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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원래 호탕한 기질과 대범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그러니까 작은 일 따위에 신경을 잘 쓰지도 않았습니다. 옷이 구겨지거나 옷에 뭐가 묻어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한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났지만 제 큰 형님은 어릴 때부터 성격이 아주 꼼꼼하고 까칠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정반대였습니다. 밥 속에 머리카락이 있거나 밥 먹다가 돌을 몇 번을 씹어도 씹은 돌까지 맛있게 먹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목회와 연관되는 일에는 아주 예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신문에 글을 쓴다든지, 설교 원고를 정리할 때는 성격이 보통 까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게다가 한국교회 생태계를 지키고 공적 사역을 하면서부터 불면증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주로 저 혼자 있는 저녁에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한 가지에 집중하고 몰두하면 그 생각의 성에 갇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극우적인 이념에 빠진 사람들은 지금 곧 대한민국이 무너지고 공산화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서 끝까지 특정집회를 고집하거나 이어갑니다. 저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한국교회를 생각하면 오지도 않은 내일을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되어도 한국교회는 과연 얼마나 모일 것인가, 예배가 언제쯤, 얼마만큼 회복될 것인가.” 우리 새에덴교회나 걱정할 일이지, 한국교회를 지나치게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주는 날밤을 새어가며 ‘포스트 코로나, 한국교회 미래’라는 책을 썼고, 돌아오는 월요일에 세미나까지 하겠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목요일 저녁에도 불면의 밤과 싸우는 중 갑자기 제가 쓴 ‘청연’이라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밤새 잠 못 들며 그리움에 뒤척이다 / 홀로 일어나 걷는 새벽바다 / 발끝을 적시는 하얀 파도의 포말은 / 모래 해변에 써 놓은 너의 이름을 지우고 / 나의 그리움은 푸른 청연이 되어 / 파도에 쓸려 멀리 멀리 사라져가리 / 새벽녘 밀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을 … (중략) … 잊으려 할수록 더 목마름이 되어 / 나를 온통 덮어버리는 당신 /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끈질긴 인연의 끈으로 / 마음까지 동여매는 그대 / 아, 그대와 나의 푸른 청연이여’ 여기서 청연이라는 말은 ‘맑고 숭고한 인연 혹은 관계’라는 뜻입니다. 시란 시인이 쓰지만 이미 발표를 해버리면 시인의 것이 아니라 독자의 것이 됩니다. 그래서 저도 독자의 눈으로 그 시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저와 한국교회 공적사역은 청연의 관계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한국교회를 향한 저의 걱정은 지나친 듯 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악을 대비하지 않는 사람은 앉아서 최악을 기다리는 상황을 맞게 되기 때문이죠. 그렇습니다. 부질없는 걱정, 오지도 않은 내일을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청연의 관계라면 지나치리만큼 걱정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최악을 대비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 저는 코로나 이후에 한국교회가 회복되는 미래를 놓고 걱정하고 또 걱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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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4-2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상처를 주께 가져오면 꽃이 되어요···”
    15일 늦은 밤, 총선 결과를 보며 “아쉽게 낙선한 분들은 얼마나 상처가 클까”하는 생각해 봤습니다. 우선 우리교회에서 출마하신 분들도 여야를 막론하고 낙선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당선된 분들보다 낙선자들에게 더 많은 전화를 돌려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쓴 “꽃과 예수”라는 시를 읽어봤습니다. “너의 상처를 내게로 가져오면 꽃이 되고/ 너의 눈물을 내게로 가져오면 진주가 되고/ 너의 한숨을 내게로 가져오면 노래가 되리니/ 아무리 힘들어도 너를 버리지 마라/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너를 끌어안고 내게로 오라/ 세상이 너를 버렸을지라도/ 나는 너를 꽃처럼 껴안고…하략…” 시를 읽으며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낙선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예수님께 가져가면 얼마나 좋을까, 그 눈물과 한숨을 예수님께 가져가면 꽃이 되고 진주가 되고 노래가 될 텐데…”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특히 저는 기독자유통일당의 결과를 보고 많은 상처를 받았습니다. 4년 전에는 제가 기독자유당을 직·간접적으로 도왔습니다. 왜냐면 보수정권도 한국교회에 대한 목소리를 듣지 않고 할랄식품산업이나 종교소득과 세법안을 추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가치관과 세계관을 실현할 정당과 국회의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한국교회가 너무 많은 정치적 리스크를 입었기 때문에 그때의 상황과는 달랐습니다. 