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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교회 성장시대 이후를 맞이한 한국교회를 향한 성서신학적 제언
- 본고는 한국복음주의월례회가 지난 12일 서울 마포 신촌성결교회에서 개최한 10월 월례회 ‘개혁을 넘어 이제는 변혁이다’ 중 왕대일 교수가 발제한 ‘교회성장시대 이후를 맞이한 한국교회를 향한 성서신학적 제언’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 편집자 주 △개혁에서 변혁으로이사야서 66장에서 예루살렘 성전은 현실에 기반을 둔 성전이 아닌, “그 날에” 하나님이 세우실 성전에 대한 조감도에 기초한다. 현실에 매여 있는 성전이 아닌 하나님의 은총을 누릴 성전을 조망한다. 하나님 신앙과 세상의 가치관을 적당히(!) 얼버무린 혼합주의의 탈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이 낳으실 순결한 새 시온을 바라본다. 그 내일의 시온이 너무나 확실하기에 오늘의 시온을 과감히 내려놓는다. 그 종말의 성전이 너무나 분명하기에 오늘의 성전에서 과감하게 벗어난다. 이사야 66장이 그리는 조감도는 기존 성전종교에 대한 대대적인 변혁을 밑그림으로 삼는다. 폐쇄적이던 회중이 드리는 제사중심의 성전을 “만민이 기도하는 집”(사 56:7)으로 변혁시키고자 하였다. 혈통을 따지던 공동체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사 56:3-7). 종교법칙을 따지던 공동체 유형을 하나님의 영이 이끄시는 하나님의 선교 중심으로 변혁시켰다(사 61:1-2). 그러면서 부성적인 성전종교를 모성적인 성전신앙으로, 어머니 시온으로, 바꾸어놓았다. 스데반의 설교는 이사야가 품었던 그 종말론적 성전의 위상을 나사렛 예수가 구현하신다고 증언한다. 신학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성막이 되신 하나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우리 가운데 성막으로 오셔서 거하시는 하나님이다(요 1:14). 교회는 성막정신으로, 성육신 신앙으로 변혁되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고백한 그리스도 찬가처럼 교회는 낮아져야 하고, 비워야 하고, 종의 형체를 가져야 하고, 복종해야 하고, 십자가를 져야 한다(빌 2:5-8). 그럴 때 하나님은 교회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빌 2:9) 이름을 얻게 하신다. 여기에서 사도행전기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사야서 66:1의 탈(脫)성전적인 신앙을 아예 반(反)성전적인 가르침으로 적극 제시하였다. 신약에 인용된 구약구절은 여러 시각에서 해석할 수 있다. 사도행전 7장도 사도행전 본문이 자기 신학을 입증하려는 증빙문서(proof text)로 이사야 66:1-2를 제시한 경우로 보아야 한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꼭 그렇지만은 않다. 왜 그런가? 중요한 것은 사도행전 7장 본문이 예루살렘 성전종교의 변혁을 부르짖고자 붙든 구약의 말씀이 출애굽기 25-31장의 성막공동체와 이사야 66장의 종말론적 성전이라는 사실이다. 이사야 66장이나 사도행전 7장은 모두 기존종교에 대한 변혁을 주창한다. 기존종교를 변혁시켜야 하나님의 백성에게 살 길이 열린다고 주창하고 있다. 거기에는 모두 기존‘유대성전종교를 넘어서는’(beyond Jewish temple piety) 신앙유형을 적극 모색한 결과가 담겨 있다. 이사야의 경우는 그 유형이 예루살렘 성전을 종말론적으로 조망하는 태도를 취하지만, 스데반의 경우는 그 유형이 성전을 대체하는 광야 교회의 회복으로 나타났다. 사도행전 7장에서 들었던 스데반의 설교나 이사야 66장의 예언은 각각 자기 시대의 신앙공동체에게 쏟아낸, 그 신앙공동체의 존재양식이 변혁되어야 한다는 일갈(一喝)이었다. 일갈, 한 일(一), 꾸짖을 갈(喝)! 큰 소리로 꾸짖었다. 목이 메도록 소리 높여 외쳤다. 무엇을 외쳤는가? 현실주의에 붙들린 성전보다는 “그 날에” 완성될 성전을 외쳤다. 그 내일의 성전이 있기에 오늘의 성전에 매여 있는 자들을 향해서 그것은 혼합주의의 온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꾸짖었다. 무엇을 외쳤는가? 사람이 만든 집보다도 하나님이 지으실 “처소”를 외쳤다. 이스라엘 신앙공동체가 광야 교회의 유산을, 하나님을 위한 처소라는 유산을 이어가지 않는다면, 그런 공동체가 이 땅에 있어야 될 이유가 없다고 꾸짖었다. 그랬기에 이사야는 성전의 진정한 실체를 종말론적으로 조망하는 방식으로 당시의 성전종교가 거듭나기를 소망했고, 그랬기에 스데반은 그 종말론적 비전에 기대어 아예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신다”고 설파(說破)하였다. 이사야나 스데반의 말은 단순한 설명(說)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존 성전종교를 깨뜨리는(破) 외침이었다. 신앙공동체는 처음부터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였다던 것이다. 그러니 기억해야 한다. 교회는 유대성전종교를 깨뜨리는 변혁공동체이었다. 그 변혁공동체의 완성을 현실이 아닌 종말론의 지평에서 소망하였다. 그 날에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의 지평에서 오늘의 교회를 보았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늘 ‘도상의 교회’(Church on the Way)가 되어야 한다. 스데반의 순교 이후 “길” 따라 “흩어진 사람들”(행 8:4)이 무더기로 쏟아지지 않았던가! △ 한국교회, 어떻게 변혁되어야 할까?오늘의 한국교회가 스데반이 외친 광야 교회에서, 이사야가 외쳤던 종말론적 성전에서 깨닫는 것은 무엇인가? 한국교회의 변혁을 향한 “타는 목마름”은 우리 모두에게 다 절실하다. 그 절실함을 한 두 마디로 다 거론할 수는 없다. 다만, 여기에서는 사도행전 7장과 이사야 66장에 근거해서 한국교회의 변혁을 향한 이정표를 제시해볼 뿐이다. 스데반이 예루살렘의 교회를 유대성전종교로부터 떨어져나가게 했듯이 오늘의 한국교회는, 그 규모가 대형교회든 개척교회든, 탈(脫)성전화, 탈(脫)성전종교화해야 한다. 교회의 존재양식이 달라져야 한다는 소리다. 교회가 성전을 짓지만, 그 성전은 성전종교의 성전이어서는 안 된다. 교회는 흩어져야 하고, 각 지역사회나 분산된 각 계층에 세워지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요즈음 우리 교회에서 성전은 교회의 하부구조(집회장소)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한다. 교회 안에 성전(예배당)이 있어야지 성전(성전종교) 속에 교회가 흡수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시작은 유대성전종교로부터 뛰쳐나온 프로테스탄트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가 다시 유대교식 성전종교로 되돌아가버려서는 안 된다. 교회의 규모를 축소하자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규모는 하나님이 정하신다(마 25:14-30). 크게 자라는 나무도 있고 작게 자라는 나무도 있다. 다 주님이 키우시는 나무다. 단, 교회마다 자라서 교회끼리 더불어 숲을 이루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계시록으로 이어지는 신약의 말씀에서 교회는 서로 더불어 숲을 이루는 방식으로 퍼져나갔다. 예루살렘, 안디옥,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빌립보, 골로새, 데살로니가, 고린도, 로마 교회 식으로 당시 지구촌에 교회라는 숲을 이루어나갔다. 이 점이 중요하다. 한국교회가 숲을 이루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개체 교회들이 각각 약진하고 경쟁하는 방식으로 생존했지만, 이제부터는 나무와 나무가 함께 하는,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공생하는, 그러기 위해서는 조림(造林) 방식으로 교회변혁을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큰 교회는 있어야 한다. 아니, 있게 된다.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다. 단, 지금 모습으로는 아니다. 담임목사의 생계형 교회로서는 교회역할을 할 수 없다. 큰 교회가 교회 안에 여러 공동체들을 연합체 형태로 두듯이, 작은 교회도 작은 교회들끼리 연대하여 디아코니아를 공동으로 실천해야 한다. 스데반이 순교하는 자리에서 맞섰던 자들은 유대교의 바리새파 학자와 사두개파의 종교인들이었다. 레너드 스윗의 표현을 빌리면, 현상유지(maintenance) 타입의 종교인들이었다. 스데반은, 그리고 스데반 이후에 등장하게 된 교회의 지도자들은, 역시 레너드 스윗의 표현으로 설명하면, 전도(mission) 형의 종교인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신앙공동체의 지도자가 달라져야 한다. 한국의 개신교회는 담임목사(당회장) 중심의 교회다. 이 체제를 존중하면서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면, 교회 안에 여러 명의 목사들이 공동으로 목회하는 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전도사, 강도사, 목사, 선교사만이 아닌 수도사 등도 같은 교회를 더불어 섬기는 목회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신학교를 나와서 목사고시(강도사고시)를 패스했다고 해서 꼭 담임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고집해서도 안 된다. 평생을 한 공동체에서 목사로 사역하다가 은퇴하는 트랙도 마련되어야 한다. 회사에 들어간 사원들이 모두 다 나중에 그 회사의 CEO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숲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로는 교회끼리도 통폐합해야 한다. 시장의 용어로 말한다면, 구조조정이나 MOU를 해야 한다. 교회 수가 너무 많다. 목사후보생을 배출하는 신학교가 너무 난립되어 있다. 한 교회가 한 교회건물을 세우고 짓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교회가 연대하여 함께 교회를 세우거나 교회건물을 짓고 공유하며 유지하는 형태로 존재방식을 변혁시켜야 한다. 그런 변혁을 위해 목회구조 마저도 공동목회 형태로 변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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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교회 성장시대 이후를 맞이한 한국교회를 향한 성서신학적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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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성화된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무엇인가?’
