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유감
2018/12/03 13:45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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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밥”이란 단어(?)를 처음 대했을 때 “혼”을 개(個)의 뜻으로가 아니라, 혼(魂)으로 이해했었다. 그런데 그게 가족을 떠나 홀로 밥을 먹는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란 것을 알고 나서는 입맛이 씁쓸해졌다. 사람인들 혼자 밥을 먹게 되는 경우가 어찌 없을까마는 그렇다고 그런 단어까지 만들어 흔들고 다니는 모양새가 그리 곱게 비치지 않았다.  
밥을 먹는 행위는 단순히 생존의 수단만은 아니다. 문화인류학자들 중에는 가족이란 단위가 원래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는 인류 특유의 행위에서 형성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날마다의 식사는 “가족이 가족임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행위로 가족이 서로 교통하는 중요한 터전. “한 솥밥을 먹다”는 말이 있듯이, 식사를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특별한 연결고리를 느끼는 법이다. 서로 속을 털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들끼리의 식사처럼 즐거운 행위는 없는 것을.
식사를 함께 함으로 서로에 대한 친근감이 더해지게 마련. 얼마 전 문재인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여러 차례 혼밥을 먹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그것은 우리 대통령이 중국정부 인사로부터 홀대를 받은 일로 여기게 하지 않았던가. 외교적인 행사에서 공동식사는 가장 중요한 상징적 행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찬회를 비롯한 여러 모양의 회식들이 거래의 터전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고, 식탁을 함께 하는 노릇이 원만한 거래와 조직의 결속을 위한 요긴한 절차요 수단이란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얼마 전 친구의 빈소를 찾은 일이 있었다. 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우리 말고는 다른 조객이 없는 지라, 부의만 전하고 그냥 돌아설까 망설이다가 차마 그럴 수는 없다 싶어 썰렁한 자리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고인은 물론 상제와 공식(共食)을 나눈다는 의미에서. 더불어 끼니를 나눈다는 것은 산자와 죽은 자, 또 신과 인간이 연결되는 중요한 매개행위가 되어 왔기에.  
사전에서 공식(共食)을 찾았더니, “같은 유의 동물이 서로 먹고 먹히거나 해치는 행위로, 동료끼리 서로 이익을 취하노라 결과적으로 함께 불이익을 얻게 되는 일”로 풀이한 것과, “원시 종교의식에서 제물로 바쳤던 희생을 공동으로 나누어 먹는 일”이라는 상반된 풀이가 있어 흥미로웠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삿상에 차린 음식은 가족은 물론 이웃과도 함께 먹는 것이 예사로웠다. 우리 집은 일찍 예수를 믿었기에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터라, 아버지가 제삿밥 빚을 갚기 위해서 헛 제삿상을 차렸던 일을 기억한다.
서양에서 빵은 더 없이 요긴한 식품.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그리스도의 말은, 곧 빵은 삶을 위한 양식이고 일상적인 음식의 대명사일 뿐만 아니라, 생명의 떡인 그리스도 자신임을 상징한다. 예수는 잡히기 전날 예루살렘에서 12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았다. 어린 양을 잡고 누룩을 넣지 않는 빵을 공식하는 유월절 식사를 위해서였다. “그들이 먹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서 축복하신 다음에, 떼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말씀하셨다: ”받아라, 이것은 내 몸이다." 잔을 들어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에 그들에게 주시니, 그들은 모두 그 잔을 마셨다. 그리고 예수께서 말씀 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이후 그리스도교회는 예수의 말씀에 따라 빵과 포도주를 나누는 의식 곧 “미사” 혹은 “성만찬”을 행하게 된다.   
초기의 그리스도교인들은 공동체로서의 결속을 확인하기 위해 자주 모여 애찬 혹은 아가페를 나누었다. 이와 성만찬예식이 초기에는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았지만, 2세기 반경부터 애찬과 분리하여 감사의 기도를 중심으로 하는 유카리스트 예전이 된다. 예수의 생애에서 “가나의 혼인 잔치”나 “5병2어”와  같은 음식과 관계된 이야기가 강조되는 것은 아주 의미가 있는 일이다.  
서양에서는 빵과 포도주가 가장 기본적인 식사였다. 빵과 포도주라는 가장 기본적인 음식물이 하나님의 몸이요 피라는 생각이 서양의 식사관을 결정한 것은 틀림없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배신자 고지”라는 드라마가 주제가 되어 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의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는지도 도 모른다. 금지된 음식을 먹어 실낙원을 한 인류는 성만찬을 통해 복낙원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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