지금의 정치적 지형, 기후, 바람의 방향을 살펴볼 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를 하는 것과 같지요. 만일 병법의 대가인 손자가 한국교회의 지도자였다면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고 말리고 또 말렸을 것입니다. 물론 신앙적으로만 보면 패배했다고 할 순 없죠. 순수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한국교회를 지키기 위한 동기로 노력했다면 말입니다. 저는 앞장서서 일했던 그분들의 신앙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사회적 포지션에 있어서 교회 위상이 추락되고 이미지와 브랜드가 실추됐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더구나 한국교회는 코로나19 때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되었더라도 그 몸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면 주님께서는 여전히 꽃처럼 껴안아주신다는 저의 시구절이 참으로 위로가 되었습니다. 상처투성이, 피투성이가 된 한국교회가 자신을 끌어안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꽃처럼 껴안아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요즘 저는 코로나19를 맞으며 잠 못 이루는 밤을 더 많이 겪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때문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한국교회를 염려하고 걱정할 뿐입니다. 제가 이따금씩 탈모방지를 위해 병원에 가서 수면 마취를 하면서 두피 영양주사를 맞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마취 상태에서도 제가 그대로 소리를 지른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한국교회여 일어나라. 아멘!” 오죽하면 몇 년 전 성대수술 후에 마취에서 깨어나는 중에도 주님을 부르짖고 교회를 향한 저의 사명을 외쳐댔겠습니까. 그러나 저도 한국교회를 사랑하고 염려하기 때문에 상처를 입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꿈에서라도, 그 상처와 아픔을 주님께 가져가고 싶습니다. 꽃과 진주와 노래를 선물로 받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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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4-19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
    제가 쓴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집이 지난주 10쇄를 인쇄하였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때에, 고립된 사람들과 소통하고 외로움을 어루만지는 서정시들을 써서 서점가에서 반향이 큰 것 같습니다. 시대의 아픔을 끌어안는 제사장의 가슴과 미래의 희망을 제시하는 예언자의 시선으로 ‘코로나19’, ‘마스크’, ‘손 소독제’ 등과 같은 시를 쓰고 마지막에는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라는 코로나19 치유와 극복을 염원하는 기도시를 썼습니다. “부러진 갈대를 다시 싸매시며 / 꺼져버린 등불을 다시 켜시는 분이시여 / 갈대들의 신음소리가 아우성치고 / 켠 등불을 끄려는 세찬 바람이 / 3월의 봄을 아직도 겨울밤이 되게 하고 있습니다 / 차가운 달빛에 가슴마저 시리게 한 겨울광야 / 상한 갈대들은 코로나19에 모두 쓰러져가고 있습니다 / 거친 눈보라에 등불마저 깜박거리고 있습니다 / 주여, 언제쯤 봄이 오는 것입니까 / 언제쯤 햇살 눈부신 아침이 오는 것입니까 / 아직도 닭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폐허의 밤 / 삶이 아무리 아파도 / 상한 갈대가 꽃으로 피어나게 하시고 / 부러진 갈대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떠오르게 하소서 / 꺼져가는 등불이 아침의 태양으로 밝아오게 하시고 / 코로나19가 사라진 후 / 잔인한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한 4월의 봄이 오게 하소서.” 저부터도 코로나 사태가 3월 초면 다 끝날 줄 알았습니다. 개학도 제때 할 줄 알았습니다. 저도 신이 아닌 이상 늘 미래를 예단할 수 없고, 평소에 긍정적으로 사는 사람이라 잘 마무리 될 줄 알았는데 신천지 집단감염 사태가 터져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3월의 봄도 겨울밤이 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아니, 사람들의 마음이 상한 갈대가 되어 ‘코로나19’라는 바람에 다 쓰려져 간것입니다. 3월에 눈은 내리지 않았지만 코로나라는 거친 눈보라에 영혼의 등불마저 깜박거리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다 아픈 삶을 경험하게 되고 갈대처럼 인생이 부러지고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아무리 아파도 꽃이 피어나듯이, 갈대가 아무리 상하고 부러져도 꽃이 피어나기를 기도하며 갈대가 밤하늘의 별이 되게 해 달라는 기도시를 쓴 것입니다. 코로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트롯이라도 TV조선에서는 새로운 포맷으로 발상의 전환을 하니까 온 국민들을 감동시켰던 것처럼, 코로나 이후에 부러진 갈대 같은 교회들이 밤하늘의 별이 되기를 염원한 것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예배가 중단되고 예배의 등불이 꺼져가는 교회에 아침의 태양이 떠오르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울한 4월의 봄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더 가져오는 역설적 4월이 되기를 꿈꾸어 보았습니다. 