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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목사님의 변화의 설교
    어느 교회에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였다. 목사님의 첫 설교는 너무도 은혜롭고 감동적이었다. 성도들은 기쁨에 들떠 목사님의 손을 잡고 많은 은혜를 받았다며 앞으로도 이러한 설교를 자주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후에도 계속 같은 본문에 같은 설교만 반복하였다. 이를 궁금히 여긴 성도들이 목사님께 물었다. ‘아니 목사님, 설교 밑천이 그것밖에 없습니까?, 아니면 우리를 놀리시는 겁니까? 어째서 매번 똑같은 설교만 반복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아닙니다. 설교 주제야 성경 속에 무궁무진하게 있지요. 하지만 성도님들이 그토록 은혜로운 설교를 듣고도 아무 변화가 없으니 같은 설교를 계속 할 수 밖에요. 그러니 은혜로운 설교를 듣고 싶다면 삶에 변화를 보이세요. 그러면 저도 그 진도에 맞추어 설교를 바꾸어 볼게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구주로 믿고 진정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가 되었을까? 입으로는 주님을 시인하면서도 주님의 말씀과 계명대로 실행하지 않는 자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들에게 종교가 무엇이냐고 질문하면 서슴없이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며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한다. 과연 그들 중에는 기도를 많이 하고 성경지식이나 신학적 지식이 탁월한 사람도 많다. 성경을 줄줄 외우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지식이 곧 믿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성경 말씀은 단지 지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지식으로만 알뿐 실천이 없다면 그 지식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아니 오히려 그 지식을 악용하면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하여 신학자 존 베일(John Baillie)은 ‘하나님을 알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는 자보다 더 크게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위험이 있다’라고 말했다. 많은 이단들을 볼 때 매우 타당성 있는 말이다. 고로 우리는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이론적으로 따질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이론이 매우 합리적인 것도 있고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경우가 있다. 하지만 결과는 항상 같다. 인간의 모든 이론은 복음 앞에서 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견고한 성 여리고가 이론적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었을까? 무너져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이론적으로 따진다면 오히려 그것은 견고해야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합성에 무너졌다. 파괴되어도 철저하게 파괴 되었다. 마찬가지로 복음 앞에 인간이 세운 이론도 이와 같다. 비단 인간 이론만 아니라 종교이든지 교만함이든지 무엇인지 좋다. 복음을 대적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무너지게 되어 있다. 복음이란 그렇게 강력한 것이다. 헌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오늘 날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들이나, 장로들이나 일반 성도를 보자. 그들은 그토록 많은 설교를 하거나 듣고 많은 성경공부를 했는데도 거의 변화가 없다. 기독교인의 수가 일천만 명이 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는데 그렇다면 다섯 명 가운데 한명은 기독교인 셈이다. 외국에서는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의 이십 퍼센트가 넘으면 그 국가를 기독교 국가로 간주 한다. 그 기준에 보자면 우리나라도 기독교 국가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악과 범죄가 증가하고 부정부패와 불법이 늘고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목회자와 장로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세상과 타협하고 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적당히 하나님도 섬기고 동시에 세상과 짝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을 가지고 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이중생활은 위험하다. 이러한 사실은 역설적으로 역사상 가장 지혜로웠다는 솔로몬 왕이 가장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그는 부친 다윗을 이어 왕위에 오르자 성전을 지어 봉헌함으로써 하나님께 충성을 하였다. 한편으로는 왕국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 세상적인 방법도 동원하였다. 즉 그는 이방 여러 왕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세상적인 방법도 함께 동원하였다. 즉 그는 이방 여러 왕들과 환심을 사기 위해 정략결혼을 하며 우상을 끌어들이는 등 세상과도 짝하는 방법을 서슴치 않았다(왕상 11:1~7). 하지만 결과는 그가 의도했던 바와 정반대였다. 곧 그는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오히려 생존 시에 여러 이방의 공격을 받았고 그가 죽자 결국 나라마저도 두 조각이 나고 말았다. 이는 두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좇는 자의 결국을 보여 준다. 우리는 알아야한다. 믿음도 중요하고 기도도 중요하고 지식도 중요하지만 목회자들과 장로들과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의 덕목은 믿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형통함과(수 1:8) 풍성한 은혜를 주시기 때문이다(눅 5: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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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30
  • 카리나 선교사의 ‘내성천 살리기’ 1
