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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론회 논평]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면서 간첩행위라니?
    북한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만들었던 고 황장엽 씨는 공산주의에 환멸을 느끼고 자유 대한민국의 품에 안겼었다. 이미 공산주의는 발생한 지 70년 만에 문을 닫았고, 자유 민주주의에 비하여 체제 경쟁에서 확실히 밀려났던 것이다. 지금 전 세계에서 공산주의를 하는 나라치고, 주민들의 자유와 그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된 나라가 얼마나 있는가? 특히 북한을 보라. 그런데 그런 북한을 돕기 위하여 대한민국에 살면서도 간첩행위를 한 사람들이 검거되었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활동했는데, 북한에서 내려온 지령문에는 ‘진보•촛불세력 연대를 통한 반정부 투쟁과 북한 주체사상 및 김 위원장 선전, 특정 인물 포섭, 정치집회 공작을 통한 윤 정부 타격 등’이 들어있었다고 한다. 또 ‘합동 군사 훈련 중단, 한•미•일 군사 동맹 해체, 미국산 첨단 무기 도입 반대와 반미 투쟁과 대중 투쟁을 연속적으로 전개해 압박의 도수를 높여야 한다’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리고 ‘보수 집권 세력의 사대 매국을 부각시키고, 반통일정책을 반대하는 투쟁을 하라’고 하달했음이 밝혀졌다. 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의 지하조직을 결성할 것까지 지시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 지령문에는 민노총과 같은 진보 단체들이 적시되었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자신들은 자유 대한민국에서 모든 자유와 권리와 부를 누리고, 약자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권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구상 최악인 나라의 지시를 받고 우리 사회를 혼란케하고 국가를 위기로 몰아낸단 말인가? 우리나라가 간첩들의 활동무대가 된 이유는, 역대 진보 정권들이 그들을 색출하는데 등한히 했기 때문이다. 아니 애써 외면하고 북한 정권의 눈치 보기를 한 때문이다. 진보 정권들은 국가공동체를 지탱해야 할 대공과 공안 조직을 와해시키고, 그저 ‘북한 바라기’를 했기에 이런 것들이 누적되어 나타난 것이다. 진보 정권은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인사들을 정부 요직에 앉히는 등의 국가 안위를 도외시하고 안보 문맹(文盲)에 사로잡혔었다. 그런 권력자들의 착각이 오늘날 우리나라를 간첩들이 마음대로 활보하여 국가를 위기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21년 10월 국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당시 통일부장관은 야당 의원이 ‘충북 청주지역 활동가 간첩과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주장한 고정간첩 5만 명 활동설’에 대하여 ‘비상식적•몰상식적인 질문’이라고 답하고, 북한이 각종 탄도미사일과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보면서도 ‘북한은 대화할 의지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대답이었다. 진보 정권의 핵심적인 지도자들의 생각이 대동소이(大同小異)했을 것이다. 북한은 이미 오래전부터 대남간첩을 대한민국에 내려보내지 않고 있다. 이는 그들이 간첩을 직접 보내는 것보다, 남쪽에서 간첩들이 올려보내는 정보들이 훨씬 많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대한민국에서 온갖 혜택을 다 누리면서, 우리나라를 위기로 내모는 결과를 가져오며, 세계에서 가장 최악의 북한 정권을 돕기 위하여 간첩행위를 한다는 것은 매우 시대착오적인 어리석은 일이다. 이는 앞에서 총을 들고 대드는 적군보다 훨씬 나쁜 암적 존재이다. 국가와 국민을 속여서 암암리에 체제 전복을 꾀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심각한 배신행위이다. 북한은 일반적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보다 훨씬 더 악한 절대왕정보다도 더한 3대를 세습하는 공산주의 국가중 유일한 나라이다. 그런데도 북한의 독재•전재 정권을 돕는 것은 도탄에 빠진 북한 주민들을 영구적으로 불행에 빠트리는 지상 최대의 악행이 될 것이다. 과거에 주사파(主思派)에 빠져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상당수가 정치권에 들어가 있다. 그들은 누구를 위한 나라를 만들려고 하겠는가? 그들이 만들려는 세계는 어떤 것이겠는가? 그들이 돕는 세력은 누구겠는가? 그들을 자유와 정의의 이름으로 발본색원(拔本塞源)하지 않고는 우리의 평안과 안보는 보장하기 어렵다. 이 나라의 자유와 민주주의 체제를 거부하고 오히려 이를 전복시키려는 사람들은 우리 사회로부터 격리시켜야 한다. 지금도 숨어서 간첩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트로이의 목마’이므로 우리들의 안전이 보장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체제 유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 그 세력을 철저히 가려내야 한다. 북한 독재정권을 위하고, 그 주민들을 불행으로 몰아넣으며, 우리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의 둥지를 허무는 간첩(間諜)들을 품어주어야 할 이유가 없다. 간첩은 마치 암탉이 독사의 알을 품고 있는 것과 같아서, 독사 새끼로 깨어나면 어미 닭을 물어 죽이게 될 것이다. 이처럼 불행한 결과가 오기 전에 이적(利敵) 행위를 세밀하게 찾아내야 한다. 간첩행위는 우리 자유민주주의 나무를 갉아먹는 것이고, 국가 안전의 둑에 구멍을 내는 것이며, 국가번영과 국민의 행복에 독약을 뿌리는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내부의 분열과 배신으로 망한 나라는 부지기수이다. 우리는 이를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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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16
  • [언론회 논평] 이른바 도마복음은 복음이 아닌 독약과 독초이다
