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구원의 시간

우리 신앙인들이 불신자들과 특별히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우리 신앙인들이 ‘지금’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도 “구원의 시간”으로 구원의 삶을 산다는 것이다. 먼 과거의 있었던 예수의 십자가의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맞이할 수 있고, 2천년 전에 있었던 예수의 부활 사건을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일어난 사건으로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먼 미래의 사건인 새 하늘, 새 땅을 ‘지금, 여기’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꿈을 현실화 시켜나가는 사람들이다. 기독교의 역사관의 특징은 새 희망에 있다.
기독교 종말론 역시 그 특징은 새 희망에 있다. 신앙인들은 고난과 역경 속에 살면서도 성령의 능력으로 구원과 승리와 행복을 자기 시간 속에 끌어들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새 시대에 대한 꿈과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기독교의 역사는 희망의 역사이다. 새 시대에 대한 꿈의 역사이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 버린다. 전도서 저자가 “해 아래는 새 것이 없다.”고 했듯이, 시간은 현재에 머물지 않고 순간순간 과거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이 흘러가 버린 시간들 속에 있었던 일들을 풀이 없이 기록한 것을 ‘히스토리에(Historie)’라 한다. 그런데 ‘히스토리에’는 물처럼 흘러가 버린 지나간 시간들 속에 있었던 일들로 역사(歷史)이고, 또 대부분 나와는 시간적으로나 공관적으로 상관없이 발생된 것들이기 때문에 실존적으로 나와 특별한 상관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나 오래 전에 있었던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 사건이 의미 있는 시간 속에서 특별한 뜻을 가지고 일어난 일이라면 또 그 사건의 의미가 올바로 풀이되어 전해졌다면, 그 사건은 나와 특별한 상관관계를 갖게 된다. 또 그 사건은 나의 시간 곧 나와 관련된 시간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성서는 대부분 신앙인들의 삶의 역사이다. 픽션이나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기록된 진솔한 역사이다. 고난과 역경과 시련 속에서 살아간 수난의 역사이다. 그러나 그들의 역사는 희망의 역사이다. 꿈의 역사이다. 그들이 그 엄청난 시련 속에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지 아니하고, 오히려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변함없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꿈 있는 자만이 역사를 의미 있게 만들 수 있고, “구원의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며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시간에는 두 가지가 있다. 흘러가는 시간도 있고, 그리고 의미 있는 시간도 있다. 흘러가는 시간을 헬라어로 ‘크로노스’(chronos)라 하고, 의미 있는 시간을 ‘카이로스’(kairos)라 한다. ‘크로노스’는 연대기적인 시간을 말한다. 그래서 연대기를 말할 때 영어로 ‘크라너클’(chronicle) 또는 ‘크러날러지’(chronology)라고 한다. 이는 천문학적으로 해가 뜨고 지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며,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결정되는 시간이다.
매일 한 번씩 어김없이 낮과 밤이 찾아오고, 매년 한 번씩 봄여름 가을 겨울이 찾아오는 시간이다. 생물학적으로는 동식물이 낳고 늙고 병들고 죽는 시간이다. 철새들이 철 따라 이동하고, 연어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와 알을 낳고 죽어 가는 시간이다. 이 속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이 웃고 울며, 분내고 기뻐하며, 번민하고 수고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여기에 시간의 의미를 살리는 ‘카이로스’는 특정한 시간 또는 정한 시간을 말한다. 시간은 비록 흘러가는 것이지만, 시간에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에 이 의미 있는 이 시간을 ‘카이로스’라 부른다. 그래서 ‘카이로스’는 어떤 일이 수행되기 위한 시간 또는 특정한 시간을 가리킨다. 계획이 세워지고 그 계획이 실행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특히 하나님의 활동이 전개되고 그 분의 계획이 실현되는 시간을 가리킨다.
역사(History에도 두 가지가 있다. 조사나 탐구에 의한 순수 역사가 있고, 해석이나 뜻으로 본 풀이한 역사가 있다. 순수역사를 독일어로 ‘히스토리에’(Historie)라 하고, 풀이역사를 ‘게쉬크테’(Geschichte)라 한다. 역사는 시간적으로 보면 과거에 속한다.
흘러간 시간 속에서 발생했던 일들을 한 곳에 모아 적으면 역사가 된다. 개인의 역사를 모아 적으면 전기나 자서전이 되고, 신앙체험을 모아 적으면 간증집이 된다. 간증집은 ‘게쉬크테’로, 전기는 ‘히스토리에’로 분류될 수 있다. 그러나 전기라고 해서 반드시 ‘히스토리에’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서 신약의 4복음서는 예수의 생애를 적은 글이지만 ‘히스토리에’이기보다는 ‘게쉬크테’이다. 그래서 4복음서를 ‘예수의 생애’라 하지 않고 ‘복음서’라는 이유를 알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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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의 시간 - 배성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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