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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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사흘 전 돌아가신 그가 이미 무덤에 묻히셨는데 다시 살아나신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너무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래서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마저 “무서워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다(마28:4)”고 했지 않은가.   
앞서 예수께서는 맞서 보아야 본전도 못 찾을 예루살렘 성전 대제사장의 무리와 대결했었고, 끝내는 십자가의 형틀을 제 어깨에 메고 골고다언덕으로 향해야 했었으며, 그리고는 처형됐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무덤에 묻혀 있을 수가 없었다.
첫째는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했던 지난 증언(눅 24:7)이 이루어진 사실을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요, 둘째는 앞으로 그에게 너무도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은 베드로의 무리, 곧 옛 제자단을 만나 그들을 품어 안는 일이었다. 즉 그들을 용서해 주는 일이었다. 그들에게 극단적인 포용(관용)의 자세를 보여주는 일이었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마음의 상처는 측근 인사들의 ‘배신’ 행위이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 무리의 배신, 아니 ‘배교’ 행위는 예수께는 가장 큰 상처였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생전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마18:22)”고 베드로의 질문에 응답하셨던 예수께서는 그때의 자신의 그 말을 그대로 실천하셨던 셈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용단)이었다.
요즘 시중의 TV극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이 얼마나 보복의 감정에 지배되고 있는지, 아니 복수의 칼날을 품고 기회를 엿보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는 말하자면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이다. 이를 예수께서는 밑바닥에서부터 거부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 나라 건설이 요원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대표로 하는 옛 제자단을 용서하는 선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인간으로서는 차마 맡길 수 없는 일들을 다시 맡기셨다. 평범한 인간도 때로 측근의 잘못을 용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중차대한 일을 다시 맡기는 일까지는 주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다시 배신당할까 은근히 두려워서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일단 용서했으니 원점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보신 것 같다. 그게 바로 용서라는 교훈을 예수께서는 분명하게 보여주셨던 것이다. 절반쯤 깔고 용서한다고 하는 것은 실은 절반은 여전히 용서하지 못한(않은) 것이 분명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이렇게 볼 때 예수의 용서는 참으로 위대하다.
예수께서는 사람만이 아니라 지역도 용서의 대상으로 삼으셨다. 그는 대제사장등 기득권층의 도시 예루살렘에 대하여 좋은 감정을 지니고 있지 못할 처지였다. 그의 마음은 언제나 가난한 사람들의 지역 갈릴리에 가(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생애 후년에 예루살렘에 들어갔다가 예루살렘 성전 지배자들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들의 세력에 밀려 십자가 처형에 이르는 불상사까지 감수해야 했던 것이다.
살아생전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대하여 이렇게 비판하신 적이 있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마23:37).”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런 도시 예루살렘에 대해서까지 포용적이다. 부활하신 이후의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1:4-5).”
예수께서, 선지자들을 돌로 쳐 온 예루살렘에 대해서 용서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성령운동이 일어나게 함으로써 베드로가 다시 힘을 얻어 예루살렘 교회공동체를 세우고, 여기서부터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예루살렘 초대교회에 유대인 중심의 히브리파 신도들 외에도 로마지역 문화에 익숙해 있던 헬라파 신도들도 들어와 함께 신앙생활을 했었던 일이 후에 베드로 중심의 히브리파 신도들도 이방 로마지역의 선교사로 나가 활동하게 되는 데 하나의 문화적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판단된다. 예수께서는 결국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고 하신 자신의 말씀이 그대로 실현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예수 부활 사건에는 이처럼 하나님 나라 건설을 위한 한 과정의 성격이 숨겨져 있지만,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용서의 의미를 인간들에게 철저히 가르쳐주시되 그것의 원천이 인류 구원을 위한 원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는 그 점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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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부활하셨다! -임 영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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