    최근 언론에 ‘도마복음서’가 나왔다고 중요 일간지에 광고가 나오면서, 도대체 도마복음이란 뭔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심지어 기독교 대표적 언론사도 광고를 냄) 그런데 이런 논란은 10여 년 전에도 있었다. 이제는 좀 잠잠해지는 가 했는데, 또다시 전 유명 신학대 교수가 추천사를 썼다면서 책이 소개되고 있다. 과연 66권 성경 속에 포함된 것도 아닌데 복음이라고 주장하고, 또 기록자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가운데 도마가 썼다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뿐만이 아니라 4복음서와 같은 정경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이미 1,600년 전에 정경(正經)으로 인정받지 못한 것을 또다시 끄집어내서 ‘기독교가 나갈 방향을 제시한다’는 선전(宣傳)은 무엇인가? 이 책의 문제점은 추천자들이 자랑스럽게 추천하는 추천사에서도 드러난다. A교수는 ‘도마복음서는 부활, 승천, 재림에 대한 증언이 전혀 담기지 않았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을 어찌 ‘복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또 다른 추천자 B목사는 ‘불가분의 진리는 하나로써 보편적이라는 것과 불교의 가르침인 신심명의 내용과 예수의 영적인 가르침이 본질적으로 같은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한다. 기독교의 진리와 불교의 진리는 결코 하나가 아니다. 이는 종교다원주의이며, 종교혼합주의이다. 그러고 보면 도마복음이란 것이 어떤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가를 알게 된다. 저자는 ‘고고학적인 발견으로 기독교계와 학계에 강한 충격을 준 도마복음은 믿음을 넘어서 영적인 신성의 깨달음, 즉 하나의 진리를 강조 한다’고 하여, 기독교에서의 구원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가 아닌 타종교에서 주장하는 ‘깨달음’으로 몰아간다. 이 도마복음서라는 것이 발견된 것은 20세기로,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상류 지역의 낙하마디(Nag Hammadi)의 절벽에서 한 농부가 발견한 항아리 속의 몇몇 문헌들 가운데 들어있었고, 이 책들은 4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런데 전문가들에 의하면 도마복음서는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靈智主意)적인 작품으로 평가한다.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죄’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영적 지식’이나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은 복음의 내용과 다른 것이다. 예수께서 처음부터 외치셨던 말씀은 죄와 구원과 상관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기독교 영지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이 있다면 바실리데스(Basilides)와 발렌티누스(Valentinus)인데, 이들은 주후 1~2세기에 이집트의 알레산드리아에서 활동하였고, 발렌티누스는 주후 136년 로마로 갔다. 그런데 이때는 기원전 6세기에 인도 지역에서 발생한 불교가 이미 아시아와 아프리카 지역까지 퍼졌었다. 그래서 기독교 영지주의자들이 그들 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초대교회 교부였던 터툴리안(Tertullian)이 주후 200년경에 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상황을 전하면서 ‘우리는 숲속에서 살거나 방랑하는 삶을 사는 부라만 승려들도 아니고, 벗고 사는 인도의 지혜 교사들도 아니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부라만 승려들은 베다 경전을 믿는 힌두교 종교지도자들을 말하고, 벗고 사는 인도의 지혜 교사는 인도의 불교나 자이나교 승려들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이미 불교가 이 지역에 들어왔고, 4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낙하마디 문헌에 상당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기독교와 전혀 다른 종교인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등이 기독교에 침투하기 위하여 기독교의 용어와 틀을 사용하지만, 힌두 사상을 심어 주기 위한 목적의 개연성이 있다는 견해와 타당성에 무게가 실린다. 힌두 사상은 죄의 문제를 다루지 않고, 깨달음과 해탈(解脫)을 강조한다. 그래서 도마복음이란 것이 사복음서와 다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소위 도마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 제자인 도마와의 개인적인 대화이기 때문에 죄(罪)의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도마에게 구원의 복음을 도외시하고 단지 ‘깨달음’과 ‘네 속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셨다는 것은 억지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는 배치(背馳)되는 것으로 힌두교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 문서에 불과한 것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도마복음은 결코 ‘복음서’로 볼 수 없고 그러므로 인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기독교 복음의 본질을 흔들려는 독약(毒藥)이요, 기독교의 신앙을 망가트리려는 독초(毒草)와 같은 것이다. 기독교는 이런 비복음적이고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아 기록한 영지주의 틀에서 기록된 가짜 경전에 속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신실하게 아시아와 인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도마가 이런 위서(僞書)를 남겼을 리가 없다. 한국교회가 이런 위서에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노파심에서 말한다면 종교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 주장을 하는 헛된 미혹에 동조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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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3-01-12
  • [언론회 논평] 가정을 위한 프로그램이 ‘지옥’으로 표현될 때
