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의 괴짜 화가 카라바지오(Michelangelo Merici da Caravaggio 1573-1610)가 그린 “이집트로 피난 가는 도중에 휴식하는 성가족”에서 어쩌면 우리는 가장 요셉다운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화면 한 가운데 거의 벗은 모습으로 바이올린을 켜고 있는 천사는 유난히 밝은 조명을 받아 빛을 발하고 있지만 감상자에게는 뒷모습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반면, 화면 왼쪽에서 천사를 위해 두 손으로 악보를 받쳐 들고 있는 요셉에게는 조명은커녕 칙칙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감상자들은 그의 자세와 표정만을 훤히 읽을 수 있다. 무척 늙어 보이는 요셉, 주름이 새겨진 살갗은 차라리 흙빛인데다, 보따리 위에 올려놓은 맨 발은 나귀등에 산모와 아기를 싣고 먼 길을 걸어온 피로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발치에 놓인 포도주 병과 컴컴한 뒤편에 메여 있는 나귀는 말없이 요셉의 수고를 거들어주고 있는 것도 같다. 그러나 천사를 응시하고 있는 요셉과 나귀의 시선은 어둠을 뚫고 감상자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천사를 비추는 조명은 그림 오른 편 마리아와 아기도 비춘다. 지친 마리아는 눈을 감은 채 잠든 아기 예수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있다. 그녀의 붉은 머리칼은 애처롭기만 한데, 천사의 바이올린도 그녀의 피로를 달래주지 못하는 것일까. 눈은 감았어도 애써 아기 예수의 머리를 지켜보는 것 같다. 전체적으로 붉은 옷의 어머니와 아들의 흰 살결은 흰옷을 입은 천사 못지않게 밝은 조명을 받고 있어, 그늘의 요셉과는 뚜렷한 대비를 보여준다. 요셉에게서는 아버지다운 그 무엇을 찾아볼 수 없다. 고요만이 요셉을 둘러싸고 있을 뿐.
역사에는, 자신을 신불(神佛)의 환생(還生)이라거나 사자(使者)라 일컫거나, 나아가서는 자신이 곧 신이거나 부처 혹은 구세주라며 사람들을 현혹한 독재자나 교조는 수도 없이 많았다. 그리스도교에서도 예수를 자처하거나 자신이 성모 마리아라고 우기는 인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을 요셉이라거나 그와 관계된 어떤 인물이라 내세우는 인사가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요셉이 풍기는 이미지는 권력이나 위용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렇다고 요셉에게서 금욕(禁慾)을 앞세운 고고한 수련자의 모습이나 신비적인 상징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가하면 남달리 검소하고 부지런하여 재물을 쌓거나 기업을 이룩한 소위 모범적인 시민의 흔적도 더듬어 볼 수 없다. 요셉은 단지 한 아기의 아버지, 그것도 혈연으로는 아무런 연고가 없는 한 아기의 양육자로만 일관했다. 후광을 뿜어내는 성자도 전설 속에 묻혀있는 순교자도 기적을 일삼는 초월적인 능력자도 아니었다.
가족을 희생하면서도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는 이상주의자도 자기 탐구에 몰두하는 철학자나 종교인도 아니었다. 남달리 예민한 감성으로 인생의 부조리에 절망하여 세인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예술인도 될 수 없었다. 자신이 이룰 수 없었던 꿈을 자식에게 지워주며 기대와 압력을 가하는 교육적인 아비도 아니었고, 가문을 위해 자식을 일정한 틀에 맞추어보려 애쓴 가부장도 아니었다. 자식이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슬퍼하거나 반대로 자식의 눈치나 살피는 아비도 아니었고. 그렇게 요셉은 힘 있는 아비도 그럴 듯한 지아비도 못되었다. 지어미와 아들을 지키기 위해 칼을 빼들고 싸우지도 못했다. 그저 하늘의 음성을 구실로 닥치는 위해는 피하기만 하며 “양육하는 아비”의 분수를 지키기에 급급해하는 이를테면 별 볼 일없는 지아비요 아비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육체적인 부부는 아니었기에, 마리아의 아들은 요셉의 아들은 아니었다. 처음부터 성가족에게는 훈훈하다거나 아기자기한 가족의 이미지가 들어설 공간이 마련되어 있지 못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런 성가족을 안고 있는 그리스도교였기에 오히려 형제애를 이미지 할 수 있었다. 모든 아버지는 양아버지이고, 모든 아기는 양자가 아니던가. 제 자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식을 양육하는 것이 성가족인 것을. 그러니까 그리스도교 세계에는 고아란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은 아들을 제물로 삼아 다른 모든 인간들을 양자로 받아들인 것을.
괴짜 화가 카라바지오가 이 그림을 그린 것은 1595년경이었다고 전해오는 데, 희한하게도 그는 이 그림을 그린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살인자로 몰려 도망치는 신세가 되었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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