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연지골
Home >  연지골

실시간뉴스

실시간 연지골 기사

  • [사설] 기독교계 인권운동 단체들의 침묵
    인권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과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에서 잔인한 비인권국가로 매도되고 있는 심각한 문제이다. 이 두 사건은 명백히 인권 문제와 관련된 사건임에도, 여야 정치권은 이를 놓고 같은 증거를 두고도 전혀 서로 다른 소리를 하고 있다. 매일 터지는 언론 보도도 여야가 다르게 해석한다. 그런데 우리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은 정치권의 서로 다른 소리보다, NCC를 비롯한 기독교계의 인권운동 단체들이 이같이 심각한 인권과 관련된 국민의 의혹에 일체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여야 정치권의 이 논쟁을 보면서 심각한 혼돈 상태에 빠져 있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귀순 진정성이 의심되어 북송했다는데, 눈이 가려지고 손이 포승에 묶인 채 판문점으로 강제로 끌려가 군사분계선을 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사진들은 무엇인가? 이는 당시 문재인 정부가 국민을 철저히 속인 사건이 아닌가 하는 강한 의심이 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계 인권단체들은 구 정부쪽이든, 신 정부쪽이든 최소한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국민들의 이 의심에 대해 명백히 밝히라는 요구만이라도 해야 옳다. 그것이 우리사회의 책임있는 주류 종교단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럼에도 기독교계 어디에서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은 또 어떤 연유에서인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이 중대한 인권 문제에도 침묵한다면 교계연합단체들이나 각 교단 인권운동기관들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 것인가? 아무런 구실도 못하면서 무슨 인권위원회니 하는 명함만 들고 다니며 예산만 낭비할 바에야 해체함이 마땅하다. 특히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은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채 그냥 뭉개고 간다고 해결될 문제는 결코 아닌듯하다. 살인 혐의를 받고 있는 '흉악범' 둘을 송환한 것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은 매우 민감한 국제적 사건으로 비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9-27
  • [사설] 우리사회에서의 기독교의 위치
    오늘날 우리사회를 다종교사회라고 한다. 다종교사회란 사회적으로 대표성을 가질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관을 공급하는 종교가 여럿이라는 뜻이다. 정부 정책상 소위 '전통종교'라고 불리는 불교가 있고, 또 '전통문화'라고 불리는 유교가 있으며, 그리고 천주교와 기독교가 있다. 이 넷은 그 사회적 영향력이 엇비슷하다. 그래서 한국의 종교학자들이 우리사회를 다종교사회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지금 우리사회는 누가 뭐라고 해도, 기독교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여타 종교에 비해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기독교는 전국 방방곡곡에 교회당 수가 6만 개, 전임 목회자가 16만명, 신도가 1천만명에 이르는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되면 우리사회가 전반적으로 기독교적 도덕성과 가치관이 형성되어서야 옳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사회의 지성인들이 정신적 아노미 현상을 겪고 있고, 정치적으로 사회가 혼돈에 빠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기독교인들이 주로 이 사회를 주도하는 각 영역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신앙행위에 있어서는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것으로 가족과 집안이 만사형통 하고, 또 소시민적 기복성에 만족감을 갖는 것으로 기독교인 행세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생명 없는 복제신앙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기독교는 나는 좀 힘들더라도 이 땅을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리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럴 때에 예수 안에 있는 개인이 복을 받고, 만사형통 하게 된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과 그 사회에 더 하시는 하나님의 은총이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삶은 그 우선 순위가 달라져야 한다. 