 세상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우리의 집단적 이기심이지 이 세상을 향하신 생명의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고 강조하며 하나님의 뜻까지 들고 나오기도 연합기관도 나타났다. 신앙이나 예배는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닌 이상 누구도 간섭하거나 억압할 수 없는 선택사항이다. 주일성수의 신앙은 자유이고 자율의 영역이다. 엄밀히 말하면 생명처럼 소중한 예배에 참석하고 안하고는 선택적 자율의 문제이다. 교회는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 예배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의 예배중단은 ‘바이러스가 올 수 있다’는 염려와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안 올수도 있다’는 가정도 할 수 있다. 교회가 정부와 달리 국민 전체의 위생과 예방, 확산을 방지할 책임이 있는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지만, 본질적으로 정부의 책임을 교회에 돌리려 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교회가 방역체계에 협조하고 그렇게 해야 한다. 방역을 최대한 하여 예배 참석과 출입시 세정 및 방역마스크, 체온체크 등 할 수 있는 예방을 다하면 예배할 수 있어야 한다. 교회나 목회자, 성도 모두 예배를 위해 모이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가슴 아플까. 멕시코 난민들과 부르는 노래가운데 ‘돈데보이(어디로 가야만 하나요?Donde voy)’가 있다. 힘겨운 삶을 벗어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미국 국경을 넘어야 하는, 그리고 어렵게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멕시코 난민들의 애환을 담은 절규의 노랫말이다. 이처럼 주일이면 문 열린 예배드리는 교회를 찾아 ‘어디로 가야만 하나요?‘(Donde voy)’묻는 수많은 신자들의 소리를 듣게 된다. 지금처럼 예배가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은 적도 없는 것 같다. 교회의 예배중단과 온라인예배라는 표현은 유감이다. 갑작스런 코로나19로 교회가 예배를 쉰다는 것과, 예배를 유튜브, 인터넷, 스마트폰, 방송으로 드린다는 결정은 교회의 존립 대한 또 다른 문제를 낳게 된다. 그럼 주일예배를 대체하는 것은 ‘온라인중계’인가?, ‘온라인예배’인가? 온라인중계를 ‘예배’로 인정할 때부터 예배당은 존재가치를 잃게 된다. 앞으로 예배는 방송시설만 있으면, 아니 스마트폰으로 찍어 SNS로 발송 중계하고 헌금만 받으면 된다는 식이다. 그럼 교회출석을 하지 않는 ‘안나가신자’의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공교회의 온전한 예배는 ‘회중’이 필수적이다. 회중이 모이지 않으면 예배가 성립되지 않으며, ‘성도의 교제’가 없는 예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코로나19로 하나님 앞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며 신앙 지키는 일과 세상에 불어 닥친 생명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일 사이에서 교회의 고민이 크다. 교회는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 못지않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영혼과 신앙의 길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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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코로나사태와 ‘온라인예배’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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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마테오리치 선교사에서 다산(茶山) 정약용까지