    그동안, 생태선교사로서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생명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어떻게 마주하고, 풀어가야 할지, 과연 그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았다. 처음 한국에 와서 9개월가량은 한국어를 공부하고, 한국문화를 익히는 데 시간을 보냈다.그 이후 대한민국의 생명과 관련된 현장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체험하며 대한민국의 생태지수에 대해 느끼고 있다. 4대강 사업 때문에 망가진 강들도 순례했었고, 평화와 생명을 지키기 위해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는 제주 강정마을에도 다녀왔다.그리고 무엇보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주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외국인선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더 고민하기 시작했다. 우선 잊지 않기로 했다. 미약하지만, 그들을 기억하기 위해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노란리본을 달았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 광화문광장에도 나갔고, 독일에 이 일들을 알리기 위해서 글도 쓰고, 번역도 했다. 그러나 무언가 부족했다. 다시 나의 포지션이 생태선교사라는 것을 생각했다. 과연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인간의 생명, 그리고 온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녔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이 샘솟았다. 대한민국의 생태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결심했다.대한민국의 여러 생태 문제 가운데에서 독일인으로서 관심이 더 갈 수밖에 없는 것이 4대강 사업이다. 이미 16개 보가 건축되었고 운영되고 있으나, 아직 4대강 공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 마지막 공사인 영주댐이 내성천에 건설되고 있었다.지난 3월 5일,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정월대보름 마을 행사(무섬마을)에 참여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마주하던 불놀이를 볼 수 있어서 참 신기했다. 그리고 3월 말, 다시 생태공동체운동본부에서 동역하고 있는 이현아 전도사님과 함께 내성천이 흐르는 무섬마을에 오게 되었다. 봄볕으로 따뜻해져 있는 내성천 모래 위에 둘이 함께 앉아 있다 보니 많은 생각이 났다. 흐르는 강물은 세월과 같았고, 계절이 지나듯 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으며, 변화하는 강의 모습은 깊은 영감을 주었다. 그 순간 전도사님이 기쁨이 넘친 미소를 지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지금처럼 생태선교사의 눈으로 바라보고, 듣고, 느끼는 내성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것 어때요?”그때 나의 역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 역할은 과학적인 생태 연구나 대단한 어떠한 활동도 아니며 정치적인 관련도 없는, 그냥 지금 이대로 내성천 모래 위에 앉아서 내성천 자체를 느끼며 받아들이며, 그 이야기를 듣는 것. 내성천과 함께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정리될 때, 강변에서 내 맨발은 찰랑거리며 강과 하나가 되었고, 마음은 들떴으며 자연스레 원기회복이 되었다. 우리는 부드러운 모래에 정답게 안기어 있었다. 금색 노을의 빛이 강물에 희미하게 비추고, 조금 쌀쌀해질 때까지 그냥 그대로 오랫동안 있었다.일몰 후에 무섬 마을에 들어갔다. 이 내성천 강변에 위치한 한옥 마을의 이름은 원래 ‘물섬’이라고 했다. 경상도에는 이 무섬마을처럼 섬처럼 강이 휘감아 형성된 마을이 세 곳이라고 한다. 안동의 하회마을, 예천의 회룡포, 그리고 이곳 영주의 무섬마을이다. 무섬마을을 걷다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 어떤 민박집에 들어갔다. 260여 년 된 한옥집이었다. 집주인 부부는 20여 년 동안 서울 근처에서 살았는데 5년 전 아들과 함께 귀농하여 민박집으로 개조했다고 설명했다. 우리처럼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 차도 마시고 쉬면서, 영혼까지도 달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국에서 정말 놀라운 것은 현대 서양건축물들은 오래되면 곰팡이도 생기고, 오래 지속하기가 쉽지가 않은데, 한옥은 인간의 신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서, 몇 백 년이 흘러도 청결하게 유지가 되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한옥은 참 자연스러우면서 생태적이고 과학적이다. 마치 한옥 자체가 숨을 쉬듯 살아 있는 듯 느껴졌다. 그 한옥에는 정말 귀여운 강하지 한 마리도 산다. 이름은 ‘푸름이’. 푸름이가 나에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나도 용기를 내어 쓰다듬어주니, 바로 내 품으로 다가왔다. 잠시지만, 이 작고 따뜻한 털북숭이 친구에게서 친밀함과 애정을 느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났는지, 벌써 어두워졌다. 영주 시내로 가는 마을버스 막차를 탔다. 저녁으로 맛있는 떡볶이를 엄청 먹고 난 후, 숙소를 제공해준 영주중앙교회로 이동했다.주일, 생애 처음으로 한국 교회의 주일날 드려지는 모든 예배를 다 드려보았다. 오전 5시 30분에 시작되는 새벽예배부터 시작해서 1부, 2부 예배와 오후 찬양예배까지 총 4번의 예배를 드렸다. 각 예배마다 담임목사이신 간호남 목사님께서 나를 생태선교사로 소개하시면서 환영해 주셨다. 예배가 끝날 때마다, 전도사님들 옆에 서서 수많은 교우님과 함께 인사를 나누었다. 여러 번 예배드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설교를 여러 번 들으니, 훨씬 이해가 잘 되었고, 교우님들이 성경을 일일이 찾아보는 모습, 경건하게 예배드리는 모습 등에 새로이 감동을 받았다. 또 친교의 시간과 식사시간에는 독일에 가본 적이 있는 분들, 독일에 친척분이나 친구들이 계신 분들이 독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 주시기도 했다. 모든 예배를 드린 후에는 교회 장로님께서 영주댐의 현실을 직접 보여주시겠다고 해주셨다. 장로님과 함께 방문한 현장에서 파괴되고 망가진 내성천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한 현대 문명이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다.버스터미널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오면서 그곳 내성천에서 받은 감동이 떠나지 않았다. 5월 말 다시 방문할 때는 따뜻한 봄바람을 맞으며, 내 친구 내성천의 곁에서 자전거를 타며 그 아름다움을 다시 전하고 싶다.※ 카리나 슈마허 생태 선교사 소개 : 카리나 슈마허는 한국기독교장로회와 협력관계를 맺고 있는 독일복음선교연대(EMS)와 미션 21의 파송으로 총회 생태공동체운동본부에서 2012년부터 일하고 있는 생태선교사이다. 루터교 출신으로 로스톡과 호헨하임의 교회에서 녹색평화 활동, 그린피스 활동 등 다양한 경험을 쌓고, 베트남에서 연구 활동을 하기도 했다. 독일 로스톡대에서 농업학을 전공했으며, 호헨하임대에서 ‘환경보호와 농업먹거리 생산’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카리나 선교사는 독일교회의 앞선 생태선교를 한국에 알리기 위한 강연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2015년부터는 4대강 사업의 마지막 공사인 영주댐 공사가 이루어지고 있는 내성천에 관심을 갖고, 어떻게 하면 이 아름다운 강의 의미를 세상에 알리고,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지키고 이어갈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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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24
