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6(금)
 

“기장에서 ‘교주화’ 운운 너무 억울하고 가슴 아프게 해”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는 선교일꾼 양육을 목적으로 설립된 신학교



 
레마성서연구원(레마선교회)와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를 설립해 성경을 가르쳐온 이명범목사에 대한 이단시비가 통합측에 이어 기장측에서도 제기됐다. 이에 한국기독언론협회(회장 강춘오목사)가 포럼을 통해 이명범에 대한 두 교단의 이단성 있다는 보고서의 정당성을 평가해 봤다. 기독교시민연대(대표 김경직목사) 주관으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 세 사람의 강사가 각기 평가한 결과는 이명범목사에 대한 두 교단의 이단 보고서는 왜곡되었거나 억지 주장이 많다는 결론을 얻었다.
본지는 포럼 후에 이명범목사를 만나 그 입장을 들어 보았다. <편집자 주>

△오늘 통합과 기장에서 레마에 이단성이 있다고 한 보고서를 평가해 봤습니다. 그런데 이 평가 결과 그들의 보고서가 한결같이 사실 아닌 내용을 많이 담고 있고, 또 왜곡되거나 억지로 끌어다붙여 자신들이 멋대로 해석해 놓고 “레마는 이래서 이단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통합측이나 기장측의 보고서에 대해 이목사님은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솔직한 말씀을 좀 듣고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넘은 이야기인데 통합측이 이단이다 했을 때는 내가 처음에 그런 보고서가 통과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후에 소문이 들리기를 내가 이단이 됐다 그래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김기동목사님을 이단으로 정죄하기 위해서 관련자들을 이단으로 몬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당시에는 예수 믿어 행복하고, 성경 가르치고 전도하는 것이 너무 좋아서 그 일에 신경쓰다보니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채 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직접 답변하거나 해명할 수 있는 길도 몰랐습니다.
그러다가 2년여 지난 후에 내가 이단이 되었다면 무엇이 이단인지를 알아야 되겠다 생각해서 통합측 총회의 이단상담소와 총회장 앞으로 편지를 세 차례 정도 보냈습니다. '내가 잘못한 것이 있으면 바로 고치겠다. 뭐든 물어보면 답변하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답장이 없었어요. 아예 편지를 접수했다는 말도 없어요. 답답해서 무턱대고 광나루에 있는 장신대를 찾아갔습니다. 사무처에 가서 여기가 그 교단의 신학교이니까 누구든지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서는 그런거 다루지 않는다 그래요.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래도 통합측이 이단이라 하는 바람에 거기서 얻은 교훈도 있습니다. 성경을 한 절 봐도 깊이 검토하고, 표현에 신경을 써 조심하게 되었습니다. 배운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레마가 가르친 것이 아닌 내용을 억지로 끌어다붙여 이단으로 공격했는데, 왜 여태까지 여기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이 이단이라고 지적한 내용 중에 내가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삼위일체론을 양태론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 삼위일체를 그렇게 표현하면 양태론이란 이단설이 된다는 것을 잘 몰랐습니다. 그러나 창조론이나 이중 아담론 등은 내가 그렇게 가르친 일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도 통합측은 창조론에서 내가 ‘원자상태’라는 것이 원래 존재했다고 가르친 것인양 “이씨의 창조론에 의하면 하나님의 온전한 창조가 무너진다”고 비판했습니다.

△교계에는 레마에 대한 소문이 80년대 초부터 파다했는데, 이목사님은 어떻게 해서 성경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입니까?
본래 저는 감리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교회에는 잘 다니지 않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시집을 갓는데 시가가 마침 기독교 집안이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네가 성경을 모르니까 대화가 안된다며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출석한 교회가 남서울침례교회입니다. 교회 나간지 얼마 안되어서 어느날 눈물이 펑펑 쏟아져 회개하고 거듭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그래서 구역장을 맡아 은혜 받은 것을 나누다보니 구역이 잘 돼요. 그때 우리교회에 김기동목사님이 부흥회를 와서 김목사님을 알게 된 겁니다. 당시 김기동목사님이 우리교회에 일년에 두 차례 정도 와서 집회를 했습니다. 그런데 수년 후에 교회에 분열이 생겼는데, 내가 어느 쪽도 갈 수 없어서 안면이 있는 김기동목사님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 베뢰아교육을 받게 된 계기입니다.
그후 남편이 당신이 성경을 가르칠려면 신학공부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김목사님께 의논을 했더니, 이제와서 무슨 신학교냐고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의 권유로 장로교로 옮기게 되었는데 거기가 새문안교회입니다. 이화여대 기독교대학원으로 간 것도 당시 내가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아서 그리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럴 쯤에 중앙대학교 이사장의 큰 딸아이가 병에 걸렸는데 하루에도 수 차례씩 정신을 잃는 병이었습니다. 병원에서도 그 병의 원인을 모르고 차도가 없을 때, 누군가가 나를 소개해서 기도 후  그 병이 나았습니다. 그게 고맙다고 내게 중앙대학교에서 객원교수 자리를 주어서 강의를 맡겨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학생들도 많이 몰려오고, 또 교수들에게도 성경을 가르치지는 제안이 되어서 흑석동 중앙대 교회에서 바이블 스타디를 개설했습니다. 이것이 일반인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레마선교회를 설립하게 된 배경이 있습니까?
그래서 바이블 스타디를 선교로 연결해 볼 의향이 있어서 주변 사람들과 논의해 만든 것이 레마선교회입니다. 그때는 내가 목사안수도 안받았는데, 다만 은혜를 나눈다는 생각에서 미국, 일본, 중국 등 해외 집회도 많았고, 밖으로 돌다보니 국내 문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26년 전부터 해온 중국선교는 기대치 보다 큰 열매를 맺었고, 남미 전지역 국가에 선교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 케냐, 에디오피아, 아시아는 호주, 일본을 비롯한 필리핀, 캄보디아, 베트남, 인도, 네팔, 파키스탄, 키르기즈스탄, 우즈베키스탄 등과 러시아에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목사님의 입장을 좀 밝혀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까?
이단소리 들으면서도 크게 억울하지 않았는데, 최근 기장이 레마가 나를 ‘교주화’ 하고 있다고 했어요. 이번 기장의 경우에는 너무 억울하고 가슴이 아픕니다. 예수님 믿음 깨닫고 너무 기뻐서 온갖 것 다 내려놓고 오로지 전도에 힘써 왔는데 어떻게 나를 교주운운 할 수 있습니까? 레마에는 성경 가르치고 선교사 양육하고 전도하는 일 외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교계는 목사님이 설립한 ‘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기회에 예일신학대학교에 대해서 자랑 좀 해 보십시오.
예일신학대학교는 선교일꾼 양성을 목적으로 설립되었습니다. 화성 동탄에 아름답게 세어져 있었는데 재개발에 수용되는 바람에 보상금을 받아 서울로 이전했습니다. 지금은 서초동에 있습니다.
학교운영은 생각보다 참 어렵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학교를 세우라는 사명을 주셨다고 믿어 순종하고 있습니다. 또 훌륭한 교수들도 많고 열심있는 학생들이 입학해 좋은 선교일꾼을 양육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강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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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마성서연구원 이명범목사(예일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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