- 한문성경이 중국을 통해 조선에 처음 전해진 것은 조선후기이다. 중국에 기독교를 전한 이는 이탈리아 출신 예수회소속 선교사 '마테오리치'다. 그는 중국어를 배워 유교의 경전인 사서(四書)를 라틴어로 번역하고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라는 지도까지 만들었다. 그뿐 아니라 기독교를 중국에 전하기 위해 유교를 공부하여 유교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유학자들의 한계를 찾아내 기독교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하므로 기독교는 ‘서교(西敎)’,'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조선의 유학자들에게 큰 관심거리였다. 이로 인하여 기독교를 반대하였던 조선의 유학자들조차 기독교를 접하게 된다. 조선후기 대표적 유학자로 ‘성호사설’을 저술한 이익(李瀷)은『천주실의(天主實義)』를 읽고 “그 학문은 오로지 천주(天主)만을 위하는데 '천주'란 곧 유가(儒家)의 '상제(上帝)'이다”라고 '상제'와 '천주'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기독교(천주교), 즉 서학이 유교와 불교사상이 굳건한 조선에 뿌리를 내린 것은 인조 때이다. 숙종 때에는 교세를 자못 떨쳤으며 영.정조 때에는 황해. 강원. 경기. 충청. 전라 등 각처에 성행했다. 특히 영조시대에는 전성기를 맞아 이익(李瀷)을 중심한 서학연구는 그의 제자와 문하생들에게 확산되어 ‘조선서학’이란 학문체계가 수립됐고, 조선후기 실학형성의 중요한 줄기가 되었다. 당시 사회불안 속에서 서학사상은 지식층에게 새로운 개혁의식의 확대와 봉건사회에 대한 개혁의식의 자극제 역할을 감당하였다. 이렇게 서학이 크게 번창하게 되자 '서학서(西學書)'의 반입을 금지시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하지만 서구의 문물을 배운 실학파 학자들이 기독교를 공부하고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 사상(西學)은 조선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조선 봉건사회의 개혁을 이끌려는 실학파가 생겨났고 그 대표적 실학자 이익의 사상적 후계자가 ‘정약용’이다.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은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났다. 1784년 실학파 선구자인 이승훈은 사절로 북경에 갔다가 귀국 직전 예수회 신부 그라몽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많은 기독교 서적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듬해 그는 명동에 있는 김범우 집에 조선 성당을 건립하고 그의 동지 이벽, 권철신. 권일신 형제와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 이가환 등과 공동으로 기독교를 포교했다. 당대의 유학자들이 기독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게 된 것은 성리학으로 표현되는 유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해답이 성경 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16세때 이가환 및 매형이 되는 이승훈을 통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 보고 서학에 심취했다. 정약용의 개혁사상과 과학적 지식은 이때 습득한 서학, 즉 기독교 사상이 큰 영향을 끼쳤고 1885년 기독교에 입교하며, ‘요한’이란 세례명을 갖게 된다. 기독교 포교활동이 표면화되면서 조정으로부터 금지령이 내려졌고, 기독교 탄압 시책들이 나오게 된 것이 신유박해(辛酉迫害)이다. 1801년 어린 순조가 왕위에 오르자 섭정을 하게 된 정순대비(貞純大妃)는 기독교(서교(西敎)를 사교(邪敎)라며 엄금·근절하라는 금령을 내렸다. 기독교인으로 밝혀진 주문모, 이승훈, 정약종, 권철신, 이가환, 홍교만, 홍낙민, 최창현, 최필공 등 천주교도와 진보적 개혁가 등 100여명이 처형되고 400여명이 유배되었다. 이때 수배되어 토굴에 숨어 지내면서 조선교회를 구하기 위해 흰 명주에다 교회의 박해상황을 알리고 신앙의 자유를 강구하기 위해 황사영이 편지를 쓴다. 당시 베이징[北京] 주교 구베아에게 서한을 작성하여 구원을 요청하였는데, 이것이 발각되어 11월 능지처참을 당한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에게 영세받고 알렉산드르라는 교명으로 신자가 된 이로, 다산 선생의 조카사위였다. 다산 선생의 형제들은 신앙의 순교자가 되었다. 처형당한 정약종, 형 정약전은 흑산도로, 정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당했다. 유배에서 풀릴 때까지 18년간 그는 학문에만 몰두했다. 이때 정치기구의 전면적인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했다. 유배생활 가운데서도 그의 개혁의지는 식을 줄 몰랐고, 그의 개혁사상 속에는 기독교 사상이 분출됐다. 1936년 정약용의 사망 후 1839년 기해박해 때는 풍양 조씨 조만영의 주도로 앵베르 주교와 모방과 샤스탕 신부 그리고 정약종의 둘째 아들인 정하상 등 70여명의 교인들이 순교하였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철저히 기독교 신앙이 사상적 기초를 이루고 있다. 선생은『시경(詩經)』 을 통해 분명히 창조주가 있음을 확인하였고, 그것이 '천「天」' 즉, '상제「上帝」'이며, 상제는 인간만사를 강림하는 능력을 가진 세상만사를 주재하는 자라고 보았다. 