- 본고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9월 14일 개최한 9월 월례회 ‘성화된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무엇인가?’ 중 채영삼 교수가 발제한 ‘공동서신의 저자들에게서 배우다’를 발췌·편집한 것이다. - 편집자 주 성화는 평생 이루어져 가는 것이고, 그 누구도 스스로 ‘성화된 건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는 신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위하여 책임이 있는 지도자의 위치에 서게 된다. 어떤 공동체이든 ‘지도자’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주께서 교회를 위해 세운 지도자들의 경우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과 지혜, 그분의 성품과 인도하심은, 그분께서 양 무리 위에 세우신 교회의 지도자들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이 글에서는 특별히 공동서신의 저자들인, 주의 형제 야고보, 사도 베드로 그리고 사도 요한이 공동서신을 기록하면서 초기 교회를 위해 어떤 역할과 책임을 다 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거울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공동서신의 저자들인, 주의 형제 야고보, 사도 베드로, 그리고 사도 요한은 모두 초기 교회의 중요한 지도자들이었다. 세 분 모두, 성화의 문제에 대해 깊은 경험과 식견을 갖고 있었고, 서신들도 남겼는데 그것이 공동서신이다. 초기 교회에 안디옥을 중심으로 한 바울의 선교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났지만, 다른 쪽에서는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런 교회의 어른들이 초기 교회의 여러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면서 전체 교회를 이끌었다. 이분들은 성화된 건강한 그리스도인들로서 당시 초기 교회 전체에 대해 어떤 역할을 했는가? 첫째, 그들의 인생의 처음보다 끝에서 더욱, 예수를 닮은 삶의 본(本)을 교회 앞에 남겼다.그들은 화려한 경력의 교회 최고 지도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 결 같이 그들의 인생의 끝에서 그 높은 지위를 떠나, 지역 교회의 장로들로서 봉사했거나, 가장 중요하게는 인생의 끝에서 결국 그들의 만났던 예수를 온전히 이해하고 그분을 온전히 따르는 삶의 본을 그들을 따르는 양 무리 된 교회 앞에 남겼다. 먼저 야고보서를 쓴 ‘주의 형제 야고보’는, 두 번째 총회장으로 초기 교회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의 실질적 권위자였다. 그는 백성들에게 ‘가난한 자의 방벽’이요 ‘의인’으로 칭송 받았다. 그러나 그는 결국 사두개인의 총수 안나스 2세에게 죽임을 당한다. 순교했다. 야고보서 2장을 보면, 교회 안에서 가난한 자를 외모로 보고 차별하지 말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가 살았을 때 영광의 주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 것과 비교하면 철저한 변화이다. 그는 끝까지 대부분 가난했던 초기 교회 성도들을 끌어안고 죽었다. 젊었을 때 예수를 ‘외모로 보고 판단’한 실패를, 그의 신앙의 노년에 온전히 회복했을 뿐 아니라, 이런 점에서 초기 교회에게 ‘세속적 가치관에 따른 차별’이 없는 ‘순전한 교회,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긍휼의 교회’라는 이정표를 남겼다. 베드로전후서의 저자인 사도 베드로는 어떠한가? 그는 초대 총회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초기 총회장의 자리를 일찍 내려왔고, 아나톨리안 반도 쪽으로 나가 선교 생활을 오래 했다. 베드로가 평생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였는데, 그는 오랜 목회 생활을 통해, 결국 그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했고, 베드로전서를 통해 세상을 맞닥뜨린 교회를 위한 십자가의 의미를 새롭게 정립한 찬연한 십자가의 신학을 남겼다. 그는 또한 세속적인 거짓 교사들에게 농락당하는 교회를 지키기 위해 신적 성품과 바른 성경해석을 천명하는 베드로후서를 남겼으며, ‘함께 장로 된 자’로서 지역 교회들을 지키다가, 십자가의 길을 가신 그리스도를 본(本)받아 그의 발자취를 따라(벧전 2:21) 순교로 생을 마감했다.또한 초기교회를 위해 요한서신과 계시록을 남긴, 사도 요한은 주의 사랑하는 제자요 예수님의 어머니까지 맡은 중요한 인물이었지만, 예루살렘에 머물지 않고 그 역시 로마 변방으로 나아가 에베소를 비롯한 아시아에서 오래도록 선교 사역을 했다. ‘함께 장로 된 자’라든지 자신을 ‘장로’로 부르는 표현은, 베드로나 요한이 자신을 지역교회의 장로들과 동일시하며 그들 속으로 들어가 섬김의 삶을 살았음을 보여준다(벧전 5:1; 요이 1; 요삼 1). 초기 교회에서 예루살렘의 주요 총회장이요 지도자였던 이들은 모두 그 인생과 사역의 끝에서, 선교 사역, 지역 교회 속으로 들어가 거기서 사라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생애에서 처음 알게 된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깊고 온전하게 알게 되었고, 바로 그들이 평생을 걸쳐 알게 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의 본을 온 교회에게 남기고 떠났다. 둘째, 교회의 ‘온전한 신앙(Regular Fidei)’의 균형과 보완을 위해서 힘썼다. 또 한 가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었던 이분들은 당시 흩어져 있던 전체 교회가 ‘온전한 신학과 온전한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신학적, 신앙적 균형을 잡아주며 새로운 도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그 신학과 신앙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에, 바울의 이신칭의의 복음을 오해했던 자들이 많았다. 율법의 정신과 요구는 거부하는 무율법주의, 반율법주의자들이 생겼고, 더러는 신비체험을 주장하면서 거짓교사로 발전해 갔다. 초기 교회는 이처럼 ‘오직 믿음’, ‘오직 은혜’를 잘못 이해하고, 세속적인 거짓 가르침들과 빗나간 성령운동, 말씀을 떠난 은사주의에 빠지기도 했다. 이런 전체 교회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이들은 온전한 신학, 온전한 신앙을 위해, 설교하고 가르치고 서신들을 남겼다. 또 한편으로 초기 교회는, 유대교 뿐 아니라, 로마라고 하는 거대하고 무서운, 유혹과 핍박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세상을 맞닥뜨리고 있었다. 교회는 이를 대처해야 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그 막중한 과업을 바울에게 맡기지 않고, 그들 자신이 감당했다. 그 결과가 바로 공동서신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지만, 유대교 특별히 율법을 중심으로 한 옛 언약 구조와 씨름했다. 복음을 그렇게 전달하고 정리해서 서신을 남긴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로마에서 순교했다. 상징적이지만, 그 이후로 로마 세계 속에 남겨진 초기 교회가 당면했던 세속주의의 거센 공격, 그 갈등과 비난, 오해와 핍박, 그리고 이단과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의 공격, 무엇보다 점점 더 황제숭배에 빠지며 적대적이 되어가던 세속 국가와의 갈등과 충돌이라는 문제를 다루어야 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성화된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서, 말씀 계시에 합당한 분별력과 지도력을 발휘했다. 그들은 공동서신을 통해 초기 교회를 로마라는 세상으로부터 지켜냈고 ‘세상을 이기는 교회’로 세워나갔다. 기존의 문제와 새로운 도전 앞에서 교회를 위한 신학적, 목회적 지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교회를 온전케 했던 것이다. 셋째, ‘솔로’(solo)가 아니라 ‘코러스’(chorus)로 함께, 온전한 교회, 하나님 나라를 세워갔다. 예루살렘의 초기 지도자들은, 안디옥의 걸출한 인물이었던 사도 바울을 잘 세워주면서, 그의 약점을 보완하고, 전체 교회의 신앙의 균형을 위해 ‘함께’ 일했다(행 15장). 초기 사도들의 정신은, 분열과 대립이 아니라, 보완과 협력이었다.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역사하시는 놀라운 구속 사역을 눈으로 보고 확인한 이상, 그들은 복음과 교회,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서로 보완하고 협력하는 정신으로 일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이거나 그에게서 친히 배운 사도들이 운집해 있었던 예루살렘의 권위와, 그를 보지 못했으나 부활하신 주의 명령을 따라 이방으로 나아갔던 전초기지였던 안디옥은 ‘서로 충돌하지 않고 연합하는’ 초기 교회의 두 캠프였다. 사도행전 15장에 기록된 첫 번째 예루살렘 총회에서 보듯이, 주의 형제 야고보와 베드로, 요한은, 안디옥에서 올라온 사도 바울과 협력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큰일을 함께 이루어갔다. 또한 점차 바울의 복음을 오해한 자들이 생기자, 예루살렘의 사도들은 바울을 비난하거나 바울에게 모두 책임지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바울의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야고보와 베드로와 요한이 각기 교회를 위해 서신을 쓰고 가르침으로 ‘협력과 보완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단지 바울만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이 ‘함께’ 교회 전체의 신학적, 신앙적 건강과 균형을 위해 힘을 합쳐서 일했던 것이다. 그 결과가 공동서신이다. 초기 교회의 정신은 ‘나 홀로’가 아니라, ‘함께’였다. 그것이 또한 공동서신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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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성화된 건강한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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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아동 세례 및 세례·입교 연령에 관한 연구
- 본고는 지난 7월 9일 예장통합측이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한 ‘어린이(아동)세례 및 세례·입교 연령에 관한 연구위원회 보고서’ 김세광 교수의 원고 중 주요 부분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유아세례는 만 2세까지만 허용만 2세 이후의 아동들은 성인세례 연령 15세까지 기다려야 세례 받을 수 있어유아세례와 성인세례 연령의 사이에 있는 아동들에게 세례 필요성 대두 1. 연구의 필요성16세기 역사적 교회 이래 갈등을 빚어왔던 유아세례 논쟁은 에큐메니즘 시대인 지금에까지 계속되어 오고 있다. 유아세례 관습을 유지해 온 전통에서는 유아 이후 입교까지의 연령층에 해당하는 아동들은 성례전적 과정에서 제외되어 왔다. 현재 한국의 주요 장로교회들은 만 2세까지의 유아세례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만2세 이후의 아동들이 세례를 받기 위해서 성인 세례 연령 자격인 15세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성례전 관습이 형성된 이유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나 신학적 근거를 찾아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13년이란 기간 동안 성례전과 관련한 목회적 지침이나 교육을 찾아보기 어렵다는데 문제가 있다.2. 다음세대 교육·선교적 관점에서의 연구아동 세례교육 및 세례식의 현장은 다음세대 아이들을 향한 보다 적극적인 신앙교육 및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양육이 일어나는 교육선교의 장이 되리라 기대된다.첫째, 아동 세례식의 교육여정은 세례대상이 되는 아이들의 신앙이 인습적인 신앙에서 고백적인 신앙이 되도록 보다 체계적이고 일관적인 신앙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교회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기본적인 신앙교육인 주일예배와 성경공부의 자리는 아동기에 해당하는 아이들의 신앙이 합당하게 양육받기에는 많은 제한들이 있다. 가장 먼저는 제한된 신앙양육시간이다. 또 하나는 그들의 연령별 성장단계에 따른 합당한 교육방법과 교육내용도 충분치 않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동 세례교육은 매우 시의적절한 신앙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서부터 배워왔던 성경의 이야기와 신앙적인 핵심내용들을 비교적 적절한 시간과 성서적이고 신학적으로 잘 정리된 내용으로 구성된 커리큘럼 안에서 체계적이고 일관적으로 교육을 받는다면, 이 과정은 현재 예장통합측 고학년 아동부로 올라갈수록 더욱 높아지고 있는 주일학교 출석률 감소 추세를 막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다.둘째, 아동 세례식의 교육여정은 세례대상의 부모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부여하신 자녀를 향한 가정 신앙교사로서의 책임과 역할에 대하여 다시금 교육을 받고 새롭게 헌신을 할 수 있는 영적인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교회사적으로 보면 가정이 다음세대 신앙양육의 핵심현장이요, 부모가 가정의 신앙교사가 되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셨던 교회 안에서의 일관적인 역사적 기록이었다. 