우리사회의 소시민들은 기독교에 희망을 걸고 있는데, 21세기의 한국교회가 아직도 기복주의나 개인주의에 머물러 있는 것은 한국기독교의 미래를 위해 매우 불행한 일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9-27
  • [연지골] 동방 교부 아타나시우스
    △북아프리카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는 교회 역사에서 니케아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신학자요, 목회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언제나 'the Great'라는 칭호가 붙어 다닌다. 그리고 그는 훗날 '정통신앙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은 순탄치 만은 않았다. 아타나시우스는 297년경 이집트에서 태어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자랐다. 어느 날 알렉산드리아 감독 알렉산더(Alexander)는 소년 아타나시우스의 총명함을 알아보고 그를 데려다 가르쳤다. 그리고 그를 자신의 비서로 삼고 얼마 후 교회의 집사(부제)로 임명했다. 아타나시우스는 고전과 성경, 교부들의 저서들을 공부하면서 금욕자로 생활했다. △로마의 박해 아래 있던 교회는 313년 콘스탄티누스로부터 로마의 ‘합법적 종교’로 인정받아 박해시대가 끝나고, 그리스도론에 대한 견해가 갈라져 있던 교회는 전체 교회가 한 자리에 모여 교회회의를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25년 니케아에 제1차 세계기독교공의회를 소집했다. 이때 아타나시우스는 알렉산더 감독을 보좌하는 집사 자격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그 회의를 지켜보던 아타나시우스는 회의장에서 아리우스주의를 논박하고 그리스도의 영원한 신성을 옹호하는 열정과 지성을 드러내 큰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후 장로가 되었다가 328년에 임종을 앞둔 알렉산더 감독의 천거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감독으로 지명되었다. △325년 니케아에서 아타나시우스의 ‘동일본질’파가 정통신앙이 되고, 아리우스의 ‘유사본질’파는 이단이 되었음에도, 당시에는 아직도 아리우스파가 황실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황제를 설득하여 아리우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유배지에서 돌아오도록 했다. 이제는 그들의 공격으로 오히려 아타나시우스가 면직과 추방에 거듭 처해졌다. 첫 번째 유배생활은 트레브에서, 두 번째는 로마에서, 세 번째는 이집트 사막에서 수사들과 함께 보냈다. 황제 율리아누스는 추방된 주교들을 다시 불러들이고 아타나시우스가 다시 감독이 되었다. 그러나 아타나시우스는 네 번째 다시 이집트로 추방되었다. 362년 율리아누스가 죽자 후임 황제 요비아누스에 의해 다시 교구로 돌아왔으나, 얼마 안가 요비아누스가 죽고 아리우스주의자인 황제 발렌스가 즉위하자 367년에 다섯 번째 다시 추방됐다. 그의 유배생활은 모두 20년이나 되었다. △그는 기독교 정통신앙의 옹호자였지만, 수많은 적들의 공격을 받아 20년 간의 유배를 견디고, 마침내 373년에 76세의 나이로 아직 아리우스주의와의 투쟁의 종결을 보지 못한 채 자신의 교구에서 눈을 감았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파를 향해 다신론자들, 무신론자들, 거짓말쟁이들, 개새끼들, 이리들, 적그리스도들, 마귀들이라고 불렀다. 교회는 정통신앙을 옹호하기 위해 적들로부터는 그토록 심한 증오를 받았고, 그를 지지하는 신도들로부터는 그토록 큰 사랑을 받은 그를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 “위대한 계몽자” “하나님의 교회의 모퉁이돌”이라고 칭송했다. 그가 남긴 저서들은 기독교 변증서 '하나님의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니케아 신앙에 대한 교의서로서 '수사들에게 보내는 아리우스파의 역사', 금욕주의를 강조한 '성 나토나우스의 생애'가 있고, '시편 주석'을 비롯한 수많은 편지와 글들이 있다.