    자극적인 소재를 고집하면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최근 방송가에서 가정과 가정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에서 문제가 발생하여 시끌시끌하다. 대표적인 것이 ‘오은영리포트-결혼지옥’인데, 이런 프로그램은 오히려 가정과 결혼의 참된 가치를 허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오은영...’ 프로그램은 탈도 많고 문제도 많은 MBC가 지난 5월부터 방송한 것으로, 지난 12월 19일 방송에서는 방송 중 의붓딸인 아동을 의붓아빠가 성추행하는 장면이 나와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 민원이 수천 건 접수가 되고, 경찰이 수사에 나설 정도이다. 남녀 간에 서로 사랑을 통하여 결혼에 이르고 가정을 꾸린다하여도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문제가 많은 사람들만을 선정하여 방송하게 될 때, 방송의 안전성이나 방송으로서의 품위 그리고 가정과 결혼의 가치를 대변하기는 어렵게 된다. 이날 문제가 된 방송에서도 초혼의 남편과 재혼의 아내 사이에 아이의 양육관의 차이가 있었고, 그 갈등으로 인하여 방송에 출연하게 되었는데, 마치 새 아빠가 의붓딸(7살)을 성추행한 것으로 비춰지면서 시청자들의 항의가 들어왔고, 문제가 된 것이다. 문제는 가정과 결혼 상태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나치게 강조된 형태로 화면에서 비춰주기 때문에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방송들이 자극적이고, 심지어 선정적인 모습까지 앵글에 비춰보려는 욕심 때문에 생긴다고 본다. 이 방송을 진행하는 오은영 박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며,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을 맡고 있어 그의 전문성을 신뢰한 것이고, 지금은 종영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와 같은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이 알려져 ‘오은영 현상’이라는 말도 나왔었다. 결국 ‘...결혼지옥’은 그 방송의 설정부터 지나쳤다고 본다. 왜 하고 많은 이미지 가운데 ‘지옥’을 설정했을까? 가정을 지옥으로 설정할 때, 이미 가정은 깨지고 무너진 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다. 이를 본 시청자들은 매우 격분하고 있다. ‘양심없는 MBC, 오은영 결혼 지옥 폐지하라’ ‘고작 시청률을 위해 아동 성추행 방조를 한 윤리의식 없는 방송’ ‘악마 같은 결혼 지옥 제작진’ ‘결혼 지옥 같은 쓰레기 프로(그램) 폐지하고, 오은영은 본인의 업무로 돌아가세요’ ‘아동 성애자의 범죄를 합리화한 정신 나간 방송 폐지를 원합니다’ 등등.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공영방송에서 아동 성추행으로 보이게 하는 장면까지 비춰주는 것은 시청률에 목을 매는 방송사의 집착으로 인한 과오(過誤)이다. 이렇듯 방송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앞으로 결혼을 해야 하는 젊은이들이나 또는 가정으로 인한 상처가 있는 사람들에게 가정은 ‘지옥’이 되고 결혼도 가족도 모두 ‘지옥’으로 각인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아 이대로 가다가는 훗날에 국가의 존망에까지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그런데 사고(事故) 방송이 나가면 우리나라를 비혼(非婚), 무혼(無婚), 불혼(不婚), 참혼(慘婚)으로 몰아가게 된다. MBC는 이런 방송물에 대하여 깊이 사과하고, 이렇듯 가정과 결혼에 대하여 무한한 부정을 불러일으키는 방송물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 이것은 가정 문제의 해결에 팁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해악을 끼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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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2-31
  • [언론회 논평] MBC의 동성애 옹호와 조장 방송
    난 태초부터 게이로 설계됐어, 누가 그랬어? MBC 방송이 성소수자 그룹의 동성애 옹호 조장하는 신곡(新曲)을 처음에는 ‘방송불가’ 판정을 내렸다가, 다시 번복하여 ‘방송 적합’으로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MBC는 성소수자로 구성된 아이돌 그룹이 노래를 통하여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응원하고 연대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 이를 ‘방송불가’로 했었지만, 다시 동성애라는 이유로 방송불가를 내린 것은 자신들이 잘못한 것이라며, 번복한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종교를 자극하는 것으로 여겨 불가 판정을 내렸는데, 그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방송 적합으로 돌변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부른 노래 가사를 보면, 충분히 기독교에 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제가 되는 내용은 ‘난 태초부터 게이로 설계됐어. 내 주께서 정했어’라는 부분이 있다. 이는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동성애가 죄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으로, 반기독교적인 내용이다. 그런데도 MBC는 단순히 가수들의 구성원이 동성애라고 방송불가 결정을 내린 것은 잘못이라며, 이를 수정한 것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MBC가 MBC다운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노래는 처음부터 계획적으로 동성애를 통한 반기독교적인 내용을 구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음반을 만드는데 동성애를 후원하는 단체인 비온뒤무지개재단이 제작비 지원을 하고, 동성애자 모임인 잭디코리아가 홍보 지원을 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명백하게 반기독교적 행태를 분명히 한 것인데, 이를 살피지 않고, 공영방송인 MBC가 반기독교적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에게 크게 힘을 실어 준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동성애자’로 설계하신 일도 없고, 하나님의 뜻으로 정하시지도 않은 것이 명백하다. 그런데도 MBC가 당초 자신들이 제대로 했던 결정을 깨면서까지 동성애 옹호와 반기독교적인 가사를 담은 노래를 ‘방송 적합’으로 변경한 것은 공영방송 MBC의 가치관과 종교를 대적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 적절하지 못한 방송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는 동성애자를 미워하지도 않지만, 동성애를 인정할 수도 없다. 이는 반성경적, 반기독교적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되므로 모든 인류를 죄악에 빠지게 하였고, 그 고통과 저주를 안겨 주었다. 선악과를 따 먹는 것이 대단한 사건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은 사건이 온 인류를 끔찍한 죄악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는 영적으로 볼 때(개인의 성적 취향, 인권 보호, 차별금지라고 주장하지만) 다시 선악과를 따먹어 인류를 더 깊은 죄악에 빠지게 하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하려는 사탄의 음흉한 간계(奸計)이며, 달콤한 유혹임을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분명히 ‘동성애’ 문제는 이 시대를 타락시키는데 가장 나쁜 방법이다. 그런데도 이를 용인하고 조장하고 옹호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MBC 방송은 분명히 반기독교적인 방송이며, 우리 시대를 극악하게 타락시키는 언론 매체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MBC의 행태를 거부하며 공영방송으로서 인정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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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2-12-31