초대교회 교부들, 16세기 종교개혁시대, 17세기 청교도들의 미국 부흥주의 운동은 물론이고, 한국 선교초기의 문헌들에 나오는 자료들을 보면, 한국교회가 선교사로부터 받았던 믿음의 유산에는 가정을 얼마나 중요한 신양양육의 현장으로 여겼으며, 부모를 핵심적인 신앙양육의 중요한 파트너로 여겼는지를 우리는 알 수 있다.이러한 관점에서 아동 세례교육의 과정은 세례받는 아이들의 부모들이 합당한 신앙부모로서의 훈련을 받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 이러한 아동 세례교육의 과정으로서 부모가 교회로부터 신앙적 부모교육을 받을 때에, 부모는 가정의 신앙교사이자 교회의 공동체일원으로서의 정체성과 사명을 발견하고 결단하며, 더불어 아동 세례가 의미하는 신학적, 성서적, 교육적 변화의 여정에 보다 의식적이고, 공동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즉 아동 세례식의 교육여정은 다음세대의 신앙교사로 부름받은 교회학교 교사와 가정의 신앙인 믿음의 부모가 함께 세례대상이 되는 아이들의 신앙을 협력하여 양육하는 책임을 감당하게 한다. 이러한 아동 세례교육을 통한 부모신앙교육은 한국교회가 앞으로 더욱 지향해야 할 가정과 교회가 긴밀한 동역을 통하여 다음세대를 양육하는 신양변혁적인 사건의 중요한 자리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3. 아동세례와 입교아동세례의 도입으로 입교의 목적과 시기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대부분의 교회들은 입교에 대해 두 가지 같은 이해를 지닌다. 즉 자신의 신앙을 서약하는 것과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입문 의식이 그것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성찬과의 관련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즉, 입교를 성찬 참여 자격을 주는 예식으로 보는 교회가 있고, 그렇지 않은 교회가 있다.한국의 대부분 주요 교단들은 입교를 성찬 참여 자격을 주는 예식으로 본다.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에서 입교인은 세례교인을 말하는데, 유아세례교인이 15세가 되었을 때 받을 수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그 연령이 18세 이상이다. 이들 교회에서 입교의 목적은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이 장성해서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촌에 대한 개인적인 응답을 하도록 하는 예식이다. 회중들은 전 세계 교회를 대신하여 세례자들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영위하도록 기도와 사랑으로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 유아세례의 경우도 부모는 수세자가 성장하여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때까지 신앙공동체 안에서 양육과 지도의 책임을 진다.독일계 미국개혁교회(RCUS)에서도 입교는 성찬을 받게 하기 위한 서약이다. 가능한 하아델베르그 교리 전체를 암송하는 것을 목표로 교육한다. 또 보수적인 미국장로교회(PCA)도 입교의 시기와 목적에 대해서는 위와 같은데, 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즉, 유아세례자들이 복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때, 그들은 기득권으로 교회의 교인이며,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고,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며, 성찬에 참여할 것을 추구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요 특권이라고 하는 것을 진지하게 상기시켜주어야 한다는 것이다.미국장로교회(PCUSA)에서 입교는 유아세례자들이 대상이지만 성찬의 자격이 시작되는 예식은 아니다. 입교의 시기는 정하지 않고 당회의 재량에 맡긴다. 당회는 신중하게 시험한 후 입교 지원자의 자격을 결정하는 임무를 지닌다. 입교의 목적은 입교자로 하여금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섬기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특히 카나다연합교회에서 입교는 성찬의 자격이 아니라 교육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서약하는 동시에 카나다연합교회의 일원이 되는 입문의식이다. 세례 시에 한 약속을 책임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으로 나서는 것이다.입교의 목적에 대해 본인의 신앙고백을 하는 ‘성인예식’, 성장과정에 따른 ‘성장예식’, 세례-입교- 성찬의 하나됨의 ‘통합예식’, 지교회의 정교인이 되는 ‘회원예식’ 등 다섯가지 의미가 있다. 또 입교의 목적이 그동안 행해왔던 의식들, 즉 성만찬에 자격을 주는 의식과 교리문답 교육을 통하여 개인이 교회의 신앙을 고백하는 의식에 더하여 발달 단계적인 입장에서 행하는 세례 언약의 재확인 같은 의식들이 있다. 1세기 방식으로 돌아가서 입교를 세례와 연결하여 하나의 성례전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열거한 입교의 목적을 정리하면 5가지가 있다. 즉, 성찬 자격, 유아세례자의 신앙고백, 세례 언약의 재확인예식, 신앙교육을 통한 성장예식이다. 4. 결론오늘 세계교회의 입문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동세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중요한 성례예식이라는 판단이 선다. 세계의 각 교회들이 아동세례 도입을 위해 오랜 기간 신학적 연구를 통해 논의한 준거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하나님의 계약의 백성을 향한 절대적 은총의 선물인 유아세례를 보존해 온 개혁교육 전통에서 아동세례를 금하고 있었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신학적 근거나 목회적 통찰이나 고려 없이 전통을 답습해 온 것에 대해 그 원인을 규명해 보고 이제 세계교회의 변화와 그들의 통찰을 겸허히 수렴해 가는 자세가 필요하다.아동세례는 이미 통합교단에서 시행하고 있는 지적(발달)장애인 세례에서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녀들이 그들의 나이와 믿음의 수준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총을 누릴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 작년에 통합측 총회에서 허락된 유아세례자 성찬에 이어서 아동세례의 시행은 회중들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성례전적 삶을 더욱 적극적으로 살 수 있게 하고, 목회자들에게는 성도들의 구원의 여정을 성례전적으로 안내할 수 있는 목회적 환경을 제공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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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아동 세례 및 세례·입교 연령에 관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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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6월 월례회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통일선교 방향’
- 본고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6월 8일 서울 영락교회에서 진행한 6월 월례회에서 박종화 목사가 발제한 ‘새로운 통일선교전략 방향’의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1. 평화의 때 도래기독교인들은 역사적 상황의 변화를 단순히 예측가능한 시대사적 내지 역사현실의 변화의 틀에서만 보지 않는다. 역사의 궁극적인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믿는 신앙고백의 입장에서 시대사의 흐름과 변화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개입의 징조(Kairos)를 간파한다. 1988년 하계 올림픽이 서울에서 평화의 축제로 열렸었다. 그 이전 1984 LA 올림픽은 미국과 소련을 정점으로 하는 동서 양진영의 핵무장 경쟁을 비롯한 냉전대결이 최고도에 처한 상황에서 동구권 국가들이 집단으로 불참한 반쪽축제였었다. 하지만 88 서울올림픽에는 전 세계 각국이 모두 참여했다. 이 올림픽이 지나고 1989년부터 시작하여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이 집단 몰락했고, 분단된 독일은 통일을 성취했다. 이를 우연의 특이한 역사발전 정도로 평가하기에는 역사적 반등과 반전의 폭과 깊이가 너무도 컸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개입의 현상을 목도한다. 독일통일은 바로 이런 역사변혁의 물결에 능동적으로 동승한 결과이며, 급기야 지루했던 적대적 냉전구조는 세계사적 차원에서 일단 종식되고 말았다. 2. 독일통일에 기여한 독일교회의 교훈 동서독 교회는 지역단위 또 개 교회별로 자매결연을 맺고 동독교회의 예산의 거의 절반정도를 서독 측 교회가 지원했다. 17년간 총 56억 DM(약 33조원)을 지원한 셈이다. 절기만 되면 버스나 트럭에 온갖 선물꾸러미를 가득 싣고 서독 측이 동독 측을 방문했다. 이미 라디오와 TV 시청이 양 독 정부 간에 합의된 터라 동독 사람들은 서독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특히 매체들의 가전제품이나 각종 문명의 이기들에 대한 상품광고가 호기심도 자극했다. 동독 땅을 지나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통하는 고속도로를 서독측이 닦아주고도 통행료는 동독 측이 꼬박꼬박 챙기는 실리를 주기도 했다. 물론 통행의 주인공은 거의 서독인들 이었다. 어려울 때 도와주는 서독의 침묵하는 손길이 동독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 사실이다. 서독 사람들의 동독방문은 자유로웠다. 하지만 동독인들의 서독방문에는 상당한 제한이 있었다. 일례를 들면 동독에서는 연금과 생활보조를 줄이려고 노인 이산가족의 서독방문을 허용하면서 가능하면 동독에 돌아오지 말고 서독에 계속 머물러 살라는 분부까지 했다는 말을 당사자들한테 직접 들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노인들은 두고 온 식구들이 그리워 거의 다 동독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하지만 노동력이 활발한 젊은이들은 어쩌다 귀한 서독 방문기회를 얻으면 서독에 주저앉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방문 전 반드시 돌아온다는 서약을 했는데도 말이다. 1989년이 시작되면서 동독 측에도 변화의 물결이 급격하게 생겨났다. 라이프치히 시내의 복판에 있는 <니콜라이 교회>(Nicholaikirche)를 중심으로 월요일 저녁마다 촛불을 손에 들고 평화기도회를 개최했었다. 점점 인파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동독의 비밀경찰과 안보요원들의 이상한 기류를 직감하고 감시와 방해공작을 했다. 그런데 방해하면 할수록 인파가 늘었다. 충돌하면 할수록 더 늘어났다. 당의 핍박은 이들을 오히려 강한 의식화와 단결로 내몬 것이다. 이 소식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동베를린을 비롯한 큰 도시의 교회들을 중심으로 평화촛불 기도회가 확산되기 시작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엄청난 속도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촛불집회가 계속되었다. “우리가 독일민족”(Wir sind das Volk)이라는 구호로, 곧 분단 속에서도 독자적인 정체성을 지닌 민족으로 출발하더니, 나중에는 “우리는 이제 한 민족”(Wir sind ein Volk)이라는 통일지향의 민족적 일체감을 표출하는 것으로 발전되기 시작했었다. 독일주변 4강 점령국들이 나중에는 통독에 합의하는 쾌거가 있었지만, 동서독 국민들의 마음속에 이미 내적통일이 싹으로 자라나기 시작한 셈이다. 평화에의 열정이 뜻하지 않게 등장한 통일이라는 그릇을 채운 셈이다. 사실 필자는 무너진 베를린 장벽을 중심으로 인산인해를 이룬 양독 시민들이 운집한 가우데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음악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에 나오는 “기쁨의 노래”(Ode zur Freude)를 “자유의 노래”(Ode zur Freiheit)로 가사를 바꾸어 오케스트라와 합창으로 천지를 울리던 장면을 기억한다. 통일 자체도 반갑지만 통일이 가져다준 “자유”가 더 반가웠던 가보다. 1989년 12월 24일 성탄절 전야제의 광경이었다. 3. ‘평화 공존’ 살기 평화공존 시대의 선교와 교류협력에는 몇 가지 견지해야 할 것들이 있다. 먼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말은 북한에는 주체 사상적 공산체제가 지배하며, 남한에는 자유민주체제가 지배함을 부정하지 말고 인정하자는 것이다. 공존은 바로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는 바로 남한교회의 공식적인 접촉의 파트너인 <조선 그리스도교인 연맹>이 남한 교회와 성격과 구성이 “다름”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동독교회는 과거에 스스로를 사회조의 체제에 “귀속되는” 교회(church of socialism)도 아니고, 사회주의 체제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church for socialism)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사회주의 체제 “속에 몸담고” 살지만 정체성은 주님의 몸으로 산다는 (church in socialism) 자기고백을 천명했고, 서독을 비롯한 세계교회는 이를 수용했다. 북한의 <연맹>도 또는 어떤 형식의 미래교회도 이런 성격으로 이해함이 바람직하리라고 본다. 