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바른번역, 바른해석, 바른적용 -129
2020/01/17 13:20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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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마태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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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해가 되었다.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 한 단락에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다.
본문은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신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가르침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생에는 결산의 날이 있다는 것과 그 결산을 대비하여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말씀하신다. 우리가 잘 아는 달란트 비유이다. 이 비유에는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주인과 두 종류의 종들이 등장한다. 착하고 충성된 두 사람의 종과 악하고 게으르고 무익한 한 사람의 종이다.
주인은 외국에 여행을 떠나며 이 종들을 불러 가각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5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2달란트, 그리고 다른 한 사람에게는 1달란트를 나누어 주었다. 한 참고서에 보면 1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으로 한 노동자의 20년에 해당하는 품삯이라고 했다. 주인은 이 돈을 그의 종들에게 나누어주면서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하라는 구체적인 명령을 하지 않았다.
옛날에는 종은 주인의 소유였다. 따라서 종의 가진 사사로운 물건이나 재산도 다 주인의 것이었다. 종의 아내나 자식들도 다 주인의 것이었다. 종이 죄를 지어 집에서 쫓겨날 때는 그가 소유였던 물건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아내나 자식도 남겨 두고 홀로 나가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종이란 자기 죄 이외에는 가진 것이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본문에서 주인이 종에게 달란트를 나누어 주었다고 해서 그것이 자기 소유는 아니다. 맡겨 둔 것이다. 여기서 주인은 그의 종들에게 다같이 일률적으로 똑같은 금액을 주지 않았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주었다고 했다(, each according to their ability). 주인은 종들의 입장에 볼 때 결코 공평하지 않다. 그러나 주인은 종들 각자의 능력에 따라 주었다고 했다. 돈을 나누어 주는 주인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그는 기분 내키는 대로, 혹은 그의 종에 대한 선호도에 따라 돈을 준 것이 아니었다. 이윤을 남긴 두 종은 주인이 그 돈을 자기들에게  “맡기셨다”(20, 22)고 말하고, 주인도 그 돈을 땅에 묻어 둔 자에게 “내 돈”을 이자놀이 하는 자에게 맡겼어야 했다고 말한다(27). 주인은 종들에게 돈을 나누어주었지만  그 돈은 여전히 주인의 소유였다. 주인이 종들에게 돈을 나누어 줄 때, 구체적으로 그 돈으로 무엇을 하라는 명령은 하지 않았지만 주인은 주인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고, 의도하는 바가 있었다. 분명 아무런 뜻 없이 준 것이 아니었다.
돈을 받은 종들의 반응은 각각 다르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의 반응은 같다. 이들은 “즉시” 나가서 장사를 시작하였다. 여기서 이 복음서의 저자는 “즉시”라는 말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계산을 해보거나 저울질을 하지도 않고, 손에 돈을 받자마다 일을 시작한다. 그들은 평소에 주인의 뜻을 헤아려 알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주인에게 무엇을 해드려야 주인에게 유익하게 되고, 주인을 기쁘게 할 수 있을 것인지 나름대로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시키고 명령하지 않아도 주인을 위한 일에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고 손발이 움직이는 사람이다. “즉시”라는 말을 쓴 것을 보면 이들은 이 일을 기쁨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이들과 너무나 다르다. 그는 주인이 준 돈을 무거운 마음으로 받는다. 고민이 생긴 것이다. 그는 어떻게 해야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는 장사를 한다고 하드라도 반드시 이익을 남길 수 있으리라는 확신과 그에 따르는 보장이 생각나지 않은 것 같다. 그 경우에 주인이 자기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를 생각한 것이다. 그가 생각한 주인은 엄한 분이고,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는데서 모으는 자, 말하자면 인정사정 보지 않고 돈을 긁어모으는 사람이다. 어쩌면 피눈물이 나오지 않을 만큼 깍쟁이요 구두쇠이며, 냉혈한이다. 이러한 주인 밑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한 본전은 까먹어서는 안 된다고 계산한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그 돈을 주인이 돌아오기까지 땅 속에 묻어두자는 것이다. 그의 지혜는 거기까지였다.
여러 해 후에 주인이 돌아왔다. 19절에 보면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서 그들과 계산을 하였다.”고 했다. 계산의 주체가 주인이다. 종들이 먼저 주인에게 나와서 “주인님, 제가 그동안 사업을 이렇게 했습니다”라고 보고 한 것이 아니다. 주인이 앞장서서 주도적으로 이들의 실적 보고를 받은 것이다. 자기 돈을 남에게 맡기고 그것을 점검하거나 결산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결산은 주인의 권리요, 의무이며, 사명이다. 결산을 하지 않는 주인은 주인이 되기를 포기한 사람이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받은 자들은 나와서 그들이 받은 돈으로 갑절의 이익을 남겼다고 보고 했다. 주인은 이들에게 “잘 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게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내가 네게 많은 것을 맡길 것이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21,23). 여기서 주인은 칭찬과 더불어 상급을 준다. 주인은 이들이 착하고 충성되다고 칭찬한다. 성경에서 “착하다”는 말은 다양한 의미로 쓰이지만 하나님의 창조활동이나 치유활동에 있어서 “살리는 것을 선하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한 손 마른 사람을 안식일에 고치시면서 “선한 일”을 한다고 말씀하신다(, 막 3:4). 선을 행한다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창조하고 살리는 일이다. 특히 창세기의 창조 기사에서 하나님은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후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시는데 좋았다는 말을 히브리어로 “토브”()를 쓰고 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살리는 일이야 말로 아름답고, 선하시고, 기쁜 일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하인들도 각각 주인이 맡긴 돈으로 원금의 배를 남겼는데 주인은 이들을 향하여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한다. “충성되다”는 말은 변함없이 꾸준하다는 의미이다. 오락가락하거나 중단하기를 거듭하지 않고 꾸준하게 한 길을 가는 사람이 충성된 사람이다.