    • 연지골
    • 연지골
    2022-09-27
  • [연지골] 동방 교부 오리게네스
    △ 교회사에 나타난 특이한 이력을 가진 역사적 인물 몇을 소개하고자 한다. 3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교리문답학교 교장을 지낸 교부 오리게네스(Origenes, 오리겐)는 "성자께서 창조한 영원한 세계는 영적(靈的) 세계이다. 이 영원의 세계에서 모든 영들은 동일한 영광과 덕으로 지음을 받았고, 모두 자유의지를 가지도록 창조되었다. 이 영들 가운데 어떤 것은 이 자유를 덕되고 고결하게 사용해서 선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을 천사라 부른다. 또 다른 영들은 그들의 자유의지를 남용해서 악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들은 마귀가 되었다. 그러나 또 천사들처럼 복종하지도, 마귀들처럼 불순종하지도 않은 제3의 영들이 있었다. 이들이 바로 인간이다. 이들 모든 영들은 동일하게 창조되었다. 천사들을 위해서는 하늘이 창조되었고, 마귀들을 위해서는 지옥이 창조되었다. 그리고 인간을 위해서는 이 세상이 창조되었다"라고 했다. =이는 이 세상이 창조되기 전, 영들의 세계가 먼저 창조되었다는 신학적 해석에서 온 것이다. 즉 천사와 마귀와 인간은 모두 영원한 영들의 세계에 속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위해서 창조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기 때문에 인간은 '영원의 세계'를 잃었다. 곧 에덴에서 쫓겨난 실락원이다. 그런데 흔히 인간의 속성을 천사도 되고, 마귀도 된다고 한다. 어떤 인간은 천사처럼 선량하고, 또 어떤 인간은 마귀처럼 악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것이다. 과연 세상에는 그런 두 종류의 인간 모습을 어디에서든 찾아 볼 수 있다. 이웃의 약함을 자신의 아픔인양 측은히 여기고 돌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웃의 약점을 이용해 그가 가진 것까지 빼앗아가는 사람이 있다. 전자는 천사처럼 사는 사람이고, 후자는 마귀처럼 사는 사람이다. △ 주후 185년에 알렉산드리아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오리겐은 교리문답학교의 클레멘스의 지도하에 신앙과 지식교육울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202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박해 때에 순교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이미 성경전서를 암기했으며 성경 해석에 심취했다. 오리겐은 평생 금욕생활을 해 고기와 술을 먹지 않았고,, 주님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순종하여 겉옷도 한 벌만 가지고 지냈고, 신발도 한 켤레 이상 소지하지 않았다. 심지어 여성 교리문답자들과의 유혹과 추문을 방지하기 위해 스스로 거세하여 교회법에 따라 성직자가 될 수도 없었다. 228년에 오리겐을 아끼던 예루살렘의 알렉산더와 가이샤라의 테옥티스투스 감독에 의해 장로로 임명되었으나, 교회법을 위반하고 기독교를 부패시킨다는 이유로 교리문답학교 교사직과 장로직을 박탈 당했다. △ 오리겐은 기독교역사에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교리를 누구보다 강력히 지지했지만, 심각한 이단적 오류도 남겼다. 그의 오류 가운데 대표적인 예를 들면, 육체의 부활에 대한 부정, 영혼의 선재와 역사 전 타락, 영원한 창조, 구속 사역이 지구 외의 별들에 거주하는 자들과 모든 이성적 피조물들에 확대, 모든 인간과 타락한 천사들의 최후의 회복 등이다. 이는 정통신앙에서 인정되지 않는 이단설이다. 그리하여 이 위대한 신학자는 그가 죽은 뒤인 543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린 한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기독교의 교리가 아직까지 불분명하게 남아있었다. 오리겐의 기독교 역사에 가장 큰 공헌은 성경 해석학이다. 그의 해석 원칙은 육적(somatic), 혼적(psychic), 영적(pneumatic)이라는 삼중 형식을 가진다. 그는 니케아 이전의 여러 헬라어 구약성경 사본을 비교하면서 본문들에 나타나는 차이점에 주목했다. 그것이 '헥사플라'(Hexapla)라는 여섯 본문의 대조 성경이다. 그 외 성경 주석과 교리서 등 약 300여 권의 책을 남긴 대표적 동방교부이다.
    • 연지골
    • 연지골
    2022-09-27
  • [기자수첩] 합동측 부총회장 선거 유감··· 그렇게 이기고 싶은가?
