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1.jpg
2004년 3월 22일자 “검증의 엄중한 책무”을 시작으로 기독 지성인의 시각에서 “임성택 교수의 시사프리즘”이라는 창을 통해 교회와 동역자들을 향하여 이야기하다가, 2010년 9월 9일 “시사프리즘을 닫으며”라는 글을 마지막으로 그 창을 닫았다. 그 이유는 부족한 사람이 소속한 대학의 총장에 선임되었기 때문인데, 이제 그 소임도 다하고 또 그 후의 개인적인 어려움을 해소한 이후, 이제 기독언론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자 새로운 마음으로 이 창을 다시 열었다. 그 동안 수많은 분들의 격려와 도전을 받으면서 기독언론의 소중함을 경험하였으며, 건전한 기독지성의 비판과 대안제시가 한국교회를 새롭게 이끌어 가는 한 축이 되어야 할 것을 다짐하면서이다.
“검증의 엄중한 책무”라는 글로 시작한 이 프리즘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각 분야 우리 사회 지도층이 얼마나 신중하게 처신해야 하는 지를 밝히고 싶었고, “Acid Test”라고 불리는 “가장 혹독하고 철저하게 학술적, 사회적, 역사적으로 어떤 대상을 검증하는 것”이 특별히 우리 교회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심정으로 글을 써 왔다.
개인이나 집단이 그 사회에서도 최고의 존경과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당대의 “Acid Test”를 통과해야 한다. 미국 의회 정치의 청문회 기본 정신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위층과 사회 지도층에 대한 도덕과 윤리적 평판의 잣대로서는 법률에 의한 재판의 판결보다 더 권위를 가진다. 아무리 동료 의원이라도 비리 혐의에 연루되면 가차없이 체포동의안을 가결시키는 그들의 선진 정치의식의 배경도 바로 시민사회의 “Acid Test”를 의식한 것이다.
주 사회의 지도계층의 생명은 능력보다도 도덕성이다. 도덕성에 기초하지 않는 능력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것이며 그것은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가치일 수밖에 없다. 조선말기 뛰어난 인재들이 그 능력으로 나라를 매국하는 앞장섰던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 가를 우리는 새삼 되새겨보아야 한다.
이렇게 중요한 검증은 국회 청문회나 청와대 인사라인의 몫만은 아니다. 어쩌면 사회적 검증의 책무는 언론에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누가 뭐라고해도 검증의 중심에 언론이 있다. 언론은 집요한 추적과 비평과 여론의 집약으로 썩고 곪고 상하기 쉬운 사람과 구조에 대하여 현미경 같은 정밀함과 수술칼 같은 예리함으로 다가가야 한다. 언론이 이런 일들을 수행할 능력이 있고, 법적으로 그것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때 비로소 정치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이 주의하고 조심하여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도 언론이 권력화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며 실제로 현실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히 신문은 논리의 공교함만으로 멋부리는 글을 버려야 하고, 집단의 이익을 감싸는 필(筆)도 거두어야 하며, 야당이든 여당이든, 정부든 민간이든 가리지 말고, 광명한 미래를 위하여 정론직필(正論直筆)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나아가 기독교 언론은 여기에 하나님의 나라의 실현이라는 기독교적 책무를 더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논리적 허구를 쫓지 말고, 외부의 교활하고 무지한 힘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검증의 엄중한 책무를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언론은 누구를 감옥에 가둘 권한이 없지만 사회적, 윤리적 감옥에는 가둘 수 있으며 또 석방시킬 수 있다. 비록 법정이 무죄로 석방해도 결코 사회적으로 윤리적으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을 언론은 가두어야 한다. 아무리 실정법이 정죄해도 인간의 인간됨을 위해 투쟁한 사람은 풀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언론의 사회적 책무이다. 바로 이 시점에서 Acid Test의 주역들의 새로운 다짐과 결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 필자는 공허한 논리나 주장으로 글을 채우지는 않을 것이다. 구체적인 현실과 부딪히며 개인과 개교회 그리고 집단자체를 해부하고 논고할 것이다. 여기에서 아픈 이들과 억울하다고 하는 이와 토론하고자 한다. 그리고 결코 누구를 해하거나 폄훼하지 않을 것이며, 격려하고 세워주며, 함께 가는 동반자의 길을 고민할 것이다. 앞선 자가 아닌 동행자이며, 가르치는 자가 아닌 동역자의 길을 찾을 것이다. 이 글로 독자 제위와 다시 만나게 됨이 심히 기쁘다.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시사프리즘을 다시 열며…!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