  • (정신재)빈 집 後記
    빈 집 後記 정 신 재 새벽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손등을 꼬집었다. 아버지의 손끝에는 빠알간 찔레꽃이 피어났다. 해무처럼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하얀 꿈결을 타고 지나가고 출세하여야겠다는 청춘의 욕망이 내 거시기에 용두질을 해댔다. 42년의 퇴직 생활을 마감하고 얻은 아버지의 퇴직금은 그의 친구인 척 가장한 사기꾼에게 몽땅 날아갔다. 밤마다 아버지는 이력서를 끄적거렸지만 아픈 몽상은 오후가 되면 물거품처럼 사라져 갔다. 종이짝 앞에서의 한숨은 빈 구들장 앞에서 콜록거렸다. 석유 파동으로 석유 난로는 언제나 풀이 죽었고 해가 성냥갑 방을 기웃거리면 독일에 간 누나가 보내 준 작은 청바지를 꿰입고 나는 아버지가 책장에 숨겨 놓은 비상금을 바람과 함께 집어든다. 한때 이백 마지기 지주였던 아버지의 뒤주는 고물상에 단돈 사천원에 팔려 나갔다. 모처럼 거금을 손에 쥐고 아버지는 지하실에서 하루종일 흥얼거렸다. 고양이가 울고 어머니가 던진 대야 소리에 좁은 마당이 모처럼 한가로워지는 저녁 세든 남자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한기로 머리를 감았고 어머니가 건네준 더운 물 한 바가지는 따뜻한 온기로 마당을 푸르게 적셨다. 다음 날이면 성냥곽 모양의 이층집 위에 햇살 한 조각이 다시 노닥거릴 것이다.세월은 비수처럼 흘러 빈 집엔 고층 아파트가 들어섰고 양지 바른 거실에 아버지는 없었다. 나 또한 언젠가는 이 집을 떠날 것이다. 빈 집이여 영원하거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필자는 대학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인하여 가난의 설움을 겪어야 했다. 나의 누나는 가난에 지쳐 독일에 가서 간호사로 나갔다. 그때 누나가 동생을 위해 보내 준 청바지가 나에게는 매우 작았다. 내가 중학 시절 누나가 출국하였으니 대학생이 된 내 몸집을 알 리가 없었다. 그러나 옷을 사 입을 만큼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나는 그 옷을 내 몸에 맞춰 입기로 하였다. 허벅지가 조일 뿐만 아니라 아랫도리의 거시기도 매우 아팠지만, 나는 그 옷으로 대학 4년을 견뎌냈다. 내가 그런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다.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 고통을 겪으신 주님의 심정을 헤아리면 웬만한 고통은 참아낼 수 있었다. 나는 작은 개척 교회의 주일 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며 열심히 성경 말씀을 읽었고 즐거운 마음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얻은 성경 지식이 오늘의 내가 신앙시를 해독할 수 있는 배경 지식이 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최근에야 확인할 수 있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니 행복이 멀리 있지가 않았다. 행복은 내 옆에서 나의 일상을 아름답게 수놓았다. 나를 죄악 가운데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였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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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시선
    2015-06-19
  • 메르스의 돌발 출현이 준 교훈
    대한민국은 중동에서 건너온 메르스 라는 질병에 의하여 심각한 몸살을 앓고 있다. 중동을 여행한 한 사람의 감염이 나라를 온통 뒤집어 놓는 듯 한 기분이다. 대한민국의 국격은 심하게 떨어져서 경제 성장과 IT 그리고 한류와 같은 좋은 이미지들이 하루아침에 기피대상국으로 전락하였다. 어디에서부터 문제가 되었는가? 이토록 처참하게 망가진 이유가 무엇인가? 책임을 누가 져야 하는가? 같은 질문들이 울분과 함께 내면의 세계에서 소리치고 있다.여기에서 우리는 전문가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언론에 소개된 분석 기사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환자의 병원 내 대량 감염이 이어지는 이유로 전문가들은 병원 간 정보교류가 원활하지 못한 점을 꼽는다. 만약 의료기관들이 환자의 메르스 접촉자 관련 정보를 조회해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이 일찍 가동됐다면, 건국대병원의 76번 환자와 감염 우려자들의 격리 조치는 보다 신속하게 이뤄졌을 것이다. 하지만 조회시스템은 6일 오후 10시 이후에야 가동되기 시작했다. 메르스 첫 환자가 발생한 지 17일 만이다. 당초 보건복지부는 3일 이르면 당일 중으로 의료진용 조회시스템을 가동시키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가동은 3일 이상 늦어졌다. 만약 이 시스템이 일찍 가동됐다면 삼성서울병원의 대량 감염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는 정부의 안이한 대책이었다. 언론을 살펴보면 주무 장관이 의료에 대해서는 무뢰한이라고 하는 평가가 있다. 따라서 보다 선제적인 대책을 통해서 방어에 나섰다면 이렇게 까지 처참한 과정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견해에 필자도 동의 한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의 ‘의료기관 정보마당’ 내에 메르스 대상자 조회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환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메르스 환자 접촉 여부와 격리유형(시설격리, 자가격리, 격리해제, 능동감시 등), 노출 의료기관, 최종 접촉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시스템이 보다 빨리 운용되었다면 국민들의 불안도 빨리 해소 되었으리라 믿는다. 셋째는 의료진들의 사명감을 정부는 호소했어야 한다. 환자들과 대면하는 의료진의 노고와 전문성을 인정하고 수고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들은 시스템뿐만 아니라 의료진의 문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호흡기질환이 있는 환자의 경우 메르스로 의심하고 대응해야 감염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내과 개원의는 “시스템 속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메르스 감염자의 경우는 의사의 문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하지만 실제 진료시간이 1∼2분에 지나지 않는 현실에서 이게 잘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현행 의료체계에서는 의료기관이 검색할 수 있는 환자 정보는 해당 기관의 진료기록뿐이다.