    모 후보의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한동안 들끓었던 예장합동측 부총회장 선거판이 결전을 코앞에 두고 점차 막장으로 치닫으며, 교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치열하다 못해 이제는 치졸해진 모습인데, 한국교회 장자교단을 자처하는 합동측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회의가 일 정도다. 최근 합동측은 부총회장 선거와 관련해 선거법 위반 논란 외에도, 합동측 내 언론들 간의 접전도 나름의 관심을 모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선거판에 대한 나름의 해석과 비평을 통해 총대들의 관심을 모은 것인데, 어느순간 그 도를 심각히 넘어서며, 교단 내부의 커다란 반발까지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논란의 시작은 특정후보를 겨냥한 몇몇 언론들의 '묻지마식 비난'에서 출발한다. 그저 비판을 넘어선 비난, 그저 비난 자체가 목적인 비난을 가하는 것인데, 애초 언론의 '중립'까지는 기대치 않더라도, 이를 흉내조차 내지않으려는 이들의 태도는 심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 내용은 더욱 가관이다. 대부분의 기사가 글쓴이 개인의 감정과 해석에 완전히 편중되어, 기사 자체의 요건은 내다 버린지 오래다. 마치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심각히 난무했던 무분별한 SNS 비방이 언론의 이름으로 포장된 듯한 모양새다. 여기에 이제는 하다하다 못해 특정 후보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과거 논란까지 억지로 끄집어 내어 비난하는 모습은 교회의 지도자를 뽑겠다는 선거 본연의 목적을 무색케 하고 있다. 마치 장관 후보자를 대상으로 한 국회 청문회처럼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싹 다 훑어 단 하나의 티끌이라도 보이면 가차없이 물어뜯겠다는 태도인데, 과연 이 치욕스런 이전투구에서 얻게되는 승리는 누구를 위한 영광이 될지 심히 궁금해지기 까지 한다. 물론 언론의 비판 기능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언론의 비판 기능이 더욱 존중받기를 바란다. 하지만 이러한 존중은 그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때에 가능한 얘기다. 적어도 선거판에서는 선거만을 해석하고 비판해야 한다. 결코 그 선을 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때부터는 비판이 아닌 비난이 되기 때문이다. 합동측은 최근 몇년 간 지도자들의 분발로, 한국교회의 자타공인 장자교단의 위치에 올랐다.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을 이끌며, 정부와 국민들을 상대로 교회를 대변할 위치에 올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부총회장 선거판은 이러한 금자탑을 허물다 못해, 밟아 짓이기고 있다. 진정 묻고 싶다. 그렇게까지 해서 이기고 싶은가?
    • 연지골
    • 기자수첩
    2022-09-13
  • [기자수첩] 오정호 목사의 '사과문' 유감
    진정성 없는 의도적 역홍보 의심 그가 밝힌 사과 이유 ‘선거 일정에 차질을 빚게 해서···’ 결국 우려하던 상황이 그대로 나타났다. 지난 9월 6일 예장합동측 교단지(기독신문)에 게재된 오정호 목사의 '사과문'은 결코 '사과'가 아니었다. 짧디 짧은 글 속에는 어떠한 진정성도 담기지 않았고, 무엇을 사과하는지에 내용도 명확치 않았다. 단 다섯 문장, 합동측 선거판이 뒤집힐 만큼 큰 논란을 일으킨 수많은 위법혐의에 대한 오 목사의 대답은 단 다섯 문장 뿐이었다. 먼저 오정호 목사의 사과문 전문을 살펴보자. 성삼위 하나님의 은총이 항상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금번 제107회 총회 부총회장 직에 입후보하여 더 나은 총회를 꿈꾸며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늘 해오던 대로 총신을 돕는 일환으로 도너월 제막식에 참여하는 등 본의 아니게 미흡한 점이 있어 선거관리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저는 선거관리위원회의 지도에 깊이 감사드리며, 이로인해 선거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 점을 선거관리위원장님과 위원님들, 그리고 총대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앞으로 남은 선거기간 동안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서겠습니다. 