만물의 근원인「천」즉, 상제는 결코 주자의 리(理)와 같은 자연만물을 지배하는 법칙이나 원리가 아니라, '위격(位格)'을 갖춘 윤리적이며 신적인 존재였다. 우리를 굽어보고 재앙과 행복을 가려주는 이러한 천, 상제를 성심으로 경외하여 섬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산 선생의 이러한 사상은 국가개혁에 중심적 역할을 감당했고, ‘목민심서(牧民心書)’, ‘경세유표’(經世遺表)』등에 잘 드러나 있다. 목민심서에서 ‘애민’은 기독교의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는 이때, ‘마과회통(麻科會通)’으로 백성과 고통을 나눈 다산 정약용의 참 모습을 우리 공무원들이 되새겼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정약용의 가장 큰 업적은 백성을 위해 살아가는 ‘애민’ 정신으로 다산 선생이 후대에 존경받는 이유이다. 수도권 동북부 거점도시 남양주시가 다산 정신을 계승하려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필자는 다산 선생에게서 성경의 총리 다니엘이나, 숨겨진 신앙인 니고데모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다산은 올곧은 신앙적 가치관과 정신세계로 부패한 관료들의 핍박과 괴롭힘에게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간다. 다니엘처럼 어떤 환경에서든지 자신의 신앙대로 백성을 섬기는 일을 다 했다. “악당들의 유언비어가 더욱 심해졌다”라고 ‘자찬묘비명’에서 표현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18년의 세월을 원망이나 좌절로 보내지 않고 오히려 방대한 저술활동을 통해 척박한 유배지를 학문의 성지로 승화시킨 그 정신과 혜안은 깊은 감동을 안겨준다. 그가 남긴 저서의 내용과 양을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500여권에 달하는 책을 집필하였는데, 그의 시(詩)와 글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자, 자신의 절망적 상황에서 무너지지 않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을 슬퍼하고 그런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지식인으로 대안을 모색하였다. 이러한 끈기와 열정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정신을 다산선생의 자손인 정영진 관장이나 크로스로드를 이끄는 정성진 이사장에게서 발견하게 된다. 다산 정약용을 떠올리며 오늘의 한국을 생각해 보자. 지금 한국사회는 다산선생이 살던 조선 봉건사회와 매우 유사하다. 정치인들의 당파 싸움으로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상실, 관리들의 부정부패 만연,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사회현상, 부동산과 토지문제, 중소업체의 몰락 등 사회개혁의 필요성은 그 때와 같다. 형제를 죽이고, 매형을 죽이고, 조카를 죽인 그 시대를 정약용 형제는 저주하지 않았다. 시대를 저주하는 대신 아파했다. 그러나 애통하는 자(Those who mourn)는 불의한 시대에 위로를 받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시대는 이들과 대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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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마테오리치 선교사에서 다산(茶山) 정약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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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별이 된 시인 윤동주 서거 75주기를 맞으며
- 오는 2월 16일은 시인 윤동주가 서거한 지 75주년이 된다. 시인 윤동주는 우리들에게 참 아름다운 시어를 남겼다. 육신은 비록 처참하게 산화되었지만 그가 남긴 작품 덕분에 그는 어려웠던 시대를 별빛처럼 반작이며 산 시인으로 추억하게 된다. 그는 1945년 2월 16일 그는 두권의 자필 시집을 남기고 떠났다. 1947년 2월에 추도회가 거행되고 유작이 처음 소개되었다. 1948년 1월에 그의 유작 31편과 정지용의 서문으로 이루어진 유고시집인《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자신의 분신 같은 육필 원고를 후배 정병욱과 이양하 교수에게 보관케 함으로써 첫 시집이 나온 이후 꾸준히 그의 작품들이 발굴되어 지금까지 130편의 옥고가 우리에게 전해지며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나라 잃은 설움을 극복하기 위한 선택으로 기독교인들이 고향을 떠나 이주한 곳, 북간도! 