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조치다. 관리대상 목록에 올라가지 않으면 의사의 꼼꼼한 문진만이 메르스를 가려낼 수 있다.넷째는 병원의 관리체계 확충과 정부의 지원이다. 메르스에 감염되면 환자들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중환자실의 경우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병원에서는 중환자실 면회객 출입 때 이상증세를 묻지도 않는 등 메르스 발생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실정이다. 대전의 다른 병원 중환자실의 한 환자 가족은 “의학적으로 면회객을 제한하지 않아도 괜찮은지 알 수 없지만 환자 가족의 입장에서는 병원의 안전 불감증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필자의 자녀 가운데 한 아이가 약학대학을 다니고 있다. 때마침 서울에 속한 한 대학병원에서 실습을 하고 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출근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서 메르스의 공포는 이제 남의 일이 아닌 우리 집의 일이 된 듯한 불안이 엄습하기도 하였다. 어느 날 저녁 딸이이가 다니고 있는 대학의 학장이 카톡을 통해서 학생들의 건강을 염려함과 아울러 의료인으로서의 사명을 잊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내용인즉 “이러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의료인으로 부르신 사명을 잃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었다. 딸아이는 그 메시지를 가슴에 안고 메르스 속으로 뛰어 들어 갈 듯한 마음으로 충만 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세상은 우리 성도들의 기도와 위로를 원하고 있다. 우리의 자세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활용해 주소서!”가 되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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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06-19
  • 헤르부르거 ‘오사카의 예수’
    소비사회와 효능지상주의를 고발하는 작품들로 주목을 끌고 있는 독일 작가 헤르부르거(G?nter Herburger, 1932)는 모택동, 체 게바라, 호치민, 마르크스와 같은 소위 혁명꾼들의 우상이 밀려난 공동(空洞)에서 피어난 작가라는 평을 듣는다. 그는 “교회의 예수’에 맞서 ”팝(pop)의 예수“를 그리려 했다. 1970년 작 <오사카의 예수>는 히피나 언더그라운드풍의 이미지로 예수를 그린 것인데, 대충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예수는 누구였나?’ ‘그는 무엇이 되고자 했나?’ ‘미래사회의 예수는 어떤 모습일까?’ 등의 물음을 전제로 <오사카의 예수>는 모든 전통을 뒤집어 놓았다. 긴 머리의 예수는 구멍 난 바지와 앞이 트인 셔츠에 바람에 나부끼는 합성수지 망토를 걸친다. 가족은 한물간 사회조직이라며 그룹으로 생활하며 정규직을 거부하는 예수는 한 때 건축현장의 인부로 일했다. 이력서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대학에 들어갔지만 졸업은 하지 않았다.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여러 해 여러 곳을 여행했고, 새로운 일을 경험했다. 레이더기술자, 신문사특파원, 풀장의 감시원 등. 인공두뇌학자가 되려다 포기했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의 눈에는 노동이란 ‘날조된 도덕주의’이고 ‘무의미한 것’이었다. ‘돈과 도덕’은 ‘억압의 도구’, ‘교회는 공포를 들먹이는 장치이며, 하나님은 노동이 날조된 것인 것처럼 날조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날조는 인간이 안심감을 얻을 수 있게 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하다.’고도 너스레를 떤다. 경박스럽기 그지없는 ‘팝의 예수’는 점입가경으로 이어진다. 그가 손을 높이 들어 “그대들은 크리스천인가?”하고 소리치면 무리는 “네”하고 합창으로 응답한다. “믿고 있는가?” “아니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렇소!” 모두가 화답한다. “그래도 즐거운가?” “즐겁소! 즐겁소! 즐겁소!”감동으로 연호하며 손뼉치며 뛰고 뒹군다. 무리는 한 묶음이 되어 예수의 앞장을 선다.미래사회의 ‘쓰레기와 인간으로 가득 채워진 양철통 같은 도시’ 한 가운데에서, 예수는 자유와 사랑에 대한 메시지 ‘직접민주주의의 사랑’을 말한다. 십자가의 해프닝. 그가 십자가를 지고 언덕을 오른다. 젊은 남녀가 끝이 뾰족한 모자나 플라스틱 헬멧을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한 그를 둘러싼다. 예수가 말한다. “나는 나를 선전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 높은 곳으로 올라간다. 안 그러면 눈에 뜨이지 않을 테니까.” 십자가를 진 그를 둘러싸고 웃고 있는 무리에게 큰 소리로 말한다. “나는 예수가 아니다. 나는 예수가 되려 하지 않는다. 예수는 오래전에 죽었다. 누군들 죽는 것이 당연하지 않는가? 그러나 내게는 당연할 수가 없다. 그런 것은 믿지 않는다. 두렵다. 죽을 생각은 없다.” 또 소리친다. “나는 모범이 될 생각은 없다. 너희와 같이 사는 것이다.”여인들이 둘러싼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안기면서 아래위가 뒤집히고 뒤틀리면서 그는 여자들 사이를 벗어나 위로 올라간다. 십자가에 도착하자 몸들로 이루어진 피라미드는 가라앉으며 붕괴한다. 십자가 주변에 밀집한 여인들은 “예수, 우리 예수”를 합창하며 뜨겁게 단 숨을 뿜어댄다. ‘높이 올려 진 예수’는 기분이 좋다. 십자가위에서 소리친다. “나는 죽음을 통한 구원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를 존경하기를 배웠다. 나는 타자를 존경하는 것도 배웠다...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한다.”그가 십자가에서 일어나 두 번 손뼉을 치자, 무리도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한다!” 화답하며 두 번 손뼉친다. “우리는 2천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혔었다. 꼴불견 십자가 때문에 괴로워하기는 싫다. 십자가는 인간을 굴종케 하는 불안의 질서를 확립했다. 더는 불안도 십자가도 없다. 나는 십자가를 버린다.” 또 “내가 만든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너희를 괴롭힌 복종을 자유와 사랑으로 바꾸기 위해 나는 너희들에게 온다.”하고 소리친다. 입은 것을 벗어던진다. 군중도 따른다. “뭔가를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으니 이제 간다! “면서 두 팔을 벌리고 뛰어내린다. 군중이 팔을 뻗쳐 그를 받는다. 그는 밑으로 가라앉아 군중 틈으로 사라진다. 젊은 남자들이 십자가에 휘발유를 끼얹고 불을 지른다. 끔찍하기까지 한 한 판의 놀이이긴 하지만,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이미 보수 아니면 진보의 탈을 쓰고 현실교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 지도 모른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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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범
