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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이제는 법치주의, 표현의 자유가 자리를 잡아야
    문재인 정부에서 대북인권을 위하여 활동하는 탈북민 단체의 법인을 취소한 것이 부당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27일 나왔다(대법원 2부: 주심 천대엽 대법관) 문재인 정부는 북한의 ‘인권 실상 알리기’와 ‘북한 주민 돕기’를 위한 “자유북한운동연합”의 활동을 문제 삼아, 2020년 6월 10일 이 단체와 “큰 샘”등 2 단체를 ‘남북교류협력법’위반으로 법인을 취소 결정하고, 그 해 7월에 공식적으로 취소를 했다. 이런 조치는 국회에서도 뒷받침이 되었는데, 소위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2020년 12월 14일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 당시 이 법안은 더불어민주당에서 원하는 ‘남북교류협력에관한법률일부개정안’과 ‘남북관계발전에관한법률일부개정안’등을 발의하여 신속하게 국회에서 통과시킨 것이다(2020.6.5 김홍걸 등 발의, 2020.6.24 윤후덕 등 발의, 2020.6.30 송영길 등 발의, 2020.9.7 안민석 등 발의, 그 외에도 다수) 이 법안에 의하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대북 전단을 살포하거나 확성기 방송 등을 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 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하는 아주 중징계에 가까운 법률로써 대북인권 활동을 저지한 것이었다. 그런데 문 정부의 법인 취소 결정과 이 법안이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은, 2020년 6월 4일 북한 노동당의 김여정 부부장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때 통일부(장관: 이인영)는 김여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강제하기 위해 법률을 계획중’이라고 하여 국민들을 깜짝 놀라게 하였다. 연이어 국회에서는 대북전단의 살포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여러 건의 법률개정안이 발의되어, 결과적으로 김여정의 하명(?)이 나오고, 불과 몇 달 만에 법률 개정을 해치우듯 하여, 대북인권 활동을 강제적으로 막았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자유북한운동연합”은 2020년 ‘통일부의 비영리 법인 설립 취소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걸었으나, 1심과 2심은 원고 패소 결정을 했었다. 판결 이유는 ‘전단 살포는 접경지역 안전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반한다’는 것과 ‘국민의 생명, 신체의 안전에 위협을 야기하고, 남북 군사 긴장의 고조로 평화통일 정책 추진에 중대한 침해로 본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북 전단 살포는 정보 접근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 북한 주민에게 북한 정권의 실상을 알리는 활동으로 공적, 사회적 역활을 수행하는 측면이 있다’고 보았고,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위해(危害)를 끼치거나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 것이 증명되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문 정권은 북한 인권을 위한 단체의 법인 취소를 하고, 당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는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만들게 되므로, 한국은 세계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세계의 시각은 북한 주민의 인권보다는 북한 정권 눈치를 본다는 것과 과연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맞느냐는 비아냥도 있었다. 북한과 관련된 정치적 문제는 어느 정권이든지 잘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세계에서 북한 당국만큼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자기들에게 필요하면 언제라도 ‘말 바꾸기’와 변심을 제멋대로 하는 집단이 드물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우리나라는 자유와 인권을 존중하는 국가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때로는 북한의 잘못된 인권과 행태에 대하여 과감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시정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문 정권은 오직 북한 당국의 ‘비위 맞추기’와 ‘눈치 보기’로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었다. 북한 당국은 문재인 정권에서 ‘다 해주기’ 정책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가짜 평화’의 흑막 속에서 부지런히 한반도의 평화를 깨고, 멸망을 가져오는 핵개발과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는 일에 몰두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은 우리나라가 ‘법치주의’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실행하는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우리는 북한과의 힘의 우위를 통한 평화를 유지하는 것과, 북한 주민의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 두 가지를 게을리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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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7
  • [언론회 논평] 한미 동맹은 한국의 안전과 평화를 지켜주었다