김약연 목사님을 비롯하여 아리랑의 춘사 나윤규, 조두남, 송몽규, 문익환, 이동휘 등 수많은 사람들이 십자가를 손에 쥐고 시대적 소명을 받고 북간도에서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고, 독립을 위해 헌신했는지, 그들의 희생과 눈물과 기도가 있었음을 기억하게 된다. 윤동주 시인은 연변 용정에서 출생하여 명동학교에서 수학하였고, 은진중학교에 진학한 윤동주는 집안 어른들을 설득해 그 해 여름 숭실중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게 된다. 문익환이 진학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숭실중학교는 ‘한국의 예루살렘’이라 불리는 평양에 자리 잡고 있는 학교로, 1897년 배위량(裵緯良, William M. Baird) 선교사의 자택에서 13명의 학생으로 시작되었다. 윤동주는 숭실중학교 시절 문학에 심취해 1935년 10월에 발간된『숭실활천(崇實活泉)』 제15호에「공상(空想)」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 시는 최초로 활자화된 윤동주 시로 주목하게 된다. 윤동주가 쓴 최초의 동시로「조개껍질-바닷물 소리 듣고 싶어」와 「오줌싸개 지도」등도 이때 쓴 작품으로 추정된다. 1935년 9월 숭실중학교 3학년에 편입한 윤동주는 1936년 3월까지, 객지생활 7개월 동안 시 10편, 동시 5편 해서 무려 15편의 시를 쓰며 정지용(鄭芝溶)의 시에 심취해 쉬운 말로 진솔한 감정을 표현하는 새로운 시세계를 열어간다. 평양 숭실중학교에 와서 그가 부딪힌 것은 뜻밖에 ‘신사참배’ 강요였다. 일제는 한민족의 회유와 탄압, 말살이라는 정책을 가지고 그 일환으로 각지에 신사를 세우고 심지어 학교와 가정에도 소형 신사를 설치하도록 하는 황국신민화 정책을 추진했다.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는 기독교는 조선총독부의 강경책에 신사참배 정책에 저항하면서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1936년 1월 일제 총독부 당국이 신사참배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숭실중학교 윤산온(尹山溫, George S. McCune) 선교사를 교장 직에서 파면하자 일어난 학생들의 항의 시위로 숭실학교는 무기휴교에 들어가고 윤동주의 숭실중학교 생활은 이렇게 단 7개월만에 끝나고. 1936년 3월 문익환과 함께 용정으로 돌아온 윤동주는 용정에서 광명학원(光明學院) 중학부 4학년에 편입하게 된다. 광명학원은 숭실중학교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다. 대륙낭인 출신의 일본인이 경영하던 친일계 학교가 되었던 것이다. 광명중학에 재학하던 2년 동안 윤동주는 동시에 더욱 몰두하여 연길에서 발행되던 월간잡지「카톨릭소년」에 모두 5편의 동시를 발표하기도 했다. 1938년 4월에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 해 10월 조선일보에 시「아우의 인상」와 1939년 2월 조선일보에 수필「달을쏘다」를 발표하게 된다. 연희전문 2학년 재학 중 소년(少年)지에 시를 발표하며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다. 윤동주의 작품중 눈에 띄는 것은 「문우(文友)」에 발표 작품인데,「문우(文友)는1932년 12월 18일 연희전문학교 문과의 문우회에 의해 태어났다. 1941년 「文友」는 5호를 마직막으로 종간 당시 송몽규는 문예부장으로 활동했다. 시대의 압박으로 마지막 발간되는「문우」에서는 송몽규는 ‘꿈별’이란 필명으로 「하늘과 더불어」를, 윤동주는「새로운 길,「우물속의 自像畵(자상화)」를 발표했다. 편집 겸 발행인에는 나중에 일본 유학을 하게 되는 강처중(姜処重)으로 되어있다. 이들은 모두 문과 4학년 동급생으로 절친한 우정을 나누던 사이였다. 그리고 이는 최소한 1941년 6월까지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버티며 작품으로 몸부림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학을 사랑했던 그들이였기에 숱한 고생 속에 겨우 모았던 원고 대부분이 검열에 걸려서 게재 불가능이 되었던 사실과, 식민지 공간 속에서 총력전의 군국주의 체제 강화로 인해 교우회 발행의「문우」는 해산되었다. 마지막호 전체 내용이 거의 대부분 일문(日文)으로 쓰여져 있을 정도였지만 윤동주 시만은 끝까지 한글 작품으로 남아 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 그의 생애는 짧았지만 음울하고 가혹한 시대 상황 속에서 반드시 여명은 오리라 믿고 써내려간 주옥같은 시어들은 오늘날까지 해맑은 영혼의 징표로 남아 우리의 영혼을 정화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의 아픔을 안고 밤하늘에 별빛같은 삶을 산 시인의 삶을 다시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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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별이 된 시인 윤동주 서거 75주기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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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2020년, 교회는 세상에 무엇을 줄 것인가?
