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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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혹성탈출> 첫머리, 세 사람의 조종사가 미지의 땅을 탐험 하는 중에  한 무리의 벌거벗은 인간을 만나는데, 말을 탄 원숭이가 그 인간을 사냥하는 장면을 기억하는 이들은 적지 않을 터. 불혹을 지나 지천명의 경지를 누리고 있어야할 늙은이가 TV앞에서 눈을 가린 손바닥 틈으로 그 장면을 보다가 손녀에게 핀잔을 듣는 할애비를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그러면서 만약 총을 쏘는 쪽이 인간이고 쫓기는 쪽이 원숭이라도 그랬을까 하고도 생각해보았다. 게놈 배열에 따르면 인간과 침팬지는 DNA의 98% 이상이 같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허허하고 웃어버렸지만.
<에세이>의 저자 몽테뉴(1533-1592)가 가장 미워한 것은 “잔혹(殘酷)”이라 했다. 그가 태어나서 살아온 시대가 자그마치 30년이나 지속된 전란의 시대였기 때문이리라. 그의 표현대로 “더 이상은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잔혹한 행위”를 목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대를 살아야했다는 운명적 측면이 크게 작용했을 터이지만, <에세이>를 읽어가노라면 더 근원적인 동기는 그가 타고난 품성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의 16세기는 성격이 다른 두 전쟁을 차례로 경험한 시대. 전반은 이탈리아와의 전쟁으로 1559년에 종결되지만, 후반부터는 소위 종교전쟁시대로 접어든다. 그러나 구교도와 신교도가 각자의 교리와 신앙을 옹호한다는 본래의 목적은 잃어버리고 프랑스의 왕권을 위한 정쟁(政爭)으로 변해 버린다.
이 종교전쟁의 발단을 프랑스의 한 마을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는 신교도를 구교도가 습격해서 학살한 사건이 일어난 1562년이라고 본다면, 당시는  막 29세가 된 몽테뉴가 보르도의 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해 10월 어린 샤르르 9세가 군대를 이끌고 신교도가 점거하고 있는 루안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몽테뉴는 그 포위망 속에 있었다. 앙리 4세가 낭트 칙령에 서명함으로써 길었던 내란을 종결한 것이 1598년, 몽테뉴가 59세로 죽음을 맞은 후 6년째가 되는 해였기에 거의 30년을 종교전쟁 속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었었다.  
내란이란 모든 다툼이 국내에서 치러지는지라 전국토가 싸움터가 되어 당사자 보다는 무고한 민중들의 고통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었고. 우리나라에서도 6.25 전란을 경험해본 세대라면 뼈에 저리게 각인되어 있을 고통이 아니던가.
내란의 시대를 산 한 인간의 운명으로서 어쩔 수 없이 목격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부조리한 참상들. 전란이 가져다 준 갖은 참혹한 참상들은 몽테뉴가 그렇게도 간절하게 바라던 평온한 삶을 비웃기나 하듯이 바로 그의 삶 위에 덮쳐왔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가 종교전쟁의 난맥으로 말미암아 믿을 수 없을 잔혹이라는 악덕이 구체적으로 차고 넘치고 있는 시기를 살고 있지만, 우리가 날마다 경험하고 있는 현실보다 극단적인 보기는 고대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렇다고 내가 거기에 길들여졌다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인간을 죽이는 쾌락을 위해서만 사람을 죽이는 것과 같은 극악무도한 영혼의 소유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직접 목도할 때까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렇다 할 적의도 없으면서 덕도 되지 않는 터에, 다른 사람의 수족을 자르거나, 멀쩡한 정신으로 밑도 끝도 없는 고문이나 살인 방법을 생각해내는 인간, 뿐만 아니라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인간의 불쌍한 몸짓과 동작, 비통한 울부짖음과 같은 색다른 광경을 즐기는, 단지 그것만을 위해서 연구를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들이, 나에게는 쉽게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늘 밤은 배신을 당해서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다만 그 일이 공포도 없고 고통도 없기만을 운명에게 바라면서 잠자리에 드는 일이 몇 차례였는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주의 기도를 드리고는 ”극악무도한 병사가 이렇게도 잘 경작되어 있는 밭을 빼앗아버릴 것이다!(베라기우스)“하고 나는 큰 소리로 외치곤 했다.”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혹 무슨 자료가 없을까하고 이따금씩 뒤져보는 책들 가운데 몽테뉴의 <에세이>도 끼어있다. 찾던 자료가 아닌데도 문장에 이끌려 시간가는 줄 모르고 파묻혀버리는 수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언제나 현재형의 글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자상하고 고운 그의 마음씨 가 배어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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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는 잔혹(殘酷)을 미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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