    올해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은지 70주년이 된다. 이 조약은 1953년 8월 8일 가조약이 되고, 그해 10월 1일 정식으로 조인되었으며, 1954년 11월 18일부터 공식적으로 발효되기 시작하였다. 이 조약이 맺어진 것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북한의 김일성 공산 집단이 6.25 남침 전쟁을 일으키고, 이에 유엔의 결의하에 미국을 비롯한 전투 참전 16개국과 의료지원 등을 포함한 63개국의 도움으로 남한이 공산화되는 것을 물리친 후에 체결되었다. 사실 미국은 자유와 평화를 위하여 6.25전쟁에 참전하여 17만 2천 여명의 희생을 치루었다(전사자 54,246명, 실종자 8,177명, 포로 7,140명, 부상자 103,284명) 이는 국군 희생자 654,000명의 27%에 해당하는 것으로, 미국군이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엄청난 희생을 치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뿐만이 아니라, 이 전쟁에 미국 장성급 이상의 아들들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의 전사자를 내기도 하였다. 여기에는 대통령의 아들도 있었고, 미8군 사령관의 아들도 포함된다. 그런데 제2차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한국과는 이역만리 멀리 떨어진 나라가 무슨 이득이 있다고 상호방위조약을 맺었는가? 이것은 당시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대통령의 외교적인 업적에 따른 것이다. 6.25전쟁이 발발하고 1951년 7월부터 휴전회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952년 5월에 어느 정도 휴전에 대한 논의들이 있었으나 포로송환 문제가 남았다. 그러는 가운데 1953년 4월 11일 상호포로교환협정이 성립되어 각서가 교환되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는데, 그해 6월 18일 북한으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반공포로 2만 6천 명을 과감하게 석방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에 깜짝 놀란 미국측에서 한미 간 상호방위조약을 맺을 것과 경제 원조를 약속함으로 한미 간에 이루어지기 극히 어려운 상호방위조약이 맺어지는 기적과 같은 사건이 있게 된 것이다. 이 조약에는 한미 양국이 안보 문제에 관해 긴밀히 협의할 것(제2조) 당사국 일방이 침략을 당할 경우 공동 대처한다는 것(제3조) 미군의 한국 주둔을 인정한다는 것(제4조) 이 조약이 1년 전 통고가 없는 한 무기한 유효함이 지속된다는 것(제6조)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것이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지켜져 오고 있다. 세계적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성실하게 지켜져 오는 조약이 없을 정도이다. 이 조약으로 인하여 미국은 한국군의 군대 양성을 위하여 원조를 하기로 하여, 1960년대까지 매년 3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를 하였다. 이는 한국이 사용하는 국방비의 8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고 한다.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단순히 군사적인 동맹뿐만 아니라, 교육, 복지, 문화 등에도 적용되어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수많은 원조와 도움을 받아왔다. 이후에는 1978년 11월 7일 “한미연합군사령부”(CFC)가 창설되어, 한미 양국의 군사력을 통합운영할 수 있는 연합방위체제가 구축되었다. 한미 동맹은 70년간 모범적인 조약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6.25이후에도 우리나라를 적화(赤化)하려는 북한의 침략야욕을 꺾고, 안정적으로 우리나라의 경제적, 정치적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본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1882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은바 있었다. 그런데 6.25전쟁을 통하여 한국의 방위(防衛)를 위하여 새로운 차원의 동맹 조약을 맺었던 것이다. 현재 윤석열 대통령이 방미 중에 있는데, 이는 한국 대통령으로서 12년 만의 일이며, 양국의 대통령은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참전비를 찾아 헌화했다. 이는 28년 만에 있는 일이다. 양국 정상은 북한의 핵 위협이 날로 더해지는 가운데, 북한이 한국을 핵으로 공격할 시 미국의 압도적인 핵무기로 대응할 것이란 선언을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전쟁 억제력을 갖는 핵개발과 핵보유를 의미하는 ‘핵주권’을 갖지는 못하지만, 북한이 무모하게 핵사용을 할 시에는 북한의 멸망을 가져올 암시를 주므로, 우리나라를 북한의 핵위협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분명한 입장을 밝힌 것이다. 지금까지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우리나라의 안보와 국방을 지탱하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양국 간의 동맹이 외부의 침략요인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기를 바라며, 이것은 양국 국민 간에도 신뢰와 공감대가 유지되어 자유와 민주, 인권과 평화를 수호하는 공통분모가 되고 우리에게는 확실한 안전망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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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5-17
  • [언론회 논평] 엠폭스, 결국 남성 동성애자가 ‘고위험군’이다
    엠폭스는 향후 10년 이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지난 해 5월 발병이 시작된 엠폭스(MPOX-Monkey pox virus, 일명 원숭이 두창 바이러스)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감소하고 있으나, 아시아권에서는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여서 아시아국들의 주의가 요망된다. 우리나라도 누적 확진자가 20명으로 늘어났다. 지금까지 전 세계 110개국에서 87,039명이 확진되었고, 그중에 120명이 사망하였다. 치명률은 0.13%이지만 이 질병의 영향은 10~30년으로 지속되기에, 그 사이 어떤 변화가 올지 모른다. 세계보건기구(WHO) 발표에 의하면 엠폭스에 걸리는 사람은 남성이 월등히 많다. 확진자 가운데 남성은 96.4%이며, 여성은 3.6%였다. 그런데 남성 가운데 84.1%는 남성 간 성행위를 통하여, 즉 남성 간 동성애를 통하여 전파되었다. 7.8%도 양성애로 인한 감염이었다. 또 여성 가운데 96%는 이성애자였다. 즉 남성 동성애를 통하여 질병이 크게 확산되었고, 그 중에 양성애자들에 의하여 일부 여성들도 감염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남성 가운데 18~44세 사이의 젊은 사람들이 확진자 가운데 79.2%를 차지하여, 역시 활발한 성행위를 하는 젊은이들을 통하여 엠폭스가 크게 전염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들이 매우 고위험군이 되는 것이다. 결국 엠폭스는 남성 동성애를 통하여 주로 전파되는 질병임이 밝혀졌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질병관리청은 주요 전파 감염경로를 ‘남성 동성애’로 정확히 표기하여, 이 질병의 확산을 무제한으로 막아야 한다. 