- 2020년 새해, 새날이 밝았다. 섬기는 교회와 가정, 그리고 이 민족과 겨레의 가슴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하며, 이 땅에 평화가 가득한 한해가 되기를 기도한다. 2020년, 새로운 10년을 준비해야 할 대전환의 때이다. 금년은 역사적으로 유관순열사 순국100주년이자,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는 동시에 4.19혁명 60주년이다. 근대사의 굴곡진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4월에는 총선이 있다. 국내정치는 포플리즘의 극치를 넘어 날마다 발표되는 선심정책으로 경제는 기력을 잃어가고 있다. 나라 경제가 거덜나며 빚은 쌓여만 간다. 우리 외교는 고립되고 안보는 불안하다. 자유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과거에 매몰된 무능한 운동권에 의한 탈이념화의 한계를 경험하고 있다. 이를 둘러싼 국론분열은 이미 위험 수위에 달했고 심화된 사회갈등은 적대적 진영간 갈등과 대립으로 고착화되어가고 있다. 더 이상 이런 방식으론 안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선거에서 민심에 표출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일련의 정치적 갈등을 미래의 희망으로 치환하기 위해서는 교회의 차분함과 시대의 아픔을 치유하려는 진중함이 요청되어 진다. 2020년 분열된 지금의 초갈등사회에 교회는 세상에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교회와 크리스천은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한다. 선명한 복음의 본질과 십자가의 영성 회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2020년, 한국교회는 십자가 정신과 그 길을 잃어버리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크리스천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삶을 보여야 한다. ‘오른 뺨을 때리면 왼쪽 뺨을 돌려대는 삶’ ‘고발하여 속옷을 빼앗으려고 하면 겉옷까지도 내어주는 삶’ ‘억지로 5리를 가자고 하면 10리까지 라도 동행해 주는 삶’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삶’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는 삶’이 그것이다. 지금 교회가 할 일이 많다. 교회는 아무리 힘들고 바뻐도 10년후를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3.1운동의 일으킨 주류종교로서 민족이 사는 길,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며 그 정신을 계승하고 민족의 자립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모습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것인가. 다음세대에게 어떤 모습을 남겨주고 싶은가. 그래서 과거의 민족주의 대신 미래와 글로벌 시민으로 시선을 돌려 국제적으로 당당하고 자부심 넘치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 캠페인을 교회가 주도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다. 교회는 한강의 기적을 만든 국민적 역량을 다음세대와 함께 미래세대가 희망을 갖는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관심과 역량을 쏟아야 한다. 다음세대가 우리와는 다른 세대가 되지 않도록 믿음을 전승하고 역사를 전승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세대를 생각하고 더 많은 고민과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다. 상처받고 병든 심령, 초갈등의 병든 사회를 치유하고 회복케 하는 유일한 길은 '건강한 교회운동'이 대안이자 해답이다. 교회는 ‘건강한 교회’ 운동을 통해 세상 속에 교회의 교회다움을 회복하며 빛과 소금이 되는 교회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건강한 교회운동‘은 막힌 시대의 물꼬를 터주고 대안을 만들며 사회와 소통하고 역사를 품는 공교회 운동이다. 