오정호 목사의 금번 논란의 핵심은 위법이다. 허나 정작 이 사과문 속에 자신의 위법혐의에 대한 언급은 거의없다. 그가 유일하게 언급한 것은 '도너월 제막식', 사전선거운동을 방지키 위해 선거법에서 금지한 행사에 참석해, 기부 사진까지 찍은 행위다. 하지만 이에 대해 "늘 해오던 대로 총신을 돕는 일환으로 도너월 제막식에 참여하는 등 본의 아니게 미흡한 점이 있어 선거관리위원회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고 표현했다. 과연 선거법 위법이 '미흡'이란 단어로 무마될 일인가? 달리 말하면 자신이 사과문을 쓰는 이유가 '미흡'했기 때문이라는 것인가? 이 와중에 사전홍보물 배포, 언론 기고 등 또다른 위법 혐의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점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포장과 변명이 불가능한 사안은 아예 언급치 않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부분이다. 반면 '도너월 제막식'에 대한 위법행위는 오히려 역홍보가 가능한 주제다. 이는 보는 이로 하여금 총회의 정체성과도 같은 '총신'을 도우려다 당한 고난이라는 스토리 창출을 가능케 하기에, 반전의 충분한 요소가 될 수 있다. 여기에 그가 사과란 단어를 유일하게 언급한 세번째 단락은 이 사과문이 '떠밀리기식'이라는 것을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선거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된 점을 선거관리위원장님과 위원님들, 그리고 총대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 이 사과문이 결코 '사과'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사과의 이유와 그 상대가 완전히 잘못됐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사과 이유에 대해 "선거 일정에 차질을 빚게 했기 때문"이라고 언급할 뿐, 정작 선거 일정에 차질을 빚게 한 자신의 위법 논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치 않았다. 이 사과문에 진정성을 담고자 했다면 적어도 "의도치 않게 위법 논란을 일으킨 점을 사과 드립니다" 정도의 문장은 나왔어야 했다. 사과의 대상에 상대후보인 한기승 목사를 전혀 언급치 않은 것도 매우 불편한 부분이다. 한 목사는 누가 뭐래도 이 상황의 최대 피해자다.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선관위가 낸 '한기승 목사에 대한 감사의 글'이 사과문에 훨씬 가까워 보일 정도다. 마지막으로 "남은 선거기간동안 깨끗하고 공정한 선거문화를 정착시키는데 앞장서겠다"는 다짐은 적어도 위법 혐의를 받았던 자의 입장에서 낼 메시지가 아니다. 현 상황에서 오 목사는 선거문화 개선을 위해 앞장설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선거법을 철저히 지켜야 할 사람이다. 그렇기에 "남은 선거기간동안 선거법을 철저히 지키겠습니다"라는 다짐이 이 사과문의 취지에 훨씬 더 부합할 것이다. 사실 이같은 사태가 예측이 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애초에 선관위가 글의 수위를 전혀 공개치 않았고, 사과문 작성을 오 목사에 모두 일임했을 때, 당연히 제기된 우려였다. 결국 오 목사의 인격과 의식을 믿었을 선관위만 매우 곤란케 됐다. 한국교회 전체의 관심이 집중된 초미의 사건을 선관위 스스로 비난을 감수하며, 나름의 묘수를 낸 결정이었음에도, 오 목사의 진정성이 결여된 사과문이 모두의 노력과 희생을 헛되게 하고 있다. 오 목사는 차라리 후보가 확정된 상황에 꼼수 가득한 이런 떠밀리기식 사과가 아닌 이번 사태에 대한 철저한 인정과 진정성이 가득 담긴 사과문을 발표했어야 했다. 그것이 결국은 총회를 지키고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었을 것이다.
