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10(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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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1483-1520)의 걸작 <시스티나의 성모>를 감상하노라면, 화폭 아래쪽에서 당돌한 모습으로 눈망울을 굴리고 있는 아기천사들의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다. 이미 광고로 우리에게 친숙해지긴 했지만, 당장이라도 ‘포탈’에 <시스티나의 성모>를 입력해보시라.  
녹색 커튼이 열리면서, 성 식스투스와 성 바르바라 사이, 성모자가 구름을 헤치고 나타나 있는 광경이 퍽이나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의 눈은 성모자를 쳐다보고 있는 아기천사의 모습에 멈추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난간에 손을 얹고 있는 쪽이나, 턱을 고인 채로 뭔가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쪽이나, 곧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아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함부로 화살을 겨냥하는 큐피드의 모습이 연상되기도 하는 아기천사의 장난기를 보며, 천사들이 이래도 되는가 하는 걱정이 들긴 하지만. 잠시 눈을 그림 위쪽으로 돌려보시라. 구름과 범벅이 되어있는 진짜(?)천사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볼 수 있을 터이니.  
천사는 흔했다. 중세 이후 르네상스기 까지 서양의 그림이나 조각에서는 천사가 없는 작품을 골라내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그 천사들이 모두 어디로 가버렸느냐며 탄식하는 이들이 없는 것은, 아마도 천사들이 화면을 벗어나 우리들 주변으로 내려와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망령된 생각을 해본다. 
“천사는 육체를 지녔다.” “아니다, 영적 존재다.”하는 주장들 사이에서 천사는 흔들리며 스스로의 역사를 엮어왔던 것 같다. 그러나 <시스티나의 성모> 아래쪽에서 장난기를 뿜고 있는 아기천사들처럼, 현실적으로 우리들 곁에 실재하는 천사들은, 신학적인 논의들과는 관계없이, 우리와 호흡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한숨을 곱씹기는 해도, “천사는 죽었다.”하고 단언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으니 말이다. 
릴케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었다는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는 천사들이 날개를 단 귀여운 어린이가 아니라, 중년의 남성들로 성장하여 등장하고 있다.
혹 <시스티나의 성모> 하단에서 눈망울을 부라리고 있던 아기천사들이 타락해서 이 땅에 떨어진 것은 아닐까 하고 짐작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약간의 배려를 더해서 “타락”이란 말 대신 “정착” 혹은 “귀화”라는 표현을 써주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영화에서 천사 다미엘이 스스로 이 땅에 귀화할 것을 결단한다. 밀턴의 <실낙원>의 루시퍼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다미엘은 영웅을 흉내내려하지 않는다. 그가 지상으로 떨어질 때, 천상에서는 필수품이었던 갑주가 함께 떨어진다. 다미엘은 그것을 고물상에 팔아 체크 무늬 점퍼를 사서 입는다. 떨어지며 입은 머리 상처의 붉은 피조차도 기쁨의 자료가 되어준다. 색이 없는 세계를 살아왔던 천사에게 선명한 원색이 갖는 의미를...
지상에는 귀화해서 인간이 된 천사들이 꽤나 많단다. 그 중의 하나가 <형사 콜롬보>로 우리에게 친숙한 ‘피터 포크’. 이미 30년 전에 뉴욕에 정착했단다.
자신의 욕망을 동료 천사들에게 고백한 다미엘은 서커스에서 만난 마리온의 뒤를 좇아 그녀의 트레일러로 들어간다. 그녀는 천사를 볼 수 없지만, 천사는  그녀의 마음의 소리마저 들을 수 있다. 고독한 그녀가 사랑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까지도. 이미 마리온은 다미엘이 불어넣어준 영을 지니게 된 것일까... 천사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거나 고무할 수는 있다 하지 않는가. “사랑하고 싶다!”하고 그녀가 두 번 중얼거리자 화면은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변환한다.      
영화의 중반, 삶에 지친 젊은이가 높은 빌딩 옥상에서 자살하려한다. 측은히 여긴 카시엘이 가만히 다가간다. 그럼에도 청년은 뛰어내리고 만다. 그 순간 카시엘은 통곡한다. 젊은이를 붙들어 줄 수는 없었을망정 그의 마음을 움직여 자살을 멈추게 할 수 는 있었을 지도 모르기 때문.
우리 곁에도 원래는 천사였는데, 이제는 대한민국에 적을 두고 있는 인사들이 적잖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들 중 하나에게 전화를 걸어 더위를 어떻게 나는지 물어보아야할 것 같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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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먹은 천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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