새해에는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과 성도들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교회가 연합하고 협력하여 ‘건강한 한국교회’를 세우겠다는 결심과 함께 3.1운동하는 심정으로 우리 사회의 품격을 한 단계 더 올려놓는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해에는 점점 더 커지는 양극화로 내몰리는 서민들의 삶에 관심과 손길을 펴야 한다. 교회가 다시 사는 길은 가슴을 넓혀 갈등과 분열의 시대에 보수든 진보든 함께 품어야 한다. 집안에는 여러 자녀가 있는 것처럼 교회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물며 나라에도 다양한 세력이 존재한다. 궁극적 목표는 그것을 넘어 십자가의 길을 가야 살 수 있다. 그 길이 민족이 사는 길이자 제2의 안창호, 유관순의 길이고. 자주 독립국가의 길이다. 2020년, 새로운 꿈과 도전, 변화를 위한 열정으로 새 출발하자.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의 나침반이다. 어디로 가야할 것인가, 어디서 멈춰야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스펙트럼의 빛이다. 그래서 늘 눈부시다. 교회는 이 사회의 파숫군이다. 어디쯤 새아침이 밝아오는지, 어떻게 어둠을 떨치고 일어서야 하는지를 알리는 나팔 소리이다. 그래서 늘 깨어있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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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2020년, 교회는 세상에 무엇을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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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박항서 리더십의 비밀
- 베트남축구가 동남아시아경기대회(SEA)우승하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축구변방을 1959년 이후 60년만에 정상으로 올려놓은 이가 박항서 감독이다. 2017년 베트남 축구의 지휘봉을 잡은 이후 축구는 국민의 희망이 되었고 경제 불평등과 분열을 누르고 국민단합을 가져왔다. 축구에 관심없는 사람도 박항서 감독을 주목하고 있다. 박항서 감독의 리더십에는 어떤 비밀이 있는 것일까? 선수들을 그렇게 뛰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궁금해 한다. 사람은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돈을 품고, 어떤 이는 꿈을 품고,박 감독은 선수를 가슴에 품었다. 선수의 마음을 얻어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 낸 히딩크 감독과 같다. 박 감독은 부임 처음부터 선수나 자신이나 모두 스마트폰 사용을 제한하고 소통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쏟았다. 또한 선수 개개인의 기초체력을 키우고 강화시켰다. 감독이 선수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했다. 어린 선수들의 발을 씻겨주는 세족이나, 마사지만이 아니라 비행기에서는 자기 좌석을 부상당한 선수를 위해 기꺼이 양보하고, 우승 상금은 어려운 베트남 사람들이게 기부했다. 박 감독은 작은 체구의 설움도 안다. 자신이 작은 체구로 현장에서 경험해기 때문이다. 선수와의 스킨십에 통해 친밀함을 표현하고 신뢰와 이해를 높여 갔다. 선수들이 실수할 때에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 기회를 주고 덮어줬다. 이런 박 감독의 노력에 선수들은 스스로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축구는 개인기가 아니라 팀윅(teamwork)이다. 혼자였다면 할 수없는 일을 혼자가 아닌 팀(team)으로 성공을 거두었기에 그 성공이 더욱 값지다. 축구나 인생이 그렇다. 자기 마음을 잘 알아주고 응원하는 파트너가 있다는 것은 축복이자, 큰 힘이다. 박 감독에게는 이영석 수석코치가 있었다. 한 명이 지치고 낙심하면 다른 한명이 위로하고 격려하며 서로 돕는 사역을 하였다. 이런 동역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독실한 신앙인 부인 권사님이 경기 전에는 2-3시간 전부터 기도를 부탁하여 기도팀들이 기도하도록 내조하였다. 이런 섬김과 솔선수범이 그의 리더십의 중심에 있었다. 자신이 없는 선수에게는 '할 수 있다‘는 격려로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인기의 유혹에는 "인기란 덧없다"라고 손사래치는 모습이 아름답기까지 하다. 자식을 키우는 아버지 심정으로 배려와 다독임으로 함께하므로 선수들이 스스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파파(Papa 아빠)'라고 불렸다. 