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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지호)어머니의 옷장
    어머니의 옷장 엄 원 용어머니가 그러셨다우리집 정원에 목련가지 자라듯이옷장도 자라고, 싱크대도 자라고신발장도 자꾸 자라나야이제는 맨 꼭대기 넣어둔 신발을꺼내기가 너무 어려워야나도 어머니만큼 나이가 들었다.정원의 목련은 아름드리나무로 자라고옷장도 자라고 싱크대도 자라고신발장도 자꾸 자라고 있었다.이제는 맨 꼭대기에 넣어둔 신발은까치발로 서야 겨우 꺼낼 수 있었다.사람의 뼈는 태어나기 전 모태에서부터 형성되어 어른이 되어서까지 계속 영양공급을 받는다. 그러나 영양공급은 계속받지만 뼈가 계속해서 자라지는 않는다. 나이가 들어 활동양이 줄어들고 영양의 불균형으로 뼈가 약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약해진 뼈는 노화가 오면서 이상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또한 키가 줄어드는 현상도 나타난다. 그래서 청소년기 때 키하고 나이가 들었을 때의 키가 다르다. 위 시에서 연로하신 어머니는 키가 많이 줄어 든듯하다. 그래서 옷장이나 싱크대, 신발장이 점점 자라듯 높아진다고 역설하고 있다. 어머니가 힘들어하시면서 하신 말씀들을 연상기억해 내면서 화자는 문득 어머니의 위치에 서 있음을 느끼고 있다. 세월이 흘러 화자마저 그 어머니의 전철을 밟고 있음을 절실하게 깨닫는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생리현상으로 나타난다고 하지만 그런 일을 겪는 연로하신 분들의 경우 인생의 씁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제는 화자도 까치발로 서야 꼭대기 물건들을 내릴 수 있음을 통해 인생무상함을 경험하고 있다. 그래서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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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시선
    2016-04-28
  • 선교지의 사고 예방
    대부분의 선교지는 안전한 고국의 상황과는 다른 환경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시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사실 많은 사고들이 사람들의 실수로 일어난다. 다시 말하자면 사고는 미연에 예방할 수 있다는 말이다. 장기선교의 현장이던지 아니면 단기선교의 현장이던지 사고는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된다. 즉 사망, 중상, 해외여행자들의 긴급송환과 같은 일이 발생한다. 이들 사고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 교통사고, 수영사고 그리고 가정내 에서의 사고들이다. 그러면 이러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일은 무엇인가? 이는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지침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침서가 선교기관의 책장에 비치되어있다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실천적으로 활용되지 않으면 무용하다고 볼 수 있다. 에를 들면 선교지에서 버스에 승차한 이후 팀 리더자는 반드시 승객들에게 안전벨트 착용의 유무를 확인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여름방학이 되면 매년 선교지를 방문하곤 한다. 이는 학문의 현장감 때문이기도 하다. 숙소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 타지역 으로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챙기는 것이 있다. 이를 흔히 “여보사랑”이라고 칭한다. 이 용어의 의미는 여권과 보따리에 있는 짐을 잘 챙겼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다행이 17여년동안 해오는 해외 연수 프로그램에서 별탈 없이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여보사랑”의 덕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Inter Health People in Aid의 테드 랜케스터의 이론을 빌려서 선교지의 사고예방에 대한 지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스탭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이미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과 알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라. 둘째는 사람들에게 조언할 경우에는 직접적으로 하며, 단순히 문서로 하지 말라. 실제로 일어났던 시나리오 내용으로 그들과 대화하라. 셋째는 스탭들이 기관의 사고지침서를 읽고, 이해하며, 이에 동조하는지 확인하라. 넷째는 스탭들에게 응급조치 절차에 대한 사용법을 훈련하라. 다섯째는 선교 현장의 책임자들로 하여금 단체 모이시 사고 예방을 행하도록 하며, 이에 대해서 보고하도록 하라.