오늘은 부활절을 맞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죽음의 권세를 박살내시고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잔인하고도 역설적인 부활의 생명과 은혜가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주여, 우리의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 부러지고 상하고 아프도록 해어져 있는 갈대가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별이 되게 하소서. 다시 한국교회가 민족의 소망이요, 태양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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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4-12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그리움의 마음에 꽃잎이 쌓이죠”
    요즘 얼마나 힘드신가요? 코로나 위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는 코로나 공포증으로 사람들이 마냥 두렵고 불안해했습니다. 그러나 공포와 불안감이 계속되니 우울함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블루(우울증)라는 말이 생겨났지요. 그런데 이런 코로나 블루 중에도 어김없이 목련은 기지개를 폈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앞을 다투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우리가 우울해 하는 사이에 꽃들은 사무치도록 봄을 그리워했던 것입니다. 제가 산행을 하던 중 진달래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문득 다가올 만우절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만우절에 저의 부고 소식을 몇 군데 전해볼까 하는 생뚱맞은 생각이 스쳐갔습니다. 어차피 인생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우리는 날마다 십자가에 죽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니까요. 그런 생각과 함께 우울한 분위기를 잠깐이라도 폭소의 분위기로 만들고 싶어서 저의 부고 소식과 함께 맨 밑에 “즐겁고 행복한 만우절 되세요”라는 문자를 보낸 것입니다. 또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 그랬더니 친구 한기승 목사님은 전화를 해서 이렇게 화를 내는 것입니다.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네, 이 사람아. 왜 그런 장난을 해요? 문자를 보는 순간 가슴이 너무 떨렸어.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 내가 이 기회를 통해 정말 가슴으로 소목사를 사랑하는구나 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네.” 수요오전예배 시간이기 때문에 전화가 안 되니까 저와 동문인 이규섭 목사님을 비롯하여 문자를 받은 목사님들이 이런 답문을 보내 왔습니다. “소목사님, 앞으론 이런 장난을 하지 마세요. 내가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김종준 총회장님께서도 저와 통화가 안 되니까 부서기에게 “부총회장이 죽었다네. 어떻게 하지”라며 전화를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분은 이런 글도 올렸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올해 총회장이 되실 분입니다. 공적인 분이 우리를 이렇게 놀래키면 어떻게 됩니까? 정중히 부탁드리니 글을 내려 주십시오.” 그 분들의 반응을 보면서 저의 살아온 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 내가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았구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주고 격려해주고 있구나.’ 저는 미안한 마음에 그분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드리거나 문자를 보내 드렸습니다. “제가 왜 그랬는지 아십니까? 너무나 그리워서 그랬습니다. 목사님, 장로님이 너무나 보고 싶어 달려가고 싶어 그랬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제가 먼저 달려가겠습니다. 무슨 일이 없더라도 목사님, 장로님을 향한 제 마음에 하얀 목련 꽃잎, 노란 개나리 꽃잎, 연분홍진달래 꽃잎이 쌓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지난 12월에 우리 교회 옆 담장 길에 앙증맞게 핀 개나리를 보면서 이런 시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운 사람이 먼저 달려 나가요(중략)... 봄이 그리워 / 사랑이 그리워 / 그대가 그리워 / 내 마음의 개나리 꽃잎 위에 쌓인 / 하얀 눈꽃들.” 저는 어릴 때부터 귀신이야기도 잘하고 산에 가서 친구들 놀래키는 장난도 많이 하였습니다. 대통령 리더십 전문가인 최진 박사에 의하면, 이 시대의 지도자에게는 유머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물론 이번에는 너무 극단적 유머였긴 했지만 제가 더 생명을 사랑하고 저의 지인을 사랑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지금도 그분들에게 달려가고 싶습니다. 봄 꽃잎에 사랑의 연서를 써서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젯밤 꿈에는 그 분들을 향해 바람에 꽃잎을 날리는 꿈도 꾸었습니다. 이제 저는 저를 아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빚진자가 되어 그들을 향한 제 마음 속에 하얀 목련 꽃잎, 노란 개나리 꽃잎, 연분홍 진달래 꽃잎이 쌓이도록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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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4-06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다시 꽃으로 만날 순 없을까요”