팀(team)을 한 가족(family)으로 만들었다. 이런 쏟아지는 미담들을 들으면 담지 탁월한 감독이라기보다 사람의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선교사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인터뷰에서 “욕심이 없다. 봉사하겠다”라는 말을 흘려 들었는데, 자리나 인기, 명예를 탐하는 것이 아닌 ‘자기비움’과 ‘섬김’이 그 중심이 있었기에 빛을 발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려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삶에서 보여주었고, 그는 어느덧 ‘국민영웅’이 되었다. 박항서 감독은 63세이다. 직장인으로 따지면 정년 은퇴할 나이다. 인생 내리막길에서 한국이 아닌 동남아시아로 눈을 돌려 스스로 기회를 만들었다. 인생 후반전에 넣은 '황금역전골'이었다. 그의 말대로 "1년만 버텨보자"라고 시작한 일이었다. 베트남에서 간절함과 치열함이 결실을 거둔 것이다. 마치 성경에 85세이지만 “헤브론을 기업으로 주시면 그 땅 거민 아낙자손을 물리치겠다”고 나선 갈렙을 연상시킨다. 박 감독의 사례는 은퇴와 그 이후를 고민하는 50, 60대 장년에게 이상적 모델이 된다. 그의 리더십은 오늘을 사는 크리스천에게 과거식 카리스마 있는 강력한 리더십보다는 공감ㆍ소통ㆍ섬김과 유대감ㆍ포용력 등 새로운 리더십으로 조명된다. 축구나 인생이나 신앙생활이 그렇다. 연장전 마지막 휘슬이 울리기까지는 승패를 가늠할 수 없다. 인생의 역전골도 어느 시점에 들어갈지는 끝까지 가봐야 알 수 있다. 그래서 박 감독의 인생이야기는 가슴깊은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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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박항서 리더십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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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가짜뉴스(Fake News)시대 대처법
- 영국 콜린스의 영한사전에서 2017년 그 해의 단어를 ‘가짜뉴스(Fake News)’로 선정한 바 있다. 뉴스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실제 사실이 아닌 거짓된 뉴스로,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조작되거나 거짓 정보를 유포한다는 것이 ‘가짜뉴스(Fake News)’이다. 얼마전 “개 구충제가 암치료의 특효”라는 미국인 암환자의 유튜브로 전해지고 신문에 실리면서 구충제가 엄청나게 팔리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는 대표적 가짜뉴스에 속한다. 2008년에는 4월 문화방송(MBC)의 ‘PD수첩’에서 “미국인 아레사 빈슨, 인간 광우병으로 사망했다”라고 주장하여 가짜뉴스로 전 국민이 촛불을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허위 보도로 판명됐다. 빈슨의 공식적 사인은 베르니케 뇌병변이었다. 이처럼 가짜뉴스는 예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빨라진 세상, 넘치는 정보량에 모두가 놀라고 있다. 유포되는 속도와 범위, 정보의 양이 다르기에 순식간에 전 세계인이 동시에 볼 수 있게 되었다. 2008년 ‘스마트폰’이 처음 등장하였는데, 최고의 첨단 미디어 기기가 개인의 손에 들려지면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인해 정보량과 속도가 급증했다. 2014년 이후 통신망의 보급으로 속도가 빨라지고 카카오톡의 보급까지 이어지자, 스마트폰을 소유한 젊은이들이 대세가 되며 폭발하였다. 2018년 이후 장노년층까지 여기에 합세하자 거의 전 인구가 스마트폰에 빠져드는 시대다. 이렇게 많은 사람, 정보가 모이다보면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지 못하는 일들이 발생한다. 무수한 정보들 가운데서 잘못된 정보를 걸러내는 필터링(filtering)기능이 없기에 오보나 가짜뉴스의 위험도 증가했다. 이런 일들은 대형사건이 터지면 더 활동적이고 폭발한다. 이른바 ‘음모론’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가짜와 진짜의 혼재로 기존 객관적 판단에 타격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진실이 왜곡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요즘은 누구나 ‘언론’이 될 수 있고 ‘기자’를 자처할 수 있다. 1인 미디어의 영향력증가는 옛날 같으면 ‘유언비어’로 치부했을 말(言)들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짜뉴스의 시도를 방지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관리ㆍ지원하는 사람 ‘게이트키퍼’(gatekeeper)는 부재하다. 