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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석처럼 빛나는 선교적인 마음
    John W. Reed의 말에 의하면, 룻기는 칠흑 속에 뭍힌 아름다운 진주처럼 빛나는 보석 이라고 표현을 하였다. 룻기는 참으로 감동적인 스토리다. 이 이야기의 플로트(plot)는 비극에서 시작하여 점진적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국에는 해피앤딩(happy ending)으로 끝나게 된다. 이러한 해피앤딩의 스토리 속에 우리는 중요한 두 가지 어휘를 꼽는다면, “구속”과 “인애(헤세드)”이다. 여기에서 “인애(헤세드)는 믿을만한 사람에게 사랑과 인애를 베푸는 충심을 뜻하게 된다. 주인공인 룻은 모압여인 으로서 유대인인 남편이 죽은 후 그녀의 시모인 과부 나오미와 함께 이스라엘의 베들레헴 으로 이주하여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아래서 부유한 유대인의 농부인 보아스를 만나서 결혼 하게 되었고 먼 훗날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된 사람이다. 따라서 룻기는 ”룻“의 이름을 따서 ”룻기“로 명칭되었다. 이는 구약 성경에 ”에스더서“와 함께 유일하게 여인의 이름을 따서 기록된 말씀 이다.룻기는 총 4장 으로 구성 되어 있습니다. 1장은 룻기 전체의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나오미라는 한 여인이 남편과 함께 먹을 것을 찾아서 베들레헴 땅을 등지고 모압 땅에 갔으나 낮선 객지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며느리들을 집에서 돌려보내야 하는 비참한 현실이 묘사 되었다. 나오미는 이러한 상처를 안고 고향땅에 한쪽 며느리인 룻과 함께 쓸쓸한 귀향을 담고 있다. 2장과 3장에는 룻과 훗일 남편이 되어 가계를 이어갈 보아스와의 관계에 대해서 기록되었다. 그들은 전원적인 풍경 가운데 이상적인 사랑이 싹트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고 마지막 4장에는 그야말로 해피 앤딩으로 끝나는 룻의 상급이 나와 있다. 이렇게 볼 때에 룻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 정도로만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참으로 중요한 신학적인 이슈가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보석처럼 빛나는 룻의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첫째는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알아야 하겠다. 나오미가 처한 형편은 참으로 비참했다. 그의 비참한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 하고 있다. “나오미가 두 자부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각 어미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자와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각각 너희의 남편의 집에서 평안함을 얻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맛 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룻 1:8-9)”이 얼마나 비참한 모습인가. 머나먼 이국땅에 먹을 것을 찾아 생존을 부지하려 왔지만 남편죽고, 두 아들마저 먼저 보내 버리는 비참한 모습을 상상해 보기 바란다. 그러나 이러한 나오미의 불행을 그대로 방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며느리인 룻을 통해서 그 가정을 구렁텅이에서 건지어 내실뿐만 아니라 참으로 위대한 가계를 허락 하셨다. 룻기 4:13-15절에는 나오미의 나중형편이 어떤지를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이제 한 가정을 완전히 회복 시켰고, 후일 이스라엘 왕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는 역할을 감당하였다.두 번째의 교훈은 사망을 인애로 바꾸시는 하나님이시다. 룻기에서의 또 하나의 중요한 신학적인 단어는 “헤세드(Kindness)” 입니다. 나오미는 여호와 하나님께 그의 “헤세드”를 며느리들에게 나타내 달라고 간구 하고 있다. “... 여호와 께서 너희를 선대 하시기를 원하며...(1:8)”, “나오미가 자부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복이 그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그가 생존한자와 사망한 자에게 은혜 베풀기를 그치지 아니하도다...(2;20)”, “가로되 내 딸아 여호와께서 네게 복주시기를 원하노라 네가 빈부를 물론하고 연소한자를 쫓지 아니하였으니 너의 베푼 인애가 처음보다 나중에 더하도다(3:10)” “헤세드”라는 말이 세 번 쓰여 졌는데 두 번은 나오미가 자신의 자부에게 한 말이고, 한 번은 보아스가 룻에게 한말이다. 하나님은 인애의 하나님 이시다. 그의 은혜는 우리에게 그의 사랑과 인애를 베풀어 주신다.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그의 거룩한 피로 사주셨다. 오늘 필자는 나오미와 그의 며느리인 룻과의 관계를 통해서 절망을 소망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사망을 인애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다. 선교는 이처럼 보석과 같은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촉진시킬 수 있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신학원)
    • 칼럼
    • 선교
    2016-08-12
  • (경현수)북행선北行線
    북행선北行線 이 성 교집을 양주 쪽으로 옮긴 후공연히 북행선이 서러웠다 해 다 진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 석계역(石溪驛)에 와선 모두 얼굴이 노랗다굵은 1호선…의정부행, 동두천행, 소요산행이연달아 반가움을 싣고 달리고 있다서울에서인천에서수원에서쏟아 부은 말다시 바람으로 날아와창문 밖 길게 늘어진 산줄기에새 꽃을 피우고 있다.하루의 고달픔이나 잠시 행복했던 시간을 접고 귀가하는 저녁 시간… 해가 다 진 후, 밤으로 가는 일몰의 정경이 편안하고 따듯하지만 북녘을 향해 달리는 기차는 서럽다. 더 이상 갈 수도 없고 만 날 수도 없는 북녘의 사람들과 굴뚝엔 저녁 밥 짓는 연기가 모락 모락 오를 테지만 그리움으로만 남아 애잔하기만 하다.제법 한참 달려간 기차를 시인은 하필 石溪驛으로 설정해 놓았을까. 삶에 지친 노란 얼굴의 군상들을 우회적으로 대척점(對蹠點)에 두고 있지 않았을까. 굵은 1호선의 기차는…쉼 없이 모든 애환 까지도 담아 싣고 묵묵히 어둠을 뚫고 북쪽 마을로 달린다. 기차 안에서는 반가운 사람도 만난다. 이야기 꽃도 피우고 인천과 수원을 다녀오는 사람들은 할 말도 많고 사연도 많다, 피붙이 같은 정감이 오고 간다.창밖은 이미 어둠으로 덮여있지만 울울한 산줄기는 그대로 밤을 지키며 사람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엿듣고 빙긋이 웃고 있지나 않았을까.
