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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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이 죽은 후, 떠돌이 다윗이 파란 광야로 활동 무대를 옮겨갔을 때, 숙명적으로 만나지 않으면 안 될 두 사람은 나발과 그의 아내 아비가일이었다. 
나발은 갈렙 족속으로 큰 부자. 성서는 나발을 소개하면서 재산목록을 기록하고 있는데, 목장과 기르는 양 3,000마리와 염소 1,000마리의 소유주라고. 
<사무엘서>는 나발은 고집이 세고 포악한 성격의 소유이지만, 아내 아비가일은 이해심도 많고 용모도 아름답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녀가 있었기에 다윗이 스스로의 혈기를 눌러 피를 흘리지 않고도 왕이 될 수 있었다며 아비가일의 미덕을 추켜세운다.   
다윗은 나발이 양털을 깎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종자들을 보냈다. 다윗은 그의 종자들이 나발을 그의 형제라 부르도록 타일러 두었다. 떠돌이 폭력집단의 두목으로서는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춘 셈이지만, 나발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다윗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어 보는 것처럼 거드름을 피운다. 어엿한 사업가인 그가 어떻게 불한당들과 상종할 수 있겠느냐는 듯이. 다윗 패거리는 주인에게서 도망쳐온 종들의 집단에 불과하다며, 다윗이란 이름 대신 이새의 아들이 누구냐며 되묻기도 한다. 
종자들의 보고를 받은 다윗은 주먹 패의 두목답게 곧 나발을 징계하러 나선다. 칼을 차고 다윗을 따르는 장정이 400이라 했다. 진지에는 200만 남기고. 
낌새를 알아차렸을까 아니면 내통해주는 이가 있었을까. 하여튼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은 재빨리 빵 200덩이와 포도주 두 부대, 요리한 양 다섯 마리, 볶은 곡식, 건포도와 무화과 뭉치들을 준비하여 여러 마리의 나귀에 실어 다윗에게 보내고 자신은 그 뒤를 따랐다. 물론 남편 나발에게는 알리지 않은 채.
산등성이를 내려오는 다윗 일행과 마주치자 아비가일은 나귀에서 내려 다윗 앞에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댄다. 다윗을 ‘아도나이’(나의 주)로 부르고 자신은 ‘아마드카’(당신은 나의 주인)라 칭한다. 아비가일이 말한다. “장군께서는 나의 몹쓸 남편 나발에게 조금도 마음을 쓰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은 정말 이름 그대로, 못된 사람입니다. 이름도 나발인데다, 하는 일도 어리석습니다. 그런데다가 장군께서 보내신 젊은이들이 왔을 때에는, 내가 거기에 있지 않아서, 그들을 만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비가일은 다윗이 사람을 죽이거나 몸소 원수를 갚지 못하도록 막아주신 분이 야훼하나님이라고 천명한다. 뿐만 아니라, 다윗을 해치려는 모든 원수들은 나발처럼 저주받기를 원한다고 말하자, 다윗은 순순히 돌아선다.
아비가일이 집에 돌아왔을 때, 남편 나발은 양털 깎기를 마치고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나발은 자기가 왕이나 된 것처럼 술잔치를 벌이면서도 정작 앞으로 왕이 될 사람의 요청은 거절한 것이다. 나발이 술에서 깨어나자 아비가일은 일어난 모든 일을 말해준다. 그녀가 말한 ‘모든 일’안에 어떤 일이 포함되고 어떤 일이 제외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와 다윗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다는 암시라도 한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나발이 그 말을 듣고 갑자기 심장이 멎고 몸이 돌처럼 굳어질 수 있었겠는가? 아비가일의 정숙함과 아름다움이란 범인의 짐작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깊이 있는 내용들을 함축하고 있을 그런 차원의 것일 지도 모른다. 
하여튼 자초지종을 들은 나발은 심장이 멎고 몸이 돌처럼 굳어졌다. 열흘이 지나 야훼께서 나발을 치시자 그가 죽었다. 야훼께서 누구의 손을 빌렸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혹 아비가일이? 하고 추측하는 것은 망령된 일이 될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는 양 3000마리 가운데 다섯을 아끼려다 목숨을 포함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은 나발. 그러니까 그의 이름은 바보였던 것이다.  
다윗은 나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자기가 직접 그를 죽이지 않게 된 일을 하나님께 찬양하면서, 나발은 자기가 저지른 죄 값을 받았다고 말하였다는데, 다윗은 곧 사람을 보내어 아비가일에게 구혼을 했고, 아비가일은 물론 받아들였다는 것이 성서의 기록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이 모든 일을 야훼의 직접적인 행위로 돌리는 것이 성서의 기록이다. 그러는 것 말고 하나님의 뜻 혹은 역사의 의미를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는가하고 고개를 끄덕여보기도 하지만, 오늘날 같으면 청문회 꺼리가 되고도 남을 사건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한 쪽은 히브리인의 도량이기보다는 지혜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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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 그리고 나발과 아비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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