위에서 언급된 내용들이 선교 현장에서 실시할 수 있는 사고예방에 대한 중요한 지침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를 토대로 실제적인 사고예방 조치를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안전한 도로여행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차량안전을 체크해야 할 것이다. 브래이크, 타이어, 조명등이다. 장거리 여행을 위해서 에어컨과 난방 시설의 이상 유무를 점검해야 한다. 특히 운전자가 알코올 중독자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만약 술에 중독이 되어있는 경우에는 운행 중에도 음주를 하게 됨으로 엄청난 재앙을 불러 올 수 있게 된다. 또한 장거리 여행일 경우에는 보조 운전자가 배치되는지도 점검해야 한다. 이울러 운행 중에도 여행의 책임자는 운전자가 졸지 않는지 수시로 확인해야 한다. 만약 사고가 날 경우를 대비해서 “신뢰할 수 있는 헌혈자 명단”을 확보해 두는 것도 중요하다. 다음은 안전한 수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스텝진이 숙지해야할 사항은 그 지역의 바다, 호수, 강, 수영장들이 어느 정도 안전한지 조사해야 한다. 이어서 조류의 위험, 오염의 문제, 위험한 동물들의 출현 여부 등이다. 비록 리조트 내의 풀장을 이용할 때에도 전문가의 가시권 내에서 해야 하며, 혼자 보다는 동료와 함께 수영을 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음주나 과식 이후의 수영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마지막으로는 사고 혹은 사고의 위기일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지역의 지침들을 대응책에 적용해야 한다. 이는 선교지의 상황이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인 매뉴얼만으로는 현지의 문제점과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필요할 경우 현지의 전문병원을 미리 알아두어 재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정보를 확보해 두는 것이 좋다. 특히 보험 관계를 정확히 해 둠으로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이 좋다. 오늘 필자는 선교지의 사고 예방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금년 여름도 단기선교를 떠나기에 좋은 시간이다. 탈 없는 선교지 사역이야 말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기도 제목이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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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교
    2016-04-28
  • 등당과 입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의 비파 소리를 듣고 말했다. “자로가 타는 비파가 너무 거치니 나의 제자가 타는 것 같지가 않구먼.”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더 이상 자로를 존중하지 않게 되었다. 공자가 다시 말했다. “자로는 이미 전당(殿堂)에 올라 있다. 다만 아직 내실(內室)에 들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너희는 자로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은데, 너희의 비파 소리는 미처 당(堂)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 집 당(堂)자는 음부(音符)인 토(土)와 상(尙)으로 구성된 문자. 상(尙)은 방(房) 북쪽으로 트인 창에서 공기가 들어오는 八자 모양을 나타내는 글자로, “크고 높은 뜻”, 혹은 “존경하다”의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그래서 당(堂)은 건물의 넓고 높은 토대(土臺)를 가리키는 글자이면서 더러는 건조물을 가리키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채를 일컫지만, 천자가 거하는 궁정에서는 밝을 명(明)자를 더해서 명당(明堂)이라 일컫는다. 중국에서의 당(堂)은 곧 천자가 신이나 선조를 제사하고 제후를 만나거나 정무를 보는 곳이다. 이에 대해서, 집 실(室)자는 뜻을 나타내는 <갓머리>에 음을 나타내는 지(至)로 구성된 글자이다. 지(至)자의 갑골문자는 화살을 맞은 모양을 나타내고 있어서, 깊숙이 박히거나 들어가 있는 모양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방(房)이나 거실(居室) 혹은 거처(居處)를 가리키는 글자로 풀이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실(室)은 당(堂)의 안쪽에 있는 거실이나 침실을 가리키는 글자로, 부인을 영실(令室) 혹은 내실(內室)이라 일컫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래서 당에는 오르고(登), 실에는 들어간다(入)했다. 그러니까 공자의 말인 즉, 자로의 비파 솜씨는 노력해서 원리와 격식을 익힌다면 누구나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긴 하지만, 굳이 비파를 타지 않고서도 서로 통할만큼의 깊은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도 음미할 수 있다. 스승 공자가 그렇게 자로의 손을 들어 주긴 했지만, 자로는 강직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서 지나칠 만큼 기운이 승한 나머지 겸양지덕이 부족한 편이었다. 