뿐만이 아니라,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정확한 보도를 통하여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데 일조해야 한다. 엠폭스는 감염 시 발열(發熱)과 수포성 발진(發疹), 근육통, 무기력증을 동반하며, 심한 경우 죽음을 가져오게 하는 질병이다. 또 전파 속도는 느리지만 그 영향은 오랫동안 지속되는 특징이 있어 남성 간 동성애를 절제하고 막는 노력이 필요하다. 올해 7월에 동성애 단체들이 서울시청 광장에서 동성애 퀴어 행사를 준비한다고 하는데, 서울시청은 시민들의 안전과 건강을 위하여 이런 집단적 동성애자들의 모임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우리는 3년 전 코비드19를 겪으면서 초기에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다 크게 유행을 허락하게 만든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엠폭스도 제대로 대처하고, 그 발병과 감염경로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피해를 키울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엠폭스는 단순한 ‘성접촉’이 아니라 ‘동성간 성접촉’이며, ‘남성간 동성애를 통한 성접촉’이 주요 감염 원인임을 사실대로 밝혀야 한다. 이는 차별도 아니고, 폄하도 아니다. 명확한 사실을 통하여 전체 국민들의 보건과 건강을 지키는 것이 정부와 보건 당국의 책무(責務)이다. 또한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의 공적 책임과 기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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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4-29
  • [언론회 논평] ‘학폭’은 학교 교육과 교과서와도 관련성이 있다
    최근에 국가기관장 임명을 놓고, 그의 자녀가 과거에 일으킨 ‘학폭’(학교폭력)문제로 우리 사회는 발칵 뒤집혀졌다. 급기야 정부는 12일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했는데, 가해 학생의 학생부 기록은 현재의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고, 기록삭제는 졸업 전에 피해 학생의 동의하에 가능하게 하며, 이를 대학입시에서도 최대 2점까지(소수점으로 당락이 결정될 때도 있음)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런 학폭 기록을 모든 대학입시에 반영할 것이라고 하며, 교원(敎員)을 양성하는 교대와 사범대에서는 아예 지원을 받지 않고, 다른 분야에서도 심할 경우에는 당락을 좌우할 정도로 엄격하게 하겠다고 한다. 학폭의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기본적으로 학교 교육이 잘못되고 있고, 또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도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현재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심성(心性) 교육이나 인성(人性)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있는가? 교육은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함께 살아간다는 인성교육을 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도 각 지자체의 교육청에서는 ‘학생인권조례’라는 것을 만들어 학생들이 교사나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존경심은 외면하고, 자기들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도록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곳곳에서 교권(敎權)이 침해를 당해도 해결책이 미진하다. 뿐만이 아니라, 초•중•고교 보건 교과서에서는 마치 아이들에게 ‘성관계’를 조장이라도 하듯, ‘성의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고 있다. 또 생물학적 성(性)보다는 사회•문화적 성(Gender)을 우선하고 있다. 그러면서 Sexuality(성적인 감정, 규범, 태도, 가치관, 행동 방식 등)를 내세우는 교육을 하고 있다. 이렇듯 지나친 성애화(性愛化)를 표현하고, 음화(淫畫)나 다름없는 것들을 가감 없이 교과서에 담아 가르치니, 이는 학생들을 동물로 길들이는 교육이나 마찬가지이다. 폭력은 동물성의 표현이고, 자기 과시의 원시적 방법이다. 또 역사 교과서에는 거짓되고 왜곡된 내용을 담아 버젓이 가르치고 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서 북한의 실상을 심히 두둔하여 왜곡하고 있다. 문재인 정권과 맞물렸던 김정은 정권에 대하여 기술한 것을 보면, 이것이 북한 홍보 교과서가 아닌가 할 정도이다. ‘김정은 정권 이후 북한 경제가 흑자를 보고 있다’(비상교육)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은 기업활동이 자율적으로 확대되고 경제활동 통제가 완화되었다’(천재교육) ‘기업의 자율성이 확대되어 수익이 늘어 노동자 임금이 크게 오르게 나타났다’(금성출판사) ‘김정은이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적극 나서서 변화를 모색한다’(미래엔)고 기술하고 있다. 학교 교육에서 가장 중요시해야 할 인성의 따뜻한 교육은 빠지고, 아이들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을 강조하여 프리섹스를 조장하고, 역사 교과서는 현실과 전혀 다른 내용을 가르치고 있는데, 과연 그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이 바른 성품으로 자라날 수 있겠는가? 이런 식의 교육으로는 품위 있고, 훌륭한 성품을 갖춘 인격체로 자라가기가 어렵다. 학교폭력의 변화를 보면 진보•좌파 정권과도 무관하지 않다. 2015년에는 연간 19,968건이었으나,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이후인 2017년에는 31,240건으로 급증하였고, 2021년에는 44,444건이었다. 그리고 문 정권이 끝난 2022년에는 62,052건으로 크게 늘어났다. 학교에서 제대로 된 교과서를 가지고 참된 교육을 하지 않는데, 그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가 있겠는가? 자칫하면, 아이들을 ‘동물화’ ‘과격화’ ‘본능화’가 되도록 만들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혹은 피해자의 증가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학교폭력의 근절이 단순히 입시에 벌점을 주고, 폭력기록을 오랫동안 보관한다며 엄포를 놓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의 근본적이고 올바른 교육적인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을 기울일 때 가능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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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4-29