오늘날 가짜뉴스는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하는 현상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일환으로 존재한다. 최근 화제의 책《나는 미디어 조작자다》의 저자 라이언 홀리데이(Ryan Holiday)는 23살 때 아메리칸 어패럴의 마케팅 책임 이사가 된 여론 조작의 천재인데, 그는 책에서 언론이 어떻게 가짜뉴스를 만드는 데 참여하고 퍼뜨리는지 실험을 하고 자신이 어떻게 기사 조작을 했는지 과정을 보여준다. “나는 미디어 조작자다. 사람들을 속이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언론 매체에 거짓말을 해서 그들이 당신을 속이도록 하는 게 내 일이다. 우리는 사람들의 페이스북 피드를 채우고 직장 동료와의 잡담거리가 되는 특종과 속보를 통제한다.” 불분명하고 부정확한 사실을 유포하는 사람들, 이것을 받아쓰는 언론이 있을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난다. 또한 소셜미디어가 수익을 갖게 되고, 이런 가짜뉴스가 돈이 되는 상황이 만들어 질 때면 더욱 그런 현상은 더 빈번해진다. 그들은 팩트보다 주장을 앞세운다. 쉽게 얘기하면 가짜 뉴스의 온상이 될 수 있다. 가짜 뉴스가 선동적일수록 힘이 세고, 구독자가 많으며, 경제적으로 이득이 된다. 가짜 뉴스를 소비하고 확대 재생산하는 구조는 이런 뉴스를 더욱 힘 있게 만든다. 가짜뉴스시대, 흔들리는 저널리즘(journalism)을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연결된 초연결 사회에 속도와 규모가 더 방대해지면서 기사크기를 돈으로 생각하고 돈으로 바꾸는 시대는 불행이다. ‘카더라’ 통신이나 ‘아니면 말고’식의 기사는 철저히 대처해 나가야 한다. 1851년 창간된 뉴욕타임즈는 이런 문제를 ‘정식기자채용’와 ‘현장취재’라는 것을 시작했고, ‘인터뷰’라는 기법을 도입해 ‘팩트체크(FactCheck)’를 하는 정론지 활동으로 이를 극복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월호 사건에서 ‘학생전원구조’라는 오보 사태로 번졌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팩트체크라는 개념이 정립 안되었기 때문이다. 가짜뉴스시대, 이제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권력자들이 비판언론을 가짜뉴스라고 공격하기도 한다. 권력이나 가진 자에게 용비어천가를 부르는 언론은 이미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이메일로 기사를 채우거나 소설을 써서 지면을 도배하는 언론도 있기에 미국의 3대 대통령이자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이 “신문에서 보는 것은 아무것도 믿을 수가 없다”라고 한 말이 이해되기도 한다. 이런 류의 가짜뉴스는 인류에게 정말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 분쟁과 갈등만 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전쟁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거기에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든다. 그런데서 자신들의 이득을 취한다. 가짜뉴스시대, 언론을 표방하고 직업으로서 ‘기자’라면 먼저 자신의 직업윤리를 되새겨야 한다. 이미 AI가 뉴스를 판별하고 만들어 내고 있다. 일반적 자료를 요약봇이 정리하여 짧고 간편하게 만들어 낸다. 이것을 사람들이 보고 평가하게 되면 요약봇은 점차 진화해간다. 그래서 기자가 뉴스를 쓰지 않아도 기사가 나오게 된다. 가짜뉴스시대, 뉴스의 혼돈속에서 어쩌면 가짜뉴스를 가려내고 찾는 기술이 개발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국사회만이 아니라 전 세계 분쟁과 갈등의 중심에 가짜뉴스가 자리하고 있다. 페이스북(Facebook)은 이 심각성을 인정하고 ‘저널리즘 프로젝트’를 출범시켰다. 구글 역시 “검색엔진 알고리즘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히며 가짜뉴스 차단에 나서기로 했다. 가짜뉴스시대, 어떤 진영의 논리가 맞는지 모르는데 자기주장만 맞다고 다투기보다 지금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아니 전 세계인이 갖춰야 할 시민의 덕목이 있다면, 진실과 왜곡 사이에서 가짜뉴스를 분별하는 지성(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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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상 칼럼] 가짜뉴스(Fake News)시대 대처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