주인은 이윤을 남긴 이 둘을 향하여 이들이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므로 앞으로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여행에서 돌아온 이 주인은 분명 앞으로 많은 일군이 필요한 사명을 띠고 돌아왔음을 암시하며, 이를 위하여 앞으로 그가 함께 일할 인물을 시험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종들은 주인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고 그저 충성했겠지만 이들은 앞으로 주인이 믿고 쓸 수 있는 더 큰 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인은 이들에게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여라”고 말한다. 그 주인이 여는 파티에 초청을 받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그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일개의 종이 감히 주인의 파티에 초대되어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관계를 갖게 된 것이다. 주인의 인정을 받고, 주인과 함께 앉아, 함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관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분명 돈이나 건강이나 자녀나 사회적 지위보다 더 귀한 은혜요, 특권이요, 영광이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다가 그대로 가져온 종에게 주인의 반응은 차겁고 준엄했다.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불렀다(26), 그리고 30절에는 “무익한 종”이라고 명명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과 대조적으로 악하고 게으르고 무익한 종이라는 것이다. 주인이 그에게 노를 발한 것은 그가 그를 악평한 것에 대한 되치기라기보다는 종의 생각대로 그를 평가하고 있다. 첫째로 주인은 종이 자기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종의 주인이 심지 않는데서 거두고, 뿌리지 않는 곳에서 모으는 사람으로 알았더라면 그는 자기의 돈을 이자놀이 하는 자들에게 맡겨 그 이자라도 받을 수 있게 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그는 아무 것도 한 일 이 없다. 그의 생각이 악하고,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으니 게으른 자이고, 손해를 끼쳤으니 그는 무익한 자이다. 주인은 그에게 주었던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고 그를 바같 어두운 곳에 내쫓아 내어 거기서 이를 갈며 통곡하게 하라고 명한다. 주인의 말대로 가진 자는 더 풍성하게 되었지만 갖지 못한 자는 그 가진 것마저도 빼앗기게 되었다. 종의 신분도 빼앗겼다.
이 비유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나귀타고 입성하신 후 그의 제자들에게 그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재림에 대한 약속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며 주신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처럼 그의 대속적인 죽음과 부활 이후 재림까지 제자들의 곁을 떠나실 것이다. 그동안 제자들은 종들처럼 주께서 주신 복음을 가지고 능력에 따라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가 확신해야 할 것은 첫째, 예수님의 재림이다. 둘째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주신 능력대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 셋째는 다시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성과에 대한 결산을 하시고 상벌을 주신다는 것이다. 특히 열심히 일하여 많이 가진 자는 더 많이 주시고, 헛생각하며 게으름 피우다가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있는 것도 빼앗긴다는 것이다.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인의 마음을 잘 알고, 적극적으로 주인의 유익을 위하여 일한 사람들이다. 선함과 충성된 자는 주인에게 이익을 남긴 자이다. 주인은 이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다. 앞으로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맡기시겠다는 것이고, 그의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주인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격의 없는 관계성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자이다. 주인에 대해서 편견을 갖고, 그의 생각에 구두쇠요 냉혈한인 주인의 횡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자이다. 종은 주인 생각을 먼저하고, 주인의 유익을 위해 지혜를 짜야지, 자기 생각만 하고 자기 유익을 위한 꾀를 짜내기에만 골몰하면 안 된다. 그는 결국 악하고 게으르며 무익한 종이 되어 쫓겨나고 말 것이다. 그는 본전을 까먹더라도 주인의 유익을 위해서 손발을 움직였어야 했다. 손해에 대한 변상의 문제는 주인의 긍휼에 달린 문제이다. 아무것 안 한 것이 문제이다. 악인이란 주인에게 손해를 끼친 자이다. 결국 그는 그 집에서 추방당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과 달리 그는 바깥 어두운 곳에서 이를 갈며 우는 모습이 처량하다.
2020년 새해가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우리 주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달란트가 있다. 하나님서 우리가 부르실 때에 우리는 그의 결산대 앞에 나아가 우리가 선악간에 우리가 우리 몸으로 행한 바를 모두 저울에 달아보게 될 것이다(히 9:27; 고후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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