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10-1.jpg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다./해는 여전히 뜨고 또 여전히 져서/ 제 자리로 돌아가며, 거기에서 다시 떠오른다.//   바람은 남쪽으로 불다가, 북쪽으로 돌이키며,/ 이리 돌고 저리 돌다가, 불던 곳으로 돌아간다.//...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 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 날 것이다./ 이 세상에 새 것이란 없다.”(전도서 1:4-9)
코헤렛은 역사를 알고 있다. 아니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의 눈은 소용돌이치고 있는 현실을 응시하며, 동시에 그들의 과거와 역사를 성찰함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 몸부림친다. 그런 의미에서 코헤렛은 그가 살던 시대 이전에 살았던 많은 예언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그는 예언자가 아니다. 아니 예언자인 척 하지 않았다.   
히브리 사람들은 율법을 하나님의 명령이라며 지키고, 그들의 과거를 하나님의 뜻이라며 기억하였다. 그 시대 시대마다 선각자들이 있어, 고난과 실패로 얼룩진 민족의 역사를 기록하여, 민족의 유산으로 삼고 자녀들에게 가르쳐 그 역사를 정확하게 다음 세대에 물려주려 했다. 이런 선각자들을 그들은 예언자라 일컬었다.
오랜 세월을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민족의 역사적 전승과 이야기들은 후에 역사가들의 손에서 수집 정리 기록되었고, 그 기록들에 다시 이어지는 시대마다의 민족적 경험들이 첨가되었다.
역사가들은 다음 세대가 알 수 있도록 주석과 해석을 덧붙였다. 그들은 민족의 과거를 기억하고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일을 하나님의 율법이라 생각했다. 그러는 사이 히브리인들은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들과 그들 주변에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역사적으로 볼 줄 아는 유일한 민족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제사는 단순한 기복행위가 아니라, 과거의 체험과 역사를 민족의 기억으로 이어가는 공동체적 축제이기도 했다. 해마다 되풀이 되는 제사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은 과거를 기억하고 조상들의 체험을 그들의 것으로 이어나갔던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천지창조의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히브리 민족의 탄생, 이스라엘 국가의 성립과 멸망, 포로로 지냈던 바빌로니아에서의 체험, 조국 팔레스틴에의 귀환과 수도 예루살렘의 재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들을 전해주는 구약성서는 고대역사에서 달리 그 예를 찾아 볼 수 없는, 그들만의 역사일 뿐만이 아니라, 그 역사를 통해서 그들만이 들을 수 있었던 하나님의 음성의 기록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작업은 길고 긴 민족의 역사를 그 순서를 따라 역사적으로 관찰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독립적으로 일어난 사건과 사건들 그 너머에 있는 서로의 유기적 연관성을 읽으려 했다. 히브리 역사가들이 하는 일은 단순히 과거 사건들의 나열에 머물지 않았다. 그 역사의 배후에 있는 의미, 즉 하나님의 뜻을 파악하려 했던 것이다. 그들은 그런 일을 하는 이들을 예언자, 즉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라 불렀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코헤렛은 역사가도 예언자도 아니었다. 그는 시인이었다.   
전도서 7장 14-20을 읽으면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 한다는 공자의 말을 떠올렸다.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고 공존하려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和)는 관용과 공존을 말한다. 이와 반대로 동(同)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이다.
“생명체에는 직선이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아메바가 생명체의 기본 형태라고 한다면, 우리는 아메바를 보면서 생명이 어떤 것이지를 느낄 수 있다.  
음악을 들을 때, 유니슨이나 관악기의 투티는 힘이 있고 호소력이 강해서 듣기에 좋다. 그러나 오래 자주 듣게 되면 지루해지거나 귀에 거슬리게 된다.
그러니까, 일사불란하게 한 목소리로 호소하는 유니슨이나, 투티도 결국은 음악전체의 다양성을 위한 여러 자료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이상의 역할을 하려고 할 때, 밉상스러워 진다. 일본말로 “쯔루노 히도고애” 라는 말이 있다. “두루미의 외마디면 그뿐”이란 말로, 군주나 세도가가 한마디 하면 모든 논의가 끝이 난다는 뜻이지만, 반대로 “두루미는 단지 그 한마디 밖에 모른다.”는 뜻도 된다.
더위에는 코헤렛이 제격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noin34@naver.com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코헤렛은 예언자가 아니었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