    • 연지골
    • 기자수첩
    2022-09-07
  • [토요시평] 임영천 목사의 '무속 세계에 얽힌 사연들'
    20년 전(2002년)에 어느 방송사가 방영했던 TV극 <장희빈>을 무슨 이유에서인지 요즘 한창 재(再)방영하고 있어서 자연히 그 내용에 끌려 시청을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회(79~80회)에서는 좀 특이한 장면이 나와서 그것에 끌려 더 눈을 크게 뜨고 화면을 보았던 기억이다. 희빈 장씨가 막례란 무녀를 끌어들여 중전을 음해하는 공작을 벌이고 있는 장면이다. 취선당에 차려놓은 신당에 미리 마련된 중전(왕후 민씨)의 얼굴을 표적삼아 화살을 겨냥해 과녁(눈알)을 명중시키는 짓거리를 거리낌 없이 자행하고 있다. 무당 막례가 몇 차례 화살을 당기다가, 직접 쏘아보라고 희빈 장씨에게 활을 넘겨주니까 거침없이 화살을 당기고 있다. 중전 민씨가 큰 타격을 받아 빨리 죽도록 만들어 보려는 무당 막례의 계획된 만행에 서슴없이 가담하는 희빈 장씨의 잔인한 모습이다. 장희빈은 중전 민씨(인현왕후)가 죽게 되면 그 자리에 다시 자기가 오를 것을 걸기대(乞期待)하며 그런 저주의식을 주저 없이 감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이 민씨 사후(死後)에 최숙빈의 발고(發告)로써 밝혀짐으로 인해 그녀의 운명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무술(巫術)과 부패 권력이 자기의 이익을 위해 서로 손을 잡은 사례를 볼 수 있다. 김동리 작가의 장편소설 <을화>(1978)에는 주인공인 어미 을화와 아들 영술 사이의 기막힌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어미 을화(乙火)는 무당 신분이고 그녀의 아들 영술이는 예수교 신자이다. 영술이가 마을 교회엘 들렀다가 우연히 그의 생부를 만나게 된 뒤로, 그가 아비 집에 찾아가거나 머무는 일이 잦아진 것을 극력 반대하는 어미 을화와 아들 영술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게 된다. 어미와의 대립 끝에 영술이 나흘간이나 귀가하지 않는 동안, 을화는 아들의 귀가를 고대하며 식음을 전폐한 채 치성을 드리고 있었다. 영술이, 지난 제 감정적 처사를 반성하며 귀가한 다음날 새벽, 을화는 아들의 성경책을 몰래 빼내 불에 태우며 굿을 벌이고 있었고, 이 현장을 목격한 영술이 그 불을 끄려고 근처의 물그릇을 집어든 순간, 을화의 식칼이 아들의 왼쪽 가슴을 찔러버린 것이다. 칼을 맞은 영술은 다음날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무당에게는 모자지간의 관계조차 제대로 유지하기가 어려운 무슨 불가침의 영역이 있음이 드러난 셈이다. 우리는 여기서 무녀의 양심(또는 사랑)이란 것이 그녀 특유의 ‘엑스터시(황홀경)의 유지’만큼도 그 자신에게 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서기원 작가의 장편 역사소설 <조선백자 마리아상>(1979)에는 사기장이[陶工] 김신봉이란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는 상당히 늦게 예수교도(속칭 천주학쟁이)가 된 편이기는 하지만 신앙만은 아주 굳건하게 유지하고 있는 청년 신도이다. 그런데 그의 사기장촌에도 ‘천주학쟁이’들에 대한 일대 검거선풍이 불어닥쳤고, 그도 동료 도공들이 먼저 잡혀간 광주목의 관아로 자수 형식으로 걸어들어갔다. 이가환 광주 목사(부윤)의 온갖 회유와 협박, 아니 견디기 힘든 장타(곤장 타격) 등의 악형에도 굴하지 않던 신봉이가 그만 마지막 한 순간에 힘없이 무너지면서 “소인은 하느님을 모릅니다.”라고 배교를 선언해버리고 만다. 이는 무당인 장모의 딸, 곧 ‘신봉의 아내’가 벌인 고도의 심리전술에 그가 휘말린 때문이었다. 남편을 어떻게 해서든 배교자로 만들고서 자기들의 무속 세계로 그를 끌어들여 보려고 무던히 애를 쓰던 그녀가 남편이 취조 받는 옥으로 갓난아기까지 안고 들어와서는 남편 대신 자기가 처벌을 받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이게 무당인 그의 장모의 머리에서 미리 짜낸 작전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장판(杖板) 위의 아내가 곤장을 맞는 소리, 거기에 놀란 아이의 자지러진 울음소리…. 게다가 매질에 축 늘어져 있던 아내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하느님 같은 건 모른다고 제발 어서 말씀드리세요.”라고 애걸하는 속에서, 결국 신봉이는 속절없이 무너져버리고 만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무속세계의 끈질긴 대결의식과 그 만만찮은 파괴력을 확인하게 된다. 지금껏 우리는 한 사극과 두 소설 작품들 속에 나타난 무속 세계의 권력지향 성향과 대(對)기독교 파괴력의 실상 등을 살펴보았다. 문제는 이런 것이 사극이나 문학작품 속에 보이는, 그 수준에 그치는 실상일 뿐이냐는 것이다. 이런 무당 이야기들은 결코 작품 속에서만 살아 있는 게 아니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실제론 우리 삶의 현장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는 것이다. 전(前) 박 정부 시절, 최 모(某)란 무녀가 국정 책임자를 맘대로 좌지우지하다가 나라를 위태롭게 하고 그 책임자도 몰락하게 한 사례를 결코 잊어선 안 될 것이다.