    2015-06-19
  • 인간의 차별
    인간은 남자나 여자나 다 하나님 앞에 평등하다. 부자나 가난한 사람, 저명한 사람, 무명의 평민, 권력자, 재벌가나 모두 동일하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모르고 윤리도 모르는 자들은 지위나 권력, 돈, 조직을 이용하여 낮고 가난한 자들을 차별 하고 있다. 초대교회 시절 유대인 사회에서는 이방인, 노예, 여자 등의 차별이 철저 했다. 하나님의 선민인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이방인들은 개들(마 15:26, 27), 우상 숭배자, 부정한 사람들, 죄인들 이었다(갈 2:15). 또 노예의 신분은 주인의 재산과 같았다. 노예의 권한은 전혀 없었고 그에 대한 전권은 주인에게 있었다(몬 1:13~16). 그래서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상종하지 않았다. 여자들은 대게 가정과 사회에서 천대를 받았고 공적생활에 참여하지 못했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부모의 노동력이나 소득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이러한 신분상의 차별이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완전히 철폐 되었다(엡 2:14).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차별이 있을 수 없다. 이러한 신분은 결코 혈통이나 능력이 아닌 오직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저 주어졌다. 그리스도인은 이방인들에 비해 우월할 수 없으며 노예의 신분이란 당치도 않다. 주님을 믿는 성도는 주안에서 하나이며 한 형제이자 서로 존중하고 사랑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 사이에는 어떠한 인종적 신분적 성적 차별도 있을 수 없다. 한국의 초대 교회시절 서울의 예장 합동측 승동교회에서 신분적 차별을 철폐하고 당시 한국 사회에서 천대받던 백정인 박성춘 씨를 장로 장립하여 화제가 되었다. 실로 한국 교회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일이었다. 이처럼 복음은 신분의 차별을 과감하게 철폐하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는 아직도 신분 차별이 존재하는 듯 하다. 어떤 분이 이런 주장을 했다. ‘어느 교회를 보면 경건하게 예배를 드리고는 정작 광고 시 거의 모든 시간을 부자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소개하느라 가난한 사람들의 동정은 단 한마디로 넘어가기가 일쑤이다. 또 어느 교회는 설교시간마다 축복을 받으려면 헌금을 잘 드려야 한다고 강조하면서도 예산을 편성할 때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예산 할당에는 인색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감옥이나 빈민촌을 돌아보는 일은 일 년이 가도록 단 한 번도 안하면서 어쩌다 정치적 목적으로 유력한 자들이 찾아오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한다’ 평등해야 할 교회에서조차 왜 사람들을 차별하는가? 차별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재물이다. 경제적인 득실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는 것이다. 부자에게는 아부를 하며 가난한 자는 괄시해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인생을 사는 지혜처럼 받아들이기도 한다. 그렇다. ‘나에게 상대가 유익한가?’ 라는 물음이 차별 대우를 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곧 계산적인 사고가 차별 대우라는 결정과 선택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이것은 ‘악한 생각’이다. 차별 대우란 인간의 죄악 된 본성에서 기인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계산적인 사고 하에서 나온 모든 행동과 결정은 죄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바로 알아야한다.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모습을 취하며 살아야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다는 현대인의 사고방식은 결코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현명한 할 삶의 자세가 아니다. 또 이러한 생각은 수많은 죄를 열매 맺는 강력한 죄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고로 이러한 계산적인 사고를 용납할 수 없으며 그로인한 결정을 회개의 제목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만일 인간적인 기준으로 차별하면 단지 윤리적인 비난에 그치지 않고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 되어 그해 해당하는 벌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곧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법자가 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약 2:9). 이에 대해 혹자는 불만을 품으며 내심 이런 항의를 할 지도 모른다. ‘아니 살인이나 강도짓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사람을 좀 차별했을 뿐인데 그렇게 까지 하다니 좀 심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무지이다. 주님을 보자. 주님은 사람을 성별이나 종족 신분과 지위 과거의 행적이 어떠하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외모를 보시고 차별하지 않았다. 즉 각종 병자, 나약한 여인들, 문둥병자, 로마의 백부장, 혈루증 앓은 여인, 공회원 니고데모, 세리 삭개오, 부정한 사마리아 여인 등에게 한없는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다. 고로 오늘 우리가 진정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주님의 뜻을 따라 성별, 장애, 빈자, 병자, 학력, 지역, 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등을 차별하지 말자. 곧 그들은 주안에서 우리가 돕고 섬겨야 할 선한 영적 가족이기 때문이다.