    • 칼럼
    • 기독시선
    2016-08-12
  • 코끼리에게 아버지를 부탁하는 사육사 이야기
    동물 사육사 야마가와 고지(山川宏治)와, 역시 사육사였던 선친 세이죠(淸藏) 2대가, 한 코끼리를 두고 40년에 걸쳐 엮어내는 아름다운 이야기. 아들 사육사 고지가 한 잡지에 실은 수필은 이렇게 시작한다. “지난 밤 늦은 시간, ‘하나코’가 쓰러졌는데 일으켜줄 일손이 부족하니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과장의 메시지를 받고, 나는 곧 ‘이노가시라’ 자연문화원으로 달려갔다.” ‘하나코’는 야마가와 부자가 돌보아주던 코끼리. 고지가 ‘하나코’를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은 5년만이다. 5년 전 그날, 고지는 이빨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하나코’의 입에 손을 넣어 좋아하는 오렌지를 짜서 먹여주며 “잘 있어요!”하고 작별인사를 남기고는, 새 임지 ‘다마’로 전출된 것이다. “사육사가 담당을 벗어난 동물에게는 절대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철칙이 있어, 하나코를 만나러 ‘이노가시라’에 올 수는 없었단다. ‘하나코’가 타이로부터 ‘우에노’에 오게 된 것은 1949년, 두 살 반이었을 때. 1954년에는 ‘이노가시라’로 옮겨지는데, 사람을 밟아 죽인 사고를, 그것도 연속 두 차례나 지질러버린지라, ‘살인 코끼리’라는 낙인이 찍혀 앞뒤다리를 쇠사슬에 묶여서 지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하나코’를 코끼리답게 길러준 것이 아버지 사육사 야마가와 세이죠. 담당을 맡은 지 나흘 만에 ‘하나코’의 사슬을 풀어준 아버지는 아침마다 몸을 만져 주며 말을 건넨다. 더러 손님이 ‘살인 코끼리’라며 욕설을 퍼부을라치면 그녀에게 다가가 지켜준다. 곧 ‘하나코’는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코끼리가 된다. 아들 고지가 처음 ‘하나코’를 만나게 된 것은 중 3 때, 저녁 무렵 아버지를 기다려 우리 앞에 서있는데, ‘하나코’가 긴 코로 그의 옆구리를 치면서 큰 소리로 울부짖는 것이었다. ‘코치기’로 이름 붙여진 ‘하나코’ 특유의 위협행위가 담당사육사의 아들과 치른 첫 인사였다. 고지는 고교를 졸업하면서 경찰관이 되지만, 서열이 뚜렷한 분위기를 견딜 수 없어 퇴직했고, 도쿄도 직원이 되어 부임 받은 곳이 ‘다마’ 동물원. 세 마리의 코끼리를 담당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걷게 된다. 아버지의 충고는 단 한마디, “막대기는 코끼리를 길들이는 연장이 아니라, 사육사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란다.” 막대기란 끝에 쇠칼구리가 달린 연장인데, 많은 사육사들은 이것으로 코끼리를 두들기며 길들이는 것이 예사였다. 아버지는 코끼리가 가족이라 했다. 아버지 ‘세이죠’가 1990년 동물원을 퇴직할 때까지 ‘하나코’와 함께한 세월이 무려 30년. 그리고 1995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아들이 ‘하나코’의 담당이 된다. 중3 때 첫 대면을 치른 지 30년만의 재회였다. 당시 ‘하나코’는 몇 차례 더 사고를 저질러 다들 무서워하는 코끼리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지는 ‘하나코’의 속마음은 유순하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부드럽게 대해주면 반드시 알아줄 것이라고. 둘의 관계는 서서히 신뢰하는 관계로 발전한다. 그렇게 ‘하나코’와 지난 세월은 10년 남짓. 헤어진 지 5년 여 만에 만난 69세의 ‘하나코’는 우리 속에 누워있었다. 쓰러져 누운 지가 10시간. 폐가 짓눌려 호흡 불능이 될 지도 모란다는 두려움에 사육사들은 그녀를 돌아 눕히려고 안감힘을 쓰고 있다. ‘하나코’는 긴 코로 방해를 놓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은 듯, “그만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간신히 ‘하나코’가 오른 쪽으로 돌아눕자 이제는 괜찮을 거라 생각하는 참에, ‘하나코’는 크게 숨을 내쉬더니 다시는 들이 쉬지 않는 것이었다. 하늘나라로 간 것이다. ‘야마가와 고지’와 부친 ‘야마가와 세이죠’ 부자 2대가 40년을 매달렸으니, ‘하나코’의 일생은 곧 그들 부자의 ‘스토리’가 아니겠는가. 아들 고지의 말 “‘하나코’에게 ‘지금 누굴 만나고 싶지?’ 한다면 ‘야마가와 세이죠’ 하고 대답할 것은 틀림없다. 이제 아버지와 ‘하나코’는 하늘나라에서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을 터. ‘아버지를 부탁해요!’ 그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 그의 소박한 내세관을 나무라기에는 40년에 걸친 부자 사육사와 코끼리의 의 스토리가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6-08-12
  • 자살한 사람들
    언젠가 미국 신문에 한 아버지가 전화박스에서 권총 자살을 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제임스(James)라는 사람이 시카고 신문사에 전화 한 후 자살할 것이며 자살에 대한 내막을 담은 편지를 신문사로 보냈으니 자신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피해 받지 않도록 해 달라라는 것이다. 신문사에서는 허겁지겁 발신인을 추적하여 장소를 알아냈으나 자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그 아버지는 머리에 관통상을 입고 전화박스 안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주머니에는 색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진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한 장이 나왔으며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 그림을 내 관속에 넣어 주십시오. 