  • [언론회 논평] 효율성을 높이는 정치 개혁이 되어야 한다
    현재 국회에서는 내년 총선을 앞둔 가운데 정치 개혁과 선거구제 개편을 위하여 국회의원 전원이 참석하는 ‘전원위원회’를 개최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선거구제를 현재의 소선거구제에서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는 의견,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 반대로 현재보다 의원 수를 줄이자는 의견, 또 의원의 세비(歲費)를 줄이자는 의견도 있다. 그런가 하면 사회 지도층과 시민•사회 단체에서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대폭 축소 시키자는 운동에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현재 국회의원 수는 300명인데, 국회만큼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집단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을 대표한다는 국회의원 300명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국가발전이나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은 하고 있는지? 안타깝게도 그런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프랑스에 본부를 둔, 다국적 시장조사 및 컨설팅 기업인 입소스(Ipsos)가 지난해 28개국 성인 남녀 21,515명을 대상으로 주요 ‘직업 신뢰도 조사’에서 나타난 것을 보면, 가장 못 믿을 직업군으로는 정치인으로, 무려 69%를 차지하였다. 직업군 가운데 최저이며, 최하위이다. 최근에 국내에서도 모 여론조사 기관에서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시스템에 대한 신뢰도 조사’에서 정치인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1%로 역시 최하위를 점하였다. 반면에 국회의원에 대한 처우는 OECD 주요국 가운데 한국은 3번째로 대접을 잘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의원 개인에게 돌아가는 세비는 미국, 일본 다음으로 높았다. 그런데 제대로 일도 안 하면서 세비가 많은 것으로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의 대우를 받고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도 국회에서는 온갖 특권과 자기들 감싸기가 다반사이고, 심지어 일부이기는 하지만, 가짜뉴스를 생산하면서도 반성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몰염치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일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당리당략(黨利黨略)에만 능하고, 민생은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서 싸움을 위한 싸움에만 능한 모습에 국민들은 질려버렸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인구비(人口比)로 보면, 미국이나 일본보다 많다. 미국은 인구 62만 명을 1명의 국회의원이 대표한다. 멕시코는 20만 명당 1명, 일본은 17만 7천 명당 1명이다. 반면에 한국은 17만 2천 명을 1명의 국회의원이 대표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미국, 일본, 멕시코보다 인구 비례로 보면 국회의원 수가 많은 셈이다. 따라서 정치권이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치 개혁을 하려면 획기적으로 국회의원 수를 조절해야 하고, 여러 가지 특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들을 만족시킬 수 있겠는가? 첫째는 국회의원의 숫자를 현재보다 확 줄여야 한다. 지금의 300명 의원들도 너무 많다. 어차피 국회는 입법 활동을 하는 곳인데, 지금처럼 의원이 많다고 입법을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니다. 다수당은 ‘내로남불’로 ‘입법독재’를 일삼고, 자신들이 만든다는 법률안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진지한 고민도 하지 않고 ‘입법’을 남발하여 불필요하게 만들어지는 법률이 너무 많다는 지적들이 있다. 그러면서도 정작 민생에 필요한 법률안은 당쟁(黨爭)에 밀려 국회에서 잠자는 경우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국회의원 수는 인구 50만 명당 1명 꼴로 선출하여 의원을 100명 정도로 맞추면 좋을 것이다. 현재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1년에 들어가는 비용은 약 7억 원이다. 그러면 국회 한 회기를 마치려면 1조 원 가까이 들어간다. 국민의 세금에서 가장 비효율적인 곳에 쓰이는 셈이다. 두 번째는 세비를 낮춰야 한다. 지금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예우를 하니, 전혀 국회의원의 자질도 품격도 실력도 안 되는 사람들이 국회에 들어가 온갖 ‘싸움판’을 벌이고 있다. 기본적인 인성과 교양과 인격조차 갖추지 못하고 의회에서 막말과 아무 말이나 하고, 안 되면 고성을 지르고 거짓말까지 버젓이 하는데, 유권자인 국민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라. 국회는 면책특권을 내세우고, 자신들만의 권리를 높여 가면서 국민들이 다 보고 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유권자를 기만하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 번째는 특권을 대폭 줄여야 한다. 국회의원만 되면 200여 가지의 특권을 누린다는데, 일반 국민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의원의 예우에 관한 특혜가 지나치게 많다 보니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특혜들을 대폭 줄이고, 거의 봉사직으로 일하게 해야 한다. 네 번째는 지역주민들이 직접 뽑은 선출직만 남기고, 비례대표, 위성 정당으로 억지로 의원 수를 늘리는 행태는 근절시켜야 한다. 비례대표를 둔 목적은 과거에 여당 의원 수를 늘려 집권을 장기화하려는 의도가 강했다고 본다. 또 전문가 집단을 세워서 국가발전을 위한 시도였다고 해도, 비례대표 의원들이 과연 그런 역할을 충실하게 했는가? 그러므로 비례대표제도는 없애야 한다. 다섯 번째는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치 개혁이 되어야 한다. 말들은 개혁인데, 자신들의 특권과 비효율적 정치 집단의 숫자를 늘리기 위한 것이 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본다.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치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시에는 국민들의 저항을 받게 될 것이다. 어차피 정치인들의 역할은 국민을 위한 것이고, 민생을 위한 것이고, 국가의 발전을 위한 것이고, 국민을 대리하는 자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거기에 충실한 목적을 이루면 되기 때문에, 자기 뼈를 깎는 개혁과 올바른 방향을 정해야 한다고 본다. 