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는 쉬운 것이다·18 앞에서 빠진부분
2019/01/04 10:03 입력
트위터로 기사전송 페이스북으로 기사전송
성경적 신앙운동에 대하여
1.jpg
 우리는 그가 받으신 고난을 받을 수 없으며 그분의 십자가도 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분은 아주 평범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겪으신 것입니다.
목수로 일하면서 보통 사람과 부대끼며 살았습니다. 절대로 지금 목사들처럼 평신도와 구별된 제사장이란 의미가 아닙니다. 높은 강단과 화려한 삶도 아니고 평신도를 내려다보는 구별된 높은 좌석도 아니고 가운을 걸치고 검정 양복을 입고 경건하게 보이기 위해서 애쓰는 것도 아닙니다. 규격이 맞는 철두철미한 실수도 없이 거룩하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기쁨, 슬픔, 배고픔, 사랑받고 싶음, 유혹, 우정, 실망감, 권태감, 분노, 영적 고뇌, 연민, 감정적 고통 그리고 육체적 고통도 경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에게 시청각 교재로서의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는 현장적 삶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래서 모든 사람, 관원, 율법사, 학자, 천민, 가난한 사람, 실패한 사람, 무식한 사람, 약한 사람, 이해할 수 없는 미친 사람까지도 소통되었습니다. 물론 불신자들까지 대화가 되는 삶을 보여주신 이유는 신분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근본적 세상 속에서 역사 하시는 범위를 이해시킨 것입니다.
그런 우리는 학문과 전통으로 보수라는 사람이나 진보라는 사람까지도 자기 울타리와 올무에 묶여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무런 일도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로 하여금 바른 신앙운동을 선포하게 하신 것입니다. 바른 신앙운동이란 특별히 구별된 삶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삶 속에서 예수의 생명 자체가 그렇게 하게 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열린 삶이 온 세상을 사로잡을 수 있는 인간적인 일체가 아니라 영적 즉 생명으로서의 일체를 보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바른 신앙이 바로 다른 이방 종교나 무속종교나 학문이나 전통적 삶에서 절대 체험할 수 없는 영적 일체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1~23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 된 것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완성하심으로(요 19:30) “다 이루었다”라는 하나님의 창세기 3장 21절에 약속하신 죄인으로서 하나 되게 하시기 위한 ‘가죽옷’을 입혀 세상에 살게 하셨던 대신 속죄된 그 삶은 어려운 것이나 금욕적인 훈련에 의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아버지와 하나됨을 지금 우리는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바른 신앙의 본질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영광에 우리도 예수님과 아버지의 연합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 분 사이에 흐르는 영원한 사랑의 흐름에 우리도 동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적 일체가 현실이요, 이 현실이 개혁주의생명신학 실천인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님과 인류의 일체를 가족의 개념으로 말씀했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는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가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라 하셨으며 또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자녀는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히 2:11~14).
 우리에게 예수님과 하나될 속성을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는 하나의 뿌리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은 형제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현대교회의 범죄가 부모와 자녀가 따로, 남편과 아내가 따로, 예수님과 교회가 따로, 목사와 평신도가 따로, 이것이 개체 개념입니다.
이 사실이 십계명 중 4계명에서 이탈된즉 끊임없는 자기 고통에 매이게 하는 뱀의 능숙한 방법에 깊이 빠져 버린 것입니다.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epnnews@empas.com
교회연합신문(www.ecumenicalpress.co.kr) -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더보기

  • 회사소개
  • 광고안내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회원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 교회연합신문 (http://www.ecumenicalpress.co.kr)  |  발행인 : 강춘오  |  설립일:1991년 11월 16일
    | 사업자:206-19-64905  | 03127  서울시 종로구 창경궁로16길 73-10  |  대표전화 : 02-747-1490              
      Copyright ⓒ  교회연합신문 All right reserved.
    교회연합신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