    • 칼럼
    • 목회자
    2015-06-19
  • 한국역사교과서는 “테러리스트 사관”
    일본인 사토 마사루(佐藤優,1960-)는 신학을 공부했지만 외교관이 되어 러시아의 일본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각종 매스컴을 누비는 논객이 되어 있다. 최근 <문예춘추(文藝春秋>의 의뢰로 중국, 한국 러시아의 역사교과서가 일본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수험공부 이외에는 아무 짝에도 쓸 모가 없다’는 결론부터 앞세운다. 거대한 연표 만이어서 읽어가기에도 힘이 든다 했다. 그것은 기억과 그 재생만을 중시하는 일본의 엘리트 양성시스템이 후진국 형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뿐만 아니라, 일본의 역사교육은 한 해 동안에 통사를 공부하는 것으로 그치는 암기중심 교육으로부터 하루 빨리 탈피해야한다고 충고한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보다 많은 분량의 교과서를 만들 필요가 있다면서, 역사교과서를 러시아와 같이 수년에 걸쳐 배우도록 개편하는 것이 이제부터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와 사고를 몸에 붙일 수 있는 유효한 방법이 될 것이라 역설한다. 반면에 중국, 한국, 러시아의 교과서에는 독자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읽어가노라면 흥미를 느낀다면서 각국의 역사관과 사고방식의 포인트를 간단명료하게 짚어준다. 러시아와 중국은 세계의 그 어떤 나라 사람과도 대화가 가능한 철저한 리얼리즘과 보편성을 지닌 역사를 가르치고 있지만, 한국은 독자성이 강해서 국제적으로 통용할 수 없는 안으로 향한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면서, 각론에서 한국의 역사교과서를 ‘테러리스트 사관’에 따르고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가 놀란 것은 한국 역사교과서에 쓰이고 있는 역사관이라 했다. ‘이 나라의 역사관은 일본에게도 위협이 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안 될 것’이라면서. 그 이유는 ‘세계 교과서 중에서도 극히 드문 테러리스트 사관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란 것. “우리나라의 선조들은 여기까지 밀리고 밀려서 테러를 감행할 수밖에는 다른 길이 없었노라” 하는 역사이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예상과는 달리 북조선과의 친화성이 강하게 느껴진다면서 북조선의 역사교과서보다도 더 과격한 내용이 되어있다고도 언급한다. 그가 참고한 것은 2012년부터 2014년에 걸쳐 사용된 고교수준의 교과서를 편집부에서 번역한 것과 아카시(明石)서점이 출판한 ‘세계의 교과서 시리즈’였다는데, 구체적으로 우리의 어떤 교과서를 자료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다만 한 곳에서 ‘지학사’의 고등하교 한국사에서의 인용이라는 주석을 통해서 짐작만 해볼 뿐이다. 국내에서도 서로 극명하게 대립하는 역사관을 표명하고 있는 터라 섣불리 다룰 수는 없겠으나, 그가 정리한 내용은 대충 이렇다. 한일합병 전후의 기록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테러리스트하면 안중근이 떠오르지만 그에 대해서는 오히려 선명하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왜냐하면 “장인환과 전명운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의 침략을 미화한 스티븐슨을 저격했고, 안중근은 만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했다 (1909).” “박열은 1923년 일본에서 국왕의 암살을 꽤했고, 조명하는 1928년 대만에서 일본의 황족을 칼로 습격하는 의거를 감행했다.”는 기록. 그리고 “이봉창과 윤봉길의 의거가 세상을 놀라게 했고, 특히 중국인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등의 글을 들추며 ‘끝도 없이 많은 테러리스트를 열거하고 있다’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수상이라 해도 국가의 원수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옥(玉)’ 일본의 국가원수인 천황이나 황족의 목숨을 노린 자가 한국 교과서에서는 가장 위대한 투사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 이토 히로부미의 암살에 성공한 안중근보다 천황암살에 실패한 테러리스트에 대해서 보다 자상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은 천황 암살이라는 동기만으로도 주목을 받고, 수단이나 결과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이런 평가도 가한다. 문명국에서 통상적으로 테러에 의해서 현상을 타파하려는 시도를 칭찬한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이 교과서에서는 ‘우리나라의 테러리즘의 역사는 이만큼 오래된 것이다’하는 넋두리 말고는 별로 배울 것이 없다면서, 이스라엘이나 아일랜드에서도 이러한 교육은 하지 않는다고 침을 놓는다. 한국문화는 한(恨)이라지만 교과서도 분노의 충동으로만 채워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최종적 평가였다. enoin34@nver.com
    • 칼럼
    • 이상범
    2015-06-18
  • (정신재)내가 돌이 되면
    내가 돌이 되면 서 정 주내가돌이 되면돌은연꽃이 되고연꽃은호수가 되고내가호수가 되면호수는연꽃이 되고연꽃은돌이 되고 1979년 미당未堂 서정주 선생이 세계 여행을 다녀와서 D대학 강의실 칠판에 적어 놓은 시가 바로 이 작품이었습니다. 미당은 미국, 유럽 등에 사는 서양인이 매우 호평한 시가 이 작품이었다고 학생들에게 소개하였습니다. 그는 서양인이 호평한 이유를 동양적인 신비감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하였지만, 필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사물로 형상화한 상상력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하나님이 한민족에게 엄청난 정신적 에너지를 주어 축복하셨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아시아?아프리카 등의 개발 도상국에서 박정희식 경제 개발 모델을 많이 선호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습니다. 이 ‘하면 된다’의 정신은 바로 마가복음 9장23절에 나오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통합니다. 