    올봄에 시집을 내려고 작년 가을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시집 출간을 당분간 미루고 있었는데 시선사에서 연락이 온 것입니다. 시선사는 한국 서정시들만을 다루고 문학 계간지를 내는 중량감 있는 출판사입니다. 그런데 제가 한국 서정시인 100에 선정이 되어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의 47번째 시집으로 출판하고 싶다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사실 처음에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선광현 목사님도 시집을 내자고 했다가 다시 조금 더 생각해 보자 하고 고심을 많이 했습니다. 이유는 작년 가을부터 정말 어렵게 시집을 준비했는데 서점가에서 반응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샘터에서 ‘꽃씨’, ‘다시, 별 헤는 밤’, ‘사막으로 간 꽃밭 여행자’ 등을 냈을 때는 일반 서점가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었거든요. ‘다시, 별 헤는 밤’으로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에 들어가도 샘터처럼 대중적 시를 출판하는 출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서점에서 반향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고심 끝에 시집을 내기로 했습니다. 왜냐면 서점가의 반응을 떠나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에 수록된다는 것 자체가 역사에 남는 것이고 전문 직업 시인도 아닌데 목회자로서 한국 서정시인 100인에 들어가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존 시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손 소독제’, ‘마스크’,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기도시 ‘갈대가 별이 되게 하소서’ 등을 새롭게 써서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다’라는 시집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코로나 때문에 문화예술계가 다 정지되어 버린 상황에서 무슨 시집을 내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암울한 일제강점기 때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청록파 시인들의 서정시를 읽으며 상처를 치유 받고 새로운 희망을 품었습니다. 우리도 코로나19로 인하여 우울하고 암울한 상황일수록 오히려 시집을 읽으며 감성의 정화와 정서의 순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트로트나 발라드 같은 대중음악은 대중예술이라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시는 고급예술입니다. 그렇지만 시는 고급예술을 하는 사람만 읽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제사장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하고 동시에 희망을 주는 선지자적인 예언적 메시지가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코로나의 고통 속에서 제 시를 읽으며 위로와 치유를 받기를 바라지만,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고 내다보는 시를 썼습니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꽃같은 영혼들이 갈대로 헤어졌잖아요. 꽃같이 만난 우리가 갈대로 헤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갈대로 헤어져 있더라도 코로나가 물러가면 다시 꽃으로 만나자는 염원을 담은 것입니다. 코로나 위기 때 저의 시를 통해서 한 사람이라도 위로와 치유를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꽃으로 만나 갈대로 헤어지지 말고 갈대로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꽃으로 만나는 회복과 축복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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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29
  • 4.15 총선에 부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세계는 바이러스와 전쟁을 선포하고 몸부림을 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이러한 바이러스 예방책과 치료에 있어서 최선을 다 하고 있다. 국민 모두는 이러한 성실한 정부 정책에 협력하고 각자 자신들의 예방책을 잘 실행하여 지혜롭게 극복해 나갔으면 한다. 이런 와중에서도 미래한국당 이라는 가짜 꼼수정당을 만들어 국회의원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정당은 빼고 선거에 임했으면 한다. 친일과 군부독재, 사기와 국정농단의 잔재 세력을 이 번 기회에 청산하지 못하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 이러한 반역사적이고 사기 가짜 정당과 합일하는 소위 기독교 개신교 사이비 이단 세력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상품화 하여 창조의 완성에 반하는 사탄과 암흑의 역사에 동참하고 성직자의 이름을 팔아서 세속적 이익을 추구하는 반기독교 교회 세력들의 정체를 분명하게 파악해서 엄하게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거짓되고 악한 세력들은 바이러스보다 더 추악하다. 평화는 진실과 정직의 토대 위에서 시작된다. 평화는 악의 본질을 잘 파악하고 단호하게 물리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평화는 역사적 정의와 진정한 생명 사랑과 진리를 왜곡하지 않는 실천에서 존재할 수 있다. 역사와 교회 안에는 거짓과 어둠의 세력들의 바이러스가 범람하는 가운데 생명의 온전함을 위협한다. 