다만 남한교회에도 해당하지만, 북한교회의 경우에도 일단 교회의 모습을 띠고 사는 한 하나님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하나님 자신의 구원의 역사를 자신의 방식대로 이루어 가시리라는 확신은 공유해야 한다고 믿는다.이렇게 보면 북한을 향한 남한교회의 선교계획은 평화 공존적 틀로 바뀌어야 한다. 그것은 남한교회 식의 교파분열은 결코 북한에 유입되거나 추천될만한 틀이 아니라는 점이다. 교파교회가 아니라 북한식의 “연합교회”가 가능하며 또 바람직함 모델이다. 교파중심의 분열된 선교방식 역시 불식되어야 한다. 분단 자체도 불식의 대상인데, 분단 속의 또 다른 교파분열은 당연이 불식과 극복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사회적 현실에 적합한 선교 모델은 북한이 외형과 체제상으로 갖추고 있는 “마을별 복지체제”를 선교협력의 실천적 장으로 삼자는 것이다. 예컨대 200여개의 군마다 있는 보건소를 실제로 주민건강을 돌볼 수 있는 내실 있는 보건소로 회복시켜주는 디아코니아 선교 말이다. 여기에 탁아소, 모자보건 진료소, 유치원, 학교 등등의 복지시설의 내실을 채워주고 운영을 지원함으로서 진실로 민생중심의 선교봉사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연관 속에서 영적 보살핌과 훈련을 담당할 소위 “복지 중심의 교회”를 북한 지역과 합의하여 거부감 없이 다양하게 설치해 갈 수 있으리라 본다.또 하나 대북 선교지원의 문제이다. 적어도 지역단위별 선교지원이 기본적인 틀이라면, 지원의 기본정신은 공여자의 뜻이 아니라 수혜자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동안 모든 지원과 협력에 있어서 갑을관계 내지 주객도식은 과거의 식민주의적 방식으로 의롭지도 않고 효율성도 없음이 판명되었다. 이것이 바로 북한과의 교류협력에서 특히 중시해야할 요목이다. 동시에 지원은 그 동안의 경험에 비추어 현금이 아닌 “현물” 내지 “물품”으로 해야 옳다는 점이다. 동시에 비상의 고난 상황을 고려하여 “물고기”를 제공하는 것은 좋으나 가능하면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고 지원하는 “기술”과 “자본”의 투자가 더욱 중요하다는 점이다. 지원이 의존을 낳기 보다는 자립을 지원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지원 속에 “평화 만들기”가 실체화 되며, 통일을 부분적으로나마 부분적으로 나마 미리 맛보고 나누는 것이 된다. 곧 인도주의 차원의 교류협력은 끊임없이 지속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설령 정부 당국끼리의 부정적 대결과 갈등의 상황에서라도 인도주의 지원은 “단절 속의 연속”의 모습으로 지속되어야 한다. 이 교류협력은 상대가 북한의 백성이다. 북의 체제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에도 “체제”의 희생양인 백성을 도와 마음을 사고 결국에는 통일을 위한 협력 축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눅 25-37)에 나오듯이 “강도만난 동포”를 돕되, 이념과 교조주의에 충실한 레위사람이나 제사장처럼 “체제가 싫기 때문에 ‘골치 아파!” 하며 도피하지 말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체제갈등에도 불구하고, 또는 체제는 싫지만, “희생당한 동포의 사정이 너무도 가슴 ‘아파’!” 하며 선을 베푸는 신앙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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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6월 월례회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통일선교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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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5월 월례회 ‘저출산과 가정해체 문제를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 본고는 지난 5월 11일 한국중앙교회에서 열린 한복협 5월 월례회 중 송길원 목사가 발제한 ‘저출산에 대한 가정사역자의 한 시각’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저출산 논의를 시작하며엄청난 고통과 슬픔으로 상징되는 ‘소돔과 고모라’의 재앙이 밀어 닥치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한 사회와 국가의 붕괴’가 바로 그것이다. 조사에 의하면 한국은 합계출산율이 1970년 4.53명에서 2003년 1.19명으로 떨어지더니 출산율은 세계 꼴찌, 감소 속도는 세계 1위인 아주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또한 한 연구에 따르면 현 합계출산율(1.2명)이 계속 지속될 때 4846만 명인 한국 인구는 950년 후인 2954년에는 단 한 명도 남지 않는 국가가 된다고 한다. 그동안 숱하게 이야기해 왔지만 믿지를 않았다. 이제는 정책 입안자만이 아니다. 전 국민이 진지하게 귀 기울어야 한다. 그리고 비상구를 찾아야 한다. 한국의 저 출산 문제는 근본적으로 정책의 실패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우리 귀에 익숙한 슬로건들을 정부가 내걸면서 가족계획 사업을 시작한 것이 1962년이었고, 그 정책의 결과로 합계출산율이 2.1명 이하로 떨어진 해가 1983년이었는데도 그로부터 13년이 지난 1996년까지 출산 억제 정책이 계속 유지된 것이 그 단적인 증거이다. 그 이후엔 저출산 고령화사회 위원회까지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졌지만 예산 낭비만 컸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컸다.그렇다고 모든 책임을 정부에만 돌려댈 일도 아니다. 결혼을 굴레로, 자녀를 혹으로 여기며 개인의 자유와 자아실현만을 추구했던 이기적인 사회 풍조도 한 몫을 했다. 지금도 “하나도 버겁다”고 힘겨워 하고 차라리 잘못 키울 바에야 안 낳는 게 낫다고 포기해 버리는 이들도 많다. 이로 인해 본인과 사회가 겪게 될 부메랑 같은 재앙에 대해서는 함구한 채 물 건너 불구경하듯 팔짱만 끼고 있는 꼴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재빨리 비상구로 안내를 해야 한다. 프랑스나 스웨덴을 뛰어넘는 출산 장려 정책과 복지 시설의 확충, 가정 친화적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신혼부부에게 생활수당을 지급하는 다른 여타 나라의 주택 지원을 포함하여 다양한 결혼장려금 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지금은 비상시국이라는 사실이다.나아가 개인은 개인대로 공동체적 사고로 ‘더불어 살아야 할’ 세상을 고민해야 할 때이다. 지구가 멸망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정신만이 저 출산의 재앙을 피해갈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연극을 관람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속히 비상구를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이 세 가지 요소로 다시 돌아설 수는 없을까? 한 교회가 유아 방을 황토방으로 만들었다. 큰 감동이었다. 유배실과 같던 유아실이 치유실로 바뀐 것이다. 작은 관심이 어머니들의 마음에 파장을 일으켰다. 주일학교 학생들의 감소는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한데 이 아이들에게 글로벌 매너를 가르쳤더니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교회를 찾아왔다. 유익이 있어서다. 교회의 커리큐럼을 전면적으로 바꿀 수는 없을까? 우리는 너무 구태의연하다. 개발된 프로그램을 수 십 년 동안 울궈먹고 있다. 스마트 폰에 하루 종일 고개를 떨구고 있는 아이들의 시선을 자연으로 돌릴 수는 없을까? 아니 아이들 홀로 버려진 주일학교에 부모들이 함께 뛰어들 수는 없을까?저출산 해법에 대한 비판 하나정부산하 연구기관인 KDI(한국개발연구원)가 저출산 문제 해법으로 ‘혼전동거’와 ‘혼외출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낸 바 있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고 혼전동거와 혼외출산을 확산시키겠다는 발상이 어떻게 국책연구기관에서 나올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혼전동거를 선택하는 심리에는 복잡한 법적 절차를 생략하고 우선 급한 성적인 만족을 추구하겠다는 동기가 숨겨져 있음을 왜 모르는가? 만약 KDI식 해법을 도입한다면, 대한민국은 ‘동거 공화국’이 될 것이다. 동거 실험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신비로운 성의 존엄성을 부정하는 행위이다. 동거가 건강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완충지대인양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동거가 만연한 서구에서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되었다. 영국의 경우 동거 커플이 갈라설 확률은 결혼한 부부보다 3~4배가 된다고 한다. 또한 동거 커플이 자녀를 많이 낳을 것이란 기대도 근거가 부족하다. 서유럽과 북유럽 국가들의 경우 혼외출산 비중이 40~60%에 이르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걸지만, 그것은 건전한 가정생활의 파괴현상을 보여줄 뿐이다.교회가 해답을 내놓지 않으면 이러 따위의 일을 여전히 반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레임의 전환-저출산을 다출산으로모든 시작은 ‘이름’으로부터 시작된다. 주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기도도 그렇다. 이름부터 부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어지는 게 있다.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하나님은 천지창조에 인간을 참여시키면서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했다. 이보다 더 감격스런 일이 어디 있을까? 그래서 이름은 존재 그 자체다. 어떻게 불리어 지느냐가 곧 미래가 된다.강화도를 ‘유배지’로 말하는 순간 버려진 섬이 된다. 하지만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 말하는 순간 강화도는 역사 유적지가 된다. 관광지가 되고 유물을 간직한 보물섬이 된다. 이름 지어진 틀(frame)이 성격을 규정한다. 또한 사람들은 정해진 틀을 통해 사건을 해석한다. 네모 창을 통해 달을 보면 달조차도 네모로 보인다. 동그란 창을 통해 하늘을 쳐다본다. 하늘은 푸른 공이 된다.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존재보다는 프레임에 의해 결정된다.‘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the economy, stupid!)’ 이는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대선 슬로건이었다. 클린턴은 이 한마디로 대선 국면을 경제 문제로 전환시켰다. 이슈를 선점했다. 이래서 선거는 프레임 싸움이다. 정책도 마찬가지다.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3대 과제는 ‘일자리 창출, 4차 산업, 저출산 해소’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대변인은 이렇게 발표했다. “초저출산율을 탈피하기 위해 사회경제적 구조와 인식, 문화가 함께 바뀌어야 하는 총체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이를 위해 “자녀 양육의 국가 책임 구현과 결혼·출생 양육에 친화적인 사회 제도로의 변화를 이행하는 데 있어서 전 국가적 총력 대응을 해나가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이 국민들에게 먹혀들까.교회의 과제: 교회 주도형 공공보육“지금까지의 저출산 대책들은 실패했다, 충분하지 못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대통령은 정직했다. 에둘러 말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의 말이 아니라도 국민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실패한 것 맞다. 출산 축하금 몇 푼 준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을. 출산휴가가 늘어난다고 해서 그 휴가를 얻기 위해 아이를 낳지도 않는다. 국민은 영리하다. 선심성 정책은 감동을 못 준다. 감동이 없으니 움직일 리 없다. 구호도 아니다. 피부에 와 닿는 정책이 필요했다.대한민국은 2026년이 되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 2031년이 되면 한국 총인구가 줄어들게 된다. 이미 많은 경고가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고 모른 척 했다.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다. 국가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야기도 물 건너 불구경이었다.답은 간단했다. 출산이 아닌 보육이었다. 맞벌이 가구 자녀들이 ‘학원 뺑뺑이’로 내몰리고 있다. 저학년 자녀를 돌보기 위해 직장을 그만두는 엄마들은 1만50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열악한 방과 후 돌봄 제도가 젊은 엄마들을 경단녀(경력단절여성)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최근 5년 이내 한 해 평균 퇴사자가 8천명 수준으로 보도되었다. 이러니 누가 기저귀 몇 장 더 나눠준다고 아이를 출산하려 하겠는가?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위원회가 이를 간파했다는 점이다. ‘보육공공성 강화’가 바로 그것이다. 위원회는 초등학교 저학년의 ‘돌봄 절벽’ 문제 해소를 위해선 초등 돌봄과 방과 후 학교 연계를 강화하고 학교와 지역사회가 협업하는 돌봄 모델 마련과 확산을 위한 논의도 이어갈 방침임을 밝혔다. 이와 관련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민청원을 내 놓았다. 그 요지가 이렇다.“취학 전 영유아를 가진 젊은 부모들은 공공보육시설 확충을 간절하게 바란다. 하지만 늘어난 국가부채와 낮아진 경제성장률로 인해 재정 여력이 소진된 탓에 정부는 짧은 시간에 공공보육시설을 많이 짓기가 어렵다. 부지를 마련하고 건물을 지으려면 많은 돈과 시간이 든다. 학생 수 감소에 따라 생기는 초등학교의 여유 공간 일부를, 다시 말해서 지금 특활공간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교실의 일부를 공공보육시설로 활용할 것을 청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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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5월 월례회 ‘저출산과 가정해체 문제를 한국교회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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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 기윤실 바른가치 세미나 ‘미투와 기독교’