하나님은 한민족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긍심을 심어 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정신력은 1960-1970년대에 월남에 파병되었던 국군들에게 조국의 경제와 평화를 위해서라면 사지死地에 라도 못 갈 이유가 없다는 자신감을 낳았으며,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나가 어려운 일을 하면서도 서독 대통령에게 “우리 나라를 도와 주십시오” 하며 울면서 부르짖게 하였습니다. 또한 1970년대 말에 불어닥친 오일 파동 때에는 섭씨 50도를 오르내리는 사막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조국의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되게 일감을 더 달라 할 정도로 패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며 믿음을 가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한민족에게 내려 주신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축복이 북한의 김정은 마음을 변화시켜 통일 환경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돌을 연꽃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할 줄 믿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일상과 자유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 칼럼
    • 기독시선
    2015-06-11
  • 자살방지를 위한 교회의 역할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자살율은 OECD 국가 가운데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망자 가운데 자살이 5% 정도를 차지하는 등 매우 높은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2000년대 들어와 노인 자살, 여성 자살, 연예인 자살의 비율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최근에 서울 문일고 3학년학생이던 김태휘군은 목매 자살하려는 50대를 들어올려 구했다고 한다. 그는 5월 6일 오후 4시 40분경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다 금천구의 한 아파트 앞 정자에서 A 씨(55)가 손을 흔드는 모습을 발견했다. 처음엔 몸이 불편한 사람인 줄 알았지만, 다가가서 보니 목에 끈을 묶고 자살을 시도한 직후였다. 당시 A 씨는 눈을 감고 몸을 움직이며 괴롭다는 듯 신음하고 있었다. 김 군은 얼른 A 씨의 몸을 들고 기도를 확보한 뒤 112에 신고했다. 송호림 서울 금천경찰서장은 “학생의 적극적인 대처로 소중한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며 11일 김 군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고 한다. 참으로 귀한 선행이라고 판단한다. 자살은 개인의 선택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영향에 의한 것이기도 하다. 정신병에 의한 것, 우울증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정신병을 낳게 한 것, 그 우울증을 낳게 한 것 가운데에는 사회의 영향이 일부 작용하고 있기도 하다.한국사회는 현대화 이후에 급속도로 발전해 오면서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 심한 자기비애 같은 감정들을 경험하게 된다. 최근 케이블 TV의 EBS에서 방영한 남태평양 연안의 주민들에 대한 삶을 방영하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조그만 섬 속에서 자연적으로 자란 몇가지 종류의 양식을 채집하고, 섬 주변의 바다에서 하루에 필요한 만큼의 고기를 잡아서 생활 하면서도 행복지수가 세계 최대라는 통계치를 본적이 있다. 우리는 소유에 기준을 두는 삶이 얼마나 인간의 삶의 질을 망가뜨리는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겠다. 자살은 산업사회에서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경제적인 풍요와 정치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에서 오히려 자살율이 높고, 산업화가 덜 된 나라에서 자살율이 낮은 편이다. 산업화와 자살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는 바로 경제적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경제적 풍요로움을 따라가야 하는 어려움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경제적 어려움이 자살 이유의 가장 높은 이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그 근거이다.그리고 자살율은 에밀 뒤르케임의 연구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집합의식이 높은 사회일수록, 또는 집합의식을 강조하는 종교일수록 자살율은 낮다. 집합의식과 자살율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뒤르케임은 집합의식이 낮은 사회에서 자살율이 높다고 하였지만 그러나 또한 사회에 의한 비합리적 집합적 강제가 높은 사회에서 자살율이 높다. 미모지상주의 사회일수록, 물가 수준이 높고 과시적 소비가 높은 사회일수록 자살율이 높다.한국사회의 자살율을 줄이기 위해서는 한국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각종 사회 압력을 축소하거나 해체하여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개인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 주택 가격, 물가, 교육비용 등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하며,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집합적 강제력인 미모지상주의, 사회적 과시, 두주불사 등의 사회 압력 역시 축소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자살의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 일 수 도 있다. 최근 한 여학생은 자신의 진심을 몰라준다는 이유 때문에 자살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다리 난간에 매달려 자살하려던 여고생이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여학생은 최근 친구와 다툰 후 사과를 했으나 친구가 사과를 받아 주지 않은 것에 속이 상해 투신자살까지 생각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까치발로 다가가서라도 인명을 구하겠다는 경찰관의 기지가 한 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조한 순간이다. 