나는 이 그림과 함께 묻히고 싶습니다’ 그림에는 어린아이의 필적으로 ’셔리‘(Shiley) 라고 서명되어 있었다. 그것은 꼭 다섯 달 전 불에 타 죽은 금발머리 어린 딸 셔리가 그린 그림이었다. 그는 죽은 딸로 인해 몹시 깊은 슬픔에 빠졌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딸의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다. 자기 딸이 최고의 환송을 받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리고 장례식 후 얼빠진 사람처럼 거리를 헤메고 다녔다. 셔리의 어머니는 셔리가 두 살때 죽었기 때문에 자기한테는 돌아갈 가족이 없다고 말했다. 결국 비탄에 잠긴 그는 고독과 상실감을 견딜 수 없어 자기 인생을 내던졌다. 실로 아비에게 있어 딸은 끊임없는 기쁨의 샘물이다. 그 샘물이 막히거나 타인에 의해 혼탁하게 되었을 때 그 슬픔을 어찌 말로 다하겠는가. 오늘 날 과학은 발달하고 경제는 발전해 풍요로운 삶을 사는 것 같은데 자살의 강도가 심해지고 왜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 제 1국이 되었을까? 사실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남부끄러운 치명적인 죄도 짓게 되며 전 생애를 다 살아 내기 어렵도록 극한 난관에 부딪칠 때도 있고 삶이 저주스럽고 회의스러울 때도 있다. 누구나 한두 번 이상 경험할 수 있는 극히 보편적인 일이다. 하지만 그 때마다 삶을 포기 한다면 이 세상에 살아남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도 자살 옹호론자들은 사람이 자기 생명을 유지해 나갈 고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듯이 자기 생명을 포기할 권리도 있다고 주장 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자살 옹호론을 반대 한다. 물론 성경 그 어디에서도 자살이 옳다 그르다에 관해 직접언급 하는 부분이 없다. 하지만 성경의 교훈들을 종합에 보면 자살을 반대하고 죄악시 하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주권을 모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얼마나 억울함이나, 죄책감이나, 병고나, 외로움 등의 고통에 시달렸으면 자살을 택했는가 하는 동정심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죄책감이나 그 어떤 고통에서 탈출하려고 자살 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신을 파괴하는 죄악이다. 특히 죄악감에서 탈출 하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 섭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불신앙의 몸짓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죄에 깊이 빠지면 그 죄가 사람으로 하여금 회개에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다. 그런데도 자살을 한다면 주님의 속죄를 헛되게 하고 모욕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 사람에게는 고유한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각기 적합한 사명과 은사를 주시고 그것으로써 당신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줄 것을 요구 하신다. 고로 사람이 자살을 하는 것은 사람에게 할당한 고유한 사명을 포기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명을 포기한 사람은 주님의 엄중한 책망과 심판을 면할 수 없다.(마25:26~30)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는 일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그렇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인생에 실패하지 않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뜻을 바로 알지 못하기에 그릇된 죽음의 길을 택하여 귀한 생명을 버리게 된다. 물론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모든 사람이 알 수 있도록 계시하여 성경으로 기록하여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죽음을 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으려는 교만한 생각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기록된 성경을 늘 읽고 묵상함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기에 힘쓰고 그 뜻에 따름으로써 실패하는 인생이 아닌 성공적인 인생 하나님께 칭찬 듣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삶의 여건들이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자신의 삶을 지켜야한다. 삶은 하나님께서 내려 주신 지상 명령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삶속에서 반드시 성취해야 할 사명을 주셨고 삶을 살아 갈수 있도록 갖가지 은혜와 은총도 약속해 주셨다. 고로 인간들은 삶을 중도에서 포기해서는 안 된다. 마지못해 살아서도 안 된다. 인간은 나서 죽을 때까지 귀중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매순간마다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한다.