지금까지는 정치인들이 여러 가지 혜택과 권리를 누려왔고, 국민들은 눈살을 찌푸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들만의 리그’를 벌여왔는데, 이제는 진정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 개혁을 하여 국민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 보라. 우리 사회에서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정치를 하고, 가장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입법부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정치 개혁의 신호탄을 쏘고, 국민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으며, 한국 정치사에 획기적인 업적을 쌓는 주인공들이 되어 보시기를 진정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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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4-29
  • [언론회 논평]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종교 편향 일삼다
    최근에 대구시의 시립예술단이 공연을 하려다, 음악적으로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9번 가운데 ‘신’(神)이라는 말이 들어갔다 하여, 이를 ‘종교 편향’으로 규정해 공연을 취소했다는 말을 들었다. 참으로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다. 아니, 느닷없는 종교 편향으로 세계적인 음악과 예술의 세계를 단칼에 예리하게 잘라내는, 한국적 종교 편향이 얼마나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단적(端的)으로 보여 주는 대목이다. 이 괴상한 ‘종교편향’이라는 것은 이명박 정권 시에 불교계의 주장으로 급작스럽게 문화체육관광부 안에 ‘종교편향신고센터’를 만들면서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그 효력은 마치 모든 헌법까지 능가하는 것으로, 불교계가 타종교를 빌미로 정부와 지자체에 압력을 넣는 견고한 진지(陣地)가 되고 말았다. 현재 프랑스에서는 고려 시대의 유물이 자랑스럽게 알려지고 있다. 이는 부처와 고승의 대화, 편지 등에서 내용을 뽑아 그 당시 승려가 편찬한 직지심체요절(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 전시되면서 세계인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책이 유명한 것은 1377년 금속활자로 간행한 것으로, 유럽에서 구텐베르크 성서를 인쇄한 것보다 78년을 앞선다는 기록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 유물인데, 만약에 한국식으로 ‘종교 편향’으로 규정한다면 절대로 공적 공간에서 전시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이 유물은 현재는 프랑스의 소유라고 하는데, 우리 언론들은 이 사실을 대서특필하고 있다. 그런데 이를 ‘종교 편향’에 대입한다면 불교계의 주장을 심각하게 위배하는 것이 되니까 말이다. 베토벤이 작곡한 ‘교향곡 9번’은 1824년에 최종 완성된 작품이다. 음악과 예술 분야에서는 고전과 같은 것이고, 세계인의 사랑을 듬뿍 받는 명곡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종교 편향이라며, 시민들이 이 음악을 듣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소식을 접하는 세계인들은 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말이 있다. 정도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여,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된다. 서양의 음악을 비롯하여 예술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하는 것이 많다. 거기에 종교 편향의 잣대를 들이대면, 대부분 음악은 ‘금지곡’이 되거나 ‘금지선’을 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정저와(井底蛙-우물안 개구리)로 살아야 한다. ‘종교 편향’이란 것이 지나간 정권에서 특정 종교의 아우성에 어쩔 수 없이 정치적 배려를 해 준 것인데, 지금도 그 위세를 부리고 있다면 이는 누구의 책임이며, 누구의 손해인가? 이제는 우리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에서 ‘종교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한다. 우리는 이런 전근대적인 사고와 후진성을 뛰어넘고, 직지심체요절을 금속활자로 만들었던 조상들의 앞선 생각으로 세계를 리드해야 한다. 언제까지 종교 편향이라는 해괴하고 해묵은 주장으로 국민들이 누려야 할 아름다운 예술에 대한 접근을 막으며, 지구촌에는 희극(戲劇)이나 연출하는 촌극(寸劇)을 벌일 것인가? ‘종교 편향’이란 말을 사용한 지도 벌써 15년이 지났다. 정권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이제는 좀 시대에 맞는 옷으로 바꿔 입어야 되지 않겠는가? 한국이 불교의 나라도 아니고, 엄연히 존재하는 헌법의 가치조차 무시하는 ‘종교 편향’이란 하위 규칙을 만들어, 세계적인 예술을 도외시하고 국민들의 듣고 누릴 정당한 ‘문화 자유의 권리’마저도 빼앗으려는 행위를 언제까지 계속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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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9
  • [언론회 논평] 서울광장에서 음란한 동성애 축제는 불허되어야 한다
    오는 7월 1일 서울광장은 소위 퀴어문화축제가 접수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 집행부는 서울광장의 잔디광장, 동편광장, 서편광장 사용을 모두 접수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이번만은 음란한 동성애 행사를 불허해야 한다. 벌써 수년째 서울광장에서는 동성애 퀴어축제라는 명목으로 그들만의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데, 해마다 음란한 모습으로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이 나왔다. 더군다나 외국의 대사들까지 가세하여, 인권이라는 빌미로 대한민국의 미풍을 해치고 내정을 간섭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모습을 서울시민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동성애를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만의 행사에 왜 건강하고 건전한 시민들과 자라나는 자녀들이 보게 되어 정신적, 심리적, 여가문화를 즐겨야 하는 기회의 침탈로 피해를 당해야 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의지가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 “서울특별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보면, 서울광장 사용의 목적이 명확히 나온다. 