투신을 하려고 망설이는 잠시 동안 경찰관 두 명이 나타났고 한 명이 자살을 기도하는 여학생과 대화하며 시선을 돌린 사이 다른 경찰관이 반대편으로 돌아가 여학생을 재빨리 붙잡아 구조했다.한국 교회는 자살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공동체 의식을 높여야 하겠다. 즉 교회가 그동안 가졌던 수직적 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바꾸어 나감으로서 성도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살피는 계기를 만들어야 하겠다.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다양한 시도들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상담이라든지, 복지사업 같은 것들을 통해서 참여자 모두는 자신을 오픈함으로서 혼자가 아닌 더불어 산다는 의식을 갖도록 해야 하겠다. www.worldcan.co.kr(세계로선교학교)
    • 칼럼
    • 선교
    2015-06-11
  • 발자크의 '프랑도르의 예수 그리스도'
    서머셋 모옴이 “천재라 부르기에 합당한 인물”이라 일컬었고, 도스토예프스키와 톨스토이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프랑스의 작가 발자크(Honore de Balzac,1799-1850)의 <프랑도르의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의 교회를 비꼰 작품으로 같은 취향인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읽을 수 있는 <대심문관>과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발자크를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이견이 있을 것이나, 어디 그를 두고서만 그럴까. 이름 있다는 목사를 두고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 않겠는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가 그리스도교와 교회에 관심을 가져 주었다는 것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프랑도르의 예수>는 중세에 일어났다는 사건을 그린 내용이라 현대인의 입맛에는 진부할 수도 있을 것이나, 작품이 쓰인 1831년 2월은 “7월 혁명(1830)”직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늘 우리 교회 현실과의 비교에서 적잖은 것을 건질 수 있으리라. “예수가 다시 이 땅에 왔다는 이야기는 프랑도르에서 멀지 않는 한 섬과 바다가 무대가 된다. 배 한 척이 나그네들을 섬에서 뭍으로 실어 나를 참. 선원은 늦게 오는 사람들을 재촉하는 뿔 나팔을 불어댄다. 그날의 마지막 배였기 때문이다. 승객이 배를 채우고, 선원이 밧줄을 끌러 출항하려 할 즈음에야 낯선 사나이가 나타난다. 배 뒤 쪽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은 그가 그들 틈에 자리 차지를 못하도록 분주하게 설쳐댔다. 그들은 부자요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높은 신분의 프랑도르 귀족 넷과 젊은 남자 귀족과 그의 연인,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와 신부님, 그리고 무기를 지닌 호위 병사를 대동한 부자가 꽤 무거워 보이는 돈 자루를 지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 곁에는 레벤대학의 학자와 조교가 자리했고. 낯선 사나이가 배 뒤쪽에서는 자리를 찾을 수가 없다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앞쪽으로 가는데, 거기 승객들은 그에게 자리를 비워주며 공손하게 맞아들인다. 그러는 것을 보는 뒤쪽 사람들 틈에서는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배 앞 쪽에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든 병사에 아이 딸린 술집 여인, 아들을 데리고 가는 농부, 나이든 거렁벵이 여인 등. 그들 틈에 뒤늦게 자리를 잡은 사나이는 그들에게 고맙다는 눈길을 돌렸다. 선원들이 밧줄을 풀고 항해사가 키를 잡으면서 노를 젓는 이들에게 큰 소리로 호령했다. “서둘러라. 속도를 높여라!” 폭풍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를 젓는 선원들은 힘껏 속도를 올리려 안감힘을 쓴다. 그러나 뭍 가까이에 다가왔을 무렵에는 무서운 폭풍이 배를 들이치는가 싶더니 항해사의 탁월한 솜씨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배는 전복하고 만다. 바로 그 때 그 낯선 사나이가 배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소리쳤다.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따라오시오!” 사나이는 흔들리지 않는 걸음걸이로 파도 위를 걸어가는 것이었다. 배 앞쪽의 가난한 사람들은 그를 따라 그와 같이 바다 위를 걸어갔다. 항해사는 배에 매달려 애쓰고 있었고, 부자는 허겁지겁 돈이 든 자루를 둘러메고 가려다가 그 자루와 함께 물에 빠져 버렸다. 교양 있는 사나이는 “사기꾼을 따라 바다를 걸어갈 수 있다는 사나이의 말을 믿는 바보들”을 비웃다가 그도 덮치는 파도에 휩쓸리고 말았다. 젊은 귀족 여인은 애인에게 매달려 그를 따라 깊은 바다로 빨려 들어갔고, 신부와 늙은 귀부인은 불신앙의 무거운 짐으로 해서 바다 깊숙이 가라앉고 말았다. 가난한 사람들이 뭍에 이르렀을 때는 앞서가던 사나이는 이미 보이지가 않았다. 항해사는 널빤지를 붙들고 간신히 깃에 도착했지만 깊은 상처를 입고 있었다. 낯선 사나이가 그를 구해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낯선 사나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예수가 마지막으로 이 땅에 찾아온 일었다.” 이야기를 마감하면서 발자크는 썼다. “사람들은 이제 믿지 않는다.” 또 “믿는다는 것은 곧 사는 것이다.” 발자크는 현실을 아름답게 보다는 있는 그대로 그리고자 했기에 자연주의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세속화되어가는 당시의 낙관주의와 자본주의를 자연주의적인 시각으로 그리려 했다. 또 그가 그리고자 했던 것은 “돈이 모든 것이다.”라는 당시의 풍조였다. <두르의 신부>와 같은 작품에서 보여주듯 발자크는 교회의 권위주의와 권력투쟁을 날카롭게 비판했지만 자신은 신앙인이라 믿고 있었다. enoin34@naver.com
    • 칼럼
    • 이상범
    2015-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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