    • 칼럼
    • 목회자
    2016-08-12
  • (경현수)남산 소나무
    남산 소나무 권 은 영남산 소나무엔잎새 마다 나라 지키는 병사가 들어 있다바람이 불면 우우…나라 지키는 함성이 오르고햇살 내려와 앉으면 소르르 소르르 겨레 사랑 노래 오른다한 겨울에도 그 마음 한결같아 늘 푸르다산은 나무 한 그루마다 마을 하나씩 달고 있다잎새 마다 집 하나씩 달고 있다가지 끝 작은 소리내 아들 딸들의 소리 인데마을 마다 집집마다 귀열어솔바람 소리 듣고 있다솔잎 벌레 먹는 소리방충(防蟲) 소리도 다 듣고 있다하늘이 푸르듯저 소나무가 항상 푸르도록…도성의 남쪽에 있는 산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벗어난 우리의 서울, 남산은 우리의 정서 속에 아름다움과 치솟는 힘의 기개를 불러 일으키는 상징의 의미로도 느끼고 공감한다.시인은 남산 소나무라는 특별하지 않은 주제를 특별한 시로 형상화 시켜 겨레와 나라 사랑을 상징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 하나 하나와 잎새 하나 모두가 우리의 삶이고 우리의 애환인 동시에 희망과 기쁨이 된다. 시인은 소나무는 높은 성루(城樓)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는 병사들의 함성이고 애국의 용사들이라고 노래 한다. 남산 소나무에는 우주가 담겨 있고 서울이 아로새겨져 있고 소박한 우리 가족의 꿈이 걸려 있을 것이라고 환치(換置)시키고 있어 감동과 놀라움을 이끌어내고 있다.잎새 마다 나라 지키는/ 병사 들어있다/ 솔잎 벌레 먹는 소리도 다 듣고 있다남산 소나무가 늘 푸르듯 우리의 영토와 민족의 안위도 늘 푸르게 영존하기를 시인은 염원하고 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6-07-29
  • 신실한 관계 형성의 선교
    지난 호 에서는 “신실한 삶을 통한 선교”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신실한 관계 형성이 어떻게 선교가 되는가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신실한 삶의 현존을 통해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은 분명히 세상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게 되어 있다. 이 때 복음을 직접 입으로 전할 기회를 얻지 못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관계 형성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관계 형성의 중요성에 대해서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라는 책을 통해 뛰어난 통찰력을 제공한다. 우리가 타자를 ‘그것’이라는 사물로 대할 때 타자를 이해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타자를 ‘너’로 대할 때 상대의 말에 경청하며 상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관계 전도는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지경을 넓히기에 다른 종교에 대해 무지하거나 문서를 통해 편협하게 알던 타종교를 그리스도인들이 실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연다. 조지 헌터는 복음 선포로 믿음을 가진 사람을 교회로 인도하는 로마식 전도와 교제를 통해 마음을 열고 대화로 믿음과 헌신까지 인도하는 켈트 전도법을 비교한다. 켈트 전도법과 같은 관계 전도는 오늘날 한국적 상황에 더더욱 절실하다. 한국 교회는 현재 한국 사회로부터 심한 질타와 멸시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전도지를 거부하는 것은 예사고 노방전도에 대해 매우 불쾌하게 생각한다. 따라서 한국적 상황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비신자들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한국교회는 이미 관계전도를 위해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어떤 단체에서는 저녁 식사에 비신자들을 초대하여 거나하게 상을 차려서 마음을 사로잡는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이 식사에서 오는 마음의 오픈을 전도에 연결로 연결시키는데 일정 효과가 있다. 그러나 최고의 관계형성은 아무래도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수식어가 말해 주듯이 한잔 걸치면서 나누는 관계성이 한국의 전통 친화력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고 우리가 술잔을 함께 기울릴 수는 없다. 여기에 딜레마가 존재한다. 이러한 딜레마는 한걸음 더 나아가 타종교인들과의 관계성 속에서 더욱 깊게 나타난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타종교인과 관계를 맺는 것을 꺼려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의 신앙이 혼합주의적으로 될까 두려워서이다. 이러한 마음은 일부분 일리 있는 이론이다. 관계성은 함께 함을 통해서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사상이 다른 사람들과의 연합은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수용과 용납을 구분하지 못한 결과다. 드웨인 엘머(Elmer Duane)는 수용과 용납의 차이를 매우 분명하게 설명한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좀처럼 수용과 용납을 구분하지 않고 혼동한다. 대표적인 예가 집단주의 문화의 국회에서 정당끼리의 논쟁이다. 서로 다른 의견을 논박할 때 인심공격은 예사고 논쟁이 끝나면 상대 당의 사람을 적으로 여긴다. 이런 모습은 이슈와 개인을 구분하는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좀처럼 살펴볼 수 없는 예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주장을 반대해도 그 사람을 수용한다. 