공자는 그러한 자로를 타일러 겸손을 배우게 해주려고 해본 소리인데, 스승의 의도와는 달리 다른 제자들로 하여금 자로를 얕보게 하는 동기를 제공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스승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자들은 자로의 실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민망스러울 정도로 동료의 약점을 꼬집고 나선 것이다. 현대인은 공자가 제자들의 비파 솜씨를 건물의 당(堂)과 실(室)의 관계에 비춘 고사를 어떻게 받아들이고들 있을까. 로봇과 인간의 바둑경기 이후 부쩍 자주 듣게 된 ‘알고리즘’을 들먹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마감하기 위해서, “평론가는 말꼬리에 붙어서 살아가는 파리 떼에 불과하다” 했다는 괴테의 어록 대신, 사도 바울의 ‘사랑찬가’의 결미부분을 받침 그릇으로 내놓고 싶어지는 것은, 스스로를 당(堂)이 아니라 실(室)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고 망상하는 교만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은 우리가 거울로 영상을 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마는,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부분밖에 알지 못하지마는,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 것과 같이, 내가 온전히 알게 될 것입니다.”(고린도전서 13장 12절)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도박벽이 있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아내의 결혼반지까지도 전당포에 잡혀버렸으니. 그래서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나를 용서해주오. 제발 내가 비열한 사내라고 욕하지는 말아주오. 당신이 보내준 돈은 모두 룰렛으로 날려버렸다오.”그러나 아내 안나는 남편을 나무라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도스토예프스키가 <백치>를 집필하던 중 벽에 부딪치고 있을 때, 룰렛을 해보면 어떻겠느냐며 도박을 권하기도 했다는데, 그런 일이 있은 후 문호는 도박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고 전한다. 견강부회(牽强附會)라 했던가. 풀이가 지나치게 비틀어진 것 같아 송구스럽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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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6-04-28
  • 현대인들의 게으름과 나태
    너무 게을러 옴짝달싹도 하기 싫어하는 장인어른을 모시고 사는 사위가 있었다. 사위는 얼마 동안은 그런대로 잘 참고 견디었으나 살림은 더욱 어려워만지고 갈수록 게으름이 심해지는 장인을 보자 몹시 울화가 치밀었다. 그래서 장인을 땅 속에 묻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나무를 베어 관을 만든 다음 장인을 덥석 들어다가 관 속에 넣었다. 그리고는 아내의 만류에도 아랑곳없이 묘지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이 소문을 들은 동네 어른 한 분이 그의 뒤를 쫓아와서는 ‘젊은 양반! 그래서야 쓰나? 자 그만 집으로 돌아가세. 여기 옥수수 두 자루가 있으니 우선 집으로 가 자네 장인어른 시장기나 면해 드리게’ 라고 말했다. 이때 관 속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인이 고개를 빼꼼 내밀면서 물었다. ‘이보게! 그런데 그 옥수수는 껍질을 벗긴 건가?’ ‘안 벗긴 걸세’ 그러자 장인은 관을 꽝 덮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얘야, 그냥 가자’ 오늘날 일하기 싫어하며 노는 것과 잠자는 것을 즐겨하는 게으른 사람들의 결과를 풍자하는 이야기이다. 게으른 자의 공통적 특징은 매사에 의욕이 없다는 것이다. 그들은 일할 의욕도 없고 심지어 음식을 앞에 놓고도 입에 떠 넣기조차 싫어한다. 한 마디로 ‘게으르다는 것’은 자기만족에 빠져 더 이상의 수고를 하기 싫어하는 상태를 말한다. 실례로 헬리 훼월리(Henry)는 현대인들의 게으름과 나태를 이렇게 지적했다. ‘오늘날 부모와 아이들은 명령하고 순종하는 데에 너무나 게으르고, 교사와 학생들은 가르치고 배우는 일에 너무나도 나태하며, 제사장과 선지자들은 영감을 주는 일에 너무나 맥이 빠져있고... 의사, 작가, 청소원 등의 직원들은 자기 일을 지겨워하여 매사가 대충 대충이며, 성도들은 너무나도 무기력하고 늘어져서 담대히 증거 하지 못한다’ 또 어떤 분은 이러한 현상을 말하기를 ‘이는 비단 서구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더욱 심각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기강이 풀리고 윤리 관념이 무너지며 사회 각 분야에서의 질서가 문란해지는 ‘도덕적 해이’(Morar hazard)가 우리 사회에 깊숙이 퍼져 있다. 때문에 지식인들은 바로 몇 해 전 에 일어났던 IMF 위기의 주원인이 바로 이러한 질병 때문이었다고 이구동성으로 진단하고 있다. 