  • [언론회 논평] 2022년 성탄절을 맞으며
    주님, 어둠에서 새벽으로 이끄소서! 성도의 책임을 주님 앞에서 피하지 않게 하소서! 금년에도 성탄절을 맞이함이 온 세상 모든 이들에게 축복이라.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독생자가 아기 예수로 오신 성탄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은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이기 때문이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눅2:10-11)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인 모든 이들은 오늘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입어서 살아가는 것이라. 예측불가 하고 위험한 세상, 슬픔 많은 세상일지라도 성탄으로 오신 예수님을 환영하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즐거움과 소망이 넘치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러함에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는 깊은 어둠에 뒤덮여 있다. 우리 사회 어디를 둘러보아도 위험한 일들, 문제만 더 쌓여가는 실망스러운 것들,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자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들, 온통 회색빛으로 가려져, 마치 2000여 년 전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마구간에 오실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예수님이 오신 그때,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와 헤롯왕의 학정(虐政)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삶에는 희망이 사라지고, 영적인 지도자들마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잊었으니, 서민들은 눌린 고통의 무게로 인하여 탄식하며 지새우는 영적 깊은 밤과 어둠 속에 살았던 것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도 선한 것을 원치 않는, 악한 영의 지배하에 희망의 빛은 점차 사라지고, 절망스런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모습이 아닌가? 거짓과 위선, 폭력과 타락이 일상적이고, 선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빛을 잃었으니, 예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 외에 누가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요? 지배가 섬김의 자리를 차지했으며, 악이 선을 가장(假裝)하고, 강압이 긍휼을 억압하고, 경멸이 존경을 몰아내고, 거짓이 진실을 지워버리고, 미움이 사랑을 쫓아내었으니 이를 어찌 하리요? 누구의 책임인가? 누가 이런 악행을 멈추게 할 것인가? 누가 이 시대를 참된 가치와 존엄성을 지키는 창조된 세상으로 바꿀 것인가?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들이여, 이런 상황이 남의 일인가? 금년에는 성탄의 좋은 소식을 마냥 기뻐할 수만 없게 되었으니, 주님의 돌아서신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이에 주님의 말씀이 “너희가 버린 십자가를 다시 지러 가노라” 이를 누가 창작의 영화 대사(臺詞)라고만 여길 것인가? 오늘날 우리들에게 주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우리들에게 남아 있는 숭고한 심령(心靈)으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제가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나님의 딸 예루살렘이여, 주님의 피로 사신 교회여, ‘기쁘다 구주 오셨네, 만백성 맞으라’라고 찬송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 생명 경시의 시대, 하나님의 창조 질서(일명 동성애법, 가정해체, 교육 개정 빌미로 사상을 오염시키는 교과서 제정 시도 등)를 대놓고 거부하는 시대, 원수 갚는 것과 타락된 삶을 무슨 권리로 여기는 시대, 완악(頑惡)하고 패역(悖逆)하며 음란하고 우상숭배와 술수(術手)를 즐겨, 악의 구렁텅이에 빠진 이 세대를 외면할 것인가? 생명의 주님을 심령에 모셔 들여서, 거룩한 영적 혁명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신앙의 사람들이 할 일이 크지 않겠는가? 코비드19로 인하여,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하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슬픔 당한 사람들을 생각하고, 전쟁과 기근과 억압과 핍박으로 고통 중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심령에 임하여 그들을 새롭게 변화시키는 은총이 임하기를 진심으로 간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앙과 자유를 빼앗기고 가난과 굶주림과 생명의 위협이 일상이 된 가엾은 북한의 동포들을 위하여, 인류의 구세주로 오신 하나님 앞에 나서서 도구(悼懼)의 눈물을 흘릴 이유가 우리에게 충분히 있지 아니한가? 성탄절을 맞이하는 한국교회는, 아름다운 옷을 입은 부자들과 권세를 주장하는 권력자들과만 친구가 될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웃 사랑 실천명령을 받들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2022년에 맞이하는 성탄절에는 주의 종들과 온 교회가 거룩하신 성탄의 기쁨을 실현하여, 이 세상 모두에게도 진정한 축복이 되도록, 하나님 앞에 헌신의 제물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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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2-12-16
  • [언론회 논평] 세계인이 싫어하는 중국, 아직도 한국은 중국몽인가?
