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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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명동 근처 충무로역에서 내려 남산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느티나무와 포플라가 늘어선 그윽한 가로수길이 나옵니다. 남산의 한 자락으로 왼쪽은 숲, 오른쪽은 공공 건물이 늘어서 있습니다. 그 막다른 곳에 예전에 안기부장 공관이었던 ‘문학의 집’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 선율이 묻어나올 것 같은 그윽한 잔디밭을 지나 여느 현관 같은 곳을 들어서면, 사무실 오른쪽에 작은 공연장이 있습니다. 매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세 시가 되면 그곳에서 좋은시 공연문학회의 시낭송회가 있지요. 몇 개월 후면 200회 공연을 앞두고 있다지요. 나는 거기서 몸시를 발표합니다.
1971년 9월 15일부터 2003년 1월 30일까지 미국 NBC에서 방영되었던 피터 폴크 주연의 <형사 콜롬보>. 후줄근한 옷차림에 의미 없는 잡담을 늘어 놓다가, 날카로운 질문으로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LA 경찰청의 형사 콜롬보 흉내를 내며 멘트를 해 봅니다. “독자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어떻게 하면 독자를 문학의 場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까요?” 그러면서 발걸음을 한 걸음 내딛고 관객을 바라봅니다. 관객들의 시선이 나의 눈가에 머뭅니다. “시낭송에도 탈경계가 필요합니다. 원시 종합 예술을 생각해 봅시다. 그들은 흥이 나면 신나는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뭔가 주문을 읊기도 하지요. 그렇습니다. 시낭송의 새로운 트레이드 마크입니다” 그러면서 고개와 팔을 풍차 돌리듯 휘젓는 몸부림춤을 추고,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구성지게 부르고 나서, 진지하게 시를 낭송합니다.

너는 깡마른 연어다
해발 6300미터를 날아올랐다가
태풍과 몸을 섞는 여유
그래서 너는 현실이 되고
때가 되면 고향으로 회귀하는
귀한 몸이다

근육을 찢어 닭가슴을 여미고
멋으로 태어나는 사나이 배짱
그 때깔로 삼바춤 추며
흥겹게 두드리지 책상
노래와 호흡 맞춰라
착하기도 하지 너의 입

피어오르는 스프링큘러로
너의 잔디밭을 적셔라
발레의 자유로움으로 태평양을 건너는
지느러미의 역동함에
적당히 살을 키우고 빼는
몸은 살아 있다
                  - 졸시,「몸」전문

그렇습니다. 총각 시절 배운 무용 덕분에, 회갑을 넘긴 나이에도 살아 있는 몸이 있다는 게 다행스럽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나요. 나 홀로의 멋에 취해 시를 읊조리고, 남산에 흐르는 그윽한 정기에 젖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설사 홀로 적막 가운데 놓인다 해도 시가 있는 한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당장 당신에게 감동을 주지 않더라도 기억할 겁니다. 나의 몸시. 이 몸부림에 당신 안에 숨어 있던 열정을 실어서 한껏 날려 보내도 좋을 겁니다. 상상의 날개를 타고 아름다웠던 추억의 장면을 떠올려 보아도 좋을 거구요.
어릴 적 전축 앞에서 추었던 나의 몸부림을, 어머니가 칭찬해 주었습니다. 장성해서는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나의 예술끼를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 칭찬 덕분일까요. 요즘 나는 글 쓰는 멋에 취해 삽니다. 글 속의 화자가 되어 세상을 향하여 소리지르기도 하고, 나쁜 사람들에게 정신 차리라는 질책도 하면서, 참 맛있는 사색을 합니다. 이러한 모든 걸 몸이 담고 있습니다. 몸을 통하여 나오는 노래와 춤과 낭송이 나를 멋지게 합니다. 나만의 멋진 세계에 들어선 것 같아 행복합니다. 그저 밋밋한 나를 이토록 멋진 세계에 들게 해 주신 분은 당신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왕따당하여 소외 가운데 있던 삭개오를 향하여 “삭개오야. 나무에서 내려오라. 오늘 내가 너의 집에 유하리라”며 손을 내미셨던 주님이, 나에게 주신 달란트. 주님이 주신 선물이기에 더욱 소중히 간직하렵니다. 아침엔 영감으로 당신을 맞이하고, 오후엔 사색으로 당신과 걷습니다. 당신이 예뻐하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오늘도 몸부림춤을 추며 몸시를 낭송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이 주신 행복에 물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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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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