또한 이 고질병은 해외에 나간 이민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다. 즉 이민을 간 한국인들은 처음에는 유대인이 무색할 정도로 악착같이 일함으로써 때로는 유대인(Jew)에 빗대어 큐(Kew)란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 이내 풀어져서 술과 도박 등의 사치와 낭비를 일삼다가 결국 신용 불량자가 되거나 부도를 내고는 이리저리 피해 다니는 신세가 되고 만다. 물론 모든 이민자들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심심치 않게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 오늘의 우리들에게도 이러한 질병의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심각한 것은 세상의 많은 사람은 물론 많은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이 게으름과 나태가 얼마나 치명적인 질병이며 죄인가를 거의 의식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주님의 달란트 비유에서 보듯 게으름과 나태는 죄악이다. 일리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적 게으름과 나태에 대해서 아주 심각하게 경고하셨다(렘48:10, 잠21:25). 고로 영적으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생활에서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당장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을 초래하기에 아주 민감하게 여기면서도 영적 게으름과 나태는 당장 큰 손해가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 둔감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기도하는 것은 몇 날을 쉬어도 숨이 끊어지지 않기에 괜찮다고 생각하고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영혼에 힘을 얻는 것을 쉬어도 육적인 식사로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것에 그리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영적 게으름과 나태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영적 성장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강력한 ‘신앙의 스태미나’(stamina)를 가져야 한다. ‘스태미나’란 원래 라틴어로 운명의 세 여신이 뽑는 실 곧 인간의 수명을 의미하는 스타맨(stamen)의 복수형 이었다. 오늘날에 들어서는 정력, 지구력, 체력, 끈기 등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종합하면 ‘스태미나’란 어떤 에너지를 끝까지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요즘 사람들은 이 ‘스태미나’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즉 ‘건강 스태미나’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모습을 생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 스태미나’에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즉 ‘신앙 스태미나’를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있으며 신앙에 영양을 공급하는 말씀을 먹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또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신앙 훈련을 계획하고 그 훈련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 있는가 말이다. 우리가 육체의 쾌락을 따라 술 마시고 담배 피고 기름진 것을 맘껏 먹으면 건강 스태미나가 무너져 이길 힘이 없듯이 육체의 즐거움만을 좇아 산다면 우리는 좋은 ‘신앙 스태미나’를 갖추지 못한 채 늘 영적인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국 하나님과 소원하게 되어 신앙을 저버리게 될 것이다.
    • 칼럼
    • 목회자
    2016-04-28
  • 성서가 말하는 통치 기술
    금번 총선을 통해서 민심이 어디에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났다. 정치는 물의 흐름과 같아 아래로 흐르지만 때로는 막히기도 한다. 어디에서 막히고 어느 시점에서 굽어졌는가를 잘 살펴야 한다.성서에 통치에 대한 내용을 살펴본다.“지도자들이 바르게 다스리고 재판하는 자들도 올바르게 판결을 내린다(잠언 8:16).”“참으로 지혜는 진주보다 좋으며... 지식과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잠8:11-12). 먼저 눈에 띄는 구절이다. 지혜를 터득하지 못한 권력들은 일이 꼬일 때마다 조자룡의 (趙子龍)의 헌칼 처럼 강한 대응책을 공포한다.그러나 그런 큰 큰소리 친 정권치고 선정을 베풀었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지 못하였다. 그러기에 잠언에서는 “지혜를 얻는 사람은 생명을 얻고 주께로 부터 은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놓치는 사람은 자기 생명을 해치는 사람이다(잠언 8:35절) 라고 경고하고 있다.