- 본고는 기윤실이 지난 4월 23일 개최한 바른가치 세미나 ‘미투와 기독교’ 중 최순양 교수(이화여대)가 발제한 ‘#Me Too, 기독교의 시선으로 보다(기독교의 입장에서 살펴본 미투운동)’의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 편집자 주 중층화된 여성과 남성의 관계 ‘평신도와 목회자’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인식이 왜곡되고 비하하거나 대상화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할 때, 한국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여성성폭력의 사례들은 그 층위가 좀 더 복잡해진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혐오적 생각들에 더하여져서 목회자라고 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약자인 평신도 여성에게 성폭력을 ‘종교’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1) 교회 여성의 이중적 억압 현실교회 내에 존재하는 신앙적이고 신학적 기반들이 성폭력을 더 은폐하면서 한 편으로는 강화시키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남성목회자들은 자신이 목회자라고 하는 권위를 근거로 하여 여성들을 이중으로 대상화시키고 있다.(여성이라는 이유와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평신도라는 두가지 변수를 이용하고 있다.) 교회 여성들이 주로 당하는 성폭력은 목회자들로부터 행해지는 데, 이 경우 교회의 신조나 믿음체계, 그리고 여성들의 신앙 교육 등을 악용해서 발생할 때가 많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피해자의 성적 결정권이 교묘하게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성역할과 성적 차이보다도 더 교회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이분법적 종속적 관계로 규정하면서, 그 안에서 남성들은 여성들의 ‘머리’이며 지도력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 게다가 그러한 남성들의 지도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게다가 남성은 지도력으로 여성은 그 지도력에 순종하고 종속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부합된다고 하는 잠재적 동의가 존재한다.남성 목회자들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범한 성폭력의 형태는 대개의 경우 목회적 업무의 일환으로 행해지게 된다. 심방을 가서, 위로해주기 위해서라고 미화한다거나, 본인의 거룩함이 이어지기 위해서, 신체적 친밀감은 필수적인 것으로 해야 된다는 둥, 혹은 아버지가 딸을 돌보는 돌봄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여성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성폭행을 경험하면서도 하나님을 대리하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일반 남성을 대할 때처럼 방어적일 수 없고, 즉각적인 거부의사를 표현하기가 더 어렵다는 현실적 자각의식이 있어야 한다.평신도들이 남성 목회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심리적 상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지고 있는 그것과 같지 않다. 목회자에 대해서 자신을 매우 약하고 의존적 존재로 정의내릴 때가 많다. 목회자가 하는 말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의문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신앙이 깊고, 교회생활을 많이 한 여성 평신도들에게 더 강화되어 나타난다. 실제로 일반남자가 아니라 남성 ‘목회자’이기 때문에 폭행을 당하더라도 저항할 수 없이 무력해졌다는 경험담을 토로하는 피해자들이 있었다.더군다나 목회자가 성경구절을 인용한다거나 신앙적 조언을 하면서 성폭행을 강요할 경우 그것이 성폭행이라고 하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심한 경우, 남성목회자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그냥 남자가 아니라 ‘목사님’이기 때문이다.)실제로, 어떤 목회자는 모세가 구스 여인을 선택한 것 같이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이라면서 세 명의 여신도를 자신의 아파트로 불러 성행위를 하고 안마를 요구했다.(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도 바쳐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피해자인 여신도는 그 상황이 성과 연관되어 있음을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성폭행을 당했고, 자신의 신학적 체계 안에서 하나님을 부인할 수 없었기에 목회자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라이즈업 대표직을 했던 목사의 이야기나 성폭행 양상을 살펴보면, 여성들에게 성폭행을 가하면서도 그 폭력을 ‘목사’이자 권력을 가진 이로서 약자인 여성이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들로 포장을 하거나 협박을 하면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혹은 그러한 목사(교수)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신앙이 좋은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치면서 감행하였다.이렇듯이 교회 내에서는 남성 대 여성의 이분법적 구조에 덧붙여서 목사와 평신도라고 하는 권력의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구조가 있다. 사회에서의 여성보다 교회내의 여성들은 더 중첩된 이중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셈이다.2) 교회 내 존재하는 여성에 대한 ‘정형화’된 성역할교회에서 바람직한 여성신도의 모습으로 제시하는 이상적인 여성상이 존재하는 데, 그러한 모습에 대한 내면화가 정작 여신도들이 목회자로부터 성적 폭력을 당했을 때에도 그것을 부당하다거나, 저항해야 하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이상적인 여성상의 모습은 봉사하고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다. 따라서 목회자가 무엇을 요구하든 –심지어 성폭력을 행사할지라도- 그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저항하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대처능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두 번째 여성상은 자신의 고난을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는 여성상이다. 성폭행을 당하고서도 자신이 감내하고 목회자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겠다, 목회자를 고소하지 않겠다고 하는 대응을 하게 되는 것도 여성은 고난을 감수해야 하며, 그것이 여성의 신앙적 미덕이라고 교육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제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래도 우리교회 목사님이고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존경받고 쓰임 받는 목사님이니까 치유되시길 기도해드릴 뿐 제가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그 다음으로 우리가 문제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은 여성은 유혹적이고, 남성보다 본능적이며 악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상이다. 창조설화에서부터 하와는 뱀에게 유혹을 당해서 아담까지 타락시키게 만든 원인으로 투영되어서 비추어졌다. 사마리아 여인이나 막달라 마리아도 성서에서는 유혹적이고 부정적이고 죄가 많은 여성으로 해석되어왔다. 실제로, J목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여신도를(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된 음성파일을 공개하였다) 일부러 그 목사를 유혹해서 넘어뜨리려고 녹음기까지 준비한 신천지 교인이라고까지 공격하는 일이 있었다.3) 남성성과 신성함- 하나님의 대리자, 남성 목사기독교 역사 속에서 성서는 많은 경우, 여성의 종속과 순종을 강요하기 위해 읽혀져 왔다. 성서적 인간이해가 남성의 경험이나 관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성서의 주요 이야기들을 이끌어가는 주인공들은 남성들이고, 여성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남성의 관점에서 읽혀진 여성이야기가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구약성서의 여성들은 ‘여성은 남성보다 못하다.’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다’ 혹은 ‘여성은 자손을 낳기 위한 성적 도구이다’ 등의 가치관을 형성하게 한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여 바로 왕의 아내로 삼게 하는 이야기(창 12장), 롯이 소돔 시민들로부터 천사들을 보호하기 위해 무리배에게 자기 딸을 겁탈하도록 내어 놓은 이야기(창 19장), 레위인의 첩이야기 –남편으로부터 방치되어 베냐민 사람들에게 겁탈당하고 문밖에서 비참하게 죽는다(삿19장).– 혹은 입다가 전쟁에서 돌아와 처음 만나는 사람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고서 그 서원대로 딸의 목숨을 앗아가게 되는 이야기, 그리고 아버지의 대를 잇게 한다고 자매가 아버지의 침소에 드는 이야기 등등 여성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조차 존중되지 않은 이야기가 성서에는 너무도 많이 등장한다. 또한 이러한 성서의 여성이해는 피해자 여성들이 자신에 대한 성폭력의 경험을 바르게 해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마비시킨다. 많은 경우,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성서를 읽으면서 그 속에서 답을 찾기 보다는 더 좌절하거나 우울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여성의 성폭력 경험에서 문제시 되는 신학적 메시지 중에는 기독교 전통 속에서 오랫동안 내면화되어 온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를 들 수가 있다. 기독교 교육 속에 익숙해있던 여성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나 남편, 혹은 남성 목회자와 더 쉽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다. 따라서 성폭력 상황에서도 여성은 하나님이 남편이나 남성 목회자의 편에 서서 특별한 방식으로 역사하신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남성 이미지는 피해자 여성들에게 묘한 죄의식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예를 들어 성폭력 피해를 받은 일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신앙이 부족하거나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심판을 주신 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이 남성이라는 것과 남성목회자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진다고 하는 생각은 목회자의 성폭력을 폭력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조차 목회자가 평신도에게 줄 수 있는 수혜라고 착각하게 만들어서, 목회자를 범죄자로 인식하지 않게 만든다.성폭력으로 기소된 어느 목회자의 경우도 피해자인 20대 여성이 “그 동안 목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죄라고 생각하게끔 훈련을 받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목사님이 대신한다고 믿었다(보이는 목사님을 하나님처럼 믿고 섬겼다).”라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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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 기윤실 바른가치 세미나 ‘미투와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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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 ‘한국교회 지난 시대의 선교와 통계, 앞으로의 전망’