    • 연지골
    • 토요시평
    2022-07-25
  • [사설] 목회적 봉사를 넓게 보는 페러다임의 전환 필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사회든 그 시대의 사회적 가치관은 주류종교의 가르침에서 나온다. 공산당이 지배하는 사회는 공산주의 이념이 곧 그 사회의 종교적 가치관을 대체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는 주류종교가 여럿으로 사회적 가치관이 혼재해 있으므로 다종교사회라 한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론에 따른 헌법질서가 작동하고 있어 사회가 잘 조화되고 있다. 지난 1일에도 전국적으로 지자체 선거가 실시되어 질서있게 새로운 지도자들을 선출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도자 선출에 교회를 비롯한 사회적 가치관을 제공해야 할 종교집단의 영향력은 매우 미흡했다. 이런 현상을 흔히 우리사회가 정치와 종교의 분리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생각은 틀린 것이다. 세속정치도 당연히 우리사회의 주류적 종교에서 그 가치관이 제공되어야 한다. 현대 우리사회 구성원의 약 절반에 이르는 인구가 종교를 믿고 있고, 그 가운데 신구교 기독교 인구는 전체 국민의 약 35%나 된다. 특히 개신교의 경우, 전국에 6만여 개의 교회당이 있고, 매 주일 그 교회당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신도 수는 줄잡아 약 6백여 만명이나 된다. 거기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의 말씀을 따라 인간이 살아가야 할 건강한 삶의 기본 도덕과 규범이 설파되고, 현대인의 윤리적 삶의 질서를 배운다. 그것이 곧 사회적 가치관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한국교회가 과연 그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솔직히 지금 한국교회의 신앙은 '영육의 하나의 온전한 삶'이 아니라, 영과 육의 삶을 따로 보는 '일종의 이원론적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런 형태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60여 개의 인가받은 목회자 양성대학이 있고, 거기에 또 각급 교단이 목회자 양성을 위해 설립 운영하는 소위 무인가 신학교가 전국에 1백여 개 이상이 있다. 이들 신학대학이나 신학교들은 하나같이 교회를 봉사하는 '목양(牧羊) 목회자' 양육에만 심혈을 기울이지, 사회를 봉사하는 '목민(牧民) 목회자' 양성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늘날 교회에는 '목양 목회자' 못지 않게 '목민 목회자'도 절실히 요구된다. 목민 목회자는 직장선교회를 비롯해 시장, 기업, 지자체 등 사회 전반에서 목회적 봉사를 감당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 연지골
    • 사설
    2022-06-28
  • [사설] 6·25 상기 72주년, 교회의 언어로 평화를 요구하라
    유물 사관을 토대로 하는 공산주의는 기독교 사상과 전혀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있다. 공산주의와 기독교는 같이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사회에서 기독교는 거의 사라졌다. 그러나 동방정교회가 대변하던 러시아와 로마 가톨릭이 지배하던 동구라파, 그리고 아직도 공산당이 지배하는 중국 등에서 그래도 교회가 살아 남았다. 그러나 그 교회가 과연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한국교회는 공산주의 또는 공산당과 기독교가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6.25 전쟁이라는 비극을 통해 몸으로 체험한 바 있다. 올해가 6.25 72주년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은 전쟁 중 공산주의자들로부터 오로지 기독교 신앙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생명을 잃었다. 그때 정치적인 죽음은 두고라도, 순교자만 수 백명이 넘는다. 어찌 그 비참함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세월이 많이 가고 나니 한국교회 안에서도 북한 공산당에 대한 적대감이 많이 희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도 북한을 다른 시각으로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 일고 있다. 6.25를 일으키고 같은 민족 앞에 직접 총부리를 겨눈 자들은 이제 거의 사라지고, 남북이 공히 전후 세대가 역사를 이끄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는 그들과도 만나는 날이 오겠지만, 북한 공산당은 핵으로 무장하고 아직도 남한에 대해 적화통일을 노리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안다. 이런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교회의 언어로 평화를 요구하는 일이다. 그 소리가 비록 미미할지라도 하나님이 듣고 일어서시면, 땅이 진동하며 열국이 전율하고 영원한 산이 무너지는 날이 오게 된다는 것을 믿는다(합 3:6).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 약속과 이 소망을 붙잡고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통일의 그날이 올 때까지 민족에 수난을 가져온 북의 공산집단에 대한 경계의 끈은 결코 늦추지 말아야 한다.