사람은 통치자들은 성서에서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의 경험과 가르침은 오랜 세월 사람들 의 성패를 통하여 터득한 가르침 이라는 것에 유의해야 한다. 또한 지혜의 왕 이라는 칭호를 받는 솔로몬이 후배 권력자들에게 주는 교훈이기도 하다.어느 한 순간 갑자기 깨달은 것이 아니라 시대와 인종을 초월하여 오랜 세월 동안 공감하고 터득한 보편성과 타당성을 지닌 교훈이라는 점을 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인자와 진리가 왕을 지켜주고 정의가 그 보좌를 튼튼하게 한다(잠언 20:28). 통치자의 권위와 안전은 진리와 정의의 실천으로 이룩된다. 이승만 정권은 그 찬란한 독립투쟁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거스리고 정의를 외면함으로써 붕괴되어 버렸다유다나라가 멸망 할 때의 사회 현상을 돌아보자. 그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멸시하고 천대하였다.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를 돌보지 않고 괴롭혔다. 품삯을 떼먹고 죄 없는 자에게 죄를 씌워 억울하게 하였고, 무죄한 자의 피를 흘렸다. 백성들의 악행을 일깨워 회개케 해야 할 성직자들은 불의한 자들과 야합하였다. 불의한 권력자들을 도와 그들에게 힘을 실어 주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죄를 지적하고 경고하는 자들을 핍박하고 소외시키고 우스개 거리로 만들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지 않은 말, 자기 마음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전하였다. 그들은 불의에 눈 감았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끝까지 지켜 보호해 주시리라고 주장 하였다.“네가 만사형통 할 것이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에게도 ”너희에게 재앙이 임하지 아니 하 리라“ 안심시켰다.오늘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청소년들의 성문란, 돈이면 청부 살인까지 서슴지 않는 사회 이면에 수십억씩 재산이 불어나는 권력자들의 치부, 불의와 악행이 만연되어 있다. 그 불의로 인한 양심의 거리낌을 교회나 절에 헌금함으로 씻어버린다. 많은 통치자들은 바른 말 듣기를 꺼려하고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서는 주먹만 날뛰게 마련이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말은 법은 별 쓸모가 없고 주먹만 확실하다는 관념에서 온 의식구조이다. ‘공의로 다스리는 왕은 나라를 튼튼하게 하지만 뇌물을 좋아하는 왕은 나라를 망하게 한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다.통치자의 입에서 공의에 관한 말이 그치면 그 사회는 어둠의 세력이 판을 치게 마련이다.“주께서는 정의와 공평을 지키며 사는 것을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더 반기신다(잠언 21:3).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그 근간은 정의 실천 여하에 따라 튼튼해지기도 하고 흔들리기도 한다. 선량으로 뽑힌 자들에게 고한다.호남에서 당선된 의원이 “다 죽고 나만 살아 왔다”고 울음을 터트린 심정을 공감한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선거를 치루고 선택된 여러분은 정의, 실천의 귀재가 되어야 나라는 굳게 서고 백성은 평화를 누리며 번영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 칼럼
    • 출애굽의 은총
    2016-04-27
  • (김지호)몽땅 연필
    몽땅 연필 김 철 교옛 짐을 정리하다또르르굴러나온 몽당연필연필심에 침을 묻혀그림을 그려본다닳고 닳아뭉특한 몸매는삶을 달관한어머님의 모습부러질 염려도 없다 침 묻혀 그려보는그림 속에서어린 시절의 꿈나라를 본다옛 물건이지만 추억이 담긴 것이나 아끼는 것은 쉽게 버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박스에 넣어 두기도 하는데 우연히 박스를 열어보고는 옛 추억에 젖어 들 때가 있다.이 시에서는 요즘 보기 힘든 ‘몽땅 연필’을 추억하고 있다. 우연히 발견된 몽땅 연필, 또르르 굴러나온 작은 체구의 연필. 어린시절을 떠올리며 침을 묻혀 그림을 그려본다. 닳을대로 닳아버린 몽땅연필의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를 떠 올린다. 온갖 것 자식 위해 희생하시고 살아오신 어머니. 자식에겐 좋은 것, 맛있는 것 다 주고 당신은 몽땅연필처럼 옷이 닳고 닳을 때까지 꿰매고 또 꿰매 입으셨던 어머니. 자식들 배고플까봐 자식부터 챙기셨던 어머니. 몸이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열심히 사셨던 어머니. 그 어머니는 인내로 똘똘 뭉친 정신력이 강하셨다. 그래서 화자의 어릴 적 어머니는 쓰러질 염려도 없다고 생각했나보다.화자는 지금 몽땅 연필에 침을 묻혀 어릴적 꿈나라를 연상하고 있다. 그 작은 몽땅 연필을 통해 어머니의 모습과 사랑을 느끼고 있는 상상력은 기발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도 한 번 몽땅연필의 추억을 되새겨보면 어떨까.
    • 칼럼
    • 기독시선
    2016-04-16
  • 까마귀를 생각해 보아라!