- 본고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가 지난 4월 13일 성락성결교회에서 개최한 4월 월례회 ‘한국교회 선교의 현황과 방향’ 중 한정국 선교사가 발제한 ‘한국교회 지난 시대의 선교와 통계, 앞으로의 전망’ 중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이보다 더 드라마틱한 사건이 또 있을까?”할 정도로 한국선교는 지난 38년간 엄청난 발전을 해왔다. 1980년 우리나라에서 파송된 선교사 수가 100명을 겨우 넘었었는데, 38년이 지난 2017년 말 27,436명이 되어 275배의 증가를 기록하였다. 1980년 초에 100명이 1990년에 1,000명을 넘어 2000년에는 11,000명 그리고 2010년에 22,000명으로 거침없이 증가하였다. 한국교회는 세계 모든 나라 교회에 비하여 선교에 열린 교회로서, AD 1913년에 첫 해외선교사 박태로 목사를 중국 산동성에 파송하였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급증한 한국 선교사는 양적으로 미국 다음으로 많으나, 교회수/교인수에 비교하면 세계 제일이다. 이것은 랄프 윈터 박사가 소천 2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필자에게 한 말이다. 필자는 세계 많은 나라 교회를 방문하여 선교하는 교회를 많이 관찰해왔다. 그러나 한국교회만큼 선교에 열심이고, 선교사에게 너그러운 교회를 본 적이 없다. 그런 한국교회가 지난 15년간 깊은 몸살을 앓으면서 신음하고 있다. Ⅰ. 한국교회와 한국선교 한국선교의 모판은 한국교회이며, 한국선교는 한국교회와 너무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간 은혜로 받아 오기만 했던 한국선교계가 한국교회에 보답을 할 때가 왔다. 저는 한국선교계가 한국교회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본다.1. 선교적인 관점에서 한국교회 성장을 새롭게 진단하고 처방을 내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GP선교회 이사이며, 중국선교사 출신인 김대영 목사는 “한국선교사들이 선교지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한국목회자들에게 제공하면 목회에 돌파구가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2. 한국교회는 Reformed Theology(종교개혁 신학)에 너무 함몰되어 있다. 제2의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아우성이다. 그래서 다른 교단과 다른 지도자를 자신의 개혁 잣대로 쉽게 정죄하고, 이것은 SNS를 통해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교회 내에 큰 문제가 난 줄 알고 교회를 걱정하는 시대가 되었다. AD 1517년 당시 모든 유럽 사람이 예수를 부르는 시대에는 썩어빠진 교계를 향해 종교개혁이 필요했다. 그 때는 유럽에 이교도가 없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수의 이교도에 한국교회가 둘러싸였는데, 소수의 한국교회가 서로 옳다며 상대를 정죄하기에 바쁘다. 물론 교회는 계속 개혁(갱신)할 필요가 있다. 저는 요즘에는 개혁보다 변혁이 더 필요한 시대적 상황이라고 본다. 그래서 Transforming Theology (변혁 신학)가 더 연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교회가 단합하여 세상을 더 변화시켜야 할 때라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민족사의 수많은 위기 속에서 한국사회를 변혁시킨 역동적 교회였다. 그러나 급속한 교회 성장 후 이제는 세상을 변혁시키는 관심보다 내부 문제 제기에 너무 힘을 쏟고 있다. 너무 지나친 이단 논쟁으로 풍비박산되는 한국교회가 너무도 안타깝다. 3. 한 국가의 기독교는 생성, 발전, 부흥 그리고 쇠퇴기를 경험하는 사이클이 대체로 존재한다. 유럽과 미국을 바라봐도 그렇다. 한국교회는 100년이 지난 1985년에 좀 더 심각한 한국교회 미래에 대한 고민을 했어야 했다. 더불어 급속한 교회성장은 급속한 교회 쇠퇴를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이 있음을 알고 미리 대비를 했어야 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에 도취해 그만 실수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는 더 늦기 전에 반전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본다. 교회사에서도 부흥이 오는 새로운 반전의 경우가 있기도 하다. 1960년대 미국사회의 혼란과 교회의 대처 미흡에 새롭게 나타난 아주사와 애즈버리 대학교의 부흥 그리고 Jesus People Movement가 그 일례일 것이다. 그리고 마틴 킹 목사의 열매를 보게 되었다. 이로 인해 미국사회는 흑인 인권운동의 신장 그리고 교회는 선교의 괄목할 만한 지도력으로 세계선교계를 리드하게 되었다.Ⅱ. 한국 선교계의 자구책 노력 한국선교는 현재 약 28,000 명의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이루었다. 당분간 이 추세는 계속 되겠으나 우리는 다음의 노력으로 미래를 대비하고 개척하여야겠다. 1. 이제 질적 성숙에 더 강조를 양적성장을 배제할 순 없으나 질적 성숙을 가속화 시켜야 한국선교의 미래가 보일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매년 KWMA 총회에 발표되는 양적 통계를 지양하고, 질적인 성숙 상황을 보고하는 식으로 개선되어야 한다. 2. 자신학과 자선교학을 개발하여야한국교회는 그간 서구 기독교를 모방 추적 성장해왔고 상당한 효과도 보았다. 그러나 그런 추세로 달리다 보니 서구 기독교의 쇠퇴요인도 수입하여 적용하는 우도 범하고 함께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한국교회에 건전한 자신학과 자선교학이 없거나 부족함을 깨닫게 되었다. 따라서 한국선교계는 선교학 관점에서 본 자신학으로서의 한국 신학과 자선교학으로서의 한국 선교학을 정립하여 한국교회에 이바지해야 한다.3. RCOWE (Regional Consultation on World Evangelization; 지역별 선교 전략회의)세계와 한국선교계는 지난 30년간 주로 한 곳에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회의 포멧을 보여 왔으나, 그러나 이제는 한국선교계가 선교지역을 18개 권역으로 전략적으로 분류, 현지로 찾아가 선교전략을 토론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특정 해에 하는 것이 아닌 상시적으로 필요에 따라 개최함이 좋은 것으로 사료 되며, 일본선교 Network가 좋은 선례로 보여주고 있다. 또한 한국의 최초 타문화권 선교사 박태로 목사가 중국 산동성에 도착한 100년을 기점으로 2013년 5월 6일부터 RCOWE를 가동하게 되었다. 4. 창조적 선교 시스템을 개척서구에는 은퇴 시스템이 있다. 그러나 한국선교계는 10년 전 한국선교지도자포럼에서 Memorandum형식이지만 은퇴 없이 선교지에서 일하는 한국선교의 창조적 시스템을 결의한 바 있다. 그리고 각 선교지에서 한국형 양화진 묘를 마련하자고도 하였다. 안식년도 본국사역으로 대체하여 시도하자는 것도 한국선교계는 15년 전 연구와 토론을 거쳐 본국 지도자의 동의를 통해 결의한 바 있다. 선교사는 본국사역시 선교지에서 얻은 새로운 인사이트를 한국목회자들과 공유하고, 목회의 더 깊은 차원을 한국 목사님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다.Ⅲ. 결어한국교회는 한국선교의 산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선교계가 방황하는 한국교회를 위해 새로운 길을 제시할 때가 되었다. 모든 한국교회 통계가 암울한 이때 한국선교가 계속 발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한국교회의 기도와 물질 지원 덕분이다. 이제 한국선교는 서구 주도 선교시대에서 2/3세계 주도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새로운 향도의 구실을 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서구선교의 면류관이고 멋진 열매이다. 비록 최근에 많은 시름에 쌍여 있지만, 한국 개신교 133년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선교행전은 우리에게 21세기 선교의 큰 길라잡이가 되고 있다. 서구 중심의 선교에서 비서구 선교가 괄목할 만한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이때에 한국선교는 서구선교의 자랑이자 비서구선교계의 좋은 벤치마킹 모델이 되고 있다. 또한 한국선교가 한국교회의 현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마지막 등불로서 기여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다시 한번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 서구교회와 비서구교회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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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기획
- 학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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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 ‘한국교회 지난 시대의 선교와 통계, 앞으로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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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동아시아 역사와 기독교의 역할 - 3.1운동과 기독교
- 본고는 지난 3월 9일 종교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3월 월례회에서 이만열 교수가 발제한 ‘동아시아 역사와 기독교의 역할’ 중 중요부분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동아시아의 기독교 전통동아시아 국가 중 중국과 일본이 기독교와 관련을 맺는 것은 한국보다 훨씬 이르다. 중국은 당(唐, 618~907) 제국 초기(635)에 페르시아로부터 동방기독교의 일파인 경교(景敎)를 받아들임으로 기독교와 접하게 되었다. 경교는 그 뒤 경정(景淨)이라는 경교승에 의해 781년 <대진경교유행중국비>를 세워 경교의 교리와, 경교가 중국에 유행하게 된 내력 등을 자세히 적어 놓았다. 천주교는 1581년 마테오리치(利瑪竇)의 중국 도착으로 본격화되어 명청(明淸)대를 거쳐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개신교는 1842년 남경조약에 의해 문호개방이 이뤄지면서 본격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1872년 요동반도 영구 우장에 도착한 로스(John Ross 羅約翰)에 의해 1882년 3월과 5월에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순 한글로 번역 출판되어 한국 복음화에 큰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일본은 유럽의 ‘반동종교개혁’의 여파로 자비엘(Francisco de Xavier)이 1549년 일본에 천주교를 전파시킨 이후, 임진왜란 때(1592)는 아우구스티누스라는 영세명을 가진 고니시(小西行長)이 천주교 부대를 끌고 한국을 침략했다. 그 뒤 1853년 일본이 본격적으로 미국과 서양에 개항함으로 개신교도 들어오게 되었다. 뒷날 한국에 선교사로 오게 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도 일본에서 선교하던 미국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았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조합교회는 특히 침략세력에 편승하여 한국기독교인들의 신사참배반대운동을 설득, 일본 정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다. 3.1운동과 기독교 3.1운동에서 기독교는 천도교 불교와 제휴하여 이 운동을 선도했다. 그러나 기독교계가 당시 선도적으로 참여했음에도 역사의식의 결여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 나아가 3.1운동 후에 훼절한 기독교 인사들 때문에 기독교의 역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3.1운동은 준비·점화 단계에서 전국적인 만세운동 단계, 그리고 새로운 방향 설정을 모색하는 '정리 단계' 혹은 국가건립 단계로 넘어갔다. 우선 준비(점화) 단계에서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은 거사일시와 장소를 협의하고 거사에 따른 업무도 분담했는데, 독립선언서의 기초와 인쇄는 천도교측에서 맡고, 지방 분송은 기독교측과 협력키로 했고, 독립선언서를 일본정부와 귀족원에 전달하는 업무는 천도교 측이, 미국 대통령과 파리 평화회의에 전달하는 일은 기독교측이 맡았다. 독립선언서명자를 모집키로 하여 16명의 기독교인이 서명했는데 5명이 더 서명자로 지원했으나 시간이 늦어 취소되었다. 점화단계의 48인 중 24명이 기독교인이다. 천도교와의 합작에 앞서 기독교계는 적어도 세 갈래(서북 장로교, 북감과 남감, 2.8독립선언에서 보이는 재동경Y 등)로 독립운동을 준비하고 있었고, 첫날 봉화를 든 것은 기독교계였다. 그러나 중앙조직이 약한 기독교계가 천도교로부터 5천원을 빌렸지만, 5천원의 용도는 대부분 여행경비(중국 일본 만주와 국내 3,170원, 수감자 가족생계비 640원, 독립선언서 발송비 250, 기타 경비 80원)에 사용되었다. 지방화·전국화 단계의 기독교의 역할은 주목할 만하다. 교회나 기독교계 학교가 있으면 대부분 기독교인들 중심이었다. 예를 들어 3월 1일 첫날 서울 외의 8곳이 대부분 기독교계 중심이었고, 의주와 평양은 목사들이 주동하였다. 천도교측과의 합작도 보이는데, 운동의 주동세력이 뚜렷한 지역이 311개로 나타나는데, 기독교(78지역)·천도교(66지역) 그리고 양교 합작지역이 42개 지역이다. 