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영성에 머문 교인들 실천하는 사회적 영성 결여
본고는 지난 6월 12일 서울 도곡동 강변교회(담임목사 허태성)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6월 월례회 ‘나의 목회의 중심은?’에 발제를 맡은 전병금 목사의 원고를 일부 발췌한 것이다. <편집자 주>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하나로 보는 ‘통합적 구원관’ 시급
책임감을 갖고 사회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 양성해야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한국교회의 위상은 과연 그 바닥이 어디일까 싶을 정도로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목회자들의 일탈행동 뿐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의 대규모 비리 사건까지 겹쳐 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일만 해도, 전 해군참모총장이 방산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더니, 얼마 후 비리를 저지른 방위산업체 회장이 구속되었다.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은 그가 교회에 비밀 사무실까지 차려놓고 교회를 이용하여 비리를 저질러왔다고 한다. 또한 전 정권의 자원외교와 관련하여 수사를 받던 전 국회의원인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을 하면서 남긴 유서에 기록된 명단으로 인하여 정치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그 또한 교회 장로로 알려져 있어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교회와 사회로부터 존경받던 평신도 지도자들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개인적 일탈행위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목회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잠재되어 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건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아마도 이들은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인정받는 평신도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적으로 화려한 이력에 기대어 쌓여왔던 세상적인 명성은, 사실 알맹이가 전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음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들의 신앙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추구해온 개인영성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주일 예배 출석과 십일조 생활, 그리고 교회 봉사를 기준으로 측정되던 개인 영성에 머물러 있다보니,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해야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회적 영성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는 괜찮은 교인인데, 교회 ‘밖’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비윤리적이고 이기적인 교인들이 양산되어 온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영적인 불균형이 초래되었을까?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참으로 비통하고 심각하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한국교회는 ‘일부의 일탈행위’로 치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탈행위 당사자에게 돌팔매를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고 넘어왔다. 문제는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열차 자체인데,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 몇 명 탓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해 온 것이다. 누구도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기차의 방향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여 대안을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철저한 신학적 반성이다. 요즘 일련의 문제들을 겪으면서 전통적으로 한국교회가 고수해 온 교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개신교의 대표적인 교리인 ‘이신칭의’에 대한 재고와 이를 바탕으로 확산된 ‘안이한 구원론’에 대한 반성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교회에서 강조되어왔던 교리들은 대부분 개인적 영성을 추구하는 교리로서, 개인의 신앙형성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인 책임감이 심각하게 결여되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신교인들은 개인적 윤리생활에서는 어느 정도 도덕적이었지만, 사회생활 면에서는 세상의 풍조에 매몰되어 세속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개신교회가 사회 구조악의 문제, 인권문제, 정치-경제적 정의 문제, 통일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추락시킨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는 개인의 영혼구원과 사회적 구원을 하나로 보는 ‘통합적 구원관’을 시급히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즉,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다 된다”는 식이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성하는 것을 목회적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목회하는 교회에서 이러한 통합적 구원관에 입각한 설교와 교육을 하려고 애를 써왔다. 내가 우리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한지는 36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일관되게 통합적 구원관에 입각한 목회를 하고자 하였고 교인들도 이러한 방향성에 호응하고, 개인적 축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한국교회를 위해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오고 있다.
특히, 나는 우리 한국교회에서 전덕기, 안창호, 조만식, 이승훈, 김약연, 이상재, 장기려, 문익환 같은,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기독교 신앙으로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고 앞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선각자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다. 이 일을 위해 “①세계선교를 하는 교회 ②인재를 양성하는 교회 ③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 ④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라는 비전을 설정하여 이런 비전을 이루기 위해 매진해 왔다.
먼저 “세계 선교를 하는 교회”를 위해 “나눔선교재단”을 설립하여 국내외 선교를 보다 체계적,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가고 있으며, “통일시대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초등학생으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지원자들을 신앙적으로 훈련시키는 “나눔비전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가양5 종합사회복지관을 위탁운영하면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애쓰고 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규모로서가 아니라 이러한 신앙적 헌신을 통해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를 이루고자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비전은 한국교회의 개인적 영성으로 끝나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적 영성까지 포함하는 통합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신앙인으로서 세우는 일이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바울은 또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라고 했는데, 한국교회가 그리스도를 닮아 온 세상에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는 과정은 생략한 채, 사람들 앞에 자신의 지식과 지위와 권세를 드러내려고 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빌 2:8)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함을 본받는다는 것인데, 요즘 물의를 빚고 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자기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다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만 것이다. 모자란 게 문제가 아니라 넘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다음과 같은 바울의 책망을 듣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모르고 자기?의를?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물론 우리 교회도 여러 가지 면에서 감히 한국교회의 모델 교회가 될 정도로 완벽하다고 자부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성도 모두가 ‘그리스도를 닮는 성도’가 되고자 겸손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에 매진하며, 무엇보다 통합적 사고를 가진 성도들을 키워내는 일에 매진함으로써 그 비전을 이루어 가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이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신앙이 삶이 되고, 삶이 신앙이 되는 생활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을 하나로 보는 ‘통합적 구원관’ 시급
책임감을 갖고 사회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 양성해야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한국교회의 위상은 과연 그 바닥이 어디일까 싶을 정도로 끝 모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는 목회자들의 일탈행동 뿐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의 대규모 비리 사건까지 겹쳐 사회적으로 많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일만 해도, 전 해군참모총장이 방산비리에 연루되어 구속되더니, 얼마 후 비리를 저지른 방위산업체 회장이 구속되었다. 더욱 경악할 만한 것은 그가 교회에 비밀 사무실까지 차려놓고 교회를 이용하여 비리를 저질러왔다고 한다. 또한 전 정권의 자원외교와 관련하여 수사를 받던 전 국회의원인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을 하면서 남긴 유서에 기록된 명단으로 인하여 정치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그 또한 교회 장로로 알려져 있어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교회와 사회로부터 존경받던 평신도 지도자들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개인적 일탈행위가 아니라, 한국교회의 목회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잠재되어 왔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더 이상 헤어 나올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이러한 사건들은 오늘날 한국교회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안타까운 것은, 아마도 이들은 자기가 섬기는 교회에서는 인정받는 평신도 지도자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적으로 화려한 이력에 기대어 쌓여왔던 세상적인 명성은, 사실 알맹이가 전혀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것이었음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감이라는 측면에서는 이들의 신앙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했다. 오히려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위선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대변해주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다.