    중국인들이 떠나는 자리를 한국인이 되찾아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어떤 관계인가? 지난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訪中)일 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정상회담 자리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그때 문 대통령은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을 ‘높은 산봉오리’ ‘대국’으로,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로 한껏 낮추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렇게도 할 말이 없었을까? 지금도 어이가 없다. 그때 잊지 못할 일은 또 있다. 문 대통령의 방중을 취재하던 우리나라 기자가 중국 경호원 10여 명에게 몰매를 맞았지만, 항의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왔다. 대국(大國) 앞에 작은 나라 백성은 맞아도 상관없다는 것인가? 중국이 한국을 우습게 보는 것들은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미 동북공정을 통해 한국의 고대 역사를 자기들의 것으로 마음대로 편입시키고, 우리 고유의 문화인 한복이나 김치 등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 인물도 자기들 나라 사람으로 표현한다. 중국 길림성에 있는 윤동주의 생가에는 ‘중국 조선족 애국 시인’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2016년 우리나라가 방어용 목적으로 사드(THAAD)를 배치한다고 할 때, 그 땅을 내어준 기업이 현지에서 정부 기관과 주민들에게 테러를 당하고, 결국 중국에서 철수하였다. 우리나라는 그런데도 ‘중국몽’에 참여한다느니, 코비드19로 온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중국인들의 입국을 빨리 막아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우려의 목소리에 문 대통령은 중국과 ‘고통을 나눠야 한다’고 하여 국민들의 공분(公憤)을 샀다. 우리나라가 중국과 죽음까지 나눠 가질 운명공동체였나? 6.25 전쟁에서 우리나라가 김일성 공산주의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았지만, 미군과 유엔군의 참전으로 전세를 역전시키며 통일을 앞두었는데, 중공군의 대거 침략으로 우리의 통일이 날아간 것을 우리 국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진정 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나라인가? 중국과 우리는 해방 이후 체제가 다른 국가로서, 6.25전쟁을 통해 한반도에서 부딪쳤고, 중국 때문에 우리나라가 통일을 잃어버리는 엄청난 피해를 당하였다. 그러다가 30년 전에 다시 수교를 맺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인적•물적 교류가 빈번하고, 우리나라가 중국에 대한 수출에서 가장 많은 거래와 함께 다년간 흑자를 내기도 했지만, 올해에는 적자로 돌아서기도 하였다. 중국은 1,000년 이상을 우리나라에 대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마치 속국처럼 대해왔었다. 현재도 중국은 우리 대한민국을 차지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영토문제는 외형상 주권에 관한 것으로 쉽게 속내를 드러낼 수 없겠으나 반도체는 첨단 산업에 필수 소재이므로 이를 차지하려는 욕심은 숨기지 않는 것을 볼 때, 이를 더욱 경계해야 한다. 또 우리 국토를 중국인들이 야금야금 사들이고 있다. 지난해 국회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서 소유한 토지면적은 지난 2011년 369만㎡였었는데, 2020년에는 1,999만㎡로 무려 5.4배 늘어났으며, 외국인 매수에서 60%를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본국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투기성으로 부동산을 매입하지만, 내국인들에게 최대 45%까지 매기는 세금을 대부분 내지 않는다고 한다. 얼마나 유리한 조건에서 부동산을 취득하는가? 그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확보할 수 없는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중국인을 대하는 교육 당국이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를 벌이는 경우도 있다. 서울시 교육청(교육감 조희연)은 수년 전부터 서울의 남부 3구(구로, 금천, 영등포)에서 중국 학생 등을 위하여 이중언어 교육(중국어 등 특정 외국어를 하는 교사가 들어와 학생들을 돕는 방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왜 우리 국민들의 세금으로 중국인 아이들을 위한 예산을 사용해야 하는가? 세계인들은 중국을 어떻게 생각할까? 지난해 3월 미국의 여론조사 업체인 ‘퓨리서치’가 17개국 1만 9천 명을 대상으로 중국의 평판에 대하여 조사했는데, 조사 대상 17개국 가운데 15개국 이상에서 50% 이상이 중국을 싫어한다고 답했다. 중국에 대하여 싫어하는 나라의 순위를 보면, 일본이 88%, 스웨덴이 80%, 호주가 78%, 한국이 77%, 미국이 76% 순이었다. 60%가 넘는 사람들이 싫어한다는 나라들도 캐나다, 네델란드, 독일, 대만, 벨기에, 뉴질랜드, 프랑스, 영국 등이 포함된다. 자유 세계인들이 대부분 중국을 싫어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을 왜 싫어할까? 중국은 공산주의 국가이다. 중국에서 최대 전자상거래업체를 창업한 마윈이 지난 2020년 중국금융 당국을 비난했다가 2년 사이에 4조 4,700억 원의 과징금 철퇴를 맞았다고 한다. 공산당의 정책을 비판한 대가는 엄청나다. 