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5-08(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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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값으로 쳐서 4 세겔에 불과한 비단 옷 한 벌이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오랜 세월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게 하는 단서가 되었다는 교훈은 아무리 곱씹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야곱은 오랜 방랑과 투쟁의 삶을 접고 조상들의 땅 가나안으로 돌아온다. 이제 야곱은 물질적으로도 충족했고 주변으로부터 존경도 받는 처지가 되어 있다. 한 때 그의 위협이었던 형 에서 조차도 야곱을 적으로 돌리기보다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이라 판단하도록 주선할 줄 아는 야곱이었으니 그의 노련한 수완 앞에 거칠 것은 없을 것 같았다.  
  풍요의 땅 하란에서부터 양을 돌보는 일에 이력이 나 있는 아들들이 양들을 잘 돌보아주어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나있었다. 근방의 초원에서는 미처 양들을 먹일 수가 없는지라 억척같은 아들들은 꽤나 먼 지역까지 그들의 활동무대를 넓혀가고 있는 터였다. 나이든 야곱은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아들들에게 일임하고 있었다. 이제는 바라던 대로 학문을 즐기는 한 편 파란 많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하며 편안한 노후를 보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미드라시(Midrash)’는 바로 그럴 즈음에 사탄이 하나님 앞에 나타났다고 읽는다. 사탄이 하는 일이란 바로 잘 된 사람을 걸어 고자질 하는 것이 아니던가. 야곱을 걸어 사탄이 하나님께 시비를 걸고 나선 것이다. “믿음직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라면 내세에서 베풀어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유독 야곱에게만 이 세상에서도 저렇게 즐길 수 있는 특혜를 주는 것입니까?” 하고 힐난하고 나섰다는 것. 
그러니까 늘그막해서 야곱에게 닥친 환난, 즉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슬퍼하지 않으면 아니 되게 된 야곱의 고통은, 바로 야곱이 현세에서 보상으로 누리는 안락한 삶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서 평온해 보이는 야곱의 집 안에서 재난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씨앗은 야곱이 너무나 사랑하고 있었던 아름답고 감각적이고 총명할 뿐만 아니라 남달리 조숙한 아들 요셉이었다는 것이다. 그 요셉이 다툼과 불화의 씨앗이 되어 나이든 아비에게 아픔과 슬픔을 안겨 준 것이다. 그 씨앗의 씨앗은 불과 4 세겔 짜리 비단 옷 한 벌. 이것이 빌미가 되어 한 민족을 노예로 만드는 싹을 키우게 된 것이다. 행복했던 오텔로의 삶에 질투라는 불을 질러 불태워버린 것이 불면 날아갈 한 장의 손수건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토라(Torah)’도 야곱의 교육적 실패를 간단하지만 극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늘그막에 요셉을 얻었으므로, 다른 아들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하여서, 그에게 ‘화려한 옷’을 지어서 입혔다.(창세기 37:3, 개역성서는 ‘채색 옷’(=coat of  many  colours)로 번역) “화려한 옷”의 값어치가 어느 정도였을까. ‘탈무드’는 “화려한 옷”은 “비단 옷”으로 읽는다. 그리고 그 값은 4 세겔 정도로 추정했다. 그러니까 바로 4 세겔의 차별화가 “형들은 아버지가 그를 자기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서 요셉을 미워하며, 그에게 말 한 마디도 다정스럽게 하는 법이 없었다.”의 동기가 된 것이다. 야곱의 아들들을 질투로 불태우기 위해서는 최신형 스포츠카나 호사한 요트가 아니라도 충분했다. 단지 4세겔 정도의 비단 옷 한 벌이면 충분했다. 다만 야곱은 이 보잘 것 없는 옷 한 벌이 저질러 놓을 심리적 작용에 대해서 너무나 등한 했던 것이다.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이집트에서 오랜 세월을 노예로 살게 하는 원인이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할 수 있었겠는가. 그러니까 ‘미드라시’는 사탄의 계략으로 읽는 것이다. 
이렇게 ‘탈무드’는 이 4 세겔이 이스라엘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강조한다. 자녀의 앞날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자녀들을 위해서 쓰는 금액의 많고 적음에 따르지 않는다 했다. 오히려 그 금액에 묻어있는 마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요셉의 형들의 질투가 노예로 팔아넘긴 요셉이 이집트의 재상이 되어 오히려 그의 일족을 기근에서 구해내는 기적 같은 사건으로 발전하지만, 그리고 그 일은 먼 앞날을 헤아리는 하나님의 배려였다는 해석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셉의 ‘비단 옷’이 긍정적인 평가를 누릴 수는 없다는 것이 ‘탈무드’와 ‘미드라시’의 이해인 것이다. 
enoin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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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요셉이 걸친 화려한 옷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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