하지만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의견과 그 사람을 다르게 보지 않기 때문에 한 사람을 수용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과 같다.또한 그리스도의 삶은 이런 혼합주의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스도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삶을 나누셨다. 그런 그의 모습은 종교적 위선자였던 바리새인들의 비난 거리였다(마9: 11; 막2: 16; 눅5: 30). 만약 예수님이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삶을 나누셨던 것이 혼합되는 것이고 영적으로 섞이는 것이었다면 분명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성육신하실 때부터 이미 깨어진 세상에 함께 삶을 나누시는 것을 복음 전파의 방법으로 삼으셨다. 관계를 잘 맺는 것이 복음 전파를 위한 과정이 되는 이유는 문화적인 이유도 있다. 비록 한국이 근대화를 통해 많이 개인주의화 되었지만, 아직도 집단주의 문화의 특징이 남아 있기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관계가 형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관계를 통해 먼저 같은 집단의 일원이 될 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달 할 수 있는 하나의 문을 여는 것이다.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 자신의 아파트 문을 개방하고 타인의 말에 귀를 기우리는 습관을 길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6-07-29
  • 카를로스 클라이버
    지휘자들을 구름위에서 지상으로 끌어내렸다는 저널리스트 레브레히트(Norman Lebrecht)의 <거장신화(The Maestro Myth, 1991)>에는 “카를로스는 아마 자신에게도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을 것”이라는 언급이 있다. 카를로스(Carlos Kleiber, 1930-2004)가 남긴 음반이 아주 희소한 터라, 음악애호가들이 그의 연주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을 터인데도, 그를 우리시대의 진정한 마에스트로로 받드는 팬들이 적잖다는 사실로 보아, 레브레히트의 멘트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그가 지휘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하는 영상물이 나돌면서 그의 팬들의 귀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는 확신을 더하게 되면서. 지휘자였던 부친 에리히는 아들이 현실적인 직업을 가지기를 바랐다. 베를린 국립오페라극장이 나치스의 탄압을 받자 베를린을 떠나, 십년 넘게 남미에서 절망적인 세월을 보내야만 했던 지휘자로서의 험한 과거 때문이었을 터.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일찍부터 인정하고 있었다. 카를로스가 21살 나던 해, 아버지가 친구에게 말했다. “이 아이가 지금은 팀파니를 익히고 있지만 귀가 뛰어나기 때문에 곧 접게 될 것이라 믿소.” 아버지 클라이버는 독재자 스타일의 완벽주의자. <보체크>를 초연하면서는 무려 34회의 풀 오케스트라의 리허설을 요구했다는 기록을 남겨 놓았으니. 또 시즌이 끝날 무렵이면 보수를 곱으로 올려달라고 으르렁거리기도 하는 인물이었던 아버지가 1956년에 작고하면서, 카를로스는 독일의 여러 오페라극장에서 본격적인 지휘수습을 시작한다. 디스부르크와 뒤셀도르프를 거쳐 츄리히에서 기반을 다지던 그가 36세에 슈투트가르트의 음악감독이 된다. 그러나 겨우 이태를 버티다가 사임했고, 이후로 다시는 그런 자리에 오르지 않는다. 1973년까지는 레코드회사가 제안하는 작업도 기피했다. 57세가 되어서야 메트로에 등장했고, 베를린 필의 지휘대에 선 것은 거의 60이 되어서였다. 그러나 베를린이 카라얀의 후임으로 지목했을 때에는 이를 거절했다. 카를로스를 “진정한 천재”라고 했던 카라얀은 “그는 냉장고가 빌 때에만 지휘한다.”는 말로 그의 됨됨이를 평가했다. 데뷔 초에는 제법 폭넓은 레퍼토리를 다루는가 싶더니, 곧 장기로 하는 작품만을 고집하기 시작한다. <보체크> <라 보엠> <오텔로> <장미의 기사> <엘렉트라> <박쥐> <춘희> <트리스탄과 이졸데>. 교향곡으로는 베토벤, 브람스와 모차르트의 후기작품들로 한정했다. 아버지가 즐기던 곡들과 겹치고 있다. 프로의 패를 내건 이상, 요구하는 모든 레퍼토리를 가늠할 수 있어야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진정으로 자기만이 다룰 수 있는 작품만을 갈고 닦겠다는 것이 그의 자세였다. 비평에 대해서는 거의 신경질적이랄 수 있는 반응을 보였다. 혹 실수로 거슬리는 말을 하거나 글로 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런 기색이라도 비치는 날이면, 곧 공항으로 가겠다며 프로모터를 패닉 상태로 몰곤 했다. 다루려는 작품이 <라 보엠>처럼, 오랜 세월 익숙해진 작품일지라도, 최소한 2주간의 리허설을 필요로 했다. 연출이 새롭지 않을 경우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다는 자세로 임했던 것이다. 변덕에 가까운 그의 성격이 때로 연기자에게 심한 긴장을 주게 된 것은 어쩔 수 없었으리라. 그러나 철저한 준비에 보조를 맞추게 되면서 단원들이 그에게서 친근감을 느끼게도 된다. 출연진이 입을 모았다. “현존하는 지휘자 중에서는 가장 잘 알아차릴 수 있도록 지휘한다.”라고. 코벤트 가든에서 갑자기 프라시도 도밍고의 대역을 맡게 되어 전전긍긍하는 가수에게는 “내가 그대를 따라 갈 것이니 안심하고 노래하라” 면서 긴장을 풀어주었다는 일화도 남기고. 영상을 통해 그의 지휘를 보노라면, 나도 모르게 “노블(noble)”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 뿜어내는 그의 품위가 빈의 아낙들을 사로잡은 동기였구나 하고 머리를 끄덕이게도 되고. 그의 “노블”은 자가용 제트기를 몬다거나, 가족들을 이끌고 항공기 일등석에서 으스대는 노불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시대의 마에스토로가 풍기는 “노불”은 그의 당대에 가꾸어진 것은 아니었을 것이란 생각을 해보게 된다. 2004년 7월 13일, 그의 연주를 아끼던 팬들은, 그를 그의 아내의 고향 슬로베니아의 시골 교회 묘지로 보내주어야만 했다. 아내가 1년 전부터 터 잡고 기다리고 있는...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6-07-29