이런 일이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또 중국은 세계 평화를 위한 일에 방해가 되고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서만 63차례의 탄도미사일과 대륙간탄도탄을 쏘아, 우리 대한민국을 포함한 세계의 평화를 크게 위협하였다. 이런 행위는 유엔의 안보리에서 제재해야 마땅한데, 유엔은 그러지를 못했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편들고 있기 때문에, 세계 평화에 크게 역행하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효율적인 제재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북한의 김여정이 국제사회의 우려의 목소리를 대놓고 ‘겁먹고 짖어대는 개’라고 비아냥거린다. 중국은 힘은 있지만 덕(德)이 없고, 세계를 향한 대국의 면모를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런 중국민들이 한국에도 상당수 들어와 있었는데, 서울의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에서 사라지고 있다고 한다. 서울의 대림동, 가리봉동 등에서 중국인의 숫자가 약 40%(이 지역에서 외국인은 중국인이 90%를 차지함)가량 줄었다고 한다. 이런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살펴보니, 중국인에 대한 감정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우리는 조선족을 ‘우리 동포’라고 불렀는데 이제는 그들의 실체를 보고, 중국인으로 부르고 있었다. 댓글에서는 ‘조선족이라 말하고 중국인이라 생각한다’ ‘한국말 잘하는 중국인 정도가 적당한 듯’ ‘왜 우리나라에 사는 중국인을 동포라고 하는 거야?’ 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국인들이 떠난 자리를 이제는 우리가 메워야 한다. 한•중 수교 30년을 맞는 시점에서 중국이 한국을 생각하기를, 마치 자기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소국’이나 ‘속국’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물론 글로벌시대에 지나친 민족주의나 폐쇄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만, 중국이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선린’(善隣)이나 우호적인 태도에서 점점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1,000년 이상 중국은 우리를 괴롭혔다. 아시아에서 중국을 대국으로 섬긴 나라는 우리나라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베트남의 경우는 1,000년간 중국과 싸워서 그들에게 머리를 굽히지 않았다. 우리는 외교에서는 대등하게, 그리고 세계 평화를 위해서는 동반자로 우뚝 서야 한다. 그리고 주적(主敵)인 북한이 우리를 사정거리 안에서 끊임없이 위협하고 있는데, 중국이 이에 대하여 확실한 견제 역할을 해 주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서도 이런 요구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또 양국관계에서도 굴욕적, 굴종적 태도가 아닌, 상호 협력적이면서도 당당하고 명백한 입장을 피력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 중국과 우리나라와만 대면하여 피할 수 없는 약소국의 시대가 아님을 자각하고, 다변화된 국제관계를 통하여 일방적 압력을 초월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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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2-11-29
  • [언론회 논평] 신천지 10만명 대규모 집회 코로나 확산 우려된다
    대구시는 이태원의 불행한 사태를 벌써 잊었는가? 지자체는 시민이 먼저인가, 사이비가 우선인가? 신천지(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 교주 이만희)가 대구시 수성구에 있는 대구스타디움에서 오는 20일 정오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신천지 신도 10만 여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종교집회를 열 예정이어서 대구 시민들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신천지는 지난 2020년에도 대구 지역에서 신천지 집회를 통하여 코로나 1차 확산의 원인 제공자로 우리 사회에 큰 피해를 주었고, 온 국민을 불안에 떨게 했던 사이비 단체이다. 그런데도 또 대구에서 대규모 집회를 연다는 것과 이를 허용한 대구시의 행정이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는 코로나 제7차 유행이 본격화 되어 정부에서도 방역 대책에 골몰하고 있고, 국민들도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신천지가 공익적 행사도 아니고, 자신들의 사이비 세력을 과시하기 위하여 대규모 집회를 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것은 국민들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인가 묻고 싶다. 대구스타디움은 좌석이 6만 5천 개에 불과한데, 어떻게 10만 명을 수용한다는 것인가? 여러 가지 보조 기구를 사용한다고 하여도 10만 명을 수용한다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으며, 또 과밀(過密)과 밀접(密接)으로 인한 코로나 전파의 위험성도 상존한다고 보인다. 대구시(시장 홍준표)는 지금이라도 대구 시민들의 안전과(만약 2020년처럼 신천지 집회에 전국에서 모인 신도들이 흩어질 경우 코로나 확산을 가져올 수 있음) 전 국민들의 건강을 위하여 신속하게 스타디움 대관 허가를 취소하고, 위험한 대규모 종교집회를 공공 시설에서 행하는 것을 당분간 중지시켜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서울 이태원에서 대형 압사 사고가 나서 158명의 젊은 청춘들이 운명을 달리하였고, 이에 온 국민들이 슬퍼하고 있다. 