국가의 바이러스 예방과 치료를 위해 사투하는 가운데서도 거짓된 세력들은 대규모 시위를 통해서 이러한 정부의 흠집 내기를 위한 광란의 굿을 벌인다고 한다. 이번 바이러스 사태로 많은 민중들이 고통르 당하고 어려움을 살고 있다. 재난과 재앙이 오며 가난하고 어려운 민중들의 고달픔은 가중된다. 서로가 위로하고 격려하며 필요한 물품과 마음을 나누는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필요하다. 살고 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은 아무리 말하여도 부족함이 없다. 한 생명에 대한 사랑과 나눔의 실천이 필요하다. 봉준호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4관왕이 되었다. 그 영화의 유명세보다 영화의 내용이 시대적인 양극화를 잘 연출하고 표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게 되고 오만함 미국 영화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가치를 수용하게 되었다고 본다. 배우들의 연기력과 표현력도 훌륭한 것이었지만 특히 작품상을 수상한 것이 바로 시대적 성격을 잘 알게 해 준 것이라 본다. 오늘날 세계와 대한민국의 문제는 경제적 문화적 삶의 양극화가 심화 확대 재생산되며 그 골을 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가진 자와 힘 있는 자가 없는 자와 약한 자들을 더욱 착취하는 사화와 삶의 구조가 우리 시대의 문제이며 역사적인 문제임을 잘 지적하고 밝힌 점에서 기생충의 영화가 하나의 큰 문화적 공헌임을 알게 된다. 자한당은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 등을 문화적 블랙리스트에 올려서 어려움을 겪게 한 역사를 모른 채 하며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을 총선에서 이용하려는 몰염치하고 파렴치한 행위들을 하고 있다. 권력의 쟁취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러한 반역사적 세력들을 청산하는 일이 4.15 총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가라지와 알곡은 함께 자란다. 그러나 가리지를 무성하게 하면 알곡은 얻을 수가 없다. 진실과 거짓은 함께 공존한다. 그러나 거짓을 그대로 방치하면 진실이 거짓과 동일시되고 묻히게 된다.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의 완성을 통해서 그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자본과 권력에 공생 기생하며 살아 온 교회와 종교 세력이 썩으며 그 냄새를 감당하기 어렵다. 중세 천 년의 교회가 불의하고 부패하며 독단적인 세력이 되자 그러한 타락한 세력으로부터 구원과 해방을 외치며 종교개혁이 시작되고 혁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30년의 종교전쟁은 수많은 핍박과 억압, 죽음들 피를 요구하였다. 오늘도 그 생명의 진리가 지켜지도록 우리는 기도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공중권세의 암흑 세력은 교묘하고 간교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려 든다. 겉으로는 비단 옷을 걸치고 하려하게 때로는 겸손 한 채로 은밀하게 다가온다. 죽음의 영적 바이러스는 우리들의 신실한 믿음과 삶의 지성소를 파괴하고자 한다. 4.15 총선이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로 우리의 영적 믿음과 정의로운 역사적 판단을 흐리게 해서는 안 된다. 인간들의 유한함이 신이 될 것처럼 해서도 안 되며 신이 역사적 저 너머의 나라의 왕인 것처럼 호도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의 삶 한 복판의 문제에 적극적인 책임적 존재로 살아야 하고 특히 어려움을 당하고 고통을 사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서부터 시작되고 살게 되며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완성될 것이다. 우리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반역사적 바이러스의 재앙을 미리 예방하려면 4.15에 대한 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이 매우 중요한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4.15의 주인의 자격은 첫째로 국민과 민중들에 있으며, 나랏일을 하고자 하는 봉사의 심부름꾼 공복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직과 진실, 정의와 사랑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거짓을 밥 먹듯이 살아 온 사람들, 광주민중들을 학살한 세력과 군부 독재 잔재와 국정 사기와 국정농단 세력들의 후예들에게 다시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 간 세력들에게 정권과 권력의 발판을 주어서는 안 된다. 어린 생명들의 살고자 몸부림하는 모습들을 필자는 아직도 잊을 수 없고 영원히 잊을 수 없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생각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사랑을 잊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다. 권력 쟁취를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파는 파렴치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주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깨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하나님이 명하시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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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27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코로나 이후를 생각해 보셨나요?···”