이는 그동안 한국교회가 추구해온 개인영성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매우 의미심장한 사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주일 예배 출석과 십일조 생활, 그리고 교회 봉사를 기준으로 측정되던 개인 영성에 머물러 있다보니,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감당해야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회적 영성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결과 교회 ‘안’에서는 괜찮은 교인인데, 교회 ‘밖’ 세상에서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기조차 어려운 비윤리적이고 이기적인 교인들이 양산되어 온 것이다.
어떻게 이러한 영적인 불균형이 초래되었을까? 한 사람의 목회자로서 참으로 비통하고 심각하게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한국교회는 ‘일부의 일탈행위’로 치부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탈행위 당사자에게 돌팔매를 하는 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여기고 넘어왔다. 문제는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열차 자체인데, 열차 안에 있는 사람들 몇 명 탓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해 온 것이다. 누구도 잘못된 방향으로 달려가고 있는 기차의 방향에 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한국교회의 문제를 더 이상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여 대안을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철저한 신학적 반성이다. 요즘 일련의 문제들을 겪으면서 전통적으로 한국교회가 고수해 온 교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다. 예를 들면, 개신교의 대표적인 교리인 ‘이신칭의’에 대한 재고와 이를 바탕으로 확산된 ‘안이한 구원론’에 대한 반성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교회에서 강조되어왔던 교리들은 대부분 개인적 영성을 추구하는 교리로서, 개인의 신앙형성에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그리스도인의 사회적인 책임감이 심각하게 결여되었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개신교인들은 개인적 윤리생활에서는 어느 정도 도덕적이었지만, 사회생활 면에서는 세상의 풍조에 매몰되어 세속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러다보니 개신교회가 사회 구조악의 문제, 인권문제, 정치-경제적 정의 문제, 통일 문제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목소리를 내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추락시킨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우리는 개인의 영혼구원과 사회적 구원을 하나로 보는 ‘통합적 구원관’을 시급히 정착시켜야 할 것이다. 즉,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다 된다”는 식이 아니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성도”로서,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사회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양성하는 것을 목회적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 목회하는 교회에서 이러한 통합적 구원관에 입각한 설교와 교육을 하려고 애를 써왔다. 내가 우리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한지는 36년이 되었는데, 그동안 일관되게 통합적 구원관에 입각한 목회를 하고자 하였고 교인들도 이러한 방향성에 호응하고, 개인적 축복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한국교회를 위해서,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오고 있다.
특히, 나는 우리 한국교회에서 전덕기, 안창호, 조만식, 이승훈, 김약연, 이상재, 장기려, 문익환 같은, 나라와 민족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기독교 신앙으로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고 앞서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선각자들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다. 이 일을 위해 “①세계선교를 하는 교회 ②인재를 양성하는 교회 ③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 ④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라는 비전을 설정하여 이런 비전을 이루기 위해 매진해 왔다.
먼저 “세계 선교를 하는 교회”를 위해 “나눔선교재단”을 설립하여 국내외 선교를 보다 체계적, 지속적으로 진행해 나가고 있으며, “통일시대를 이끌어 나갈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초등학생으로부터 고등학생에 이르는 지원자들을 신앙적으로 훈련시키는 “나눔비전스쿨”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가양5 종합사회복지관을 위탁운영하면서 “지역사회를 섬기는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자 애쓰고 있다. 우리 교회는 교회의 규모로서가 아니라 이러한 신앙적 헌신을 통해 “한국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를 이루고자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비전은 한국교회의 개인적 영성으로 끝나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적 영성까지 포함하는 통합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신앙인으로서 세우는 일이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2). 바울은 또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라고 했는데, 한국교회가 그리스도를 닮아 온 세상에 “나를 본받으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닮는 과정은 생략한 채, 사람들 앞에 자신의 지식과 지위와 권세를 드러내려고 하는 데 있다. 그리스도를 닮는다는 것은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빌 2:8)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함을 본받는다는 것인데, 요즘 물의를 빚고 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은 자기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다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만 것이다. 모자란 게 문제가 아니라 넘치는 게 문제인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다음과 같은 바울의 책망을 듣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모르고 자기?의를?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롬 10:2-3).
물론 우리 교회도 여러 가지 면에서 감히 한국교회의 모델 교회가 될 정도로 완벽하다고 자부하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성도 모두가 ‘그리스도를 닮는 성도’가 되고자 겸손한 모습으로 신앙생활에 매진하며, 무엇보다 통합적 사고를 가진 성도들을 키워내는 일에 매진함으로써 그 비전을 이루어 가려고 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의 이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신앙이 삶이 되고, 삶이 신앙이 되는 생활의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현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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