    초등학교 시절(일정치하)에 익힌 동요로 “저녁노을 해가 질 때, 까마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라는 내용의 것이 있었다. 일본 건국신화에서는 까마귀가 소중한 역을 맡고 있다고 교육받은 또래는 대체로 까마귀를 혐오동물로 여기지 않고 소년기를 보냈을 성 싶다. 해방 후, 중학생이 된 까까머리는 시조를 익히면서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마라”로 세뇌되는데, 그것도 잠시, 곧 까마귀는 “반포조(反哺鳥)로 둔갑하는 것이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까마귀는 영특한 새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구약에서 대홍수 후 까마귀가 정찰꾼으로 선발되어 최초로 방주를 벗어난 생물이 된 것은 밝은 눈과 지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짐작했지만, 하나님이 까마귀에게 명하여 숨어 지내는 엘리야에게 먹을 것을 날라주게 했다는 대목에서는 어리둥절해지기도 했다. 그러다 세계 도처에서 전해지는 신화의 세계에서는 까마귀가 태양신의 심부름꾼으로 활약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는... 그리스신화에서는 까마귀가 태양신 아폴론을 시중들었는데, 색깔이 희어 은빛이었고 목소리는 고와서 인간과 대화하는 지혜로운 새였다나. 어느 날, 까마귀가 아폴론의 아내 코로니스가 지상에서 살고 있는 인간 남자 이수키스와 내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폴론에게 밀고하자, 화가 치민 아폴론이 활로 코로니스를 쏘아버렸는데, 죽기 직전 코로니스가 아폴론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다고 하자, 후회한 아폴론이 이번에는 밀고한 까마귀에게 분풀이 한다. 아름다웠던 날개는 검어지고 고왔던 목소리는 듣기가 민망하도록 쉬어버린 것이다. 이솝 우화에서는, 병 속에 있는 먹이를 끌어내기 위해 병 속에 돌을 집어넣어 수위를 높이는 영특한 까마귀의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그러나 신화의 세계에서도 까마귀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좋았던 것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그 지능이 지나치게 높아 고대인들에게는 교활하게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조류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까마귀가 지능이 발달한 새라고 일컫고 있는 것 같다. 까마귀는 어느 정도 사회성을 지니고 있어, 끼리끼리 협력할 줄도 안다는데, 울음소리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단다. 전선에 매달리려 노는 꼴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지거나, 경사진 눈밭에 벌렁 드러누워 미끄럼을 타는 등... 그들이 놀이문화를 즐기고 있다는 관찰결과도 보고되고 있다. 색을 식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개체 별로 분별해서 기억해내고, 식물과 가축, 페트를 포함하는 포유류와 조류를 구별해서 인식한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인간에게 사육된 까마귀는 앵무새 못지않게 인간과 가축의 음성을 흉내 낸다나. 한편, 까마귀의 문제해결 능력이 영장류에 버금간다는 평가가 지나치게 과대 포장되면서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 낼 뻔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1996년, 일본 가나가와 현의 철도레일에 까마귀가 돌을 올려놓는 일이 자주 발생하자, 철도당국이 그들의 집을 철거한 데 대한 복수로 열차를 전복하려 한 짓이었다고 보는 이들이 있었다. 그러나 관찰 결과, 먹이를 저장하기 위해 주둥이로 돌을 물어 옮겨놓는다는 것이 우연히도 레일 위에 둔 것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러나 까마귀가 대적자로 여기는 엽사(獵師)나 청소부와 같은 인물은 기억해서 동료들을 모아 집단으로 공격하는가 하면, 그들의 집이나 자동차를 더럽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리처럼 반짝이는 물건을 수집하는가 하면, 공원 미끄럼틀에서 놀이를 즐기는 등, 직접적으로 번식이나 생명유지와는 무관한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얄밉지 않은가. 까마귀고기는 식용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져 왔다지만, 그렇지만도 않은 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정력에 좋다는 입소문으로 씨가 마를 지경이 되었다던데.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는 까치만 흔하고 까마귀는 볼 수 없어서, 그 소문을 은근히 믿고 있는 터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얼마 전 경기도 북부에서 까마귀를 보았기에, 뜬소문에 쉬 혹해버리는 늙음을 탓하면서 웃고 말았다. 암까마귀와 수까마귀를 분별하기 어렵다는 속담은 까마귀의 암수를 가리기 힘들다기보다는, 예나 지금이나 까마귀의 속성과 속내를 알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푸념이 아닐까 싶다. 국어사전에서 “선량(選良)”이란 단어를 찾으면, “뛰어난 인물을 뽑음. 또는 그렇게 뽑힌 인물” 또 “국회의원을 달리 이르는 말”이란 풀이를 볼 수 있는 데, 까마귀만큼이나 헷갈리게 하는 풀이가 아니가싶다.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6-04-16
  • 결혼과 이혼