    지지난주에 저는 CTS ‘한국교회를 논하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주일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주제로 생방송 토론을 하였습니다. 그때 사회자가 저에게 갑자기 “코로나 사태 이후에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가 어떻게 달라지겠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답변을 했습니다. “코로나 이후에 우리 사회의 라이프 스타일이 많이 바꿔질 것입니다. 집단공동체 생활 보다는 재택근무나 개인주의 사회로 변모할 것이고, 사회적 거리두기 분위기는 더 높아질 것입니다. 그 영향이 교회로도 들어올 것입니다. 먼저 교회관과 예배관이 투철한 성도는 코로나로 인하여 그동안 공동체예배를 드리지 못한 목마름과 갈망 때문에 예배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한 것인가를 절실하게 깨닫고 예배를 더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애가 아프고 나면 더 건강해지고 쑥쑥 잘 크듯이 더 건강하고 성숙한 신앙인으로 돌아와서 교회 부흥의 불쏘시개가 되고 헌신적인 사명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관과 예배관이 투철하지 못한 성도는 온라인예배를 드리면서 ‘아, 이렇게 예배를 드려도 되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래서 더 교회에 거리를 두고 가정이나 콘도 같은 곳으로 가서 온라인예배를 드리는 영적 병리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온라인예배가 정당한가, 정당하지 않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온라인예배가 최선은 아니지만, 국민보건과 사회공익을 위해서 과도기적으로 전환한 한 방법일 뿐입니다. 그런데 정말 더 큰 문제는 코로나 이후에도 성도들이 온라인예배의 매너리즘 빠져서 공동체 예배를 회복하지 못할까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경기도에서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 여론조사를 했을 때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난 것 같아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정말 한국교회가 그동안 성경공부나 제자훈련을 열심히 한다고 했지만 무엇이 남았습니까? 이번 코로나 위기를 계기로 한국교회는 다시 건강한 교회관과 예배관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심장에 교회가 얼마나 소중하고 예배가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가를 다시 새겨주어야 합니다. 거대한 폭풍이 일고 나면 바다가 깨끗하게 정화되듯이 코로나 이후에 한국교회가 다시 정화되고 새롭게 태어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신천지 사태를 보면서 진리 전파와 사수의 사명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 니다. 우리가 얼마나 안일하고 사람들의 영적인 욕구를 해결해 주지 못했으면 신천지 같은 이단들이 잘못된 욕망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폐허로 만들고 상처를 주었겠습니까? 그동안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의 영적인 빈 공간을 채워주지 못했던 것을 자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 중 몇몇 교회마저도 집단 감염사태를 일으켜 버려 저는 한동안 멘붕상태에 빠졌습니다. 한국교회는 일제감정기에도 민족의 소망이 되었고 근대화, 산업화의 정신적, 사상적 지주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자체 단체장 뿐 아니라 대통령께서 교회 예배의 강력 저지까지 시사한 상황에서 우리는 예배의 가치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하겠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코로나 위기 속에서 한국교회가 예배의 내공을 더 축적하고 우리 사회를 일으켜 세우는 영적, 정신적 동력을 준비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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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22
  • [소강석 목사의 영혼의 아포니즘] “그렇게 사라질 불꽃이었다면··· ”
    지난 수요일 오후,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면담을 하고 왔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경기도 기독교 총연합회 대표회장 김수읍 목사님을 비롯하여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요즘 같은 위기 시대에는 위기를 과감하게 돌파할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지사께서 과천 신천지 총회 본부까지 가서 신도 명단을 제출받고 가평에 있는 신천지 평화의 궁전까지 직접 가셨던 결기 있는 행동은 높이 평가해야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페북에 ‘종교집회 전면금지 긴급명령’을 검토하고 있다는 글을 올려서 논란을 촉발시켰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개인적으로 전화를 해서 설득을 했습니다. “지사님,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결기 있는 행동은 좋지만 너무 흥분하신 것 아닙니까? 지자체장으로서의 심각한 고민은 인정하지만 그렇게 쉽게 발언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경기도를 대표하는 목사님들과 함께 수요일 오후에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 나름대로는 원만하게 서로 소통하고 우려하는 부분들을 잘 해소하였다고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너무 극단적인 원칙론자들은 야합을 했다느니 굴복을 했다느니 하면서 비판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뒤에서 그렇게 반대의 소리만 하는 분들을 보면 참 부럽습니다. 