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우리네 교계에서는 ‘사울 증후군’에 몹시 시달리는 계열이 있다고 하는데, 아마도 위임을 받고서, 특정한 위치에서 사역을 하고서 은퇴한 교역자들 가운데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이들은 사울 증후군을 비교의식으로 인해서 비롯된 증세로 간단하게 처리하려고도 하지만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일반 사회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문제이긴 하지만, 교계에서는 꽤 무게가 있는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으로서, 개 교회나 한국교회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져오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그는 TV에도 매주 강연을 하는 설교자이기도 하다. 그가 이룬 업적은 그가 속한 도시나 그가 몸을 담은 교단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자이다. 그도 나이가 들어서 70을 맞이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손에 쥐고 있던 모든 권한을 내려놓아야 했다. 허지만 그가 이 모든 것을 내려놓기에는 그의 몸값이 너무 큰 나머지, 그가 벌려 놓은 일거리들 때문에 실제로는 내려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뒤를 이어 부임한 후임자는 그의 뒷받침을 하기에는 너무 버거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새로운 출발을 하기에는 이미 과부하 상태였던 것이다. 얼마가지 않아서 후임자는 재판에 회부되는 일을 당면해야만 하였다. 곳곳에 벌어지고 있는 사울 증후군 현상은, 마치 중심을 잃고 바다 한 가운데에서 넘어진 세월호처럼, 수많은 교회들과 신도들의 생명을 희생시킬까 보아서 두렵기만 하다.
사울은 그의 주변 사람들보다도 머리 하나가 더 높은 훤칠한 사람이었다. 오랜 세월동안 주변의 적들에 노출된 이스라엘은, 주변국들과 같이 왕을 요청하는 목소리가 높아만 갔다. 이러한 요청에 의해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이 된 자가 사울이다. 이스라엘에 일어나는 모든 정황들이 그를 왕으로 추대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이 척척 맞아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블레셋 군단이 사울과 접전을 벌이려고 전선이 형성되고 있을 때에, 사울의 군대가 흩어지기 시작하자, 저는 급했던 나머지 사무엘이 도착도 하기 전에, 기다리질 못하고 제사를 집례 하였던 것이다(삼상 13:12). 사울은 ‘제사장 같은 왕’의 흉내를 내었으나, 웃시야 왕도 야훼의 향단에 분향하려다가 문둥병에 노출되어서 평생을 별궁에서 격리된 채로 있었듯이,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거리낌이 되었다.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하나님이 경계한 전리품들을 불법으로 챙겼다. 별 가치가 없는 것들은 그대로 행하였지만, 살지고 기름진 좋은 것들은 숨겨 두었던 것이다. 사울이 야훼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은 야훼를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 좋은 것들을 드리기 위해서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었으나, 예수께서는 이를 바르게 식별하시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7:23).’ 하였다.
사울의 이와 같은 행위를 못마땅하게 여긴 사무엘이 진영을 떠나려 하자, 사울은 그의 부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길까보아서 사무엘이 동행할 것을 요청하였는데, 그는 이렇게 행동으로도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다. 이러한 사울의 행위는 결국 그가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그에게 임하신 성령이 떠나가는 결과를 야기한다. 이렇게 성령이 부재한 껍데기만 그럴싸하게 자릴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무엘은 성령의 지시를 받아 다윗이라는 양치기 소년에게 기름을 붓게 되고, 기름부음을 받은 다윗은 이날 이후로 주님의 성령에 감동되어 있었고, 그 시부터 새로운 리더십이 이스라엘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엘라 골짜기에 블레셋 군대와 맞서서 진을 친 이스라엘은 거의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다. 이러한 정황을 우연찮게 보게 된 다윗은 적장 골리앗과 직면하여 겨루게 되었고, 드디어 시민들이 ‘사울과 함께한 자는 천천’이지만 ‘다윗과 함께한 자는 만만’이란 노래가 불리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명성과 백성의 마음이 사울에게서 떠나 다윗에게로 넘기어 가자, 사울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윗을 죽이려 하였다. 다윗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 피신을 할 수 밖에 다른 방책이 없게 되었고, 사울은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찾아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샅샅이 뒤지며 다윗을 옥죄었던 것이다.
오늘에도 한국교회는 사울과 그가 이끄는 군대를 피해서 몸을 낮추고 숨기는 후임자들이 적지 않다. 저들이 숨은 동굴을 거미조차도 안쓰러운 듯이 거미줄을 쳐서 보호하였다는데, 오늘의 한국교회의 미래지기들이 다윗처럼 살아남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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