    몇 년 동안이나 수다스러운 아내의 심한 잔소리를 참아 낸 유순한 유대 랍비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자제력에 대해 감탄하였다. 어느 날 친구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네 인내심은 참으로 대단 하군. 내가 만약 자네의 입장에 있었다면 나는 당장 아내와 이혼하고 말았을 걸세. 그녀가 지금 마을 사람 모두에게 얼마나 욕을 먹고 있는지 아는가?’ 이 말을 들은 랍비는 친구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임에 틀림이 없어. 만약 내 아내가 어느 인내심 없는 남자와 결혼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나? 그녀는 이혼을 당하고 말았을 걸세. 그러기에 그녀를 참아 낼 수 있는 나에게 그녀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일세’ 이 이야기는 결혼에 관계된 하나님의 섭리를 약간의 재치를 섞어 설명한 유대 전승 기록이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는 서구에서 유행되고 있는 문란한 성(sex)개방화와 성의 상품화로 인하여 음란한 풍조가 넘쳐나고 있다. 일부 TV에서 방송되는 저급한 프로그램, 포르노, 잡지와 같은 저급한 신문들 그리고 인터넷에서까지 음란한 내용들이 홍수를 이르고 있다. 이러한 세상의 음란한 풍조에 동조하여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의 하나인 가정을 자신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으로 여기고 이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례로 어떤 통계에 의하면 현재 한국의 이혼율이 약 33%에 육박 한다. 성도들의 이혼율도 약 24%나 된다고 한다. 성도 중에서 결혼한 네 쌍의 부부 중 한 쌍은 통계적으로 이혼의 아픔을 겪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죄악도 높이 쌓여가고 있다. 성도들은 이런 세상 풍조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서로 이혼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을 해야 한다. 물론 성도들이라고 전혀 이혼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불신 배우자가 종교적인 이유로 이혼을 요구할 경우에는 불가불 이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성도는 이런 경우에도 할 수 있으면 이혼을 피해야한다. 고로 성도들은 이혼 풍조가 만연한 이 세대에서 영육 간에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 이혼을 예방하는 일에 힘써야한다.부부간의 이혼 예방의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상호 존중해줘야 한다. 하나님은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므로 돕는 배필을 지으셨다.(창2:18) 고로 지금의 배우자가 나에게는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최선 최적의 배우자 임을 믿고 서로 존중해주고 섬겨야한다. 다음으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결혼이란 각자 자라온 환경이 다르고 받아온 교육이 다르며 성격이 다른 사람끼리의 결합이다. 고로 각자의 취향이나 생각만 주장한다면 가정이 성립될 수 없다. 서로 인내함으로 한 공통점을 찾아서 양보하며 살아야 한다. 끝으로 주님의 아가폐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야한다. 부부간의 열정도 점점 식어져 서로 권태를 느낄 때가 있다. 이에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하는 사이가 아닌 형식적으로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서로 사랑해 줄 수가 있다. 어떤 조건이 있는 사랑이 아니라 바로 주께서 우리를 사랑한 그 사랑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야 다툼이 없고 불만이 없고 불화가 없다. 하지만 이혼을 하면 인생이 두 동강나게 된다. 성도들은 장난이라도 이혼을 내뱉어서는 안 된다. 도리어 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배우자를 존중하고 서로 양보하며 인내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행복이 넘치는 작은 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을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결혼 생활에서 아무런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남편은 그녀로 하여금 매일 5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준비하도록 했고, 정확히 6시에 아침을 먹을수 있도록 다그쳤다. 남편은 빈틈없는 복종을 원했다. 그녀는 언제나 남편의 시중을 들어야 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시간은 남편을 위한 시간으로 꽉 짜여져 있었다. 남편이 즐거워하고 만족해 할수록 그녀의 인생은 점점 더 비참해져 갔다. 그러다가 남편이 갑작스럽게 죽고 말았다. 그녀는 슬픔보다는 자유로움을 느꼈다. 몇 년 후 그녀는 재혼을 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새 남편을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고 빈틈없는 시중을 들었다. 그녀는 하루 종일 남편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남편이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그녀 또한 더욱더 행복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낡은 종이 뭉치를 정리하다가 그녀는 우연히 전 남편이 메모해 놓은 종이쪽지 한 장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전 남편이 그녀를 복종시키기 위해 정해 놓은 엄격한 규칙들이 있었다. ‘5시에 일어날 것, 정확히 6시에 식사 시중을 들것... ’ 그녀는 여러 번 되풀이하여 읽고 또 읽었다.