  • 하나님의 시간표
    유대 왕 헤롯 아그립바 1세와 2세의 이야기이다. 헤롯 아그립바 1세는 할아버지 헤롯 대왕이 통치했던 곳을 모두 지배하였다. 그는 정권 유지를 위해 친유대교 정책을 폈다. 이에 성도들을 박해하고 야고보를 목 베는가 하면 베드로를 투옥했다. 사실 그는 세상적으로 보면 성공한 유대 왕에 속 한다. 그래서인지 교만해졌다. 결국 헤롯은 가이사랴에서 두로와의 외교에 성공하고 축제를 개최한 날에 하나님의 진노를 사 충에게 먹히는 심판을 받아 죽었다. 즉 스스로를 속이고 자신이 신인 양 행세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행12:). 헤롯 아그립바 2세는 자기 누이 베니게와의 관계에서 염문을 뿌렸다. 그는 그의 추함을 가리기 위함인지 사람들 앞에 나설 때는 위의를 베풀었다. 거창한 행렬로써 사람들의 비양과 수근거림을 제압하려 했다(행25:23). 하지만 그는 유대전쟁(66~70년) 당시 유대인들로부터 암살당하는 최후를 맞았다. 스스로 속이는 교만은 사치스러운 겉치장으로는 가릴 수 없다. 이처럼 스스로 교만한 인생은 불행의 때를 생각지 못하므로 결국 인생의 최후를 맞게 된다. 자고로 악한 자들은 자기의 날들을 주의치도 않고 헤아리지도 않는다. 이 땅에서 장구한 세월동안 쾌락과 사치를 즐기며 불의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한다. 왜냐하면 악인들은 영적으로 매우 둔감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최후가 아주 가까워진 날에도 자신들의 삶을 들이켜 참회의 자리에 서기보다는 오히려 더 큰 악과 부패에 심취하려 든다. 그러나 이 세상과 온 우주 만물을 홀로 통치해 가시는 하나님은 분명히 정해 두신 시간표에 따라 악인들의 죄악을 간과 하지 않고 그들의 악행을 징벌 하신다. 고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생각과 이 세상의 한정된 삶에 묶여 있는 죄인들의 시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그러나 악인들이 이러한 사실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악인들이 기승을 부리고 부패한 권력과 타락한 세력들이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혼탁한 세대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바라보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아니면 현재의 삶에만 시선이 머물러 예수님이 없는 세상의 영화를 추구하고 내적으로 죄악을 가리기 위해 그리스도 없는 세상의 사치로 치장하며 혹시 종교적 형식으로 스스로 거룩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지만 이렇게 행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속여 스스로 죽음을 향해 치닫는 행위와 같다. 고로 우리와 악한 자들은 스스로를 속이는 그 길에서 돌이켜야한다. 그리고 날마다 예수님을 ‘주’ 로 시인하며 주님의 제자로 살아야한다. 예수님을 ‘주’ 로 시인한다는 의미는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 한다. ‘주’에 해당하는 헬라어 ‘퀴리오스’ 는 헬라 세계에 있어서 종이 주인을 가리켜 부르는 호칭이다. 당시 헬라 세계에서 주인은 종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였다. 종의 행사가 주인의 손에 달려 있었다. 즉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는 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시는 분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또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을 말 한다. ‘퀴리오스’ 는 종이 주인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일 뿐 아니라 신을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기도 하였다. 헬라 사람들은 신 이름 앞에 항상 ‘주’ 라는 호칭을 붙였다. 가령 ‘퀴리오스 세리피스’ 라는 말은 ’세라피스‘신이라는 뜻이다. 고로 예수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사람은 그분이 본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한다. 그분을 하나님이 아닌 한 뛰어난 인간이나 종교의 창시자로 본다면 그분의 사역과 영생의 언약들도 다 예수라는 인간이 하는 것으로 믿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를 절대적인 하나님의 아들로 믿어야 그분의 대속과 부활 사역을 믿을 수 있으며 그분이 약속하신 영생구원의 약속을 절대적인 하나님의 언약으로 확신 할 수 있다.끝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그분을 왕으로 인정한다는 말이다. ‘퀴리오스’는 당시 로마 황제를 부를 때 쓰는 호칭이기도 하였다. 우리가 구원을 얻으려면 반드시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영접해야 한다. 그 분만이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세를 지닌 분이요.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유일하신 왕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고로 우리는 이러한 의미가 담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해야 한다. 특히 우리는 입으로 성도들과 교회 앞에서 ‘나는 이제부터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주님이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기 때문이다(마10: 32, 33).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입술로만 주님을 고백하고 주의 복음을 전하면서도 주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으로 주님을 시인하고 인격적으로 주님과 교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 칼럼