그리고 그 상처들이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지자체가 이런 위험성이 내재된 대규모 집회를 허락한 것은 매우 안일한 자세이다. 현재 대구에는 2020년 당시 신천지로 인하여, 대구 지역 소상공인 461명이 피해에 대한 재판을 진행 중이고, 씻기 어려운 그들의 아픔도 채 가시지 않았다. 그런데도 대구시는 덜컥 신천지에 대규모 사이비 집회를 허락한 것이다. 대구시 행정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신천지 사이비 집단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시민을 위한 것인가? 시민을 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고 시민들의 안위(安危)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이런 위험성이 있는 집회는 당장이라도 차단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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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2-11-19
  • [언론회 논평] 교사는 학생의 주군(主君)도 아니고 초월적 존재도 아니다
    교사는 학생들의 이해와 결정이 따르도록 안내하면 된다 최근 제주의 모 중학교에서는 일부 교사들이 자신들이 교육을 할 교육과정, 교육내용을 만들어 편성할 것이라며 입장문을 내었다. 교육을 하는 교사들의 입장에서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겠다는 결단이라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 내막을 살펴보면, ‘성 소수자를 비롯한 어떠한 소수집단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명백히 동성애자들을 옹호하는 교육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누가 지금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동성애자들을 차별하는 교육을 하고 있는가? 각 지자체에는 좌파 교육감들이 만들어 놓은 ‘학생인권조례’가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이에 반하는 교육을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교사가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뭘 말하는가? 동성애를 좀 더 심도 있게, 그리고 동성애가 차별받고 있다는 식의 선동적인 교육을 통하여 자신들이 그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닌가? 이런 교육을 반대하는 학부모들을 지칭하여 편향적이고, 일방적이라는 불쾌함을 내비치면서까지 이것을 ‘교권침해’라고 주장하는 데서 저들의 의도를 알 수 있다. 교육의 주체는 학부모로, 학부모들에게도 학생을 교육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교육기본법 제13조) 그런데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굳이 가르치지 않아도 될 잘못된 내용들을 강제적으로 가르치려할 때, 학부모들은 당연히 정정(訂正)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교사들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 현재 우리 교육이 제대로 되고 있는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2022개정교육과정”에 대하여 전문가들이 분석한 것을 보면, 지금 노출된 내용들이 통과되면 동성결혼과 차별금지법이 합법화된 세상을 말하고, 대한민국 정통성이 뒤바뀐 세상을 말하며, 정당한 사유재산이 부끄러운 세상으로 되는 식의 표현 등으로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학교 내 문화혁명’을 만들려고 한다고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사들이 양심적이고, 학생들의 미래에 미칠 악영향을 생각할 수 있는 양식(良識)을 가졌다면, 학부모들의 입장을 받아들인다고 선포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은가? 어떻게 학부모들의 정당한 의견을 교권침해로만 몰아간단 말인가? 지금 이들은 교육과정개정을 위한 이슈에 맞춰, 국가교육위원회를 압박하려는 것은 아닌가? 모든 교육과정은 교사들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교육위원회가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들은 그 범위 안에서 학생들을 교육하면 되는 것이다. 교사들이 월권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 교사들이 가르쳐야 할 ‘사회과목’은 일방적, 편향적, 파당적, 정치적, 이념적, 강제적인 방식으로 가르쳐서는 안 된다. 사회 교육은 학생들에게 균등한 토론의 기회, 학생들의 이해와 결정이 따르도록 교사들은 안내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들이 일방적인 교육을 앞장서서 행하겠다는 입장은 매우 우려스럽고 위험하다고 본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교사라고 무한정의 권리와 권력을 갖는 것이 아니다. 교사라면 자주자주, 내가 가르치는 아이가 나의 자식이라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아이들에게 편향된 교육을 시켰을 때, 끔찍한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고민해 봐야 한다. 이번 사건을 일으킨 제주도의 모 중학교 교사들뿐만 아니라, 특정 이념에 경도(傾倒)되고, 그런 조직에 속한 교사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국가 미래의 자산인 학생들과 그들의 미래를 함부로 훔치는 ‘범죄행위’가 아닌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교사들은 전 국민이 내는 세금에서 월급을 받는 공직자이다. 