그 분들은 자기 소리만 내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전면에 나서서 소통하고 설득하며 협의를 하다보면 욕을 먹기도 하고 비난을 받기도 하지요. 더 중요한 문제는 감염에 대한 사회적 우려입니다. 그런데 경기도 부천의 몇몇 교회에서 확진자들이 나오는 상황이 발생해 버렸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교회가 더 자발적으로 대처를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크게 느껴지고 전날 지사님과 면담을 잘 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국회의원은 대통령이 명을 내리고 자치단체장이 그것을 받아서 종교집회를 제한하도록 하고, 부득이 신청을 하는 교회만 허락하도록 하자는 주장도 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무슨 공산국가도 아니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그렇게 복음의 진리와 예배의 가치가 사라질 불꽃이었다면 진작 사라져버리고 말았을 것입니다. 로마시대의 성도들은 카타콤베 지하동굴에 들어가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을 지켰습니다. 동구의 교회, 중국과 북한의 지하교회와 가정교회 등 그 어떤 핍박과 역경 속에서도 예배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에 스페인 독감이 번져서 20여만 명이 죽어나가는 상황에서도 주일예배를 드렸고 오히려 거리로 나가 3.1운동을 일으켰습니다. 6.25전쟁 중에도 예배를 드렸고 광주민주화운동 중에도 예배를 생명처럼 지켰습니다. 다만 지금 우리는 국민보건과 공적 교회로서의 책임 때문에 예배의 정신과 가치는 지키되, 방법을 달리하여 온라인예배로 전환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든, 가정에서 온라인예배를 드리든 하나님과의 관계와 예배의 가치는 생명을 걸고 지켜야 합니다. 설사 한국교회를 향하여 어떠한 행정명령이나, 법적 조치가 내려지든, 예배는 그렇게 쉽게 사라질 불꽃이 아닙니다. 아니 한국교회는 그럴수록 더 모이고 성도들은 더 결기 있는 저항과 연합정신을 발휘할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예배를 향한 불꽃, 하나님을 사모하는 거룩한 불꽃이 더 활활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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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15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예배를 취소할 수는 없지요···”
    예배는 기독교의 본질이요 최고의 가치입니다. 로마의 박해가 극심할 때 초대교회 성도들은 카타콤베의 지하 동굴에 숨어 들어가서 예배를 드렸고, 중국과 북한의 공산당 치하에서도 성도들은 가정교회, 지하교회를 구축하며 끝까지 예배를 지켰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6.25전쟁 때도 예배는 중단되지 않고 계속 지켰습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대형교회가 너무 예배를 쉽게 포기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쉽게 비난을 해서도 안 됩니다. 교회는 국민보건과 사회공익에 앞장서야 하며 공적인 교회로서의 책임도 감당해야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전염병 확산의 거점이 되어 버린다면 그 비난을 어떻게 감당하겠습니까? 그러니 정상적인 목회자라면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지요. 예배를 위한 신적 소명 앞에서는 반드시 예배를 드려야 하고, 또 국민보건에 앞장서기 위해서는 예배를 취소해야 합니다. 유럽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때 천주교에서는 믿음으로 이기자고 하면서 성도들을 성당으로 강제로 불러내었습니다. 그러다가 2천 만 명 이상의 유럽 사람이 죽고 말았지요. 그때 루터는 교회의 원래 근본은 가정교회였으니 우선은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루터가 지혜롭게 판단을 한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대형교회가 예배를 포기하거나 축소하는 것을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근본적으로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중직자를 중심으로 한 최소한의 숫자가 모여서 온라인 예배를 드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럴 때 일수록 저는 예배를 더 소중히 여기고 교회를 사모하는 역설적인 신앙을 외쳤습니다. 왜냐면 사회 심리학적으로 볼 때 3-4주만 예배를 안 드려도 탈예배화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예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만족만을 위해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물이고 이 시대와 사회의 영적 보건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뉴욕 맨해튼에 센트럴파크를 만들자고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그 비싼 땅에 무슨 공원을 만드냐며 차라리 높은 건물을 지어 수익을 내자고 극심한 반대를 했습니다. 그때 센트럴파크를 설계한 옴스테트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 넓이의 정신병원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 것처럼 한국의 모든 교회가 예배를 중지하게 된다면 이 사회는 산성화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어떤 지방에서는 예배를 드리면 벌금을 낸다고 행정명령을 내린다고 하는데 그것은 정말 하나만 알고 둘, 셋을 모르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가 국민보건에 앞장서는 측면에서는 일상적으로 드리는 예배처럼은 할 수는 없겠지요. 