전국화 단계에서 기독교인의 참여정도와 관련, 체포·투옥자를 통해서만 숫자를 파악할 수 있다. 6월 30일까지 투옥자 9,458명 가운데 기독교인이 2,087명으로 22%를 차지하였고, 12월 말까지 복역자 19,525명 가운데 기독교인은 3,373명으로 17%이고, 천도교인은 2,297명으로 11%였다. 이 통계는 바로 기독교인의 운동량을 계량화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방 자료를 보면 기독교인 여부가 빠진 경우가 많다. 이 통계에서 기독교인의 역할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때 한국의 인구가 1,600만 명 정도였는데, 기독교인은 1918년 현재 20만(장: 160,913, 북감:41,044, 남감:10,740, 계:212,703)을 상회하여 한국 인구의 1.3〜1.5%를 차지하였다. 거기에 비해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의 운동량은, 주동세력면에서 25〜38%, 체포·투옥면에서 17〜22%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3.1운동에서 기독교인의 운동량은 대략 20〜30%로 계량화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당시 1.3〜1.5%의 기독교 인구가 3.1운동에서 행한 역할은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기독교도의 참여가 이렇게 적극적이고 광범위하였기 때문에 그 결과 일제의 박해도 다른 종교에 비해 컸다. 제암리교회당에서는 비신자를 포함하여 한꺼번에 29명이 희생되었다. 1919년 3.1운동으로 한 달이나 늦게(10월 4일 개회) 그것도 그 해 총회장인 김선두 목사가 3.1운동으로 '미참'(未參)한 상황에서 열린 장로교 제8회 총회에서는, 사살·타살 52명(각 노회 보고), 체포된 신자 3,804명(이 가운데 목사·장로 134명: 장로교 전체 목사·장로 1,024명 가운데 13%에 해당)이나 되었다. 총회에 보고한 노회의 보고는 '대한(조선)독립운동' 혹은 '독립사건'으로 표현하고 있다.그러나 운동이 전국화되는 단계에서 기독교가 갖는 문제 또한 없지 않았다. 3월 1일 선언 당일 기독교 대표 16명 가운데 4명이 불참하였는데, 그 이유가 납득된다 하더라도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또 당일 서울의 선언발표 장소를 명월관[泰和館]으로 옮긴 것이 선교사 베커(Becker)의 제의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도 기독교 운동의 한계와 관련된다고 할 것이다. 일제가 폭력으로 나오는 데도 교단적 차원의 대응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제암리의 만행을 세계에 알려 그 여론을 환기하는 데는 선교사 스코필드(Scofield) 등의 노력이 있었다. 끝으로 당시 장로교·감리교 연합기관지인〈기독신보〉등의 보도 태도는 일제의 언론 검열때문이었다고는 하나 그 대응이 대단히 미약했다고 지적된다.기독교인들의 3.1운동 참여 이유 이처럼 기독교가 민족독립운동에 적극 참여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기독교의 민족관이나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교육이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한말이래 기독교인들의 민족의식·민족운동의 전통을 적극 참여의 배경으로 지적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대로 아시아·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는 기독교 국가의 침략을 당하였으나, 한국은 일본이라는 비기독교국가에 의해 침략을 당함으로써 기독교 이념에 입각한 독립운동이 가능했다. 한국의 기독교 민족운동은 한말부터 시작되었는데, 을사늑약이 이뤄진 1905〜1910년 사이의 기독교인들의 민족운동으로 장인환의 스티븐스 암살, 전덕기의 을사오적 처단 미수, 안중근(가톨릭)·우덕순(기독교)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이재명의 이완용 암살미수 등에서 극명하게 나타났다. 또 기독교계의 교단 조직화가 이 운동에 조직적으로 참여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점은 앞에서 간단하게 지적했다. 또 일제가 강점한 후 기독교회의 예배를 방해하고 설교에 제재를 가하는 등 종교적인 자유마저 박탈하려 했다. 특히 금주·금연에 관한 설교나 '다윗과 골리앗'을 주제로 한 강론도 감시의 대상이 되었다. 거기에다 강점한 지 얼마 안되어 벌인 '105인 사건'은 기독교 지도자들을 노골적으로 탄압하려 한 사건이었다. 1915년에는 사립학교법을 개정하고 포교법을 제정하여 기독교학교의 성경공부와 채플 등을 금지하고 선교를 방해하였다. 이것은 한국인에 대한 생존권을 위협한 데다 이제는 신앙의 자유마저 빼앗아 버리려는 것이었다. 이제 기독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도 궐기치 않을 수 없었다.끝으로 우리는 당시 3.1운동에 참여한 기독교인들의 신앙적인 행동에서 그들의 신앙과 민족사랑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것을 간과할 수 없다. 이미 모세·삼손·다윗·다니엘의 사적 등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우리 민족의 역사와 대비하고 있던 한국인들은, 3.1운동의 만세시위가 한창일 때, 기독교회가 작성한〈독립단 통고문〉을 뿌렸다. 내용은, ① 매일 3시에 기도하고, ② 주일은 금식하고, ③ 매일 성경을 읽는데, 월요일-사 10(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 화요일-렘 12(유다가 멸망한 원인에 대한 설명,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기 때문'), 수요일-신 28(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민족에게 침략받아 고통받게 되리라는 예언), 목요일-약 5(고난당하는 기독교인들에게 기도와 인내할 것을 권면), 금요일-사 59(죄지은 백성이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신다는 예언), 그리고 토요일-롬 8(성령이 주시는 생명, '장차 나타날 영광에 비하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다') 등이었다. 여기서 민족운동을, 신앙고백 위에서, 신앙운동과 함께 진행시킨, 민족과 신앙을 일치시킨 것을 엿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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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동아시아 역사와 기독교의 역할 - 3.1운동과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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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2월 월례회 ‘한국교회가 힘써서 하여야 할 일들은?’
- 본고는 지난 2월 9일 영동교회에서 열린 한복협 2월 월례회 ‘한국교회가 힘써서 하여야 할 일들은?’에서 정현구 목사가 발제한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I. 온전한 복음의 재발견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회복해야 할 것은 온전한 복음이다. 한국교회가 시간이 지날수록 복음의 깊고 온전한 내용을 총체적으로 잘 이해하고 전해야 함에도, 도리어 복음을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심지어 왜곡하기도 했다. 그 결과 교회는 한편 한국사회 속에서 깊이가 없는 종교로 각인되고, 이단들이 생겨나는 토양을 만들었고, 교단분열을 야기시켰다.복음에 대한 기복주의적 이해는 시대의 우상을 간파하기보다는 도리어 그것에 굴복하게 만들었고, 구원을 개인구원과 인간구원으로 축소 해석함으로 사회 변화에 대한 책임과 자연 생태계에 대한 책임을 간과하게 되었다. 그 결과 복음의 세상 변혁적 비전과 역동성을 상실하게 만들었고, 교회는 마치 이스라엘 왕의 비위를 맞추었던 궁중예언자처럼 되었고, 교회는 변화되어야 할 세상을 도리어 유지하는 종교가 되고 말았다.복음이 보여주는 하나님 나라의 대안, 대조적 비전을 잃어버림으로 복음이 좌우의 진영논리를 넘어서지 못하고 도리어 양 진영의 우산 속으로 초라하게 들어가 갇혀 버리는 안타까움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복음을 단순한 인간화나 휴머니즘으로 왜곡하는 자유주의적 이해는 십자가 대속의 진리를 약화시키기도 했다.세상의 여러 잡음과 소음의 소리는 더 커지게 될 것이다. 교회가 복음의 원음을 회복하고, 그 원음이 주는 감격과 감동을 경험하게 해주지 못한다면 소망을 찾기 어렵다. 복음의 온전하고 총체적 이해를 회복하고, 그것을 강단에서 증거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개혁도 온전한 복음의 발견에서 이루어졌듯이, 지금 교회의 회복도 복음의 재발견에서 이루어질 것이다.II. 교회의 신뢰 회복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교회의 신뢰도 회복이다. 교회의 신뢰도 하락과 복음에 대한 불완전한 혹은 그릇된 이해는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교회에서 전하는 복음 메시지가 얕은 것이 아니라, 세상의 수준을 뛰어 넘는 깊고 높은 차원임을 보여줘야 한다.세상에서 일어나는 여러 이슈들에 대해 교회는 설교나 강의를 통해서 기독교적 입장을 직·간접적으로 밝히지 않을 수 없다. 이때 세상보다 더 성숙한 관점 보여줄 수 있다면, 적어도 상식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교회는 신뢰를 잃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란 이름으로 전해지는 균형을 잃어버린, 피상적인, 얄팍한, 독선적인 주장들은 복음의 수준을 떨어뜨리게 했다. 목회자들이 복음과 성경적 관점에서 시대의 이슈들을 균형 있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여러 수단을 통해 돕는 것이 필요하고, 시대의 여러 이슈에 대해서 다수의 교회가 성숙한 견해와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교회가 세상보다 높고 성숙한 견해를 표명할 뿐 아니라, 더 고상한 윤리적 삶을 보여줌으로 신뢰도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도를 잃어버리면 작은 전투들에서 이긴다고 할지라도 결국 큰 전쟁에서는 질 수 밖에 없다. 교회라고 문제가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런 문제를 만날 때마다 세상과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면, 그런 위기들은 오히려 교회의 참 모습을 세상에 보여줌으로 교회를 살리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세습, 설교표절, 성적 문제, 재정 문제들에 대한 교회의 수준 낮은 반응들은 그런 기회들은 대부분 위기가 되게 만들었다.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은 한 순간이지만,그것을 다시 끌어 올리는 것이 매우 힘들고 긴 시간을 요구한다. 지속적으로 삶의 어려 문제에 대해 복음적으로 대응하고, 더 높은 견해와 성숙한 삶을 보여줌으로 신뢰도를 다시 회복하도록 노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III. 왜곡된 신앙의 관습의 갱신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교회 안에 고착된 비성경적 행태들을 찾아내고 고치는 것이다.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부르고, 십일조와 헌금을 복을 받기 위한 하나님을 향한 투자(?)로 가르치고, 술·담배하지 않는 것이 곧 좋은 신앙인의 표지처럼 이해되고, 예배는 주일 예배당에서 드리는 것으로 축소되고, 제자가 된다는 것이 교회 안의 좋은 구역장이 되는 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 등의 교회생활에 관한 잘못된 개념과 습관이 매우 뿌리 깊게 박혀 있다.이런 그릇된 관습들은 신앙생활을 주일과 교회당이란 종교적 시간과 공간영역으로 국한시키고, 영적 영역과 세속적 영역을 구분짓는 복음의 이원론적 이해에서 나왔다. 그 결과 교회는 점점 삶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되고, 신앙은 사적 종교생활의 한 영역에 갇히게 되고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게 되었다.복음이 종교가 아니라 삶과 세계를 포괄하는 세계관임을 알게 해줌으로 교회 문화에 대한 전반적 갱신이 필요하다.IV. 교회 지도자의 각성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교회 지도자의 각성이다. 교회의 문제의 핵심은 결국 교회 지도자다. 지도자를 바로 세우지 못하면 교회는 세워질 수 없다. 교회의 사활은 어떤 지도자를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그런데 교회 내의 지도자인 장로와 집사들이 바로 세워지고 있는가? 그들이 그 직분의 의미를 얼마나 바로 이해하고 있는가? 직분을 명예나 권세로 생각하거나, 하나의 호칭 정도로 생각하지 않는가? 직분자를 세울 때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과 목사와 장로간의 갈등의 구조는 너무나 해묵은 숙제다. 직분의 직임이 무엇인지를 성경과 종교개혁을 통해서 회복된 교회 직제를 통해서 바르게 가르쳐야 하고 그릇된 관행과 제도는 과감히 고쳐야 한다. 건강한 정관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무엇보다 목사를 바로 세우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지금 교회의 문제의 핵심에 바로 목사가 있다. 초대교회에는 목사가 된다는 것은 목숨을 각오하는 일이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너무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목사가 되는 것에 대해 경건한 두려움을 별로 갖지 않는다. 목사의 직임과 책임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중대형교회 목사들의 깊은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바른 목회자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기에 신학교를 세웠지만 신학교가 오히려 질낮는 목회자를 양산함으로 문제의 온상이 되고 있다. 