그런데도 국가와 국민보다는 자신들의 왜곡된 지식과 편향된 사상에 치우쳐, 학생들을 ‘문화혁명’의 희생물로 삼는다면, 이는 명백한 범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밥값을 해야 한다’는 말을 사용한다. 자신이 받은 만큼 그 역할을 상대방에게 혹은 공적 영역에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학생들의 인격 향상과 인성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교사들은 특별한 소명(召命)이 자신들에게 부과되어 있음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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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15
  • [언론회 논평] 이태원 참사, 국민의 슬픔이다
    지난 주말 서울 이태원에서는 비극적 참사가 벌어졌다. 할로윈을 즐기기 위해 나왔던 사람들이 갑자기 몰린 인파와 통제되지 않는 무질서 때문에 150여 명이 질식사(窒息死)를 당하는 끔찍하고도 슬픈 일이 벌어졌다. 특히 이런 행사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급속한 전파력을 공유한 젊은 MZ 세대의 희생이 컸다. 졸지에 사고를 당한 희생자들을 애도한다. 또 유족들에게도 위로를 전한다. 그리고 부상자들의 빠른 치료를 바라고, 애를 태우는 가족들에게도 위로가 있기 바란다. 정부에서도 이번 사태에 대하여 신속하게 대처하고 있는데, 앞으로 많은 인파가 모이는 행사의 안전을 위한 행정적 뒷받침이 철저하게 이뤄지기를 바란다. 이번 사태를 두고 정쟁(政爭)이나 가짜 뉴스를 유통하여 국민 화합을 깨는 일이 없게 되기를 바란다. 이태원의 참사가 국민적 슬픔이 됨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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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0-31
  • [언론회 논평] 서울대의 중국 주석 시진핑 기리기 지나치다
    자기 학교를 지어준 대통령의 기념관은 없는데 2022년 서울대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서 서울대(총장: 오세정)가 중앙도서관에 “시진핑 자료실”을 두고 있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대하여 문제 제기가 있었는데, 서울대는 지난 2015년부터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기증한 책을 위한 특별 자료실을 마련하여(35평 규모)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 오세정 총장은 시진핑의 기념관을 둔 것이 중국 국가 주석이어서가 아니라, 시진핑이 책을 기증했기 때문에 특별 자료실을 두고 있다는 매우 궁색한 변명을 하였다. 시진핑이 중국 국가 주석이 아니었다면, 이런 특별 자료실을 국립대학에 둔다는 것이 가능한가? 중국은 동북공정(東北工程)을 통하여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자신들의 역사에 편입했다. 또 우리 고유의 문화인 한복과 김치 등도 자신들의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나라이다. 이는 명백하게 이웃 나라에 대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침략행위이다. 또 이번에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 주석은 1인 장기 집권을 공식화시켰다. 중국은 마우쩌둥 시대의 독재 폐해를 막기 위해 덩샤오핑 시절에 집단지도 체제를 도입했는데, 이를 42년 만에 허문 것이다. 사실상 시진핑 1인 독단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런가 하면 시진핑 주석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보며, 무력사용 포기를 절대 약속하지 않는다는 말로 침략을 시도할 것을 천명하였다. 그래도 중국 공산당 시진핑 주석을 위한 특별자료실을 서울대에 존치할 것인가? 이런 상황들을 보면서 ‘서울대가 베이징대학의 부속 대학인가?’ ‘우리나라가 중국의 속국인가?’ 라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은 제국주의적인 발상으로 주변국들을 흡수하려 하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국립대학이라는 서울대학이 중국이 벌이고 있는 침탈의 입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려 하는가? 서울대학은 국민들이 낸 세금에서 한 해에 5,700억원 씩을 지원받는 대학이다. 그런데 국민들의 자존심을 뭉개고,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허물려는 중국 국가 주석 시진핑이 책을 기증했다는 이유로 ‘시진핑 자료실’을 계속 둘 것인가? 그 자료들이 얼마나 학문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는 몰라도, 서울대학은 당장 ‘시진핑 기념 자료실’을 해체하고, 다시는 이런 넋 나가고, 공산 독재자를 기리는 몰지각한 행위를 반복하지 않기 바란다. 자기 대학을 지어준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도 없는 학교가 무슨 공산주의 독재자의 기념관을 중앙도서관에 버젓이 두고 있다는 말인가? 이는 국민의 자존심과 국가 최고의 인재들이 모인 서울대학의 명예와 위상을 형편없이 허무는 아주 잘못된 것으로, 바로 시정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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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교회언론회 논평
    2022-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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