제1조에 보면 ‘시민의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 공익적 행사 및 집회와 시위의 진행을 위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대 서울광장에서의 동성애 축제에서 음란성에 대한 시비가 없었던 적이 있는가? 서울광장 사용에 대하여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가 있지만 이들의 구성원도 편파적이라는 비난이 있었고, 설령 그들이 사용결정을 한다고 하여도 서울시장은 이를 얼마든지 수리(受理)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있다(제6조 1항) 근본적인 문제가 되는 것은 광장의 조성 목적인 ‘건전한 여가 선용’에서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에게는 신고의 변경 및 취소(제8조)와 사용중지(제9조)의 권한이 있다. 그런데도 서울시장이 이런 음란한 동성애 축제 사용을 매년 허락하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서울광장에서 굳이 동성애 행사를 계속하려는 것은 단순한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바라는 문화가 아니라, 저들의 ‘성혁명’ ‘성평등’(양성평등이 아님)을 통한 이념을 심어주고, 네오마르크스주의를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따라서 서울시가 이런 행태를 알면서도 서울광장 사용을 허락한다면 시민들과 국민들 사이에 정치적, 이념적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된다. 서울시는 이렇듯 음란성 시비와 특정한 정치적, 이념적 목적에 이용되는 동성애 축제를 하는 시간에 청소년들과 시민들에게 건전한 여가선용의 기회를 돌려주어야 한다. 마침 7월 1일 같은 시간대에 <청소년•청년 회복 콘서트>가 신청되어 있다. 이런 행사를 허용해야 한다. 서울광장에서 이미 동성애의 음란한 축제는 여러 차례 시행된 바 있고, 그 행사에 대한 불편과 불만이 계속 제기되는 만큼, 이제는 서울시가 과감하게 청소년, 청년들의 회복을 위한 콘서트에 자리를 할애해야 한다. 서울시는 동성애 음란 행위의 모든 것이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준다면 이는 서울시민들을 무시하고 모독하는 것이 된다. 서울시와 서울광장은 서울시민의 재산이다. 그리고 서울시장도 서울시민들이 선택하여 세운 공직자이다. 따라서 서울시장이 건전한 서울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한다면, 이는 시민들이 믿고 지지해 준 것에 대한 배신으로 시장으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2023년에는 서울시의 얼굴이요, 시민들의 건전한 놀이 장소인 서울광장이 우리나라의 다음 세대인 청소년과 청년들이 마음껏 젊음을 느끼고, 발산하고, 주눅든 마음들을 회복하여, 건강한 나라를 만들어 가는데 일조(一助)하기 바란다. 동성애 퀴어 행사 신청에 대하여 불수리(不受理)할 것을 서울시와 서울시장에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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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11
  • [언론회 논평] 사법부는 기독교 복음 방송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제1부)이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차별금지법에 대하여 방송한 극동방송에 대하여 내린 제재 조치 명령은 정당한 것으로 판결하므로, 기독교의 복음방송이 가진 특수성을 소홀히 함을 보여주었다. 과정을 살펴보면, 지난 2020년 6월 국회에서 소위 말하는 차별금지법(혹은 평등법)이 발의되었는데, 이에 대하여 복음의 가치를 중시하는 극동방송이 다음 달인 7월에 이와 관련된 전문가들을 초치하여 특별좌담회를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하여 방통위에 민원이 제기됨으로 심의하여, ‘주의’ 조치를 내렸다. 이에 대하여 극동방송이 2021년 방통위를 상대로 제재 조치 명령을 취소해 줄 것을 원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법원에서는 방통위의 조치가 정당함을 판결한 것이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패널들이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입장 만을 피력했기 때문에 공정성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거론했기에 객관성에도 위반된다는 취지이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올 2월에 1심 판결선고를 한 상태이다. 만약에 극동방송이 일반방송이었다면, 법원에서 주장하는 일반적인 방통위의 기준에 맞춰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극동방송은 종교방송의 특수성이 있는 것과 함께, 특히 복음적인 기독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즉 기독교인의 절대다수는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경우, 소수에 대한 차별문제보다 훨씬 심각한 대다수에 대한 ‘역차별’을 우려한다. 새로운 법이 만들어지는데 그 법률로 인하여 개인과 특정 종교가 심각하게 피해를 당할 것이 뻔한데 침묵하는 것이 옳은가? 현재 국회에서 발의되는 여러 건의 차별금지법을 살펴보면, 내용상으로는 성별, 장애, 나이, 종교, 사상, 정치적 견해, 성적지향, 성정체성 외에, 고용에 있어서 재화, 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을 다루고 있다. 또 교육 및 직업훈련, 행정서비스 등의 제공과 이용에 관한 차별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을 나열하고 있다. 만약 이를 어길 시 이행강제금과 인신 구속까지도 한다는 것이다(이렇게 될 경우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 학문의 자유 등을 해치게 된다) 그러나 실상은 여러 영역의 차별행위를 겨냥하기보다는 성적지향, 성정체성, 가족형태 등 소위 말하는 ‘동성애’를 차별하지 말 것과 이에 대하여 정당한 의견을 표명하는 것을 범법(犯法)으로 간주하여 상당한 금액의 이행강제금은 물론 강력한 구속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경우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가중될 것이다. 