    • 칼럼
    • 목회자
    2016-04-16
  • 니카라과에 대한 사랑
    몇일 전 남미 니카라과의 마나과에서 사역하고 있는 제자의 방문을 받았다. 그 분은 필자가 속한 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미국의 유학길을 떠나게 되었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에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장시간 회사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절도와 정직이 몸에 배어있는 제자였다. 미국의 유학길로 떠나기 앞서 그 쪽 대학원을 진학하기 위해서 필자에게 추천서를 부탁하여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어느날 미국에서의 공부를 마침과 아울러 니카라과 선교의 길을 떠난다고 연락이 왔다. 그 후 15년 나의 연구실에 그분이 나타났다. 그리고 장시간을 통해서 니카라과의 선교현장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선교사는 문화와 세계관이 다른 것이 얼마나 선교에 힘이드는 요소인지에 대해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 내기 위해서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설립하여 200여명의 학생을 교육하고 있다고 하였다. 경제와 사회적 환경이 너무 열악하여 단돈 1달러라도 학비를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결론은 사랑이 없으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사역이 그곳의 사역임을 이야기해 주었다.선교에 가장 귀한 마음이 사랑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 13장을 시작 하면서 모든 은사들도 사랑의 동기에서 활용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고린도 전서 13장을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절-3절은 사랑의 절대적인 필요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4-7절은 사랑의 특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마지막 8-13절은 사랑의 영원성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싶다.첫째는 바울은 사랑의 절대적 필요성(1-3)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사실 기독교의 진수는 사랑 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김준곤 목사님은 사랑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사랑을 거부할 만큼 사랑에 부요한 자도 없으며, 사랑을 주지 못할 만큼 사랑에 가난한자도 없다”라고 언급하였다. 누구 에게나 사랑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린아이에게 부모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용기와 힘은 부모님의 사랑 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사랑에 대해서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음을 많이 본다. 즉 사랑을 계약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합리성에 의하여 내가 이만큼 하니까 당신은 이 정도를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엄청난 사건을 가져 온다는 말이다.둘째는 사랑의 특성(4-7)이다. 바울은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 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라고 사랑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어서 고전 13:5절에는,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 하며,악한 것을 생갖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어서 6절과 7절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여기에서 우리는 “진리와 함께 기뻐하며”에 대해서 주목해 보아야 한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요한 3서 3-4절에 이르기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 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라고 말했다. 셋째는 사랑의 영원성(8-13)이다. 13:8절을 시작 하면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로 시작 하였고, 13절에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 이라”라고 끝마무리를 하시고 있다. 사랑은 영원한 것이다. 사랑이란 이 세상에서나 저세상에서 없어져 버리지 않는 영원한 은사가 사랑 이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이 그렇게 자랑으로 여겼던 예언도 방언도 폐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여기에서의 “떨어지다”의 단어는 나뭇잎이나 껍질이 떨어져 버린 것을 말한다. 성경은 이 세상에서 그토록 귀하게 여겼던 돈과, 권력과, 아름다움과, 심지어 남이 모르는 심오한 영적 은사 마져도 낙엽처럼 떨어져 나뒹굴 것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www.worldcan.co.kr
    • 칼럼
    • 선교
    2016-04-16
  • (김지호)병실의 창
    병실의 창 이 명 희병실 창에서내다보는 거리는모두가기적이다걸어가는 사람 웃는 사람들황소 같은 땀을 흘리며짐수레를 끌고 가는 짐꾼초코바를 물고 달랑달랑 뛰는 아이기적…몰랐던 저 천국…! 병실 문을 나서는 그날은나의 나된기적을노래하리라.화자는 지금 어떠한 지병이나 급작스런 병으로 인해 입원 중이다. 육신이 많이 고달프거나 입원할 정도로 아플 때에는 가끔씩 마음도 우울할 때가 있다. 병실에서 창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동작 하나에도 생동감이 있어 보인다. 보통 때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의 일상들이지만 병실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두가 기적처럼 보인다. 웃는 사람, 힘들게 일을 하는 사람, 뛰는 아이 등 일상의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얼마나 부러운지 바로 “천국”처럼 보인다. 아주 평범한 삶의 모습이 기적이요 천국으로 느낄 정도면 환자의 병환이나 마음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독자라면 누구라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극심한 아픔 속에서도 슬픔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빨리 회복하고픈 간절함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다. 그래서 병실문을 나서는 것 자체가 곧 기적이라 말하고 있다. 전도서에는 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라고 말한다. 그렇다, 부와 명예와 권력보다 소중한 것이 바로 건강이다. 그래서 화자는 지금 병실에서 건강의 소중함을 소리없이 외치고 있다.
    • 칼럼
    • 기독시선
    2016-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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