    • 목회자
    2016-07-29
  • 신실한 삶을 통한 선교
    몇 시간 후 학생들과 함께 선교여행을 떠나야 할 필자에게는 매주 발행되는 신문의 한 부분을 글로 채워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하다. 이러한 고민을 하고 있던 차에 이번 학기에 제출된 제자의 글이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는데 큰 힘이 되었다. 박종원 원우의 글은 “한국 기독교와 타종교의 갈등 분석을 통한 전도 방법 고찰”이다. 이 글 속에서 박종원은 한국교회가 갈등 극복을 위해서 세 가지의 전도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필자는 앞으로 3회에 걸쳐서 박종원의 글을 인용하면서 칼럼을 엮고자 한다. 선교에 대한 이론 가운데 존재 전도가 있다. 이는 삶의 초석이 되는 현장에서의 모범과 신실함을 통해서 주변인들로 하여금 예수를 믿고 싶도록 촉구하는 전도 방법이다. 오늘날처럼 전도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 새겨 볼 만한 이야기 이다. 신실한 삶은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복음을 살아내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어떻게 전도 방법이 될 수 있는가? 그것은 성경적인 근거에서 찾을 수 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라고 했다(벧전3:15). 즉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에 신실하게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의 생각에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삶에 궁금증을 갖게 되고 급기야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질문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에 기초한 소망과 이유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이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지탄과 모욕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기독교 지도자들의 각종 부패와 타락이 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교회의 리더들이 복음을 삶으로 드러내지 못하면서 성도들에게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메시지가 메신저와 다르지 않음을 그리스도가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리더들은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은 경시함으로 복음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어떤 목사는 카지노에서 66억을 탕진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진위를 따지기 이전에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있을 수 없는 비윤리적 소문이다. 또한 인천의 어느 감리교회에서의 성 추문 사건은 교회 지도자로서는 해서는 안 될 일을 함에서 오는 지탄이 우리의 귀를 따갑게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례들은 성경을 가진 지도자가 삶의 모본을 보여주지 못함으로 전도의 길을 막아버리는 것을 볼 수 있다.그동안 한국교회은 교회 성장이라는 이슈가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즉 교인들만 많이 모으면 성공했다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성장한 목회자는 모든 것들이 완벽해 지는 풍토를 만들어 버렸다. 자기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지도자들 속에서 성도가 지녀야 할 삶의 가치를 흐리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주님의 삶의 모습을 바로 보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가르치신 대로 사셨고, 사신대로 가르치셨다. 그는 “복음 선포”만 중요시하지 않으셨다. 말과 행실의 일치를 보여주셨다. 그런 신실한 현존을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은 삶에서 너무 오랫동안 잊혀져 왔다. 그러나 이런 신실한 현존을 보여 줄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나아가 다음 단계의 전도 방법으로 연결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신실한 삶이 너무 수동적이며 피동적인 전도 방법이라고 비판한다. 복음은 말없이 행위로 전달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복음은 분명 말로 전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에 신실한 현존은 전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복음은 분명 입으로 전해야 하지만 한국적 상황처럼 기독교에 매우 배타적인 때에는 복음 전파에 앞서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복음에 반응하도록 준비시킬 필요가 있다. 그런 준비 과정의 하나로 신실한 현존은 매우 중요하다. 최근에 방송된 주기철 목사님의 일대기는 우리에게 큰 신앙의 유산을 주고 있다. 필자의 자녀도 그 영화를 본 후에 목사님을 존경한다는 말을 수 없이 하는 것을 보았다. 이처럼 사회에 영향력을 주는 삶이야말로 한국교회를 위한 선교의 모범이 된다.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6-07-21
