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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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을 뒤지다가 <일본어로 번역할 수 없는 세계의 말들>이란 책을 만나 코티쉘토(COTISUELTO)란 단어를 알게 되었다. “카리브 스페인어인데, 셔츠 아래 깃을 절대로 바지 안으로 집어넣지 않으려는 사나이를 이르는 말”이라 했다. 얼른 ”칠칠치 못한 녀석“이란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정작 삶이나 옷차림이 리렉스 한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지닌 단어라지 않는가.   
언제부턴가 이 늙은이도 트레이닝 바지에 아무렇게나 셔츠를 걸치고 나서는 노릇이 잦아지게 되었다. 딴은 코티쉘토로 봐 주겠거니 하는 배짱이 생겨난 것일까.  
어느 해 여름 냉면집을 나서다 후배 목사와 마주쳤다. “시원하게 입으셨습니다.”하는 인사말이 약간은 고깝게 들린 것은 아마도 “들켰구나!”하는 자책 때문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은 깔끔한 정장차림이었는데, 나는 반바지에 셔츠 깃을 펄렁이며 샌들을 끌고 있었으니.
발길이 닿는 대로 주일예배에 참석하다보면 예정에 없는 축도 요청을 받는 경우가 있어, 서로의 번거로움을 덜자고 의식적으로 정장하지 않노라하는 나름의 핑계가 더러는 먹히고 있다고 자위해오던 터에…….
젊었을 때 가까이 하지 않았던 알랭의 <행복론>을 요즘에야 자주 들쳐보게 된다. 조용하고 격조 있는 그러나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묻어나고 있는 문체들이 늙은이를 리렉스하게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93꼭지 중에서 <하품 솜씨>를 골라본다.    
“벽난로 곁에서 개가 하품을 한다면, 그것은 이것저것 생각하는 일은 내일로 미루라는 사냥꾼에 대한 경고가 된다. 품위에 신경을 쓴다거나 주변을 개의치 않고 하품을 하는 이 생명력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덩달아 흉내를 내고 싶어진다. 함께 자리하고 있는 모두가 기지개를 펴고 하품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잠으로 이끄는 전주곡이 되어준다.
하품은 피로의 징조가 아니라, 내장 깊숙이 공기를 끌어들여, 긴장과 논쟁으로 파고드는 정신과의 이별을 고하자는 몸짓이다. 이 정력적인 전환으로 말미암아 신체라는 자연이 삶에 만족하게 되고, 생각이라는 일에 지쳐 있음을 드러낸다.
알랭의 이야기가 생활인들로 하여금 바깥세계와 담을 쌓게 하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한껏 마음을 풀어헤치고 바깥세계를 들락거리면서 유연하게 바깥세계와 관계를 이루어가려하는 그런 몸짓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다음 문장을 보자. “하품은 긴장이나 집중에 대한 생명의 복수이고, 건강의 회복이다. 하품이 전염된다는 것은, 하품이 진지함을 포기한다는 것이고, 한껏 부풀려서 느긋함을 보여주는 몸짓이기도 하다. 줄서기는 포기해도 좋다는 신호이니 모두들 그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보면, 하품과 더불어 진지한 생각은 사라지게 마련이 아닌가”     
<하품 솜씨>라는 짧은 글이 하품을 하는데도 정해진 기법이나 요령이 있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품이란, 그 상황이 지니고 있는 공기와 심신이 처한 사정을 따라, 거의 자연적으로 연출되는 현상임을 보여주는  그대로 인정해보잔 말이 아닐까.    
전철에서 맞은편에 앉은 젊은이가 하품을 하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너무나 자주 보게 되는 광경이어서 더러는 당황스러울 때가 없지 않지만, 이제부터는 나도 크게 입을 벌려 맞음 하품을 해 주리라 다짐해본다.
최근 일본 소도시의 한 중학교 교사가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체육복 상의 아래 깃을 바지 안으로 에 접어 넣은 그룹과 그렇지 않은 그룹이 함께 운동을 하게 한 후, 체온을 재어 보았더니, 바지 안에 상의 아래 깃을 집어넣지 않은  다시 말해서 코티쉘토 그룹의 체온이 다른 그룹의 체온보다 자그마치 4도나 더 높게 나타났다고 보고했단다. 그러고 보니 1940년대 후반 서울시내의 남자 중고등학교의 여름 교복이 코티쉘토를 지지하는 편과 반대하는 편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양편은 각기 다른 교육적 주장을 내걸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불행하게도 나는 반 코티쉘토파를 대표하는 쪽에 있었다.  
이 늙은이도 이제는 당당한 코티쉘토가 되어 남의 하품에 전염되기 전에 먼저 나의 하품 솜씨를 한껏 뽐내보리라 다짐해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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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티쉘토’와 하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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