무자격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 죄악이라면, 무자격 목회자가 양산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다. 명분은 목회자 양성이지만 실제 목적은 학교 유지와 학위장사로 학교를 키우는 것이 되어 버린 신학교가 실제로 많다. 좋은 목회자를 바로 양성하지 못하면 오늘날교회 문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다. 신학교 정비와 목회자 수의 축소와 목회자 후보생의 철저한 교육과 양육에 한국교회가 우선적으로 힘써야 한다.그런데 이 문제가 쉽지 않다. 신학교 문제 뒤에는 악질적인 교단분열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원죄와 같은 교단분열이 해결되지 않으면 신학교 문제도 해결되지 않고, 신학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좋은 목회자 양산이 막힘으로 교회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악순환 고리에 걸려 있다. 교회와 교단이 주도적으로 이 문제를 풀어가지 않으면, 결국 세상과 시장이 이 문제에 손대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뿌리 깊은 문제가 무엇인지 알고 고쳐가고, 또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힘쓰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하나님이 한국교회의 역사를 새롭게 써가시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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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2월 월례회 ‘한국교회가 힘써서 하여야 할 일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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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1월 월례회 ‘새해 소원과 기도’
- 본고는 지난 1월 12일 양재 온누리교회 화평홀에서 열린 한복협 1월 월례회 중 허문영 박사가 발제한 ‘복음통일 샬롬코리아나를 꿈꾸며’의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이다. -편집자 주 2018년은 민족적 차원에서 체제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우리민족은 1945년 북위 38도선의 국토분단, 1948년 대한민국정부수립(8.15)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정권수립(9.9)으로 체제분단,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3년 동족상잔으로 백성분단의 3중적 민족분단을 처절히 겪었다. 지난 2015년 국토분단 70년은 아무 의미없이 지나갔다. 이제 우리는 체제분단 70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일컬어지던 평양에 공산정권이 들어선지 70년이 되었다. 바벨론에 끌려갔던 히브리인들이 성경예언대로 70년 만에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기 시작한 것을 기억하자. 2018년은 국제적 차원에서 평창올림픽이 개최되는 해다. 우리로서는 두 번째 맞는 올림픽이다. 2차 대전 이후 신생국 중에서 유일하게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 대한민국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이후 12 년 만에 온전한 동서화합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뤘다. 6.25전쟁 폐허만 기억하던 동구공산진영사람들은 35만에 다시 본 서울의 발전상을 통해 공산주의체제 한계를 깨달았다. 이후 1989년 폴란드를 시작으로 체코, 헝가리, 루마니아, 알바니아, 유고의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1990년에는 동독의 붕괴와 독일통일, 1991년에는 끝내 공산주의종주국 소련마저 붕괴하고 말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후 세계 양극체제가 무너졌던 것이다. 30년 만에 다시 우리는 세계인 앞에 동계올림픽으로 서게 되었다. 2018년은 국내적 차원에서 ‘87체제’가 만 30년을 지나는 해다. 1987년 젊은 대학생·청년들의 희생과 넥타이부대로 칭해졌던 시민사회의 궐기로 군사독재정권이 무너졌다. 그리고 민주화체제가 이 땅에 들어선지 30년이 흘렀다. 이제 그 한계가 노출되고 있다. 주변국가(러시아 6년 중임, 중국 5년 중임, 미국 4년 중임 등)들은 긴 호흡으로 국정을 운영하는데, 우리는 5년 단임으로 안정적 국정운영을 못하고 있다. 적폐청산만 반복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양극화 현상으로 중산층이 붕괴되고, 노인빈곤 청년실업 지방경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내부체제정비가 필요하다. 이제 통일을 준비하는 ‘2018체제’가 새롭게 준비되어야 할 때다. 그러나 지금 한반도와 동아시아는 위기상황이다. 북한의 끊임없는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개발이 근본적 원인이다.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한국의 안보 위협은 물론, 미국에게도 본토방위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라는 사활적 국가이익을 침해하는 일이 된다. 북한의 지속적 도발과 미국의 공격적 대응은 한반도 무력충돌과 동아시아 전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게다가 북한폭풍, 안보폭풍, 경제폭풍이 함께 충돌하는 절대폭풍이 일어날 때, 대한민국과 한민족의 미래는 풍비박산난다.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도 함께 무너질 수 있다. 물론 미국과 중국, 북한의 협상에 의해 평화롭게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우려대상이 된다. 미국의 세계전략가 헨리 키신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안한 미중 빅딜론은 제2의 태프트 가쓰라 밀약(1905)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과 일본은 강대국 국익추구 협상으로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지배권을 상호인정함으로써 충돌없이 제국주의적 팽창을 진행할 수 있었다. 북한의 한반도공산화통일을 위한 대미협상전략이 지난 70년간 바뀌지 않았다는 사실도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다행히 연초 분위기는 희망적이다. 김정은위원장 신년사를 통해 북한이 평창올림픽 참가용의를 밝혔고, 우리정부의 적극적 수용과 북한의 반응으로 남북대화가 다시 이어지게 됐다. 2015년 12월 남북차관급회담 이후 2년 만이다. 회담 의제도 '평창올림픽 참가를 비롯한 남북관계개선'으로 합의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신년사에서 “핵탄두들과 탄도로케트들을 대량생산하여 실전배치하는 사업에 박차를 가”할 것임을 천명했다. 남북관계개선의 조건들도 향후 강조할 수 있는 근거들도 함께 언급했음은 유념해야 한다. 새해 우리 대한민국은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가대전략을 수립해서 추진해야 한다. 일반국가목표인 생존과 안보, 번영, 위신 모두 잘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특수국가목표인 통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 문화올림픽, 영성올림픽으로 발전시켜 향후 15년 놀라운 복음통일역사의 시발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회경제적 양극화현상을 극복하고, 주변국가와의 경쟁에서도 밀리지 않는 가운데 통일을 맞이할 수 있는 새로운 헌법체제를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해에는 다음과 같은 노력이 진행되기를 소망한다. 첫째, 튼튼한 안보를 토대로 평화를 지켜야 한다. 북한의 핵공격 및 무력도발을 막기 위한 한국형 3축타격체제(선제공격Kill Chain, 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KAMD, 한국형대량응징보복KMPR)를 조기구축하여 독자적 대북억지력을 확보하도록 한다. 방산비리 제거를 통한 국방개혁과 군사력 강화를 동시에 추진하여 튼튼한 자주적 안보태세를 구축한다. 한미동맹 유지 강화를 통해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공포의 균형을 이루어 내도록 한다. 균형십자외교와 이중궤도정책(Two Track Policy)으로 주변4국의 우호적 지지를 끌어내도록 한다. 공평과 정의에 기초한 통합사회 구현으로 국민들이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충성심을 갖도록 해 자발적 안보의식을 체화할 수 있도록 돕는다. 둘째, 한국형 통일대전략을 수립해서 평화와 통일을 만들어가야 한다.절대폭풍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통일 및 동아시아 평화번영을 위해 대북정책과 통일정책을 넘어 국가대전략을 준비·실천한다. 북핵 개발에 대해서는 주변국 핵심국익을 고려하면서, 단호한 압박정책을 계속 추구한다. 그리고 희망적 사고에 근거한 상황대응적 대책이 아니라, 객관적인 북한정세 평가를 기초로 상황주도적 정책을 수립해서 변혁(transforming)적 통일을 이뤄간다. 한반도통일문제 구조와 관련해서는 미중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중관계가 좋으면, 북한을 압박해서 변화시킬 수 있다. 미중관계가 나쁘면, 북한은 중국의 보호하에 자기 정책을 지속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미국이 북한을 예방 또는 선제공격할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한미중 삼각우호협력관계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한다.그리고 2018년 체제분단 70년에는 열리는 평창올림픽 개최를 성공적으로 치러내고, 남북 화해협력의 길을 재개하자. 2020년 민족분단 70년에는 남북연합의 길을 열어보자. 2023년 휴전 70년에는 통일협정 체결을 적극 모색해보자. 동시에 동아시아 평화조성을 위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러내고, 2020년 일본 동경하계올림픽과 2022년 중국 북경동계올림픽의 성공적 진행을 통해 동아시아 평화를 한일중이 함께 만들어 가보자. 확정된 2024년 파리하계올림픽, 2028년 LA하계올림픽을 거쳐 2032년 평양하계올림픽을 통일대한민국에서 개최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아무튼 평창올림픽은 향후 15년 한반도 및 세계질서를 평화적으로 바꾸는 시초가 될 것이다. 셋째, 사회정의수립과 국민화합으로 품격있는 통일대한민국이 되어 세계를 섬길 준비를 해야 한다.끝없는 경쟁 가운데 실패한 인생, 승자독식으로 좌절한 빈곤계층, 물질만능주의와 부정부패로 물들어 병든 사회구조, 만성적인 정쟁과 극단적 이념갈등으로 지도력을 상실한 정치권, 세계에서 가장 심화된 세대갈등으로 단절된 기성세대와 다음세대. 이 모든 과제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을 쇄신하지 못하면 모든 기회의 창은 다시 닫힐 수 있다.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 온전국력(Whole Power)을 구비하게 될 때, 평화대한민국은 평화통일과 평화세계를 선도해 나갈 수 있다. 이제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인류사적 사명을 생각할 때다. 복음통일과 세계평화를 향한 사명감당을 위해 하늘의 도우심과 지혜를 구하며 국내 ’87정치체제 및 ’97경제체제 한계와 북한의 핵도발과 국제 마초들의 ‘철권외교’를 비롯한 절대폭풍을 극복하도록 노력하자. 2018년 3가지 기도를 민족과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린다. 1. 새해에는 북한에 있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주소서! 체제분단 70년 동안 자유롭게 온전하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한 북한동포들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여주소서! 130만 붉은군대와 300만 공산당원과 2500만 북녘동포들을 기억하사 저들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고 회개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소서! 2. 새해에는 대한민국이 정의사회로, 북한에 인간존엄성이 보장되게하시고, 남북한이 화해협력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공의(쩨다카)와 정의(미쉬파트)가 실현되는 정의로운 대한민국 되게 하소서! 하나님사랑, 이웃사랑이 실천되게 하소서! 온 누리에 하나님의 인애와 사랑이 흘러 넘치게 하소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북한동포들이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누릴 수 있도록 체제변화를 일으켜주소서! 3. 새해에는 평창올림픽을 통해 세계평화의 기운이 확산되게 하소서! 2018평창올림픽(2월)과 패럴림픽(3월)을 사용하여 주사 민족과 열방을 살리는 평화올림픽·문화올림픽·영성올림픽 되게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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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한복협 1월 월례회 ‘새해 소원과 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