  • 엘리 비젤의 부음을 접하면서
    며칠 전 외신에서 엘리 비젤(Elie Wiesel, 1928-2016)의 부음을 접하게 되었을 때, 30년 전 그 날 밤의 전율이 다시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것을 느꼈다. 서가를 뒤져 그의 연작시리즈 <밤> <새벽> <낮>을 찾아내면서 스스로에게 타일렀다. 그동안 멀리하고 있었던 것은 이제 그날 밤과 같은 아픔을 견딜 수는 없는 나이가 된 탓이라고. 그의 삼부작 <밤> <새벽> <낮>을 읽은 것은 1980년대 말이었다고 기억한다. 새로 ‘목회업’의 판을 벌리면서, 갈등과 회의로 고민하고 있을 즈음, 우연히 외서전문점에서 훑고 있던 잡지에 실린 서평에서 만나게 된 <밤>의 한 장면이 일으킨 전율이 동기가 된 것. 어른 두 사람과 함께 교수형에 처해지는 어린 아이의 죽음의 장면 말이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단 말인가!”하는 물음에 엘리에젤은 마음속에서 대답한다. “여기, 이 교수대에 목매 달려서” 약 보름이 지나 주문한 책이 도착한 그 날 밤, 나는 한 숨도 못 잤다. 떨리는 몸을 가눌 길 없어 몇 번을 책을 덮었던가. 나로서는 그 전율을 나의 말로 재생산할 수가 없다. 몇 곳을 인용하는 수밖에. 마지막 부분, “ 자유인이 되어 우리가 맨 먼저 한 짓거리는 식량에 덤벼드는 일이었다. 이 짓 말고는 생각할 것이 없었다. 복수에 대해서도 양친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빵에 대해서만. 배를 채우고 나서도 복수에 대해서 생각하는 이는 없었다. 이튼 날, 몇 젊은이가 바이마르로 달려가서 감자와 의복을 쓸어 담아왔다... 그리고 매춘부와 잤다... 생사를 헤매던 끝에 간신히 일어난 나는 벽에 걸려있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게토이후 내 얼굴을 한 번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울 밑바닥으로 부터 시체 하나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내 눈 속 그 시체의 눈동자는 그날 이후 한 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 또 한 장면, 25대나 몹쓸 매를 맞은 친구 바이올린 주자 유리에크의 이야기: “...바이올린 소리가 들렸다. 죽은 자들이 산 자들 위에 쌓여있는 캄캄한 바라크 속에서 바이올린 소리가. 이곳, 자신의 무덤가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미치광이는 누구일까. 아니면 환상일까. 유리에크가 틀림없을 것이다. 베토벤 협주곡의 일부를 켜고 있었다. 그렇게도 맑은 음색을 들은 적은 없다. 이 고요 속에서... 깜깜한 밤, 들리는 것은 오직 그 바이올린 소리뿐. 마치 유리에크의 혼이 활이 된 것 같았다...그는 다시는 연주할 수 없는 무엇을 연주했다. 절대로 유리에크를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날이 새면서 유리에크가 엎드려 죽어있는 것을 눈앞에서 보았다. 곁에는 짓밟힌 그의 바이올린이 작은 시체가 되어 누워 있었다. 삼부작이라고는 해도 줄거리가 연결되어 있지 않는 각각의 이야기. <밤>은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을 기록한 자전적 소설이고, <새벽>과 <낮>은 픽션이다. 그렇다고 두 작품이 강제수용소에서의 작자의 체험적 증언이 될 수 없다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리라. 오히려 픽션이란 형식을 빌리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엘리 비젤은 15세 때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수감돼 왼팔에 ‘A-7713’이 새겨진다. 누나 둘은 살아남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가스실에서 처형된다. 함께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아버지는 이질과 피로로 앓다가 1945년 4월 수용소가 해방되기 직전에 사망한다. 종전 후, 소르본대학에서 공부한 뒤 기자로 활동.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기록한 <밤>을 출판하게 된 것은 프랑수아 모략의 권면 때문이었다. 모략의 서문을 건너뛸 수는 없으리라. 30개국 이상의 언어로 출판된 <밤>은 그에게 세계적 명성을 갖다 주었다. 1955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시립 대학을 거쳐 보스턴 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기아와 박해 현장을 찾아 구호활동을 벌이고, 핵전저지운동에 힘을 쏟는 등 사회활동을 펼친다. 홀로코스트 위원회 의장을 거쳐, 1980년에는 미합중국 홀로코스트 추모위원회 초대 위원장, 1986년에는 인종차별 철폐와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후, 재단을 설립, 차별, 불관용, 불의에 맞서 싸워왔다. 노벨상 수락 연설의 명 구절 “중립은 가해자에게만 이로울 뿐 희생자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으며, 침묵은 결국 괴롭히는 사람 편에 서는 것”은 지금에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enoin34@navw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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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6-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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