가정의 해체, 교회의 붕괴, 건전한 윤리와 도덕의 망실(亡失), 성적(性的) 정체성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방황, 그리고 국가적으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출산율의 추락을 더욱 부추기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개인과 공동체, 국가가 그 운명을 맞이하게 될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할 것이기 때문에 극동방송이 긴급 토론 방송을 진행한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조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와 기독교가 겪어야 할 위기를 논하는 것은 기독교 방송의 당연한 책무이다. 만약 기독교의 복음 방송을 지향해온 극동방송이 목전에 다가온 이런 위험한 상황들에 대하여 방송하지 않는다면, 방통위나 사법부가 결정하기 전에 기독교로부터 심각한 질타와 외면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법률은 현재 일어나지 않은 사건을 예단하는 것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편인데, 사안과 경중에 따라서는 그것을 인정해야 됨에도 불구하고 회피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가 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질 경우, 2020년 7월에 전문가들이 극동방송에 출연하여 나타날 문제점을 방송한 내용의 실현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 속담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말이 있다. 한번 법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바로잡고 고치기는 더욱 어렵게 된다. 차별금지법이 아직 한국에서는 제정되어 실행되지 않고 있으나, 이런 종류의 법을 통과시켜 시행해 오는 세계 여러 나라들의 사례들을 보면 충분히 그 폐단이 실증된다. 따라서 사법부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극동방송에 내린 ‘주의 조치’를 정당하다는 것은 기독교를 무시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기독교적 가치와 사회적 건강성을 전달한 극동방송의 프로그램 구성이 오히려 시의적절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사법부는 현행법의 규정을 준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법이 만들어졌을 때, 그 예상되는 폐해를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통찰력도 있어야 한다. 이는 국민들의 건강하고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데 필요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앞길에 큰 홍수가 나서 낙석(落石)으로 인한 위험이 분명하니 그곳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누군가 외쳤다면, 그것을 위험에만 치중한 편향으로 보아 공정성을 해치는 것이 되는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예견하여, 세계 여러 나라의 정황과 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논리를 파악한 근거로, 일어날 것으로 말하는 것이 객관성을 결여한 것이라고 판결한다면 이는 근시안적 판단이다. 모든 사고와 위험을 당한 뒤에 이를 바로 잡으려고 한다면 사회적 비용과 국민적 갈등과 혼란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때는 누가 책임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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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4-11
  • [언론회 논평] 북한은 인간 지옥이자 인권 지옥이다
    통일부가 30일 보도자료를 통해서 “정부의 첫 2023 북한인권보고서 공개 발간”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북한의 전반적인 인권상황을 일반 국민들이 널리 알 수 있도록 북한인권보고서를 발간했음을 밝히고 있다. 정부로서 당연한 책무이다. 이 보고서에서는 지난 2017년부터 2022년 사이 북한 지역에서 발생한 북한 인권상황을 증언을 토대로 하고, 실태 중심으로 국제인권규약상 균형적, 객관적으로 작성하였다고 한다. 즉 여성, 아동, 장애인 등 취약계층과 정치범 수용소와 국군포로, 납북자, 이산가족별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2016년 “북한인권법”을 만들었지만, 그 동안 전 문재인 정권이 ‘북한의 눈치보기’를 하느라, 북한 인권 개선 노력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현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북한 인권 실태를 공개하는 보고서를 작성하므로, 북한 인권을 고쳐나가기 위한 일에 진일보할 것으로 보인다. 유엔에서는 이미 10년 전에 “북한인권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고, 북한 인권 결의를 시작하기로는 벌써 20년이 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당사국이면서도 이에 훨씬 늦게 동참하였고, 그 동안 국내 정치적, 이념적인 문제로 지지부진한 부끄러운 모습만 보여 왔던 것이다. 정부는 이번 보고서를 통하여 북한 인권 증진에 기여하기 위하여, 정부와 민간,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을 강화해 나간다는 방침도 밝혔다. 북한의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인권 침해 사례와 자료가 없이는 북한 인권 개선에 관심을 이끌어 내기가 어렵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북한에서는 여성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폭력, 탈북 여성에 대한 끔찍한 인권 침해, 아동에 대한 처벌과 폭력, 성착취와 학대, 강제 노동과 노력 동원, 고아에 대한 방기(放棄)가 심각하다고 한다. 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심각한데, 장애자의 거주지 제한과 불임수술을 시행하고, 왜소증 장애인에 대해서는 불임수술을 강제적으로 시행한다는 증언이다. 그리고 장애 여성들에게는 자궁적출 수술을 하고, 정신 지체 장애인들은 가족의 동의하에 생체 실험까지도 행하여졌다고 한다. 북한에는 정치범 수용소가 여럿 있는데, 무려 11곳이다. 함경북도에 4곳, 함경남도에 3곳, 평안남도에 2곳, 자강도에 2곳 등이다. 여기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는데, 그 정치범 수용소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출신성분 문제, 김일성, 김정일 등에 대한 (말도 안 되는)권위 훼손과 관련된 문제, 간첩행위, 북한 내 권력 다툼에 의한 것, 기관원의 부정으로 인한 것이다. 