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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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1989, 피터 위어 감독)를 보면 1859년 창립된 명문 웰튼 고등학교에 부임한 키팅 선생(로빈 윌리엄스 분)이 학생들에게 문학 교재의 ‘시창작법’ 부분을 찢어 버리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하지요. 그리고는 운율을 느껴 보라며 학생들에게 교정에서 행보를 하게 합니다. 평소에 <시 창작법> 등을 강의해 온 필자는 이 부분이 실감났습니다. 실제로 시를 써 보니, 시 창작법이란 게 별 게 아니고 고교 시절에 배운 명시나 수사 기교만으로도 얼마든지 시가 창작될 수 있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운율도 우리가 명시를 감상하며 익힌 운율만으로도 얼마든지 창작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필자가 제안하는 것이 탈경계의 시창작법입니다.
요즘 수필에서의 산문율이 시에 자주 나타나고 서사적 특성인 이야기가 시 속에 융합되어 나타나는 것이 시창작의 한 추세인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아는 기자에게 콩트 한 편을 카톡으로 보냈더니, 그가 그걸 시라며 시낭독집에 넣은 일이 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시낭송 시간에 그걸 낭송하였더니, 청중의 반응이 좋았습니다. 내가 자주 참여하는 공연시 낭송도 그렇습니다. 일단 멋진 표정 연기와 함께 노래를 하고 감정을 실어서 시낭송을 하였더니, 특유의 멋진 퍼포먼스가 되더군요. 이를 보면 시가 읽혀질 것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직접 독자를 찾아가서 보여주는 접근법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는 시인과 독자의 거리를 좁혀주는 한 방식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스승인 서정주 시인에게서 들은 이야깁니다. 1930년대에는 시인들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문우들끼리 자주 어울렸답니다. 한 번은 서정주(1915년생)가 李箱(1910년생)&#8228;박목월(1916년생) 등과 어울려 종로 거리를 지나 서대문에 있는 일식 주점에 들어갔는데, 李箱이 문에 들어서더니 스웨터를 입은 일본 여주인의 제일 윗 단추를 꾹 누르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시인들은 다다미방 위에 올라섰는데도, 그는 “왜 그러세요?”라는 여인의 외마디에도 불구하고 땀까지 흘리며 꾹 누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한참만에 서정주가 그를 데리고 다다미 위로 올라서면서 ‘아마도 李箱이 모더니스트이기 때문에 여인의 단추를 현대 문명으로 인한 위기를 알리는 비상벨로 착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이를 보면 李箱은 좀 별났던 것 같습니다. 그의 「날개」에서 추측할 수 있듯이, 기생 금홍의 기에 눌려 지낸 것도 그렇고, 수줍어서 말도 못 붙였던 변동림을 좋아해 결혼했으면서도 한창 신혼 살림 중에 일본으로 유학갔던 것도 조금은 별난 것 같습니다. 소설「날개」를 보아도 그렇습니다. 젊은 부부인데도 각자의 방을 쓰고, 아내가 매춘 행위를 해도 화를 내지 않고 쩔쩔 맵니다. 돈의 사용처를 몰라 아내가 준 용돈을 아내 손에 쥐어 주고 겨우 아내 방에서 잠을 잘 수가 있지요. 결국 주인공은 부부 관계가 절름발이 부부였음을 알고 자살을 택하지요. 요즘 보아도 별난 부부인데, 당대에는 얼마나 특이한 부부였겠습니까?
이처럼 별난 부부의 삶과 같이, 李箱 또한 별난 행동을 하고 다녔습니다. 기생 금홍에게 기가 눌려 지냈을 뿐만 아니라, 한때는 모자부터 구두까지 온통 흰 색을 입은 스타일리스트였다가, 폐결핵 진단 이후에는 후즐근하게 지내다가 동경에서 일본 경찰의 불심 검문에 걸리는 바람에 불령선인으로 몰려 구속되어 있다가 폐결핵이 도져 죽게 되지요. 아마도 그는 창작에 너무 심취하다 보니까 허구와 일상의 구분을 쉽게 할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런 李箱을 알게 되면서 내가 생각하게 된 창작 방식은 작가에게는 다 나름대로의 창작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요. 李箱은 기생 금홍과 동거를 하면서 그 체험을 허구화시켜 독자에게 감동을 줄 나름대로의 문체를 터득한 것이지요. 건축과 미술을 익혔던 그가 작심하고 창작법을 익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 그때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글쓰기 방식을 연마하여 십여 편의 소설과 수백 편의 시를 발표하였던 것이지요. 이런 李箱을 통해서 나는 시창작에 그리 많은 창작 기교가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글이 독자를 감동시킬 수 있는가를 끊임없이 따져 보는 것이지요.
요즘 나는 아마추어 문학 동호인들에게 시창작법을 강의하곤 합니다. 그리고 강의할 때 기존의 교수법을 고수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강의가 청중을 감동시킬 수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그런 자신감이 있으면 당연히 강의가 멋있고 알찰 수가 있지요. 그들의 가슴 한 켠에 멋진 인생 한 편이 그려질 수 있으면, 강의는 성공입니다.
언젠가 만성신장질환을 앓고 나서 나에게도 죽음이 빗나갈 수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얼마나 멋지고 즐겁게 사는가 하는 것이 사후에도 남을 내 흔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생각하면 내가 전업 작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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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행복론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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