그렇지만 적어도 예배 자체가 취소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이번 주도 교역자와 중직자들을 중심으로 최소한의 숫자가 모여서 예배를 드리되, 대부분의 성도들에게는 유튜브로 온라인예배를 드리게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우리가 예배와 관련한 순혈적 신앙의 정체성도 지키고, 동시에 국민보건과 공적교회로서의 책임도 지킬 수 있기 때문이죠. 가까운 날 코로나19로부터 우리 모두가 자유하게 될 때, 부디 온라인예배 습관에 길들여지지 말고 한국교회 모든 성도들이 예배를 더 간절히 사모하고 더 많이 모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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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08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리즘]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가게 하옵소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직도 우리의 기도가 부족합니까? 아직도 우리의 회개가 부족합니까? 우리의 마음이 어두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가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주님, 우리의 상한 심령을 부여안고 주님 앞에 나아가 참회의 눈물을 쏟게 하옵소서. 어둠 속에서 흔들리는 불빛일지라도 주님의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빛의 임재 속에 거하게 하옵소서.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치리라(대하7:14)고 말씀하신 주님, 우리의 땅을 고쳐 주옵소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치료하여 주옵소서. 한국교회는 그동안 나라가 위기를 당할 때 마다 차가운 교회 마룻바닥에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민족의 아픔을 끌어안고 기도하였습니다. 한국교회가 제사장의 뜨거운 가슴으로 지치고 상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게 하시고, 선지자의 눈빛으로 새로운 희망의 길을 열어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코람데오의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려야 하지만, 국민 보건의 위기를 당한 사회를 배려하고 확산 저지를 위해서는 모임을 절제해야 하는 깊은 고뇌와 갈등의 나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미 많은 교회들이 최소한의 모임만 갖으며 최선을 다해 방역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루 속히 코로나19의 확산이 저지 되게 하시고 잠잠하게 하여 주옵소서. 불안과 두려움의 밤이 지나가게 하시고, 상처와 고통의 시간이 물러나게 하옵소서. 저 애굽의 땅에 재앙이 덮쳤을 때, 어린양의 피를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른 이스라엘의 고센 땅은 그냥 넘어갔던 것처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우리 마음의 문설주에 바르게 하옵소서. 우리 마음의 인방과 문설주에 영혼의 우슬초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바르게 하옵소서.(벧전1:2) 불안과 두려움이 우리를 에워싼다 할지라도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을 믿게 하옵소서. 영적으로 우슬초의 가지를 들고 골고다 언덕에서 흐르는 예수님의 보혈의 피를 영혼의 문설주에 바르게 하옵소서. 그 보혈의 능력으로 아버지의 품으로 가까이 더 가까이 나가게 하옵소서. 보혈을 지나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가게 하옵소서. 존귀한 주님의 보혈이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사업장을 성역화 시켜 주옵소서. 우리의 행동반경을 성별시켜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이 임하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의 밤이 깊습니다. 우리의 겨울이 너무 시리고 차갑습니다. 불안과 두려움의 밤을 보내고 있습니다. 상처와 고통의 겨울광야에서 떨고 있습니다. 그러나 밤이 아무리 길어도 아침이 오고,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봄이 오듯, 우리의 아침을 기다리게 하옵소서. 우리의 봄을 소망하게 하옵소서. 우리 앞에 놓인 도전 앞에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더 담대한 믿음과 사랑으로 함께 힘을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하옵소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오셔서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시고 위로해 주신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게 하옵소서.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우리 앞에 발걸음을 멈추어 주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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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강석 목사의 영혼 아포니즘
    2020-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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