    • 연지골
    • 사설
    2022-06-28
  • [연지골] 성도의 교제
    ◇역사적 기독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정통적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가 사도신경이다. "I Credo, 나는 믿습니다"로 시작되는 이 사도신경은 초대교회 박해 시대부터 단편적으로 전승되어 오다가 6세기 경, 보편적 기독교를 지칭하는 가톨릭의 정통 신앙고백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역사적 기독교가 채택한 수많은 신앙고백 가운데 가장 많은 성도들이 사용해온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사도신경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이어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하시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으신 '예수의 그리스도 주' 되심을 고백하며, 성령의 사역과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고백한다. 그리고 죄 사함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는 것이 사도신경의 내용이다. 이 가운데 특이한 것은 성도가 서로 교통한다는 '성도의 교제'(The Communion of Saints)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살면서 맺은 모든 인간 관계는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죽음'으로 끝난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곧 여기에서 고백하는 '성도의 교제'이다. 이 세상에서의 성도 간의 교제는 육적 인간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인 '새 예루살렘'까지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6장 '성도의 교통'은 "모든 성도들은 성령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어, 그의 은혜와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영광 안에서 그와 교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성도들은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누구든지 그 연합에서 떨어져 있다면, 진정한 성도라 할 수 없다. ◇그 대표적인 예가 노미날리티(Nominality)이다. 자신은 기독교적 가치관을 갖고, 기독교인으로서의 모범된 삶을 산다고 자부할지라도, 교회공동체의 연합 안에서 교제가 끊어졌다면 진정한 성도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작금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교회공동체에서 '가나안'(안나가) 교인으로 전락한 노미날리티는 이 점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주일예배는 온라인으로 드리고, 매일 성경을 읽고, 찬송하고, 기도하고, 성경의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헌금은 모아 이웃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고, 또 주일예배는 온라인으로 드린다 할지라도, 거기에 성도의 교제가 빠졌다면 그 예배는 온전한 예배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주의 날은 성도들의 사귐을 위한 특별한 교제의 날이다. 교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주일예배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제는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한 '성도(聖徒)의 사귐'(Holy Communion)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공동체 내에서 성도 간의 분쟁이나, 또는 목회자와 교인 간의 갈등은 옳지 않다.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라는 고백은 우리의 찬송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은 그가 어떤 교파, 어떤 개교회에 속했던 간에 모두가 '하나'이고, 또 '하나'가 되어 가는 존재들이다. 그러므로 현대교회에서도 성도의 교제를 중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연지골
    • 연지골
    2022-06-28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