특히 종교활동, 탈북자 가족과 탈북을 시도한 사람, 한국과 관련된 영상물 배포나 판매 등으로 인한 처벌이 더욱 엄격하여, 처형 등이 비일비재로 이뤄져 그야말로 가장 원시적인 공산독재 집단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인권 유린 행위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국군 포로도 상당수가 있는데, 6.25 전쟁이 끝나고 유엔이 발표하기로는 국군 실종자 수가 82,000명이었는데, 그 중에 상당수는 사망하고, 2016년 기준으로 약 500명이 생존했을 것으로 보였으나, 지금은 훨씬 줄어들었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그들 대부분을 함경북도와 함경남도의 오지에 있는 탄광, 광산, 협동농장에 배치하여 수많은 세월 동안 꾸준히 괴롭혀 온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북한은 6.25전쟁 중에 약 10만 명을 납북했고, 전후에도 3,835명을 납북했으며, 2022년 기준으로 북한에 억류된 납북자 중 생존자는 516명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들에 대한 차별과 학대도 지속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산가족의 생사확인, 만남, 교류도 북한 당국의 저지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북한에 법률이 없어서. 이런 학대와 인권 지옥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북한 당국은 철저히 폐쇄되고, 억압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들의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무조건 인간 지옥으로 몰아 내고 있는 것이다.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저들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 계속 외부에서 외쳐야 하며, 국제 사회와 공조하고, 더 확실한 대북제재를 통해서 인권 탄압과 그 박탈이 얼마나 잘못된 범죄인가를 깨닫게 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순진하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정말 그곳이 사람 살만한 곳이면, 왜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그 땅을 떠나고 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북한은 전 세계에서 엄연히 최악의 인권 유린이 이뤄지고 있는데, 이에 대하여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입을 닫는다면 저들과 함께 공범(共犯)이 되는 것이다. ‘강도’를 강도라고 말하고, ‘살인자’를 살인자라고 말해야, 강도와 살인자가 사라지는 것이고, 강도와 살인자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저들이 인권을 비로소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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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4-04
  • [언론회 논평] 공영방송의 개혁과 존폐를 생각한다
    3월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한•일 관계의 과거사를 딛고, 발전을 통한 양국과의 긴밀한 협조와 동반자 관계 회복을 위한 자리였다. 그런데 공영방송인 KBS가 이와 관련된 뉴스와 관계 장관을 대담하는 모습이 사실과 다르고, 편향된 모습을 보여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였다. 지난 3월 16일 KBS는 뉴스 특보를 통해 윤 대통령이 일장기(日章旗)에 경례했다고 하였다. 이는 순방 첫 행사로 일본 총리 관저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이 양국 국기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상황에서 방송 앵커가 태극기는 보지 못한, 보도의 큰 실수가 나온 것이다. 이 뉴스를 전하는 앵커는 ‘일장기를 향해서 윤 대통령이 경례하는 모습을 보았다. 의장대가 우리 국기는 들지 않는 것 같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단상에는 태극기와 일본기가 분명히 나란히 있었다. 잠시지만, 윤 대통령을 이상한(?) 국가 원수로 만든 것이다. 이를 받아서 전직 청와대 의전 비서관과 또 이를 다시 받아서 야당 정치인들은 가십거리로 삼았다. 이런 블랙코미디가 어디 있겠는가? KBS가 이 문제에 대하여 사과를 하기는 했지만, 상식 이하의 가짜 뉴스가 되도록 진행한 것은 국민들을 매우 실망시키기에 충분하였다. 또 18일에는 대통령의 외교 순방을 평가하기 위하여 외교부장관을 KBS 뉴스에 출연시켜 대담을 했는데, 이 방송을 진행하는 앵커는 협상을 잘못했다는 식으로 몰아붙였다. 제목도 ‘한•일 정상 회담 후폭풍’이란 것으로, 아예 외교성과를 부정적으로 단정하고 다룬 것이다. 이에 대하여 KBS의 전직 앵커는 그 문제점을 지적했는데, 방송을 진행한 앵커는 흥분한 사냥개처럼 공격적으로 몰아붙였다고 평가하였다. 또 장관의 답변도 중간에 끊어버리고, 마치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이 국무위원을 몰아세우는 듯한 태도였다고 지적한다. 거기에다 방송을 진행하는 앵커가 ‘정권이 민주당으로 넘어가면’이란 전제를 달아, 마치 야당을 대변하는듯한 태도를 보였다. 이는 공영방송의 앵커가 전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진행하는 방송으로서는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자격도 없는 모습이었다. 오늘날 국민의 방송이며, 공영방송을 망치는 것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KBS 내부의 구성원들에 의해서 이뤄지고 있다고 보인다. 공영방송이 공정하지 못하고, 심지어 뉴스마저 정치적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는데도, 자신들이 엄청난 권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여 국민들과 시청자들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방송사고도, 편파방송도 나오게 되는 것이다. KBS는 거듭나야 한다. 민노총이 움직이는 ‘노영방송’(勞營放送)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신뢰받고 사람받는 방송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수신료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신료를 스스로 낮추면서도 일하지 않는 인원을 감축하고, 불편부당(不偏不黨)한 방송이 되도록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런 자구책을 통하여 공정한 방송으로, 정직한 방송으로, 정치와 정권에 휘둘리지 않는 공공의 책무를 충실하게 감당하는 국가기관이 될 수 있다. KBS는 국가와 국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희망을 주는 방송이 되어야 한다.
    • 칼럼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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